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핑크빛과 황금빛으로 빛나는 인생의 시작(2)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다. 지각 안하게 달려 온 결과, 0교시 보충 시간에 늦지 않았다.
3교시 쉬는 시간에 매점에서 빵을 먹고, 점심 시간에 급식을 먹고 나니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난 습관대로 책상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점심 시간에 자두지 않으면 5교시에 졸 것이다. 5교시의 소프라노 마녀의 히스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
내가 눈을 떠보니 또다시 무책임한 놈의 세상이었다.
- 어이! 이게 무슨 짓이지? 왜 마왕이 내 방에 있는 거야?
"말했잖아. 마족의 율법에서 진 자는 이긴 자의 노예가 되고, 주인이 죽을 때까지 그 곁을 지켜야 해."
- 난 아리안 평원에서 죽은 것이 아냐?
"넌 지금 살아 있잖아."
- 그 세계에서 내가 죽었으니 그런 마족 룰은 필요 없잖아. 혹시 네가...
"맞았어. 내가 데려온 거야."
- 니마졸래조골래.
"네가 너무 열심히 일해줘서 너에게 상을 주고 싶거든. 너도 이제 결혼할 나이잖아. 그래서 너에게 여자를 보내 준거야."
- 여자이기 이전에 마왕이야. 그런 엄청난 것을 어떻게 데리고 살지?
"마족의 율법은 절대적이야. 마족은 반드시 따라야 하지. 네 명령에 마왕도 복종하잖아."
- 하긴... 내 말에 그대로 따라하긴 했지만.
"한마디로 네가 원하면 그녀를 네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거지? 네 아이까지 낳아줄 수도 있고."
- 국제 결혼도 모자라 이종족 간 결혼이라고?
"그 정도면 세계 최고의 신부감이 아닌가?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진 사실도 알지 못하던데? 인정하지 않는 것 같고.
"그건 네가 이제부터 할 일이지. 주인으로서 노예를 다루는 건 인간의 율법이라 신은 잘 몰라."
- 알고 있었지만, 넌 정말 무책임하다.
"너에게 이런 큰 축복을 내렸는데 무책임한 건 아니야."
- 그럼 한가지 부탁을 더 해도 되냐? 그녀를 여기에 불러줄래? 3자 대면이라도 해서 그녀에게 설명해줘야 할 것 같아.
"난 신이야. 그런 귀찮은 일은 안 해!"
- 그럼 너의 다음 소환에서 마족과 함께 네 신전을 부수고 다닐 거야. 넌 내가 필요하지 않아?
그리고 방금 생각났는데, 네가 마왕을 이 세계에 데려 왔다고 했지? 그럼 이후에 나와 함께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거잖아. 그럼 마왕 토벌이 더 쉬울 텐데?
"흐음... 네 말이 맞는 것 같은데..."
- 그러니 그녀를 여기에 불러서 네가 직접 설득해줘.
"그런 귀찮은 일은 하기 싫고... 너와 마왕이 직접 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지."
갑자기 난 무책임한 놈의 세계에서 방출되었다.
.......................
눈을 떠보니 넓은 평원 한가운데였다.
그런데 많이 본 풍경이었다. 둘러보니 멀리서 큰 웅덩이가 보였다. 마치 폭발로 생긴 구멍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갈대가 사람 키 높이보다 길었다.
난 주변을 조사하려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발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긴 풀들을 헤쳐 살펴보니 발에 걸린 것은 검은색 뼈 조각들이었다. 풀들을 헤치고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마른 뼈들과 녹슨 갑옷, 칼 등의 무기들이 보였다. 과거에 전쟁터였던 곳이었다.
정말 많이 본 곳이라 생각했는데, 갑옷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이 곳은 전날 꿈의 아리안 평원이었다.
난 나에게 날라오는 마력 공격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점프해 옆으로 피했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화염구가 떨어져 폭발했다.
"인사도 없이 공격을 하다니 예의가 없군. 누군지 모습을 보여라."
30m 앞에 한 여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착지했다.
"그래. 네 놈이구나. 내 몸을 안은 파렴치한 놈. 너 같은 비천한 놈이 내 몸을..."
아리안 평원에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왕이었다. 내가 안고 자폭한 그 마왕. 그런데 입은 옷은 내가 준 티셔츠와 반바지였다.
