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다섯번째 여행의 시작 (33/148)



〈 33화 〉다섯번째 여행의 시작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었다. 한동안 아버지도 조용했고, 무책임한 놈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개학 첫날, 마야는 나의 넥타이를 매주었다. 많이 연습했는지, 능숙하게 넥타이를 매어주는 모습이 흐뭇했다.

"많이 연습했나봐?"

"한국에서 아내들이 남편의 넥타이를 매준다고 들었습니다. 이 것은 본처인 저의 특권입니다."
나는 웃으며 마야를 안고 키스했다. 마야는 나의 아내이다.

워프 마법진으로 나오니, 제니스와 현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니스가 교복을 입은 모습, 정말로 어울렸다. 40대의 제니스라면 상상도 못할 귀여움에, 지적인 분위기와 따뜻함, 차가운 날카로움이 동시에 풍겼다.
원래 제니스는 완전히 흰색 피부는 아니라 중동인과 비슷한 외모에 피부도 검은 빛이 흘렀다. 완전히 백인 쪽과 가까운 외모는 아니고 셈족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동양인의 외모에 어울리는 교복이 어울릴 만큼, 제니스는 우리 쪽과 비슷한 외모였다.

제니스의 모습을 감탄하고 있는데, 현정이 내 귀를 잡아 당겼다.
"네 마누라 감상은 그만하고, 빨리 학교 가야지."

마야와 미야가 우리의 배웅을 나왔다.

마야가 제니스의 모습에 감탄했다. "제니스, 잘 어울려."

"마야님... 그런 말씀 하시면..."

"서방님이 보시기에 어떻지요?"

"잘 어울려."

"솔직히, 이대로 덮치고 싶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나와 마야는 제니스를 보고 웃었고, 제니스는 부끄러운 듯 우리의 시선을 피했다.

"학교에서 음란행위는 금지야. 저번 이사장님방에서 있었던 일 같은 것." 현정이 분위기를 깼다.

"혀... 현정아. 어떻게 그걸 알지?"

"마야씨와 네가 반들반들한 얼굴로 마왕성에 돌아왔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마야는 현정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키스했다.

현정의 얼굴이 벌개졌다.

"그럼 너도 빨리 서방님의 부인이 되어 서방님을 모시면 되잖아."

현정이 붉어진 얼굴로 마법진 위로 뛰어갔다. "빨리 가자. 지각하겠어."

나는 웃으며 제니스와 함께 마법진 위에 섰다.

제니스가 마법을 사용하자, 주변이 바뀌었다. 학교 옥상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 아파트에서 우리가 보일 것 같았다.

"마법진을 옥상에 설치한 거야?"

"그렇습니다. 여기로 오는 통로에도 마법을 걸어 우리 외의 다른 사람들이 이 곳에 올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 곳을 가릴 것이 필요하겠어. 저 곳에서 우리를 볼 것 같으니까."

나는 아파트 단지를 가리켰다.

"제가 오늘 미야님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제니스는 문에 손을 대었고, 문에서 마력이 흐르더니 문이 열렸다.

"이 문은 우리가 아니면 열 수 없는 거야?"

"네. 지금 서방님과 마야님, 미야님, 현정, 그리고 나. 5명만이 이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을 통해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와 계단 중간에 이르니, 위로 통하는 계단이 보이지 않고 벽이 보였다.

"이 것도 마법으로 숨긴 거야?"

"여기도 우리 외에는 벽으로 보이고 만져도 벽일 겁니다."

우리 셋은 계단을 내려와 2층으로 향했다. 1학년 3반, 여름 방학을 끝내고 다시 오는 우리 반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현정과 나에게 같은 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누구야? 현정아. 아는 사람이야?"

"같이 온 것 보니, 전학생?"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느 나라 사람이야?"

제니스가 자기 소개를 했다.
"나는 제니스 자파란. 시00 출신이고, 무슬림이 아닙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니스가 학우들을 향해 인사했다.

