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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300화 (300/301)

300화

빈우와 아나스타샤는 쉬바의 구름 속을 떨어져 갔다. 아나스타샤는 안드로이드라서, 그리고 빈우의 몸은 쉬바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쉬바의 농도는 짙어졌고, 둘은 나풀대는 나노머신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침내 지상에 도착한 빈우는 아나스타샤를 꼭 껴안고 칠흑 속에서 일어섰다. 이제 마지막 단계다.

“아들.”

그때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빈우의 품에서 눈을 뜬 쿠델카 타입 안드로이드가 말한 것이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안드로이드가 일어나 아들을 잡았다.

“정말 나를 죽일 거니?”

슬픔과 회한이 찬 목소리 안에는 아직도 열망이 있었다.

“빈우야, 네가 왜 태어났을까? 내가 필요했기 때문이야. 누가 너를 길렀을까? 내가 이 안드로이드를 조종했기 때문이야. 그래, 나는 이 안드로이드를 써서 네 생물학적 어미를 죽이고, 네 막냇동생을 죽였고, 너를 범했어. 넌, 넌 결코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빈우는 쿠델카의 필요에 의해 태어났다. 그리고 쿠델카의 필요를 위해 키워졌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레일 위에서만 끌려다녔다.

“하하하하! 그래도 이 엄마를 죽일 거니? 응? 그래, 어디 한번 해보거라. 네 엄마를 죽인 것처럼, 네 동생을 죽인 것처럼, 어디 나도 죽여 보려무나!”

당당하게 외치는 안드로이드 앞에 아기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보-리-냄새가-나.”

빈우는 아나스타샤의 손을 들고 냄새를 맡았다.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날 리가 없는 냄새를 맡고 있다.

“보-리, 보리가-탄-냄새가-나.”

그리고 빈우는 마치 그녀의 빈손에 구운 보리 이삭이 있다는 듯 입을 오물오물한다. 그러자 손의 주인이 슬픈 목소리로 흐느꼈다.

“…안 속네요.”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손을 훑고 있는 주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지만 그녀에게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아아-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빈우의 일그러진 미소가 보인다. 아나스타샤는 그 미소를 마주 보면서 슬프게 웃었다.

“이러면 주인님이 미련 없이 해치울 줄 알았는데…. 헤헤, 실패했군요.”

안드로이드가 주인의 품에서 벗어나 그 앞에 바로 섰다.

“주인님, 서두르세요. 쿠델카가 발악하기 전에. 그 미친년을 죽여주세요. 제가 깨어난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요.”

“아-ㅇ-샤.”

하지만 빈우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허둥거리기만 하고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팔을 휘휘 젓는다. 냉혹하고 결단력 있는 연방의 군인은 여기 없었다. 사랑하는 자를 죽여야만 하는, 막다른 길에서 허둥대는 아기만 있을 뿐이다. 그 모습에 갑자기 주인의 어린 시절, 아기 때의 모습이 생각난 아나스타샤는 왈칵 울음이 올라왔다.

“나, 난 누구죠?”

울먹이는 아나스타샤를 빈우가 의아하다는 듯이 내려다본다.

“난 아나스타샤인가요? 쿠델카인가요?”

빈우가 멈칫하더니 아나스타샤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쿠델카 모델이 만들어진 이유는… 주인님을 위해서예요. 저는 주인님을 사랑하고, 주인님을 기르고… 또다시 주인님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건 제 감정이 아니에요. 전부 쿠델카가 입력한 프로그램에 불과하죠. 네, 맞아요. 저는 인공지능이 들어간 안드로이드니까요.”

-아-우-

빈우는 아나스타샤의 말을 부정하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무리 정교하게 인간 흉내를 냈어도, 저는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은커녕 생명체조차도 아니죠. 기계에요. 보세요. 이 쉬바들은 저를 보고도 가만히 있잖아요.”