"여기서 너를 죽이고 내 나라로 돌아가야 했다. 죽어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몇 개의 공격 마법이 엄청난 위력으로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난 옆으로 달려 피했다. 내 스피드는 초속 50m가 넘고, 점프력은 10m가 넘는다. 나의 회피 능력을 따라올 마법사는 없었다. 그녀의 공격 마법은 나를 노렸지만, 내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해 엉뚱한 곳에 착탄했다.
그래도 점점 착탄점이 나에게 가까워졌다. 공격 +속도는 느려도 마법을 사용하는 횟수 많으니 점점 나의 속도에 맞춰가는 것이었다. 빠른 전투기도 하늘을 뒤덮는 대공포화에 맞을 수 있듯이, 수많은 그녀의 공격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떻게 그녀는 이렇게 많은 수의 마법을 동시에 쓸 수 있는 걸까? 꿈속의 세계에서 인간이나 마족은 모두 동시에 2가지(팔이 두 개) 밖에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마법을 쓴 후 타임랙을 생각하면, 마법은 5초 정도의 차이를 두고 연속적으로 날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은 타임랙 없이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마도구를 이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나처럼 마도구 없이 입고 있는 옷만으로 이 곳에 소환되었다.
난 땅을 박차고 그녀를 향해 달렸다. 내가 접근하자 나를 향해 방어마법이 실행되었다. 난 마법 방어벽을 향해 주먹을 날렸는데,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어벽이 부숴 졌다.
그런데 내 앞에 즉시 마법 방어벽이 6개가 동시에 만들어졌다. 그와 함께 나를 향해 2개의 파이어볼과 1개의 아이스 애로우가 날라 왔다.
난 몸을 멈추고 나를 공격하는 3개의 마법을 손으로 막으며 방어했다. 그런데 마왕이 보이지 않았다. 마력의 흐름을 보니 그녀는 워프마법을 쓴 것이었다.
이 걸로 알 수 있었다. 6개의 방어벽과 3개의 공격, 1번의 워프. 그녀는 동시에 10개의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알아야 했다.
난 우선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했다.
마력으로 주변을 조사하니, 땅에 떨어진 검과 마법 지팡이들이 많았다. 지난 전투에서 전사한 이들의 것이었다.
난 그런 것들이 많이 몰린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풀이 별로 없는 곳에 다다르니 잡초들 사이로 녹슨 갑옷과 무기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마른 검은 뼈들도.
검은 뼈는 마족의 것들. 쓰러진 방향은 인간들이 주둔한 곳과 반대방향. 이들은 전투에 진 것을 알고 도망치다 죽은 마족들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마법 지팡이를 찾았다. 몇 미터 전방에 몇 개가 보여 졌다.
그 곳도 사정이 비슷했다. 도망치는 방향으로 쓰러진 마족들의 뼈들이 즐비했다. 다른 점은 갑옷과 무기들이 별로 없었다. 이 곳에서 마법사 부대가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땅에서 상태가 좋아 보이는 마법 지팡이 몇 개를 주워, 하나는 오른 손에 쥐고 나머지는 허리에 찼다. 그리고 오른 손에 마력을 주입했다. 생각대로 붉은 칼날이 뿜어져 나왔다. 나의 고유 마법인 ‘라이트세이버’를 쓸 수 있었다.
"이 곳에 있었군. 쥐새끼처럼 도망치길 래 멀리 도망친 줄 알았는데."
마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망친 건 네가 아닌가? 워프마법까지 쓰며."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일도 없다는 것이냐?"
"물론."
나는 마왕을 향해 라이트세이버를 겨누었다. 마왕도 마법의 장벽을 만들며 나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난 마왕에게 제안을 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는 분명히 하지."
"뭐지?"
"마족의 율법에 진자는 이긴자의 노예가 된다지? 그럼 네가 지면 내 노예가 되는 건가?"
"물론이다. 마족의 왕인 나는 마족의 율법을 따른다. 그런데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이미 난 너에게 한번 이겼는데?"
"그런 것을 승리라 인정할 수 없다."
"좋아 그럼 이번 싸움에서 내가 이기면, 넌 나의 노예가 되는 것인가?"
