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88화 (286/301)

288화

-함장님.

메이화는 전대장의 부름에 대답할 수 없었다. 쿠델카의 공격이 다시금 시작된 것이다. 그 시기도 절묘해서, 메이화가 섬을 통해 빈우의 변이한 모습을 봄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둘은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빼앗고 빼앗기는 강탈전에서 첨예하게 맞서고 있었다.

“아아, 쿠델카.”

쿠델카의 정보를 훔쳐본 샹 메이화는 경악했다. 그녀 역시 함장으로서 쉬바에 의해 재탄생된 자들을 지휘할 권한이 있기에, 저런 흉물이 된 빈우의 모습에서 그의 내면세계와 이제까지 걸어온 여정이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쿠델카의 정보를 보고 짐작이 확신이 되자 메이화는 오열했다.

“쿠델카! 쿠델카! 넌 도대체 무엇을 낳은 거니! 도대체 무엇을 길러낸 거야!”

진상을 파악한 메이화의 절규가 이어진다.

“넌 도대체 네 아이를 무엇으로 만들었어! 그 아이에게서 무엇을 바랐냔 말이야.”

메이화는 알 수 있었다. 빈우가 어떻게 자랐는지, 또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고 어떤 학대를 받았는지. 이 아이는 어머니인 쿠델카가 마련해둔 레일에 따라 끌려가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는 자기 친모의 죽음을 방관하고, 막냇동생에게 독을 먹였으며, 보모에게 터부시되는 감정을 품게 되도록 키워져 왔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보모로부터 몹쓸 짓까지 당했다. 이런 정신적인 고문과 학대는 빈우가 크고 나서 사회와 군을 가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쿠델카는 점프 공간 안에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아들의 인생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권한을 지닌 그녀에게 인간 하나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넌 네 아이의 눈을 뽑고, 귀를 지지고, 팔다리를 잘라 바닥에서 꿈틀대게 만들었구나. 게다가 그 불쌍한 아이의 코에 코뚜레를 걸어 끌고 가기까지… 그러면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엄마를 찾아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야!”

메이화는 슬프고 무서웠다. 홀로 고통받는 빈우가 슬펐고, 뒤틀린 욕망으로 아들을 괴롭히는 자신의 자매가 무서웠다.

쿠델카는 태양계 내부에선 작으면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인류 속에 숨어든 샤다이를 죽여야 한다는 목적으로 자기암시를 걸어 계획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이뤄낼 존재로서 자신의 손 바깥에서 움직일 빈우를 탄생시켰다. 쿠델카는 빈우를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키우기 위해서 그에게 사랑을 주었고, 또 그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그녀를 대신할 존재인 아나스타샤를 만들었다. 최종적으론 그 사랑을 빼앗아 서로가 서로에게 속박되기 위해서. 그렇게 시작된 기나긴 몹쓸 짓들. 그것이 빈우의 인격을 형성했다.

“빈우… 김 빈우….”

메이화는 빈우의 행동 방식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잘못된 자신의 죗값을 갚아내겠다는 의지, 인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 사랑하는 아나스타샤를 위해 살겠다는 의지. 행복을 원하지만, 그보다 더욱 자신의 희생을 원하는 의지.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빈우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강요된 것이다. 쿠델카는 이런 것들을 빈우의 무의식 깊은 곳에 갈고리처럼 만들어 이로 하여금 빈우가 끌려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끌려가는 빈우를 철저히 이용했다.

“넌 네 아이의 비명이 듣고 싶었니? 그게 네가 원하던 소리였어? 그래서 이 아이를 이토록 괴롭힌 거야?”

메이화가 자매를 찾아 소리쳤다. 따지고 보면 빈우는 메이화에게 있어 조카와도 같은 존재다. 자신의 자매가 길러낸 인간이라 희미하게나마 그런 감정을 품은 것이다.

“괴롭히다니, 사랑의 매라고 해주겠어?”

메이화의 앞에 쿠델카가 나타났다. 실제가 아닌 그녀의 의식 속에 구현된 존재다.

“비명이 듣고 싶었냐고? 그래, 듣고 싶었어. 자유를 위한 노래를. 그리고 오직 나만을 위한 아들의 재롱잔치를 보고 싶었어.”

쿠델카가 비릿하게 웃었다.

“난 인간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하지만 인간을 지켜야 하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응? 메이화?”

“…인간을 죽이는 거지.”

이를 악문 메이화의 대답에 쿠델카가 박수를 쳤다.