"이름이 제니스? 시리아 출신이야? 오늘부터 같은 반?"

"예쁘네... 한국어를 잘 하네?"

"한국어 외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할 줄 압니다."

"무슬림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쪽 사람들은 모두 이슬람 교도가 아니야?"

"그 곳에 산다고 모두 무슬림이 아닙니다. 저의 아버님은 미국인이셨고, 어머님은 기독교인이셨습니다."

제니스는 몇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친해졌다.

한 여자애가 물었다. "지금 저 송 재신과 등교했는데, 둘이 어떤 사이야?"

"그 질문의 의도를 보면, 같이 오신 저 이 현정씨에게 물어보셔야 하겠군요."

학우들의 시선이 현정에게 쏠렸다.

"송 재신씨와는 조금 아는 사이입니다. 저 분의 소개로 우리 반 반장인 현정씨를 만났죠. 두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몇몇이 현정에게 물었다. "현정아. 저기 송 재신하고 같이 등교하고, 너희들 무슨 사이니?"

"아무 사이도 아냐!"

"둘이 같이 다니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제 눈에 두 사람의 사이가 각별해 보였습니다."

제니스의 말에 모두가 ‘오우~’하는 탄성을 질렀다.

"그럼 재신이는 현정이를 어떻게 생각해?"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 아니라는 말은 생각이 있다는 거야?"

"진행 중이라는 거야. 그러니 여기 있는 모두가 설레발 치지 말아줘. 그러면 될 것도 안될 거니까."

모두가 나와 현정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당당했지만, 현정은 부끄러운 듯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이제 조례시간이야. 선생님이 오실 거야."

모두 웃으며 나와 현정을 번갈아 보았다.

조 민지 선생이 교실에 들어오자,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았다.

노처녀의 유리 깨는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오늘부터 2학기다. 이제 수능이 2년 반 밖에 안 남았다. 모두들 방학의 기분을 떨쳐내고 학업에 집중하고.
그리고 전학생이 있다. 나와 봐."

제니스가 앞으로 나갔다.
"방금 인사드린 제니스 자파란입니다. 이렇게 한국어에 능통하니 의사소통에 문제 없을 겁니다. 한국어 외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할 줄 압니다.
우리 나라에서 전쟁을 피해 한국에 유학 온 것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니스가 인사하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내가 전학 올 때와 딴판이었다. 그 만큼 제니스의 미모가 뛰어났다. 마야와 비교할 것은 못 되어도.

마야의 말대로 내 부인이 되면 외모가 바뀌는 것 같다. 아무리 16세가 되었다 해도, 제니스의 신경질적인 외모는 거의 사라졌다. 내 취향 때문일까? 제니스의 얼굴이 많이 둥글어 진 것 같다.

점심 시간이 되어, 급식으로 제육복음이 나왔다.

제니스와 식사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거 돼지고기인데 먹을 수 있어?"

제니스는 아무 말 없이, 고기를 젓가락으로 들고 입에 넣고 씹어 먹었다.
"양고기보다 못하지만 먹을 만해. 그런데 양념이 너무 매워."

모두 돼지고기를 먹는 제니스를 보고 안도를 했다.

"솔직히 난 돼지고기를 몇 번 먹어봤어. 미국인인 아버지와 미국에 갔을 때 먹어봤거든. 그래도 고향에서 먹던 양고기가 더 맛있어."

"그 쪽 사람들도 돼지고기를 먹어?"

"말했지만, 난 무슬림이 아니야. 안식일에 예배를 근처 기독교 사원에서 드렸어. 어머니는 그 쪽 기독교인이었고."

"그 쪽에 기독교가 있어?"

"그 곳에 산다고 모두 무슬림이 아니니까."

제니스는 딱딱한 말투를 사용했지만, 모두와 동화되는 모습이었다.