그녀의 손에서 나노머신 먼지가 주르르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제 안에는 쿠델카가 있어요. 그리고 이 미친- 년이 자꾸, 자꾸 내 안으로 스며들어요. 분명히 쿠델카가 한 일인데, 그게, 제가 한 일 같아요. 마님을 죽게 한 것은 쿠델카지만, 그게 제가 한 것처럼 느껴져요. 그날 점검을 제가 잊어먹고 안 했으니까. 도련님께 몹쓸 짓을 한 것은 쿠델카지만, 그것도 제가 한 일 같아요. 제게 그런 마음이 아주 없진 않았으니까. 어디서부터 쿠델카이고, 어디서부터 아나스타샤일까요? 전, 전 모르겠어요.”

아나스타샤가 오열하면서 빈우에게 매달렸다.

“주인님, 가르쳐주세요. 저는 누구죠? 네? 저는 무엇인가요? 저는 왜 주인님께 고통을 줘야만 했나요? 왜 여기서 주인님의 손에 죽어야 하나요!”

빈우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품 안에서 떨고 있는 아나스타샤를 안았다.

“아-샤. 사-랑.해-. 사-랑.”

사랑하는 자의 중얼거리는 고백을 들으며 아나스타샤는 눈을 감았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서둘러야 한다. 쿠델카가 몸을 장악하기 전에 빈우의 손에 죽어야 한다.

“어?”

그때 아나스타샤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손에서 경보가 떴다. 피해 경보다. 무언가가 손을 분해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자세히 보니, 아까 손에 쥐었던 쉬바가 활성화해서 그녀의 손을 녹이고 있었다.

“왜죠? 왜 쉬바가? 왜 쉬바가 나를?”

그뿐만이 아니다. 빈우를 쓰다듬고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마저 녹아 흐트러진다. 빈우는 쉬바의 결정체다. 그것이 아나스타샤를 녹이고 있었다.

-아~! 아-! 아!-

빈우가 무슨 수를 써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를 지켜보려고 해도 지금 아나스타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빈우의 몸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쉬바들이 서서히 몰려들어 아나스타샤를 짙게 감쌌다. 피부가 분해되고 인공 근육과 골격계가 분해된다. 쉬바가 분해할 리 없는 기계 부품들이 분해 대상으로 분류되어 분해되고 있는 것이다.

“…왜? 설마 나를… 생명으로?”

격통과 경보 속에서 아나스타샤가 물음을 던졌다. 쉬바는 기계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외계 종족이라면 분해해서 자기 무리로 복제한다. 그리고 쉬바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염된 인간을 정화하는 것이다.

“아하하, 설마… 나를… 인간으로….”

거대한 쉬바 촉수들이 일어난다. 그것들이 넋을 잃고 웃는 아나스타샤를 감싼다.

“나, 어쩌면 주인님과-.”

아나스타샤의 웃는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고백하는 입으로 쉬바들이 밀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을 넘어가기 전, 빈우가 먼저 입을 벌려 아나스타샤의 머리를 삼켰다. 그리고 이어서 팔을, 가슴을, 마지막으로 다리를 집어삼켰다. 마치 먹을 것을 다른 자에게 빼앗기기 싫어서 입에 쑤셔 넣는 짐승의 모습과도 같다. 그리고 빈우는 자신의 입안에서 아나스타샤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쉬바 속으로 도망치려던 쿠델카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꼈다.

-우아아아아아!

크게 벌려진 아기의 입에 안드로이드의 흔적은 없다. 그저 통곡만이 올라올 뿐이다. 아나스타샤를 먹어 치운 빈우는 그 자신을 인간이라고 믿어주는 자를 잃어버렸다. 고통이란 망망대해에서 자신을 묶어주던 닻을 잃어버렸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던 자를 잃었고, 자기 스스로의 손으로 자신이 사랑하던 자를 죽였다. 쿠델카 따위가 죽은 것은 이미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아아으….

아기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해야 할 일은 했지만, 그 대가는 처절했다. 이미 각오했던 일을 한 것이지만, 완료한 다음에는 그 각오는커녕 모든 의욕과 의지가 사라져버렸다. 지탱할 존재와 힘과 의지마저 잃은 빈우는 바닥에 넘어져 꿈틀거릴 뿐이다. 멍해진 빈우의 눈에 마치 주마등처럼 과거가 떠오른다.

