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달려오는 발소리, 그리고 빈우의 옆구리에 격통이 몰려온다.
“이 새끼!”
분노에 찬 마커스의 포효와 함께 그의 공격이 친구의 몸에 명중한다. 바닥을 나뒹구는 빈우의 위로 마커스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네가! 네가 감히 어머니를! 네가!”
무수히 이어지는 공격, 그러나 빈우는 저항하지 않고 두들겨 맞기만 했다. 마커스는 넘어진 빈우를 일으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빈우는 얼굴을 돌리며 팔로 가려 보지만, 마커스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쏟아진다.
“어머니는! 내 어머니는 너를, 너를 친아들처럼 대했어! 나처럼! 나와 같이, 마치 내 형제처럼 대했단 말이다!”
마커스의 주먹과 발이 다시 쓰러진 빈우의 얼굴과 배에 꽂힌다. 빈우는 얼굴을 가린 채 맞고만 있었다.
“그런데, 네놈은, 네놈은 어머니를 죽였어! 배은망덕한 새끼!”
지금 둘이 싸우고 있는 곳은 아만다 타이의 비밀 공장이다. 이곳은 과거 연방군과의 거래를 위해 아만다 타이가 몰래 만들었던 공장으로,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고작해야 아만다 타이, 아들 마커스 타이, 그리고 빈우 정도가 끝이다. 빈우는 이곳을 점거해서 임시 거점으로 삼은 상태였으나, 마커스에게 들킬 것은 시간문제였다.
“왜 죽였어! 왜! 왜!”
마커스의 울부짖는 노호성과 폭력. 그러나 빈우는 일체의 저항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보았냐! 그 눈으로, 그 눈으로 내 어머니를 보았냐고, 그래서 죽였냐?”
마커스는 멱살을 잡고 일으켜 소리쳤다. 그러나 빈우는 얼굴을 가린 채 저항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분노한 마커스가 빈우를 벽으로 거세게 몰아세웠다.
“말해, 넌 누구를 죽였어. 누구를 죽였는지 말하란 말이다.”
그때 빈우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난 친구의 어머니를 죽였다.”
다시 마커스의 주먹이 퍼부어진다. 얼굴, 턱, 배, 가슴. 그러나 빈우는 묵묵히 맞고만 있었다.
“이 개새끼야! 눈을 떠! 나를 봐! 눈을 뜨고 나를 보란 말이다!”
마커스의 팔이 빈우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가린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팔을 치우려고 했지만 치워지지 않았다. 저항의 정도를 보면 마커스의 팔보다 빈우의 팔의 출력이 더 높았다.
“나는 뭘로 보여. 네놈 눈에는 난 무엇으로 보이냐고. 난 대체 뭐냔 말이다.”
외침이 잦아들고 낮은 으르렁거림이 되었다. 끓어오르는 분노가 잠시 식자, 불안감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인간이냐, 아니면….”
마커스의 질문은 거기까지였다.
“컥!”
그는 짧은 비명과 함께 몸을 숙였다. 옆구리에 강력한 일격이 꽂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격은 앞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뒤에서부터 날아온 것이었다. 마커스가 뒤돌아서며 반격하려 했지만 연이은 공격에 날아가 버렸다.
“잠시 이야기하고 왔더니 이건 또 무슨 일이지.”
마커스를 공격한 이는 빈우였다. 선글라스를 쓴 빈우가 뒤에서 마커스를 공격한 것이다.
“체메트디오프와는 얘기가 되었어. 그래서 보고차 와봤더니… 친구끼리 싸우면 쓰나.”
선글라스를 쓴 빈우는 마커스를 내려다보면서 걸어와 두들겨 맞던 빈우의 앞에 섰다.
“괜찮겠어? 우리의 계획을 알려줘도?”
“어차피 방해하러 올 거야. 이쪽이 신경 쓰고 있다는 것쯤은 인식시켜줘야지.”
선글라스 빈우의 질문에 얻어맞던 빈우가 대답했다.
“네놈은 누구냐.”
마커스는 일어서면서 자세를 잡았다. 눈앞에 있는 빈우는 둘. 두뇌칩 반응도 동일하다. 둘 중 하나는 클론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본. 어쩌면 둘 다 클론일 수도 있다. 그의 질문에 마커스를 공격했던 빈우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대답했다.
“처음 뵙겠소. 마커스 타이 차관. 찰리하나팔이라고 불러주시오. 혼자서 오다니 의외군.”
