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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91화 (289/301)

291화

아기가 통곡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아기 형태를 한 괴물이 채 떠지지도 않는 눈을 실룩이며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 섬은 빈우의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까 관리소의 대 난장판이 벌어진 후 빈우는 관리소의 일부와 함께 우주공간으로 날려갔고, 그 뒤를 섬이 쫓았었다. 비록 메이화와는 연결이 끊겼지만 지금 빈우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어머니인 메이화가 쿠델카와 사생결단을 벌이는 지금, 쿠델카의 아들인 빈우를 죽이든 살리든 손안에 두고 있어야 했다.

-전대장님!

이 섬이 꿈틀거리는 빈우과 거리를 두고 잠시 대치 상태에 있을 때, 요시오가 따라붙었다. 어썰트급 장갑복이 날아와 파편 위에 안착한다.

-블랙 랜스 쪽은?

섬이 빈우와 한층 거리를 두며 물었다. 울던 빈우가 갑자기 관리소 파편 위에서 몸부림치며 발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기의 몸에서 촉수가 돋아나와 여기저기에 파고든다. 그리고 이 촉수들이 관리소 파편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튀었습니다. 함포를 냅다 갈긴 다음 챙길 것만 챙겨서 튀더군요. 근데 안드로이드 쪽이 문젭니다.

요시오가 말한 안드로이드란 쿠델카 모델 안드로이드를 말한다. 그것도 보통 안드로이드가 아니다. 황제의 페르소나인 쿠델카가 이 통상 우주에 현계할 인형이고, 지금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키가 될 안드로이드다.

-저 썅.

요시오는 관리소의 파편이 빈우에게 흡수되는 것을 보며 곤란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자재는 지구 제국의 것이다. 비록 그들이 입고 있는 장갑복에 비하면 훨씬 질이 떨어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인류 연방의 기술로는 파괴하기 힘든 자재였다. 허나 그런 물질들이 지금 저 괴물에게 파괴도 아닌, 흡수되고 있다는 것은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다.

-안드로이드라면 낭소로호가 쫓았을 텐데.

이 섬이 빈우의 포식을 지켜보며 검을 가다듬었다.

-쫓았는데, 타이 차관이 안드로이드와 클론 둘 다 탈출시켰답니다.

요시오의 대답에 섬이 흠, 하는 콧소리와 함께 입술을 다물었다. 비홀더 1전대에서 전투력 최강이라면 이 섬과 낭소로호, 요시오 이 셋이다. 그리고 근접전이라면 요시오가, 사격전이라면 낭소로호가 이 섬을 능가한다. 그런 낭소로호에게서 도망쳤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마하니 중위가 일부러 놓아준 건가?

-글쎄요. 그 양반은 워낙 보고 들은 게 많아서 말이죠.

그때 마침 포식을 마친 빈우의 팔이 이쪽으로 뻗어왔다. 요시오가 나서서 검을 휘둘러 촉수 같은 팔을 막았지만, 빈우의 팔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쪽의 중성미자의 산란이 먹히지 않고 있다. 안 좋은 소식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중위님이 느릿느릿 따라가서 뒤에서 타이 차관에게 칼빵을 놨습니다만, 블랙 랜스 쪽에서 저격을 해서 타이 차관의 머리를 날려버리더구만요.

낭소로호는 요근래 급변하는 연방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단독으로 태양계 내에서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이 함장에게 가지 않도록 모든 연락을 끊고 있었기에 그간의 행적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복귀하고 나서는 바로 작전에 들어간 탓에 아직 제대로 된 정식 보고는 없었다.

-날려버렸다?

이 섬이 반문했다. 낭소로호가 자신의 목표를 죽이려고 했다면 뒤에서 양성자포를 쏘기만 했어도 쉽게 지워버릴 일이었다. 그의 사격 실력이면 사지가 불편한 클론과 전투용이 아닌 안드로이드 따윈 순식간에 날려버렸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날려버리기 전에.

-정확히는 아룹이란 작자가 모가지를 노리고 쏴서 대가리만 두둥실 했습죠. 뇌와 두뇌칩은 무사할 테니 어찌어찌 살릴 수는 있을 겁니다만, 중위님이 그 대가리를 따로 챙겼습니다.

그 말을 하며 요시오는 전대장의 눈치를 봤다. 낭소로호의 충성심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의 행동은 분명히 수상했다.

-낭소로호가 그렇게 했다면 그런 이유가 있겠지.