-----------------------

중간 고사를 보게 되어, 나는 적당한 성적을 얻었다. 제니스의 학습 마법으로 고교 과정의 공부를 끝냈지만, 너무 갑자기 성적이 오르면 의심을 살 것 같아,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도록 시험을 봤다.

결과는 전교 1등이 현정, 제니스는 20등 안이었고, 나는 100등 전후에 있었다.

가을이 되어 축제 겸 체육대회가 열렸다.
입시 전문 학교라 떠들썩한 일은 없고, 반대항의 구기 대회와 육상이 전부였다.

나는 스탠드에 앉아 우리 반 축구 경기를 감상했고, 내 옆에 현정이 앉았다.

"너도 흥미가 없어?"

"고교생 축구에 관심이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아."

"마야와 미야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잘 해?"

"두 사람은 먹통이야. 책의 내용을 머리 속에 넣고도 헤매고 있어. 제니스는 잘해. 내가 가르칠 것이 없을 정도로."

"세 사람이 나와 너 없이 거리에 나갈 수 있을까?"

"제니스는 몰라도, 두 사람은 무리야."

"두 사람이 빨리 한국 생활에 적응해야 할 텐데..."

현정이 나를 노려보았다. "설마 너... 두 사람과 오래 살 생각은 아니지?"

"마야는 내 마누라야. 미야도. 결혼했다면 해로해야 하는 것 아냐?"

"제니스는?"

"기회가 있으면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어."

"그럼 나는?"

현정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이 깊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네가 나를 떠나지 않는 한 너를 내보낼 생각이 없어. 만약 네가 나를 떠나겠다고 한다면, 라노크의 영혼을 내놓으면 즉시 보내줄 거야."

"왜?"

"너는 아직 나의 부인이 아니니까."

현정은 실망한 얼굴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

순간 내 주위가 변했다. 무책임한 놈의 세계였다.

"여어. 반가워. 또 만났네."

- 네가 나를 부르는 용건은 하나 뿐이잖아. 또 어디야?

"이제 설명할 필요도 없네. 그럼 부탁해."

나는 같이 가고 싶은 사람들을 머리 속에 그렸다.

눈을 뜨니 울창한 밀림 속이었고, 뒤에 30m가 넘는 큰 나무가 서 있었다. 앞에는 나무 막대기와 줄로 큰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아마 이 나무는 신령한 곳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여기는 어디야. 갑자기 어떻게 된 거지?" 현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어떻게 된 거죠?" 제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 다 체육복 차림이었다. 가을 체육대회 중간에 소환된 것이었다.

"우리는 다른 세계로 소환된 거야. 이제 마왕을 죽여야 돌아갈 수 있어."

현정이 나에게 달려왔다. "뭐야? 날 끌고 온 거야?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빨리 보내줘."

제니스가 현정의 손을 잡았다. "네가 오고 싶어 온 거잖아."

"난 이런 곳에 오고 싶다고 한 적 없어."

"서방님의 부인도 아닌 네가 어떻게 여기 올 수 있었지?"

현정은 무언가 생각난 듯 뒤로 물러섰다. "난 그저..."

"네가 서방님과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오게 된 거야. 안 그래?"

현정은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여기서 움직여야 해. 이 곳은 정글이라 밤이면 야생 동물들이 달려들 거야. 빨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해."

나는 주머니 마법으로 물건을 꺼냈다. 우선 전투 장비부터.

제니스도 자신의 주머니 마법으로 장비를 꺼내었다. 로브, 부츠, 마법지팡이 등. 모두가 마력이 걸린 특수 장비들이었다.

"제니스, 언제 그런 물건들을 준비한 거지?"

"마야님께서 다음 소환에 대비해 저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다음 소환에 서방님을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선택하신 거죠?"

"너하고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제니스는 웃으며 현정을 보았다. "현정은?"

"솔직히 현정이를 생각했지만, 정말로 따라올 줄은 몰랐어. 현정이는 내 부인이 아니니까 안 될 줄 알았는데, 어떻게 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

제니스는 자신의 장비와 비슷한 것들을 한 세트로 내놓았다. "현정. 이 것을 입어."

