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우리의 아군
눈을 뜨니 무책임한 놈의 세계였다.
- 왜 또 나를 부른 거지?
"너에게 용무는 마왕 토벌뿐이야."
- 또? 나 말고 다른 사람 없어?
"지금까지 몇 만명을 시험해봤지. 너 만한 사람이 없었어. 거의 한번에 실패했었거든?"
- 그럼 그 사람들은 꿈으로 기억하는 거야?
"처음 너처럼 꿈 깬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난 내 권속을 죽이고 싶지 않거든? 성공했던 실패했던 내 명령을 따른 이들이니까."
- 그럼 성공한 사람은 나뿐이라는 거야?
"몇 명 있었어. 꿈 속 세계에서 마왕 토벌에 성공한 사람이 몇 있었지. 넌 모르겠지만, 네가 만난 사람들 중에 몇몇은 내가 보낸 사람들이었어. 너도 그 쪽들도 모른 채 살았지."
- 그 사람들도 죽으면 꿈이 깨는 거냐?
"물론! 나를 위해 애쓴 사람들을 죽일 수 없잖아?"
- 그럼 성공 보수는?
"없어! 재소환 되면 전에 가지고 있던 능력을 그대로 가지는 것 뿐. 두 번 이상 성공한 사람은 너뿐이야. 솔직히 말해 첫 번째는 네가 성공한 것이 아니잖아? 뭐... 내가 보낸 다른 사람이 성공했었으니까."
- 그럼 용사 프레드릭이 네가 보낸 사람? 그 사람을 또 소환했었어? 내가 만나 본 사람이야?
"너의 두 번째 소환에서 네 동료였어. 이름도 프레드릭. 하지만 성공 못했잖아? 난 그가 성공할 줄 알았는데, 네가 성공했어. 그래서 오차가 생겼지."
- 그 오차라는 것이 마왕 토벌에 성공해도 이 쪽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
"맞아. 난 프레드릭에 맞춰 계획을 세웠는데, 네가 성공했어. 다시 널 불러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지. 그런데 넌 그 쪽 세계에서 즐기고 있었어. 그래서 더 즐기라고 내버려뒀어. 그리고 널 더 써먹고 싶어서 가호를 내려줬지."
- 여성을 안으면 레벨이 오르는 그 것?
"넌 내 상상 이상으로 레벨을 올렸어. 솔직히 네가 쓰던 그 기술은 나도 상상도 못했던 거야. 하루에 백명 이상을 상대하는 그런 것은 생각지 못했던 오차였지."
- 지친 몸에 힐링을 거는 그 것?
"그 쪽 세계 사람들에게 힐링으로 체력을 회복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어. 더욱이 그런 일에. 너도 꽤 즐기는 것 같더라?"
- 부정하지 않겠어. 하지만 짐승처럼 그 것만 하고 있을 수 없어.
"그래서 내가 널 다시 부른 거야. 마왕을 토벌하다 보면 여자가 붙을 테고, 즐기다 이 쪽으로 데려오면 되잖아?"
- 난 더 이상 부인을 늘리기 싫어. 마야 하나면 족했지만, 미야는 마야의 오빠, 아니 동생이니까 받아들인 것뿐이야.
"지금 두 명이 널 상대하기도 힘들잖아? 넌 하루에 열번 이상 해야지 만족하던데?"
- 힐링을 걸어주면 돼.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 마야는 널 상대하기 힘들어 부인을 늘리려는 거야."
- 마야가 그런 생각을?
"미야도 그럴 걸? 오랫동안 남자로 살다가, 하루에 열 번 이상 널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 그만! 그 건 나중에 생각하고. 날 부른 용건이 뭐지? 또 마왕 토벌?
"물론이야. 내 신전을 파괴하는 못된 놈이 있어서 네가 해결해줘야 겠어."
- 그 고생을 또 다시? 저번에 빨리 끝내려 했지만, 6개월이 걸렸어.
"빨리 끝내고 싶으면 두 사람을 데려가. 네 부인들."
- 가능해?
"한번 갈 때마다 한가지씩 축복을 내려줄게. 이번엔 네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는 능력이야."
- 최대 인원은?
"세 사람. 너까지 네 사람이네."
- 좋아. 그럼 마야와 미야를 데리고 가지.
"그럼 부탁해."
....................
눈을 뜨니 파괴된 신전의 제단 위였다.
"여기는 어디죠?" 마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마야와 미야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는 또 다른 세계. 우리는 마왕 토벌을 위해 여기에 온 거야."
