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마왕 포위
우리는 서쪽으로 진격을 계속하여 과거 메소티아 왕국의 수도를 점령했다. 이곳을 지키던 마왕군은 우리를 보고 도망쳐 버렸고, 우리는 해방군으로 메소티아에 입성했다.
프랑크는 먼저 왕궁을 접수했다. 그리고 도시의 유력자들을 초청해 연회 겸 회의를 열었다.
음식이 차려진 연회장은 왕의 접견실에서 열렸다. 어느 왕국들과 같이 메소티아 왕국 접견실은 기둥들이 줄 지어 있는 넓은 열주회랑이었다. 하지만 망한 왕국임을 증명하듯 안에는 장식품이 없었고, 기둥 곳곳에 전쟁의 상처가 보였다.
우리는 회랑 가운데 설치된 탁자에 둘러앉아, 회랑 끝 높은 위치에 왕이 앉을 옥좌를 설치하고 프랑크를 기다렸다.
잠시 후, 프랑크가 들어오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모두 그가 옥좌에 앉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탁자의 세로 끝에 왔고, 호위병 몇 명이 우리들과 같은 의자를 가져와 프랑크가 앉을 수 있게 했다.
"모두 앉으세요."
왕좌를 거부한 그의 태도에 우리는 의아했다.
"아직 메리가 오지 않은 시점에서 제가 왕좌에 앉을 수 없습니다. 저 자리는 메리와 함께 앉을 자리입니다."
그 말에 메소티아 왕국의 사람들은 안심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그는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의 목적은 메소티아 왕국을 마왕의 손에서 해방시키고, 왕실을 복구하는 겁니다. 왕실의 적통인 메리를 통해 메소티아 왕국을 복원하려 합니다."
메리의 몸에서 태어난 프랑크의 자식이 메소티아의 차기 왕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지금 메소티아의 왕이 될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메리는 지금 임신 중입니다. 이제 태어날 아이는 메소티아의 왕이 될 겁니다. 그 동안 제가 임시로 메소티아 왕의 직무를 맡게 될 겁니다. 메소티아 왕국의 복원을 위해 저를 도와 주십시오."
프랑크는 모인 사람들을 향해 몸을 굽혀 예를 표했다.
한 노인이 일어나 프랑크에게 질문을 던졌다.
"프랑크 왕께서는 아랑 왕국의 국왕이십니다. 이후 아랑 왕국과 메소티아 왕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는 아랑 왕국의 왕이고, 메소티아 왕국의 왕은 따로 있습니다."
"귀하의 혈통으로 메소티아 왕국의 혈통을 이어지게 하신다는 겁니까?"
"메리의 혈통이기도 합니다. 메소티아 왕가에서 다른 생존자가 있나요?"
"정식 혈통이 아니지만, 전 왕께서 자신의 아이로 인지한 아드님이 계십니다."
"비천한 신분의 혈통이 어찌 왕이 될 수 있지요?"
내 말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방금 인지라고 하셨는데, 공식적인 겁니까?"
"왕께서는 저에게 그 분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에게만. 그럼 당신 외에 그 것을 증명할 다른 분이 계신가요?"
나는 위압을 회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사용했다. 그 뜻은 여기서 이 노인은 죽는다. 같이 죽을 사람은 나서라, 그런 의미였다.
나는 노인 옆에 있는 그의 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금 이 분이 하신 말씀을 그 아드님께서 증명하실 수 있나요?"
"저는 그런 사실을 잘 모릅니다. 여기서 처음 듣는 말입니다."
"네 놈..." 노인은 아들의 배신에 화난 모습이었다.
나는 노인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분들은 어떠십니까?"
노인 옆에 있던 한 사내가 말했다.
"나도 전 왕에게서 사생아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소문입니다. 하지만 왕께서 인지하셨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소문 뿐? 공식 문서나 선포는 어떻지요?"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어떠한 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네 이놈. 네가 그러고도 메소티아의 신하이냐?"
