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과거의 나는 (48/148)



〈 48화 〉과거의 나는

그 이후로 나는 미야와도 그런 일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수색을 계속했고, 희생자들을 만났다. 3개월 간 그런 일을 듣다보니, 현정을 빼고 모두가 충격을 받지 않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상인들이 전해온 정보를 토대로 수색 범위를 좁히기로 했다. 마왕성 함락 직전에 인간의 병사들이 습격한 마을을 탐색하기로 했다.

우리가 찾은 마을은 산 속의 조용한 농촌이었다. 이런 외진 곳까지 병사들이 왔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마을은 달랐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스스로 젊은 여성들을 골라서 병사들에게 공급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죽은 사람이 없었다.

마야와 엘리자는 촌장과 남자들을 벌레 보는 눈으로 내려 보았다.

"그래서... 너희는 여자들을 희생시켜 목숨을 구한 거냐?"

"그렇습니다. 병사들은 며칠 간 머물다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그럼 너희들 중에 임신한 사람이 있느냐?"

촌장은 몇 사람의 여성을 데리고 왔다. 모두 임신한 몸으로 무거워 보였다.

내가 물었다.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이들이 낳는 아이는?"

"아이를 낳은 후, 적당한 마을 사람과 결혼할 겁니다. 아이들은 원하지 않으면 마을에서 공동으로 키우기로 했습니다."

"공동으로 키운다고?"

"마을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비겁하다고 해야 할까, 현명하다고 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성들을 희생시켜 마을을 구한 것은 비겁해도, 희생자를 포용하겠다는 생각은 칭찬할 만 했다.
하지만 보상이 있다 해도 그들이 당한 희생을 채워줄 수 없다. 희생을 강요한 것은 잘못이었다.

현정이 그녀들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일을 당하시고, 저들이 밉지 않아요? 당신들을 병사들에게 밀어 넣은 자들이에요."

임신한 여성 중 하나가 대답했다.
"저 사람들은 우리의 아버지, 오빠, 동생입니다. 저도 저를 이렇게 만든 저들을 용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저들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는 겁니다."

옆의 여성이 자신의 배를 만졌다.
"그래요. 당신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할 수 있죠? 그저 돈 몇 푼 던져주고 우리 마을 남자들을 죽일 건가요? 남자들 없이 우리는 굶어 죽어요. 이 아이도요."

"나도 나만 당하는 것 같아 억울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다른 마을 소식을 들었나요? 남자들이 다 죽어, 여자들이 밭을 갈고 있어요. 추운 겨울에 땔감이 부족하다죠?
적어도 우리는 그런 것이 없어요.
그리고 내 아이는 커서 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하게 해 줄 겁니다.
내가 이렇게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살 수 있다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서는 누구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당신이 방금 우리에게 정의니 뭐니 떠들었지만, 당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뭐죠? 돈? 음식? 우리로 인해 살아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 먹을 것과 땔감을 줄 겁니다. 그들이 못하면 그들의 아들들이 하겠죠. 그 중에 내 아이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죠? 우리가 억울하다고 호소할 상대는 당신이 아니라 우리 마을 남자들에게 입니다.
그러니 가세요. 우리는 당신들에게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마을 남자들에게 할 겁니다. 보상해 달라는 말도 그들에게 할 겁니다."

앞에 나온 여성들이 차례로 말했다.

오히려 현정을 배척하는 태도에,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충격 받은 현정을 제니스가 끌고 갔고, 나는 다시 그들에게 질문했다.
"그럼 병사들이 여기에 왔던 때가 마왕성 함락 전이었다는 거였죠?"

그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아니었다.

우리는 다음 마을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현정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길에서 텐트를 치고 쉬는 동안, 현정은 혼자 무릎을 안고 고민하고 있었다.

텐트는 3개였다. 내가 혼자 사용하고, 여자들이 2개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밤이 깊었는데, 현정이 나의 텐트로 들어왔다.

"할 말이 있어?"

"묻고 싶어. 네가 그런 짓을 할 때 기분이 어땠는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칼로 사람을 찌른 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몰라. 사람의 피가 튀고 피냄새를 맡으면 이성이 날아가 버려. 이후 짐승 같은 본능에 몸을 맡기고 싸우는 기계가 되어버려."

"나는 그 일에 대해 묻는 거야."

"그 것도 같은 거야. 피를 보고 피냄새를 맡으면 본능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이성을 찾고 진정이 되면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적을 죽이는 것이나, 적의 민간인을 범하는 것은 같은 거였어.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거야."

