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핑크빛과 황금빛으로 빛나는 인생의 시작(6)
교무실에 들어가니 선생님이 나를 보며 교장실을 가리켰다.
난 교장실에 노크했다. "송재신입니다."
문이 열리고 날 맞이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빠. 여기 무슨 일이죠?"
"우선 여기 앉아라." 아버지는 내 팔을 잡아 끄셨다.
교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교장 선생님과 마야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마야는 현대적 캐리어 우먼에 어울리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현대적인 의상을 입은 그녀를 보며, 원래의 미모를 가진 사람은 무슨 옷을 입어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가 송재신인가? 여기 앉게." 교장은 마야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마야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옆을 손으로 두드렸다.
"서방님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마야의 서방님 소리에 교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버지는 마야 앞에 앉았다.
내가 앉자 교장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아버님의 말씀은 여기 송재신군을 전학시키겠다는 겁니까? 아버님이 근무하시는 명성고교로?"
"그렇습니다. 여기 필요한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아버지는 교장에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교장은 안경을 끼고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어 검토했다.
"문제는 없습니다만, 이렇게 갑자기 일을 벌리시면 우리가 곤란합니다."
"문제될 것이 없다면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학교 경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장은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렇겠군요. 명성고교에서 근무하시니."
"정확히는 명성 학원의 총무 부장입니다."
마야가 내 손을 잡으니 그녀의 마력에 의해 두 사람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자기 자식을 특목고에 집어넣으려 별 짓을 다하는군.’
‘비리에 찌들은 속물들끼리 말이 많네. 그냥 도장 만 찍으면 될 것이 무슨 말이 많지?’
교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방금 서방님이라고 부르셨는데 그런 의미인가요?"
"그 것은 프라이버시입니다." 난 마야의 마력을 사용해 교장을 향해 위압을 발동했다.
"그.. 그렇군요. 하지만..." 교장은 위압에 눌려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뭐죠?" 나는 위압을 거두지 않았다.
"고교생이 결혼이라는 것은..."
"혼인 신고는 성인이 되면 할 겁니다. 그 것은 내 문제입니다. 법적인 문제라면 저와 제 변호사가 처리할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교장은 내 위압에 입을 다물었다.
속물들에게는 속물에 맞게 쓰는 방법이 있다. 나는 방금 아버지 머리 속에서 교장의 비리 사실을 읽었다.
"최선희 선생님께서 올해 정교사로 임명되셨죠?"
내 말에 교장은 놀란 듯 나를 노려보았다.
"전 여기 송 선생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놀란 표정을 감추며 교장과 눈을 마주했다.
"저는 정 선생님은 00병원에서 치료 받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술 후에 미역국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학교 내 교사들의 비위 사실을 말하는 나에게 교장의 몸이 떨렸다.
100년의 시간을 보낸 나는 교장과 아버지 정도의 인간들의 수를 눈에 훤히 보고 있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수 없이 보아왔다. 본능을 주체 못하면서 자신의 조그마한 이득만 바라보는 시궁창 쥐 같은 존재. 그리고 이런 인간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안다. 그들의 조그만 이득을 위해 날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고, 내가 그들의 이득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보장도 필요했다.
"요즈음 사모님께서 교내 헬스장을 이용하시죠? 내가 이 학교에 없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교장은 일어서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의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먹고 떨어지라는 눈빛으로.
나는 일어서며 한마디를 남겼다. "나와 마야의 일. 혼인신고까지는 아시죠?"
내가 나가자 내 뒤를 마야와 아버지가 따라 나왔다.
나는 교무실로 들어가 우선 담임에게 갔다.
"선생님.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합니다. 오늘로 전학가게 됐습니다."
담임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새로 전학 가는 곳에서도 열심히 해라. 네가 여기서 한만큼 한다면 어려울 것이 없을 거다."
담임은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럼 열심히 해라."
담임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많은 선생님들을 경멸한다. 이 사람은 선생님들 중에 그래도 존경할만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세 번의 여행을 통해 나는 80년 넘게 살며 100년이 넘는 인생을 보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첫 번째의 10년간 상인 생활은 나에게 엄청난 인생 경험을 안겨줬다. 몇 번 사기를 당하며 거짓말을 읽어내는 법을 체득했고, 돈에 의해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역질날 정도로 관찰했다.
