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마왕을 포기해 줘
다음날, 나는 마야와 현정을 신전 멀리로 불렀다. 그 곳에 제니스와 엘리자도 나와 같이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우리를 모두 부르다니, 어라? 미야씨가 없는데?"
나는 제니스를 보고 말했다. "제니스, 여기서도 신전 안을 감시할 수 있지?"
제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정이 반발했다. "뭐야? 아직도 티리스를 의심하는 거야?"
우리가 멀리서 보니 미야가 티리스의 가까이에 다가갔다. 티리스는 미야를 보고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미야가 나를 바라보자, 나는 손을 흔들었다. 시작의 신호였다.
마력을 느끼는 나는 미야가 마력을 내뿜는 것이 느껴졌다. 명백히 살기를 띄는 마력이었다.
"뭐야? 미야씨, 뭐하는 거지? 티리스를 죽이려는 거야?"
현정이 달려가려는데 내가 잡았다.
"놔! 티리스가 위험해."
"내가 지시했어. 공격하지는 않고 마력을 방출하는 거야."
마야가 나섰다. "서방님은 미야에게 무슨 일을 지시하신 거죠?"
"미야에게 마력으로 위협해보라고 했어. 티리스의 반응을 보려는 거야."
티리스에게서 마력이 방출되었다.
제니스가 외쳤다. "지금 티리스의 몸에서 마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건... 마왕의 마력입니다."
"분명해, 제니스?"
"확실합니다. 마력이... 미야님의 마력이 밀리고 있어요."
갑자기 미야가 튕겨나가 20m 이상을 날아갔다.
"미야!"
나는 전속력으로 미야에게 달려갔다. 땅에 쓰러진 미야를 안아보니, 다행히 상처는 없었다.
"미야! 괜찮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상대의 마력 공격을 받아 튕겨나간 것 뿐입니다. 그런데 저런 아이가 어떻게 저런 마법을... 저 애가 마왕의?"
"확실해."
나는 일어서 티리스 앞으로 뛰어갔다. 내가 달려오는데 티리스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를 공격하자, 나는 칼을 뽑아 쳐내려 했다. 마력이 부딪힌 순간, 나는 벽을 쇠파이프로 때린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칼을 놓쳤다. 이후 마력이 밀려와 나는 뒤로 튕겨나갔다.
"서방님."
마야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며, 내가 땅에 떨어지는 곳에 마력 방어막이 펼쳐져 충격을 줄였다.
마야, 미야, 제니스, 엘리자, 현정이 내 주위에 몰려들었다.
현정이 외쳤다. "티리스, 어떻게 된 거지?"
티리스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엘리자가 외쳤다. "저건 분명히 마왕의 마력입니다."
제니스가 마법 스캔으로 마왕을 확인했다. "분명해요. 마왕이 확실합니다."
티리스는 자신의 불어오른 배를 만지며 당황하고 있었다.
"어어... 어어..."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말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 했다.
"무슨 일이죠?"
벨이 뛰어나와 티리스와 우리 사이에 서서 몸으로 티리스를 가렸다.
그러자 몸 안에 있는 마력이 없어졌다.
엘리자가 나섰다. "이 아이는 몸에 마왕을 품고 있습니다. 마왕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없애야 해요."
벨이 반발했다. "무슨 소리죠? 마왕? 이 아이를 죽이겠다는 건가요?"
"우워...워... 우우...." 티리스가 말을 못하고 울기만 했다.
벨은 티리스를 안았다. "괜찮아. 울지마. 내가 지켜줄 거야. 아무도 널 죽일 수 없어."
"비켜 주세요. 마왕을 처리해야 합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이 불쌍한 아이에게 뭘 하시려는 거죠? 당신들은 이 아이가 불쌍하지 않아요? 충격으로 말도 못하는 아이에요. 그런데 죽이시겠다?"
마야가 나섰다.
"불쌍한 것은 압니다. 이 아이가 너무 불쌍해 우리도 이 아이 앞에서 눈물을 흘렸어요. 하지만 이 아이의 배 속에 있는 것은 마왕입니다. 마왕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놔둘 수 없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 아이가 마왕을 임신했다는 거죠?"
제니스가 말했다. "지금 우리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아이에게서 마왕의 마력이 분출되었습니다."
미야가 말했다. "저를 날려버릴 만큼 강력했습니다."
"그만. 그만해요.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전쟁으로 처참하게 인생이 산산조각난 아이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죽인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엘리자가 걸어가 벨의 앞에 섰다.
"저는... 저 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저 아이 만할 때, 저는 마왕을 낳았습니다."
벨이 굳어져 엘리자를 쳐다보았다.
엘리자는 다가가 티리스의 뺨을 만지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번에 죽었다는 마왕이 제가 낳은 아이였습니다. 저 아이 만할 때, 그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나라를 위한 영광이라며 저는 마왕의 어머니가 되었지요."
엘리자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낳은 마왕은 내 아들이지만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내 몸만 빌린 마왕이었죠. 자랄수록 그는 내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내 젖을 물리던 때가 지나자마자, 그는 마왕이 되어 군림했지요. 나는... 그의 어머니가 아닌 한명의 시녀였을 뿐입니다."
