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아이의 팔다리가 휘청거리며 꺾인다. 손톱이 나오고 이빨이 솟구친다. 전형적인 워프 비스트 변이다. 하지만 샤다이의 눈으로 그 안의 파장을 볼 수 있는 찰리하나팔은 알 수 있었다. 이 변이는 오늘 자신들이 행한 빈우의 방식이 아니라 예전처럼 점프 게이트-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샤다이의 방식이다.
‘이번엔 아주 적극적이시구만.’
지금까지 계단은 쿠델카가 막고 있었다. 문제는 중간중간에 다른 일을 우선순위로 놓는 방법 등으로 임무를 방기해서 샤다이가 내려오는 것을 완벽하게 막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알탄훼아나가 막아서 계단을 부순 다음부터는 샤다이가 이쪽 우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지?”
아나스타샤도 서둘러 다가와 아이의 상태를 보고 있다.
“쿠델카가 직접 계단을 열고 있어.”
찰리하나팔은 대답하면서도 주변의 보수용액 밸브를 뒤져 꺼냈다. 그리고 변해가는 아이를 벽에 던져놓고는 보수용액을 뿌렸다. 외부에 노출된 용액들은 급격하게 굳으며 워프 비스트로 변해가는 아이를 벽에 묶어놓았다.
“뭐? 하지만 어떻게.”
아나스타샤도 대략적인 사실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막은 계단을 다시 뚫고, 살아있는 인간의 몸에 지정해서 계단을 연다. 이는 아주 적극적인 적대행동이다. 지금까지 빈우를 통해 간접적으로 계획을 진행했던 쿠델카의 행동양식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 황제의 파편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매우 심각한 일이 된다.
“일단은 안을 봐야지. 그리고….”
찰리하나팔은 벽에 구속된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구해야지.’
마지막 말은 삼킨 찰리하나팔의 눈이 다시 빛난다. 알탄훼아나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워프 비스트화를 멈출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찰리하나팔에게는 그런 기관이 없다. 그러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구한다….’
빈우는 두뇌칩으로 서로를 연결하고 접속해서, 자신의 증오과 공포를 상대에게 보내 고문하는 방법으로 샤다이를 워프 비스트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상대는 아직 두뇌칩이 없는 아이에다 거꾸로 인간인 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렇다면 직접 눈으로 보고 파악한 다음 안에 들어온 샤다이를 쫓아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조심… 조심….’
찰리하나팔의 눈이 아이의 눈을 노려본다. 눈 너머로, 시신경 너머로, 그리고 두뇌의 신경 신호를 파악하고 계단을 보았다. 그러나 그 계단을 본 순간, 찰리하나팔은 갑자기 남은 한 팔로 눈을 감싸 쥐고 몸부림쳤다.
“아악!”
비명과 함께 찰리하나팔의 몸이 뒤로 접혔다.
“무슨 일이야?”
아나스타샤가 놀라서 찰리하나팔을 부축했다. 그러나 찰리하나팔은 계속해서 욕과 비명을 지르며 바둥거렸다.
“씨발! 이 병신 새끼! 바보 같은 새끼!”
찰리하나팔이 급히 진동 나이프를 휘둘러 자신의 눈을 쑤셨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자신의 적인 양 미친 듯이 찔렀다. 먼저 금색으로 빛나는 샤다이 안구가 무중력 공간으로 둥실 떠오르고, 나머지 하나는 안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이히히히. 소용없어. 눈을 뽑아봐야 이미 늦었어.
그제야 시끄럽던 쿠델카의 비웃음 소리가 찰리하나팔의 머릿속에서 잦아들었다. 눈이 파괴되자 연결이 끊긴 것이다.
“씨발! 씨발년! 이 개씨발년!”
쿠델카의 간섭이 사라지자 아이의 변이는 멈췄고 찰리하나팔에 들어오는 그녀의 침입도 멈추었다. 그러나 아이의 생체신호가 이상하다. 변이를 멈춘 아이의 심장박동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인간과 클론의 위기 사이에 아나스타샤는 얼른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안 되겠어. 일단 치료부터!”