"중간에 좋다거나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

"느껴져서 좋다는 동료들이 있었어. 하지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 나는 결혼할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과 미쳐 날뛰는 것은 달라. 좋다고 할 수 없어. 한 뒤에 혐오감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 한동안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어."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전쟁이 끝나고, 3년 동안 아내와 하지 못했어.그녀에게 다 털어놓고 용서를 구했을 때, 파르노는 나를 감싸주었어. 하지만 그녀를 다시 안기까지 3년이 걸렸어."

"너의 첫 아내 이름이 파르노였어?"

"그래, 파르노. 나의 첫 여자였고, 아내였어."

"어떤 여자 였는데?"

갑자기 변한 그녀의 목소리 톤에 나는 당황했다. "너는 뭘 물으러 온 거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지금은 물어볼 수 없어. 그러니 파르노에 대해 말해줘."

"싫어."

현정은 내 품에 파고들어 내 팔을 베고 가슴에 머리를 얹었다.
"듣고 싶어. 말해줘."

그동안 심각했던 분위기에 이런 달콤한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파르노를 만난 것은 첫 번째 소환 직후야. 그 때 나는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중학생이었어. 모르는 세계에 홀로 떨어져 마물에 쫓겨 죽을 뻔했지.
날 구한 것이 파르노가 속한 모험자 파티였어. 전위 전사 칼, 후위 전자 디노, 마법사 파르노, 치유술사 슈가의 4명으로 이루어진 B급 파티였지. 나는 말도 안통하는 그 곳에서 살기 위해 그 파티의 일원이 되었어."

"처음부터 날아 다녔겠어?"

"아니! 처음에 나는 평범한 14세 중딩 능력 뿐이었어. 처음에 그 파티의 짐꾼으로 시작해, 말을 배우고, 마법을 배웠어.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파르노야. 처음엔 스승과 제자 사이였어."

"스승과 제자? 연상이었어?"

"우리가 처음 만날 때, 파르노가 23세였고 결혼한 유부녀였지."

"게다가 유부녀?"

"파티 전위 전사인 칼과 결혼한 사이였어. 파르노가 임신하면 파티를 해체하기로 했지만, 그런 일이 없어 일을 계속하고 있었지. 그런데 우리 파티도 전쟁에 참가했어."

"군대에 들어간 거야?"

"자원 입대가 아닌 징집이야. 싸움에 능한 모험가들은 필요하면 군대로 편성돼. 내가 있던 나라가 마족의 침공을 받고 모험가들을 군대로 징집했어.
우리 파티 모두가 입대했는데, 나는 마법사라 마법사 부대에 편성되었지. 복무하던 중에 칼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었어.
휴가 때 파르노를 찾아갔는데, 그녀와 첫날밤을 지내고 결혼을 약속했어. 몇 년 간 군에 있다가 마왕이 죽어 전쟁이 끝났고, 파르노를 다시 만났어. 그녀는 내 아이를 키우고 있었어."

"파르노가 미망인이었다 네 아내가 된 거네?"

"사람 죽이는 일만 하던 놈이 사회 나와서 할 게 없잖아? 파르노는 작은 술집을 디노와 운영하고 있었어. 나는 다시 그들에게 사정했고, 그 곳에서 일하게 되었지."

"그 때 결혼한 거야?"

"뭐 그렇지..."

"디노인가 하는 사람은?"

"디노는 파르노의 오빠야."

"취직이 된 거네? 아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이름이 카일이었어."

"그럼 아내와 아들을 두고 돌아온 거야?"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아. 내가 죽을 이유가 없었거든. 나는 그 때 30대의 한창 나이였어. 그런데 그 무책임한 놈이 죽어서 대한민국에 돌아온 거래."

"두번째 세계는 어땠어? 그 타냐라 하는 여자가 세 번째 부인이라고 했으니 중간에 부인이 죽었던 거야?"

아무래도 만명의 아이를 만든 것은 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세계에서 내가 내 손으로 마왕을 죽였어. 그런데 마왕을 죽인 이후 60년을 더 살았어."

"결혼은 언제 한 거지?"

"처음 결혼은 같은 파티 멤버였던 치유술을 주로 하는 마법사였어."

"넌 마법사이잖아?"

"첫번째 세계에서는 마법이 특기였지만, 두 번째 세계에서 격투술을 익혀 마법을 쓰는 전사로 활동했어. 두 기술을 조합해 최강이 되어 마왕을 죽인 거야."

"그렇네... 마야씨가 너는 원거리 공격과 근접전에 모두 뛰어나다고 했는데 그런 이유였네.
그런데 언제 결혼한 거지?"

"마왕을 죽인 후, 나는 나라의 영웅으로 칭송받아 귀족이 되었어. 귀족이 되어 호화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 나의 아내도."

"이름이 뭐야?"

"야다."

"싫다는 거야?"

"이름이 야다였어."

