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규격 외의 마법 (45/148)



〈 45화 〉규격 외의 마법

두 달 동안 군병원에서 병사들을 치료하자, 우리는 최전선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허락을 얻었다.

그 날은 마왕성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있는 날로, 2년 간 포위에서 간간히 성을 공격하며 기회를 보며 오늘을 총공격의 날로 계획했다.

우리는 공격을 나서는 병사들 뒤에서 공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2만이라고 하지만, 병사들이 많이 줄었네요. 사기도 많이 떨어졌어요."

"제니스가 정확히 봤어. 오랜 전쟁에 지쳐 있어."

미야가 나섰다. "서방님, 우리가 나서서 저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좋지 않아요?"

"제니스의 생각은 어떻지?"

"이 정도로 인간들의 신뢰를 얻었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조금 도와주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갑자기 현정이 하늘로 올라가 살펴보다가 내려왔다.

"저기, 저 쪽, 동쪽 성벽이 부실해, 여기서 보면 이상 없지만, 뒤에서는 부실하게 보강해 놨어. 저 쪽을 공격하면 쉬울 거야."

그 말을 듣고 미야가 말을 달려 총사령관에게 전하려 했다.

미야의 말을 듣고 공격을 동쪽으로 집중하기 위해 병사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같이 이동해 현정이 지목한 성벽 바로 앞에 섰다.

그런데 현정이 병사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 병사가 현정에게 경고 했다. "위험합니다. 성녀님. 적의 공격이."

현정은 우리를 보고 씨익 웃었다. 여자의 저런 표정. 위험신호가 내 머리 속에 울렸다.

현정은 두 손을 하늘에 들고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에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멀어서 잘 안 들려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암흑보다 더 어두운 자여. 밤보다 더 깊은 자여. 혼돈의 바다에 흔들리는 자여. 금색으로 가득한 어둠의 왕이여.
나 여기서 너에게 바란다. 나 여기서 너에게 맹세한다."

이 주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리나 인버스가 사용하는 세계 파멸의 주문.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어리석은 자에게 나와 네가 힘을 합쳐..."

현정의 마력이 그녀의 머리 위에 모여 붉은 구체가 되었고, 그녀의 손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 구체를 들고 성벽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무슨 소리를 할지 잘 알고 있어, 나는 소리 질렀다.
"모두 엎드려. 폭발한다."

현정이 소리 질렀다.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다 줄 것을! 기~가! 슬레이브!"

소리 지르는 동시에 구체를 성벽을 향해 던졌다.

그 것은 빠른 속도로 날아가 성벽에 직격했고 폭발과 함께 폭풍이 몰려왔다.

나는 즉시 내 앞에 방어막을 만들었는데, 다행히 흙바람만 날아와 아군에게 피해는 없었다.

먼지에 시야가 가려 앞이 안보이자, 마야가 바람 마법으로 먼지를 날려 보냈다.

그 앞에 광경은 정말 처참했다. 현정의 마법에 동쪽 성벽의 20m가 끊어져 있고, 그 뒤로 마왕성 내부가 훤히 보였다.

현정의 강력한 마법에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모두 돌격하라." 돌격 신호가 떨어지자, 병사들이 성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현정이 마법을 사용한 그 순간 이미 전투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성벽 위에 있는 마족 병사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현정에게 다가갔다.

제니스가 물었다. "현정. 그 마법은 뭐지? 그런 강력한 마법이..."

마야도 놀라워했다. "나도 그런 마법은 쓰지 못해. 어떻게..."

솔직히 마법은 인마살상, 즉 인간이나 마물에게 큰 데미지를 입히도록 최적화 되어 있다. 원거리 살상 마법은 화력, 위력이 많이 떨어져 물리적 데미지는 크지 않다. 물리적 데미지를 높이려면 마력 소비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원거리 마법은 상대 신체에 데미지를 입히기 위해 진동으로 장기에 충격을 주거나, 마력이 체내에 침입해 체액의 온도를 높이거나, 신체의 일부를 얼리는 등의 방법으로 육체에 충격을 주는 방법을 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파이어볼은 그 자체의 화력은 벌 거 없어 나무에 맞아도 그을음이 조금 생기는 정도지만, 살아있는 생물에 닿을 경우 불이 떨어지지 않으며 계속해서 피부를 태우는 방식으로 데미지를 준다.

