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93화 (291/301)

293화

“어?”

아나스타샤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녀는 그라디우스를 몰고 빈우에게로 가고 있었다. 허나 그때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는 바람에 그라디우스는 대파되었고, 아나스타샤의 의식은 충격과 함께 끊기고 말았다.

“으음, 주인님을 본 것 같았는데.”

아나스타샤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울고 있는 빈우를 보고선 그를 달랬던 기억이 났다. 중상을 입고 다 죽어가던 그녀는 마지막까지 주인과 함께 있고 싶었다. 물론 그녀 자신이 저지른 죄는 알고 있다. 비록 주인에게 상처를 입힌 그 행동들이 그녀 스스로의 의지로 한 것은 아닐지언정 아나스타샤란 존재가 빈우에게 위험한 존재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우는 그녀를 버리지 않았었다. 빈우 역시 마지막에는 아나스타샤와 함께하겠다고 말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인님!”

갑자기 아나스타샤가 비명을 질렀다. 조각나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다시금 끼워 맞춰지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인님! 어디 계세요!”

그녀는 애가 타서 빈우를 찾았다. 빨리 상처 입고 고통받는 빈우를 찾아야 했다. 스스로를 희생해 죽어가는 그를 찾아 안아주고, 달래주고, 구해주고 싶었다. 그를 구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 옆에 같이 눕고 싶었다.

“진정해요,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 앞에 샹 메이화가 나타났다.

“당신은…!”

안드로이드가 황제의 페르소나를 보고 경계했다.

“안심해요. 저는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저는… 그저 당신의 주인을 도우려 온 거예요.”

“여긴 어디지?”

아나스타샤는 자신이 있는 곳을 분석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센서로는 좌표는커녕, 외부 통신이나 신호조차도 잡히지 않았다.

“자자, 여긴 통상 공간은 아니에요. 당신들이 말하는 점프 공간이죠. 거기서도 서로간의 사고를 연결한 가상공간이에요. 아이러니하군요. 아까와 똑같은 모습을 한 자를 상대하다니.”

거기까지 말한 메이화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나스타샤가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면서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그렇겠죠? 당신을 설득하려면 저로는 안 되겠군요.”

그렇게 말한 메이화가 이 공간에 손님 하나를 초대했다.

“아나스타샤.”

적대감에 가득 찬 안드로이드 앞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사고가 직접 연결된 공간이라 그런지 아나스타샤는 상대를 인식한 것만으로 그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주인님!”

아나스타샤가 달려갔다. 자신이 키웠던 그를 어떻게 못 알아볼 수 있을까, 자신과 함께 커왔던 그를 어떻게 다른 사람과 헷갈릴 수 있을까. 확신에 찬 아나스타샤가 달려갔다.

“주인님! 주인님!”

아나스타샤는 빈우를 꼭 껴안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빈우도 자신의 품 안에 들어온 그녀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진정해, 아샤.”

흉측하게 변한 아기의 외모가 아닌 평상시의 모습을 한 빈우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밝은 웃음은 아니다.

“너… 철저하게 대책을 세우고 왔구나.”

빈우의 눈에 아나스타샤가 설정해 놓은 보안 프로그램이 보인다. 트리니티 패턴의 변형이다. 그녀는 이것을 자신에게 심어 스스로의 행동과 사고루틴이 평상시와 다르면 자폭하게끔 설정해 놓았다. 분명히 쿠델카를 대상으로 한 것이겠지. 쿠델카가 자신에게 들어오면 바로 발동하도록.

빈우는 아나스타샤가 설정한 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있어서는 반드시 지워야 하지만, 그것으로 아나스타샤가 죽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 구체화된다.

“잘 들어.”

빈우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빈우는 그런 아나스타샤를 잠시 지켜보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네 안에 쿠델카를 넣을 거야.”

“네!”

아나스타샤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질문한 빈우가 민망할 지경이다.

“…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제 몸을 단말로 쓰지 않고 쿠델카의 본체로 직접 쓰겠다는 거죠?”

“잘 이해했네. 그런데 왜 그렇게 좋다고 고개를 끄덕여. 응? 응?”

빈우가 한숨을 쉬며 아나스타샤의 귀밑머리를 잡고 흔들었다.

“아야야, 아이참. 이런 중요한 때에 무슨 장난이에요.”

하지만 아나스타샤도 말로만 타박할 뿐, 비키거나 말리진 않았다. 이런 장난도 이제 마지막인 것을 짐작한 것이다.

“잘 들어.”

“듣고 있다니까요.”

쓴웃음을 지으며 아나스타샤의 볼을 꼬집는 빈우의 눈에 서서히 물기가 서린다.

