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전쟁 피해자 소녀 (49/148)



〈 49화 〉전쟁 피해자 소녀

이런 상황에서 변명이 필요 없었다.

"이 아이의 몸에서 마왕의 마력이 느껴졌어."

마야 뒤에 미야, 제니스, 현정, 엘리자가 있었다.

"서방님 그게 무슨 말이죠? 이 아이에게 마왕이?"

"제니스! 어서 확인 해봐."

제니스는 천천히 걸어와 땅 웅크린 여자 아이를 살짝 안아주었다.
"무서워하지 마요. 그냥 아이가 건강한지 알려고 하는 거예요."

제니스이 부드러운 말에 웅크렸던 몸이 서서히 펴졌다. 제니스는 그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10세 정도의 어린 소녀로 보였다.

그런데 그녀의 배가 부풀어 있었다. 임신 중이었다.

그녀를 보고 엘리자가 달려왔다.
"당신. 나이가 얼마죠?"

소녀는 말 없이 엘리자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움직였다.

"열, 열하나, 열둘. 12세?"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복을 입은 20대 중반의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죠? 지금 마왕이라고 하셨나요?"

나에게 모든 여성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도 오해를 살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마야를 바라보았다. "저는 저 분과 함께 온 일행입니다."

마야가 내 옆으로 왔다. "이분은 저의 남편이십니다. 마왕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왕에 대해서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왕성이 함락되어 자결하여 그 시신을 불태웠다 했죠. 마왕이 죽은 것이 분명한데, 여기서 마왕을 찾으시는 겁니까?"
그 신관은 나를 몰아붙였다.

주위에 있는 여성들도 그랬다. 이들은 남성 혐오증에 걸린 사람들 같았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할 말이 아닌 것 같군요. 제가 있어 여러분들이 불편하니 밖에서 말씀드렸으면 합니다."

신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스와 엘리자를 놔두고 나, 마야, 미야, 현정은 그녀와 함께 신전에서 멀리 떨어진 평원으로 갔다.

"우선 자기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신의 뜻을 따라 마왕을 죽이러 온 신의 사자입니다. 이름은 아니킨입니다."

"저도 이 사람과 함께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마야입니다."

"방금 남편이라고 하셨는데, 두 분이 부부 사이입니까?"

"그렇습니다."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시죠?"

"이 분들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이름은 미야입니다."

"현정입니다. 저도 같은 일원입니다."

"제 소개를 드리지요. 전 벨. 이곳 테라티아님을 모시는 신전의 신관입니다."

"반갑습니다. 벨 사제님"

우리는 서로를 보며 인사를 나누었다.

"방금 전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왜 여기서 마왕을 찾으시죠?"

"마왕은 육체가 죽었지만, 영혼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 영혼을 쫓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럼 왜 티리스를 만지신 거죠?"

"티리스?"

"당신이 만져서 비명을 지른 그 아이입니다. 불쌍한 아이입니다. 어린 나이에 험한 일을 당해 아이가 생긴 불쌍한 아이입니다."

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심한 짓을 당하고, 말을 잃어버리고 남자가 만지면 비명을 지릅니다. 밭의 식물 외에 다른 것들은 만지지도 보지도 못하지요."

"심한 일이라면... 그 일로 임신한 겁니까?"

내 질문에 벨이 나를 노려보았다.

마야도 나를 노려보고, 현정은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마야가 나섰다. "죄송합니다. 남편이 주변 머리가 없어서 실례를 했네요. 저 아이, 티리스라고 했나요? 우리가 볼 수 있을 까요?"

벨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분만 없다면 좋겠지요. 같은 여성들끼리 라면 괜찮을 겁니다."

그날 밤. 나는 평원에서 홀로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다음날 미야가 와서 나를 깨웠다.

그녀는 빵과 스프를 들고 왔다. 스프를 보니 제니스의 음식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이 들고 왔네?"

"마야님이 서방님과 같이 먹으라 했습니다."

나는 미야에게서 스프와 빵을 받아들어 빵을 스프에 묻혀 먹었다. 미야는 내 옆에 앉아 나처럼 빵과 스프를 먹기 시작했다.

"안에서는 어떻게 되고 있지?"

"제니스가 그 아이를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아무 이상 없다고 합니다."

"제니스는 마력을 느끼지 못하고 보는 것이니까..."