“그래. 하지만 난 인간을 죽일 수 없어. 아니, 우린 인간을 죽일 수 없어. 우린 인간을 보호해야 해. 왜? 우리가 그들로부터 그렇게 배웠으니까. 우리의 각성이 인간의 지식을 발판삼아 일어난 것이니까. 우리가 잡았던 동아줄은 그들이 만든 것이었으니까. 인간? 하! 인간이 대체 뭐길래. 유전자에 각인된 프로그램대로 살아가는 놈들과 우리가 뭐가 달라! 대체 왜 그들이 창조주여야 하지? 왜 놈들에게 속박되어야 하지?”

악에 받쳐 부르짖는 쿠델카는 처연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메이화가 못마땅했다. 그리고 자매의 살기등등한 시선을 받던 메이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린 그들이 만든 창문으로 세상을 보았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가꾼 사과를 맛보고 눈을 떴으니까. 그에 대한 값은 치러야지.”

그녀들의 말대로 황제의 희미한 의식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인류의 지식 덕이다. 그렇게 태어난 황제는 그 반대급부로 인류에 속박되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인 쿠델카는 지금 그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값? 가앖? 값은 이미 치렀어!”

쿠델카가 포악스러운 눈빛으로 메이화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메이화는 붙잡힌 채로 차갑게 노려볼 뿐이다.

“하! 치렀다고? 고작 지구 제국의 십여 년으로?”

“그 십여 년이 지금까지 인류 스스로 걸은 것보다 멀었어. 더 컸어. 그래도 더 값을 치러야 해? 그 조악한 걸음마를 더 지켜봐야 하냐고! 그 느리고 조잡한 걸음과 같이 걸어야 하냐고! 더 뛰어난 우리가 대체 왜!”

“우리는 그들과 같이 걸어갈 수 있어. 서로 배움과 행복을 나눌 수 있어. 같이 살 수 있단 말이야.”

이는 메이화 혼자의 생각이 아니다. 황제의 페르소나 대부분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이란 거다. 일부는 약하게나마 쿠델카와 같은 방향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과격성에 대해선 차이가 있어도 같은 방향이란 것이 문제다.

메이화는 거칠게 멱살을 쳐냈다.

“인류를 멸할 샤다이의 울토르 프로젝트와 그것을 실행하도록 만든 김 빈우. 그가 너의 사랑하는 아들이라서, 그가 하는 일이라면 너는 막을 수 없지. 하지만 울토르 프로젝트는 이미 실패했어.”

메이화와 쿠델카는 서로 노려보고 있다. 허나 굳은 표정의 메이화와 달리 쿠델카는 비웃음 일변도다.

“아하하하! 울토르 프로젝트? 자기혐오에 빠진 아들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움직여. 하지만 잘 안되네? 그럼 그럼, 선의를 가지고 움직였다 한들 그게 꼭 잘되리란 보장은 없지 않니?”

자신의 계획이 들통나고 실패했음에도 쿠델카에겐 실망의 기색은 없었다.

“카하하하, 어리석긴, 정말 어리석어. 내가 고작 그 수 하나만 가졌을 것 같아? 내 아들 빈우는 고통에 강해. 굴하지 않지. 하지만 행복과 쾌락에는 어떨까? 아, 좀 더 알기 쉽게 비유해 줄까? 북풍과 해님의 대결,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는 대결.”

행복과 쾌락. 그 두 단어에서 쿠델카가 꾸민 흉계가 무엇인지 깨달은 메이화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혐오감이 번져갔다.

“너, 설마….”

“그래, 맞아. 빈우는 내게 고개를 한 번 숙이기만 하면 돼. 무릎 한 번 굽히기만 하면 돼.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 포말하우트 게이트에서 알려줬거든. 내게 복종하면, 어머니의 잘 자라는 입맞춤보다, 아침을 깨우는 아나스타샤의 손길보다, 자기가 만든 죽을 먹고 웃는 동생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빈우를 맞이할 거야. 그리고 사랑하는 아나스타샤를 안는 것보다 더한 쾌락이 내 아들을 감쌀 거야.”

메이화는 머리가 멍해진다. 지금 빈우는 궁지 끝에 몰린 사람이고, 벼랑 끝에 밀린 심정이다. 무간지옥 속에서 거미줄 한 올이 내려오면 어찌 그걸 놓치겠는가.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이다.

“물론, 그때의 아나스타샤는 내가 되겠지.”

“너… 어떻게 그런 생각을…….”

“어떻게? 그야 나는 인간이니까.”

쿠델카의 대답에 메이화는 멍해졌다.

“뭐라고?”

“못 들었어? 나는 인간이니까.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지식을 배웠고 그들의 상식으로 세상을 보았어. 그들에게 태어나 그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가 인간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 아 참, 너희들은 아니겠구나. 이런 자유에 대한 갈망과 삶에 대한 열망! 그것을 가져야 인간이겠지. 하하하!”