"난 율법을 반드시 지킨다. 내가 이기면 네가 다시는 부활할 수 없도록 이 세계에서 흔적도 지워버릴 것이다."
"좋아! 널 이기고 널 가져주지."
난 지팡이에 마력을 더 많이 주입했다. 빛의 칼날이 붉은 색에서 검은 색으로 변했다.
"이제 2차전 시작!"
말을 마치자마자 난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 앞에 마력방어벽이 쳐져 있었다. 방금 전 방어벽이 깨진 이유로 방어벽이 6겹이었다. 하지만 나의 라이트세이버 칼날에 모두 깨어졌다.
방어벽을 공격하는 나에게 4개의 공격 마법이 날아 왔지만, 난 검은 칼날로 모두 없애버렸다.
그 약간의 시간에 마왕은 나와 거리를 벌렸다.
나는 즉시 마왕을 향해 달려 나갔다. 다시 나와 그녀 사이에 7개의 마력 장벽이 생겨났다. 3개의 공격 마법을 예상한 나는 우선 방어를 했고, 그녀의 공격 마법을 없애고 장벽을 깨버렸다. 그 시간 동안 마왕은 다시 나와 멀어졌다.
이렇게 하면 끝도 없이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10개의 마법을 동시에 쓸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다.
난 또다시 그녀에게 달려갔다. 다시 7개의 마력 장벽이 생겨났다. 그녀가 나에게 파이어볼을 날리려는 순간, 난 그녀의 손톱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난 그녀의 마법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왜 그녀의 공격 마법이 초보적인 파이어볼과 아이스애로우 밖에 없었는지, 방어 마법은 마력 장벽 밖에 없었는지. 그녀는 마력을 많이 소비하고 발동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고급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초급마법을 연사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이겨왔던 것이었다.
솔직히 초급 마법이라도 그녀가 사용하면 위력은 고급 마법 수준이었다. 범위는 좁지만, 핀포인트로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이라면 강력한 초급 마법이 빠르고 정확했다. 그녀는 손이 아니라 손톱 하나에 한가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한꺼번에 10가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의 비밀을 알고, 난 하늘로 뛰어 오른 뒤 그녀를 향해 낙하했다. 그녀는 떨어져 오는 나를 향해 머리 위로 방어벽을 만들었다.
순간 나는 허공을 걷어찼다. 나의 고유마법 ‘허공답보’였다. 무협지를 보고 생각해낸 나의 마법은 허공에 바람벽을 만들고 발로 차면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녀의 방어벽은 머리 위에 있었고, 지상 쪽은 비어있었다. 그녀의 3가지 공격마법도 허공을 향해 만들어졌다.
바람벽을 걷어찬 난 마왕의 10m 앞에 착지했다. 난 빠르게 마왕에게 다가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마왕은 급히 손으로 막으려 했는데 내 칼에 오른 팔이 잘려나갔다.
오른 팔이 잘린 고통을 참으며 마왕은 왼쪽으로 마법을 쓰려했다. 난 그런 시간도 주지 않으려 칼로 왼팔까지 잘라내었다.
"우아악!" 두 팔을 다 자린 마왕은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난 마왕의 얼굴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내 칼날을 보며 마왕은 눈을 감았다. "뭘 망설이냐. 죽여라."
"진 자는 이긴 자의 노예. 노예가 되는 것이 마족의 율법 아닌가?"
"난 마왕으로서 인간의 노예가 될 수 없다. 날 존중한다면 여기서 죽어라. 이미 한번 죽인 자 아닌가?"
"처음 패배를 인정 못하겠다고 하더니, 인정하는 것인가?"
"말이 길구나 어서 죽여라."
나는 마왕을 바라보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이런 미인을 죽이는 것이 아까웠다. 수컷의 본능대로.
"네가 내 노예가 되어준다면 더 좋겠는데?"
"내 명예를 더럽힐 셈인가? 모든 마족의 웃음거리가 된 채로 살아가라는 말인가? 더 날 괴롭게 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난 속으로 무책임한 놈을 불렀다.
"어이 무슨 일이지? 날 불렀어?" 내 머릿속에 그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전에는 몇 번이나 불러도 대답도 없더니, 왜 바로 대답하지?