"마야님도 현정도 별로 이상 없다고 합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내 착각인가...."

솔직히 느껴진 마력이 미약했다. 평소라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엘리자는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합니다."

"뭔가 짚이는 것이 있대?"

"한가지... 아이에게 생리를 했냐고 물어보는데, 그 것이 뭔지도 모르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 것이 이상하다고 하는 군요."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마야님은 제가 서방님을 상대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신전 가까이로 오지 말라고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너는?"

"저는 서방님과 마야님의 연락을 담당하라는 것이죠."

나는 피식 웃고 미야가 다 먹기를 기다렸다. 미야는 다 먹은 후 옷을 벗고 텐트 안에 누워 나를 기다렸다.

현정과의 일 이후 거의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그 후 나는 평원에서 마력 채우기에 주력했다. 미야의 도움도 있고, 명상을 하면 마력을 채울 수 있어 평원에 앉아 명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현정과 대등해 질 만큼 마력이 채워진 느낌이었다.

미야는 나를 상대하며 신전과 나를 오가며 소식을 전했다.

평원에서 명상을 하며 마력을 운용하는데, 또 마왕의 마력이 느껴졌다. 신전에서였다. 전의 일 때문에 확신을 가지려 더욱 집중했다. 분명했다 마왕의 마력이었다.

나는 일어서 신전을 향해 달려가는데, 중간에 마왕의 마력이 사라졌다.

신전 가까이 다가가니, 여성들이 급히 신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벨이 마야와 함께 나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사과의 인사로 목례를 하고 나의 텐트로 등을 돌렸다.

"서방님." 제니스의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니 제니스가 나에게 걸어왔다.

"무슨 일이시죠?"

"마왕의 마력이 느껴졌어."

"신전 안에서... 인가요?"

"잘 모르겟지만, 느껴졌다 다시 사라졌어. 왜 마력이 일정하지 않고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지 알 수 없어."

"제가 티리스를 조사했지만,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티리스... 그 아이는 어떻지?"

제니스는 고개를 돌렸다. 나도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여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야의 의견은?"

"저와 같습니다."

"그럼 다른 곳을 찾아봐야 겠어."

"그런데 엘리자는 다른 생각입니다. 티리스가 마왕을 잉태했다고 확신합니다."

"왜지?"

"몇가지를 말하는데, 첫째 티리스가 생리를 한 적 없는 소녀라는 점. 둘째 한번 당한 직후에 임신을 하게 된 점. 셋째는 자신의 직감이라고 합니다."

"직감?"

"티리스가 평소 마왕이 좋아하는 타입의 여자라고 합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럼 오늘 저녁에 미야와 함께 엘리자도 오라고 전해."

제니스는 인사를 하고 신전으로 들어갔다.

등을 돌려 텐트로 돌아가려는데, 다시 마왕의 마력이 느껴졌다. 등을 돌려보니 티리스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나는 미야와 엘리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제니스도 함께 왔다.

"제니스도 온 거야?"

"매일 서방님께서 혼자 식사하신다고 마야님이 절 보내셨습니다."

"마야는 널 식순이로 아는 건가?"

"식순이?"

"밥 잘 만드는 여자."

제니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부인들 중에서 살림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저뿐입니다. 여기 엘리자도 그렇죠. 그러니 다음 부인을 얻으실 때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얻어주십시오."

제니스가 만든 식사는 정말 맛있었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엘리자. 제니스의 음식이 어떻지?"

"이런 재료로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어 놀랐습니다."

"그렇네. 엘리자는 마왕의 어머니였으니 대우가 좋았겠어?"
엘리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여기 놀러 온 것이 아니라 마왕을 찾고 있는 거야. 네가 우리를 따라오겠다고 선택했어. 그러면 너도 무언가 해줘야 하잖아?"

제니스가 나에게 반발했다. "서방님. 조금 심하신 것 아닌가요?"

나는 엘리자를 노려보았다.
"마야에게 들었어. 너도 부인이 되겠다고 했지? 그건 우리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것이야. 우리는 마왕을 죽여야 하는 운명을 가졌어. 그럼 너도 그런 운명인 거야. 그러니 마왕이 네 몸을 통해 나왔다는 것을 잊었으면 좋겠어."

"무슨..."

"여기 온 이상 너는 제니스의 밑이야. 그런데 지금 넌 제니스의 시중을 받고 있어. 내 말의 의미를 알지?"

