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늘어나는 부인들(4) (16/148)



〈 16화 〉늘어나는 부인들(4)

수업이 끝나고 하교 시간이 되었다. 특목고에서 보충과 야자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재신아, 넌 어느 학원을 다녀?" 현정이 물어왔다.

오늘 그녀와 많이 친해졌다.

"아직 다니는 학원이 없어."
현정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이 학원을 다니지 않다니...

"그럼 과외 받는 거야?"

"뭐 비슷한 거야." 더 말하기 싫어 적당히 마무리하려 했다.

현정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나를 굉장한 부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교를 하려 교실을 나오는데 내 앞에 마야가 있었다.

그 주위를 많은 학생들이 마야를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도 여자도 마야의 미모에 함락 당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둘 만의 대화를 보냈다.
‘마야. 여기에 왜 온 거지?’

‘제 문제를 알려고 하다가 여기에 들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에 재단 회의가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서 결과를 듣지 않았다.

‘결과는?’

‘현재 이사장이 파면되고 새로 이사장을 선출하기로 했습니다만, 내가 이사장 되는 것은 변함 없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나와 마야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사이를 의심할 만 했다.

나는 마야에게 다가가 몸을 굽히며 인사했다. "마야씨. 오셨습니까? 행정실은 1층입니다."

‘마야. 여기 사람들에게 우리 사이를 들키면 안 돼.’

내 말을 듣고 마야는 상황을 안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따라오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마야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교직원만 사용할 수 있는 곳에.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문이 닫히자, 나는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낸 후, 전화기 액서사리로 연결한 워프석을 꺼내어 마야의 손을 잡고 마법을 사용했다.

눈을 떠보니 마왕성 안이었다.

나와 마야는 근처 앉을 만한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마야의 손을 잡았다. 그녀에게서 방금 전의 기억이 밀려왔다.

.................................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마야는 현대적 옷들을 입고 내려왔다. 부모님 집에서 온 마야는 아버지의 인도로 명성학원으로 왔었다. 새로운 투자자의 신분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던 명성학원에게 마야가 가져온 금은 위기 탈출의 기회였다. 이사장이 되겠다는 마야의 의지를 명성학원 내부와 투자한 은행들이 강하게 찬성했다.

지난 주에 해임이 결정된 현 이사장의 난동도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경비원들에 의해 끌려 나갔다.

재단 변호사들과 직원들은 마야의 빠른 이사장 취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그 중심에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 것을 알게 되자 불안해졌다. 아버지라는 인간을 잘 알기 때문에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불안해... 아버지 때문에."

"서방님의 아버님이시지만, 그 인간은 믿을 종자가 아닙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 인간에게 재물의 운영을 맡기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그 인간은 공사를 구분 못하니까. 회사 돈을 자기 돈처럼 생각하니..."

재단의 일이 걱정되었다. 더욱이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잘 모르는 마야는 더욱...

"여기 사정을 저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내부에 우리의 눈귀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어디서 구할지..."

나도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살기를 느끼고 마야를 끌어안으며 내 몸으로 가렸다. 순간 우리 주위에 마력 장벽이 형성되었다. 마야의 마법이었다.

"너도 느낀 거야?"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살기가..."

"마법으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굉장한 마력 방출이었어. 우리를 향한."

나는 즉시 살기의 방향으로 스캔 마법을 실시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스캔 범위 밖으로 도망쳤거나 자신의 기척을 없앨 수 있는 존재였다. 굉장한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라노크!"
나는 마력을 담아 라노크를 불렀다.

우리 앞에 불기둥이 보이며 라노크가 나타났다.
"나를 불렀는가?"

"마왕성을 조사해라. 조그만 변화라도 보고해라."

"아무 문제 없다."

"지금 세쓰는 어디에 있지?"

"마왕성 안에 없다."

"마지막 있었던 시간과 장소는?"

"마야가 성을 떠나기 전 이 곳이었다."

순간 무언가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런. 제길!"

"서방님. 왜 그러시죠?"

"마야. 워프 마법을 써. 당장 이 곳에서 탈출 해야해! 장소는."

나는 워프 장소를 둘 만의 대화로 알려주었다.

마야는 내 손을 잡고 워프 마법을 썻다.

마야가 워프한 곳은 명성 학원의 1학년 3반 교실 안이었다.