노인의 호통에 그 사람도 일어났다.
"말을 삼가십시오. 메리님은 왕가와 국민들이 인정한 국왕 전하의 마지막 혈통입니다. 그런 분 외에 어떤 분이 그 혈맥을 잇는다는 말입니까?"
"분명 왕께서는 나에게 아드님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여기 계시다."
노인은 자신의 수행원 중 한명을 가리켰다.
"보아라. 전 왕의 혈통을 이으신 왕자님이시다. 우리의 왕이시다."
나는 그 청년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보니 왕의 재목이 아니었다. 두려움에 떨며 도망칠 기회를 찾고 있는 소심남이었다.
"저 노인의 말이 사실입니까? 정말 메소티아 왕실의 혈통입니까? 언제 이 사실을 알았죠? 전쟁 전입니까 후입니까."
나는 그를 노려보며 도망칠 길을 열어주었다. 그 걸 알고 미끼를 문다면, 꽤 좋은 머리일 거라 생각했다.
"저... 전 아버지가 누군지 잘 몰랐습니다. 전쟁 후 도망 다니던 저를 저 분이 거두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이 왕실의 혈통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 분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고 합니다."
청년의 말에 회의장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위엄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쥐새끼의 모습이었다.
"그럼 메소티아의 왕이 되고 싶습니까?"
"어떻게 제가 그런 무엄한 생각을... 저는 그런 일을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프랑크에게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여기 오기까지 전 제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제 아버지를 찾을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노인 옆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일어서, 노인을 끌어내 땅에 내팽겨 치고, 근처 호위병의 칼을 가지고 와 노인의 목에 겨누었다.
"감히 거짓으로 왕위를 농락하려 들다니, 왕가의 혈통을 모욕한 것을 죽음으로 속죄하라!"
그는 칼을 노인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피로 물든 칼을 땅에 버리고, 그는 프랑크 앞에 나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친 노인의 말에 현혹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왕가의 마지막 혈통이신 메리님과 그의 후손에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프랑크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다른 메소티아 사람들도 자리에서 나아와 프랑크에게 무릎을 꿇었다.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우선 저 미친 자의 시신을 내 눈에서 치워라!"
프랑크의 명령에 호위병들이 시신을 옮기고, 시녀들은 땅에 흐른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프랑크는 잔을 들었다.
"미친 놈의 장난에 흔들리지 말고, 이 연회를 즐겨주십시오. 이 잔은 앞으로 메소티아 왕국의 번영을 기원하는 겁니다."
프랑크는 잔에 있는 술을 단숨에 마시고,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무릎 꿇은 이들은 일어서 자기들의 자리로 갔다.
프랑크는 죽은 노인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번 일은 노망난 노인의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이번 일에 말려든 아드님에게나, 저 불쌍한 청년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으려 합니다."
언급된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놈의 헛소리에 연회가 멈추면 안 되죠."
프랑크의 말에 악사들의 음악 연주가 시작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방금 그 청년을 끌고 나왔다. 그리고 내 주머니에 있는 몇 개의 금덩이와 보석을 그에게 주었다.
"살고 싶다면 다시는 메소티아 땅에 돌아오지 마라. 아랑 왕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라."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준 정도면 몇 년은 돈 걱정이 없을 것이다. 멀리서 네 생명을 보전해라."
"감사합니다."
그는 나에게 보석을 받아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도시를 빠져나갈 때까지 그를 따라갔다. 예상대로 자객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몇 명을 기절시키고 그가 무사히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연회에 들어오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나는 마야 옆에 앉았다. "무슨 일이지?"
"메리가 이 곳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미야는?"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편지를 전하자마자, 제니스가 먼저 메리를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그 왕의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연회장이 웅성거리며 한 여성이 무장한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연회장에 들어섰다. 메리는 프랑크 앞에서 멈추고 몸을 굽혀 예를 표했다.
"프랑크님. 메리 메소티아가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프랑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메리의 손을 잡았다.
