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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99화 (299/301)

299화

“내 살다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네.”

위르겐의 감상은 팀원들의 감상이기도 했다. 인류와 샤다이의 함대가 연합해서 대형을 짜고, 또 이 연합 함대가 가는 길을 비홀더 전대가 열어주는 지금의 광경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르겐, 저거 니네 뱅가드 특기 아니니?”

모니카도 나름 특수부대원들 어깨너머로 별 희한한 것을 구경했다지만, 그래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서 이런 일의 전문가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밖에선 1전대의 그리폰급 순양함들이 한 체급 위의 카이사르급 전함에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서로 함 내부로 장갑보병들을 투입함과 동시에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또 바깥에서 포격만 하던 다른 비홀더 전대들 역시 속속 거리를 좁혀 들어와 카이사르급에 백병전을 걸었다. 일반적으론 일어나지 않는, 이곳 계단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 해괴한 전투다.

“에이, 아니요. 우리가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막 나가진 않지요.”

하지만 그 전문가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했다. 아무리 뱅가드의 기함 원더풀 뷰티풀이 충각으로 들이받고 장갑보병들을 밀어 넣는 짓을 종종 한다지만, 저렇게 함대 단위로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목숨으로 길을 여는군.”

아룹의 말대로 비홀더 전대들은 정복함대에 달려들어 함체로 밀어붙이며 계단으로 갈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무적 같아 보이던 비홀더 전대들이었지만 지금은 화력과 체급 차이에 터져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죽을 각오로 길을 만들고 있었다.

“어어? 저거저거 작정하고 밀치고 들어오는데에엣?”

약간 겁먹은 듯한 모니카의 말이지만 그렇다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홀더 전대들이 모두 달려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은 카이사르급들은 많아서 이쪽으로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방에 제국의 순양함을 달고서도 억지로 밀고 들어오려는 저 거대한 전함들의 모습에 겁을 먹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스치면 뒤지겠네.”

파트리샤는 허탈한 듯 한숨을 쉬며 장비를 최종점검했다. 비홀더 전대들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어도 이쪽을 향하는 공격은 꽤 된다. 위력도 무시무시해서 아무리 연방 중앙함대라 해도 맞는 순간 소멸하고, 샤다이 고대 함대들이라야 한두 발 버티는 수준이다.

“우리를 위해 총알받이를 하는 거다.”

아룹의 말에 팀원들이 서로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비홀더 전대와 연방 중앙함대, 샤다이들은 블랙 랜스를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다. 그만큼 히토미가 알려준 진실과 작전은 충격적이었다. 허나 상원의원의 두뇌칩으로부터 직접 들어온 정보니 그 진위여부에 대해선 왈가왈부할 게 못 된다.

“지구가 계단을 올라간다라….”

그 사실을 직접 전했던 히토미 본인이 다시금 자신이 알게 된 진실을 되새겼다. 얼핏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비홀더 전대와 샤다이들이 목숨을 걸어가며 싸우는 것을 보면 믿을 수밖에 없다. 황제의 멸망은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지고, 이는 현재 우주의 파워 밸런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연방과 제국을 떠나 인류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샤다이 쪽은 조금 복잡한 모양이지만서도….”

충격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을 설득했던 히토미는 이번 작전에 가담한 샤다이들의 이유는 꽤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블랙 랜스 팀과 순전히 동료애로, 어떤 이는 가증스러운 선조를 없애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또 어떤 이는 단순히 탈출하기 위해서. 어찌 되었건 샤다이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계단을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계단을 통과합니다!

오르 함장의 말이 들려온다. 거세진 정복함대의 포격에 그리폰급 순양함들이 터져나가고, 밀고 들어오는 카이사르급 전함은 비홀더의 반격에 허리가 잘려 나간다. 발악하는 연방의 전함이 사라지고, 응사하는 샤다이의 리퍼급들도 산산조각이 난다. 그 사이를 블랙 랜스가 날아가고 있다. 빗발치는 포격 사이를 롱훅 프로젝트로 개조된 구축함이 신들린 조함으로 비켜나가고 있었다.

-중앙함대에서 승조원들이 탈출하고 있습니다.