두 번째 인생에서 난 마왕을 죽인 영웅으로 왕의 조카와 결혼했다. 귀족의 칭호를 얻은 나는 7년 동안의 결혼 생활 동안 아내와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는 법을 배웠다. 내 아내라 해도 그녀는 왕이 심어놓은 감시자였다. 침대 위에서도 우리는 긴장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내와도 이럴진대 다른 귀족들과는 더욱 심했다.
아내가 이혼하고 대시모신 신전에 들어가며, 난 오히려 기뻐했다. 많은 여성들과 그런 일을 한다는 기쁨보다 감시에서 벗어난다는 홀가분함이 더 컷다. 나에 대한 감시가 있어도, 그런 일을 즐기는 나에게 큰 경계는 없었다.
세 번째 인생에서 세 왕들 중에 늙은 왕은 정말 토가 나올 정도의 쓰레기였다. 자신의 왕국의 이득을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잔학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포로의 노예화와 학대, 난민의 노동력 착취, 여성의 성노예화 등 대동아 쪽바리들의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나의 잘못으로 돌렸다. 아리안 평원 전까지 나의 악명은 마족들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유명했다.
그렇게 인간의 추악한 것들을 보아온 나는 교장이나 아버지 정도의 소악당들은 귀엽게 보였다.
........................
아버지와 마야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후, 나는 교실로 향했다.
교실로 들어가 수업 시작 전의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선생님. 저 내일 전학 갑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재신아. 너 전학 가니? 내일? 이렇게 갑자기?"
선생님도 놀란듯하다.
나는 급우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미안하다. 갑자기 전학가게 되었다. 앞으로 만날 일 있으면 연락해라."
철승이 물어왔다. "야! 송 재신!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전학? 어디로?"
"바로 옆의 명성 고교."
내 말에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급우들이 놀랐다.
"야! 명성이라면 특목고잖아? 네가 어떻게?"
"뭐 그렇게 됐어. 자세한 것은 나도 몰라. 갑자기 아버지가 와서 내일부터 명성에서 다니래."
"이 새끼. 결국 아버지 백이네. 공부도 못하는 자식이 부모 잘 만나 특목고에 들어가고 말야."
교실 맨 끝의 창가에서 목소리가 날라 왔다.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알려질 일을 숨기는 것이 더 비겁했다.
나는 반 친구들의 부러움과 경멸의 눈빛을 모두 받으며 내 짐을 챙겼다. 철승이 일어나 내 짐을 함께 챙겨줬다.
난 가방을 다 챙기고 철승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맙다. 너 밖에 없네."
"잘 가라. 그리고 그런 곳에 가는 이상, 꼭 성공해라."
철승은 내 손을 잡고 우리는 악수를 했다.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와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앞에 아버지와 마야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마야의 목소리가 머리에 들려왔다, ‘다 되신 건 가요? 서방님?’
‘그래. 그런데 이건 어떻게 된 거지?’
마야는 나에게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마력과 함께 그녀의 기억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
나를 보내고 마왕성이 혼자 있던 마야는 심심해졌다. 옷을 입고 침대에서 일어나니 탁자에 워프석이 있었다.
"서방님도 참... 칠칠치 못하긴..,"
마야는 웃으며 워프석을 나에게 주기 위해 어제 우리 집에 다시 찾아갔다.
마야가 찾아왔을 때 어머니는 반겨 맞이하셨다. 그런데 거실 한쪽에 내 짐들이 쌓여져 있었다.
"이 것이 서방님의 것들인가? 이 것이 전부?"
"그래요. 재신이 물건들은 이 것이 다에요."
"잠시 후 가져갈 테니 준비해라."
"가져가신다니 어떻게..."
"내 마물들을 보내겠다."
어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제 온 모양이군." 마야는 어머니에게 눈짓을 했다.
어머니가 문을 여니 2m의 회색빛 피부를 가진 남자들 몇 명이 들어왔다.
"너희들은 이 물건들을 가져다 놓아라." 마야는 내 물건들을 손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들이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이제 서방님의 물건들을 가져가겠다." 짐을 들고 가는 사람들 뒤를 마야가 따라가려 일어섰다.
마야는 어머니를 보고 마법을 사용했다. 지금 일하는 마물들의 모습을 보통 인간으로 기억하는 기억 조작 마법이었다.
"저어 잠깐! 우리 그이가 할 말이 있다고 하던데요."
