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세번째 꿈? (4/148)



〈 4화 〉세번째 꿈?

내가 아리안에 오기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리안 전투 6개월 전, 난 다시 꿈속의 세계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꿈속에서 난 익숙한 광경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몸의 형체는 없고 주변은 하얀 빛으로 둘러싸인 무한히 넓은 공간이었다. 3번째 보는 무책임한 놈의 세계이다.

‘무책임한 놈’, 난 그렇게 그 녀석을 부른다. 자칭 신이라고 하지만, 전혀 신 같지 않다. 정의와는 정반대 방향에서 서식하는 놈이니... 아니 움직이지 못하니 자생한다 라고 해야 할까?

"어이 오랜만이네. 60년 만이냐?"

- 내가 알기로는 석달 전인데?

"네 세상으로는 그렇지만, 내가 보내준 세상에서 60년을 살았잖아."

- 꿈도 나이에 포함 되냐?

"그러니까. 꿈이 아니라고 했잖아. 진짜로 넌 60년 이상 그 세계에서 살았다니까."

- 하아... 너와 말싸움할 기운도 없다. 그럼 왜 난 이 모양이지? 쓸데없는 공부에 치이는 헬조선 고딩에서 못 벗어나는 거지?

"그건 그 세계에서 죽으니까 본래의 세계로 돌아온 거잖아."

- 죽어서? 웃기지마! 두 번째는 그렇다고 해도, 왜 첫 번째 꿈에서는 12년 밖에 못 산 거지? 파르노와 카일이 있어 얼마나 행복했는데, 왜 그 때는 12년 만에 꿈에서 깨어나게 한 거냐고.

"그 때 넌 죽었다고 말했잖아."

- 70이 넘어서도 하루에 10명이 넘는 여자들을 임신시켰던 내가 30대에 죽었다고?

"이유는 나도 몰라. 넌 분명히 죽었고. 난 널 원래 세계로 돌려보낸 거야. 두 번째 세계에서는 그렇게 오래 살 줄 몰랐어."

- 네가 분명히 마왕을 죽이면 끝낸다고 하지 않았어? 첫 번째에서는 내 손으로 마왕을 죽이지 않으니 그렇다고 해도, 두 번째에서는 분명히 내 손으로 마왕을 죽였는데 왜 바로 돌려보내지 않았지?

"널 계속 써먹으려면 네가 강해져야 하고, 강해지려면 경험치가 많아야 하니까. 그 세계에서 네가 경험치 쌓는 것이 쉬워서였지."

- 경험치를 쌓아? 죽을 때까지 여자하고 하는 게 일이었는데 무슨 경험치?

"넌 모르는 모양인데... 넌 내 가호를 받아 한번 할 때 A급 몬스터 1마라 죽인 경험치가 쌓이거든."

- 무슨 미친 소리인지...

"두 번씩이나 고생을 하게 만든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네가 원하는 것을 주기로 했지. 하렘. 미녀들이 넘치는 하렘 말야."

- 물론 그런 걸 많이 하니 즐겁긴 했지만.

"그래서 너에게 내 가호를 내렸지, 그런 일로 경험치를 쌓을 수 있도록.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넌 60년 동안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쌓았어. 지금 네 힘이 신에 필적하니까, 내가 그 세계에 강림해도 그만큼 못할 정도야."

- 네가 내 꿈속에 나타나겠다고? 그런 악몽은 사양이다.

"꿈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지?"

- 그래...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없다. 그런데 왜 또 나타난 거지?

"한번 더 해 줬으면 해서. 마왕 토벌."

- 다시 꿈에서 60년을 보내라고?

"이번엔 그럴 일 없어. 네 능력이면 5년 정도면 마왕을 없앨 수 있으니. 마왕만 없애면 바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줄게."

- 너 같이 무책임한 놈의 말을 어떻게 믿지?

"난 이래뵈도 신이야. 내 말은 반드시 지켜!"

- 무책임한 놈이 신용을 말하다니...

"어째든 넌 지금부터 다른 세계로 가야해. 가서 그 세계의 마왕을 토벌하고 세계를 구해야 해."

- 또다시 그 고생을 하라고? 말도 안 통하는 세계에서 말을 배우는 데만 일이년이 걸리고, 찬 이슬 맞는 노숙에, 가죽 같은 보존식을 먹으며 피냄새를 맡으라는 거야?

"그러니까 고생을 안하도록 경험치를 쌓게 했잖아. 너 정도의 실력이면 5년, 아니 3년 이면 가능할 걸?"

- 방금 말했듯 말 배우는 데만 일이년이야.