아나스타샤가 구급팩을 찾으러 구역을 뒤졌다. 그런 그녀의 뒤로 찰리하나팔의 푸념이 들려온다.
“늦었어. 저 아이는… 이미 죽기 직전이야. 아니, 거의 죽은 상태지.”
찰리하나팔의 말대로였다. 아이는 억지로 숨만 붙어있는 상태다. 주사한 마이크로 머신들이 아이의 몸 안을 맹렬하게 돌아다니지만 이미 늦어 버린 상황이다. 허나 변이가 멈췄다 해도 이렇게 생명 반응이 꺼져가는 것은 이상하다. 분명 아나스타샤는 이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스캔을 했었지만, 그때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었다.
“외부가 아냐. 아이의 안쪽, 부상 당한, 내부부터 변했어. 쿠델카, 그년은… 다 죽어가는 아이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컥. 아이를. 워프 비스트로 만든 거야.”
워프 비스트의 육체 능력은 인간보다 뛰어나다. 그리고 생명력 역시 연방의 강화 군인을 능가한다. 즉 쿠델카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제약을 속여 인간을 워프 비스트로 만든 것이다. 이 사실을 들은 아나스타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른다. 이어서 초조함이 번져간다. 찰리하나팔의 눈이, 진동나이프로 찌른 눈의 상처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 이어서 주인의 모습을 한 클론의 목에서 각혈이 올라온다. 강화 군인의 육체를 가진 클론의 몸이 치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찰리하나팔은 다시 올라오는 핏물을 꿀꺽 삼키며 웃었다.
“똑똑한 년. 그래, 긴급 시에 인간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금기를, 크흠. 그렇게 비껴갔네. 그리고, 이 아이로 함정을 팠어. 화성을 침공한 나를 공격하기 위해서. 킥킥.”
그는 피투성이 구멍만 남은 눈을 돌려 아나스타샤를 보았다.
“…그리고 그년 눈에 나는 인간이 아닌가 보다. 아주 격렬하더구만.”
그 말을 한 찰리하나팔의 몸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워프 비스트의 변이다.
“어, 어떻게.”
“쿠델카가 나를 노렸던 거야. 아마도 너를 통해 나를 봤겠지. 아니면 한 놈만 걸리란 식으로 여기저기 함정을 파놨거나. 그 결과 아이 안에 파놓은 함정에 내가 걸린 거고. 참 병신같기도 하지. 내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 안의 계단을 본 순간, 그년도 내게 접속했어. 일반적인 두뇌칩 접속이 아니라 막을 수도 없더라. 내 강화 육체는 통제권을 잃었고, 몸도….”
그렇게 말하는 찰리하나팔의 팔에서 손톱이 솟구쳐 우주복을 뚫고 나온다.
“하긴, 나는 원래 괴물이지.”
클론이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슬프게 웃었다.
“게다가, 나는 너무… 계단이 될 재료가 많았어.”
그의 텅 빈 눈에서 흐르는 핏물이 마치 눈물처럼 보인다. 찰리하나팔에게 지금 눈은 없다. 그러나 그의 눈엔 오늘날까지 자신에게 죽어간 무고한 희생자들이 똑똑히 보인다.
“아나스타샤, 잘 들어.”
만신창이가 된 찰리하나팔이 씩씩거린다. 두 다리, 한 팔, 양 눈을 잃은 클론이 헉헉대는 이유는 단지 육체의 상처 때문만이 아니다.
“방해꾼인 내가 사라지면 높은 확률로 쿠델카가 너에게 올 거다.”
그런 말을 하는 찰리하나팔의 몸에 경련이 일어난다. 피부가 변하고 이마에서 뿔 같은 돌기가 돋아난다.
“근데 안드로이드 아가씨. 너 혹시 방비한 게 있어?”
아나스타샤는 피투성이가 된 주인의 얼굴 모습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비록 클론인 것은 알지만 아무리 봐도 익숙해질 수 없었다. 과거에도 수많은 울토르 클론들이 죽어갈 때마다 아나스타샤는 주인의 죽는 모습을 연상하며 떨었었다.
“주인님이 가르쳐 주신… 트리니티 패턴을 응용했어.”
