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찰리, 하나팔이라고?”
되묻는 아룹의 말은 충격 탓인지 조금 끊기고 있었다.
“그래. 내가 거짓말을 해서 뭐하겠어? 난 찰리하나팔이야. 빈우의 특제 클론이지.”
충격을 받은 지상팀원들과 달리 찰리하나팔은 유들유들하게 대답했다.
“주인님 어딨냐고!”
그 와중에 아나스타샤는 다시 앙칼지게 소리쳤지만, 찰리하나팔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네가 아나스타샤구나. 네 주인이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못 들었나? 아니면 마커스 차관이 중간에서 끊은 건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아나스타샤는 코일건을 들어 겨눴다. 명색이 군사정보국의 안드로이드에다 빈우가 직접 교육한 그녀다. 코일건을 다루는 모습이 살기등등하다.
“말해. 주인님. 어디 계셔.”
방금까지와는 달리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기세였다. 그 모습을 본 찰리하나팔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 거참 말 안 듣네.”
그때 팀원들이 들어온 본회의장 정문 뒤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후방을 경계하던 모니카가 소리쳤다.
-뒤에서 위은쓸납학들이 쳐들어와요!
팀원들은 지금 본회의장까지 내려오면서 마주쳤던 위은쓸납학들을 모두 무력화하거나 길을 막는 방식으로 방해하며 왔다. 그리고 저쪽도 딱히 무기를 쓰려는 기색이 없어서 무력 충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는 놈들은 조금 달랐다.
-저놈들, 쏩니다!
모니카의 말과 함께 뒤에서 코일건이 발사되었다. 부머의 역장방어막에 텅스텐 탄자들이 휘어 벽에 꽂힌다. 그리고 대기권 내에서 입자가속포를 쐈는지 부작용인 대기 중 폭발도 일어났다.
-아 젠장. 어쩌죠?
지금 파트리샤는 천장에서 빈우를 노리고 있고, 본회의장 입구에는 아룹, 위르겐, 모니카, 아나스타샤가 있었다.
“잠깐,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내가 교통정리 좀 할게. 비켜봐.”
찰리하나팔이 의장석에서 내려오며 양옆으로 비키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자자, 저기 잠시 가 있어.”
너무나도 태연하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팀원들은 조심스레 옆으로 비켰다. 그렇게 찰리하나팔과 그를 호위하는 위은쓸납학들이 입구로 갔고, 바깥에서 달려오는 위은쓸납학들도 입구에 도착해 두 무리가 마주쳤다. 작지만 당당하게 서 있는 찰리하나팔과 달리, 지금 들어온 위은쓸납학들은 씩씩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놈들을 죽이면 안 되지?
밖에서 온 무리 중에서 선두에 선 위은쓸납학이 말했다. 그들의 언어가 팀원들의 번역기를 통해 번역된다.
-쭉 말했잖아. 파란 피부의 인간과 그놈들에게 동조하는 놈들만 죽이라고. 그놈들이 너희 종족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다만 다른 이들은 너희 종족의 운명에 관여하지 않은 자들이야. 무고한 이들을 해하는 것은 좋지 않아.
찰리하나팔이 감언이설로 그들을 설득하려 하지만 상대에겐 잘 먹히지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놈들은 우리 종족을 공격했다. 우리 선조들을 죽이고, 모성을 파괴하고, 또 우리 종족 자체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네 명령에 따라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이제 네놈들 모두가 그 죗값을 치를 시간이다!
-아, 그러셔?
찰리하나팔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본 지상팀원들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있었다. 울토르 클론 찰리하나팔과 인간 김 빈우는 분명 다른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둘은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그가 할 다음의 행동을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역시나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불평을 터트리던 위은쓸납학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어서 찰리하나팔이 제트팩으로 날아올라 맨 앞에 선 위은쓸납학의 헬멧 안으로 코일건을 밀어 넣고 쐈다. 대번에 피와 살점이 튀었지만 놈은 옴짝달싹도 못 했고, 그건 주변에 있던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지휘관 권한으로 장갑복을 정지시켰나?
파트리샤의 말에 모니카가 바로 설명을 붙였다.
-아뇨, 그런 건 나중에 착용자가 긴급조작으로 권한을 빼앗아 올 수 있어요. 지금은 동력계와 구동계 간의 연동 부분에서 트러블을 강제로 일으킨 거예요. 이러면 장갑복 자체가 고장 나기 때문에 권한을 돌려받아도 움직이지 못해요.
그리고 그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머지 반항적인 위은쓸납학들도 굳어버린 장갑복 안에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죽음을 맞이했다.