"어서 오세요. 부부끼리 그런 예를 표하실 필요 없습니다."
손을 잡은 두 사람은 옥좌가 있는 계단 위로 올라갔다. 프랑크는 옥좌에 메리를 앉혔다.
"모두 잘 들으세요. 여기 메소티아의 새 왕과 그 어머니께서 오셨습니다."
내가 일어서 외쳤다.
"메리님께서는 아이를 잉태하셨습니다. 몸 속에 메소티아의 새 왕이 되실 분이 계십니다. 모두 예를 표하세요."
먼저 내가 한쪽 무릎을 꿇어 머리를 조아리자,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메리를 향해 예를 표했다.
왕좌 옆에 서 있는 프랑크가 외쳤다.
"이제 메소티아 왕국의 재건이 시작된 겁니다. 마지막 남은 왕의 혈통인 메리에 의해 왕실이 복원되고, 마왕을 몰아내 국토를 되찾을 겁니다."
회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어서 만세를 외쳤다.
거듭되는 만세 소리 중에, 프랑크는 몸을 굽혀 메리의 입에 귀를 가까이 했다. 내 마법으로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전하. 마왕의 딸은 어떻게 된 거지요?"
"정복자의 권리. 내 두 번째 왕비고 이름은 올가.."
"그럼 나는 어떻게 하실 건지요?"
"당신은 내 첫 번째 왕비이자, 우리의 아이는 메소티아의 왕이 될 거야."
"그럼 그 올가가 낳는 아이는?"
“그 어머니의 영토를 다스리는 왕이 될 지. 마족의 영토에서."
"아랑 왕국은?"
"아랑과 메소티아, 두 왕국의 왕이 될 테지. 문제가 있다면 둘째에게 메소티아를 주면 되곗지"
프랑크는 몸을 펴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왕좌에 앉은 메리의 얼굴에 기쁨과 안심이 넘쳤다.
나는 옆에 앉은 코르티즈에게 말했다.
"메리님도 보통이 아니시군요. 이런 순간에서도 두 왕국을 가지게 되다니."
"우리 왕실의 혈통이니까요."
"그럼 이제 코르티아 왕국 차례군요. 귀하의 왕국 말이죠."
"도와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나와 코르티즈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
메소티아 왕국에 2주 머물며, 프랑크와 메리는 왕실 재건을 위한 조치로 바쁘게 움직였다. 특히 전 왕의 유일한 혈통인 메리에게 전 왕조의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연회에서 죽은 노인은 전 왕의 최측근이고 최고위 귀족이었다. 그 아들을 불러 왕국의 모든 일을 일임하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도, 그는 메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속마음을 읽으니, 왕국보다 자신의 이득을 우선하고 있었다.
전 귀족들의 이권을 보장하겠다는 프랑크의 약속으로 메소티아 왕국의 정치는 안정을 찾게 되었다.
후방을 안정 시키고, 군을 프랑크, 나, 코르티즈의 3개로 나뉘어 메소티아 왕국을 떠나 마왕군을 찾아 진격을 계속했다.
행군하던 우리에게 전령이 왔다.
"프랑크님의 명령입니다."
"무엇이냐?"
"지금 프랑크님께서는 숙영지를 건설 중이십니다. 합류하라는 명령입니다."
전령의 말대로 반나절 더 행군하자 이미 건설된 숙영지가 보였다. 마족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였다.
우리에게 배정된 지역은 부서진 성벽 안이었다.
그런데 병사들이 군데군데 끊어진 성벽을 다시 이으며 복구하고 있었다.
나는 즉시 프랑크의 천막을 찾았다.
"무슨 일이죠? 여기서 머무를 겁니까?"
프랑크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에 손을 대었다.
"여기가 우리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말로 3일 거리에 마왕의 군대가 있습니다."
지도에서 우리의 위치가 산악지형의 끝임을 말하고 있었다. 마왕의 군대는 평원에 진을 치고 있었다. 우리가 떠나온 그 곳의 바로 앞에.
