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늘어나는 부인들(3)
세쓰는 마야의 회복 마법에 상처는 없어져도 마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그동안 마야와 시간을 보냈다. 마야와 함께 마왕성의 여러 장소를 둘러보았다.
마왕성은 본 건물, 정원, 방어벽과 해자로 이루어져 있었고, 원형으로 지름이 500m 정도였다.
본 건물에서 우리의 침실은 마왕성의 꼭대기 층이었다. 마력을 지붕에 주입하면 지붕이 열려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 방은 우리의 방이 아닌 나의 방이라고 했다. 그날 밤 주인과 시중을 위한 여성들만 출입할 수 있다고 했다.
침실 바로 밑에 식사에 쓰이는 열주 회랑이 있었고, 회랑 주위에 여러 방으로 향하는 통로가 있었다. 마야의 말로는 부인들을 위한 방이 100개 있다고 했다.
주인과 부인들을 위한 공간과 아래의 공간은 격리 되어 있었다. 아래의 몇 개 층도 방들이 많았다. 첩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했다.
마왕성 건물 지하는 창고와 마력 공급 장치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왕성 맨 아래는 마력을 흡수하는 마석으로 위의 마력 공급 장치에 마력을 공급하고, 마력 공급 장치는 마법진이 새겨진 거대한 마석이었다. 마야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가 본 마석은 마법진이며, 지하 전체가 마석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지하 공간이 적은 것을 보니 마석의 크기와 양이 어마어마했다.
정원은 마왕성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마왕성 본 건물 앞에 만들어진 정원은 길이가 300m가 넘고 폭이 100m로 가운데 직사각형의 호수와 주위에 두 줄로 심어진 나무들이 있었다. 정원에서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호수 외에 볼 것이 별로 없이 원시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분위기였다.
호수에는 물고기가 살았는데, 우리가 먹는 생선 요리라 했다. 호수 가운데 큰 기단 위로 조각상이 있었다. 마야 말로는 6대 마왕이라고 했다.
마왕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높이가 15m, 넓이가 3m로 거대 했다. 성 밖을 보니 해자와 작은 성벽 2개가 보였다. 4중의 방어 장치였다.
마왕성은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섬의 북쪽 끝에 위치했다. 성벽 밖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숲과 호수도 보였다. 작은 도시 국가 하나를 옮겨 놓은 것이었다.
성벽에 나가 보니 동물들도 보였다. 우리가 먹는 고기 요리들이라고 했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은 목욕탕이었다. 원래 목욕탕이 있었지만, 난 노천탕에서 하는 목욕을 좋아했다.
내 요구로 마야는 마물들을 동원해 본 건물의 한 곳을 노천탕으로 개조했다. 대리석으로 꾸민 그 곳에 작은 폭포와 수로까지 만들고, 즐길 만 한 돌 침대도 몇 개 만들어 두었다. 원래 목욕탕도 면이 10m가 넘는 정사각형이었지만, 새로 만든 목욕탕은 몇배 더 크게 만들었다. 내 요구로 욕탕의 반은 깊이가 5m가 넘었다.
100명이 넘는 마물들로 이 공사는 반나절 만에 끝났다.
공사가 끝난 뒤, 나와 마야는 같이 들어가 목욕을 즐겼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며 나는 마야를 안고 있으니 너무 즐거웠다.
"서방님이 간절히 원해서 만들었는데, 정말 별을 보며 하는 목욕이 좋네요."
"여름보다 겨울이 더 좋아. 눈을 맞으며 뜨거운 물속에 앉아 있는 것이 더 좋아."
"그런데 저렇게 깊게 만든 건 무슨 의미지요?"
"해가 강한 날에 깊은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즐기니까,"
"서방님은 취향이 독특하시네요."
나는 목욕탕에서 나와 마야를 끌고 나왔다. 돌침대에 마야를 눕혔다.
마야를 안으려 하는데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세쓰였다.
나는 일어서 세쓰와 마야 사이에 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내 경계의 시선을 느끼고 세쓰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졌습니다. 나의 패배를 알고 당신께 저를 바치려합니다."
세쓰의 말에 나는 안도했다.
우선 나와 마야는 가운을 걸쳐 입었다. 우리 둘은 침대에 나란히 앉아 그를 내려 보았다.
"이제 저를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망설였다. 마족의 율법에 대해 마야에게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다.