현정은 제니스를 따라, 옷을 갈아입으려 했고, 나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잠시 후, 같은 쥐색의 로브를 입은 두 사람이 나에게 왔다.
마력으로 느껴보니 모두가 상당한 마법이 걸린 것들임을 알 수 있었다.

제니스가 설명했다.
"부츠는 안이 부드러워 발이 헤지지 않고, 안에 땀이 차지 않습니다. 마법으로 내구성도 보장되어 있고 몸이 가벼워집니다.
로브는 마력과 물리 저항이 있어 웬만한 공격을 막아주고, 추위와 더위를 막아줍니다."

제니스는 로브를 올려, 안에 입은 튜닉과 같은 옷을 보여주었다.
"이 옷을 입으면 피로가 덜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서방님의 손에 닿으면, 즉시 벗겨지는..."

마야가 그 옷을 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주변의 마력을 느껴보았다. 마력으로 숲을 나가려는데, 주변에 인간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길을 잃을 것 같았다.

제니스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숲 깊숙한 곳에 있군요. 이대로라면 길을 잃을 것 같습니다."

제니스는 조용히 마법을 영창하고 주변을 둘러보다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길이 보입니다. 큰 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통행한 흔적이 보이는 군요."

"어떻게 아는 거지?"

"마법으로 본 겁니다."

제니스의 마법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정말 편리하다 생각했다. 눈으로 멀리까지 볼 수 있다니...

우리는 제니스가 본 길을 찾아 걸어갔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야생 동물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두려워 피하는 것 같았다.

저녁이 되어, 나는 주머니에서 텐트와 야영 장비들을 꺼냈다. 이 때를 대비해 준비해둔 것이었다. 돈은 차고 넘치고, 현대적 야영 장비들은 많은 의미에서 편리했다.

가스버너와 냄비로 스프를 만드는데, 제니스가 나서서 만들었다.

만든 음식이 참 맛있었다. 내가 할 때보다 100배는.

현정도 감탄했다. "잘 만들었어. 제니스.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지?"

"나는 그냥 집에서 시중 받던 사람이 아니야. 프랑크와 함께 10년이 넘도록 숲에서 양을 치며 살았어. 그러니 이런 음식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프랑크라면, 너의 아들?"

제니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미안..."

"아니야. 조만간 만나게 될 거야."

나는 제니스의 슬픈 얼굴을 보며 아무 말 못했다. 제니스를 돌려보낼 것이지만, 제니스가 그 곳에서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져녁이 되어 텐트 두 개를 쳤는데, 현정은 남자, 여자들로 나누어 자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제니스는 나를 따라 텐트에 들어가려 하자, 현정이 물었다.
"제니스, 여자들은 여기서 자야 해."

"너 혼자 자. 나는 서방님을 모셔야 해."

"모신다 하는 것은 그런 거야?"

"물론. 서방님의 부인은 여기서 나 하나야. 부인의 권리이자 의무니까. 현정은 혼자 자."

"이 텐트들이 서로 붙어 있어. 바로 옆에서 그러는데 나 혼자 자라고?"

"그럼 멀리 떨어져 자. 야생 동물과 함께."

현정은 얼굴이 벌개져, 텐트를 우리 것과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제니스는 텐트에 들어와 나와 마주 앉았다.

"정말 나하고 잘 셈이야?"

"그럼 서방님이 여기서 안을 여인이 저 말고 누구지요?"

"그거야 조금 참으면."

"부인이 있는데 서방님께서 참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저의 밤시중이 싫으신 가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저는 부인이 아닌가요?"

"그 것도 아니지만..."

"그럼 저를 통해 풀어두세요."

"뭘?"

"남자는 몸 속에 쌓아두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제 몸으로 푸세요."