마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군요. 그리운 광경입니다. 이 곳의 건물들은."
"우리가 살던 세계와 비슷한 것 같군."
미야는 몸을 흔들며 준비운동을 하는 듯 했다.
"내가 너희를 불렀어. 셋이 함께라면 쉬워질 것 같으니까."
"그럼 서방님께서는 몇 번이고 인간과 마족의 싸움에 끼어든 겁니까?"
"정확히 세 번. 네가 세 번째야."
"그럼 두 번은?"
"첫 번째 마왕을 죽인 자는 내가 아니었어. 두 번째는 내 손으로 했었지. 세 번째는 마야, 너였어. 지금은 네 번째야."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미야가 물어왔다.
"여기 마왕을 죽이면 돌아갈 수 있어? 대한민국으로. 오기 전의 그 때로"
"오기 전의 그 때라면?"
"마야의 이사장 취임식장."
"호오? 여기서도 주머니 마법이 사용 가능하군요." 마야는 마력으로 만든 구멍에서 여러 가지를 꺼냈다.
나도 미야도 마법으로 여러 장비를 꺼내었다. 경험 많은 우리들은 앞으로 벌어진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싸움을 해야 하는.
먼저 우리는 전투에 적합한 옷으로 갈아입고 각종 장비들로 무장했다.
마야는 검은색의 윗옷, 바지와 로브를 입었다. 마법 지팡이를 들고, 시험 삼아 작은 불과 얼음 마법을 사용했다. 여기서도 열 손가락으로 마법이 사용이 가능했다.
미야는 분홍색 옷에 노란색의 가죽 갑옷을 입고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검을 뽑아 공중에 휘두르니 마력에 의해 검의 길이가 10m 이상 길어졌다.
그녀는 신전 기둥을 향해 검으로 마력을 내뿜었다. 그녀의 검기에 신전 기둥 5개가 한꺼번에 잘려 나가며, 파편들이 부채꼴 형태로 흩어졌다.
"여자의 몸이 되어도 위력은 변함이 없네."
미야는 만족한 듯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녀의 실력은 몸이 변해도 변함이 없었다.
나는 특수 제작한 옷을 입고 라이트세이버용 마도구 10개를 허리에 찬 후에 마법사용 로브를 입었다.
"서방님께서는 마법사용 장비를 사용하시는 군요." 미야가 물어왔다.
"나는 원래 마법사였어. 접근전에 능한 마법전사라 할 수 있지."
"가지고 계신 마도구들은 직접 제작하신 겁니까?" 마야가 물어왔다.
"마왕성의 마물들은 기술이 좋더군.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줬어."
나는 내 기술에 적합하도록 마도구를 제작해왔다. 마물들에게 원하는 것을 설명해주니, 바로 그대로 만들어왔다.
속옷은 항온 마법으로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고, 위급할 때 회복마법을 자동 발동하여 내 몸을 치료해 줄 수 있었다. 몸이 상하는 마법을 자주 사용하는 나에게 필수적이었다.
신발은 바람 마법이 자동으로 생성되도록 했다.
나는 바람 마법을 응용해 고속 이동 기술을 창안했었다. 이 기술로 미야를 이겼다.
이 기술을 사용할 경우 공격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타임랙이 존재했지만, 바람 마법을 생성하는 이 신발이 있으면 다른 공격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다. 즉 고속 이동 도중에 원거리 요격과 근거리 타격이 동시에 가능해졌다.
셔츠와 바지는 절대 방어와 마력의 저장이 가능했다. 이 옷들에 나는 1년분의 마력을 저장시켰다.
로브는 방어와 마력 증폭에 특화되었다. 고급마법을 3번 이상 방어할 수 있는 마력 장벽으로 감싸 있고, 마력 증폭으로 마법을 쓸 경우 위력이 3배 이상 높아졌다. 안에 입은 세츠와 바지에서 마력을 공급하면, 소총탄도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마법으로 시험해 보니, 고급 마법 2번 연속 사용으로 눈에 잘 안보이는 작은 흠집이 고작이었다.
라이트세이버는 마법을 쓰는 지팡이 역할과 접근전 무기의 역할을 동시에 했다. 먼거리의 적은 마법으로 공격하고 가까운 적은 빛의 칼날로 공격하는 전술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마력으로 내구성이 떨어졌다. 여분으로 10개 이상이 필요할 것 같았다.
