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위르겐이 강하하는 그라디우스 안에서 궤도병기를 보았다. 솔리드 시리즈 강습함이 그리로 다가가자 체메트디오프의 함대가 맹공을 퍼붓고, 그것을 알탄훼아나의 함대가 막으려 노력한다.
“저쪽은 난리가 났네.”
체메트디오프는 마커스의 행동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주력의 방향을 바꾸어 가며 솔리드 시리즈의 뒤를 쫓았고, 그것을 알탄훼아나의 함대가 막지만 역부족이다. 허나 고대 함대의 옆을 또 다른 세력들이 맹렬히 쑤시고 들어간다.
“저쪽 일은 저쪽이, 우리는 우리 일에 집중해야겠지.”
위르겐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블랙 랜스는 화성의 저궤도에서 그라디우스와 롱소드를 사출하고 화성의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목표 위치입니다.
먼저 대기권 밑으로 내려가 의사당 상공에서 정찰하던 롱소드에서 우지가 자료를 보내준다. 쑥대밭이 된 연방 의사당은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다.
-지상의 위은쓸납학은 조용합니다. 저를 공격하려는 기색도 없습니다.
“좋아, 지상팀 강하한다.”
아룹의 명령에 대기하던 그라디우스가 대기권으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수고했다, 우지. 상공에서 대기해. 저쪽에서 공격하면 바로 대응하지 말고 일단은 피해.”
이어서 강하하는 그라디우스 안에서 아룹이 팀원들에게 세부 명령을 내렸다.
“위은쓸납학은 최대한 무시한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교전을 피해.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김 빈우 소령을 확보하는 거다.”
의사당을 공격한 위은쓸납학들은 무작정 학살을 한 것은 아니었다. 놈들은 바로 앞에 있는 의원을 지나치고 저 멀리 있던 민간인을 따라가 죽인 경우도 있었다. 또 자신들을 공격하는 지상의 경찰병력들도 무시했으며 워프 비스트들이 나타난 이후로는 오직 워프 비스트들만 찾아서 죽였다. 이렇듯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위은쓸납학은 철저하게 특정 목표만을 노리고 공격한 게 분명했다.
“뻔하지. 그 양반, 그 눈깔로 목표를 찾아서 죽인 거야.”
파트리샤가 틱틱거리며 헬멧을 썼다. 그녀가 말한 목표란 샤다이가 분명하다. 빈우는 샤다이를 구분하는 능력으로 인간 안에 들어온 놈들을 찾아낸 다음 그들만을 죽인 것이 분명하디. 지금 빈우는 연방 의사당으로 가서 위은쓸납학을 풀어놓은 다음 자신은 의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지상팀은 의사당으로 바로 돌입해 빈우와 접촉할 예정이다. 그런 중에 아룹이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이상하군. 라출노그 함선들이 보이지 않아. 함장님?”
-네, 팀장님 말씀대로 화성 주변에 예의 신형 라출노그 함선은 없습니다.
지금 화성 궤도에서는 여러 세력이 엉켜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연방의 기술로 만든 라출노그 함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김 소령은 도대체 어떻게 저 정도의 병력을 들키지 않고 화성까지 데려왔을까요.”
아룹의 의문은 다른 팀원들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혹시… 샤다이의 점프 능력을 얻은 것은 아닐까요?”
모니카가 조심스레 의견을 꺼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 양반이….”
위르겐은 말도 안 된다는 투로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자신의 얼굴도 점차 굳어졌다.
“알탄훼아나의 눈을 뽑아 이식하기 전을 기억하나? 김 소령은 한 번 변한 적이 있어.”
아룹의 말에 팀원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흐릿한 불안감이 서서히 구체화되어 형체를 드러내는 것을 느꼈다. 빈우는 체메트디오프와 싸우기 위해 워프 비스트를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워프 비스트의 능력을 써서 체메트디오프를 물리쳤으며, 그 대가로 몸 또한 서서히 워프 비스트로 변해갔다. 그리고 결국엔 샤다이의 눈을 뽑아 자신에게 이식했고, 샤다이의 정체를 파악할 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알탄훼아나가 말한 것이 있지. 인간의 몸속에 숨어든 샤다이를 파악하는 것은 눈의 능력이 아니라 그 눈을 사용하는 자신의 능력이라고. 김 소령이 샤다이의 점프 기술을 배웠다고 해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냐. 아니, 오히려 그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즉 아룹의 말은 위은쓸납학을 데리고 화성을 침공한 것은 빈우 자신의 능력이란 말이다. 가설이긴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씨바랄, 그러면 그 양반, 여차하면 점프로 튀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어쩌죠?”
