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마왕의 왕비
총사령관이 남겨둔 병사들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죠?"
마왕의 사제 중 한 명이 병사들에게 무릎 꿇고 사정했다.
"마왕님께서는 자결하셨습니다. 저렇게 육체를 태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병사는 품 속에서 무언가 꺼내어 하늘에 던지니, 공중에서 폭발하며 소리가 났다.
나는 떨고 있는 소년에게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마왕의 영혼을 찾을 수 있지?"
"저희는 모릅니다. 그 영혼이 어떤 육체를 선택할지 아는 것이 없습니다."
.....................
이후 총사령관과 영주들의 군사들이 왕궁에 들이닥쳤다. 그들이 관심 있는 것은 마왕의 생존과 보물들.
마왕이 죽어 재만 남은 것을 확인하고, 그들은 곧장 약탈에 몰두했다. 궁 안에서 시녀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병사들은 물건을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궁 안에 있던 경비병들과 시종, 시녀들은 모두 포로로 잡혔다.
모두 약탈에 열중하고 있을 때, 마야가 총사령관에게 찾아갔다.
잠시 후, 마야는 한 소녀와 함께 왔다. 그녀는 마왕의 시체를 태울 때 있었던 사제 중의 한 명이었다.
"멜리사. 인사드려라. 여기는 우리의 서방님이시다. 너는 주인님이라고 불러라."
"주인님. 멜리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된 거지?"
"앞으로 마왕의 영혼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곳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죠. 멜리사는 인족 나라 출신이면서 마족 나라에서 성장했고, 마왕의 의식에 참여했습니다. 도움이 될 겁니다."
멜리사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제니스가 다가가 멜리사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마. 여기서 너를 해칠 사람은 없어."
현정이 뒤에서 멜리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우리가 널 지켜줄 거야. 여기서는 안전해."
안심한 얼굴로 멜리사는 고개를 들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에 두 사람의 목을 베어 죽인 내가 무서운 것이었다.
마야가 말했다. "멜리사. 너는 저기 계시는 서방님의 노예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자유를 주겠다. 그러니 서방님과 우리의 명에 따르거라."
"알겠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
다음 날 나와 마야는 마왕궁 안에서 열린 축하 파티에 참석했다. 참가한 영주들은 그동안 노고에 맞게 두둑한 전리품을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다.
총사령관은 상석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여자가 입은 옷을 보고 마야는 눈살을 찌푸렸다. 입은 옷을 보니 마족의 상당한 신분으로 보였다.
마야는 화를 참지 못하고 총사령관 앞으로 걸어갔다.
"지금 품에 안고 있는 분은 누구죠?"
"아아... 이 계집? 마왕의 부인이라는 군."
"아무리 패배한 나라라도 귀족을 함부로 하는 것이 이 곳을 율법입니까?"
총사령관은 술에 취한 채로 옆에 있던 중년 여성의 머리칼을 잡고 마야 앞에 던져 넣었다.
"그럼 네 마음대로 해. 늙은 년이라 맛도 없었어. 주제를 알아야지...."
"지금 그 말은 나에게 한 건가?" 마야의 말투가 달라졌다.
"저 여자에게 했다. 저런 계집을 원한다면 데리고 가. 난 흥미 없으니."
나는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는 여인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물었다. "이 분 말고 마왕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죠?"
옆에서 다른 영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들 있잖아?"
둘러보니 영주들이 몇 명씩 여자들을 끼고 있었다. 모두 입은 옷이 범상치 않았다. 아마 마왕과 혈연 관계인 사람들로 보였다.
"그럼 남자들은 어떻게 되었죠?"
한 남자가 음식상을 발로 찼다. "여기 있잖아."
발로 차인 것은 가구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사람이 웅크려 그 위에 천을 깔고 음식상처럼 이용하는 것이었다. 둘러보니 모두 그런 식인 것 같았다.
그런데 총사령관이 앉은 의자가 들썩거렸다.
"이...이... 불편하게 뭐하는 거냐?"
총사령관은 허리에 있는 칼을 들고 앉은 의자를 찔렀다. 의자에서 피가 흘렀다. 아래에도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모두 구역질 나는 짓들이었다.
마야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당장 이들을 모두 풀어줘라."
그러자 마야에게 술잔이 날라왔다.