모든 장비를 갖추고 있는데, 미야가 다가와 내 몸에 코를 들이댔다.
"미야. 뭐하는 거지?"
"서방님. 이 거... 냄새가 지독한데요?"
"냄새?" 내가 로브에 코를 대니 썩은 냄새가 났다.
"서방님. 이 마도구들에 자동 수복 기능이 있습니까?"
"물론 외부 타격에 방어하고 손상을 복구하는 기능이 있어."
"그럼 세정 기능은?"
미야의 말에 나는 놀랐다. 그 것까지 생각 못했다.
마야는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내가 입은 로브와 신발이 깨끗해지며 색이 더 밝아졌다.
"서방님의 마도구들은 관리가 필요한 것들이네요."
미야는 자신의 마도구들을 자랑했다. "저의 마도구들은 관리가 잘되어 이렇게 반짝이죠."
확실히 미야의 마도구들은 내 것보다 화려해 보였다. 그런데 도구들의 모습이...
"그 것들 여기, 대한민국에 와서 만든 것들이냐?"
"아니요. 전부터 내가 쓰던 것들입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의 입은 옷과 도구들을 보니, 모두가... 귀여워 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에 갓 들어온 소녀들이 좋아할 것들이었다.
분홍색, 아니 베이비 핑크색 셔츠와 노란색 가죽 갑옷을 입고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갑옷이 유치원 원아복 같았다.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은 여기저기에 반짝이는 보석이 붙어있으며, 손잡이는 장난감 마술 지팡이 같고, 칼집에 그려진 그림은 곰돌이처럼 보였다.
"그 것들... 누가 만들어 준 거지?"
"내가 직접 지시해서 만든 것들입니다."
"네가 직접이라면... 마물들에게 장식도 일일이 지시한 거야?"
미야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문제냐 라는 식이었다.
나는 세쓰의 실력을 보고 미야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런데 지금 미야를 보니 이렇게 된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는 유치해 보이는 것들을 들고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기뻐했다. 마법지팡이를 들고 ‘변신 마법 천사’를 외치는 것처럼, 자신의 칼을 들고 휘둘렀다. 푸른 모자와 노란 갑옷을 입은 미야는 유아로 퇴행한 중학교 1학년생이었다.
나는 조용히 마야에게 둘 만의 대화를 신청했다.
‘마야... 미야가 원래 저런 사람이었어?’
‘미야는 세쓰 시절부터 저런 분위기의 도구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럼 지금의 미야가 가진 저런 것들을 평소에도?’
‘무슨 문제 있습니까?’
‘미야의 방도 저런 분위기야? 노란색과 푸른색으로 가득 찬? 저런 분위기의?’
‘미야는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강한 전사 미야에 대한 이미지가 무너졌다.
"미야. 네가 마왕성에서 입는 옷을 어떻게 생각하지?"
"서방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르는 겁니다."
"솔직히 네 취향은 그렇지 않지? 네 마음대로 입고 싶지 않아?"
"제 마음대로 입어도 되는 건가요? 괜찮은 겁니까?"
미야는 소꿉놀이를 허락받은 유아와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옷 입는 것까지 뭐라고 말할 생각이 없어. 그런 건 네 마음대로 해."
"정말이시죠? 내 마음대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야는 기뻐 날뛰며 좋아했다.
...............................
우리가 신전을 나오니 폐허가 된 도시 한 가운데였다. 신전을 나오는데 이 신전 주인의 이름이 보였다. ‘에브람’, 이 곳에서 무책임한 놈의 이름이 에브람인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부서진 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땅 위의 말발굽, 발자국들이 선명했다. 주변의 핏자국을 보고 손에 대어보니 얼마 되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핏자국들은 인간의 것들 외에 여러 마물들의 것들도 있었다.
"며칠 전에 여기서 전투가 있었던 것 같군."
마야는 근처 무너진 돌 더미에서 시체를 찾았다.
"군인 아닌 사람들도 꽤 많이 당했군요. 그리고 이 것은..."
미야가 손에 들어서 보여진 것은 옷에서 찢어진 천 조각이었다. 여성의 것으로 보였다.
"전쟁터는 어디나 같군요. 잔학 행위는."
미야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시체들이 쌓여있었다. 가까이 보니 전투원들이 아닌 것 같았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인 것 같습니다. 아이, 여자, 노인을 가리지 않고."
시체 더미 속에서 작은 손과 발이 보였다.
이런 광경을 너무 많이 본 적 있어 놀랍지 않다.