파트리샤가 무장을 최종점검하면서 물었다. 지금 닉스 레벨 3의 인간병기가 샤다이를 구분하는 눈을 가진 채 외계 병력을 이끌고 화성으로 점프해서 저 난동을 부렸다. 그렇다면 저 병력을 가지고 도망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보통 샤다이의 점프 딜레이는 15분 내외. 그러나 그 15분은 예전에 지났고, 빈우가 샤다이의 점프로 도망치려면 칠 수 있을 것이다.
“도망 못 치게 해야지.”
아룹의 간단한 대답에 팀원들의 원망 어린 시선이 그에게로 모인다.
“아니, 그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모든 것을 버려가며 이 정도로 벌인 큰일인데 뒤로 물러서겠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최종목표를 달성하겠지. 그리고 아마 그때쯤 라출노그 함대를 불러서 연막을 칠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 말에 모인 시선이 다시 위아래로 흔들린다. 그들이 아는 빈우는 결코 포기를 모르는 인물이고,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반드시 작전을 성공시키고야 마는 독종이었다.
“잠깐, 그럼 우리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그… 김 소령님 손에? 죽일… 까요?”
겁먹은 모니카의 말이 육중한 부머 안에서 들려온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의문형으로 끝난 것은 빈우가 한때나마 아군이었던 그들을 공격하지 않으리란 안이한 생각이 아니었다. 빈우의 성향 때문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빈우에게 한 가지 터부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었다. 그에게 외계종족의 목숨은 먼지와도 같지만, 인간의 목숨은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빈우는 동료의 목숨은 물론이고 범죄자라 해도 인간이라면 어떻게든 살리려고 발악한다. 그런데 지금은 지상팀원들이 그의 작전을 방해하려는 존재이자 지켜야 할 인간인 것이다.
“그야말로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순간이군. 강하 준비, 아니, 착륙 준비해.”
상공에서 바로 강하하려던 아룹은 계획을 바꿨다. 지상으로 다가갈수록 상황을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작전을 변경한 것이다. 의사당 광장에서 살육극을 벌이던 위은쓸납학들은 강하하는 그라디우스를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나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군. 그리고 흐음, 헌데 왜 의사당만 노렸지? 샤다이가 의원들만 있을까?”
오다 의원이 살펴본 바로는 상원의원 외에도 샤다이는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은 화성 곳곳에도, 연방의 영토 여러 곳에도 샤다이가 숨어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빈우는 철저하게 의사당만을 노렸고, 이번 임시 회의에 모인 상원 의원들이 주 희생양이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착륙! 모두 나가!”
그라디우스가 강력한 강습 착륙으로 의사당 옥상에 처박았고, 이어서 문이 열리며 5기의 장갑복이 뛰쳐나갔다. 방어 병력은 거의 없었다.
“위르겐! 갈겨!”
아룹이 목표를 지정하며 명령하자 위르겐이 무기들을 갈겨 옥상 천장을 작살내 버렸고, 지상팀의 장갑보병들이 그 구멍을 통해 곧바로 의사당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제트팩을 써서 착륙하며 코일건을 겨누자 몇몇 위은쓸납학들이 총을 겨눈다. 그러나 놈들은 단지 이쪽을 겨누고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기만 할 뿐, 역시나 총을 쏘지는 않았다.
“우릴 막지 않는 건가?”
하지만 위르겐의 그 말이 씨가 되었는지, 거대한 위은쓸납학들이 총을 등 뒤로 넘기고 날카로운 허리 칼날에 칼집을 씌우더니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지상팀을 생포하거나 저지하려는 속셈이다.
-제가 할게요.
모니카의 부머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부머의 중력장 조절시스템을 작동시켜 다가오던 위은쓸납학들을 허공으로 띄웠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연방의 장갑보병이나 샤다이들에게 통하지 않을 방법이다. 그러나 이 위은쓸납학들에겐 제트팩이나 그 외의 추진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좁은 무중력 공간에서 버둥거리며 떠오를 뿐이다.
“무시하고 달려. 본회의장으로 바로 간다.”
아룹이 떠오른 위은쓸납학을 지나쳐 앞장서서 달리고 그 뒤로 지상팀원들이 뒤따랐다. 곳곳에서 위은쓸납학들이 계속 뛰어나오지만, 그때마다 모니카가 이들을 위로 띄워 보냈고, 팀원들이 지나간 길에는 위르겐이 발포장갑을 생성해서 길을 막았다.
-본회의장에 다수의 위은쓸납학 반응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벤져 1기.
파트리샤가 정찰내용을 보고한다. 그녀는 강하하자마자 몸을 숨기고 건물 내부로 숨어들어 빈우가 있을 만한 곳을 살피고 있었다. 역시나 빈우는 본회의장에 있는 것 같았다.