관리소의 자재를 먹어 치우고 그것을 소화해 잃어버린 신체를 복구한 아기가 이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낭소로호.

이 섬은 빈우와 서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낭소로호를 불렀다.

-네, 전대장님.

-지금 즉시 이리로 와.

-지금은 조금 곤란합니다.

뜻밖의 대답에 요시오가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 낭소로호는 전대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치르는 마당에 딴죽을 걸고 있는 셈이다.

-왜?

묻는 이 섬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낭소로호의 대답도 태연했다.

-거래중이라서요. 조금 바쁩니다.

지금 그는 누구와 거래하는지도 밝히지도 않고 전대장의 명령을 미룬 것이다. 요시오는 식은땀이 목구멍에 걸리는 기분을 느끼며 그걸 꿀꺽 삼켰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둘은 태연했다.

-끝나면 오도록.

-알겠습니다.

* * *

-이거면 되는가?

낭소로호가 마커스 타이의 머리를 던졌다. 무중력 공간을 떠내려간 머리를 잡은 것은 이노우에 고토의 허수아비였다. 아까 마커스를 구하면서 죽은 개체와는 다른 녀석이다.

-충분하지. 고맙소.

고토의 말에 낭소로호는 달리 대답이 없었다. 대신 마커스의 머리를 던졌던 그의 손은 이번엔 손바닥이 위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있소.

이번엔 고토가 낭소로호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두뇌칩이다. 그것도 꽤 예전에 쓰이던 구형모델이다.

-씀씀이가 좋군. 절반만 받고서도 다 주는 건가?

-나머지 하나는 그때도 말했듯이 덤이라서.

고토의 말에 낭소로호가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대장에게 부름을 받은 곳이다.

-전대장이 저기서 그 덤을 상대하고 있소. 원한다면 챙겨올 수도 있는데?

하지만 고토의 허수아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이었소. 이 이상 폐를 끼칠 순 없지.

그 말에 낭소로호가 피식 웃었다. 폐는 폐지만 그것을 끼칠 대상이 비홀더 1전대뿐만 아니라 인류 연방이란 것을 눈치챈 것이다.

-아무튼 잘 받았소. 요긴하게 쓰지.

그리고 낭소로호는 빈우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고토의 허수아비는 작게 탄식했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고토가 아끼던 두 보물 중 하나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김 빈우와 마커스 타이, 둘 다 연방의 걸출한 인재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마커스 타이는 군사정보국 같은 곳에서 머물 위인이 아니다. 여기를 거쳐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 인류 연방을 이끌 요직에 앉을 인재다. 반면 빈우 같은 경우는 뛰어나긴 하나 정신적으로 하자가 있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강박관념, 한 명의 인간을 위해 수억의 외계 종족을 죽이겠다는 각오. 여러모로 위험했다. 그리고 지금은 더더욱 위험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원인은 내게도 있다.’

허수아비가 자책했다. 그는 현장 판단을 하기 위해 고토 본인의 자료와 기억을 상당수 가졌기 때문에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본체라면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고토의 허수아비는 자신의 본체인 이노우에 고토의 의중을 알 수 없다. 본체가 자신처럼 자책할지, 아니면 흡족해할지는 모른다. 다만 자신이 방금 건네준 자료가 이 아수라장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리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의 영향력이 이 폭풍우를 잦아들게 할 것인가, 아니면 더욱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할 것인가, 다.

* * *

-전대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낭소로호는 도착하자마자 이 섬에게 두뇌칩을 하나 건네주었다.

-이건 구형 모델이로군.

지구 제국도 두뇌칩을 쓰지만, 현재의 연방제 두뇌칩과는 기술 계통이 아예 다르다. 그러나 지금 낭소로호가 가지고 온 것은 연방과 제국이 서로 분화되기 전의 모델로서 상당히 구형의 칩이었다. 그런 것에 든 정보라면 역시나 옛날의 자료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며, 또 이런 상황에서 굳이 거래해서 가져올 것이라면 그 중요도와 위험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건!’

이 섬은 두뇌칩의 내용물을 보고 놀랐다. 낭소로호가 가세한 덕에 빈우를 견제하기 수월해졌고, 그 덕에 전대장은 좀 더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낭소로호가 가져온 것은 분명히 이 시점에서 확실한 우세를 점할 수 있는 키다. 그러나 연방이 우리에게 이것을 넘겨준다면 그들은 뒷감당을 어떻게 하지? 고작 연방 군인 두 명의 목숨에 이것을 준다고?’

그가 의심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이 섬의 손엔 너무나 좋은 타이밍에 훌륭한 무기가 들어온 것이다.