-또 없나?
찰리하나팔은 자기 주변의 위은쓸납학들을 돌아보며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저 머뭇거리며 서로를 쳐다볼 뿐이다.
-기억하지? 나는 분명히 약속했어. 너희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이야. 그 대가로 너희들은 우리의 계획에 따르기로 했지. 그리고 이번 작전이 끝나면 너희들 종족에게 다시 부흥의 기회를 주기로 했었고.
그 말에 지상팀원들의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위은쓸납학은 인류 연방의 손에 절멸한 종족이다. 그런데 찰리하나팔은 이들에게 부흥의 기회를 준다고 했다. 이는 단순히 속임수라고 치부할 게 아니다. 정보에 의하면 빈우가 이끄는 부대 중엔 라출노그인 함대도 있다고 하는데, 그 함대를 이끌고 있는 것은 과거 태스크 포스 373과 접촉한 적이 있는 아앤아 준장이며, 그는 라출노그 쪽에서도 제법 입지가 있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종족의 부흥은 단순히 미끼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실현성이 있고, 그 대상에 라출노그도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단 의미다.
지상팀이 찰리하나팔의 속셈에 대해 가늠할 때, 부서진 의사당의 천장 구멍으로 굉음과 섬광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기 자체가 떨려오는 이 진동은 가까운 곳의 것이 아니다. 궤도상에서 뭔가 대형 사고가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일행이 올려다보자 거기엔 화성의 궤도방어병기가 작동해 체메트디오프의 함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위력의 지구 제국병기가 발사되자 샤다이 고대 함대도 치명상을 입기 시작했다.
“타이 차관, 성공했군.”
한결 밝아진 아룹의 표정과는 달리 찰리하나팔의 표정을 썩어들어갔다.
“쯧, 일을 망치네. 타이밍이 엉켰잖아.”
그리고 그는 잠시 말없이 궤도 상공을 쳐다보았다.
“너 지금 주인님과 통신하고 있지?”
찰리하나팔의 그 모습을 본 아나스타샤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지상팀원들이 채 말리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고, 저쪽의 위은쓸납학들이 칼날을 들어서 막으려 했지만 아나스타샤는 막무가내였다. 그녀는 억지로라도 칼날을 비집고 들어올 기세였다.
“허 참, 빈우 이 자식 박복하기도 하지. 친구도 가족도 전부 말을 안 듣고 계획을 망치려고 해요.”
그러면서 찰리하나팔이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갑자기 아나스타샤가 입은 어벤져의 멱살을 확 잡아챘다. 동시에 지상팀원과 천장의 파트리샤가 찰리하나팔을 겨눴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이, 안드로이드. 잘 들어. 네가 어떤 생각으로 여기 왔는지는 잘 알아. 하지만 네 주인이 여기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오지 말았어야지. 마커스를 봐, 저 위에서 궤도병기를 작동시키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졌어. 불쌍한 라출노그인들은 어쩌라고? 그들이 나설 자리와 전과를 빼앗기면 그들의 자치권도 빼앗기는 거야. 그리고 아나스타샤, 너.”
찰리하나팔이 거칠게 내던지자 아나스타샤가 휘청하더니 바로 섰다. 그리고 주인의 클론을 매섭게 노려본다. 찰리하나팔은 빈우의 얼굴을 하고 그 시선을 의연하게 받았다.
“네가 빈우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아. 하지만 그만큼 인질의 가치가 높을 것이란 생각은 안 해봤어? 이런 이판사판 개판 난 상황에서 네 안전을 제대로 지켜줄 사람은 없어. 만약 네가 샤다이나 제국에게 잡혀서 빈우의 앞에 던져지면 무슨 꼴이 날까? 네년은 지금 네 욕심 때문에 주인의 일을 그르치려는 거야.”
신랄한 찰리하나팔의 말이지만 아나스타샤는 지지 않았다.
“주인님이 잘못하시면, 나는 그것을 바로 잡을 거야.”
맞는 말이다. 지금 빈우가 하는 일은 반란이자 쿠데타다. 개인 사병을 이끌고 연방의 수도인 화성을 급습해 상원 의원을 비롯한 정부 요직 관료들을 학살했다. 아는 이들이야 인류에 숨어든 샤다이를 처단한다는 내막을 알지만, 대외적으로는 엄연히 중죄인이다. 잘못이란 단어가 쓰일 정도의 사건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위은쓸납학의 칼날을 사이에 두고 클론과 안드로이드가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잘못이라…. 하지만 너라면 주인이 무슨 선택을 하든 끝까지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냐? 주인이 지옥불에서 아등바등하면 그 옆에서 같이 걸어 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찰리하나팔은 비웃으려 했지만, 한결같이 자신을 노려보는 아나스타샤를 보고 뭔가 깨닫는 것이 있었다.