-본회의장이라, 역시 많은 수의 의원들을 한꺼번에 잡기 위해서인 것 같네요.
모니카가 말했다. 그러나 아룹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빈우가 기습을 한 시점은 아직 회의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즉 본회의장에 상원 의원들이 채 다 모이지 않은 시점인 것이다. 어쩌면 빈우에게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샤다이를 죽이는 것 외의 다른 목적이.
-파트리샤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나?
아룹의 말에 파트리샤가 한숨을 내쉬었다.
-김 소령을 상대로요? 안될걸요. 저 자식, 옥상에 우리가 뛰어 내려온 시점부터 나를 찾을 속셈으로 수상한 곳마다 수류탄 붙여놨어요. 동작 감지 신관으로 설정해서요.
빈우는 이전 자신의 부하들의 특기와 장단점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그 대비도 철저한 듯싶었다.
-좋아, 정공법으로 간다.
아룹이 달려드는 위은쓸납학의 칼날을 잡은 다음, 놈의 다리를 걷어차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리고 그 위로 보수용 점착액을 뿌려 그대로 바닥에 붙여버렸다. 위르겐은 바닥에 코일건을 쏴 구멍을 만들어 추격대를 빠트렸고, 모니카는 파편들을 중력장으로 들어 올린 다음 켜켜이 쌓아 길을 막았다. 그러면서 지상팀은 차츰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파트리샤, 우리가 들어간다.
아룹이 본회의장 입구에 있던 위은쓸납학을 제압한 다음 문 앞에 섰다.
-함정은 없습니다.
위르겐이 문 주변을 조사한 다음 말했다. 아룹 역시 소형 센서 몇 개를 안으로 밀어 넣어 상황을 파악한 다음 마지막 명령을 준비했다.
-모니카, 방어막 최대한 전개해서 앞장서.
-네.
부머가 역장 출력을 최대한으로 올렸고, 그 주변으로 그라인더, 중무장 어벤져, 일반형 어벤져가 붙었다.
-3, 2, 1. 돌입!
아룹의 신호와 함께 문이 부서졌고, 지상팀원들이 본회의장 안으로 난입했다. 동시에 숨어있던 파트리샤도 방해되는 수류탄들을 쏴 부수며 나와 본회의장 천장에 자리 잡았다. 지상팀은 들어가자마자 각자의 무장으로 목표를 겨눴다.
-김 빈우 소령!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해!
아룹의 외침에 대한 대답으로 위은쓸납학들이 무장을 겨눴지만, 의장석에 있던 어벤져가 손을 들자 다시 무기를 내렸다.
“역시나 대단하군.”
빈우는 의장석에 앉아있었다. 그는 상원 의장용 두뇌칩 연결기를 머리에 연결하고 있다가 그것을 서서히 벗었다. 빈누는 연방 최고의 특수부대원들이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주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그것이 지상팀원들을 긴장케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가 저렇게 여유만만하다는 것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거나, 이미 자신의 목적을 이뤘다는 뜻이다.
“무장 해제도, 투항도 못 하겠는데?”
그렇게 말하는 빈우의 눈에선 샤다이의 안구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때 아룹이 손짓했다.
-아나스타샤.
그의 부름에 뒤에 있던 어벤져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어벤져의 헬멧 전면부가 열리자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나스타샤, 네 주인을 설득해 봐.
무력을 쓰기 전에 먼저 설득을 시도하려는 아룹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주인을 찾았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의장석에 있던 빈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이봐, 거기 울토르 클론. 너, 내 주인님은 어디 계시지?”
아나스타샤의 말에 지상팀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의장석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빈우였다. 비록 자신의 정체를 숨기느라 두뇌칩의 반응은 감춰놓았지만, 눈에 있는 것은 분명 샤다이의 눈이다. 저런 자가 온 우주에 빈우 말고 달리 누가 있단 말인가.
“내 주인님은 군사정보국의 김 빈우 소령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유전자 제공자이자 명령권자이시고. 그분 어디 계시냐고. 빨리 대답해.”
아나스타샤는 빈우에게 다시 재촉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팀원들은 점차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처럼 주인을 오래 모신 안드로이드들은 자신의 주인을 굉장히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한다. 오죽했으면 마카로니에서 빈우가 부상했을 때, 군사정보국에서 그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보모이자 비서였던 아나스타샤를 데려갔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주인을 상대로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이상하다. 어쩌면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충격에 아나스타샤의 인공지능 상태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다. 아니면….
“거참, 안 속네.”
빈우는 피식 웃으며 의장석에서 내려왔다. 그러면서 고개를 까딱하더니 인사했다.
“처음 뵙겠소. 찰리하나팔이오.”
그의 충격적인 발언에 지상팀원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