진자는 이긴자의 노예가 되어야 하지만, 명예 때문에 노예가 될 수 없다고. 그 것을 막기 위해 성전환해서 이긴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야 외에 다른 여자를 부인으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 마족의 율법에 의해 넌 서방님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 내 밑으로."
마야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본래 남편이 다른 부인을 두는 것을 싫어해야 정상이 아닌가? 게다가 신혼 몇 일 만에?
그런 생각 마야를 바라보았다.
"서방님께서 16세가 되도록 부인이 없었던 것이 걱정 되었다. 마왕의 남편으로서 서방님께서는 어서 많은 여자들을 취해야 한다. 네가 나 다음이라니 다행이다. 마족의 피를 이은 마왕이었던 네가 나 다음으로 서방님의 부인이 된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하지만 마야. 난..."
"서방님. 정말로 기쁩니다. 서방님께서 이렇게 빨리 첫 번째 부인을 얻게 되어 다행입니다. 게다가 저와 같은 피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지만 너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16세에 부인이 둘 뿐이라는 것은 늦은 겁니다. 앞으로 빨리 부인들을 늘려야 합니다. 1년 내에 100명의 부인을 얻도록 본처인 제가 노력하겠습니다."
100명을 1년 안에? 좀 봐줄 수 없을까?
"그런데 이 사람은 남자잖아? 어떻게 여자가 되는 거지?"
나는 세쓰를 바라보았다. 거부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세쓰는 싫어하는 것 같은데?"
"싫어해도 서방님께서 원하시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쓰는 서방님의 노예입니다. 세쓰의 주인으로서 노예인 그의 인생을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 그럴 생각은 없어."
내 말에 마야도 세쓰도 놀랐다.
"너와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이 시점에 다른 여자를 맞이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우리 나라 법이 그래."
우선 거짓말로 이 상황을 넘기려 했다.
"그럼 언제..."
"1년 동안 본처 외에 다른 여자를 맞이할 수 없어."
"1년 씩이나... 그럼 세쓰는 1년 간 노예로..."
나는 세쓰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그런데 이 뇌근육 바보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단지 여자가 되기 싫다는 생각 뿐이었다. 바보일수록 자존심이 강한데, 이 바보가 노예라는 것을 받아드릴까?
"세쓰! 넌 어떻게 할 것이냐? 노예로 1년을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음을 택할 것이냐?"
"주... 죽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명예보다는 바보로 살고 싶은 것 같았다.
마야는 충격에 말없이 세쓰를 바라보았다.
나와 마야는 둘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서방님...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전직 마왕이라는 자가 노예가 되겠다니... 아무리 1년이지만...’
‘그만큼 여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인가?’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마왕이었던 자가 자존심을 내던지고 노예가 되겠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살고 싶다면 서방님의 부인이 되면 됩니다. 그런데 노예로 살겠다니...’
‘겨우 1년 뿐이잖아?’
‘1년이 아니라 단 하루도 노예로 살 수 없는 겁니다. 적어도 마왕의 피를 이었다면...’
난 세쓰에게 얼굴을 돌렸다.
"다시 한번 묻겠다. 넌 노예로 살아야 한다. 그래도 좋은 것이냐?"
"노예가 되어도 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쓰의 생각이 그러니 나도 찬성이야."
내 말에 마야는 물러섰지만, 충격을 못 이겨 비틀거리며 목욕탕에서 워프했다.
난 무릎을 꿇은 세쓰에게 명령했다.
"너는 이제부터 나의 노예다. 내 명령에 복종하고, 마야에게 거역하지 마라. 전의 일은 몰라도 지금의 마야는 나의 아내, 네 여주인이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그럼 네 방에 가 있어라. 필요하면 널 부르겠다."
세쓰는 일어서 나에게 인사하고 목욕탕을 나갔다. 나는 그의 걸음을 보며 그의 속셈을 알 수 있었다. 치욕을 참고 다음을 기약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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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되어 나는 마왕성을 이동 시켰다. 바다가 보고 싶은 마음에 마왕성을 동해 한 가운데로 이동 시키고, 바다 한 가운데에 마왕성을 내려 앉혔다. 성 위에 바라보니 사방으로 보이는 파란 바다가 나를 감동 시켰다.
나는 마야와 함께 테라스에서 바라들 바라보았다.
"와아! 저게 바다인가요? 처음 봐요."
"마야는 바다를 처음 봐? 마왕인데?"