"알았어. 그럼 너에게 신의 은총을 주지. 어떤 종류의 사람과도 대화가 가능한 언어 능력의 가호를. 이러면 어떤 세계를 가서도 그 쪽 말을 듣고 말할 수 있어."

- 또 말하지만, 노숙과 보존식, 피냄새가 싫다니까?

"그 정도는 내가 어쩔 수 없어. 네가 알아서 해결해."

- 본성이 나오는 군. 무책임한 놈.

"날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정말 신이 내리는 벌을 받고 싶어?"

- 꿈에서 벌을 받는 건 무섭지 않아.

"너와의 대화는 정말 지친다. 더 이상 시간 낭비 없이 그 쪽 세계로 보낼테니 빨리 마왕을 죽여줘."

- 어차피 그렇게 할 거면서, 말이 많네.

"그럼 잘 가라고."

그렇게 무책임한 놈과의 세 번째 만남이 끝났다.

..................

눈을 뜨니 큰 건물의 내부인 것 같다.

나는 제단으로 보이는 높은 단 위에 홀로 서있고, 내 앞에 많은 사람들이 무릎 꿇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 신께서 드디어 강림하셨군요."
가장 비싸 보이는 흰옷을 입은 늙은이가 말했다.

"우리를 구원하려 신께서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살았습니다."
늙은이의 말에 무릎 꿇은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왜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거지? 앞의 두 번의 꿈에서는 말이 안 통해 일이년은 고생했었는데, 혹시 그 무책임한 놈의 가호 때문인가?

뭐... 꿈이니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만...

쿵!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밖에서 여러번 들려오고, 그 진동으로 우리가 있는 건물도 흔들렸다.

"신이시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십시오. 저 잔인한 마족의 손에서 우리를..."

하아... 또 시작이네. 마왕과의 싸움이. 뭐 그런 꿈이니까 어쩔 수 없지.

"지금 마왕의 졸개들은 어디 있지?"

"지금 우리 성이 함락 직전입니다. 벌써 이 신전 앞까지..."

눈을 들어 건물 끝을 보니 문이 여러 물건들로 막혀져 있고, 수명의 병사들이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밖에서 문을 부수려는지 무거운 물체로 문을 치고 있었고, 그 충격에 건물이 흔들리고 위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난 말 없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제단을 내려오니 신전 안의 사람들이 일어서고, 내가 가는 길을 막지 않으려 옆으로 물러섰다. 모세의 기적이 이런 걸까? 사람들이 물러나 내 바로 앞에 병사들과 문이 보였다.

"비켜!"
말과 함께 내 오른손에 마력을 주입했다. 두 번째 세계에서 배운 마력방출 충격파. 난 이 것을 ‘장풍’이라고 이름 지었다.

병사들이 비켜난 것을 확인하고 마력을 주입하고 태권도 정권찌르기 자세로 문을 향해 내질렀다. 내 손에서 떠난 마력들이 뿜어져 나와 막고 있던 물건들과 함께 문까지 부숴버린다.

사용한 내가 더 놀랐다. 난 문을 부술 생각만 했는데, 문 뒤의 적병들도 날아갔고, 내 앞의 10m 이상 빈공간이 생겼다.

장풍으로 생긴 파편들과 먼지들로 신전 내부가 가득차고, 난 천천히 밖을 향해 걸어갔다.

신전을 나서자,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쟁터의 모습. 죽은 자의 시체와 죽으려 하는 부상자들. 땅에 쓰러진 이들의 대부분은 인간족들이었다. 그들을 죽이며 서 있는 자들의 대부분은 한눈에 보기에도 마족들이었다. 2족 보행이지만 짐승을 닮고 피부색이 회색을 띄는 이들.

난 그들을 보며 하늘을 향해 손을 올려 마력을 주입했다.

이렇게 적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는 적과 아군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모두 죽이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으로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치도록 했다.

어라? 난 반경 10m 정도의 영역만 생각했는데, 범위가 엄청 넓잖아? 50m 사방의 1m 이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내리는 벼락인데... 그러면 안에 있는 사람들도 죽는 거잖아?

이봐 멈추라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미 주입한 마력이 다할 때까지 벼락이 멈추지 않잖아? 에라 모르겠다. 모두 죽고 나면 멈추겠지...

그런 내 생각이 비웃듯 벼락이 치는 범위가 넓어져 갔다. 100m가 아니라 성벽을 넘어서 해자까지 벼락이 내려왔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죽을 텐데? 아니 내 마법이 왜 이리 강한 거지?

