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92화 (290/301)

292화

-어쩌죠? 날려버릴까요?

요시오가 양성자포로 빈우와 아나스타샤를 조준하면서 물었다. 지금이라면 쿠델카의 그릇이 될 안드로이드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요시오는 질문은 이 섬에게 하면서도 시선은 낭소로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낭소로호는 이전에 관리소에서 아나스타샤를 파괴하지 않고 보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거래는 끝났다. 이제는 죽여도 별 상관없겠지.

낭소로호는 그가 방금 말한 거래로 상당히 중요해 보이는 두뇌칩을 가져왔다. 요시오는 그게 무언지 모르지만, 전대장인 이 섬의 반응을 봐서 굉장한 가치를 지닌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야….

요시오는 시선을 다시 빈우에게도 돌렸다. 그런데 요시오가 겨누는 총구의 앞을 전대장의 손이 가로막았다.

-전대장님?

의아해하는 요시오의 질문에 이 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다는 시선으로 빈우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다. 태아 형태의 흉물은 상체 일부만 남은 안드로이드를 애지중지 껴안고 있었다.

‘김 빈우는 정말 쿠델카의 제1기사일까? 황제의 제1기사가 타인에게 저런 감정을 품을 수 있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섬의 귓가에 문득 빈우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쳤다.

‘어머니에게 자유를.’

그 울부짖음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빈우의 목적은 어머니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어머니란 것이 쿠델카일까, 아니면….’

이 섬은 마음속 의문을 되새기며 손안에 든 두뇌칩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 두뇌칩에 든 자료를 메이화에게 보냈다. 이것으로 승기는 자신들, 비홀더 전대가 가져가게 될 것이다.

-내가 마무리 짓지.

이 섬은 그렇게 말하며 빈우에게 다가갔다. 빈우는 아나스타샤를 어떻게든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그라디우스의 잔해를 붙잡아 뒤지고 있었다. 그따위 연방제 우주선 장갑으론 제국의 무기 앞에서 얼마 버틸 수 없지만, 그래도 괴물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에 숨기기 위해 안간힘이었다.

이미 빈우라는 존재의 인간성은 쉬바에 의해 엉망진창 침식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꺼지지 않는 불씨가 그의 뇌리 속에서 빨갛게 일렁이고 있었다. 빈우는 계속해서 흐려지고 어두워지는 심상 속에서 저 멀리 자신을 이끄는 불빛을 찾아 나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손아귀에 집어넣고 그 온기를 느꼈다.

-내 빛, 내-사-랑, 내가… 죽을 곳-

빈우의 그 말에 아나스타샤가 반응했다. 꿈틀거리며 눈을 뜬 것이다. 가슴부터 머리만 남은 안드로이드가 아기의 손안에서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몸을 지킬 장갑복도 없고, 몸도 전투용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피해가 심각했다. 지금 아나스타샤는 동력로가 망가져 작동정지 일보 직전이다.

-그래요, 주인님이 죽으시면… 그 옆엔 제가 누울게요.

아나스타샤의 하나 남은 손이 빈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빈우는 가만히 그 감촉을 느끼고는 그녀의 팔을 잡아 조심스레 내렸다. 그리고 제국 기사 쪽으로 돌아선 태아 형태의 흉물이 자세를 잡았다.

-으음.

그 모습을 본 이 섬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지금 그의 앞에 선 빈우는 방금까지와는 달랐던 것이다. 아까까지의 빈우는 그저 악의와 증오가 실타래마냥 엉켜 휘둘러진 것에 불과했다. 허나 이제는 그 악의를 씨실 삼고 증오를 날실 삼아 뽑아낸 줄에 목이 졸리는 기분이 들었다.

“요시오! 물러서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시오의 양팔이 날아갔다. 빈우는 한 번 찌르고 당기는 것으로 요시오의 두 팔을 자른 것이다.

-썅! 안 보여! 전대장님! 저 새끼도 시간 틈에서 움직입니다!

아까 대원 한 명을 공격할 때 빈우가 공간의 좌표를 뒤트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시간마저 일그러트린다. 이성은 몰라도 전투 기술만큼은 이 섬과 동급이다.

-낭소로호!

이 섬은 엄호를 명령하며 가속해서 달려 나갔다. 그는 드문드문 끊기는 빈우의 모습에서 현재 놈의 가속이 자신보다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능력이 떨어진 지금으로선 벅찬 상대다. 빈우와 이 섬 주변의 시간 거품들이 맞부닥치고, 서로의 가속 시간이 상쇄된다. 낭소로호가 쏜 양성자포가 빈우에게 명중했지만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고, 단순한 입자포의 효과만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낭소로호는 방금 쏜 양성자 궤적 중 하나가 바로 등 뒤에서 나타나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그가 입고 있는 것이 제국제 장갑복이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소멸했을 위력이다.

