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미안하다 말할 수 없는
다음날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마야와 미야는 옷을 챙겨 입는데, 내가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두 여자는 나에게 과분해 보였다.
키 180cm, D컵의 마야는 차갑고 도도한 매력의 여자였다. 키와 가슴이 작은 미야도 나름대로 건강미를 뽐냈다.
두 사람은 자매라 비슷한 얼굴이었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틀렸다.
마야는 딱딱하고 콧대 높은 아가씨 같아 억누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고, 미야는 밝고 생기 넘쳐 품에서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마야가 잘익은 사과, 미야는 부드러운 참다래 맛이었다.
마야만 상대할 때는 잘 몰랐지만, 나와 몸 크기가 비슷한 미야를 안기가 더 편했다. 둘 다 자기 나름대로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도 준비를 했다.
헛간 밖을 나가니 10명의 병사들이 땅에 엎드려져 있었다. 군복을 보니 어제 마족에게 승리한 인족의 군사들이었다.
"잘 재웠네. 이제 깨우지?"
내 말에 미야가 발로 땅을 세게 두드려 큰 소리와 진동을 만들었다. 마야의 마법으로 잠을 자던 병사들은 놀라서 잠에 깨어난 듯 일어섰다.
병사들은 일어서 무기를 빼어들고 우리를 포위했다.
"그만 하시지. 우리는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내 말에도 그들은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서방님과 나에게 무기를 겨두다니. 불경하구나!"
마야는 호령과 함께 우리를 둘러쌓는 불의 장막을 만들었다. 그 불길로 병사들은 우리와 거리를 넓혔다.
내가 마야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불의 장벽이 사라졌다.
"우리는 싸울 의사가 없소. 보다시피 우리도 인족입니다. 우리들은 당신들의 아군입니다."
"닥쳐라! 마족과의 싸움이 중한 시기에 그런 실력을 가지고 군에 참여하지 않다니. 수상하구나. 너희들은 마족들이 보낸 첩자들이다."
미야가 움직여 병사들을 공격했다.
먼저 대장을 향해 달려 그의 칼을 잡고 부러뜨리고 배를 가격했다.
배를 잡고 쓰러진 대장을 보며 옆에 있던 병사들이 미야를 공격하려 했지만, 미야는 한 병사의 창을 잡고 끝을 부러뜨린 후 나무 부분만 남은 창자루를 뺏어들었다.
미야는 그 나무 창자루로 병사들을 공격했다. 나와 싸울 때보다 10배 느린 스피드였지만, 병사들은 빠른 미야의 공격에 저항 한번 못하고 당해 전투 불능 사태가 되었다.
"후우. 죽이지 않는 것이 더 어렵네." 미야는 한숨을 내쉬며 나무 창자루를 땅에 내던졌다.
나는 땅에 엎드린 병사들의 대장의 머리를 잡고 일으켜 나와 눈이 마주치게 했다.
"이제 알겠습니까? 우리가 죽이려 마음 먹으면 여기에 있는 모두가 몰살 당했을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의 아군입니다."
대장은 두려움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신들의 우두머리에게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
그들과 함께 간 곳은 어제의 전쟁터였다. 전투가 있었던 곳에서는 불이 피어오르고, 피냄새와 살이 타는 냄새가 섞여 역겨웠다. 아무리 많은 전쟁을 치러도 이 냄새는 불쾌했다.
야영지에 가보니, 부상자에 대한 치료와 휴식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진영 경계는 삼엄했다. 생각대로 잘 조직되고 훈련된 군대였다.
야영지 천막의 배치도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천막 안에 들어가 있는 인원도 모든 천막들이 동일했다. 교대로 휴식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인도된 곳은 야영지 중앙의 큰 천막이었다. 설명할 필요 없이 최고 사령관의 숙소였다.
우리 셋은 즉시 천막으로 향했고, 병사들이 우리 주위를 막아섰다.