말하자면 원거리 마법은 마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물리적으로 큰 타격을 주지 않고 생물에게만 큰 효과를 내도록 한다. 더구나 피해를 더 주기 위해 팔의 힘으로 던져야 했다. 그러므로 파이어볼, 아이스 애로우와 같은 원거리 타격 마법도 사정거리가 20m 내외에 불과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우리가 소환된 이 세상에서 마력 소비가 3배나 높았다. 이 세상에서 성이 방어에 유용한 이유는 마법사 천명이 동시에 원거리 마법을 사용해도 성벽을 파괴할 정도의 물리적 위력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정의 마법은 틀렸다. 생물의 신체가 아닌 돌과 나무로 이루어진 성벽을 부수었다. 내가 다른 세상에서 쓸 수 있는 마법의 위력을 뛰어넘었다.
더욱이 나와 미야가 가까이 접근해 육체 강화로 할 수 있는 물리적 데미지를, 현정은 원거리 마법 그것도 사정거리가 50m가 넘는 긴 거리를 넘어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기존 마법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는 기적이었다.

나도 미야도 놀라서 현정을 바라보았다.

미야가 물었다. "나도 그런 마법을 쓸 수 없어. 그 마법은 뭐지? 그리고 그 주문은 뭐야?"

"기가 슬레이브. 또 리나 인버스를 따라한 거야?"

현정이 나를 보며 웃었다. "어머나! 잘 알고 있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 거리에서 저런 데미지를 줄 수 없어. 더구나 살아있는 생물이 아닌 무기물에.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현정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용의 마법이야."

"용의 마법!"

"네 말대로 인간의 마법은 살아있는 생물에게 효과를 내는 법에 특화되어 있어. 하지만 용은 지형을 바꾸기 위해 나무와 돌을 부수는 마법을 연구했지, 내 드래곤슬레이브가 그런 경우야."

제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군요. 드래곤브레스가 특이 마법인 것은 틀림없으니... 우리는 마력 소비가 많은 이 세상에서 불가능하지만."

"나의 기가슬레이브는 용들이 바위산을 부수기 위해 연구한 마법이야. 그래서 저런 돌과 나무를 부수는 일에 적격이지."

현정의 얼굴은 창백하고 숨이 거칠었다. 마력부족의 현상이었다. 내가 현정의 몸에 손을 대자, 제니스가 결계를 쳐주고 마야, 미야가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 안에서 나는 현정에게 마력을 채워주었다.

그 시간에 현정이 부순 성벽의 틈 사이로 인간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잠시 후 성문이 열리고, 성벽 위에 마족의 깃대가 부러지고, 인간 군대의 깃발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 마족의 깃발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성이 함락 직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총사령관 일행이 성 안으로 진입하려 이동을 시작했고, 우리도 따라갔다.

연합군의 단점은 승패가 확실해지면 자기 욕심 채우기를 먼저 생각한다는 점이다.

성 안에 들어가니 마왕을 잡기보다 약탈에 치중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곳곳에 죽은 시체가 널려있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어느 시간, 어느 세계이던지 전쟁과 약탈은 떨어질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참가한 영주들은 약탈에 더 흥미가 있는 듯 했다. 지나가다 보니 죽은 사람들보다 포로가 더 많았다. 노예제가 유지되는 사회의 특징이었다. 죽이기보다 노예로 파는 것이 좋고, 죽기보다 노예가 되어 살아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니스와 마야는 걸어가다가 혐오감에 눈을 돌렸다. 그 곳에서는 잡은 민간인들을 4그룹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가치가 없어 죽을 노인들과 아이들, 힘을 쓸 수 있는 남자, 젊은 여자, 기술자들 등으로 노예로 팔 사람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그들을 구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혁명 이념은 20세기의 이론이었다. 그 전에는 우리도 이들과 같은 상식으로 살아왔었다.
아직 정치적, 이념적 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우리의 상식은 이질적이다 못해 이단적이었다. 이단은 죽어야 한다고 믿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적이 되기 싫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내가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내 능력으로 상식을 바꿀 수 없었다.

