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80화 (278/301)

280화

-아버지이-.

“…파트리샤?”

안토니오 피아프 함장은 갑작스레 나타난 딸 파트리샤 피아프와의 통신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까 의원님 말씀 들었죠? 저것들 우리 아군이에요. 공격하면 안 돼요. 아셨죠?

그러면서 자신들이 이끌고 온 샤다이 함대의 정보를 방위함대 쪽으로 보내온다. 아군이니까 공격하지 말란 뜻이지만, 상대가 샤다이라면 좀 심각한 문제다.

“잠깐만, 잠깐만.”

피아프 함장은 연을 끊고 도망쳤다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블랙 랜스로 갑자기 쳐들어온 것은 좋다. 실리콘 나이트에 있다가 태스크 포스 373으로 갔고, 다시 상원의원의 아래로 간 것까지는 들었으니까. 그런데 저런 대규모의 샤다이 함대를 이끌고 화성으로 왔으니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일단 의원님, 오다 의원님 바꿔.”

이야기에는 급이 있는 법, 이번 사안은 일개 중위인 딸과 할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저들을 끌고 온 상원의원은 되어야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에, 저기 그분은 지금 비홀더 전대랑 얘기한다고 바쁘세요.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한 딸 파트리샤의 모습에 아버지 안토니오는 어이가 상실되고 있었다.

* * *

“또 만나는군요.”

파트리샤의 말대로 지금 히토미는 이 섬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다 의원, 그때는 실례했소이다.

섬은 사과를 하고는 있지만, 표정은 사과하는 자의 것이 결코 아니었다.

“피차 자기 임무에 충실한 거죠. 반대의 경우라면 우리도 그랬을 겁니다.”

히토미는 지금 저번에 쳐들어온 비홀더 1전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의 당돌한 발언에 섬의 입꼬리가 분노를 머금고 기이하게 뒤틀린다.

-임무라, 그러고 보니 그쪽이 가진 임무는 다들 이상하기 그지없구려. 어떤 놈은 외계인 놈들을 끌고 화성의 의사당에 쳐들어오질 않나, 어떤 년은 외계인과 들러붙어 수도 궤도에 적성 종족의 함대를 끌고 오질 않나.

이 섬은 자신이 위치를 잘 안다. 이곳은 인류 연방의 영토이고, 이 사건을 벌인 자는 연방의 군인과 연방의 상원의원이다. 반면 자신은 지구제국의 군인이다. 이 섬에겐 연방의 명령을 받을 의무도, 연방에게 명령을 내릴 권리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오직 인류를 지킨다는 사명뿐이다. 때문에 이번 일에 뭐라 할 권리는 없어도, 분노는 한다.

“우리 일은 우리가 합니다. 그쪽 일은 그쪽이 하시죠. 단.”

히토미는 화면 너머의 제국 군인을 노려보며 강조했다.

“지금 제가 데려온 샤다이는 저의 ‘부하’입니다. 다시 한번 제 부하를 공격하면, 그때는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저번에 이 섬이 저지른 사건을 빌미로 못을 막는 것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들은 척도 않고 알탄훼아나 함대를 도륙 냈을 이 섬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다. 온전하지 않은 전대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정신력이 깎여나가는 함장, 마지막으로 오다 히토미가 말한 일에 관여할 명분.

-알겠소. ‘적’을 물리칠 때까진 그쪽 말을 따르리다.

여기서 적이라고 하면 체메트디오프의 함대다. 그리고 체메트디오프의 함대를 물리친 다음엔 알아서 하란 의미다.

* * *

“이것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체메트디오프는 지금 상황에서 분노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모인 동족들을 보니 짜증이 나면서도 감개가 무량하다. 이리저리 타성에 꿰어 질질 끌려만 다니다가 마침내 단합한 모습을 보니 희망이 샘솟는 것이다.

“말을 듣지 않고 아빠의 뜻에 거역하는 딸에겐 화가 나지만, 또 역경을 딛고 일어서 아빠의 앞을 가로막는 숙적이 된 딸에겐 또 기쁘구나. 난 어떻게 해야 할꼬.”

원래 그는 빈우가 저지른 학살극의 영상을 샤다이의 주거행성에 뿌려 혼란을 일으키려 했다. 그 결과 각지의 샤다이가 저마다 통일되지 않고 일어나 인류 개척지를 동시에 공격하면 연방 함대나 비홀더 전대가 분산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따르지 않는 파벌들은 사분오열해서 움직이다가 유에네스의 손에 정리될 예정이었다. 즉 급하게 만든 일석이조의 계책이었던 셈인데 지금 딸인 알탄훼아나가 이들을 한꺼번에 모아 옴으로써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체메트디오프!