마야가 우리를 막아서는 병사들을 향해 바람 마법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주위의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우리를 포위했고, 마법사들이 그 뒤에서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잘 훈련된 연계였다.
"그만! 우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공격하지 마시지요."
"먼저 공격한 주제에 무슨 소리냐?"
"우리 앞을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를 방해한 것은 당신들입니다."
"어전을 함부로 나서는데 막아서지 않을 수 있는가?"
나는 경고의 의미로 땅을 주먹으로 쳤다. 그 자리에서 큰 물줄기가 솟아올라 나와 주변 사람들을 적셨다.
"이제 진정이 됩니까?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일에 무력을 쓰지 마시지요."
"무슨 소란이냐?" 천막 안에서 18세 정도의 청년이 나왔다.
병사들은 그를 향해 몸을 굽혀 인사했다.
"전하. 이 자들이 공격해 와서 제압하려 했습니다."
나는 청년 왕을 향해 몸을 굽혀 예를 표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 왕이 계신 것을 모르고 결례를 범했군요. 관대히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너의 일행인가? 이들은 예의를 모르는 것 같구나."
옆을 보니 마야와 미야는 그를 보고만 있었다.
"나는 한 나라의 왕족이다. 비록 내 나라가 여기서 멀지만 나의 몸에는 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니 너에게 예를 표할 이유가 없다."
"나 역시 왕족이다. 같은 이유로 예를 표하지 않겠다."
마야와 미야는 당당히 말했다.
"무엄한 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옆에서 외치는 시종을 청년 왕이 제지했다. "기다려라."
청년 왕은 조용히 내려와 마야와 미야에게 몸을 굽혀 인사했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아랑 왕국의 국왕 프랑크 페트리도리아 헥소트리스 아랑입니다."
마야도 답례로 왕족의 인사를 했다.
"아랑 왕국의 국왕이신 프랑크님이신 가요? 저는 마야라 합니다. 사정이 있어 나의 이름과 나라의 이름을 밝힐 수 없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미야도 같은 방식의 인사를 했다. "미야입니다. 여기 마야의 자매입니다."
"그렇습니까. 아랑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우리는 전쟁 중이라 왕족인 두 분에게 맞는 예우를 해드릴 수 없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는 우리의 나라가 아니고 전쟁 중에 예를 요구할 수 없지요."
청년 왕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 분은."
"저희의 남편이십니다." 마야가 말했다.
"그렇습니까?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나는 그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한 후 일어서 시선을 마주했다.
"전 왕족 출신이 아닙니다. 비천한 신분이니 왕족의 예로 대하지 마십시오."
마야가 말했다.
"왕족은 아니셨지만, 합당한 능력으로 저희를 취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남편이시고 왕족의 예우를 받을 만한 분입니다. 이분에게도 우리와 같은 대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전하께서 편한대로 하십시오."
"그럼 이름이..."
"아나킨 스카이워커 다쓰 베이더 제다이입니다. 아나킨이라 불러주십시오."
내 소개를 하며 얼굴이 꿈틀거렸다. 세 번의 소환에서 나는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다쓰 베이더, 두 가지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런데 여기는 왕족들 사이였다. 보통 귀족들은 성과 가문을 나타내는 몇 개의 이름을 사용했고, 내가 귀족이라 말하기 위해 5개의 이름을 쓰기로 했다.
"반갑습니다. 아니킨님. 우리 아랑 왕국에 무슨 일인지요?"
"신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주변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에나 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효과가 좋다. 더욱이 거짓말도 아니었다.
프랑크는 우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 마력이 흘렀다.
"거짓말이 아니시군요. 신께서 무엇을 명령하셨습니까?"
내 말이 진실임을 마법으로 확인한 것 같았다. 거짓말이 아니었으니 그도 믿을 것이었다.
"자신을 거역하는 적을 멸하라 하셨습니다."
"적이라면 마족을 말하시는 겁니까?"