첫 번째 소환에서 나는 수많은 전쟁터를 누볐다. 이번과 같은 인간들에 대한 잔학 행위도 보았고, 적에 대한 잔학 행위에 참가했었다.
포로와 민간인에 대한 행동 요령이 통하는 21세기와 달리, 우리가 있는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상식이었다.
적이라면 말살한다. 민간인과 전투원의 구분 없이 모두 적이다. 패배한 자를 노예로 삼고 노예가 되어 생명을 보전한다. 이런 암흑 시대의 논리가 상식이었다.
적에게 점령당하는 마을도, 우리가 점령한 마을도 모두 같은 대우를 받았다.
노예를 희망하면 살려두지만, 전쟁터에서 관리 가능한 노예의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죽이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나도 저항하지 못하는 비전투원에 대한 학살에 참가했고, 명령도 했다. 싫어도 해야 했고, 해야만 동료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소환에서 경우에 따라 자비가 쓸모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비를 베푼 직후, 우리는 그 마을 사람들에게 배신당했다. 그들의 정보로 포위당한 우리는 원군에게 구조되기까지 두려움과 굶주림에 떨었다. 살아남은 나와 동료들은 적들과 배신자들에게 복수를 맹세했다.
몇 개월 후, 재점령한 그 마을을 우리는 복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말살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잡아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촌장과 노인들을 내 손으로 죽인 후, 남자들을 모아 한 집에 가두고 그 집에 불태워 죽였다.
마을 남자들을 모두를 죽인 후, 일정한 나이 대 여자들 외에 여자들도 죽이고 시체를 불태워 버렸다.
나는 전의 생존자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살려둔 여자들 선택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20여명의 생존자들이 1명씩 고른 후, 남은 여자들을 후에 참가한 부대원들에게 던져 넣었다. 마음대로 하라는 말과 함께.
다음날 새벽까지 우리는 여자를 바꿔가며 즐기고, 마지막에 그녀들을 짐승밥으로 만들었다.
모두가 배신자들과 생존자들의 대가였다. 정당한 일이었다. 복수에 눈이 먼 나와 동료들은 웃으며 그녀들을 짐승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마왕이 죽은 후, 그들 중 살아남은 몇 명은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와 함께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내가 대지모신 신전에서 있을 때, 한 소녀가 나를 죽이려 했었다. 자신을 나의 딸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보통 사람 정도의 마력 밖에 없었다.
과거의 죄책감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 마왕을 죽인 영웅을 배신한 사람들은 나라의 배신자였다. 배신자가 된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땅에 묻은 후, 나에게 복수하고 자신도 죽으려 했다.
불쌍한 마음에 그녀를 받아주고 나의 아기를 낳게 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녀는 나의 아이들을 낳았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 세계를 떠났었다.
그런 생각에 잠기어 있을 때, 미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까운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
우리는 마력의 흐름을 느끼며 전장에 다가갔다. 근처 높은 언덕 위에 올라가니, 전투 장면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한 쪽의 군사는 2만, 다른 쪽은 3만 정도로 팽팽했다.
그런데 2만 쪽에서 ‘에브람님 만세’라는 소리가 들렸다. 무책임한 놈은 자신의 신전에 나를 보낸다 했다. 그럼 지금 소리 지른 쪽이 우리 편이었다.
자세히 보니 우리 편이라 생각했던 쪽이 인간들의 군대였고, 상대는 마족들이었다.
나는 마야와 미야를 바라보았다.
"어때? 인간과 마족들이 싸우는데. 마족으로서 어느 쪽 편을 들고 싶지?"
"저와 미야는 서방님의 아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서방님이 인간이시면 저희도 인간입니다."
"저의 몸은 서방님의 것으로 바뀐 겁니다. 이제 제 몸 안에 마족의 모습은 없습니다."
마야와 미야가 대답해주었다.
"난 이제부터 인간들 편에 서서 마족과 싸울 거야. 그래도 괜찮아?"
"마족이라해도 다른 세상의 사람. 서방님의 적이면 저의 적이고 미야의 적입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나는 두 사람의 대답에 만족하며 전투를 구경하였다.
마족의 군대가 인족의 군대 한 가운데를 중앙 돌파하려 집중하는 모습이었는데, 인족이 잘 막고 있었다.
보통 회전에서는 중앙의 양쪽 군대가 대치하는 경우 측면 공격으로 결판이 나게 되어 있었는데, 마족은 측면이 아닌 중앙을 노리고 있었다.