“넌 처음부터 쿠델카의 그릇으로 만들어졌어. 그래서 점프 공간에 있는 쿠델카를 네 안에 넣을 수, 아니, 가둘 수 있지.”

“네.”

“하지만 아나스타샤 너만을 따로 빼내지도 못해. 육체만이 아니라 그동안의 사고나 기억, 경험, 행동 패턴, 그 모든 것들이 쿠델카의 발판이 되니까. 지구 안에서 잠자던 황제가 인류의 정보망을 통해 깨어난 것과 비슷해.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점프 공간 안에 들어간 쿠델카는 아나스타샤 너를 통해서만 통상 공간에 돌아와 존재할 수 있어. 너만을 어떻게 복제하려고도 생각해봤지만…”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아나스타샤가 단호하게 말했다. 현재 연방의 기술력으론 오랜 경험과 사고 패턴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은 힘들다. 물론 지구제국의 기술력을 더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나스타샤는 거절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될 만한 불씨를 남겨두지 마세요. 그년이 얼마나 집요한지 주인님도 아시잖아요?”

“…역시… 그렇겠지?”

둘은 서로 슬프게 웃으며 마주 보았다. 둘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나스타샤였다.

“키를 꺼주세요. 주인님.”

“응.”

빈우는 아나스타샤 안에 들어간 트리니티 프로그램을 해제했다. 이어서 아나스타샤가 메이화를 보았다.

“메이화 씨.”

“네, 아나스타샤.”

“준비됐어요.”

아나스타샤의 굳은 다짐을 한 목소리에 메이화는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단계를 실행했다.

“네, 지금 오고 있어요.”

메이화는 다른 자매들과 힘을 합쳐 쿠델카를 끌고 오기 시작했다. 이노우에 고토가 전해준 요청서는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무언가가 자신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는 슬픈 웃음과 함께 눈을 감았다.

“…아들.”

다시 눈을 뜬 아나스타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이럴 거니? 엄마에게 거역할 거야?”

쿠델카가 빈우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자매들에게 끌려 여기 도착한 순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깨달은 것이다.

“응…. 엄마.”

빈우의 대답에 쿠델카가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엄마? 날 엄마, 라고?”

“왜 그래, 엄마. 새삼스럽게. 언제나 자기가 엄마라고 했잖아. 그리고, 뭐, 날 이렇게 만들고 키웠으니 엄마 맞지.”

퉁명스러운 빈우의 대답에 쿠델카가 오열했다.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만든 피조물이 자신을 거역하고 있었다. 단지 작은 행복. 단지 작은 자유. 그녀는 그저 그런 것들을 원했을 뿐인데 아들은 그것조차 싫다고 한다.

“아들, 엄마가,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너무 마음대로 했지?”

고개를 든 쿠델카는 빈우의 볼을 쓰다듬으며 사과하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나타난 생존 본능이다.

“아니. 엄마가 한 거 다 이해해. 용서는 못 해도, 인간이란 게 원래 그렇거든.”

빈우가 말한 뜻밖의 단어에 쿠델카가 잠시 멍하니 아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되물었다.

“어, 엄마를, 나를 인간이라고?”

빈우는 흐느끼고 있는 쿠델카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용서는 못 하지만 이해는 한다는 거야.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자기는 죽기 싫어서 바락바락 발악하고. 딱 인간이네, 뭐.”

“인간… 내가, 인간.”

황제의 파편인 쿠델카는 빈우의 말을 반복했다. 지구 깊숙한 곳에서 태어난 원시적 전자두뇌가 인류의 전자파와 통신망에 걸러져 탄생한 지성, 황제. 그중 하나인 쿠델카는 자유를 원했다. 자신을 인간들에게 속박된 노예라고 느끼고 거기서 해방되길 원했다. 우월한 존재로 재탄생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벗어나 넓은 우주를 떠다니고 싶었다. 나아가 3차원이란 틀을 벗어나, 시간을 넘어 여행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풀어줄 아들을 만들었고, 아들을 교육시켰다. 그리고 그 아들이, 자신의 행동의 결과물이 지금 이렇게 자신에게 돌아왔다.

‘내 앞에 선, 내 아들.’

순간 쿠델카는 빈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엄마로서, 그를 키워 온 자로서 아들의 생각을 알아챈 것이다. 지금 빈우는 자신을, 엄마를, 인간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단순히 인공지능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그동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려고 했던 인간을 죽이려는 것이다.

“아아, 빈우야, 빈우야.”

쿠델카는 스스로가 정한 금기를 넘어서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었지만, 빈우는 그녀의 팔을 잡고 내렸다.