"마야. 우선 마력은폐를."

내 말에 마야는 은폐 장벽을 발생시켰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워프석을 마야에게 내밀었다. "여기에 마력을 채워줘 마왕성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마야는 마력을 돌 안에 넣으며 물어왔다. "왜 그러시죠? 갑자기 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야. 세쓰가 뭔가 숨기는 것 같다고 말했지?"

"네. 그럼 이 건 세쓰 때문에?"

"그래. 세쓰는 날 죽일 생각이야."

"어떻게? 노예는 주인을 죽일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내가 마력을 쓸 수 없는 여기서는?"

"그래도 불가능합니다. 결투에서 진자는 이긴 자의 노예로 주인을 거역하는 건..."

"마야. 어떻게 노예라는가 본처라는 것이 존재하는 지 알아?"

"그건 당연히."

"너는 잘 모르겠지만, 결투를 할 때 마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마법이 걸려. 그리고 몸에 마법진이 만들어져. 결투 상대에게도.
내가 너와 세쓰와 결투할 때, 결투라고 말하고 수락하는 순간 너희들 몸에 보이지 않는 마력의 흐름이 있었어. 너희들 몸 안에 마법진이 만들어지는 느낌이 들었지."

"그럼 우리에게 과거의 맹약이라는 것은?"

"마족에게 걸린 저주라 할 수 있어."

"그럼. 서방님은?"

"내 몸에 마법진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난 너희들 저주에 자유로워. 하지만 너희들은 달라. 태어날 때부터 걸린 저주 때문에 결투나 노예가 생기는 거야. 왜인지 모르겠어."

"그게 이번 일과 무슨 상관이죠?"

"너희들의 저주는 통하지 않아도, 난 너희들을 지배할 수 있어. 왜일까? 그리고 세쓰가 날 배신할 수 있는 이유가 뭘까?"

마야는 신음을 터트렸다. "마력..."

"그래 너희들은 내 마력에 복종하도록 된 거야. 저주로 인한 마법진으로."

"그럼 왜 마왕성을 나오신 거죠? 여기서는 서방님께서 마법을 못 쓰시잖아요. 그럼 더 불리하게..."

"세쓰는 우리가 마왕성을 나왔을 때, 이 사실을 알았을 거야. 내 지배력이 없어진 것을. 그 틈을 노려 함정을 설치했어. 마왕성에 있는 것은 위험해."

"그 것을 어떻게 아셨죠?"

"라노크를 불러내어 마력으로 조사했어. 그만한 살기를 가진 존재가 있는데 라노크가 이상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이상해. 아무래도 나와 네가 없는 사이에 세쓰는 마왕성을 장악한 거야."

"그걸 어떻게?"

"세쓰는 나에게 복종하지만 너에게 복종할 이유가 없거든. 내가 세쓰를 억누르지 못하는 사이에 그 녀석은 마음대로 마왕성을 고쳐 놓은 거야. 자기 입맛에 맞게."

"그 것을 어떻게 아셨죠?"

"방금 라노크는 마지막으로 세쓰를 본 것이 네가 마왕성을 떠날 때라고 했어. 나는 마왕성 여기 저기에 마력으로 마킹했는데, 세쓰는 마왕성을 떠나지 않았고 그 중 하나가 찾아냈지."

"그 곳이 어디였죠?"

"마법진이 새겨진 마석 앞."

마야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 녀석은 마왕성의 마법진을 고쳐 놓으려 하는 것이 분명해. 나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하지만 완료하지 못했어. 그 녀석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지."

"그럼 어떻게 하실 거죠?"

"우선 마왕성으로 돌아가야지. 내가 싸우려면 그 곳에서니까."

"그럼 왜 여기로 오신 거죠? 그 안에서도."

"그 녀석이 나를 못 찾게 하기 위해서야. 여기서 내 기척을 지우고 마왕성으로 돌아갈 거야."

"우리가 워프 마법을 쓰면 세쓰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것을 쓰면 가능하지."
나는 마야가 마력을 채운 워프석을 내밀었다.

마주보는 우리 두 사람 뒤에서 한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신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죠? 송재신? 너야?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현정이었다.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나고, 당신들은 뭐지? 언제 나타난 거지?"

