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73화 (271/301)

273화

“연방의 기술이라고?”

“네, 확실합니다.”

체메트디오프의 시큰둥한 물음에 부하가 빠릿빠릿하게 대답한다.

“그런데 설계사상은 라출노그이고?”

“네, 그것도 확실합니다.”

“보병은 그… 뭐라고 하더라, 초원동맹연합? 연방이 위은쓸납학이라고 부르는 종족?”

“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연방의 기술로 만들어진 라출노그 함대가 위은쓸납학을 태우고 다니다가 우리 행성 하나를 박살 냈다. 그리고 또 지금은 우리 앞에 와서 대화를 하자고 한다, 이 말이지?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것 맞나?”

“네.”

체메트디오프의 함대는 지금 고대의 함대를 찾아다니며 재기동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체불명의 함대가 나타나 대화를 청하고 있다. 저들이 유에네스가 아닌 이상 딱히 적대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함대는 아직 저들을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유에네스의 기술을 쓰고 동포의 보금자리를 공격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이제 공격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자네가 알아서 해. 난 바빠.”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체메트디오프의 등에 부하의 말이 허겁지겁 달라붙었다.

“그, 그것이… 만약 집정관께서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을 덧붙이라 했습니다. 딸의 눈은 누가 가져갔나, 라고.”

돌아서던 체메트디오프가 가속을 붙혀 다시 빙그르르 돌았다. 제자리로 돌아온 그가 눈을 반짝이며 부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서 연결해. 어서어서.”

그러자 집정관의 앞에 홀로그램이 떴다. 역시나 예상하던 인물이 거기에 있었다. 딸의 눈을 가져가 동포의 존재를 판별할 수 있는 유에네스. 그리고 그 능력을 마구 휘둘러 화성에서 대학살을 벌일 것이 확실한 존재. 그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신가, 집정관.

“호오, 역시! 오랜만이군. 김 소령.”

영상 속의 빈우는 검은색의 도구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근데 왜 눈을 가렸지?”

-무식하군. 이건 선글라스라는 거야. 일종의 멋내기라고 할까. 바깥을 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또 시선을 감추는데 이만한 게 없지.

빈우의 대답에 체메트디오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샤다이의 눈을 끼우고 있는 인간이라면 동족에게서 의심을 받겠지.

-피차 시간이 없을 테니 바로 본론 들어갈까?

“내가 할 말 먼저 해줘서 고맙군.”

선글라스를 낀 빈우가 히죽 웃으며 한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우리 손을 잡는 건 어때?

빈우의 말에 샤다이의 함교는 뒤집어졌다. 빈우의 정체와 그의 함대가 저지른 짓을 아는 샤다이들은 분노로 눈을 뒤집었고, 체메트디오프는 박장대소하며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푸하핫하! 걸작! 걸작이야!”

순식간에 사태를 파악한 체메트디오프는 흡족한 듯 낄낄 웃고 있었지만, 부하들은 영 마뜩잖은 표정으로 그들의 집정관과 적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체메트디오프는 뒤늦게 체통을 차리며 일어났다.

“아니, 인류 연방군의 정예 요원인 자네가 무엇이 아쉬워 적대 종족의 수장인 나와 손을 잡으려고 하나?”

-사고 치고 도망치는 바람에 비빌 데가 없어.

“허허, 인복 한 번 박하군. 도와줄 동료는 없던가?”

물론 체메트디오프로서도 대략적인 내막은 파악하고 있었다. 빈우는 다샤 쿠사키나의 추적에 못 이겨 결국 도망치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그는 반격을 시도했고, 그러기 위해 자기가 지금까지 지키던 동료를 저버렸다. 이제 그는 자유로이 반격할 기회를 얻은 대가로 동료들에게 추적을 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동료야 있지. 하지만 나는 친구는 가까이 두지만… 적은 더욱 가까이 두는 편이거든.

당연하다. 적의 심장에 칼을 쑤셔 넣기 위해선 가까이 가야 하니까. 바로 지금처럼.

-어때, 집정관. 자네를 죽이고자 날뛰는 도망자와 손을 잡을 의향은 있으신가?

“어흠, 나야 자네의 의견이 몹시 맘에 들지만. 아무리 집정관인 나라 해도 내 독단으로 부하들을 부릴 순 없어. 사람들을 거느리는 이상, 그들을 납득시켜야 한단 말이야.”

어이없는 참말과 기도 안 차는 거짓말에 부하들의 시선이 체메트디오프에게로 몰려든다.