첫 번째 소환에서 나는 그 세계의 상식대로 행동했다. 그 것이 살 수 있는 길이었다. 전쟁 중에 잔혹행위에 앞장섰고, 민간인을 노예로 팔아 이득을 챙겼다.
제대 후에 장사를 하며 노예를 사고팔았다.
부인이었던 파르노는 나에게 노예를 성적 대상으로 삼을 것을 권유하며 어린 소녀를 사왔을 정도였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의 세계도 전쟁의 약탈과 노예가 상식이었다. 패배한 국민은 저항하지 않으면 노예로 만들어 목숨을 살려주고, 승리한 쪽에서는 약탈과 함께 노예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런 일에 익숙한 우리들은 약탈과 노예화를 보고 지나쳐버렸다. 현정을 끌고.

..................

모든 나라에서 가장 짭잘한 약탈 대상은 왕궁이었다.

그런데 여러 영주들이 민가 약탈에 빠져 왕궁에 마족 병력들이 모이도록 허용하였다. 아직 남은 군사들이 있어 왕궁 공략은 쉽지 않아 보였다. 약탈에 눈이 먼 이들에게 왕궁은 최우선 약탈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싸움보다 중요한 것이 재산 증식이니까.

우리는 총사령관의 개인 병력 만으로 왕궁을 포위했다. 하지만 2천 정도의 적은 병력으로는 왕궁을 점령하기 힘들어 보였다.

총사령관은 다른 영주들의 병력이 합류하길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소수의 병력만 왕궁을 경계하도록 배치하고, 그 역시 약탈에 나섰다. 왕궁 주위에 부유한 귀족들의 집들이 몰려 있어서, 그들에게 군침 도는 사냥감들이었다.

우리는 100명 정도의 소수 병사들과 함께 궁 앞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궁 안에서는 마왕의 병사들이 방어 진영을 갖추고 있었다.

제니스가 스캔 마법으로 확인했다. "수는 500 정도이지만, 안이 미로와 같이 복잡해 매복하기 좋습니다. 총사령관의 판단대로 섣부르게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네 생각은 일반적인 병사들 끼리의 전투에서 인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나는 마야를 바라보았다. "마야도 기다릴 생각이야?"

"서방님이 결정하세요."

미야가 나섰다. "나는 기다리는 데 지쳤어요. 빨리 우리가 들어가 해결하죠."

현정이 나에게 물어왔다. "왜 여기서 기다리자고 하는 거지? 저 정도 병력이야 우리 힘으로도 가능하잖아?"

"물론 나 혼자서도 저들을 전멸 시킬 수 있어. 우려되는 것은 우리가 들어가 저들을 다 죽인다 해도, 마왕이 도망가면 우리는 신뢰를 잃는 것 밖에 안 돼."

"재신이는 너무 신중한 것 같아. 여기 이렇게 포위하고 있는데 어디로 도망간다는 거지?"

"전의 세계에서도 마왕은 2백년 간 숨어 있었잖아?"

현정은 아무 말 못했다.

"만약 우리가 들어갔는데 마왕을 찾지 못하면, 저들은 우리를 의심할 거야. 그 후에 우리는 마왕을 찾기가 더 힘들어져. 최악의 경우 마왕 말고 저 인간들의 군대와 싸워야 할지 몰라."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기서 마왕의 마력을 감시하고 있어. 아직 저기 궁 안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아. 그러니 여기서 기다리자. 하루 이틀이면 될 것 같아."

우리는 병사들과 왕궁을 감시하며 대기하기로 했다.