빈우와 같은 얼굴. 그리고 클론답지 않은 저 눈동자 역시 빈우와 닮아있었다. 놈 역시 빈우처럼 어딘가 망가진 자인 것이다. 자신의 망가진 부분을 채우기 위해 비슷한 부품을 찾아 제 가슴속에 채워 넣는 자들이 저런 눈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가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상과 표창을 받아 그것으로 치부를 가리려는 사람들이 저런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이 당신 친구 김 빈우요. 헷갈리진 않겠지? 생긴 게 이렇게 다르니까.”
찰리하나팔은 엄지손가락으로 얻어맞던 빈우를 가리켰지만, 빈우는 돌아서서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야야야, 양심하고 타협하지 말라면서.”
찰리하나팔의 핀잔에 빈우가 한차례 떨었다.
“아까 타이 차관이 말했잖아. 자길 보라고. 자긴 누구냐고. 대답해 줘야지. 친구잖아.”
그 말에 빈우는 서서히 돌아섰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지 않고 마커스를 마주 보았다.
“…너.”
마커스는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형태는 빈우의 얼굴이다. 그러나 군데군데 일그러지고 뿔이 나 있다. 마치 워프 비스트의 징조, 아니, 워프 비스트로 변하고 있는 몸이다. 그리고 감겨있던 빈우의 눈꺼풀이 떠지자 그 안에 샤다이의 안구가 있었다. 그 안구는 잠시 금빛으로 빛나더니 다시 꺼졌다.
“다행이다. 마커스. 너를 죽이지 않아도 되어서.”
착잡한 빈우의 말에 마커스는 전후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이 짐작했던 것이, 그리고 그토록 부정해온 것이 잔혹하게도 진실이었던 것이다. 한 가닥 남았던 희망의 줄을 잡아당기자 거기서 절망이 쏟아져 내린다.
‘어머니가 샤다이였다니….’
짐작에 쐐기가 박히자, 그 쐐기가 마커스의 가슴을 후벼 팠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샤다이라니.”
허망한 마커스의 혼잣말에 빈우의 얼굴도 슬픈 듯이 일그러졌다.
“어머니는, 나를. 나를….”
마커스의 머릿속으로 어머니와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녀는 회사를 키우고, 연방을 위해 헌신하며, 아들을 키웠었다. 그런데도 샤다이였다고 한다. 뻐꾸기 작전이 발동되었을 때 마커스는 그녀를 철저하게 검사했다. 그런데도 샤다이였다고 한다.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의 정체가 샤다이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정확한 빈우가 그랬다.
“너, 너는…….”
마커스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고개를 들었을 때 빈우는 이미 몸을 돌리고 자신의 작업에 전념하고 있었다. 화면에 뜬 내용을 본 마커스는 자신을 괴롭히던 사실들을 잊을 만큼 놀랐다.
“빈우야! 그건!”
친구의 외침에도 빈우는 멈추지 않고 화면에 입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미친 새끼야! 멈춰!”
달려 나가던 마커스를 찰리하나팔이 막았다.
“어허, 진정해 차관 나리. 난 빈우처럼 말랑하지 않아.”
맞부딪힌 순간 알 수 있었다. 찰리하나팔의 출력은 마커스보다 월등히 위다. 그리고 전투 실력은 아마도 빈우와 동급. 제대로 싸운다면 불리하다. 아니, 질 것이 확실하다.
“빈우야!”
“마커스. 무엇이 인간일까?”
다시 소리친 마커스에게 빈우가 대답했다. 그러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샤다이야. 샤다이. 그래, 그게 샤다이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어. 하지만 인간인지 아닌지는 몰라.”
마지막 입력이 멈추자, 공장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멈췄던 내용물들이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장 내부에 동면하고 있던 쉬바들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캡슐 안에서 꿈틀대는 나노머신들이 화면으로 보인다.
“미친 새끼.”
마커스는 욕설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과거 어머니로부터 몰래 알아냈던 쉬바 제작 시설들이다. 연방은 쉬바에 대해 단편적인 것만 알고 있었지만, 아만다는 자세한 분석과 연구를 의뢰받아 쉬바의 정체를 상당수 밝혀냈고, 마커스는 그것을 몰래 훔쳐봤다. 그래서 위은쓸납학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었다.
지구제국의 정화 병기인 쉬바는 인간에겐 무해하다. 놈들은 순수한 인간에겐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외계종족이라면 분해해서 스스로를 복제한다.
‘마커스, 이것은 절대 써서는 안 돼.’
쉬바의 진실에 접촉한 마커스는 어머니 아만다 타이에게 호되게 혼났다. 하지만 마커스는 납득했다. 그만큼 쉬바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쉬바의 진정한 목표는 외계의 기술에 감염된 인간의 정화다. 이 나노머신들은 대상이 인간의 유전자나 신경 신호를 가지고 있고, 둘 중 하나가 오염되어있으면 즉시 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대상을 침식하고 분해해 재구성한다.