-그걸 굳이 설명해야 하나? 상관의 속내도 헤아리지도 못하는 부하라니, 그쪽도 꽤 인복이 없군. 뭐 좋아. 내 목적은 연방을 적대하는 모든 적을 죽이는 거지. 물론 거기엔 당연히 니들도 포함돼. 하지만 말이야,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잖아. 난 지금 화성에 가서 우리 동포의 몸에 내려온 샤다이들을 모조리 죽일 거야. 자네들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안방을 차지하려는 노친네들이지.

빈우가 동포와 선조들을 죽인다고 하지만 집정관의 부하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차피 유에네스의 몸에 내려온 선조들은 자신들이 죽여야 할 목표물이다. 빈우가 죽여준다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 오히려 환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체메트디오프는 빈우가 벌일 잔칫상에 숟가락 한번 놓아보려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참이다.

-집정관도 선조들을 죽이고 싶지 않나?

“그래, 당연히 죽이고 싶지.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모자라. 나는 훨씬, 훨씬, 더 훠어얼씬 많은 선조들을 죽일 거란 말이야. 그래서 방주가 그만큼 필요해. 화성에 있는 쥐꼬리만 한 고위 간부들 가지고는 성에도 안 차.”

지구제국 시절부터 정체를 감춰온 샤다이들은 그 지식과 지혜로 연방 상층부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지만, 그 수는 적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체메트디오프의 목적을 만족시키기엔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은 확실하다.

“찔끔찔끔 죽이다가는 늙은이들이 눈치채고 몸 사릴 수 있어. 한꺼번에 내려오게 해서 한꺼번에 치워야지.”

그래서 체메트디오프는 빈우가 화성으로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샤다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그가 화성으로 가서 고위 간부들을 친다. 그때 자기가 혼란스러운 화성에 나타나 강제로 계단을 만들고, 그 계단을 화성의 서버를 통해 연방 전체로 퍼트릴 계획이었다.

-그래, 적어도 7조 명이라고 했었지. 어느 정도까지는 내가 제공해줄 수 있어.

그러면서 빈우는 영상을 바꿔주었다. 무시무시한 수의 클론들이다. 빈우의 형체를 하고 있는 그의 클론들이 화면 끝까지 주욱 늘어서 있었다.

“호오, 많군. 하지만 아직도 모자라. 더구나 그게 진짜란 보장은 어디 있지? 실물을 내가 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안 되겠어.”

-뭐, 그럴 줄 알았어. 좋아, 그럼 이 조건은 일단 보류하지. 이번엔 본론이야. 바로 화성에 관한 이야기지.

화성이란 말에 이번엔 체메트디오프가 솔깃해져서 다가갔다. 빈우의 목적지이자 동시에 자신의 목적지가 될 곳이다.

-당신 요즘 선조들이 버린 함대를 주우러 다닌다며? 조상복이 없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구만. 아무튼 댁이 끌어모은 고대의 샤다이 함대를 가지고 간다 해도, 생각 없이 화성에 그대로 꼬라박았다간 대차게 깨질걸? 거기에 인류 연방의 중앙함대는 물론이고, 지구제국의 방어 병기가 있는 건 집정관도 잘 알잖아? 게다가 그 난리가 벌어지면 비홀더 전대도 난입할 것은 당연지사. 방어병기와 비홀더 전대에게 앞뒤로 두들겨 맞으면… 댁 확실히 뒤진다?

“그래서?”

체메트디오프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빈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난 화성의 방어병기에 접속할 수 있어. 거기에 집정관의 함대를 아군으로 등록해 주지. 그러면 자네 함대가 화성으로 들어와도 방어병기는 공격하지 않아. 적어도 방어병기는.

이건 엄청나다. 화성의 방어병기만 작동하지 않는다 해도 체메트디오프의 계획은 성공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왜 그래? 태양계에 드나드는 동맹종족의 함선들은 모두 이 절차를 거쳐. 설마 내가 이 정도도 못 할 것이라 생각하나?

체메트디오프가 알기로 빈우는 연방의 최고위 전사다. 게다가 그는 전투기술뿐만이 아니라 그의 종족이 만들어낸 수많은 기술들을 섭렵하고 있다. 물론 그 기술들에는 모략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 자네라면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겠지. 그러면 그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해줘야 할까?”

-비홀더 전대를 상대해줘.

뜬금없는 조건에 체메트디오프는 속내를 감추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주시자들을? 제국의 최정예를?”

의외의 조건에 체메트디오프가 고개를 갸웃한다. 어차피 주시자들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이다. 뭘 더 이상 싸우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런데 빈우는 왜 비홀더 전대를 막아달라고 하는 것일까. 지구 제국군과 인류 연방군은 서로 무시하는 아군이다. 공격할 이유도, 공격받을 이유도 없다. 만약 주시자들이 빈우를 노린다면 빈우의 목적이 제국에게 위험이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자기들 속에 숨어든 선조를 죽이는 것이 왜?’