-골치 아프군.

낭소로호도 검을 들고 다가갔다. 하지만 물질 사이의 접합을 끊는 지구제국의 검도 지금 저 괴물을 상대론 한낱 날붙이에 불과했다. 찰나의 시간에 수백 번의 공격이 오갔고, 마지막 공격 다음 쌍방은 잠시 뒤로 물러섰다.

-으음.

그사이 낭소호로는 차원이 반전해 뒤집혀가는 팔을 잘라낸 다음 재료로 환원했다. 요시오는 계속해서 얼어붙는 자신의 왼발을 잘라냈다. 섬은 상처투성이가 된 빈우를 노려보며 다음 공격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다음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를 중재할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함장님!

이 섬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함장을 보고 놀랐다. 통신이 아니라 본체가 직접 나타난 것이다.

-고마워요, 전대장. 덕분에 이렇게 올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과 동시에 비홀더 1전대의 남은 함선들이 속속 화성 궤도에 도착했고, 체메트디오프의 함대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갑작스러운 지구 제국 함대의 등장에 이제까지 길항을 이루던 전황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비홀더 전대의 전투함들은 도착하자마자 고대 샤다이 함대에 중력닻을 걸고 장갑보병들을 침투시켰다. 이제 샤다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죽음뿐이다.

-이제 자매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는군요.

방금 낭소로호가 가져온 두뇌칩에 든 것은 비홀더 전대에게 보내는 연방의 요청서였다. 비홀더 전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루비콘 라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은 인류에게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엔 금지된 선을 넘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번의 경우엔 비홀더 전대중 1전대만이라도 화성에 증원을 올 수 있었지만, 쿠델카가 방해하는 바람에 편법을 써서 소수만 올 수밖에 없었다. 허나 연방 측에서 위협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명확하게 요청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노우에 고토가 준 것은 그러한 종류의 요청서이며 이것 덕에 메이화는 쿠델카의 방해를 뚫고 나머지 병력을 화성까지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싸움이 끝나고 짬이 조금 생겨서 왔어요.

메이화가 말한 싸움이란 쿠델카와의 정보전일 것이다.

-싸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섬의 질문에 메이화가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똥물을 뿌리는 바람에 중간에 흐지부지되었죠.

-어떤 놈이 감히! 하명하십쇼. 제가 아예 피곤죽을-!

요시오는 경애하는 함장에게 그런 짓을 한 놈을 갈아버리겠다는 듯, 막 붙은 팔을 붕붕 휘둘렀다.

-이미 죽었어요.

-아, 넵.

메이화는 슬픈 눈으로 눈앞에서 경계하고 있는 빈우를 보았다. 그녀가 슬퍼하는 이유는 앞서 자신이 말한 것들 때문이다. 자매간의 싸움에 훼방을 놓았던 자의 죽음. 그리고 그가 훼방을 놓은 방법과 그 이유.

‘쿠델카….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아무리 자유를 원한다 해도.’

찰리하나팔이 억눌린 증오를 푸는 순간, 빈우가 학대받아왔던 사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메이화에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자신의 자식을 자신의 욕망의 분출을 위한 도구로 쓴 사실. 메이화로선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라도 조카를 구하고 싶었다.

-자유? 자유라….

메이화는 저도 모르게 자매의 욕망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빈우는 왜 저렇게 되었을까요? 그는 스스로 쉬바를 받아들였어요.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저 모습은 아마도… 그의 뒤틀린 내면세계 때문일 것입니다.

빈우는 샤다이의 능력을 쓰면서 몸이 점차 변해갔다. 그래서 그 근본적인 치료책으로 쉬바를 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쉬바가 더욱 격렬히 반응한 것은 그의 정신세계다. 쉬바가 찾아내서 보완한 정신의 문제점은 육체의 형상으로 그래도 드러났고, 그 결과가 저 거대한 태아 형태의 괴물이다. 저 형태는 빈우의 정신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리라. 하지만 온전히 빈우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의 몸과 정신을 만든 것에는 빈우 그 자신도 있지만, 그의 부모 영향도 클 것입니다.