"신께서는 그 것까지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에브람님의 사도. 그 분을 대적하는 적을 멸하러 이 먼 곳까지 왔습니다. 에브람님을 믿는 분들은 저의 친구, 거역하는 자는 저의 적일 뿐입니다. 그럼 왕께 묻고 싶습니다. 프랑크님과 아랑 왕국은 에브람님을 섬기시는지요?"
"우리는 모두 경건한 에브람님의 종들입니다."
프랑크는 대답과 함께 손으로 성호를 만들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행동을 취했다.
"저는 에브람님의 명령으로 대적들을 멸하려 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친구입니다."
"그럼 우리를 도와 적을 싸워주시겠습니까?"
"당신의 적은 에브람님의 적입니까?"
"그렇습니다. 에브람님을 인정하지 않고 거역하는 자들입니다. 저 불경한 이교도에게 신의 형벌을 내려주십시오."
"그럼 에브람님의 적을 멸하는 일에 우리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랑크는 내 손을 잡았다. 왕이 내 손을 잡자 주위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우리는 아랑 왕국 사람들, 특히 왕의 신뢰를 얻었다 생각했다.
"프랑크. 그렇게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됩니다." 천막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40대 중반의 여성이 천막에서 나왔다. 입은 옷이 그녀의 신분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우아한 발걸음으로 프랑크에게 다가왔다.
"어머니. 에브람님께서 우리에게 사도를 보내주셨습니다. 마족에게서 우리를 구원할 사도를 말입니다."
"진정하세요. 이들이 신의 사도라는 증거는 그들의 말 밖에 없습니다."
"저의 마법이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미치광이가 거짓을 믿으면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들의 말이 진실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그 말에 미야가 화를 냈다. "뭐야? 우리가 미쳤다고 하는 건가?"
나는 손을 들어 미야를 진정시켰다.
"왕의 어머니께서 그렇게 의심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직 저희의 말 밖에 없지요. 그럼 우리에게 증명할 기회를 주신다면, 우리가 증거를 가져오겠습니다."
왕의 어머니인 그녀는 우리를 노려보았다.
"좋습니다. 방금 척후의 말로는 여기서 3일 거리에 적군이 당도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행군을 조금만 늦춰주신다면 믿어드리지요."
"적들의 수는?"
"2만이라고 합니다."
어제 싸운 3만은 본대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럼 그들을 전멸시키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주위가 웅성거렸고, 프랑크와 그녀는 말도 안되는 허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죽인 적의 수급을 백개 이상 가져 오시면 될 겁니다. 제가 말해드린 조건은 적의 진격을 늦추는 겁니다. 하루만이라도 됩니다."
"그럼 3일 후에 적들 주둔지에서 만나죠. 적들의 시체들과 함께. 그리고 우리는 이곳 지리를 모르니 안내할 사람을 몇 명 부탁드립니다."
우리 세 명은 아랑 왕국 병사 10명과 함께 군대 주둔지를 나갔다.
...............
2일 후, 우리는 멀리서 오는 마족의 군대를 멀리서 보게 되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군대의 위세가 대단했다.
"2만이라고 했지만, 3만 정도군."
"수도 그렇지만 훈련도와 장비는 전의 군대에 비해 상당히 좋습니다."
"아무래도 그 왕의 어머니라는 여자, 두 곳으로 나뉘어진 적을 각개격파할 속셈이었네."
"그런 전략이었다면 병사들의 휴식이 중요하죠."
"시간을 벌어 달라는 부탁이 일리가 있네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원하는 곳에서 적들과 싸우고 싶은 거겠지. 저런 군세와 대적하려면 평지에서 대결하기는 힘들테니, 먼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싶겠지."
"우리가 어제 지나친 산맥이군요."
"그래. 아랑군은 하루 휴식 후 오늘 그 곳에 방어진을 만들고 있을 거야. 전투 후 하루 휴식, 행군. 곧바로 전투 보다는 하루 휴식 하는 것을 원하는 거야."