하아... 그 무책임한 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두 번째 꿈에서 마지막으로 공격 마법을 사용한 것이 30대였던 것으로 기억났다.
만약 그 놈 말대로 한번에 A급 몬스터 한 마리 죽인 정도의 경험치라면... 난 적어도 다섯자리 이상의 몬스터를 죽인 것이었다. 그 것도 1마리를 상대하려면 10명의 인간이 필요하다는 A급 몬스터들로만...

그럼 내가 가진 힘은 걸어 다니는 재앙 수준이다.

실행한 마력이 다하자 내 주위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성 밖 해자까지 내 마법에 당한 시체들로 가득했다. 인간, 마족, 가축, 들짐승을 가리지 않고 덩치가 있다는 모든 생명들이 날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하지만 벼락 맞고 죽지 않는 인간이 있듯이, 몇몇 큰 몬스터들은 내 벼락을 맞고 살아서 움직였다.

난 내 힘이 얼마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멀리 보이는 5m가 넘는 몬스터를 향해 달렸다.

어라? 내 몸이 왜 이리 빠르지? 30m 이상 떨어진 거리였는데, 내가 한걸음 딛자 바로 눈 앞에 있어?

내가 살짝 그 몬스터를 건드리자 바로 몸이 산산조각 났다.

어라? 내 힘이 이렇게 쎈 거야?

그런 생각으로 난 박살 낸 몬스터의 시체를 밟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아직 죽지 않은 몬스터들이 보였다.

나는 몬스터들을 향해 바람의 칼날을 날리기로 했다. 두 번째 꿈에서는 사정거리가 5m 정도였는데, 지금이라면 20m 이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른손을 들고 왼쪽 어깨 쪽으로 가져 가서 수평으로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내 손에서 만들어진 바람의 칼날이 내 앞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날라갔다,

어라? 이 건 또 뭐지? 10m가 아니라 30m는 넘잖아?

내가 만든 바람의 칼날에 몬스터들이 두동강나는 것도 모자라, 내 눈 앞에 있던 30m 내의 모든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이건, 완전히 세계 파멸의 재앙 수준이었다. 게다가 내가 쓴 마법들은 기초적인 것들, 하루에 열 번 이상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소비 마법 최하의 기초 마법들이었다.

그런 마법들이 이런 위력을 낸다고? 그럼 고위 마법은?

난 그런 생각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점프로 5m 이상 올라 간 후, 발 밑에 바람 발판을 만들어 차고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5m 이상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니, 지금 전투 중인 성과 함께 공격 중인 마족의 군대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아직 성 밖에서 3천 정도의 군사들이 대기 중이었다.

난 그들을 향해 고급 마법을 쓰기로 했다.

고급 마법 중 ‘뜨거운 피’, 고위 몬스터에게 적절한 마법으로 체내의 피의 온도를 높여서 안에서부터 화상을 입히는 마법이다. 보통 이 마법은 접근해서 손을 닿아야지만 실행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는 안전해, 몬스터를 상대하는 절대적인 마법이었다.

지금 내가 사용하려는 것은 범위 마법. 내부 공간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에게 마력을 집어넣어 죽이는 것이었다. 이 마법은 소비 마력이 높아 이론적으로 가능할 뿐 실제로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고, 나도 사용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마족 군대 가운데에 착지해 마력을 모아 사용했다.

마족 군대가 모인 반경이 10m 정도가 말려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라? 이건 또 뭐지?

평원 전체에 있던 마족들이 모두 말려들기에 모자라 성 안에 있던 마족들에게도 영향이 미쳤다. 모두 몸 안의 피가 끓어올라 몸속부터 화상으로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고통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 마법의 악랄함은 인간에게만 피해가 없다는 점 외에, 당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오랫동안 준다는 것이다. 그 마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자 마족들은 고통에 미쳐 날뛰었다. 이 정도의 마법이 가능하다는 것은 내가 신 수준의 마력을 가진 것이었다.

그렇게 사방 50m 이내의 마족들을 몰살시키고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은 마력을 계산해 보았다. 두 번째 꿈에서 이런 고급 마법은 3번이 한계였다. 그러면 아무리 범위와 위력이 강해도 앞으로 1번은 더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으로 마력을 손에 담아 땅을 두드렸다.

‘대지의 이빨’,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먹어치우도록 땅의 위아래가 뒤집어지는 마법이다. 대지의 이빨이 발동되면 땅 위의 모든 생명체들은 땅 속 1m 아래로 묻혀 버린다.

이 것도 적용 범위가 20m 정도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대로 내 주위의 50m 안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땅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고급 마법을 연속해서 쓰자, 마력의 소비로 인해 머리가 아파졌다. 아직 마력은 충분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난 몸을 일으켜 아직 남은 마족들을 향해 목소리 마법을 발동시켰다.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 목숨이 아까우면 이대로 도망쳐라. 뒤 쫓지 않을 것이다.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

이 후 위압의 마법을 발동시키자, 살아남은 마족들에게 공포가 밀려오는 듯 뒷걸음치기 시작했고 등을 돌려 도망치고 있었다.