"네 년이 뭔데 큰소리냐? 이들을 당장 끌어내라!"
나는 화를 내는 마야의 팔을 잡고 파티장을 나왔다.
"구역질 나는 군.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저런 짓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저 놈들을..."
나는 마야의 어깨를 잡았다. "나에게 맡겨둬."
나는 숙소에 돌아갔다 마야와 현정을 데리고 다시 나와 방금 전 파티장 앞으로 왔다.
"마야씨 말만 듣고도 구역질 나네. 당장 쓸어버려야 겠어."
나와 마야는 현정에게 부탁했다.
"현정아. 저런 역겨운 놈들을 용서하지 말고 네 마음대로 해."
"현정. 이번에 네가 마음대로 날뛰게 내버려 두겠어."
현정은 마력을 방출해 공중에 구름이 모이게 했다. 구름이 모여 마왕성 위의 하늘에 검은 구름으로 덮혔다.
"아리아. 저 녀석들에게 네 힘을 보여줘."
현정의 몸에서 거대한 마력 덩어리가 빠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마력덩어리는 검은 구름 안으로 들어갔고, 구름이 용의 형태로 변했다.
검은 구름의 용은 땅을 향해 브레스를 발사했다. 그 곳은 성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던 인족 군대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폭발의 굉음을 듣고 파티장에서 인간들이 비틀거리며 뛰쳐나왔다.
나는 우리 앞에 있는 한 천막을 가리켰다. "저기 저 건물에 약탈물들이 쌓여 있어."
현정이 검은 구름을 바라보자, 그 곳에 브레스가 떨어졌다.
"안돼. 저기는..."
"내 보물. 내 보물..."
파티장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절규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웃었다. 그런 보물 때문에 저렇게 좌절하다니...
나는 다시 한 텐트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 곳에는 미술품들을 모아 놓았어."
용의 브레스가 그 곳을 폭파시켰다.
총사령관과 여러 귀족들이 칼을 빼들고 우리를 포위했다.
"네놈들 무슨 짓이냐?"
"저희는 신의 뜻을 전할 뿐입니다. 신께서 여러분들의 만행에 노하셨습니다."
"닥쳐라. 너희들이 하는 짓이 아니라면 누가 한다는 말이냐?"
용의 브레스가 하늘에서 날라와 정원의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폭발의 굉음과 충격에 우리를 제외한 모두들 땅에 엎어져 웅크렸다.
"저희는 신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신께서 노하셔서 포로들을 풀어주고 이 땅을 떠나라 명령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용이 다시 브레스를 발사해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의 10m의 거리에 떨어졌다. 가까이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모두들 두러움에 떨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 경고라 하십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발 그만. 어서 노여움을 푸시지요.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신께서는 사과가 아닌 행동을 바라십니다. 빨리 마왕의 가족들과 포로들을 조건 없이 풀어주시고 마왕성을 떠나십시오. 신께서는 두 번 말하지 않으십니다."
검은 구름이 내려와 우리 뒤에 서 있었다. 검은 구름 안에서 빛이 모이는 것이 보이자, 모두들 땅에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 노여움을..."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포로를 풀어주면 파산입니다. 이미 전비로 너무 많은 돈을 써서, 노예가 없다면 우리는..."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렇게 전리품들도 다 부숴버리시면, 노예 없이는 저희는 살 수 없습니다. 저희 사정을 살펴주십시오."
그 말도 맞는 것이었다. 전쟁에는 돈이 많이 든다. 이들은 3년 간 전쟁을 치루며 많은 빛을 진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노예를 포기하라는 것은 망하라는 말과 같았다.
"그건 우리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마왕의 전 부인이 걸어왔다.
그녀는 우리 옆에 서서 땅에 엎드린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내일 당장 떠나간다고 약속하시면, 우리의 보물을 내어드리지요."
모두 일어나 우리를 노려보았다.
"거짓말 마라. 넌 분명 숨겨둔 것이 없다고 했다."
"당신들이 물러간 후, 나라의 재건을 위해 사용하려 감추어둔 보물이 있습니다. 그 것을 드리지요. 그럼 당장 당신들의 나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금액이 문제지. 얼마나 내놓을 것이지?"
"내일 다시 오시지요."
우리들 뒤의 하늘에서 노려보고 있는 검은 구름을 보고, 그들은 물러갔다.