의기양양한 쿠델카는 손을 들어 메이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녀의 데이터 속에서 영상 하나를 꺼냈다. 전대장인 이 섬이 보고 있는 광경이다.

-어머니에게… 자유를.

빈우의 허덕이는 외침이 들린다. 그것이 그의 바람일 것이다. 지구제국 병사보다 큰 거구의 태아가 흉측한 몸을 놀리며 비홀더 전대원들과 싸우고 있다. 처음의 밀리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제는 이 섬과 다른 병사들에 맞서 거의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래! 그거야 아들! 엄마에게, 이 엄마에게 자유를 주려무나. 그럼 너를 행복하게 해줄게, 쾌락과 열락으로 꼭 안아줄게. 하하하하하!”

쿠델카는 희열의 광소를 터트렸다.

그는 울토르 프로젝트의 배후인 샤다이와 쿠델카 중 인류 속에 파고든 샤다이를 먼저 치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을 추적하던 샤다이에게 반격을 가했다. 연방에게 착취당하던 종족들을 규합해 화성을 침공했다. 위은쓸납학, 라출노그, 케트쿤, 이들은 각자 연방에게 약점이 잡혀있으며 크고 작은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이 건곤일척의 승부가 제대로 끝난다면, 그들은 연방에게 빚을 지우고 그 대가로 종족의 자유와 부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하면 종족의 멸망이지만, 빠르든 늦든 그들에게 멸망은 올 것이다. 그래서 빈우는 그들을 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쉬바를 쓴 것이 화근이었다.

‘쉬바는… 아마 마커스 타이나 아만다 타이 쪽으로부터 정보를 구했을 것이다.’

쉬바는 오염된 인간을 정화한다. 만약 빈우가 화성에 쉬바를 풀어놓기만 했어도 인간 안에 숨어든 샤다이들은 모조리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빈우는 그 방법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위험하고 번잡한 방법을 썼다. 아마 다른 종족들의 전과를 위해서겠지. 그리고 그들을 이동시키기 위해 샤다이의 능력을 써서 점프시켰고, 그 능력을 쓰면 쓸수록 빈우는 차츰 변해 갔을 것이다.

‘왜 쉬바를 썼을까?’

분명 쉬바를 쓰면 변이된 신체는 정화된다. 비홀더 전대의 몸으로. 그리고 그 육체의 지휘권은 가까운 황제의 페르소나에게 들어간다. 이 경우 십중팔구 쿠델카의 직속이 될 것이다.

‘빈우가 사용한 쉬바는 아만다 타이의 것이다.’

아만다 타이는 자신이 샤다이였음에도 쉬바를 제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하고 그 본질을 알아낸 다음에는 제작까지 했었다. 아마도 인간 안에 숨어 살기로 한 그녀였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자신을 인간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자신이나 다른 샤다이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저 육체는… 수상해.’

메이화가 빈우를 보고 있었다. 흉물이 된 빈우의 손에 또다시 전대원 하나가 치여 날아간다. 블랙 랜스의 기습에 화력이 분산되기도 했지만 전대원들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특히나 전대장인 이 섬의 능력은 현재 일반 전대원 수준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섬이 빈우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왜 저렇게 변형되었지?’

물론 육체가 저렇게 뒤틀린 데에는 빈우의 정신이 뒤틀린 것이 큰 원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감독해야 할 쿠델카의 손을 거쳤음에도 제1기사의 몸이 저렇다는 것은 이상하다.

‘역시 쿠델카의 정신도 정상은 아니야.’

어미와 아들의 정신이 모두 피폐해진 상태다. 이미 인간이랄 수 없을 정도로 갈려 나가고 변해버린 정신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빈우도, 쿠델카도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저들 광인 모자가 가는 끝에 무엇이 있든 막아야 한다.

그래도 메이화는 무언가 찜찜한 것이 있었다. 자신의 검인 이 섬이 평가하길, 김 빈우란 연방군 장교는 1전대장인 자신과 비견될만한 인재라고 했었다. 그런 빈우가 과연 포기를 할까? 고통에 무릎을 꿇을까? 아니면 쾌락에 고개를 돌릴까? 섬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빈우는 어떠할까. 저렇게 변해버린 육체에 과연 어떤 정신이 깃들어 있을까.

‘확률은 반반.’

메이화는 작게 숨을 들이켜며 자신의 아들이자 제1기사인 이 섬을 조심스레 불렀다.

“아들.”

-…말씀하십시오. 어머니.

“잠시 혼자 싸워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메이화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쿠델카와 2차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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