“…맞네, 시발.”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찰리하나팔은 빈우와는 다르지만 빈우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아나스타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빈우를 구하려고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그의 옆에서 고통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지금 그 끝에 무엇이 있다 한들 빈우의 곁에 있으려는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 지금- 아, 잠깐만.”
찰리하나팔이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그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다른 이들에겐 들리지 않는 비밀회선 통신이고, 이는 십중팔구 빈우일 것이다.
“그래, 지금. 자, 다들 위를 보실까?”
통신이 끝났는지 찰리하나팔이 손을 들어 궤도 상공을 가리켰다. 거기에선 갑자기 점프해서 나타난 라출노그 함대가 보였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대 샤다이 무장을 한 함대가 라출노그식 함대 기동을 하며 싸우자 체메트디오프의 고대 함대가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사출된 포격함들이 샤다이 전투함을 포위하고, 함체 자체가 포신인 거포로 공격을 가하자 순식간에 한 척이 격침되었다. 게다가 라출노그 모함과 포격함은 서로 중력장으로 연결되어 마치 연처럼 자기들을 끌고 당기며 기묘한 기동으로 샤다이의 포격을 피하고 있었다.
-저렇게나 가까이에….
모니카가 탄성을 터트렸다. 지금 점프해 온 라출노그 함대는 아주 정확하게 체메트디오프의 기함 근처에 나타나서 놈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아나스타샤가 갑자기 찰리하나팔을 붙잡았다.
“못 가.”
“…똑똑하네.”
안드로이드에게 붙잡힌 클론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나스타샤는 지금 찰리하나팔이 무엇을 할지 눈치채고 바로 선수를 친 것이다. 찰리하나팔이 손을 들어 아나스타샤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떼어내려고 하지만 장갑복의 출력이 비등하다 보니 잘 되질 않는다.
“아가씨, 놓으세요.”
“안 돼, 못 놔. 나랑 같이 가는 거야.”
잠시 궤도 쪽에 눈이 팔린 사이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에 지상팀이 다시 무장을 겨누며 다가온다.
“어이, 댁들. 이 메이드 좀 모셔가. 안 그러면-.”
지상팀에게 뭐라고 말하려던 찰리하나팔의 목소리가 갑자기 급변했다.
“어어, 얌마, 빈우야. 잠깐 기다려!”
그리고 둘은 갑자기 의사당에서 사라졌다.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
지상팀원들이 달려가며 저마다 아나스타샤를 불러봤지만, 찰리하나팔과 아나스타샤는 그들의 눈앞에서 샤다이의 점프로 사라졌다. 이제 연방 의사당에는 위은쓸납학과 지상팀원만이 남게 되었다.
* * *
“허억.”
갑자기 급변한 환경에 아나스타샤가 숨을 들이켰다. 안드로이드에게 필요하지 않은 행동이지만 오랜 기간 인간처럼 살았던 그녀의 버릇이기도 하다.
“영락없이 인간이네.”
그것을 본 찰리하나팔이 옆에서 이죽거린다.
“싸우는 법은 알지? 몸 잘 사려. 네가 죽어서 빈우가 슬퍼하면 나도 괴로우니까.”
찰리하나팔이 헬멧을 닫고 나아가자 아나스타샤도 바로 따라붙었다.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화성궤도의 방어병기 내부다. 그것도 관리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다. 마침내 작동을 시작한 지구제국의 병기는 막강한 화력으로 체메트디오프의 함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대 샤다이 함대의 외곽은 방어병기와 연함 함대에게, 내부는 방금 나타난 라출노그 특공대에 공격받고 있었다.
“조심해, 샤다이들이 계속해서 온다.”
찰리하나팔의 경고대로 샤다이들이 계속 점프해 오는 것 같았다. 화성 궤도에 정지해 있는 이 방어병기만 무력화시키면 이쪽의 화력은 대폭 줄어든다. 그러니 놈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서 쳐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이! 아군이다. 쏘지 마.”
관리소 입구에서 찰리하나팔이 샤다이의 시신을 안으로 차 넣으며 소리쳤다.
“…찰리하나팔인가.”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나스타샤도 아는 목소리였다. 찰리하나팔이 먼저 관리소 안으로 들어갔고, 아나스타샤가 따라 들어갔다.
거기엔 마커스와 울토르 클론들이 관리소를 사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