난 물러가는 마족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전투는 승리였다. 이 전투의 성과는 내 힘을 확인한 것이었다.

....................

이후 살아남은 인간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눈을 돌리자 그들은 두려운 듯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이렇게 친히 강림하셔서 도와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연발하며 신전 안에서 보았던 흰 옷 입은 노인이 다가왔다.

아무리 내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신으로 불리는 것은 조금 어색했다.

"전 신이 아닙니다. 전 그저 신의 부탁으로 여기에 온 겁니다."

노인을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이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무책임한 놈을 신이라 말하니 정말로 화가 났다. 그런 놈을 신으로 말하다니...

"그러시군요. 신께서 보내주신 신의 사자님이시군요. 정말 신께서는 엄청난 분을 보내주셨군요. 한번에 마왕군을 이렇게 쓸어버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노인을 비롯한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가 존경과 경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라도 생리적 욕구는 어쩔 수 없다. 더욱이 전투를 거듭해야 할 나는 언제든지 싸울 수 있도록 체력과 마력을 회복해 두어야 한다.

"우선 전 쉬고 싶네요. 갑작스레 도착해서 마력을 쓰니 피곤합니다. 배도 고프고."

"하하... 알겠습니다. 신의 사자님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노인 주변의 몇 사람들이 바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밖에서 성을 둘러보니 치열했던 전투의 결과가 드러났다. 성 벽의 군데군데가 파괴되어 끊겨져 있고, 해자는 흙과 나무들로 채워진 길이 몇 개나 보였다. 해자 주위에는 화살과 마법으로 죽은 마물과 마족들, 인간들, 수많은 시체들이 쓰러져 있었다. 주위를 진동하는 피냄새에 속에서 역겨움이 밀려왔다.

많은 시간을 꿈속에서 보내며 많은 시체들을 보았지만, 아직까지 피냄새에 적응되지 않는다.

나는 노인의 인도를 받아 성에 들어가며, 땅에 떨어져 있는 주인 잃은 마법지팡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 날 밤, 궁전에서 나를 환영하는 파티가 열렸다. 낮에 본 흰 옷 입은 노인이 이 나라의 왕이라 했다.

"신의 사자님께서 우리 나라를 구원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절 신의 사자로 부르니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러니까... 그 무책임한 놈을 신이라 부르지 말라니까요...

"정말 겸손하신 분이군요."

"저에겐 이름이 있습니다. 전 다쓰 베이더라고 합니다."

‘다쓰 베이더’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 이름이고, 꿈속에서 사용하는 이름이다.

"그렇습니까. 베이더경. 우리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에게 술을 권하는 늙은 왕. 오늘 승리로 기분이 좋은 듯 했다.

갑자기 연회장 안으로 갑옷을 입은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폐하 큰 일 났습니다. 마왕군이 다시."

"마왕군이 쳐들어왔다고? 수는?"

"2만명이 넘습니다."

갑자기 연회장 안이 술렁거리며 공포감이 모두를 끌어안았다. 나를 제외하고.

"쉴 시간도 안주다니. 정말 예의가 없는 놈들이네."

난 혼잣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온 병사를 향해 걸어갔다.
"적들은 어느 방향에서 오고 있지? 안내해!"

내 당당한 목소리에 연회장 안에서는 안도의 한숨과 걱정의 눈빛이 함께 몰려온다.

안내를 받고 성벽에 올라가니 횃불을 들은 마왕군 무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마력으로 조사하니 2만이 아니었다. 횃불을 많이 들어 수가 많아 보이도록 속임수를 썼다. 3천명 정도일 뿐이었다.

그 걸 아는 난 코웃음쳤다. "내일 새벽이 밝기까지 저들을 모두 쫓아내겠습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저들은 2만이..."

"고작해야 저 정도의 수로는 나를 막지 못합니다. 대신 저들을 쫓아내면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난 내 옆으로 달려온 늙은 왕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내 말을 들은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지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렇군요. 과연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우리 나라 밖으로 마족을 쫓아내 주신다면 얼마든지 들어드리지요."