알 수 없는 이유와 너무 좋은 조건에 체메트디오프는 한 번 튕겼다.

“흐흠, 이거 조금 수상한데?”

그의 말대로 이유도 조건도 너무 수상하다.

-조건이 너무 좋나? 좋아. 하나 더 붙이지. 내가 니들을 공격하지 않을 테니 니들도 나를 공격하지 마. 이러면 됐나?

빈우가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방해받지 않기를 원한다. 하지만 체메트디오프는 빈우의 계획에 몰래 편승하기를 원한다. 배가 향하는 목적지가 같으니 잘만하면 같이 갈 수는 있지만, 이건 문자 그대로 오월동주다. 가는 도중에 배 위에서 피보라가 몰아칠 것은 당연하다.

“불가침조약을 맺자는 건가?”

-둘 다 배가 고픈 상황에서 나는 고기가 있고, 너는 장작이 있어. 같이 구워서 나눠 먹지 못할 이유는 없잖아.

빈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기를 굽기 위해 서로가 없는 것을 조금씩 갹출하자는 의미다. 하지만 체메트디오프가 받아들인 것은 조금 달랐다.

“아하, 자네는 식사를 차리고 나는 그것을 먹기만 하면 된다 이거지?”

체메트디오프의 해맑은 웃음에 빈우는 사나운 웃음으로 답했다.

-흥, 좋아. 밥상 어지럽히지 말고 조용히 먹으면 아무 말 않겠어. 나보다 많이 먹어도 좋아.

“만약 식탁이 지저분해진다면?”

-별거 있나. 밥상을 뒤집는 수밖에.

수틀리면 빈우는 체메트디오프의 함대등록을 풀어버릴 것이다. 문제는 수가 틀리기도 전에 놈이 배가 불러버리면 저쪽이 먼저 등록을 풀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걸린 미끼가 체메트디오프로선 도저히 지나치기 힘든 진미다.

“좋아, 적어도 밥만큼은 서로 조용히 먹자고.”

그들의 만찬은 유에네스 안에 들어온 샤다이를 죽이는 것이다. 빈우는 원하는 만큼 먹겠지만, 체메트디오프는 한참 더 먹어야 한다. 그래서 체메트디오프는 몰래 숟가락을 얻어 마구 퍼먹을 속셈이었지만 이미 저쪽에서 먼저 식사에 초대했으니 답이 없다. 주인의 초대에 따라 재량껏 퍼먹을 수밖에.

* * *

빈우는 클론 공장을 돌아보았다. 케트쿤들이 만든 클론 제조 시설에선 자신의 클론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었다. 이 클론들은 체메트디오프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임과 동시에 자신의 계획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화성에 가서 샤다이를 죽이기 위해선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놈들은 연방의 상원 의원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들로 위장하고 있으니 어지간해선 닿기 힘들다. 그래서 라출노그 함대를 만들고 위은쓸납학 기동부대를 만들었다. 허나 이것이 통하는 것은 잠시. 제대로 된 대응이 시작되면 전멸은 시간문제다. 시간이 문제라면 시간을 벌면 되는 일. 바톤을 들어줄 주자들이 필요하다.

‘체메트디오프의 움직임은 예상이 가능하다.’

자신의 계획에 체메트디오프가 끼어들 것은 확실하니 선수를 치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 어차피 훼방을 할 놈이라면 자신의 시야에 두고 훼방을 놓게 하는 것이 대처가 쉽다.

‘문제는 비홀더 전대다.’

현재 빈우의 계획에 끼어들 세력은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고 하면 역시나 비홀더 전대다. 놈들은 루비콘 라인의 바깥을 돌아다니며 연방의 일에 대해선 무관심하다고 보이지만, 빈우는 그게 사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쿠델카를 통해, 혹은 자체적인 연락망을 통해 연방의 일을 연락받고 있었다. 다만 끼어들 만한 일이 아니면 무시로 일관하기 때문에 무관심하다고 보이는 것뿐이지, 빈우의 계획이라던가 정체가 드러났다면 높은 확률로 빈우를 제재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쿠델카의 진정한 음모를 알아챘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화성으로 돌진할 것이다.

‘문제는 놈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냐는 것이지.’

빈우는 쿠델카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만든 키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위한 열쇠. 열쇠는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려 하지만, 주변인의 눈을 과연 어떠할까. 상자가 열리지 않게 하는 방법 중에 키를 부수는 것은 꽤 좋은 방법이다.

“빈우야.”

그때 뒤에서 빈우의 생각을 깨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기선 들릴 수 없는 목소리. 그리고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다. 하지만 어쩌면 듣고 싶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마커스?”

빈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정확히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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