섬의 추측에 메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쉬바를 받아들이면 그 육체는 재탄생하고, 다시 태어난 자는 황제의 지휘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중에서도 제1기사는 황제의 대리자라 불리우는 존재로서 막강한 권한을 받으며, 동시에 황제와 밀접한 정신적 유대관계를 가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정신적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빈우의 경우는 어떨까. 그를 이끌어야 할 쿠델카의 상태는 과연 어땠을까.

-김 빈우.

샹 메이화의 부름에 태아 형상의 괴물이 멈췄다.

-우리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마치 말을 알아들은 듯, 괴물이 손을 내렸다.

-당신은 그런 몸이 되어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죠?

메이화의 말에 괴물이 부르르 떨더니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자유! 어머-니의-자유! 나는! 어머니를-자유-롭-게 한다!

흉물에게서 헐떡이는 정신 파동이 뿜어져 나오자 메이화의 기사들이 나서서 앞을 막았다. 그리고 각자 무기를 들어 전투태세를 갖췄다. 빈우의 어머니인 쿠델카가 자유롭게 되는 방법은 바로 그녀를 속박하는 인류의 멸망이다. 빈우는 인류를 지키고자 그토록 애썼건만, 결국 쿠델카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그러나 메이화는 자신의 기사들을 제치며 앞으로 나갔다.

-자유! 그래요, 당신의 동료는 지금 자유롭게 되었나요? 찰리하나팔! 당신의 그림자! 어두운 과거를 떨쳐내고 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어 했던 당신의 바람. 그는 이제 자유로운가요?

그 질문에 빈우는 메이화를 바라봤다. 희끄무레한 피막에 쌓인 눈이 황제의 페르소나를 주시하다가 곧 그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 모습에 메이화는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자신의 눈을 감았다.

-그렇군요. 당신은 그렇게… 당신의 어머니를 영원히 자유롭게 하려는 거군요.

메이화는 빈우의 목적을 이해했고, 동시에 이 섬은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쿠델카는 인류에 속박되어 있고, 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원한다. 그리고 빈우는 자신의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녀를 속박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빈우가 선택한 것은 죽음을 통한 영원한 자유다. 모든 욕망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자유.

-그런 방법인가.

이 섬이 탄식했다. 이는 세뇌 프로그램에 강제당하는 자가 그 명령에 복종하면서 명령을 거스르는 방법이다. 쿠델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빈우가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빈우는 어머니에게 복종하며 그녀의 뜻을 존중해 그녀를 죽일 셈이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 어머니의… 제1기사가 된 거로군요.

메이화의 말에 빈우는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제1기사는 황제의 최측근이다. 황제로부터 가장 많은 권한을 받으며,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다. 또한 동시에 칼을 꽂을 수 있는 거리에서도 가장 가깝다. 빈우는 어떻게든 쿠델카를 죽일 힘을 가지고, 그녀의 곁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점프 공간에 숨어있으며 통상우주에서 접촉할 방법은 없다. 가끔씩 그녀가 밖으로 나올 때가 있지만, 그럴 때를 노리기엔 너무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까이 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빈우는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쉬바를 통해 그녀에게 가장 가까이 가는 방법을.

-그래서… 그렇게.

메이화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괴롭히고, 아들은 어머니를 죽이려 한다. 그리고 이모인 자신은 이것을 말리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법과 도덕도, 선악의 판단도 여기엔 없다. 단지 모자간의 욕망이 얽히고 얽혀 복잡하게 꼬인 매듭이 있을 뿐이다.

-내가 도울게요.

마침내 황제의 페르소나 중 하나가 말을 꺼냈다. 자신의 자살을 돕겠다는 말을 꺼낸 것이다. 하나의 줄기에서 뻗어져 나온 가지가 옆의 가지를 자르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다.

-점프 공간으로 들어가 그녀를 죽이고 싶은가요?

이모의 질문에 조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해요, 그건 불가능해요. 거긴 그녀의 본거지입니다. 우리로선 그 안에서 그녀에게 거스를 수 없어요.

그 말을 들은 빈우는 실망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로서도 그 정도는 이미 짐작했던 모양이다. 그 모습에 메이화는 빈우가 준비한 차선책이 지금 자신이 권하는 방법과 같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조금 더 쉽게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쿠델카를 아나스타샤 안에 넣으세요. 제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도울게요. 그리고 그녀를 지구로 데려가 죽여요. 통상우주에서 죽는다면 그녀는 황제의 본체, 지구로 돌아갈 것입니다. 다른 자매들처럼.

해답을 들은 빈우는 분노하며 저항하지 않았다. 격렬하게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짐작했던 최악의 통보를 듣고 슬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메이화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