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그런 일이.”
히토미는 경악했다. 마커스가 알려준 사실이 그만큼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태스크 포스 373을 탈주한 빈우가 샤다이의 눈을 가졌고, 그것으로 샤다이의 정체를 파악한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그 능력으로 연방 내에 침투한 샤다이를 제거하려는 행동을-즉 테러를 일으키리라 짐작하고 이에 미리 대응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커스가 밝힌 사실에 의하면 빈우가 일으킬 사건의 규모는 도저히 테러 정도가 아니었다.
“이노우에 고토 이 작자가!”
히토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도, 철저히 숨기지도 않고 그저 질질 흘려만 보낸 작자 때문에 열이 뻗치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알 능력이 안 되면 빠지라는 의미겠지. 아니면… 그쪽도 우릴 신용하고 있지 않던가.’
군사정보국장이 줄타기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 걸린 안건의 무게감은 장난이 아니다. 닉스 레벨 3의 전략병기가 케트쿤과 아만다 타이의 비밀 공장을 사용해 화성을 칠 병력을 준비하고 있다니, 이건 쿠데타다. 인류 안에 숨어든 샤다이를 친다는 작전이지만 이건 빈대 태우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정도가 아니다. 마을을, 나라를 홀랑 태워버릴 속셈인 것이다.
“이거 첩첩산중이군요.”
그리고 마커스 또한 놀라긴 매한가지다. 이미 비홀더 전대가 블랙 랜스에 접촉했고, 샤다이의 호민관인 알탄훼아나가 우군을 모으기 위해 팀을 떠났다고 한다. 비홀더 전대의 자세한 목적은 알 수 없었지만, 놈들이 점프 공간 안에까지 들어올 정도였으면 보통 일이 아니다.
“비홀더 전대의 목적에 대해서는 모르십니까?”
마커스의 질문에 히토미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저를 노리는 줄 알았습니다만, 제가 아니라 김 소령이었더군요.”
그녀의 말에 마커스의 눈빛이 약간 날카로워졌다. 비홀더 전대는 루비콘 라인 바깥으로 돌기 때문에 최신소식에 어두울 수가 있다. 하지만 큰 줄기는 잡은 듯하다.
“그렇다면 설마 비홀더 전대도 빈우의 계획을 눈치채고 화성으로 오려는 것일까요?”
마커스의 말에 히토미의 얼굴색이 하얘졌다. 하나하나가 상상을 초월하는 병기들이 화성에 오는 순간 어떠한 참극이 벌어질지 눈에 훤한 것이다. 연방에서 손꼽히는 전력인 블랙 랜스와 그녀의 팀들도 비홀더 전대를 상대로는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차관님. 비홀더 전대는 루비콘 라인을 넘을 수 없지 않나요?”
“평상시에는 그렇죠. 하지만 인류의 위기라면 놈들은 개입할 수 있습니다. 일단 빈우의 목적이 표면적으로는 화성의 강습, 그리고 연방 고위 간부들의 학살이니 개입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화성에 모일 세력들이 한둘이 아니란 얘기다.
“헌데 의원님. 알탄훼아나, 샤다이의 호민관인 그녀를 보내주어도 되겠습니까?”
마커스가 기억하기로 그녀는 정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제대로 능력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군을 모으겠다고 하며 팀을 떠났다고 한다.
“일단 뜻이 맞으니 아군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지요.”
알탄훼아나는 이전부터 스스로 다시 일어서려 노력했고, 이번에 있었던 비홀던 전대의 기습이 그 행동에 불을 지폈다. 그래서 통상 공간으로 돌아간 후 뜻이 맞는 자들을 모으겠다며 블랙 랜스를 떠났다.
“같은 편이라 해도 목적과 수단이 전부 같지 않은 이상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마커스의 말에 히토미도 동감했다. 빈우만 해도 샤다이를 제거한다는 아주 바람직한 목적으로 움직였지만, 그 수단이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슬슬 징조가 보이는 사태들은 빈우가 벌이는 일을 불씨로 받아들여 불타오를 기세다. 화성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 그런 상황에 샤다이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목적과 수단. 그래요, 아직 정보가 너무 부족해요. 이번 일에 엮인 세력은 많은데 그 세력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습니다. 샤다이는 물론이고 연방에서조차도 말이죠.”