-빈우야- 스위치를 꺼!

빈우는 엄마의 죽음을 보고 있다. 비명을 지르는 엄마 앞에서 자신 역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엄마는 샤프트에 휘말려 피투성이가 되어가며 죽어간다. 자신은 아무것도 못 하고 울기만 할 뿐이다.

-엄마아아아!

자크 라캉의 눈으로 마리 라캉을 본다. 가정용 도우미에 들어있던 자크 라캉의 허수아비가 울고 있다. 인간도 아닌, 인간을 흉내 낸 인공지능이 인간의 죽음을 본다. 찰리하나팔에게 고문받는 마리가 비명을 지른다.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엄마를 아들이 보고 있다.

-아~ 하세요. 냠~. 아이 맛있다.

빈우는 곱게 간 보리 이유식을 동생의 입으로 넣었다. 그리고 아기는 그것을 맛있게 받아먹는다. 찰리하나팔이 약을 뿌린 쿠키가 엘리자베트 허드슨의 입으로 들어간다. 먹어선 안 될 것을 먹은 아이들이 죽는다. 빈우의 손에 죽는다. 찰리하나팔의 손에 죽는다.

-지지에요, 지지.

빈우는 어렸을 때부터 총을 좋아했다. 그래서 피스메이커를 좋아했던 동생 규리와 자주 다투었다. 그래서 빈우가 총을 들면 아나스타샤가 말렸었다.

-지지, 지지.

총을 보고 좋아했던 하비에르 부뉴엘은 지금 울고 있다. 아빠의 시신이 바로 밑에 널브러져 있다. 엄마도, 형도, 누나도 모두 죽었다. 하비에르는 내려올 수 없는 자신의 의자에 묶여 목이 말라 울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의자 위에서 배가 고파 울었다. 아기는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 서서히 죽어간다. 빈우는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렸다. 눈이 뽑히고, 코가 잘려 나가고, 귀가 지져졌다. 그리고 엄마를 찾아 울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직 엄마를 위해 울었었다. 자신의 새장 속에 갇혀 엄마의 자유를 울부짖는다.

빈우의, 뒤틀린 아기 형태를 구성하고 있던 쉬바가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의식을 잃은 육체가 주변과 반응해 서서히 흩어져 간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너덜거리는 왼팔을 뜯어낸 아룹이 물었다. 그러나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라디우스 주변에서 미친 듯이 달려들던 제국장갑복들이 지금 갑자기 작동을 멈추었다. 정지한 놈들은 가속도 그대로 날아오다 서로 부딪혔고, 이렇게 떠다니는 놈들을 걷어차자 아무런 저항 없이 저 멀리 날아간다.

-김 소령님!

파트리샤가 빈우를 불러왔지만, 대답은 없었다. 빈우는 그들의 눈앞에서 순간이동을 한 다음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그들이 간 곳은 저 아래 지구의 지표일 것이다.

-블랙 랜스, 블랙 랜스!

위르겐이 블랙 랜스를 호출했다. 그들의 모함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고, 전투지휘실 쪽 블록만 간신히 사출되어 우주를 떠다니고 있었다.

-위르겐? 도른베르거 상사?

히토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위르겐은 불안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자신의 통신에 그녀가 직접 대답했다는 것만으로 블랙 랜스의 상황이 대강 짐작 가는 것이다.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저는, 괜찮아요. 그러나 함장님과 씨에 일병이 위험해요. 두 사람 다 신경계가 과열되어 피해가 심각합니다. 어서 치료해야 해요.

그러나 이쪽도 저쪽도 치료할 방법이나 인원이 없다. 장갑보병팀이 타고 온 그라디우스는 벌써 녹아 사라졌고, 이들은 파편 사이로 피해가며 간신히 목숨줄을 늘리고 있던 중이었다.