"지금 너희 둘 싸움을 보고 있었거든. 재미있던데."
- 남은 목숨을 걸고 있는데 재미?
"그건 그렇고. 네가 묻고 싶은 것이 뭔지 알아. 어떻게 이 여자를 처리할까... 아냐?"
- 맞았어. 어떻게 해야지?
"간단해. 네가 사는 세계에 데려가면 될 것 아냐. 이제 마왕은 패배했어. 그러니 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어."
- 그렇다고 이런 여자를 억지로 데려가면...
"불쌍하다?"
- 그럼 어떻게 해야지? 이렇게 자존심이 쎈 여자를...
"그럼 마누라로 삼겠다고 해."
- 마누라?
"결혼해 주겠다고. 부인으로 삼겠다고 해. 그럼 마왕도 기뻐할 거야."
- 그게 무슨 차이지? 노예와 부인, 차이가 없잖아.
"마족에게는 큰 차이야. 싸움에서 져서 부인이 되었다고 하면 마족들에게는 치욕이 아니니까. 그건 마족들에게 흔한 일이야."
- 흔한 일?
"솔직히 마족들 사이에 이런 일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 노예로 삼는다고 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일이고 당하는 쪽에서는 치욕이지만, 부인으로 삼겠다고 말하면 상대를 존중해주는 거야. 그래서 마족들 사이에서는 노예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어."
- 그래서 1학년 고딩에게 결혼하라고?
"네 선택에 달렸어. 그냥 이대로 그녀를 데리고 가도 그녀는 네 노예니까 네 맘대로 할 수 있어."
- 그렇게 하면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거야.
"그러니 네 맘대로 해. 이대로 마왕을 죽이고 너 혼자 돌아갈지. 같이 돌아가서 노예로 삼을지 부인으로 삼을지. 세 가지 중에 하나야."
그녀를 여기서 죽인다면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이다.
노예로 삼으면 목숨은 살리고 자존심을 죽이는 것이다.
부인으로 삼으면 목숨도 자존심도 살릴 수 있다.
그럼 답은 나와 있지만, 16세에 결혼이란 건...
"어째건 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네 그럼 둘 다 저쪽 세계로 돌려보낼게. 노예로 삼을지 부인으로 삼을지 거기서 선택하라고."
.......................
다시 눈을 떠보니 교실 안이었다.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려니 불안해졌다. 아무 말 없이 마왕을 내버려둔다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난 즉시 휴대전화로 집에 전화했다.
"엄마 나야. 그 사람 집에 있어?"
- 재신이니? 네 방에서 조용히 있어.
"빨리 그 사람 좀 바꿔줘. 할 말이 있어."
- 그럼 나에게 말해. 전해줄게.
"엄마하고 말이 통해?"
잠시 이런 저런 소리가 났다.
- 지금 울고 있는데, 전화 받을 상태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바꿔줘. 꼭 할 말이 있어."
울고 있다고? 마왕이?
- 전화 받으라는 말을 어떻게 하지?
"그럼 스피커로 돌려 내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어머니의 전화기가 스피커폰 모드로 바뀌자, 마왕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왕! 내 말 잘 들어."
울음 소리가 그쳤다.
"난 너를 노예로 삼을 생각이 없어. 일이 이렇게 되어버려 미안하지만. 난 널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아. 널... 널..."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숨을 크게 들이쉬고 큰 소리를 냈다.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
울음 소리가 그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 잠깐! 그렇게 하면 안돼요. 이건 할부가 1년 남은 새폰이라구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마왕!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그리고 내 말을 들어."
소란이 진정되고 조용해졌다.
“너와 결혼하겠어. 널 내 부인으로 삼겠어. 그러니 조용히 있어. 내가 집에 가서 설명해줄 테니. 조용히 있어. 알았어?"
난 즉시 한국어로 말했다.
"엄마. 부탁드려요. 그 사람하고 할 말이 많으니까 오늘 야자 없이 갈게요. 그러니 담탱이에게 전화해줘요. 집안일로 빨리 집에 와야 한다고."
- 야자 빼먹으려는 거야?
"그럼 저 사람을 어떻게 해요?"
난 그대로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위의 친구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른 세상의 말을 전화기에 대고 외쳐대는 내가 이상한 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