오르 함장은 무너져 가는 블랙 랜스를 필사적으로 관리하면서 상황을 보고했다. 이제 계단을 넘어가면 귀환하지 못한다. 저 지옥 같은 격전지를 지나가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다. 그래서 지구로 가기 직전, 중앙 함대의 배들에선 최소의 인원들을 남기고는 탈출포드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스쳐 지나가는 포격에 함체가 휘청이자 오르 함장의 정신도 어지러워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종석에 앉은 우지를 격려했다. 지금 함의 조율은 뇌가 연결된 오르가 하고 있지만, 조타는 우지가 하고 있었다. 그는 부상이 채 낫지 않은 헐떡이는 몸으로 조종간을 잡았고, 그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해서 블랙 랜스를 지켰다.

-지구입니다.

마침내 돌격대가 계단을 통과했다. 오르 함장의 말에 대원들은 시선을 돌려 지구를 보았다. 인류의 고향. 지금까지 가는 것이 금지된 행성. 그곳을 자료가 아닌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상보다 밋밋한데요?”

그라디우스로 올라간 위르겐이 양성자포를 달면서 말했다.

“사람도 없고, 전원도 안 들어오니까 을씨년스럽지.”

파트리샤가 중성미자 검을 등에 달며 대답했다.

“궤도 병기는 아주 잘 작동하는군.”

아룹은 그렇게 말한 다음 빈우를 돌아보았다. 이 아기 형태의 괴물은 아나스타샤를 손에 들고 있다가 아룹의 시선을 느끼곤 화들짝 놀라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 모습에 아룹으로 하여금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탈환한 개척지에서 구호물자를 나눠 줄 때였다. 며칠 굶은 듯 구호 식량을 허겁지겁 먹던 아이와 아룹은 눈이 마주쳤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았었다. 그러자 밥을 먹던 아이는 겁에 질려 배급받은 식량을 지키려는 듯 허둥지둥 숨겼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행동. 지금의 빈우가 그랬다. 괴물 형태의 아기는 안드로이드를 마치 자신의 생명줄인 양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아뇨, 해치지 않습니다. 저희가 지켜드리죠.”

“아, 아-룹.”

빈우가 더듬더듬 말했다. 한때나마 자신들을 이끌었고, 연방의 최정예 대원이었던 빈우가 왜 이런 형태가 되었는지는 히토미로부터 들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이번 작전의 핵심이란 것도 들었다.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아룹에게 함내 통신이 들려왔다.

-샤다이들이 떠나기 시작합니다.

전투정보실에서 히토미의 말이 들려온다. 떠나라고 해도 한사코 고집 피우던 상원의원께선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다.

“씨바랄, 갈만한 놈은 다 가네.”

파트리샤가 퉁명스레 말했다. 체메트디오프 파벌의 고대 샤다이 함대들은 계단을 통과하자마자 자신들 특유의 공간이동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진 비홀더 전대의 중력닻에 잡혀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운 것이고, 그 아비규환을 넘어 속박이 풀리자 바로 도망치는 것이다.

-검은 창! 어서 가!

그러나 알탄훼아나는 끝까지 남아서 블랙 랜스를 지켰다. 하지만 동료들을 억지로 붙잡지는 않았는지 몇몇 작은 함선들은 도망쳤다. 이제 블랙 랜스 주변에는 연방의 중앙함대와 그녀의 함대들 뿐이다.

-우린 이 우주에서 살다가 이 우주에서 죽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는 아니야!

채 끊기지 않은 통신 너머로 호민관의 호령이 들려온다. 그녀는 지금 죽음을 입에 담았지만, 이번 작전에 참가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종족의 생존 때문이다. 알탄훼아나는 현재 이 우주의 패권이 인류에게 넘어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인류를 돕는 것이다. 머나먼 과거 샤다이의 선조들과 다투었다는 외우주의 종족들. 그들이 다시 이쪽으로 들어온다면 현재의 세력으론 막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전황에 어울리는 복잡한 파워 게임. 하지만 아룹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바로 옆에 있는 VIP였다.

“왜 하필 블랙 랜스를 골랐습니까.”

아룹이 옆에 서자 VIP가 대답했다.

“같·같이, 죽을 수-있는, 최.고.들.”

그 말에 팀원들이 소리죽여 웃었다.

“영광이군요. 팀장, 아니 소령님께 그런 평가를 받다니 말입니다.”

아룹의 말대로 이런 작전에 선발되었다는 것은 이들에게 최고의 영광이다. 인류를 위해 지원해서 갈고닦았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때인 것이다. 아룹은 빈우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꽤 위험할 것이라 생각했던 첫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소평가였다는 것이 밝혀졌었고, 지금은 그게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같이 죽는다…. 우리야 그렇다 쳐도, 대위님은요?”