상원의원의 넋두리에 전직 군사정보국 차장이던 국방부 차관 또한 난색을 표했다. 그녀는 방금도 이노우에 고토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물론 마커스가 가진 정보는 많다. 그러나 급변하는 민감한 정보에 대해 따로 알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다.
“의원님, 중요한 것은 그 세력들의 목적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성향입니다.”
그러면서 마커스는 당장 움직이는 파벌들만 하나씩 예를 들었다. 먼저 인류 속에 숨어든 샤다이와 이들을 처치하기 위해 화성을 치려는 빈우가 메인이라면 이를 쫓는 이들도 만만찮다. 여기선 빈우를 추적하는 히토미, 막 말려든 마커스가 있다. 그리고 분명히 멀리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고토, 떠나서 세력을 모으려는 알탄훼아나, 뒤늦게 낌새를 눈치챈 비홀더 들이 있다. 또 사태가 커지면 42전단은 반드시 진화하려 올 것이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샤다이의 집정관도 있지요.”
“아.”
마커스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인물에 히토미가 진절머리를 냈다. 샤다이의 집정관이자 알탄훼아나의 아버지, 그리고 언제나 사건과 음모 뒤에 암약하고 있는 자. 체메트디오프는 이런 일에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마커스는 히토미에게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계단을 내려온 자, 인류의 몸을 차지한 샤다이의 파멸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가 언급한 세력들은 귀환한 샤다이의 파멸을 원하고 있다. 그게 주목표이든, 부목표이든.
“흐음, 같은 샤다이인 호민관과 집정관 둘 다 동족의 파멸을 바라다니, 아이러니하군요.”
“그게 문제입니다, 의원님. 그 부녀는 둘 다 귀환 반대파입니다. 그러나 실제 목적과 그 수단의 과격함 정도에 따라 뜻이 갈렸지요.”
그것은 히토미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덕분에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요, 그리고… 우리 인류끼리도 반목이 있을 수 있지요.”
그녀의 말에 마커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 히토미와 마커스만 해도 빈우를 구하려고 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선 약간씩 어긋나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그 어긋남의 정도는 더욱 심해질지도 모른다.
“의원님, 일단 빈우를 멈추고 사태가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마커스가 악수를 청했다. 동맹을 맺자는 의미다. 히토미는 그 손을 보더니 마주 잡았다.
“네, 일단 김 소령을 잡아야죠. 하지만 차관님, 차라리 이 사실을 미리 알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미 뒤에서 숨기고 있을 상황은 지났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걷잡을 수 없는 태풍이 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의원님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적절한 보안 과정을 거쳐서 알려야 합니다. 마구잡이로 사실을 공표했다간 사회에 혼란이 일어나고, 연방 내부에 숨어든 샤다이들이 아예 숨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설령 숨는다 한들, 알탄훼아나나 김 소령의 협조가 있으면 색출할 수 있지 않습니까?”
“숨어든 사람을 찾는다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의원님도 아실 텐데요? 제국 시절부터 인류사회에 스며든 샤다이들이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자신들의 위장 신분을 유지했는지.”
거기까지 말한 마커스는 자신의 가슴께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샤다이에는 자신의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만다 타이는 정말로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신분을 위조해왔었다. 할머니, 어머니, 딸, 며느리, 손녀. 이런 식으로 다중 신분을 만들어 놓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스스로의 신분을 바꿔나갔다.
“…일단 제가 국방부로 돌아가서 방법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차관님을 모셔다드린 후 제 팀은 화성으로 가도록 하죠.”
히토미의 그 말에 마커스는 빈우의 마지막 말이 기억났다.
-화성에는 오지 마라.
아마 화성이 쑥대밭이 될 예정이니 오지 말라고 한 것이겠지. 그러나 안 갈 수가 없다. 친구가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곳이다. 어떻게든 가서 친구를 살려야 한다.
-그리고, 오지 말라고 전해줘.
이 말은 누구에게 했을까. 히토미에게? 팀원들에게?
‘아나스타샤겠지.’
빈우의 내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아나스타샤다. 그녀는 단순한 보모나 비서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빈우의 가족이었다. 어머니이자 누나였고, 어쩌면 반려가 될지도 모른 존재인 것이다.
“의원님, 화성에 꼭 가셔야겠습니까? 위험합니다.”
“위험하니까 가야죠. 김 소령을 구하러.”