"마족의 땅은 높은 산들이 모인 곳이라 이렇게 많은 물을 볼 수 없었어요."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는 마야를 보고 나도 많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이 이렇게 감동스럽다니...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어...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뒤에서 세쓰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야는 나의 손을 잡고 워프 마법을 발동시키려 했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막았다.
"지금은 너와 함께 걷고 싶어."
나의 말에 마야는 웃으며 내 팔에 팔짱을 끼었다.
나는 마야와 함께 세쓰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걸어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서방님께서는 세쓰를 확인하려는 겁니까?’
역시 전 마왕. 내 의도를 알고 있었다.
‘저렇게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놈은 적의를 감추기 힘들지. 특히 단순한 놈은.’
‘그래서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대로 두실 겁니까?’
‘여자로 만드는 일을 생각해 봤어. 하지만 이대로 내 부인이 된다면 앞으로 후유증이 많을 것 같아. 우선 그의 마음을 확실히 정복해야 해.’
‘마족은 힘에 굴복합니다. 다시 그를 힘으로 억누르시면...’
‘힘으로 굴복하는 사람이라면, 불명예를 감수하지 않을 거야.’
나는 마야와 걸어가며 세쓰에 대한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우리가 식사를 끝내기까지 세쓰는 우리 옆에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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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 되어 나는 새로운 학교로 등교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마야는 나에게 새 교복을 입혀주며 넥타이까지 매주려 했지만, 웬지 어색했다.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건가요? 아닌가?"
"왜 내 넥타이를 매주겠다는 거지?"
"어제 인터넷을 보니까, 아내가 남편의 넥타이를 매주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마야는 21세기 지구의 생활을 인터넷으로 배우고 있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일부일처제로 생각이 바뀔 것 같았다. 내가 1년을 미룬 이유였다.
나는 넥타이와 씨름하는 마야의 손을 잡았다.
"다시 인터넷을 보고 공부해, 그리고 이렇게 하는 거야."
내가 능숙하게 넥타이를 매자, 마야는 시무룩해졌다.
"이런 것도 못하다니..."
나는 마야의 얼굴을 올려 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씩 배워가는 거야. 급하게 할 필요 없어."
마야는 기죽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학교에 다녀오겠어."
나는 워프 마법을 사용했다. 장소는 우선 부모님 집의 아파트 옥상 계단. 내 몸 안에서의 마력 흐름이 멈춘 것이 느껴지며, 눈앞의 광경이 변해있었다.
전에 학교에 워프했던 것은 마왕성에서 학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마력 소비가 높았다. 미리 워프 포인트를 지정하고 워프하는 것이 마력 소비가 훨씬 적었다.
먼저 내가 워프 포인트를 지정해둔 곳은 마야와 처음 워프한 아파트의 계단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로 부모님 집 앞에 다다랐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문의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 집 안에서는 세 사람이 출근, 등교 준비 중이었다. 내가 들어와도 세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엄마. 나 왔어요."
"재영아. 그 옷은 마르지 않은 거야. 그리고 오늘 더운데 꼭 속에 티셔츠를 입어야 해?
여보. 아침은 당신이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
"아침부터 빵을 먹으라고?"
"다른 집에 물어봐. 아침 차려내라는 남자는 이혼 감이야."
내가 들어와도 난 공기였다.
"엄마! 아빠! 나 왔다니까?"
"넌 거기서 찌그러져 있어. 바쁜 아침에 시끄럽게 하지 말고."
목소리와 동시에 어머니의 슬리퍼가 날아왔다.
어이! 정말 나는 이 집 자식 맞아요?
"장가까지 간 놈이 학교조차 혼자 못 가냐?"
그 것보다는 워프 포인트를 지정하지 못했어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명성고교로 가는 법도 설정해야 하니까."
"내가 아침 다 먹을 때까지 거기서 조용히 있어."
아버지는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빵에 잼을 바르고 있었다.
이런 인간들을 내 부모였다니...
이쪽 세계에서나 그쪽 세계에서나 어떤 부모는 없는 편이 낫다. 부모에게 노예로 팔아 먹힌 사람들이 흔하니까.
그래도 내 부모는 날 노예로 팔아먹지는 않았다. 팔아먹은 것은 같지만 적어도 노예는 아니다.
아버지라는 인간이 입 안에 커피와 빵조각을 다 쳐 넣을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아버지의 차로 나는 명성고교에 처음 등교했다.
차에서 내려 아버지는 나를 교무실로 끌고 가, 어느 여선생 앞에 세워났다.