트리니티 패턴은 뇌와 두뇌칩, 생활 패턴이 맞으면 풀리는 것이며, 정보국의 장기다. 한 번 묶이면 정해진 방법 외에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내 사고와 행동 방식이 일반적인 것에서 벗어나면 즉시 나 자신을 소각하도록 해놨어. 너도 알다시피, 이건 설정되면 인공지능은 인식할 수 없는 블랙박스야. 내 안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접속 못 해. 오직 외부에서 인간만이 풀 수 있어.”
군사정보국의 안드로이드는 비밀 엄수를 위해 자체 분해 기능이 있다. 이를 사용하면 육체는 물론이고 두뇌를 비롯한 메모리 계열은 완벽하게 박살 난다. 그녀의 말을 들은 찰리하나팔이 히죽 웃었다. 쿠델카가 그녀의 몸에 들어오면 바로 자살해버리겠다는 뜻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주인을 찾아온 것은 아닌 모양이다.
“쿠델카도 죽을까?”
“설마, 아마 나만 죽을 거야.”
쿠델카의 본체는 점프 공간 안에 있다. 그녀가 아나스타샤의 몸에 들어왔을 때 육체를 태운다고 해도 사라지는 것은 아나스타샤의 몸뿐이다. 황제의 본체는 무사할 것이다.
“그래도 용케 그런 각오를 했네. 네가 불타 죽는 것을 보고 빈우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찰리하나팔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그동안 생각하기 꺼렸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 소각될 때 주인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걸 상상한 아나스타샤가 부르르 떨었다. 빈우는 분명히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그래, 그래도… 주인님은 포기하지 않으실 거야. 하지만, 지금 주인님은….”
아나스타샤도 잘 안다. 빈우는 이미 자신을 한 번 버렸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큰 결단을 내리고 떠난 빈우다. 아나스타샤는 빈우를 구하고도 싶었지만, 동시에 그의 결정을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 또한 있었다. 지금 그녀가 빈우에게 간다면 도움보다 방해가 될 공산이 더 크다.
“그런데 찰리하나팔. 만약, 만약 내가 죽으면, 주인님은. 미련을 끊으시겠지? 그렇지? 내가, 흑. 주인님 앞에서 죽으면. 주인님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으시겠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떠올라 복도를 떠돈다.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죽음을 본 빈우가 어떤 반응을 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쿠델카를, 아주아주 미워하시겠지?”
안드로이드의 물기 어린 눈가가 이번엔 웃음기로 휘었다.
“그래, 네가 사라지면, 그 황제의 찌꺼기는 빈우에게 간섭할 카드 하나를 잃게 된다. 네가 죽는 순간 쿠델카 그년은 좆 되는 거지. 아주 좆 되는 거야. 배때기에 칼빵을, 쿨럭.”
찰리하나팔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울다가도 픽 하고 웃었다. 예전에 쿠델카와 접속하면서, 아나스타샤는 자신이 사슬임을 알게 되었다. 아나스타샤는 쿠델카가 만들어 놓은 사슬, 황제의 계획 바깥에서 움직일 빈우를 속박하기 위한 사슬이다. 그리고 쿠델카는 아나스타샤를 통해 빈우와 그녀 자신을 얽어매어놓는 것으로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날 속셈이다.
“그라디우스가 오고 있어.”
아나스타샤가 아까 신청한 그라디우스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정적 속에 찰리하나팔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한테 말하지 마. 난 널 구했고, 앞으로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어. 이제 네 갈 길은 네가 알아서 가.”
“치료할 수 있어. 클론이잖아. 강화 군인이고. 넌 주인님의 특제 허수아비야. 포기하지 마.”
“난 포기하지 않았어.”
쉭쉭거리는 찰리하나팔의 다그침에 아나스타샤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여기저기 튀어나오고 있다.
“난 여기서 내 할 일을 할 거야. 넌 가서 네 할 일을 해.”
그래도 아나스타샤는 다 죽어가는 찰리하나팔을 놓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빈우를 구해줘.”