중얼거리는 집정관의 앞에 호민관의 영상이 떠오른다.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동족을 이용하고, 선조를 이용하고, 또….

“아아, 거기까지. 그건 너무 식상하잖니.”

체메트디오프가 알탄훼아나의 말을 끊었다.

“바뀐 듯하지만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구나. 하지만 칭찬하마. 이용하기 위해 챙길 것은 챙기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 선택지를 드디어 고를 수 있게 되었구나.”

아버지의 웃음에 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체메트디오프는 알탄훼아나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대번에 뚫어보았고, 그것이 그녀의 양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래, 나는 변했다.

알탄훼아나는 변했다. 고문당하고, 짓밟히고, 잃어버리고, 그렇게 다시 일어난 그녀는 변해 있었다. 알탄훼아나는 체메트디오프의 선동에 일어난 동포들을 이용했다. 자신의 뜻에 따르는 자들은 무기를 만들도록 해 같이 움직이게 했고, 함께 하지 않거나 체메트디오프에게 우호적인 자들은 엉뚱한 좌표를 가르쳐 줘서 유에네스의 손에 각개격파 되도록 했다. 즉 동포를 미끼로 쓴 것이다.

-나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알탄훼아나의 눈은 샤다이의 눈이 아니라 유에네스의 기술로 만든 의안이었다. 어찌 보면 말과 행동이 참 어울린다고 할 것이다.

“늦게나마 깨달았으니 되었다. 너도 내 후계자로 점찍으마. 만약 내가 잘못되거든 동포들을 이끌어다오.”

-닥쳐!

태연한 체메트디오프의 말에 알탄훼아나가 발끈한다.

이 와중에도 화성 궤도의 함대전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은 역시나 체메트디오프의 고대 함대다.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화성 방위함대와 알탄훼아나 파벌, 비홀더 전대가 사방에서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 세력은 서로 방해가 안 되도록 떨어져서 싸우고 있어서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같은 적을 두고 싸우는 믿을 수 없는 아군임과 동시에 체메트디오프를 쓰러뜨리면 바로 다음에 싸우게 될 적들이기 때문이다.

“연계가 약하군. 그저 모여서 싸우고 있을 뿐이야. 저곳을 찔러 빠져나간 다음 포위하도록.”

체메트디오프가 가리킨 곳은 적 함대 사이의 구멍이다. 그곳은 포위망 중에서 가장 틈이 큰 곳으로서 알탄훼아나 파벌과 비홀더 전대 사이였다. 저곳으로 밀고 들어가 역으로 포위하면 전세는 확연히 바뀔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대 함대 중에서 선발대가 나가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만약 선발대가 저 틈 사이로 성공적으로 들어간다면 이를 사이에 둔 적들은 맞은편의 상대에게 오사할까 봐 공세를 줄일 것이고, 그 틈에 선발대가 틈을 넓히며 빠져나가고 후발대가 틈을 키운다. 그리고 빠져나간 선발대가 반전해서 포위망을 완성시킨다는 계략이었다.

“어랍쇼?”

그러나 체메트디오프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포위망 사이로 선발대가 들어가자 알탄훼아나 함대와 비홀더 전대는 맞은편에 누가 있든 상관하지 않고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아뿔싸.”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체메트디오프가 이마를 쳤다. 인류연방과 지구제국이라면 모를까, 샤다이와 비홀더 전대라면 서로 상대방의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선발대가 좌우의 포격에 갈려 나가고, 빗나간 포격들은 맞은 편의 ‘못 미더운 아군’을 후려갈겼다.

“이거 부하 탓할 처지가 아니었군. 제일 큰 병신이 바로 나였네.”

졸지에 선발대를 사지로 밀어 넣은 셈이 된 체메트디오프가 쓴웃음을 지었다.

“집정관, 유에네스의 새로운 점프 반응입니다.”

그때 들려온 부하의 보고가 쓴웃음을 대번에 날려버렸다. 지금 화면에는 계단이 생성되는 장면이 나온다. 유에네스의 방식이 맞다. 그것도 순양함 여러 척이 연동해서 억지로 게이트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이다. 저런 방식을 쓰는 함대를 체메트디오프는 안다.

“뭣이! 42전단인가?”