"조 선생님. 선생님 반에 전학 온 학생입니다."
떡칠 화장으로 발악하는 아줌마가 의자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과장님 아들이라고 해서 기대는 안했지만, 생각보다 떨어지네요?"
뭐가? 성적이?
그 아줌마는 내 몸 여기저기를 스캔했다.
"80이 안되는 루저에, B급. 몸은... 근육이 부족하고, 피부색도 안 좋고, 50점이 안되네..."
어이! 아줌마. 당신이 지금 날 점수 매기고 있는 거야?
"이런 함량 미달을 내 반에 밀어 넣는 이유가 뭐죠?"
"선생님 반에 결원이 생겼잖아요."
"그렇다고 아닌 애를 떠맡기는 거잖아요. 싫습니다. 저기 이 선생님 반으로 보내세요."
함량 미달? 아닌 애? 이런 저질 교사가...
나도 참을 수 없어 비꼬았다. "나도 임시직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기 싫습니다."
내 말에 아줌마가 일어서 나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이 아줌마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명성고교에서 담임을 맡는 것은 비정규직 교원이라는 것이고, 그 나이가 되어서 정규직이 못된 것은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40대의 아줌마 히스테리에 말려들기 싫습니다."
내 말에 따귀가 날아왔다.
"난 아직 30대야."
여자가 몇 년 더 늙어 보인다는 것은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는 증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이런 떡칠 화장과 가짜 명품으로 치장한 여자가 제대로 된 사람일 리 없었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그 아줌마를 노려보았다.
"난 아줌마가 아니야. 처녀라고."
그 나이에 결혼 못한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나는 문제 있어요 라고 광고하는 겁니다. 남자들이 비웃을 그런 사실을 자랑하는 겁니까?
"저어 조 선생님. 참으시지요. 아들이 철이 없어 그렇습니다.
그리고 조 선생님, 이번에 새로운 이사장님이 오십니다. 그 분이 이 녀석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음 정규직 채용에 신경 써 줄 테니, 부탁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내 마누라가 이 학교 이사장이 되는 거지. 확 짤라 버릴까 보다. 미친 노처녀!
아줌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았다. "따라 와!"
아줌마는 손에 태블릿을 들고 교무실을 나갔고, 나는 따라갔다.
나의 소속은 1학년 3반, 22명 클래스였다.
아줌마는 나를 소개시키려 했다.
"전 달에 전학 간 우진이 대신에 전학생이 왔다. 야 너! 자기 소개해라."
이 아줌마는 존대말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송 재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녀석은 지난 주까지 바로 옆 00고교에서 다녔다. 일반계에서 전학 왔으니 우리를 잘 모를 거니 자세히 알려줘라. 문제가 일어나면 우리가 골치 아프다."
어이! 평범한 고교생을 문제아 취급하는 겁니까?
그런데 교실 안 다른 학생들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특별학교 학생들은 일반 고교 학생을 잠재적 문제아 내지 범죄자로 보고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에 나에 대한 경멸과 자신들에 대한 우월감이 가득 차 있었다. 졸업 후에 자신들 밑을 닦고 다닐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기 빈자리에 앉으면 됩니까?"
화가 났지만 참고, 빈자리를 가리켰다.
그런데 뒤에 있던 한 명이 급히 일어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뒤에 있던 2명도 일어서 그 뒤와 뒤를 채웠다. ‘네 자리는 맨 뒤야’라고 말하듯.
동시에 공석이 된 자리의 옆에 있던 두 사람이 책상 채로 옆으로 옮겼다. 내가 앉을 라인이 옆 라인에 비해 뒤로 2자리가 적어졌다.
갑자기 한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를 옮긴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나와 자리를 바꾸자."
모든 학생들의 눈빛을 받으며, 두 여학생은 자리를 바꾸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은 내 옆으로 책상을 옮겼다.
"야 너! 저기에 앉아. 그리고 조용히 있어. 괜히 문제 일으키지 말고."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난 빈자리에 가 앉았다.
짧은 조례가 끝나고, 아줌마가 교실을 나가려 했다.
내 옆으로 온 여학생이 일어났다. "차렷, 경례."
여학생의 호령에 학생들이 아줌마에게 인사를 했다. 그 여학생은 반장이었다.
여학생은 자리에 앉아 나에게 인사했다.
"나는 이현정이야. 반장."
"난 송 재신."
"앞으로 잘 지내자."