하지만 클론의 마지막 말에 결심한 듯, 마침내 안드로이드가 벽을 박차고 날아갔다. 그리고 비상문을 열고 나가 그라디우스에 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찰리하나팔은 드디어 자신의 일을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꼬마야.”
찰리하나팔이 숨이 끊어져 가는 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허공에 떠다니는 샤다이의 안구를 집어 다시 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남은 것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눈을 재생하는 것이다. 신경계가 뻗어나가 안구를 붙잡고, 시각센서 기동용 근육들이 일어나 샤다이 안구를 고정한다. 마침내 눈이 복구되자 찰리하나팔은 아이의 얼굴을 잡고 멍해진 눈을 마주 보았다.
…아파요….
아이의 입에선 이제 말이 아닌 나직한 한숨이 나온다. 아마도 부모를 부르는 것이겠지. 워프 비스트로 변하며 나아가던 내장기관들도 변이가 멈추자 다시 붕괴되기 시작했다. 주사했던 마이크로 머신들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소년의 목숨은 머지않아 꺼질 것이다.
“…미안하다.”
찰리하나팔은 꿈틀거리는 아이를 붙잡고 그 눈 안 너머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다시금 뇌 신경의 신호를 보고 그것을 해독한다.
“꼬마야, 어디 있니! 꼬마야!”
하나 남은 눈으로 아이의 안쪽으로 들어간 찰리하나팔은 아이의 정신세계 속을 달렸다. 그리고 부모의 시신으로 만든 계단에 파묻혀 가는 아이를 발견했다.
“꺼져! 이 씹새들아!”
아이를 파묻으려던 샤다이들이 찰리하나팔에게 잡혀 갈기갈기 찢어진다. 클론은 샤다이의 목줄기를 물어뜯고 질겅질겅 씹어 삼켰다. 도망치던 놈의 척추를 뽑아 넘어진 놈을 패 죽였다. 살육과 학살의 끝에 찰리하나팔은 마침내 아이를 잡아 꺼냈다.
“아저씨가 너무 늦었지?”
아이의 얼굴에는 공포도 고통도 없었다. 그저 멍했다. 마치 표정이 없는 시신 같았다. 이유 없는 폭력에 휩쓸려 죽어가는 아이는 마치 자크 라캉처럼, 또는 엘리자베트 허드슨처럼, 혹은 하비에르 부뉴엘처럼 보였다. 찰리하나팔은 자기가 죽였던 아이들을 끌어안고 걸었다. 그는 자신의 죄와 업보를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가슴 속 깊이 파묻었다.
“거긴… 네가 갈 곳이 아니야.”
찰리하나팔은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가려던 중에 이상한 흔적을 하나 찾았다. 자신 말고 외부에서 들어온 흔적이다. 샤다이는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의 정신세계에 들어온 것은 샤다이가 아니라 쿠델카였다. 그녀가 수작을 부려 아이의 안에 계단을 만들고 샤다이를 들여보냈던 것이다. 찰리하나팔은 아직 남아 있는 개구멍을 슬쩍 엿보았다.
“장관이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실제로 장관이었다. 찰리하나팔은 보이는 것은 색이고 들리는 것은 소리다, 라는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의 클론이라 외부의 자극은 오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한계다. 지금 개구멍 너머로는 인간의 인식범위 바깥의 정보가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류를 떠나 엄청난 양의 정보와 의식이 맞부딪히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이 개구멍이 연결된 곳은 하필이면 쿠델카와 메이화의 정신세계였던 것이다. 찰리하나팔은 쿠델카의 흔적을 따라가다가 황제의 페르소나 둘이 싸우는 광경을 엿보게 되었다.
둘의 싸움은 실로 대단했다. 이 호각의 승부에 찰리하나팔이 끼어들었다간 그는 문자 그대로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될 것이다.
“안녕 개년아.”
새우가 말을 걸었다.
“같잖은 클론 찌꺼기가.”
고래가 대답했다. 눈을 돌리지 않아도 모멸의 시선이 느껴진다.
“바쁜 모양이네?”
이번에는 대답도 없었다. 지금 쿠델카는 메이화와 싸우고 있는 중이라 고작 클론의 정신체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찰리하나팔이 무엇을 한다 해도 강대한 쿠델카에게 피해를 줄 순 없다.