"하루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죠."
"그 곳에 먼저 진을 치고 있다면, 그 정도의 병력으로 방어가 가능할 거야."
"그런 계산을 하다니, 정말 유능한 지휘관이네요. 그 프랑크라는 왕은."
"내가 생각에 말야. 이 작전을 생각해 낸 사람은 왕의 어머니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 프랑크라는 청년은 나약하고 순진한 어린애 같아. 나이 값 못하고 어머니 치마 속에서 사는 마마보이야. 전쟁을 지휘할만한 재목이 못 돼.
나는 프랑크를 처음 봤을 때, 그에게 유능한 신하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의 어머니를 보니까 프랑크 왕 뒤에는 그의 어머니가 있다는 거야."
마야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서방님께 어울리네요."
"어이! 남의 어머니, 특히 왕의 어머니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구."
"나와 미야는 지혜 면에서 부족하니, 그런 사람이 부인이 되어준다면 좋을 겁니다."
우리 셋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뒤에 있는 아랑 왕국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언제 우리를 보내 줄 거냐 는 눈빛으로.
"어이! 당신들은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보고해. 그러니 잠깐 기다려."
"언제까지... 말입니까?"
"우리가 저들을 전멸시킨 후에."
우리 셋은 상대를 위해 달려들었다.
이후의 일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나는 양손에 10m가 넘는 라이트세이버의 칼날을 만들어 휘둘렀다. 빠른 속도로 달리며 보이는 마족들을 두동강 내었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미야가 따라오며 빛의 칼날을 방어한 생존자들을 처리했다.
우리 둘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적들은 여기저기로 뭉치며 진영을 만들어냈다. 앞에 방패를 가진 방어벽을 만들고 뒤에서 마법사들의 원거리 공격 마법이 나와 미야를 공격했다. 하지만 빠른 우리들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뭉쳐있는 적을 향해 마야의 공격 마법이 날아갔다. 마야는 한번에 서너명을 살상할 수 있는 파이어볼 10개를 만들어 동시에 공격했다.
마야의 마법으로 진영이 무너지자, 나와 미야가 달려들어 공격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서있는 사람들보다 쓰러진 사람들이 더 많았다. 후방에서 나팔 소리가 울렸고, 우리를 공격하던 적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상대 지휘관이 후퇴 명령을 내린 것 같았다.
"그냥 도망치게 놔둬."
내 명령에 추격하려는 미야가 멈추어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적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어. 지금 몇 명을 더 죽이는 것보다 마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해."
마야와 미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가 죽인 적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비참한 광경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이 피냄새였다. 역겨운 냄새를 숨으로 마시니 욕지기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와 함께 왔던 아랑 왕국 병사들 중 몇 명이 보이지 않았다. 전령을 보낸 것으로 보였다.
"이제 저쪽에서 우리를 신뢰할 것 같군요."
"소년 왕은 모르겠지만, 그 어머니는 아직 모르겠네요. 의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어째든 여기서 나가자. 피냄새를 견디기 힘들어."
우리는 근처에 있는 숲으로 이동했다.
우리 셋은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온 몸에 적의 피와 튄 살점들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아직 몸에서 피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내가 세정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마야는 먼저 내 몸을 마법으로 씻어주었다.
마야가 내 몸에 손을 대고 세정 마법을 사용하는데, 마야의 몸의 향기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리고 무언가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감정... 익숙했다. 전투의 분위기에 젖어 이성을 버리고 폭주하던 때의 그 것이었다. 단지 나와 다른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배제했던 때, 그 때 나는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마야를 보며 그 때의 어두운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부수고 싶었다. 죽이고 범하고 싶었다. 나와 다른 옷을 입은 사람은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는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와 동료들이 폭주하며 한 마을을 지워버린 그 때의 일이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포로들을 집어넣고 집에 불을 지르며 그들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며 즐겼던 때도 생각났다. 집에서 나가려는 그들을 다시 불길 속에 집어넣으며, 고통에 날뛰는 모습, 비명, 타는 살냄새가 내 앞에 생생했다.