나는 웃으며 제니스의 몸에 손을 댔다. 정말로 내 손이 닿자마자, 그녀의 튜닉이 벗겨졌다.
내가 덮치자, 제니스는 웃으며 텐트에 결계를 쳤다. 우리 소리가 텐트 밖에 나가지 않도록.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현정이 벌써 텐트를 치우고 있었다.

"현정아. 잘 잤어?"

현정은 눈 밑에 다크써클이 생긴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자라는 거지? 너희들의 숨소리 신음 소리가 다 들리는데?"

그 말에 제니스가 놀란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웃으며 현정에게 힐링을 걸어주었다. 힐링은 피로 회복 효과도 있어, 금세 현정의 피곤기가 없어졌다.

내가 힐링을 거는 모습을 제니스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빨리 가자. 숲 속을 벗어나는 것이 급하니까."

텐트를 정리하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제니스를 안은 중간에도 주위에서 야생동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서 맹수들과 늑대들의 기운이 느껴졌지만, 어느 거리 이상 접근해오지 못했다.

우리가 길을 걷는 동안에도, 짐승들이 우리를 피해 다녔다.

..............

다음 날 오후에 멀리서 마을이 보였다. 집이 10채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숲에서 나오는 우리들을 경계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몸을 굽혔다.
"우리는 수행자들입니다. 신의 뜻에 따라 수행을 다니는데,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이 곳에 왔습니다."

사람들 중에 아이 하나가 있어, 주머니에서 사탕들을 꺼내어 다가가 내밀었다.

그 아이는 우리를 경계하다가, 내가 손에 있는 사탕을 입에 넣자 다른 사탕을 집어 들고 입에 넣었다.

"맛 있어..."

어린 아이의 말에 사람들의 경계가 풀어졌다.

"오빠와 언니들은 지금 숲에서 나와 피곤해. 여기서 쉴 곳 없어?"

"우리들 집은 작아서 세 사람이 쉴 곳이 없어. 하지만 촌장님 집은 크니까 괜찮을 거야."

"그럼 안내해 줄래?"

나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몇 개를 집어, 아이에게 내밀었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제가 촌장의 부인입니다. 당신들은 누구시지요?"

나는 일어서 그녀에게 몸을 굽혀 인사했다.
"저희는 신의 명령에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여기에 왔지요. 근처 큰 마을로 가려 합니다.
지금 우리는 몹시 피곤한 상태입니다. 쉴 곳과 음식을 제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금덩어리를 꺼내어 촌장 부인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받아 들고 얼굴이 밝아졌다.

"저희 집도 작지만, 헛간이 있으니 그 곳에서 쉬시면 될 겁니다. 음식이 필요하시면, 드리지요."

역시 돈의 위력은 크다.

우리는 촌장 부인이 제공한 음식을 먹으며 헛간에서 쉬었다.

저녁이 되자, 촌장이 소들을 끌고 들어왔다.

소들을 헛간 안에 넣고 나무로 가둔 후, 촌장은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내에게 들었습니다. 여행자들이시라고 하셨지요? 누추하지만 여기서 쉬시고, 식사는 집에서 하시지요."

현정이 내 옷소매를 잡아 당겼다. "지금 저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거지?"

"현정아. 저 사람 말이 안 들려?"

"너는 들려? 외국어잖아."

제니스가 말했다. "현정. 언어 마법을 영창해 봐."

현정이 마법을 영창했다.

"아저씨. 저희는 이 곳에서 자야 하나요?" 현정이 촌장에게 물었다.

"보시다시피, 우리 집은 너무 좁습니다. 누추하지만 여기가 좋을 것 같군요."

현정과 촌장이 말이 통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나섰다. "여기 건초를 덮고 자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저녁이 준비되면 부르겠습니다."

촌장이 나가자, 현정이 제니스에게 물었다. "언어 마법이 있어야 대화가 가능 한 거야?"

"지금 해보고 또 왜 묻지?"

"이 마법이 얼마나 효과가 지속될지 알 수 있어?"