“아들의 선물이야. 잘 받아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리하나팔은 적의를 세워 이곳에 풀어놓았다. 빈우에게서 공유받은 적의다. 빈우가 자신의 어머니인 쿠델카에게 주기 위해 갈아놓고 담금질했던 증오와 적의가 퍼져서 쿠델카를 덮쳤다.
“악!”
이런 것을 줘봐야 그녀에게 큰 피해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똥물을 뒤집어씌운 정도의 모멸감을 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꽤 타이밍이 좋았다.
“너! 너어어!”
분노한 쿠델카였지만 그 분을 풀 겨를이 없었다. 잠시 틈을 보이자 메이화가 바로 치고 들어온 것이다.
“이것들이!”
찰리하나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고, 쿠델카의 노성이 뒤에서 점차 멀어져 간다. 찰리하나팔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미안하다.”
아이의 얼굴이 희미해져 간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사라져간다.
“형이 너를 구하려고는 하지만, 살리지는 못하겠다.”
궤도 엘리베이터의 한구석에서 찰리하나팔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숨이 끊어진 아이였다. 찰리하나팔의 접속이 끝났을 때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아이는 인간인 채로 죽었다.
“미안해.”
찰리하나팔이 아이의 눈을 감겨준 다음 뒤틀린 팔다리를 가지런히 모아주었다. 워프 비스트의 흉기가 접혀 아이의 가슴에 올라갔다.
‘워프 비스트로 사는 것이 좋았을까. 인간으로 죽는 것이 좋았을까.’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없다. 애초에 인간이란 무엇일까. 찰리하나팔은 인간의 유전자로 태어난 클론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클론으로 보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빈우는 확실히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쉬바에 반응해버렸다. 그는 법적으로도, 자신의 인식으로도 인간이었다. 허나 쉬바는 그를 ‘오염된 인간’으로 정의하고 작동했다.
‘지금 그딴 게 뭔 상관이냐.’
멍해지는 머리에 찰리하나팔은 생각을 그만뒀다.
‘정말 미안하구나.’
이제 찰리하나팔의 목에서도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추웠다. 갑자기 한기가 찰리하나팔을 감싼다. 외부의 한기는 아니다. 동력이 끊어진 궤도엘리베이터라 하지만 보온은 되고 있고, 찰리하나팔도 우주복을 입고 있다.
‘그래도 춥군.’
한데 추워도 몸이 떨리지 않는다. 신체 곳곳에서 경보가 뜨지만 그는 무시했다. 단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무지 졸립다는 수면욕 하나다. 찰리하나팔은 지금 너무 피곤하고 잠이 왔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것은 혹시 이 아이도 자기처럼 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추우면 안 되지. 뭔가 덮어줘야겠다.’
찰리하나팔이 아이의 옆에 붙었다. 그리고 탄소 케이블로 자신을 아이 옆의 벽에 질끈 묶었다.
‘이불.’
찰리하나팔은 혹시 냉기가 올라가 아이가 잠에서 깰까 싶어 방한용 알루미늄 모포를 꺼내 아이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베개.’
찰리하나팔이 하나 남은 손으로 남은 모포를 똘똘 말아 아이의 뒤통수에 넣어주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씌워주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베었다. 그리고 나머지 모포 자락을 자신의 가슴팍까지 올렸다.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은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일이다.
‘난 인간이야.’
마커스이 말이 기억난다. 그는 클론인 찰리하나팔을 법정에 세운다고 했었다. 찰리하나팔도 기꺼이 법정에 설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당연히 벌을 받을 생각이었다. 애초에 찰리하나팔은 무고한 인간을 죽인 것에 대한 죗값을 치를 각오로 빈우에게 협조했던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연방의 법은 연방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찰리하나팔이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은 극형이 될 것이 뻔하다. 그래도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럼, 벌을 받아야지.’
하지만 지금은 너무 졸렸다. 찰리하나팔은 잠에서 깨면 자수할 다짐을 하고 눈을 붙였다.
‘난 괴물이 아니야. 인간이야.’
찰리하나팔은 이제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