마커스의 만류에도 히토미는 결심을 굽힐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마커스도 억지로 말리려고 하진 않았다. 친구를 구하는 손이 하나라도 더 많으면 좋기 때문이다.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과 마커스 타이 국방 차관은 그 밖에도 세부적인 조율을 마친 다음 헤어졌다. 그다음 마커스는 아나스타샤를 찾아갔다. 빈우에 의해 블랙 랜스로 전이된 마커스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아나스타샤였는데, 그녀는 누군가에 의해 수동 상태가 된 것처럼 작동을 멈추고 있었다. 팀원들의 말에 의하면 비홀더의 1전대장인 이 섬과 접촉한 다음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망가뜨렸을까.’
마커스는 침대 앞에 앉아서 누워있는 아나스타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면 그녀와 크산티페는 똑같다. 같은 모델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녀들의 차이는 점차 두드려졌다. 크산티페가 조용하고 부드럽다면, 아나스타샤는 활달하고 장난기 넘친다. 그리고 강하다.
‘아나스타샤는 정말 포기하지 않았지.’
아나스타샤는 포말하우트 게이트에서 주인을 잃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었다. 또한 군사정보국의 강도 높은 조사와 심문 속에서도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마커스에게 끈질기게 부탁했었다. 자신의 주인을 구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리고 계속해서 빈우를 기다렸고, 결국엔 다시 만났다.
‘이 섬은 왜 아나스타샤에게 이런 짓을 했을까?’
비홀더 전대는 자신들이 죽여야 할 대상 외에는 거의 무시하고 지나가며 해를 끼치는 경우는 없다. 당시 놈들이 노렸던 것은 빈우였다. 팀장이었던 히토미는 노리지 않았고, 샤다이인 알탄훼아나조차도 아예 무시했었다. 그러나 당시의 영상을 보면 아나스타샤는 이 섬과 만나기 전부터 이상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분명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모니카 대위의 조사에 의하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미안.”
마커스는 조용히 사과를 하며 아나스타샤의 접속단자에 손가락을 대었다. 그리고 직접 접속으로 그녀의 내부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역시.’
지금 아나스타샤는 군사정보국의 보안으로 묶여있었다. 이 패턴은 마커스도 아는 패턴이며, 잊을 수 없는 패턴이다. 바로 잠수다. 지금 아나스타샤는 군사정보국의 요원들이 쓰는 방법을 써서 자신을 묶어놓은 것이다.
‘키워드는….’
마커스는 가장 짐작이 가는 키워드를 집어넣었다.
-초코 쿠키와 닭고기 파이.
마카로니에서 빈우를 깨울 때 썼던 부상코드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도 이 코드에 반응해서 재기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녀는 눈을 뜰 것이다. 그런데.
“아아악!”
갑자기 아나스타샤가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허우적거리며 비명이 터져 나온다.
“안 돼! 안 돼! 하지 마!”
“아나스타샤, 진정해!”
마커스가 서둘러 아나스타샤를 눌렀다. 안드로이드의 거센 움직임에 침대가 삐걱거린다.
“주인님! 도와줘요, 주인님. 주인님!”
처절한 울부짖음이 굳센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
어깨를 잡고 흔드는 마커스의 손길에 마침내 아나스타샤가 멈췄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돌려 마커스를 보았다.
“타이… 차관님?”
“그래 아나스타샤. 무슨 일이야?”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떨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주, 주인님은요?”
그녀는 벌벌 떨며 자신의 주인을 찾았다. 빈우를 찾았다.
“지금 여기엔 없어. 이제 우리가 찾으러 가야지.”
마커스의 대답에 아나스타샤는 얼굴을 가리며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주인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포기를 모르는 그녀를 이렇게 꺾었을까. 하지만 마커스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갑자기 긴급 통신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타이 차장님.
블랙 랜스의 함장 지마 오르 소령이었다.
-현재 연방 각지에서 샤다이의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르 함장이 보여주는 침공지대는 상당히 광범위했다. 42전단의 공격에 반응한 샤다이의 저번 침공 때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지금 곧 가겠습니다.”
마커스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나스타샤, 잠시 쉬고 있어. 금방 올게.”
울고 있는 아나스타샤를 뒤로하며 달려 나가는 마커스는 이번 침공이 앞으로 일어날 거대한 사건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