그 결과 나노머신 쉬바는 오염된 인간을 비홀더 전대로 정화한다.
‘저것을 화성에 떨어트린다는 건가.’
아직 연방은 쉬바의 위험성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그저 외계인을 분해하는 지구제국의 병기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행성의 방어나 정화시스템도 쉬바를 우선적으로 소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저것이 화성에 떨어진다면? 그리고 샤다이에 감염된 인간들을 본다면?
샤다이들을 정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그래야 할까?
“빈우야!”
다시금 울려 퍼지는 마커스의 외침에 빈우는 자신의 친구를 금빛 눈으로 마주 보았다. 눈이 빛나면 빛날수록, 그의 변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쉬바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분해한다.”
그리고 빈우는 버튼을 눌렀다. 공장 여기저기서 쉬바가 새어 나와 목표를 찾는다. 한 무리의 나노머신 폭풍이 날아가고, 그 뒤를 이어 여러 무리가 날아온다.
“아아….”
마커스의 나직한 탄성과 함께 나노머신들이 그들 주변으로 내려온다. 놈들은 마커스를 지나고, 찰리하나팔을 지나 빈우의 주변에 무리 지었다. 그리고 촉수마냥 뭉쳐 빈우를 노려보았다. 워프 비스트로 변이한 인간을 인식하고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그때 빈우가 손을 내밀어 촉수를 자기 쪽으로 잡아끌었다.
“빈우야! 안 돼!”
쉬바들이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마커스가 비명을 질렀다. 나노머신들이 빈우를 덮치고 분해한다.
“안 돼! 멈춰!”
마커스가 찰리하나팔을 뿌리치고 달려갔다. 그리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팔을 잡아끌었다. 그 바람에 나노머신에게 뜯어 먹히던 빈우의 팔이 뚝 하고 뜯어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나는!”
나노머신에 뒤덮인 빈우가 소리쳤다.
“나는 인간이다!”
쉬바가 피부를 뒤덮고 신체 안으로 침입한다. 군용육체의 방어체계가 반응하고 대응한다. 빈우의 전신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마커스의 눈에 빈우의 육체가 뿜어내는 경고반응이 보인다. 아군의 육체에 심각한 피해가 일어났다는 경고다.
“나는 인간이다아아!”
빈우가 절규하며 몸에 붙은 쉬바를 뜯어낸다. 그리고 자신을 인간이라 소리친다. 그때 빛나는 빈우의 눈과 마커스의 눈이 마주쳤다.
“마커스. 마커-”
나노머신의 폭풍에 휘말린 빈우가 휘청이며 마커스에게 기댔다. 빈우는 이제 성대마저 부서진 것인지 말도 나오지 않는다.
-화성에는 오지 마라.
두뇌칩 통신과 함께 분해와 복구를 반복하는 친구의 손이 마커스를 잡는다.
-그리고, 오지 말라고 전해줘.
빈우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커스의 시야가 변했다. 자신의 품 안에서 버둥거리던 빈우가 급속도로 작아지며 멀어진다. 그가 점처럼 작아지고 마커스의 주변으로는 별들이 지나간다. 허둥대던 마커스가 멈추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시설 속에 있었다. 전투함으로 추정되는 방. 그중에서도 연방의 실험 전투함, 블랙 랜스의 방이다.
“아나스타샤?”
마커스의 앞에는 아나스타샤가 누워있었다. 그녀는 마치 정지상태인 것처럼 아무런 미동도 않은 채 침대에 구속되어 있었다.
“야이! 애미뒤진새끼야아아!”
문이 열리며 장갑복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강렬한 공격이 마커스의 머리를 갈겨 그를 바닥에 쳐발랐다.
“어디서 개지랄을- 마커스 타이 차관님?”
실리콘 나이트의 장갑복, 인필트레이터가 마커스를 때려눕힌 다음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어있었다.
“어, 음. 마커스 타이 차관님, 본인? 맞으시죠?”
파트리샤는 총을 겨눈 채 마커스를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 갑자기 함내에 샤다이의 전송반응이 나타나고 그 위치가 아나스타샤의 방이라 냅다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전송된 사람이 다름 아닌 마커스 타이 국방차관이라니, 그녀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하다.
“맞습니다, 피아프 중위. 세 가지 다.”
마커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며 파트리샤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그녀보다는 마커스가 더욱 혼란스럽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도 안 잡히는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대답하는 이도 없고, 알려주는 이도 없다. 이제 절체절명의 갈림길에서 갈 길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