이건 단지 욕망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력 회복의 방법 중에 휴식도 있지만, 내 경우 그런 일로 마력 회복을 노리는 편이 훨씬 빠르다. 즐거움도 함께하니 더 좋은 것이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난 성벽을 박차고 나가 마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고급 마법을 쓰면 대량살상이 가능하지만, 이번엔 접근전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난 적들을 향해 달리며 손에 쥔 지팡이에 마력을 주입했다. 예상대로 지팡이에서 붉은 빛이 칼날 같이 생겨났다. 이 것이 나의 고유 마법인 ‘라이트 세이버’이다. 마법 지팡이를 가지고 마력을 주입하여 마법의 칼날을 만들어 적에게 휘두른다. 이 마법의 칼날에 잘리지 않는 물체는 마법의 방어막 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내 라이트 세이버 마법의 길이가 너무 길어졌다. 두 번째 꿈에서 60cm 정도였는데, 2m가 넘는 빛의 칼날이 생겨났다. 그 것을 적들을 향해 휘두르니, 칼날에 닿은 즉시 마물들이 잘려나갔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빛의 칼날이 쓸고 간 자리에 두동강 난 마물들의 시체만이 남았다.

내 마법의 위력에 놀라면서도, 난 뛰어다니며 지팡이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잠시 숨이 차서 주위를 둘러보니, 두 동강 난 마물들의 시체가 저들의 횃불 아래 보였다. 남은 마물들도 내 압도적인 마법에 겁이 나 다리를 떨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향해 농구공만한 파이어볼이 날아왔다. 난 피할 시간도 없이 왼손바닥으로 막아냈는데, 막았다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내 손에 닿자마자 없어졌다.

바로 또다시 수십개의 파이어볼이 나를 향해 날려들었다. 몇 개를 피하고 몇 개를 손으로 잡는데, 뜨겁거나 아픈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형편없는 위력이었다.

나는 파이어볼들이 날아온 곳으로 뛰어들며 라이트 세이버로 내려치려했다. 그런데 빛의 칼날이 막혀버리고 파이어볼을 날린 마법사들을 보호해주었다. 마력 장벽이었다.

마력 장벽은 마법으로 공격하면 무효화 시키지만, 물리적 공격을 막지 못한다. 그래서 물리 공격을 막는 이중 장벽을 만들게 되지만, 마력 장벽은 고급마법까지 막아도 물리 장벽은 조금 힘을 주어 몸통 박치기 하면 뚫고 나갈 수 있다.

난 빛의 칼날을 거두고 그대로 장벽 안의 뛰어들었다. 그런데 장벽을 뚫고 나갈 때 느껴지는 벽에 충돌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몸이 닿자마자 장벽들이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렸다.

"큰일 났어. 장벽이 부서졌어."

"그럼 어떻게 하지? 우리는 칼싸움을 못하잖아."

"남자들은 어디에 있지? 빨리 우리 앞을 막아서!"

들리는 목소리가 여자들의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마법사 부대는 마족 여성들로 이루어졌던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여성들을 지키기 위해, 방패를 든 부대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난 코웃음 치며 지팡이에 방금 전보다 3배의 마력을 주입해 지원부대를 향해 휘둘렀다. 10m가까이 늘어난 빛의 칼날에 지원 부대의 대부분이 몸이 둘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속절 없이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보고, 적들은 패닉에 빠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들고 있는 방패와 무기를 버리고 나에게서 필사적으로 멀어지려 했다.
그 것은 여성 마법사 부대원들도 같았다.

그들은 등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난 발에 마력을 주입해 땅을 강하게 두드렸다. 그러자 내 앞으로 마력이 퍼져 많은 마족들의 발을 묶어 놓았다.

‘땅의 족쇄’, 도망치는 적이 도망 못하도록 발이 땅에 붙게 하는 마법이다.

내 마법에 100명 정도였던 마법사 부대원들의 대부분이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 개 중에는 팔을 흔들거나 땅을 기어서 도망치려 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항복해라. 목숨은 살려주겠다."

위압과 함께 큰소리로 들려진 내 목소리에 마족 여성들은 두려움에 땅에 주저앉았다.

.......................

난 200마리의 마족들을 포로로 데리고 성으로 귀환했다. 그 중 90명 정도는 마족 여성들이었다.

나 혼자 2만 마왕군을 물리치고 포로까지 데려오는 모습에 성 안은 환호성이 넘쳐났다. 그들은 모두 ‘베이더님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늙은 왕이 직접 성 문 앞에 나아와 나를 맞이했다.
"오오... 베이더경. 또 다시 우리 나라를 구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인류를 위해서 이정도 쯤이야."

"하하 정말 겸손하신 분이군요. 그런데 왜 포로를."

"이후 전투에 쓸모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재건을 위해서 노예가 필요하지요. 아닙니까? 그리고 여기 몇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네요."

내 주위 몇몇 남자들의 시선에서 본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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