"그 이라면 서방님의 아버지 말이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서방님의 부모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결혼한 이상 그 분은 너희 같은 사람들이 함부로 만날 분이 아니시다. 앞으로 이 것을 명심해라."
마야의 위압에 어머니는 몸을 움츠렸다.
"그래도 서방님의 부모라니 너희 말을 들어는 보겠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일이라면 너희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내 보물을 나눠준 것은 앞으로 나와 서방님의 생활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알겠느냐?"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굽혀 몇 번이고 인사했다.
잠시 뒤 아버지가 집에 들어왔다.
"내게 할 말이 있다고?"
"저어... 어제 보니 마야씨께서는 돈이 많으신 것 같은데..."
"돈이 많다고 말하는 것은 내 보물을 나눠달라는 것이냐? 욕심이 많구나."
마야의 위압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려움에 움츠렸다.
"이제 서방님은 너희들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어제까지 너희와 부모 자식의 인연이 있었지만, 나의 남편이 되신 이상 그분은 너희가 함부로 넘볼 분이 아니시다. 알고 있는 것이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버지는 숨을 가다듬었다.
"마야씨는 귀하신 가문의 아가씨이시고 큰 부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신이는... 어제까지 저희의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마야씨의 부군이 되었지요.
그런데 그 사실 만으로 재신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기 힘듭니다."
"그 말은 서방님을 무시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냐? 누구냐? 감히 서방님을 무시하다니 그 놈을 당장 흔적도 없이 없애버릴 것이다."
마야의 마력이 분출되었다.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아직 재신이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고교생입니다. 그런 재신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마야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럼 재신이의 고생도 줄어들고."
"흐음...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마야씨는 부자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야씨께서 돈으로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렇군. 인간들은 가진 부의 크기로 가치가 평가 받는다고 들었다."
"그러니 마야씨가 돈으로 재신이를 돕기 위해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서방님을 위해 널 돕는다?"
"저를 도와주시면 재신이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마야는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마야의 기억 속의 그녀의 생각도 전해져왔다.
‘이런 쥐새끼를 믿을 수 없다.’
경멸을 섞어 마야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널 어떻게 도우면 되는 거지?"
"우선 마야씨께서 우리 명성학원을 도와주시죠. 그러면 명성학원으로 재신이를 옮겨드리겠습니다."
"서방님이 왜 너희 쪽으로 옮겨야 하지?"
"우리 명성학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고교입니다. 재신이가 실력이 부족해 명성에 오지 못했는데, 마야씨 힘이라면 지금 가능할 겁니다."
"서방님을 좋은 학교로 보낼 수 있다는 거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어느 정도면 되는 거지?"
"어제 주신 정도면 가능합니다."
"겨우 그 정도로 되는 것이냐?"
마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내해라 너의 명성 학원이라는 곳에. 아아... 아직 나에겐 이 곳에 맞는 옷이 없구나. 우선 옷부터 마련해야 겠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여보. 마야씨에게 맞는 옷이 없어?"
마야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에게 남이 입던 옷을 입으라는 것이냐? 안내해라! 나에게 맞는 옷을 구해야겠다."
아버지의 인도로 마야는 시내 명품점에서 점원이 골라주는 옷을 구해 입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을.
계산을 할 수 없는 마야를 위해 아버지가 대신 계산해줬다고 한다. 8자리 숫자의 금액을.
옷을 입고 마야와 아버지는 즉시 명성학원에 가서 이사장실로 직행했다.
비대한 몸으로 앉아있는 이사장을 보고 마야는 거만한 목소리를 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이 곳의 수장이냐?"
"당신은 누군데 이렇게 예의가 없지?"
"지금부터 널 대신해 이 곳의 수장이 될 사람이다."
순간 마야는 마법으로 이사장의 기억을 읽어냈다.
"능력 없는 너 때문에 명성학원이 망하기 직전이구나. 한심한 놈. 내가 이 명성학원을 사주마. 넌 이제 여기서 나가줘야겠다."
"이런 미친 년이..."
아버지가 제일 당황했다. "마야씨. 지금 무슨 짓을."
"말 그대로다. 내가 이 명성학원을 이대로 접수하겠다. 안될 것 있느냐?"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죠?"
"너희가 원하는 것이 금 아니냐? 밖을 보아라."
이사장실 문 앞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문을 열어보니, 내 짐을 가져갔던 회색 사내들이 이사장 문 앞에 금덩어리를 쌓아놓기 시작했다. 사람 키만큼 쌓아놓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물론 기억 조작 마법으로 사람들이 쌓은 거라 기억하겠지만.