나는 미야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엘리자, 제니스와 함께 뒷정리를 해.
제니스. 이제부터 엘리자는 네 밑의 사람이야. 식사 준비할 사람이 필요하면 엘리자에게 가르쳐. 싫다면 돌려보낼 거니까."

나는 미야를 끌고 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서방님. 엘리자를 어떻게 생각하시죠?"

"솔직히 저런 모습이면 부인으로 맞이할 생각이 없어. 마야도 같은 생각일걸?"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미야를 안고 그 입술을 훔쳤다. 미야는 내 품에서 떨어져 누울 자리를 만들고 누워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야에게 다이빙했다.

미야와 즐기고 돌아오니, 먹은 자리가 정리되어 있었다. 제니스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가 잘 따라온 것 같았다.

우리는 모닥불에 모여 회의를 다시 시작했다.

"제니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좀 전에 서방님과 만나서 헤어질 때..."

"느낌이 좋지 않았지?"

"서방님도 느끼셨나요?"

나는 엘리자를 바라보았다. "엘리자.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지금으로서는 티리스가 의심됩니다."

"네가 임신했을 때, 다른 점이 없었어?"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임신이었습니다. 어떻게 다른 것인지 잘 몰라요. 결정적인 것이 생리도 안 한 여성이 아이를 가졌다입니다."

제니스도 동의했다. "여성이 생리를 시작해도 바로 임신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정이 있어 티리스를 밀어붙이기 힘들어."

엘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지금까지 비참한 일을 당한 여성들을 봐왔으니."

"마야와 현정은 티리스를 어떻게 보고 있지?"

"마왕을 품은 건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니스, 내가 묻는 것은 티리스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 가야."

제니스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티리스를 딸, 동생처럼 생각합니다. 티리스도 두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티리스를 어떻게 할 수 없군."

제니스가 나를 노려보았다. "티리스를 어떻게 하시려는 거죠?"

"마왕을 임신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러니 확실하게 해야 해. 다른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없잖아? 우선 티리스에게 확인을 해야 해."

"저는 반대입니다. 그런 불쌍한 아이를...."

"그러니까 여기 두 사람의 역할이 중요해. 티리스가 마왕을 품은 건지 아닌지 빨리 알아내야 해. 아니라면 빨리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쉽게 알 수 있지 않나요?"

엘리자가 나섰다. "그럼 더 힘들어요. 마왕은 태어나자마자 마력을 사용합니다. 어머니 몸 안에 있을 때 해결하는 것이 좋아요."

"우리가 마왕보다 강하다 하지만, 마왕이 어느 정도 힘이 있을지 미지수야. 그러니 세상에 나오기 전에 해결해야 해. 우리에게 시간이 없어."

"그럴 수가..."

"엘리자. 마왕이 티리스 몸에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혹시 말야... 마왕이 몸 안에 있더라도 모체를 지키는 무언가 하지 않을까?"

제니스가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서방님은 티리스를 공격하시려는 겁니까?"

"그게 아닐 지라도, 태아인 마왕이 자신과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 나타낼 것이 없나 생각하는 거야. 엘리자는 알지도 모르니까."

"몇 가지 있습니다."

"뭐지?"

"제가 넘어지려 할 때, 내 몸 안의 마력이 저를 보호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싫어하는 것이 다가오면 마력으로 도망치게 했었죠."

"싫어하는 것?"

"벌레 같은 것입니다."

"벌레, 뱀... 그런 것들이지만, 티리스는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 것도 없을 거야."

우리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왜 티리스가 가끔씩 마력을 내뿜는 걸까... 배 속의 마왕이 자신과 그 어머니가 위험하다 느낀 것이었는데... 그럼 무엇을 보고 티리스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는..."

미야가 나섰다. "그럼 마력으로 위협하면 어떨지요?"

"위협?"

"직접 공격은 하지 않지만, 마력으로 상대에게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그렇다면 방어 마법을 사용하지 않을 까요?"

"하지만 신전 안에 마야와 현정이 있어, 그런 분위기에서 섣부른 위협에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거야. 잠깐! 마야와 현정이 있으니... 혹시 티리스가 둘을 잘 따르는 거야?"

제니스와 엘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야는?"

"자주 보지 않아 경계합니다."

나는 한가지 작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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