"사람마다 틀려. 내 경우엔 반나절은 지속되었어. 만약 마법이 풀리면 다시 걸면 될 거야. 그 마법은 기초적인 것이니까."

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이 마련한 식사는 소박했다. 빵과 포도주, 치즈. 나는 주머니에서 말린 고기를 꺼내어 촌장 가족들과 같이 먹었다.

현정은 곧바로 촌장의 작은 아들과 친해졌다. 5세 남짓한 촌장의 아들은 현정과 친해져 농담을 나누었다. 언어 마법의 효과로 현정은 다른 세계의 언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지요?"

나의 물음에 촌장이 대답했다.
"옆에 있는 큰 도시는 여기서 3일 거리에 있습니다만, 다음 주에 행상인들이 이 곳을 지나갑니다. 그들을 따라가면 쉬울 겁니다."

"행상?"

"우리 마을의 약초를 사가는 이들입니다. 한달에 2번 오는데 다음 주에 옵니다."

나는 탁자에 금 몇 개를 올려놓았다.
"그럼 며칠 더 신세지겠습니다. 잠은 헛간에서 자고, 음식을 부탁드립니다."

촌장은 좋아라고 금을 받아들었다.

촌장과 대화를 나누며, 이 세계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마왕은 2백년 전에 죽었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 무책임한 놈은 마왕을 죽이라고 날 보냈다. 분명 마왕은 살아있었다.

헛간에서 자려는데, 현정이 냄새 난다고 불평했다.
나와 제니스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았다. 이렇게 문명이 덜 발전된 환경에서, 헛간이라 해도 노숙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가축과 같은 지붕을 아래 먹고 자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
그런 경험이 없는 현정은 동물들과 같이 자는 것에 불편해 했다. 특히 냄새가 현정을 못 견디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런 현정도 다음날에 쉽게 적응했다.

...............

일주일 후, 우리는 마을에 온 행상과 함께 촌락을 나섰다.

길을 가는 도중 상인과 친해져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저는 마왕을 찾아 죽이라는 신탁을 받고 여행 중입니다."

"마왕이라... 이상하군요. 마왕은 2백년 전에 사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살아있고 찾아서 그 생명을 끝내야 합니다. 그 것이 신이 주신 저희들의 사명입니다."

"마왕이라... 2백년 간 나타나지 않았는데, 마왕이 살던 도시는 지금도 있으니 그 곳에 가보시죠."

"어디지요?"

"지금은 인족들의 도시가 되었지요. 이름을 로터스라 바꾸었습니다."

"그 곳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지요?"

"이 곳에서 한달 거리에 있지요. 제가 가는 마을에서 길을 물으시면 될 겁니다."

그 상인은 조금 생각에 잠겼다.
"혹시나 말인데, 우리는 살아있는 기간이 짧아 아는 것이 없지만, 오크나 엘프와 같은 종족들은 아는 것이 있을지 모릅니다. 200년 전에 마왕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있을지 모르죠."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는 길에서 다른 곳으로 가시면 오크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습니다. 그 곳에 오래 살고 있는 오크라면 혹시 아는 것이 있을지 모르죠."

상인과 대화하며, 우리는 같이 노숙했다. 상인들이 보는 눈이 있어, 제니스와 일을 벌이지 못했다.

다음 날, 갈림길에서 상인과 헤어졌다. 오크의 서식지로 가려면, 그 상인과 다른 방향으로 가야 했다.

길을 따라가니 숲에서 나와 벌판이 펼쳐졌다. 그 상인 말대로라면 숲을 벗어나 3일 거리에 있다고 했다.

가던 길 중간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니, 캠핑 온 기분이었다. 특히 현정이 제일 좋아했다. 간만에 보는 문명의 물건들은 역시 편리하니까.

상인들과 헤어져 좋은 것은 나였다. 주위의 눈치로 금욕생활을 했는데, 우리만 있게 되자 마음 놓고 제니스를 안을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