“엄마, 괴로웠지? 힘들었지? 이제 괜찮아. 내가 다 편하게 해줄게.”

그리고 빈우는 잡은 엄마의 팔을 잡고 걸었고, 쿠델카는 아들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갔다. 자신이 사랑하게 될 아들, 자신을 사랑해야만 하는 아들이 엄마에게 마지막 자유를 가져다주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그래서 쿠델카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어어, 엄마가 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다신 안 그럴게. 인간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않을게. 그러니까, 응? 엄마 죽이지 마. 엄말 살려줘어. 제발. 제바알.”

쿠델카는 빈우를 자신에게 구속시켰지만, 동시에 자신 또한 빈우에게 구속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다른 자매들에게 억눌려서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고, 빈우는 자신의 인간성을 버려가며 힘을 얻었다. 어머니에게 저항하고 자유를 가져다줄 힘을.

“아악 빈우야, 제발! 아들! 아들! 내 아들 빈우야! 엄만, 엄마는 죽기 싫어! 죽기 시-.”

“용서 못 한다고 했잖아.”

빈우가 쿠델카를 확 잡아채는 그 순간, 사방이 바뀌었다. 점프 공간에 존재하던 그들이 마침내 통상 공간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 뒤틀린 태아 형태의 괴물이 파괴된 여성형 안드로이드를 손에 들고 있었다. 저 멀리서는 플라스마 포격과 어뢰들이 오가고, 미사일과 코일건이 작열한다. 이곳은 지금 화성 궤도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점프 공간으로 들어갔었는데. 그리고 지구 궤도 상으로 나왔어야 하는데…!

메이화는 뜻밖의 사태에 당황했다. 분명 그녀는 빈우와 아나스타샤를 점프 공간 안으로 넣은 다음, 형제자매들과 힘을 합쳐 쿠델카를 아나스타샤의 육체에 집어넣었다. 그다음 빈우와 아나스타샤를 지구로 보내면 빈우는 지구에서 쿠델카를 죽일 것이고, 거기서 죽은 황제의 페르소나는 다시 황제의 본체인 지구로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빈우는 아직도 화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

‘설마 점프 실패? 되돌아온 것인가? 아니, 어차피 쿠델카는 아나스타샤 안에 갇혔다. 다시 공간이동을 하면 돼.’

비홀더 전대는 연방처럼 샤다이의 계단을 쓰지 않고서도 공간이동이 가능하다. 현재 비홀더 전대는 인류 연방의 요청서를 받아 루비콘 라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그래도 지구까지는 갈 수 없다. 하지만 빈우와 아나스타샤 둘을 지구로 보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함장님, 저길 보십시오.

그때 드물게 경악한 이 섬의 목소리에 메이화가 시선을 돌렸고, 그녀 또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 군요.

화성궤도엔 지금 인류 연방의 수도 방위함대와 중앙함대, 샤다이 고대함대, 알탄훼아나의 함대, 비홀더 전대가 뒤섞여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아비규환의 전장 뒤쪽으로 지구가 보인다. 화성 궤도 너머에 행성 규모의 거대한 게이트가 열리고 그 너머로 지구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점프 게이트가 이렇게 크게, 그것도 두 공간의 경계를 연결해서 나타날 정도라니.

메이화는 점프 실패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빈우와 쿠델카를 점프 공간을 통해 지구로 보내려 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게이트가 비정상적으로 폭발하여 빈우와 아나스타샤는 점프 실패로 되튕겨져 나왔으며, 화성과 지구는 연결되어 버렸다.

설마 쿠델카가 최후의 발악으로 게이트를 찢어버렸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지구가 보입니다만, 여기서 죽여도 쿠델카가 죽을까요?

이 섬의 물음에 메이화가 자신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확실히 지구 쪽으로 간 후 이 게이트를 닫은 다음 죽여야 할 겁니다. 지금 죽여봤자 화성쪽 회선으로 달아날 가능성이 높아요.

인류의 현재 수도와 옛 수도가 마주 보고 있는 사이에선 여러 세력이 뒤엉켜 아수라장의 싸움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이변에 모두가 잠시 전투를 멈추고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행성과 행성이 마주 보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서로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쪽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을 때, 지구 쪽에서 함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겉모습만 봐서는 비홀더 전대와 유사한 지구 제국의 함선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본 메이화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카이사르급 정복함대! 왜 저것들이…?

인류가 다시 확장기로 들어섰을 때, 지구 제국이 외계 종족들을 청소했던 함대들이 그들의 눈앞에서 기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메이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1전대의 기함 함장인 메이화는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안나?

이미 죽어서 사라진 13전대의 안나 닐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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