왕궁 위에서 무언가 이상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나는 급히 제니스를 불렀다. "제니스! 왕궁 위를 봐! 뭐가 일어나고 있어?"

제니스는 주문을 외우며 스캔 마법을 사용했다.

그녀는 하늘을 보고 놀라며 소리쳤다.
"마력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이건 마력을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왕궁에서 마력을 방출하는 것도 아니에요. 마력이... 마력이 왕궁 주위를 소용돌이처럼 돌고 있습니다."

나는 모두에게 외쳤다. "모두 경계해라. 적의 공격이 올지 몰라."

갑자기 굉음을 내며 마력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럴 수가. 마왕이 없어. 사라졌어."

"네?"

"마야, 미야. 궁으로 진입한다. 마왕이 도망쳤다. 도망친 단서를 찾아야 해!"

나는 칼을 들고 왕궁에 뛰어들었다. 경비병들이 있었지만, 나와 미야를 막지 못했다. 많은 병사들이 우리 뒤를 잡으려는데, 마야와 제니스가 마법으로 견제했다.

하늘 위에서 현정의 드래곤슬레이브가 날아와 내 앞에 있는 벽이 부서졌다.

"이 벽을 넘어가면 궁의 중앙으로 가는 지름길이야." 뒤에서 현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야와 함께 최대한 빠르게 왕궁 가운데를 향해 달렸다. 마왕의 궁도 다른 왕궁들과 다르지 않게, 넓은 정원이 궁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정원 가운데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사제의 옷을 입고 원형으로 몰려 있었다.

나는 공중으로 도약 한 후, 그들의 가운데에 착지했다. 그들은 나의 등장에 당황하며 도망치려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추격하며 몇 명의 목 뒤를 쳐서 기절 시켰다.

미야도 나처럼 죽이지 않고 몇 명을 제압했다. 도망치려는 몇 명은 마야의 파이어볼을 다리에 맞아 쓰러지고, 제니스는 땅을 진흙으로 만들어 몇 명의 다리를 묶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사로 잡았다.

우리가 사로 잡은 사제들은 12명. 얼굴을 보니, 노인, 어린이, 청년, 중년 등 성별과 나이가 다양했다. 그들 중 가장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을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야! 마왕은 어디 있지?"

"우하하하...." 중년의 그는 나를 보며 웃었다.

이런 자는 쉽게 입을 열지 않는 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니, 어린 소년, 소녀들이 떨고 있었다.

나는 웃고 있는 그를 땅에 던진 후, 칼을 들어 단칼에 목을 잘랐다. 몸과 목이 잘린 모습과 튀어나온 피를 보고, 몇 명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다시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을 끌어내 목에 칼을 댔다.
"마왕은 어디 있느냐?"

"여기에 없다."

나는 그녀의 목을 베어 죽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소년을 잡고 끌어냈다.

"제발... 살려주세요. 마왕께서는 여기에 안계세요..."
소년은 울면서 사정을 했다.

"마왕은 어디에 있느냐?"

"그건..."

나는 칼을 다시 들어 그의 새끼 손가락을 잘랐다.

"으아악!" 소년은 비명을 질렀다.

"다음은 네 팔이다. 대답해라."

"여기서 사라져서 어디 갔는지 모릅니다."

제니스가 물어왔다. "사라져? 지금 사라졌다고 말했어? 도망친 것이 아니고 사라져?"

나는 다시 칼을 소년의 팔꿈치를 겨누었다.

"제발... 마왕께서는 사라지셨습니다. 다시 부활하시기 위해 육체를 불태우고 영혼이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들이 서있던 곳에서 재가 보였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마왕의 화장된 재일 것이었다.

"그럼 마왕의 영혼은 어디로 갔느냐?"

"저희도 모릅니다. 마왕님의 영혼은 하늘을 떠돌다 인간의 육체를 빌려 다시 소생할 겁니다."

"인간의 육체? 어떤 인간이지?"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영혼이 마음에 드는 육체를 고를 겁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일이 길어질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