-어쩌시겠습니까. 전대장님.

무기를 가져온 낭소로호가 물어본다. 가져온 물건을 쓰라고 재촉하는 것도 아니다. 거래를 해서 구해온 그조차 이런 투로 말하는 것을 보면 이것을 쓰는 데에 조금은 거리낌이 있는 듯싶다.

-훌륭하다, 낭소로호. 필요한 때에 적절한 물건을 들고 왔군.

-···떨이로 주는 것을 받아왔습니다.

즉 주는 쪽에서도 뭔가 꿍꿍이가 있었다는 의미다. 이러니 섬도 낭소로호도 지금 상황이 썩 달가운 것은 아니다. 인류 최고의 무력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비홀더 제1전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너무 이용만 당했으니 기분 좋을 리 없다. 그 이유는 정보력의 부재라고 판단해 낭소로호가 단독으로 정보수집에 나섰지만, 이건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섬도 낭소로호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당하게 되자 입맛이 떫다.

-사용하도록 하지.

섬은 두뇌칩 안의 내용물을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이쪽이 생각에 빠져 잠시 공세에 틈이 생기자 빈우가 이를 놓치지 않고 밀고 들어왔다.

-이런!

지구 제국의 기사 셋이 괴물 하나에게 뚫렸다. 물론 당한 것은 아니다. 빈우가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 것이다.

-쫓아!

이 섬이 선두, 그 뒤로 낭소로호와 요시오가 뒤따랐다. 개중 가장 많이 두들겨 맞은 요시오는 약이 바짝 올라서 쫓았다.

-어딜 튀려고! 어랍쇼?

양성자포를 겨누던 요시오가 시선을 약간 옆으로 돌리자, 빈우가 날아가는 방향 쪽에서 소형 우주선이 하나 날아오고 있었다. 연방이 그라디우스라고 부르는 병력수송용 중형 전투기다.

-헤헹, 얕은 수작 부리기는.

분명 저것을 타고 도망칠 것이라 판단은 요시오는 빈우가 아니라 그라디우스를 겨눴다. 허나 앞서가던 이 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설마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그라디우스에게?’

태아 형태의 괴물은 날아가면서 팔을 퍼덕이고 있었다. 얼핏 보면 도망치기 위한 발버둥 같기도 하지만, 왠지 이 섬에게는 오지 말라고 절규하는 몸짓으로 보였다. 그는 좀 더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 요시오를 제지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요시오가 쏘는 것이 더 빨랐다. 아광속으로 날아간 양성자의 궤적은 그라디우스에 정확히 명중했고, 연방의 수송기는 절단되며 폭발했다.

-아-나스-타샤.

이 섬에게 절규가 들렸다. 소리는 당연히 아니고 통신 또한 아니다. 비홀더 제1전대장에게 공명된 감정이다. 마치 비홀더의 전대장끼리 서로를 연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나.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야겠군.’

이 섬은 빈우의 경지가 어디까지 왔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빈우의 재생은 비록 제대로 된 것은 아니고, 또한 누군가에게 직접 조정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저런 엉망진창의 괴물이 된 빈우지만, 그 위계는 엄연히 황제 직속 1기사, 더구나 쿠델카 유일의 기사라 능력은 집중되어 있다. 지금 빈우의 위험도가 자신과 동급이라 인지한 이 섬은 낭소로호가 가져온 것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용당한다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어찌할 바 없는 외통수다. 다음 일은 부딪힌 뒤에 생각하기로 한 이 섬이 자신의 황제를 불렀다.

-어머니-

-엄마-

그런데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이 섬은 함장을 부르려고 했었다. 메이화가 그녀의 어머니이긴 하지만, 방금은 분명히 함장이라고 부르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비슷한 말이 귀에 들려오자 이 섬도 ‘어머니’라고 말이 헛나와버린 것이다. 이어서 혼선을 일으킨 그 누군가로부터 경악과 슬픔이 솟구쳐 나와 이 섬에게 흘러들어온다.

-어-ㅁ-마-

아기가 바둥거리며 날아가 그라디우스의 파편을 뒤졌다. 괴물이 그라디우스의 조종석을 부수고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거기서 상반신만 남은 우주복을 잡아 꺼냈다.

-엄-마-

말이 아닌 느낌이 이 섬에게 전해진다. 그는 빈우가 무엇을 찾았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같은 처지였으니까. 아기의 품 안에서 가슴 위로만 남은 엄마가 안겨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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