"그러는 반장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놓고 온 물건이 있어 다시 왔어. 그런데 어떻게 당신들이 있지? 내가 여기 있었는데 당신들이 들어온 것을 본 적이 없어. 문도 안 열렸고, 어떻게 들어온 거지? 아니 어떻게 나타난 거지?"

마야가 현정에게로 다가갔다. "서방님. 이 여자의 기억을 지우겠습니다."

그런데 워프석이 빛나고 있었다. "늦었어. 빨리 날 잡아."

마야는 마력을 느끼고 급히 내 몸에 안겼다.

"뭐야 당신들. 여기서 뭘 하는 거야? 학교 안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는 거야. 떨어져 어서! 불결해!"

소리를 지르며 현정은 우리에게 달려들어 마야의 몸을 잡았다. 순간 워프가 일어났다.

.......................

눈을 떠보니 주위가 어두웠다. 내가 생각했던 장소에 왔다.

나는 빛의 마법으로 주위를 밝혔다.

"서방님. 여기가 어디죠?"

내 품 안에 마야가 있었다. 그런데 다른 감촉도 느껴졌다.

"여긴 어디지? 어떻게 된 거지?" 현정의 목소리였다.

나와 마야 사이에서 우리 둘을 떼어놓기 위해 현정은 마야의 몸을 잡았다. 순간 워프가 일어나 현정까지 여기에 온 것이었다.

현정은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지? 교실이 아니잖아?"

마야는 현정에게 기억을 지우는 마법을 쓰려했지만, 내가 그 손을 잡고 막았다.

"왜... 이 여자가 알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마력을 아껴야 해. 그 녀석 뿐만 아니라 마왕성 안의 정령들도 상대해야 해."

"마왕성? 정령? 너 중2병이었어? 그리고 그 여자는 뭐지? 널 서방님이라고 부르는데, 너희들 코스프레 동회회야?"

"조용히 해라. 여기는 나의 성 안이다."

"송 재신! 설명해 봐. 여기는 어디지? 교실이 아니잖아. 이 여자는 뭐지?"

"현정아.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 너에게 설명해 줄 시간이 없어. 그러니 이번 일이 정리되면 자세히 설명해 줄게. 지금은 급해!"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있으라는 거야? 날 빨리 교실로 돌려보내. 학원에 늦었단 말야."

"이 장소에서 나오는 순간, 너도 표적이 될 거야. 나와 관련이 있으니."

"세쓰가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있군요." 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그 놈을 굴복시키고 마왕성을 탈환해야 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인질이 될 수 있다고? 너는 뭐하는 사람이야?"

짝! 마야는 현정의 뺨을 때렸다.
"지금 우리가 장난하는 것으로 보이냐? 서방님께서는 네 목숨이 걱정되어 이렇게 하는 것이다. 죽기 싫으면 조용히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 우리와 멀어지는 순간 너는 죽은 목숨이다. 그걸 모르겠느냐?"

"맞아 현정아. 너는 지금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한 거야. 그러니 조용히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

나와 마야의 심각한 태도에 현정이 조용해졌다.

"그럼 싸움 준비를 해야겠어."

나는 방 안에 있는 방어구와 무기로 전투 준비를 했다.

마야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는 어디죠? 그리고 어떻게 이런 준비를..."

"여기는 새로 만든 목욕탕 밑이야. 마물들을 시켜 새로 만들게 했지. 내가 가진 워프석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도록 결계를 만들었어. 라노크도 모르도록."

"서방님 전용 공간이군요. 그래서 저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 무기들은..."

"창고에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만들었어. 마물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줬지. 특히 이 것은 말야. 그리고 네 주머니 창고 마법처럼 이곳은 내가 마음대로 넣고 뺄 수 있도록 했어."

나는 라이트세이버 전용 마석 막대기를 잡고 흔들었다.

"그렇군요. 밖으로 나가서 워프를 사용한 이유... 세쓰가 모르도록."

"라노크도 몰라야 하니까."

"라노크가 배신한 건가요?"

"그 것보다는 세쓰가 라노크의 봉인을 푼 거지. 나를 공격할 수 있도록. 세쓰는 마왕의 징표를 가지고 있잖아? 그 것을 사용한 것이야."