"야다씨라... 왜 헤어진 거지?"

"나라에서 이혼을 요구했어. 그리고 대지모신 신전을 담당하라는 명령이 왔지."

"왕이 이혼을 요구한 거야? 네 아내는 수락했고?"

"지금이라면 반발하겠지만, 그 때 나는 충성을 의무라 여겼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왕의 명령에 따랐어."

"그럼 대지모신 담당에 있다가 타냐를 만난 거야."

"뭐... 그런 거지."

"타냐하고 사이에 아이가 있었지?"

"아들과 딸... 10명이 있었어.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5명이었나?"

"그녀하고 오래 살았네?"

"내 마지막 임종을 지켜준 것이 그녀야. 나를 원망하고 미워했지만, 끝까지 나와 함께 살았어. 내 모든 것을 그녀에게 주고 떠났지."

"그녀는 네가 자기 아버지라고 알고 있었는데, 왜 아니라고 생각한 거지?"

나는 변명을 생각했다.

"그녀는 금발에 백인이었어. 혼혈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어. 그리고 그녀는 유전병이 있었는데, 내 동료가 가지고 있던 병이야. 그 것을 알고 그녀가 내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넌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네?"

"살아 남을려고 버티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잠시 우리는 말이 없었다. 말 없이 조용히 있다보니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현정아. 너 안 잘 거야?"

"여기서 자지 뭐..."

"넌 내가 죽도록 싫다면서?"

"뭐 그렇지..."

"그런데 왜 내 품에 있는 거지? 빨리 네 텐트로 돌아가."

"싫은데...." 현정이 더욱 나를 힘주어 안겨왔다.

"그만해. 이 이상이면 난 참을 수 없어."

"그럼 참지 마."

"얼마 전에 날 죽이려하면서 지금은 이게 뭐지?"

"타냐도 널 미워하면서도 네 아이를 낳았잖아? 그럼 나도 지금 아이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만해."

그런데 이게 왠 일? 현정이 힘으로 나를 제압했다. 생각해 보면 오랫동안 금욕 생활로 마력이 많이 떨어졌었다. 지금 현정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역시 생각대로야. 마력이 떨어졌네."

나는 저항을 포기했다.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의 나는 현정을 이길 수 없었다.

나는 그 날 밤. 현정에게 철저히 당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니스의 얼굴을 보고 시선을 피했다. 현정이와 그런 일을 보냈으니 나를 경멸할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아침이네요. 서방님. 현정과 있었나 보죠?"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저희가 현정을 떠밀었어요."

"어라?"

"이제 서방님도 우리를 피할 필요 없습니다. 전처럼 대해 주세요."

아무래도 부인들의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그래도 함부로 날뛴다며 더 신뢰를 잃을 수 있었다.

마야와 미야가 같이 다가왔다.

"서방님. 잘 주무셨는지요?"

"어...응..."

마야는 미야를 내 품으로 밀었다. "오늘은 미야를 사랑해주세요."

마야는 날 보며 웃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5일을 걸어 목적한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인족 군대가 왔었던 지역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생아를 임신한 여성들이 있다고 해서 조사를 왔다. 마을에 테라티아 여신의 신전이 있고, 그 곳에서 임신한 여성들을 보호하는 신관이 있다는 정보였다.

우리는 미리 와 있는 정보원의 인도로 테라티아 신전을 찾아갔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벌판에 작은 신전이 있었고, 주위에 밀밭이 있었다.

가까이 가니 임신한 여성들이 밭을 갈고 있는데, 무거운 몸에 위태로워 보이는 여성들도 있었다.

나는 중간에 멈춰섰다. "나는 여기에 있겠어."

나는 평원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5명의 여성들은 신전으로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양을 치는 여성들도 있었고, 신전 주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는 여성들도 있었다. 모두 아이들과 여성들 뿐이었다.

몇몇 여성들이 남자인 나를 보고 경계의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남성을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해 아무 것도 안하며 조용히 서 있었다.

눈을 감고 주위의 마력을 느껴보는데, 뭔가 익숙한 느낌의 마력이 느껴졌다.

분명했다 마왕의 것이었다. 그 것도 건물 안에서 느껴졌다.

나는 즉시 마력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곳은 신전의 뒤편으로 채소밭이 있는 곳이었다. 그 밭에서 어느 소녀가 땅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즉시 그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꺄아악!"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에 신전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아이를 안은 여성, 임신 중인 여성 모두들 여성들  뿐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신관복을 입은 한 여성이 뛰어나왔다.

남자인 나와 바로 옆에서 비명을 지르며 웅크리고 있는 소녀. 어떤 상황 판단이 내려질지 분명했다.

"서방님. 뭐하시는 거죠?" 마야가 건물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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