"어머님께서는 이 곳에 요새를 건설하셨습니다."
프랑크가 손으로 알려준 장소는 우리가 석 달 전에 원정을 떠난 그 곳이었다. 동쪽으로 산맥이 시작되는 곳에 아랑 왕국의 군대가 주둔해 있었다.
"이 곳은 방어가 쉬운 곳입니다. 쉽게 돌파되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몇 번 마왕측의 공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격퇴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역습도 어렵군요. 모든 기병이 우리와 함께 있으니."
"어제 어머니에게 연락을 받고 이 곳에서 준비를 위해 쉬기로 한 겁니다."
"앞에서 아랑 왕국, 뒤에서 우리. 양 쪽에서 협공을 하면 좋겠군요. 하지만 문제는 아랑 왕국의 군대는 공격에 맞지 않는 보병들인 점이죠. 농성에 유리하지만 공격에 나서기엔."
"신중한 어머니는 지구전을 제안하셨습니다. 우리가 적의 퇴로와 보급선을 막고 있다면, 평야에 있는 마왕군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죠."
"부대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좋은 작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들 중 반 이상이 외국에서 참여한 이들입니다. 이들이 그렇게 오래 기다려 줄지 미지수입니다."
"저도 그 것이 우려됩니다."
"아랑의 협력 없이 우리끼리 공격에 나서야 겠군요. 그런데 왜 성벽을?"
"우리가 당분간 공격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죠."
나는 다시 감탄했다. 프랑크는 위대한 왕이 될 능력이 있었다.
..............
성벽 보수는 그 날 밤 모두 마치고, 병사들은 휴식에 들어갔다.
나는 나의 천막에서 마야, 미야와 즐기려했다. 그동안 행군을 위해 억지 금욕을 했던 나와 그녀들은 쌓인 것이 많았다. 특히 미야는 메리의 일로 아랑 왕국에 다녀 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내가 미야를 안고 있는 동안, 마야는 옆에서 잠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야가 지쳐 쓰러지자, 나는 내 몸에 회복 마법을 걸고 체력을 회복했다.
"회복 마법을 쓰면 반칙 아닌가요? 그러면 제가 상대하기 힘들잖아요."
"싫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서방님은 지치지 않고 달려드니 부담스러워요."
"부담?"
"아무래도 서방님의 수청을 들려면 하루에 10명 이상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빨리 부인들을 늘리고 싶습니다."
나는 마야에게 달려들었다.
두 여자를 녹초로 만들며 기절 직전까지 몰아넣고 나도 잠이 들었다.
갑자기 이상한 기운에 잠이 깨었다. 적의 야습이 분명했다.
나는 옆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아무래도 지친 두 사람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일어서, 장비를 챙기고 천막을 나갔다. 나가서 눈을 감고 주변 기운을 읽으니 몇 백의 군사들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화살 소리와 병사의 함성이 들려왔다. 야습을 예상한 아군의 공격이었다.
소란한 소리에 마야와 미야가 잠옷차림으로 무기를 들고 천막을 나왔다.
"서방님. 무슨 일이죠?"
"별거 아냐. 적의 야습이야."
마야와 미야는 성벽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야습을 미리 예상했군요. 저 정도면 완벽한 준비입니다."
"우리가 프랑크 왕을 과소 평가 했었어. 이토록 치밀한 사람이었다니, 놀라워."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못하죠.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나설 일이 없는 것 같으니 이제 들어갈까?"
나는 두 사람을 본능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두 사람은 피하는 눈치였다. 두 여성의 눈에 ‘힘들어서 더 이상 싫어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웃으며 두 사람을 끌고 천막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다시 기절 직전까지 몰렸다.
며칠 간 두 사람은 나를 피하는 눈치였고, 나도 금욕 생활을 했다.
...............
전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군대가 목표 지점에 이르면 바로 전투를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투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기에,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투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동안 정찰병 끼리의 소규모 교전은 많이 일어난다. 정보를 얻기 위한 정찰 외에, 상대를 겁박하기 위한 위력 정찰도 이루어진다.