"과연... 라노크를 마왕성에 봉인한 그 분이 만든 마도구니... 그럼 라노크가 봉인에서 풀려난 겁니까?"

"아니! 나를 죽일 기회만 찾고 있을 거야.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세쓰는 그렇게 간이 큰 놈이 아니야. 라노크에게 나를 죽이면 봉인을 풀리지 않겠다고 말했겠지. 그래서 마법진의 변형이 필요할 테고."

"세쓰가 왜 그렇게..."

"세쓰는 나와 노예 계약이 맺어져 있어. 그 녀석의 손으로 날 죽일 수 없지.
하지만 라노크를 이용하면 가능해. 그래서 라노크를 부추긴 거야. 자기가 가진 마왕의 증표로.
하지만 이후 자신도 라노크에게 당할 가능성이 있어. 그러니 나를 죽이고 다시 라노크를 봉인하기 위해 마법진을 고쳐놓는 것이겠지."

"그렇게 복잡한 일이 가능할까요?"

"그 놈이 가진 마왕의 증표라면 가능할 거야. 그런 계산이 있으니까 잠시간 노예의 치욕을 견디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런 간이 콩알만한 놈이 라노크를 온전히 부활시키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에게 승산이 있어."

"하긴, 그런 속 좁은 놈이 라노크의 힘을 온전히 풀어줄 리 없죠."

"자신이 생각하기에 나를 상대할 정도의 힘만 풀어줄 거야. 그런데 난 그 녀석과의 싸움에 내 온전한 힘의 2/3 정도만 사용했거든."

"서방님께서는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으셨다고요?"

"최후의 일격을 가할 힘은 언제나 남겨두어야 하는 법이야."

나는 장비를 다 갖추고 마야에게 다가갔다.

"그럼 날 투기장으로 보내줘."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위험해. 여기에 있어."

"서방님께서 진다면 저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서방님과 같이 있겠습니다."

나는 웃어주었다. "좋아. 따라와!"

"잠깐! 나는?" 현정이 물어왔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같이 가야겠어. 나와 마야가 없다면 너도 살 수 없을 테니."

내 오른쪽 팔에 마야가 안겨왔다. 현정은 어색한 몸짓으로 내 왼쪽 옆구리에 몸을 밀착시켰다.

....................

투기장에 들어선 나는 두 사람에게서 떨어져 투기장 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라노크!"

내 목소리에 투기장 가운데에 불기둥이 생겨났다.
"마왕을 부인으로 삼을 만한 사내로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거냐?"

나는 라이트세이버로 붉은 칼날을 만들었다.
"말이 필요 없을 것 같군. 여기서 너를 제압하고 나의 정령으로 만들어주지."

"너 같은 인간이 가능할까?"

"나는 두 명의 마왕을 정복하였다. 마왕에게 패배한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웃기는 소리! 나를 봉인한 마왕은 마족 역사의 최고 영웅이었다. 저런 평범한 마왕들은 내 상대가 아니다."

"말이 길군. 한방에 끝내 주지."

나는 불기둥을 향해 달려가 빛의 칼날로 공격했다.

정령은 육체가 없는 정신체로, 정령을 공격하려면 물리적 타격이 아닌 마력을 통한 공격이어야 했다. 통상적인 마법은 마력으로 물질을 생성해 물리적 타격을 입히는 방식이었지만, 정령이 쓰는 마법은 마력 자체의 공격이었다.

나의 빛의 칼날이 불기둥을 찔렀을 때, 라노크가 타격 받은 것이 느껴졌다. 라노크는 내 빛의 칼날의 색을 보고 불 마법을 이용한 불기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지만, 라이트 세이버는 마력 자체로 타격하는 것이었다. 라이트세이버의 칼날에 맞은 부분에서 불기둥이 사라지자, 라노크는 뒤로 물러서 나와 거리를 만들었다.

"네 놈. 그 마법은 뭐냐? 어떻게 인간의 마법이 내 몸을..."

"말했잖아?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게다가 본래 힘의 반도 회복하지 못한 네가 말야."

공격이 성공한 순간 알 수 있었다. 라노크의 힘은 너무 약했다. 내가 두번째 세계에서 굴복시켰던 고위 마물들에 비해서도 약했다. 아무래도 세쓰는 겁이 너무 많았다.