그런 생각에 나는 비틀거렸다.
"서방님. 무슨 일 있습니까?"
마야가 내 몸을 잡았다. 내 몸에 그녀의 손이 느껴진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잠시 뒤, 나는 땅에 누워있는 채로 깨어났다. 일어서보니 난 알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야와 미야도 알몸으로 누워있었다. 그녀들의 가까이에 찟어진 옷들이 널려져 있었다.
쓰러져 있는 둘을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다. 이성을 잃고 폭주했다.
내가 일어나자, 누워있던 마야가 몸을 일으켜 미야에게로 다가갔다. 미야와 함께 일어난 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옷을 집어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으니.
두 번째 소환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속한 군대는 마족의 마을을 점령하며 본보기를 위해 잔혹행위를 실시했다.
우리의 임무는 점령한 마을을 불태우고 마을 주민을 모두 죽이라는 것. 마을을 점령한 뒤, 마을 사람들을 마을 가운데에 있는 창고 안에 몰아넣고 불태웠다. 건물이 불타며 안에서 사람들이 불길에 죽어갔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 중에 젊은 여자들만 따로 모아두었다. 피와 불을 본 우리들은 이성을 잃었다.
‘마음대로 해!’라는 말이 떨어지자, 우리는 그녀들에게 달려들었다. 40명 정도의 여성들이 100명이 넘는 우리들을 상대하며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을 즐기며 우리는 차례로 그녀들을 유린했었다.
그 때 우리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시체와 잘려진 신체의 조각들, 불타는 건물에서 나무 타는 소리와 비명소리, 피 냄새와 살이 타는 냄새 등은 우리의 이성을 날려버렸다. 불길이 밤을 비추는 동안 우리는 광란에 빠졌다.
아침이 되어 우리가 본 광경은 참혹했다. 재만 남은 건물에 있는 시체들을 보며 우리들은 욕지기를 못 이겨 구토를 했다. 몇몇 죽은 시체는 어린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범한 여성들을 보았다. 옷이 찟어지고 거의 알몸이 된 그녀들은 울음조차 없이
제 정신을 잃고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는 땅에 쓰러져 울부짖었다.
그래도 명령 받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그 것까지 해야 했다. 아무리 하고 싶지 않아도, 싫다며 거부하는 부하들을 재촉하며, 나는 내 인생 최고로 후회하는 일을 해버렸다.
두 사람은 찟어진 옷들을 주머니 마법으로 집어 넣고 새로운 옷과 장비를 장착했다.
나는 바로 먹을 것을 준비했고, 우리는 모여서 배를 채웠지만 둘은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저어..." 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난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어. 미... 그 말을 할 수 없어. 이해해 줘.
그리고 먹으면서 들어줘. 나의 옛날 이야기를. 오늘의 일. 같은 일을 나는 몇 번이고 했던 적이 있었어. 마구 죽이고 마구 범하고 마구 불 태우고, 내 마음을 없애고 그저 감정 없는 기계처럼 지냈던 적이 있었어."
나는 그녀들에게 나의 첫 번째 모험을 들려줬다.
내가 무책임한 놈에게 처음 소환 당했을 때, 그 놈은 나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모르는 산 속이었고, 야생동물에 잡혀 먹힐 뻔했지만 근처를 지나던 모험가들에게 구조되었다. 말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그들의 짐꾼으로 활동하며, 말과 기술을 배웠다.
나를 잘 챙겨주던 사람은 그 파티의 여자 마법사였다. 파티의 다른 치유마법사에게 힐링을 배우고 보조 치유술사가 되어 모험가로 활동했다. 그 파티에서 나는 마법과 검술을 익히며, 짐꾼으로 시작해 힐러, 마법사가 되고, 마지막에는 전위 전사와 후위마법사를 겸하게 되었다.