나는 그 왕비에게 물었다. "정말 보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만 마왕만이 열 수 있는 곳입니다."
현정이 물었다. "그럼 마왕이 없으니 열 수 있다는 건가요?"
나는 하늘 위에 있는 검은 구름을 가리켰다. "현정아. 우선 저것부터 치워. 저 분이 무서워 하잖아."
현정이 하늘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구름이 없어지고 마력이 현정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왕비는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녀를 따라가니 궁 안 깊은 곳의 한 바위산에 이르렀다.
왕비는 그 바위들 손으로 두드렸다. "여기가 마왕의 비밀 창고입니다."
마야가 물었다. "마왕 없이는 열 수 없는 것이냐?"
현정이 물었다. "그럼 우리도 열 수 없잖아요."
왕비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도 그런 줄 알고 있었습니다만, 좀 전에 저 분이 내 손을 잡는 순간 저 분이라면 이 문을 열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세 명의 시선이 나에게 모아졌다.
"내가? 마왕이 아닌 내가?"
"당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힘이라면 이 곳을 열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그럼 어떻게 여는 거죠?"
왕비는 바위의 한부분에 손을 대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부분에 손 모양이 파여 있었다.
"여기에 손을 대고 마력을 주입하시면 됩니다."
나는 그 곳에 손을 대고 마력을 주입했다. 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달랐다. 많은 마력을 주입하자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위산이 움직이며 산이 둘로 갈라졌다. 갈라진 틈에 계단이 있었다.
"이거 마력의 세기만 문제이지, 누구라도 가능한 거 아닌가요?"
왕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내려가 빛을 비추니 산더미 같이 쌓은 보물이 있었다. 내 침대만한 넓이와 3m의 높이의 공간에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었다.
현정이 물었다. "그럼 얼마를 지불해야 하지요?"
"포로 방면이 최우선이니, 노예 한사람 값을 치루면 될 겁니다."
왕비는 바닥에 있는 은화 한 개를 주웠다.
"어린애 한 명에 이 은화 1개, 어른은 3개를 지불하죠. 금화는 어린애 10명, 어른 3명입니다."
마야가 둘러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모든 포로에게 자유를 주고도 남겠네요."
"하지만 마왕은 바보군요. 지면 이런 보물도 소용없는데 쓰지 않고 모아두기만 했다니. 나라면 이 것들로 인간들을 매수했을 겁니다. 그런 시도도 안 한 건가요?"
내 말에 왕비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마왕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어리석군요. 이렇게 보물이 쌓여 있다는 것은 외교라는 것을 안했다는 의미입니다. 마왕만이 열 수 있는 창고라는 것도 그렇지요. 신하들이 충성을 바친 것이 기적 같아요."
왕비는 아무 말 못했다.
"포위 된 지 2년 이라고 했는데, 그 동안 이 재물로 아무 것도 안 한 겁니까?"
"그만! 그만해요. 우리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모든 책임을 마왕에게 돌리는군요. 마왕은 도망치고 모든 책임을 당신과 백성들이 지고 있는 겁니다. 억울하지 않으신가요?"
"억... 울해요. 하지만. 하지만."
"그럼 그 마음을 평생 잊지 마세요."
왕비는 놀라서 날 바라보았다.
"나도 후회할 일을 많이 했죠. 괴로워 하던 나에게 예전의 아내가 말해줬습니다. 그 마음을 잊지 말고 살라고. 살면서 속죄할 기회가 있다면 속죄해야 한다고, 이대로 무너지면 속죄할 기회가 없다고.
나는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기회를 얻기 위해. 그리고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안 할 거라고 생각하며 다짐했죠.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후회하는지 몰라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세요. 당신이 오늘 당한 치욕, 당신 가족들이 당한 치욕, 백성들이 당한 치욕을 잊지 마시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세요. 당신들이 그 것을 갚을 날이 꼭 옵니다. 그 때를 놓치지 마세요."
왕비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급한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 것들을 운반할 사람들이 필요하죠."
왕비는 그 창고를 나가서, 잠시 후 사람들을 끌고 왔다. 한 남자는 다리에 천을 감아 지혈한 상태로 부축을 받으며 왔다.
"이 사람들은..."
"그 안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마왕의 형제, 자매, 아들딸들이죠."
왕족들은 스스로 마왕의 보물을 밖으로 꺼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