"이봐~! 세쓰! 이대로 이 놈을 이길 수 없다. 나의 봉인을 완전히 해제해라." 라노크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세쓰와 라노크는 계약을 맺은 모양이었다. 라노크가 나를 죽이면 세쓰가 자유를 주겠다고. 하지만 라노크를 원하는 세쓰가 봉인을 완전히 해제할 마음이 있을까?

"뭐하는 거냐? 내가 지면 너는 이 놈에게 죽는다. 빨리 내 봉인을."

"어이, 바보 정령! 그 겁쟁이 바보가 널 풀어줄까?"

"뭐라고?"

"그런 놈의 말을 정말로 믿은 거냐? 날 죽이면 자유를 준다? 과연 그 놈이 그렇게 할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그 놈은 날 죽인 이후에도 널 마왕성에 가두고 써먹을 마음이다. 네 봉인을 완전히 풀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그 것을 모르는가?"

"그럴 리 없다. 세쓰는 마왕. 마왕의 명예를 걸고 약속했다."

"그런 놈이 마왕? 이봐 세쓰. 내 말이 들리면 당장 여기에 와라!"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네가 만든 결계가 내 명령을 막는 것 같다. 이봐, 라노크. 세쓰를 이곳에 불러내. 내 말이 맞는지 확인하자구."

라노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마력을 방출했다. "이제 그 자를 불러올 수 있다."

세쓰에 대한 결계는 라노크가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세쓰! 당장 내 앞에 나와!"

내 큰소리에 세쓰가 워프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세쓰. 묻겠다. 너는 나의 뭐냐?"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는... 당신의 노예입니다."

"라노크! 바로 저 것이 네가 말하던 마왕인가?"

"세쓰! 네가 말한 것이 거짓이었나? 나를 자유로 만들어주겠다는 것 말이다."

라노크의 물음에 세쓰는 아무 말 못했다.

"세쓰! 바른대로 말하라."

내 명령에 그는 입을 열었다.
"나의 주인이 죽는다면, 나는 자유가 된다. 그러면 난 라노크의 봉인을 풀어낼 수 있다. 그래서 라노크에게 제안했다."

"그럼 왜 라노크의 봉인을 완전히 해제하지 않은 거지?"

"그건... 내가 위험해 지니까..."

"그것보다 라노크를 자유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이 거짓말 아닌가?"

세쓰는 아무 말 못한 채 나의 시선을 피했다.

"말해라!"

"그... 그렇습니다. 당신이 죽고 난 뒤라도 난 마왕성이, 라노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죽은 후에 라노크를..."

"네가 마법진을 변경한 것은 복종의 대상이 마왕뿐이라고, 네가 가진 마왕의 증표를 가진 자에게만 라노크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나?"

"그.,. 그렇습니다."

라노크의 불길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이 비겁한 놈. 날 속이다니!"

불길이 세쓰를 공격하려 하자, 그는 마왕의 징표인 검으로 막아냈다.
"마왕의 명령이다. 나를 공격하지 말아라."

불길이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다른 명령을 하려했지만, 입에서 나오지 않는 듯 했다.

"노예 계약 때문에 나를 공격할 수 없나보군. 세쓰! 그 마왕의 징표를 넘겨라. 주인의 명령이다."

"아... 안돼. 이 것만은 이 것이 없으면 나는..."

말과는 달리 그는 나에게로 걸어와 검의 날을 두 손 위에 올려놓고 나에게 내밀었다.

"이럴 수 없어. 이 것이 없다면 나는 마왕이 아니야."

나는 칼의 손잡이를 잡고 휘둘렀다. 마왕의 징표의 칼은 내 손에 들어왔다.

"마야!"

마야는 내 옆으로 달려왔다.

"이 검을 부숴버려야 겠다. 라노크의 봉인을 풀어주겠다."

마야, 세쓰, 라노크는 놀랐다.

"서방님. 그러면 라노크는 자유가 됩니다."

"라노크의 맹약은 전 마왕이 만든 거야. 천년이 넘은 낡은 것으로 속박할 이유가 없어. 그러니!"

나는 라노크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여기서 이 녀석을 굴복시키고 새로운 주인이 되겠어."

나는 마력을 주입해 검을 부러뜨리고 손잡이를 내던져 발로 밟고 장식까지 부수었다.

주위에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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