나를 처음부터 챙겨준 그녀는 나에게 어머니와 같았고 누나로 불렀다. 우리 파티가 마왕군과의 전투에 말려들어 전멸 위기에 몰렸을 때에 나를 제일 먼저 챙겨준 사람이 그녀였다.
이후 불구가 된 오빠와 함께 그녀는 모험가를 은퇴했고, 나는 강제 징집 되었다.
전쟁의 상처를 괴로워하다 휴가로 찾아간 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고, 그녀는 나를 몸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 것이 나의 처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파르노. 나에게 어머니였고, 누나였고, 연인이고, 아내였다.
나는 군에 있으면서 그녀에게 나의 급료를 보관해 달라 부탁했었다.
10년 간의 싸움 끝에 인간 쪽의 용사 프레드릭이 마왕을 죽였다고 들었고, 나는 제대했다.
제대한 나는 파르노를 찾아갔다. 그녀는 착실하게 내 돈을 모아두었고, 휴가 때 나로 인해 생긴 아이가 있었다.
감동한 나는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청혼했다. 물론 그녀의 승낙으로 우리는 바로 결혼 생활에 들어갔다.
우리 사이에 카일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5년 정도 결혼 생활을 끝내고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현실로 돌아올 때, 무책임한 놈을 만났다. 그는 자신을 신이라 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죽었다고 했지만, 그 말에 신빙성도 없다.
현실에 돌아오니 어제 잠이 들었던 내 방 침대 위였다. 나는 모든 것이 꿈인 줄 알았다.
"그렇게 된 거군요. 그 무책임한 놈이라는 신에 의해 여기로 온 거네요."
"그런 거야. 나는 마야가 오기까지 모두 꿈인 줄 알았어."
"그럼 지금이 사방님의 몇 번째이죠?"
"네번째."
"다시 돌아가기 위한 조건은 뭐죠?"
"내 손으로 마왕을 죽이거나 내가 죽는 것."
"그런데 우리를 어떻게 데리고 오신 거죠?"
"그 무책임한 놈이 나에게 특별한 능력을 줬어. 원하는 사람을 3명 데려갈 수 있는 능력."
미야가 물어왔다. "신이 주는 능력이라... 그 밖에 뭐가 있죠?"
"말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여자와 하게 되면 큰 경험치를 얻을 수 있어."
마야가 놀랐다. "그래서 내 능력이 단시간에 이렇게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건가요?"
"본처는 남편과 능력을 공유하니까 그런 것 같아."
"그럼 저는?" 미야가 물어왔다.
"그건 모르겠어. 마야. 미야도 가능해?"
"서방님께서 직접 하실 수 없지만, 나를 통해 가능합니다. 미야에게 경험치를 나눠줄까요?"
"마야가 원한다면."
나는 마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야는 한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른 손은 미야의 손을 잡았다. 마야를 매개로 내 마력이 미야에게 전달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 것이 서방님이 얻은 경험치. 치사해요. 그런 일로 이렇게 큰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니."
미야가 중얼 거렸다.
마야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서방님의 말. 미안하다는 말을 못하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지요?"
"전쟁 후 그 일을 파르노에게 말했을 때, 그녀는 가만히 나를 안아주었어.
내가 그때 그녀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지만, 파르노는 고개를 흔들며 그 것은 그녀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라고. 그들 기억에 내가 악인으로 남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나에 대한 미움이 그들이 살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했어. 왜 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난 그 말을 할 수 없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
마야는 일어서 다가와 내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안았다.
"그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잘하셨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가 비참해졌을 거니까요.
우리는 서방님의 아내입니다. 서방님이 원하시는 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같이 하셔도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런 서방님의 모습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미야가 덧붙였다. "나는 성 안에서 보다 더 좋았어요. 그렇게 거칠고 힘 있는 서방님이 더 좋아요."
두 사람은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힘들었다는 표정을 감추며.
지금도 나는 나의 두 아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파르노의 말이 생각나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