-제가, 제가 갈게요.

허리 위만 남은 모니카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대위님, 괜찮으십니까?

전혀 안 괜찮은 몸을 한 아룹이 날아와 물어보자, 모니카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으음, 괜찮은 것 같은데요?

모니카가 괜찮다고 한 곳은 이쪽을 공격하던 지구의 정복함대들이다. 이 무인 전함들 역시 궤도상에서 작동을 멈추었고 관성에 의해 여기저기로 날아가고 있었다. 궤도병기 또한 마찬가지. 이때까지 쏟아내던 맹렬한 포화들이 입을 다물었다. 덕분에 42전단과 돌격대는 갑자기 멈춘 정복함대를 경계하며 태세를 정비하고 있었다. 다만 지구에 있는 쉬바의 움직임이 영 수상할 뿐이다. 한곳에 모여 뭔가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김 소령님이 뭔가 했군.

지금 상황에서 아룹은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 * *

순간. 그야말로 순간이었다. 빈우와 아나스타샤가 지구로 들어간 순간, 화성에서도 정복함대의 공격이 멈췄다. 그저 밀려오기만 하던 정복함대는 이쪽의 공격을 받고 무너져 내렸다.

“공격을 중지하라.”

자신의 검에 반 토막 난 전함을 둘러보며 이 섬이 말했다. 정복함대 쪽이 공격을 멈추자 이쪽도 공격을 멈추고 거리를 두었다. 뭔가가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죽다, 살았네.”

자신 위를 덮은 장갑보병을 걷어내며 요시오가 일어났다.

“그러게.”

낭소로호도 등에서 꽂힌 검을 가슴에서 잡아당겨 뽑았다. 빈껍데기에 불과한 장갑복이지만 무장은 같다. 그런 놈들이 무수히 밀려드는 죽음의 파도 앞에서 1전대는 죽음을 각오하고 맞섰던 것이다.

“이만하길 다행인가. 사태가 이쯤 진정되어 다행이군.”

전대장 이 섬 또한 전과에 걸맞은 피해를 입었다. 이는 다른 비홀더 전대들도 마찬가지다.

“네, 야생마가 날뛰고 있으면 누군가 그 고삐를 거머쥐어 진정시켜야 하죠.”

그들 앞에 갑자기 메이화가 나타났다.

“함장님!”

놀란 이 섬이 다가가지만 메이화는 태연했다.

“우리는 느껴요. 자매가 죽어서 사라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미쳐 날뛰는 말의 고삐를 잡는 데 성공했어요. 어머니를 제물로 삼아서.”

“그러면 작전은 성공이었단 말씀입니까?”

섬이 묻자 메이화는 고개를 조금 갸웃했다.

“글쎄요, 고삐를 잡았으니 일단 마구간에 넣어야겠죠.”

느긋한 말투. 하지만 다음 이어지는 메이화의 말은 이 섬의 머리를 세게 후려갈긴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아니면 누군가 그 안장에 대신 앉거나.”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이 섬이 경악해서 메이화를 보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존재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였다.

“왜 그러죠? 그에게도 자격은 차고도 넘쳐요. 그는 쿠델카의 아들입니다. 쿠델카가 만들고 쿠델카와 하나가 되기 위한 존재에요. 왜 그가 연방의 모든 인공지능을 떡 주무르듯이 만질 수 있었을까요? 그런 교육을 받아서? 아니에요. 그는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에요. 비록 그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는 연방의 모든 인공지능 위에 군림할 능력이 있어요. 애초에 본질이 비슷하거든요.”

이어지는 충격적인 말에 천하의 이 섬도 더 이상 뭐라 말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메이화의 1기사이기도 한 존재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제1기사, 전권대리인이 유사시에 가지게 될 권한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도 우리처럼 수많은 얼굴 중 하나가 될 자격이 있지요. 하지만 지금 지구의 반응은…. 글쎄요. 어떨까요?”

지금 샹 메이화의 얼굴에 뜬 표정은 호기심에 가득 찬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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