그렇게 인사하고 있던 내 주위에 학생 몇 명이 몰려왔다.
"어이! 저 옆의 똥통에서 왔다며? 후우... 냄새 나네..."
싸가지 없는 여자가 코 주위를 손으로 흔들었다.
"그 곳은 일진 투성이라던데. 너도 문제 일으켜 전학 온 거냐?" 재수 없는 남자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머리에 똥만 들은 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말야... 앞으로 우리 집에 치킨 배달할 것들이 말이지."
개념 없는 여자의 말에 그들이 웃었다.
현정이 일어나 항의했다. "그만해. 전학생에게 너무 하잖아?"
"야! 이현정. 이런 쓰레기를 변호할 필요 없잖아? 아~! 너도 이 쓰레기도 흙수저들이니 통할 수 있겠네. 아니야?"
뇌에 화장품으로 가득 찬 여자의 말에 주위 사람들은 다시 웃었다.
명성고교! 원래 명칭은 명성 외국어 고등학교. 특수목적고등학교이다. 졸업생의 80%가 sky에 진학한다는 입시 명문교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시험을 뚫고 입학하는 대학 진학 예비고교였다.
내가 입학 시험에 불합격한 곳으로, 아버지가 이 명성 재단의 총무 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명성고교 진학에 실패하자, 날 인생 실패자로 매도하며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었다. 나에게 좌절과 슬픔을 안겨준 곳이었다.
"망해버릴 학교 주제에 말이 많네."
명성 재단은 요즈음엔 재단 비리로 말이 많았다. 이사장의 뻘짓으로 재단에 큰 손실이 있고, 내년 신입생을 받지 못할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너희도 명성고교 출신이라면 비리 고교 졸업자라는 사실이 꼬리표로 붙을 텐데? 앞으로 이력서 쓸 때 문제가 많겠어?"
내 말이 주위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쓰레기 주제에 말이 많네."
"똥통학교 출신이 자존심은..."
"네 자리로 돌아가! 여기는 네가 있을 자리가 아냐!"
정말 마법을 사용해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만해! 수업 시작이야. 선생님이 왔어." 현정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교단으로 향했다. 벌써 1교시 영어 교사가 들어와 있었다.
나를 공격하려던 사람들은 나를 노려보며 자신들의 자리에 앉았다.
현정의 차렷경례 이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 전학생이 있는데 누구지?"
중년 남자 선생의 물음에 나는 손을 들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태블릿을 내밀었다. 화면 안에 영어로 빼곡히 적힌 문서가 열려있었다.
"읽어봐."
나는 태블릿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언어이해 마법이 있었다. 세상 모든 언어 듣고 말하고, 문자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으로 나는 쉽게 지문을 읽었다.
모두 읽었지만 선생은 아무 말 없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선생이 물어왔다. "시간이 더 필요해?"
"아니요. 이런 어려운 지문은 우리 수준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모든 학생들이 웃었다.
"지금 우리의 수준으로는 소비자 선택에 의한 수요 곡선 도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와 케인즈 학파의 논쟁은 더욱 어렵습니다."
내 말에 선생의 얼굴이 달라졌다.
"그리고 여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도 많습니다. 이 글은 아무래도 미국 대학의 경제학 교과서의 일부로 생각됩니다. 우리 수준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선생은 웃으며 내 손의 태블릿을 받아들었다.
"전학생이라고 무시했는데 괜찮은 실력이군."
나를 쳐다보는 학생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이후 수업시간은 조금 지루했다. 이미 영어를 마스터한 나에게 고교 영어는 지루했다.
3교시가 시작되려 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2외국어 시간이었다.
현정이 물어왔다. "송재신. 제2외국어 선택은 뭐지?"
"아마 독일어일 거야."
교실을 옮길 이유가 없어서 선택했다.
"그럼 이 교실에서 수업 받는 거야."
"고마워."
현정은 다른 교실로 이동했고, 다른 반 몇 명이 3반 교실로 들어왔다. 전학생의 소문이 퍼져서 다른 반의 사람들도 조례 시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독일어 시간에도 유창한 독일어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점심 시간 이후 6교시에 수학이었다. 나는 수학에 자신 있었다. 내가 명성고교 입학에 실패했던 이유는 국어영어의 어학에 약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수학 선생에게 지명당해 앞으로 나와서 실력을 보여야 했다.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잘 넘어갔다.
이 정도면 무시는 안 당할 수준이라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