"이래도 할 말 있느냐? 망하기 직전의 명성학원은 이제 내 것이다."
마야는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정도 돈이면 내가 이 곳의 수장이 될 수 있는 것이냐?"
"네... 네... 이 정도라면."
"그럼 넌 남은 일을 처리 하거라."
마야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휴대전화를 꺼내어 통화를 했다.
"그리고 거기 돼지! 거기는 내 자리니까 비켜라."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이지? 이게 무슨 짓거리야?"
아버지는 휴대 전화로 통화를 끝내고 이사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사장님. 방금 00은행과 통화를 했습니다. 이 곳으로 오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쪽에서는 우리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이 행장이 직접 온다고?"
"그리고 000님. 이사장님의 누님께서도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현이사장의 해임과 새로운 이사장님 선임을 위해 내일 당장 재단 회의가 소집될 겁니다."
"이 자식! 네가 감히 날!"
이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지만, 아버지가 그 손을 움켜 잡았다.
"그럼 이 위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죠? 아무 대안도 없이 망할 날만 기다려야 합니까?
이 위기는 당신이 자초한 겁니다. 당신이 주식으로 입은 손해를 재단에 떠넘기고 그 손실을 메꾸기 위해 매각할 자산도 바닥났습니다.
해결책이 있습니까? 여기서 말해주십시오."
"명성 재단은 내 꺼야. 아무도 건들 수 없어. 저기 서 있는 창녀도 네 놈도 말야.
내 밥그릇에 숟가락 집어 들고 퍼먹겠다고? 할 수 있다면 해봐! 내가 순순히 물러날 것 같아?"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요. 내일 뵙죠."
두 사람은 이사장실을 나왔다.
"제일 시급한 일은 서방님을 이 곳으로 모셔오는 일이다. 지체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즉시 재신이를 데리러 가죠. 이쪽으로 오시죠."
재단 소유의 유령을 몰고 아버지와 마야는 나를 데리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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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이 넘는 차 안에 앉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마야는 내 옆에 앉아 팔짱을 끼고 내 옆으로 기대어왔다.
내 앞에 아버지가 앉아서 머리 뒤를 두드렸다.
"김 기사. 명성학원으로."
아버지의 말에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교생이 내가 유령에 몸을 싣고 전학 가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었다.
내용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아빠. 전 내일부터 명성학원에 다니는 거야?"
"뭐 그렇게 됐다."
오늘 일어난 일들이 정리가 되지 않은 표정으로 아버지가 대답했다.
"서방님께서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방님께서 다니실 학교를 준비해뒀습니다. 그 곳에서 즐겨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마왕도 모자라 이사장이 내 마누라라니... 한숨이 절로 났다. 돈의 힘이 대단한 것을 이제 알겠다.
마야는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나와 서방님은 이대로 돌아가겠다. 너는 남은 일을 처리 하거라. 오늘 그 돼지의 자리로 내일 아침에 찾아가면 되는 것이냐?"
"저... 그게 아직 처리할 일이 많아서."
"뭐가 어려운 것이냐? 무능력한 놈!"
말이 거칠어지자 내가 나섰다.
"마야. 우리 나라는 복잡해서 그렇게 갑자기 이사장을 바꿀 수 없어. 처리할 일이 많아. 그렇죠 아빠?"
아버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면 가능하죠? 마야의 이사장 취임."
아버지는 생각에 잠긴 듯 했다. "한 달 정도면 가능하겠어."
"알았어요. 한 달. 한 달 뒷면 정식으로 마야가 이사장이 되는 거죠?"
"많이 힘들겠지만. 그 정도라면."
"어째든 빨리 해주세요. 마야는 참을성이 적으니까."
아버지의 얼굴에 난처함이 가득했다.
"이렇게 무능해서 어떻게 일을 맡기겠느냐? 너 말고 다른 사람을 알아보아야 겠다."
"아... 알겠습니다. 마야씨를 이사장으로 해서 명성학원을 재편하겠습니다."
"빨리해라. 난 인내심이 없다. 한달 내로 모든 것을 끝내라. 알았냐?"
아버지는 마야를 향해 목을 굽혔다.
"그리고 이 탈 것을 여기에 세워라. 우리는 마왕성으로 돌아가야 겠다."