인족 군대의 편성을 보니 알 수 있었다. 포진 왼쪽엔 말과 인간의 이동이 힘든 진흙탕이라 공격이 힘들어, 오른쪽에 많은 힘이 집중되어 있었다.
왼쪽에서는 양측 마법사들이 왼쪽 진흙밭에 마법을 걸고 있었다. 인족에서는 흙마법과 물마법으로 진흙 상태를 유지하려 했고, 마족은 마른 땅으로 만들려 하는 것 같았다.
오른쪽에서는 서로 공격과 방어 마법이 난무하며 마족의 공격을 잘 방어하고 있었다. 인족 부대의 주력이 있는 이 곳을 돌파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비는 곳이 중앙으로 생각해, 마족의 주력이 인족의 중앙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다.
"마야, 어떻게 생각하지?"
"인족 지휘관의 능력이 뛰어나군요. 하지만 위험합니다. 중앙이."
미야가 덧붙였다.
"오른쪽에 전력을 투입한 것 같습니다. 왼쪽은 마법사들만으로 이동을 방해하고, 오른쪽을 방어하며... 하지만 중앙에 있는 군인들이 위험하네요. 오른쪽보다 수준이 낮아 보입니다."
그녀들의 말대로 중앙의 군사들의 수준이 오른쪽보다 많이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전쟁은 병사 개개인의 능력보다 조직력이다. 중앙의 병사들의 개인적인 능력이 떨어져 보였지만, 서로를 잘 커버하며 잘 버티고 있었다. 오히려 오른쪽의 병사들이 덜 훈련받은 집단처럼 공격과 수비가 매끄럽지 못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알 수 있었다. 중앙의 병사들은 늙은 베테랑들이, 오른쪽에 젊고 강한 병사들이었다.
지휘관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왼쪽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마법으로 봉쇄하고 중앙에서 적을 잡고 있을 때, 오른쪽에서 적을 돌파하여 상대를 포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른쪽의 상대도 만만치 않아 쉽사리 돌파되지 않았다.
이러면 체력이 약한 쪽이 먼저 무너지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중앙에서 마력의 흐름이 보였다.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창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영창이 길다면 위력이 강한 마법일 것이었다.
보통 무영창 마법을 찬양하지만, 영창 마법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무영창 마법은 발동 시간이 짧고 양손으로 동시에 2가지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마력 조절 실패로 마법이 발현되지 않는 일이 있고, 위력에 비해 마력 소비가 많다.
영창 마법은 그 반대로 발동 시간이 길고 한번에 한가지 마법만 쓸 수 있지만, 적은 마력으로 강한 마법을 실수 없이 쓸 수 있다. 조건만 맞으면 잘 훈련된 영창 마법사는 무영창 마법사 100명에 필적하는 대형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무영창 마법은 모험가나 전사들이 마법사의 지원 없이 싸울 때 적합하고, 영창 마법은 잘 훈련된 조직에 적합하다. 영창 마법은 발동 시간 동안 마법사용자를 지켜줄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영창 마법은 무영창 마법보다 푸대접을 받는다.
이 것은 사회적 영향이 크다. 영창 마법의 발동을 위해 지켜줄 병사들이 필요해 오랜 시간 동안 훈련이 필요 했지만, 무영창 마법사는 조그만 훈련으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한 명의 영창 마법사를 사용하기보다 무영창 마법사 100명을 배치하는 쪽을 선호했다. 더욱이 영창 마법사는 작전 수행 도중 이동에 큰 제한이 있지만, 무영창 마법사는 무기를 들고 접근전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 결국 무영창 마법사는 비용과 전술적으로 유리했다.
그런데 지금의 전장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이렇게 대규모 병사들이 움직이는 전장에서 영창 마법사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마력이 움직이고 있어. 이 것이 영창 마법이라면..."
내 혼잣말을 마야와 미야가 들었다.
마야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설마 지금의 마법은 메테오? 게다가 화염 마법을 동시에?"
"하늘에서 불 바위들이 떨어지는 건가?" 미야가 신음을 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마족 군대 한 가운데로 하늘에서 화염덩어리들이 떨어졌다. 떨어진 덩어리들은 굉음과 충격을 내며 땅을 뒤흔들었고, 주위로 불파편들이 튀어나갔다. 낙하한 곳에 있던 적 병사들과 주위에서 불파편을 맞은 병사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그 것이 끝이 아니었다. 병사를 죽인 불파편들은 유도탄처럼 적병사들을 공격했고, 병사들에 붙은 불은 가까운 다른 병사들 몸을 다시 공격했다. 살아있는 생명처럼 불들은 여기저기로 움직이며 병사들을 공격했다. 대형 마법을 사용한 대규모 살상이었다. 중앙에 배치된 마족의 군대들 중 한 무리가 거의 전멸했다.