나는 마야와 미야를 두고 10명 정도의 병사들과 정찰에 나섰다. 마왕군은 평원 한 가운데에서 진을 치고 있고, 우리가 있는 요새에서 그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나는 병사들과 함께 평원으로 내려가 마왕군 가까이까지 다가갔다. 중간에 공격받아도, 모두 격퇴하며 마왕군의 목책이 보일 때까지 접근했다.
"저런 상태, 어떻게 보이지?"
나는 일부러 마왕령에 있던 지원군 병사들과 함께 했다. 그들은 마왕에게 점령당한 부족이었고, 적개심도 컸다.
내 질문에 목책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급조한 목책이라지만 허술해 보이지 않네요."
"이 곳에 오면서 몇 번 공격을 받았어. 느낌은?"
"너무 약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이 잘 먹지 못한 것 같네요."
"저쪽에서 군량이 모자를 거라고 생각해?"
"사람 뿐만 아니라 짐승도 먹어야 합니다. 특히 말은."
"말은 특별히 마른 것 같지 않은데?"
"사람이 먹을 것이 없다면 말을 잡아 먹어야죠."
그는 적의 진영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가리켰다.
"저 연기. 고기를 태우는 연기 같습니다."
"소나 양과 같은 짐승들이 아닐까?"
"몇 번 이 평원을 지나면서 발자국을 조사했습니다. 그런 짐승들의 발자국은 없었습니다. 이런 여름에 고기를 오래 가지고 다닐 수 없고... 고기를 굽는다면 말이겠지요."
"말을 잡아먹는다... 그럼 저 쪽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다는 말인데..."
"제 예상일 뿐입니다."
"한번 시험해 보지."
나는 다음날 다시 마왕의 진영으로 접근했다. 우리를 막아서는 적들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구운 빵 몇 조각을 던지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우리를 공격하러 온 적들이 빵조각을 보고 달려들었다. 우리의 화살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도 그들은 빵을 차지하러 달려왔다. 먼저 빵을 들은 자는 기뻐하는데, 빵을 차지하러 자기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잠시 실랑이가 있더니, 한 사람이 칼을 뽑아 들었고 다른 이들도 무기를 들더니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싸우는 그들을 향해 빵을 들고 외쳤다.
"이 빵을 먹고 싶나? 투항해라. 그러면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
그러자 몇 명의 병사가 말을 버려두고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런데 뒤에 있던 한 병사가 말을 타고 와 우리에게 다가오던 병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는 다 죽이고 나를 향해 외쳤다.
"우리는 항복하지 않는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그는 말을 돌려, 남은 병사들과 함께 자신들의 진영으로 향했다.
나에게 어제의 그 병사가 다가왔다.
"저 쪽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군요."
"그래도 아직 군기가 무너지지 않았어. 그건 식량이 다 떨어지지 않은 거야. 말을 잡아먹으며 버티고 있는 거지. 한 달은 더 필요하겠어. 아니면 공격에 나서던가."
"우리도 아랑 왕국도 방어가 완벽한데 쉽지 않을 겁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 수 있지. 상대적으로 약한 아랑 왕국을 노릴 거야. 저 요새에 식량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저 상태를 봐서는 오늘 공격을 시작한다고 해야 겠네요."
내가 작전 회의에서 이 사실을 말하자, 프랑크는 평원으로 내려 갈 것을 결정했다.
다음날 새벽. 우리는 요새를 나와 평원에 포진했다.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다는 표시였다.
그런 우리를 향해 마왕군도 공격을 시작했다. 두 진영 가운데에서, 기병들끼리의 접전이 펼쳐졌고, 해가 질 때까지 싸웠다. 서로의 진영으로 돌아온 양측은 승자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첫날 전투를 마쳤다.
......................
다음날 새벽. 다시 전투를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아랑 왕국의 전령이 달려왔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어제 밤, 제니스님께서 적의 진영을 공격해 마왕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