차가 인적이 드문 곳에 들어서자 마야가 차를 세웠다. 마야의 요구에 차가 섰고, 나와 마야는 차를 내렸다.
"정말 여기면 됩니까?"
"문제 없다. 너는 네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우리 둘을 두고 유령이 멀어져갔다.
마야는 나에게 아침의 워프석을 내밀었다.
"이 것을 놓고 가시다니, 서방님께서는 칠칠지 못하시네요."
마야가 날 보며 웃어주었다. 방금 전의 도도한 모습과 달리 날 보며 웃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는 워프석을 받아들며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날 찾아오는 너를 보고 싶어서 일부러 놓고 왔어. "
마야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의 뺨에 손을 대고, 난 발꿈치를 들고 마야에게 키스했다. 잠시 동안 시간이 멈춘 듯 마야와 나는 서로를 즐겼다.
입술을 떼고 마야를 바라보니 붉어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그런 표정은 정말 반칙이었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귀여웠다.
"그럼 이제 돌아갈까? 앞으로 할 일도 많고."
난 마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마야는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내 손을 잡고 워프 마법을 실행했다.
눈앞에 어제 보았던 정원이 펼쳐졌다.
침대로 갈 여유도 없이 난 마야에게 달려들었다.
일을 마치고 나무 밑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우리는 행복했다. 그런데 내 몸에서 배고픔의 소리가 들려왔다.
"후훗. 서방님, 배고프신 가요?"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인가?"
"그럼 식사하셔야죠."
마야는 내 품에서 떨어져 벌거벗은 몸을 일으켜 허공을 향해 명령했다. "여기 내 옷을 가져오라."
그러자 땅에서 열명 정도의 회색 피부 여성들이 올라왔다. 방금 전 마야의 기억 속에서 봤던 사람들과 비슷했다.
3명은 검은색의 드레스를 가지고 와 마야에게 입혀주고 있고, 몇 명은 땅에 떨어진 나와 마야의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서방님의 옷도 필요하다."
마야가 말하자 열명 정도 회색 피부 남성이 땅에서 올라왔다. 내가 일어서자 그들은 나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나와 마야가 입은 옷들은 그 쪽의 마족들의 옷이었다. 넓고 치렁치렁한 옷이 넉넉히 몸을 감싸주었다.
"뭐지, 이 사람들은?"
"마왕성에서 시종을 드는 마물들입니다. 여러 형태가 있는데, 서방님에게 인간의 형태가 맞는 것 같아 이런 모습으로 바꾸었습니다."
마물들을 바라보니 얼굴에 눈코입이 있었으나 확실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려 놓은 듯 희미했다.
"마물들은 모두 마왕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앞으로 서방님을 모실 마물들을 준비하겠습니다."
마물들이 입혀주는 옷을 입고 나는 마야의 손을 잡았다. 워프 마법에 의해 이동한 곳은 백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회랑이었다. 회랑을 떠받힌 기둥들 사이에 긴 세로로 식탁이 있었다. 한번에 100명 정도 동시에 식사가 가능할 만큼 컸다.
마야는 긴 식탁의 짧은 면에 있는 두 개의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나는 마물의 인도를 받으며 마야와 마주보는 다른 면에 앉았다. 나와 마야는 15m 정도 떨어져 서로를 마주 보았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마물들이 식사를 가지고 왔다.
맛과 서비스를 평가하자면, 오성호텔 최고급 코스 요리 수준이었다. 식사 하는 동안 나는 조금 불만이 생겼다. 마야하고 떨어져 식사를 하니 맛이 덜했다.
디저트를 먹으며 마야가 물어왔다.
"서방님. 식사가 입에 맞으십니까?"
"나에게 과분할 정도야."
나의 표정을 보고 마야가 불안한 듯 물었다. "뭔가 불만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다음 번에는 가까이서 먹었으면 해."
"네?"
"부부 간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특히 함께 식사할 때는."
마야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보여졌다.
"부부는 잠자리 뿐만 아니라 식사할 때 멀리 떨어지면 안되는 거야. 우리 풍습이 그래."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부터는 제가 가까이서 먹겠습니다."
"아니! 다음부터 내가 네 옆자리에서 식사할게. 괜찮겠어?"
"무... 물론입니다. 그렇게 하시겠다면 저도 기쁩니다."
나는 마야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저녁 식사 이후 우리는 서로 떨어지지 못해 잠에 들 시간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