중앙의 한 부분이 한번의 마법 공격으로 괴멸되자, 마족의 전선이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법의 불길들이 사라지자 중앙에 있던 인족 군사들이 무주공산이 된 상대 중앙에 뛰어들었다.
대형 마법의 피해로 생긴 구멍은 순식간에 인족 병사들로 채워졌고, 마족들의 중앙 진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앙에 있는 마족의 부대들의 전열이 흩어지고, 등을 보이는 병사들이 생기는 것이었다.
중앙이 무너지자 왼쪽의 마족 군대들은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오른쪽에서도 마족 병사들의 전열이 소멸되어 무질서한 패주가 시작되었다.
팽팽하던 회전에서 전열이 무너지는 것은 패배와 대량 살육의 시작을 의미했다. 적에게 등을 보인 시점에서 그들은 이미 군대가 아니라 적병의 공격 연습 상대였다. 인족 병사들은 달아나는 적들을 추격해 죽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승부는 났군. 더 볼 것 없어."
내가 등을 돌려 언덕을 내려오자 두 사람이 따라왔다.
"어떻게 생각하지? 저 군대."
미야가 대답했다.
"훈련이 잘 된 것 같고, 상당히 훌륭한 지휘관이었습니다. 적을 끌어들여 마법으로 최대한 피해를 입혀 승리한다. 좋은 전략이었습니다."
"마야가 보기에는 어때?"
"마법사 말입니까? 대단했습니다."
"그것보다 마야가 저 곳에 있었다면 저런 마법을 쓸 수 있겠어? 가능은 하겠지만."
"사용한 마법보다 한 곳으로 적을 몰아넣은 것이 중요하겠죠."
"미야도 그렇게 생각해?"
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여기서 우리의 중요한 아군을 만난 것 같군."
...........................
근처 마을에 들어가 숙식을 청하려 했지만, 민가들만 있는 곳에 우리가 잘 수 있는 집이 없었다. 다행히 한 사람의 인도로 우리는 빈 헛간에 쉼터를 마련했다.
주머니 마법으로 식재료와 식기를 꺼내어 먹기로 했는데, 내가 요리해야 했다. 여자 두 명이 있어도 이들은 모두 시중을 받아온 사람들이었다.
"서방님의 요리 맛있네요." 마야와 미야는 내 요리 솜씨에 감탄하며 맛있게 먹었다.
문제는 먹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모험과 여행을 해본 나는 두 가지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지금처럼 주머니 마법으로 식재료는 해결 가능해도, 자는 문제는 어쩔 수 없다.
여기에 큰 건물을 가져 올 수도 없었다.
더욱이 여기 두 여자는 온실 속 화초들이었다. 노숙 경험이 없는 이런 여자들이 맨 땅 위에서 자는 불편을 어떻게 감당할지 머리가 아파졌다.
다행히 오늘은 헛간에서 지내는 이유로 지붕 아래에서 잘 수 있었다. 노숙과는 천지 차이의 편안함을 줄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근처에서 마른 풀들을 구해와 누울 공간을 마련했다. 그 곳 위에 마야가 이불을 꺼내어 깔았고, 우리 셋은 나란히 누웠다.
내가 가운데 있고, 마야가 왼쪽, 미야가 오른쪽에서 나에게 안겨 있었다.
"서방님. 오늘은..."
"전쟁터에 있으니, 이만 쉬고 싶어."
잠시 후 우리가 있는 건물 주위를 포위한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야가 말했다. "별거 없어 보이는 것들인데, 처리할까요?"
"아니. 인족 군사들인데 쓸데 없는 오해가 없는 것이 좋아. 마야. 오늘은 쉬고 싶으니 저들도 쉬게 해줘."
마야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법을 사용했다. 우리를 포위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없어졌다.
잠시 후, 아무 일 없이 쉬고 싶다는 생각이 30분도 지나지 않아 깨졌다. 양 옆에 미인들을 끼고 그냥 잠을 잘 남자는 없었다.
먼저 마야를 깨우고 시작하자, 미야는 옷을 벗고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두 사람을 차례대로 몇 번 즐기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