긴장한 체메트디오프가 고개를 바짝 붙였다. 지금 여기에 42전단이 들어온다면 전세는 불리해진다. 전체적인 병력이야 아직도 고대함대가 우위에 있겠지만 42전단 같은 대샤다이 전문 부대가 전역을 휩쓴다면 그 흐름은 점차 불리하게 흐를 것이 뻔하다.

“응? 놈들이 아닌데?”

점프해 들어온 함선은 유에네스의 전투함이었다. 그러나 42전단의 순양함이 아니다. 좀 더 작고 눈에 익은 배다. 체메트디오프는 과거에 저 배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분명히… 솔리드 뭐였지.”

지금 화성궤도엔 솔리드 시리즈 상륙함들이 나타났다. 숫자는 다섯 척. 신경 쓸 필요는 적지만 놈들이 풍기는 불길한 기운은 체메트디오프를 저절로 긴장케 했다.

* * *

“타이 차관!”

히토미는 화성에 나타난 페가서스급 강습함의 개량형인 솔리드 시리즈를 보았다. 그리고 저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국방부 차관 마커스 타이였다.

-조금 늦었습니다, 의원님.

다섯 척의 강습함은 곧바로 화성 궤도의 방어기지 관리소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히토미는 마커스가 무엇을 할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궤도방어 병기들을 재가동시키실 건가요?”

-네, 체메트디오프를 몰아내야죠.

지금 화성궤도의 방어 병기들은 작동을 하고 있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동 자체는 하고 있지만, 체메트디오프의 함대는 빈우가 아군으로 설정해 놓았고, 알탄훼아나의 함대는 히토미가 자신의 권한으로 초청한 외교사절의 신호기를 붙여 아군으로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 흉악한 병기들은 지금 궤도를 채우고 있는 샤다이를 상대로 작동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만약 저 병기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전세는 대번에 역전될 것이다.

“저도 아까부터 해봤지만 풀리질 않아요. 대관절 어떻게 한 것인지.”

히토미는 오자마자 방어병기들의 아군목록에서 체메트디오프를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 명령이 먹히지 않았다. 방어병기의 관리부서에서도 아까부터 그 목록을 지우고 갱신하려 시도했지만 잘 되질 않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겠죠. 빈우가 한 짓일 테니 어지간해선 풀리지 않을 겁니다.

마커스의 말에 히토미가 침을 삼켰다.

“하실 수 있으세요?”

-빈우가 잠근 것이라면 제가 풀 수 있습니다.

마커스의 대답에는 불안이나 의심은 일절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되어도 그는 친구를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곳을 부탁할게요. 우린 먼저 지상으로 내려가겠습니다.”

히토미는 방금 이 섬과 알탄훼아나, 안토니오 함장과 얘기를 해서 교통정리를 막 마친 참이었다. 이제 인류 연방, 알탄훼아나 파벌의 샤다이, 지구 제국 세 세력 간의 믿을 수 없는 동맹이 간신히 체결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체메트디오프라는 거대한 적이 있었고, 중재자가 다름 아닌 오다 히토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뇨, 이번 일을 마치고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의원님은 궤도에 계십시오.

마커스는 빈우의 일에 타인이 끼어드는 것이 못 미더운 모양이다.

“전 상원의원이고, 지금 의사당이 공격받고 있어요. 그리고 김 소령은 탈주한 제 부하입니다! 저 말고 누가 간단 말이죠?”

-친구인 제가 갑니다.

때아닌 신경전에 옆에 있던 애꿎은 지상팀들이 마른침을 삼키게 되었다.

“야, 나 이거 아빠한테 부탁할 때보다 긴장되는데?”

파트리샤가 짐짓 겁먹은 표정으로 벌벌 떨자 위르겐이 뭐 씹은 표정이 된다.

“지랄 마십쇼. 그때 긴장하긴 한 겁니까?”

“새끼야, 니가 그러니까 여자 마음을 모르는 거야. 로봇박이 새끼.”

“시발, 피아프 여사 막 뱉죠?”

지상팀원들이 농담 따먹기를 할 때 오다 히토미는 강하게 명령을 내렸다.

“오르 함장님, 블랙 랜스를 강하시켜 주십시오. 목표는 연방 의사당입니다. 지상팀원분들도 준비하세요. 이제 김 소령을 구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블랙 랜스가 대기권으로 강하하기 시작했고, 그 옆으로 솔리드 시리즈 다섯 척이 지나갔으며, 이들의 뒤로는 체메트디오프 함대의 공격이 추격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우주에서 벌어졌던 난장판이 지상에서 벌어질 순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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