아룹이 힐긋 돌아보자, 모니카가 발끈한다.

“예에? 제가 최고가 아니라구요오?”

“그게 아니라, 죽는 것 말입니다.”

멋쩍게 웃는 아룹을 보며 모니카가 토라졌다.

“저도 팀원이에요, 그리고 제가 맡은 일이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빠져요. 자! 완료! 의원님!저 안 늦었어요!”

그러면서도 그녀의 손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히토미의 의견에 따라 준비한 비장의 수가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실제로 모니카가 없었으면 이번 수는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애초에 시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멋져, 우리 모니카가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나 반하겠어.”

뒤에서 파트리샤가 다가와 모니카의 머리를 대견하다는 듯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들이 탄 블랙 랜스 주변으로 카이사르급의 포격이 날아온다. 이들이 지나온 뒤쪽, 계단 너머가 아니라 앞으로 향하는 지구로부터다. 지구에서 날아오른 카이사르급들이 방향을 돌려 계단을 넘어 들어온 돌격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앙함대와 샤다이들이 반격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샤다이쪽이 방금 탈출하면서 수가 상당히 줄어 더욱 위태위태하다.

“워오, 대위님. 뭔지 모르지만 하시던 게 다 되었다면서요? 네? 일단 해보세요.”

중앙함대의 전함마저 증발하는 광경에 배짱 두둑한 위르겐마저 쫄아서 모니카를 재촉했다.

“나는 다 됐어. 하지만 이건 명령이 아니야. 제안이라고. 이 다음은 그들이 수락하냐 마냐의 문제지. 의원님!”

-수고했어요. 모니카 대위.

조금 가라앉은 듯한 히토미의 말이 들려온다. 말만으로도 그녀가 무거운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돌격대 근처에 점프 게이트가 생기더니 42전단이 점프해서 들어왔다.

“우왓! 깜짝이야! 이거 뭐야!”

아무런 예고 없이 점프해서 나타난 42전단을 보고서 모니카의 머리를 쓰다듬던 파트리샤가 경악했다.

“아니,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

뭐라고 말을 꺼내던 위르겐의 눈앞에 그의 제2의 고향이랄 수 있는 뱅가드의 기함 원더풀 뷰티풀이 나타났고, 나오자마자 그 작은 몸체를 비틀어 카이사르급에 충돌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야! 니네들 특기 맞잖아!”

이번 비장의 수를 준비한 모니카가 소리를 질렀다. 히토미의 작전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지구와 화성을 연결한 계단을 넘어간 다음, 주변에 있던 연방 중앙함대의 점프 엔진을 연동해 게이트를 열었고, 42전단은 히토미의 연락을 받고 미리 연동게이트를 준비하고 있다가 지금 이 순간 지구로 들어온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총알받이를 하기 위해서다. 블랙 랜스가 지구에 닿을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세상에, 무인함이 아닙니다! 저 조함은 인공지능의 것이 아니에요.

함장인 오르는 42전단의 움직임을 보고는 저것이 인간의 움직임인 것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들은 돌아갈 수 없는 사지에 기꺼이 발을 들인 것이다.

-블랙 랜스! 길은 우리가 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구까지 가라!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외침이 들려온다. 42전단의 투입 덕에 블랙 랜스가 날아갈 수 있는 시간은 조금이나마 더 늘어났다.

-저들을 무의미하게 희생시킬 순 없습니다!

히토미의 말과 함께 블랙 랜스가 구축함 같지 않은 기동으로 나아갔다. 카이사르급들이 공격하고, 42전단이 막고, 블랙 랜스는 피한다. 인간이 죽고, 샤다이가 죽는다. 연방 최정예인 42전단마저도 압도적인 격차 앞에선 필사적인 회피 대형과 결사적인 반격 대형으로 시간 벌이만 할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다 되면 죽어간다.

-그라디우스! 뒷일을 부탁합니다!

오르 함장의 외침과 함께 마침내 블랙 랜스가 지구의 궤도 병기를 지나쳤다. 그러나 이 구축함도 만신창이다.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은 상태로 억지로 수리해 무리하게 기동하는 상태다. 그리고 그 블랙 랜스에서 지상팀과 빈우를 태운 그라디우스가 발진했다. 그다음 엉망이 된 구축함은 함수를 돌려 따라오는 카이사르급 전함들에 맞섰다.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최후의 저항이다.

-의원님.

나직한 아룹의 부름에 히토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각오를 다질 뿐이다.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지구로 날아가던 그라디우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썅! 중력닻이다.

파트리샤의 말대로 주변에서 무언가가 그라디우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일부러 최후의 최후까지 모습을 감추었고, 발진하는 순간에는 어뢰와 미사일들과 함께 출격해 위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력장에 잡힌 것이다. 허나 카이사르급은 아니고, 궤도병기도 아니다.

-어설트급 장갑복!

혀를 차는 아룹의 목소리. 그리고 휘청거리는 지구제국의 장갑복들이 그라디우스를 노리고 날아온다. 놈들은 궤도 병기 주변을 비행하고 있다가 그중 한 놈이 그라디우스를 발견하자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외 전투다! 모두 나가!

아룹의 말에 지상팀원들이 그라디우스 바깥으로 나갔다. 모니카의 부머가 중력장으로 지상팀 장갑복을 그라디우스와 연결하고, 지상팀은 다가오는 제국 장갑복을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비홀더 1전대가 준 무기는 제국의 장갑복을 상대로 효과가 좋았고, 저쪽엔 탑승자가 없는 빈 장갑복이라 그나마 싸움이 성립되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조금만!

모니카는 부머의 중력장을 사용해 상대의 중력장을 상쇄하려 했다. 그라디우스가 조금씩 움찔거릴 때 부머를 노리고 제국 장갑복들이 달려들었다. 위르겐의 양성자포가 발사되어 놈의 가슴에 구멍을 냈고, 뒤따라오던 놈은 파트리샤가 반으로 갈라 먼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세 번째 놈이 쇄도해서 검을 휘둘렀다.

-악!

모니카의 짧은 비명에 팀원들의 심장이 철렁한다. 부머가 뒤로 뛰었지만 발이 걸린 것이다. 부머의 허벅지와 그 안에 든 모니카의 발목이 잘려 나가고 거기서부터 붕괴가 시작되었다. 다시 검을 휘두르려는 놈에게 아룹의 사격이 날아들어 쓰러트렸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룹도 자신에게 달려든 장갑복을 상대하느라 더 이상 모니카를 엄호할 여력이 없었다. 위르겐과 파트리샤도 마찬가지였다.

-아앗, 으아아.

모니카가 진동나이프를 꺼내 필사적으로 자신의 발을 잘라낸다. 자칫 머뭇거리다간 붕괴가 퍼지면 전신이 흩어지는 것이다. 그때 옆에서 빈우의 손이 날아들었다. 아기의 손은 부머의 다리를 잡더니 그대로 짓이겨버렸다.

-으윽!

부머 안에서 모니카의 짧은 신음 소리가 터졌다. 붕괴는 막았지만 고통은 고통인 것이다. 빈우는 이제야 정신을 조금 차린 듯 제국장갑복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다. 장갑복들도 빈우를 노리고 달려들었고, 궤도병기와 카이사르급의 움직임도 그라디우스를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끈질긴 새끼들이!

위르겐은 오른손으로 양성자포를 쏘고, 왼손으로 중성미자 검을 휘둘렀다. 카이사르급에서 발사된 포격을 빈우가 막는다. 아룹이 장갑복의 목에 칼을 박아 넣었고, 놈은 붕괴되기 전에 아룹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놈이 칼로 그라인더의 옆구리를 찔렀다.

-팀장님!

파트리샤가 찌른 놈을 날려버렸고, 아룹은 상처 주변에 수류탄을 쑤셔 넣어 환부를 아예 날려버렸다.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은 한순간, 다시 일어나 파트리샤 주변에 달려드는 적에게 사격을 가했다. 제국장갑복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놈들이 쏘는 포격은 빈우가 막는다. 그러나 한 발씩 새어나가 아기의 몸에 명중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두 발이 되고, 세 발이 된다. 빈우가 휘청이자 그만큼 제국장갑복들이 더 달려들기 시작한다.

-됐-어, 여기-까지야.

마침 빈우의 정신파가 팀원들의 머릿속에 띄엄띄엄 들어온다. 무엇이 여기까지라는 걸까. 그러나 포기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다.

-씨바랄! 쉬바가 올라온다!

파티르샤의 비명에 팀원들이 곁눈질로 시선을 돌리자, 칠흑의 지구에서 나노머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걸 본 빈우가 아나스타샤를 안고 몸을 던졌다. 이어서 아기와 안드로이드의 형체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순간이동을 해서 저 아래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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