엘리자는 티리스의 뺨을 만지며 바라보았다.
"나도 너 만할 때 내 배를 만지며, 사랑한다고, 네가 내 아이여서 다행이라고 몇 번을 말했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너무 기뻐서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네 아이는 마왕이야. 널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 그러니... 이 아이를 포기해. 네가 나 같이 마음 고생하는 것이 싫어"
"우우... 우우..." 티리스는 엘리자를 보며 울었다.
엘리자는 티리스를 안아 주었다.
"마왕은 나를 어머니라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아들로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지금도 그래. 그래서 난 어머니로서 마지막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그러니 도와줘."
"우우...우우.. 익...익..." 티리스는 엘리자 품에서 몸부림을 쳤다.
벨이 달려와 엘리자 품 안에서 티리스를 떼어 놓고 안았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이 아이를 죽이겠다는 건가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벨은 우리를 노려보았다.
"이 아이에게 손도 못 대게 하겠어요. 내 목숨을 걸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를 여성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녀들은 벨 뒤에 서서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 중 한명이 우리에게 돌을 던졌다. 마야의 방어벽으로 닿지 않았지만, 그녀들은 우리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수십개의 돌이 방어벽에 부딪혔다.
현정이 나의 팔을 끌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좋지 않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티리스를 죽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말에 벨이 손을 들어 그녀들을 제지했다.
"나는 마왕을 죽이겠다고 했지, 티리스를 죽인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들은 방금 마왕이 태어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아이가 태어나지 않게 죽이겠다는 것은 그 어머니도 죽인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아요?"
"티리스는 죽이지... 아니 반드시 살릴 겁니다."
여자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현정을 바라보았다. "현정아. 지금 아리아와 같이 있지? 내 말을 듣고 있어?"
"그런데... 아리아는 갑자기 왜?"
"아리아가 육체를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 저 티리스는 어떻지?"
현정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티리스에게로 걸어갔다.
벨과 그녀들이 티리스를 감싸며 현정을 막아서자, 현정은 손을 올렸다.
"저는 무기도 없고, 티리스를 해할 마음도 없어요. 조금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을 뿐이에요."
벨이 조금 비켜주자, 현정은 티리스에게로 갔다.
현정은 몸을 굽혀 티리스와 시선을 맞추었다.
"티리스, 언니는 널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야. 네 손을 만져보고 싶어."
티리스는 경게를 하며 손을 내밀었고, 현정이 그 손을 잡았다.
현정이 중얼거렸다. "그래... 하지만.... 너는.... 괜찮아?"
현정은 티리스의 손을 놓고 나에게로 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아가 허락했어?"
"문제는 마왕이야. 몸 밖으로 꺼내야 해. 그래야 할 수 있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정은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럴 생각이야?"
"지금으로서는 그게 해결책이야."
"하지만 문제는 인원 수 잖아? 너를 포함해 5명이 돌아간다면, 마야, 미야, 제니스, 티리스. 엘리자씨는 어떻게 할 거지?"
"네가 티리스를 데리고 가면 되잖아. 티리스가 아리아의 화신이 되면 너 같이 세계를 뛰어 넘을 수 있어. 티리스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야."
"뭘로 티리스를 살린다는 거지?"
"여기서는 안되지만, 현대의학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현정을 포함한 내 부인들 모두가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라면 마왕을 죽이고도 티리스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티리스는 그렇다고 해도, 너희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돌아간다는 거야?"
"마왕이 죽으면 돌아갈 수 있잖아? 우리는 우리대로 돌아가고, 네가 티리스를 데리고 우리 세계로 오는 거야."
"하지만 만약 저 태아가 마왕이 아니면?"
"다시 찾아야지. 안되면 여기서 살다가 죽으면 되고. 여기 부인들이 네 명이나 있는데 걱정할 것도 없고, 마야의 원대로 100명의 부인을 만드는데 대한민국보다는 여기가 편하잖아?"
현정은 나를 노려보았다.
"알았어. 그럼 네 말대로 하지. 하지만 네가 오지 못해도 내 책임이 아닌 건 알지?"
"물론!"
현정이 벨에게 다가갔다. "저는 티리스를 살리려 합니다. 티리스를 데리고 몸 안에 있는 마왕을 죽일 겁니다. 티리스는 죽지 않습니다."
그러자 티리스는 벨에게 더욱 깊이 안겼다.
"티리스는 아이를 낳고 싶어합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이라고 쉽게 말하는 건가요?"
나는 마야와 둘 만의 대화를 하고 마야가 나 대신 말하게 했다.
마야는 벨 앞으로 나섰다. "그럼 티리스가 아이를 낳게 하실 겁니까?"
"티리스가 원합니다."
마야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티리스가 아이를 낳는 것이 좋다고?"
그녀들 중 몇 명이 고개를 돌렸다.
"티리스는 출산을 원한다지만 여기서 원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원치 않는 임신이지만, 어쩔 수 없어 낳은 분들은 없나요?"
마야는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강한 눈빛을 보냈다.
마야는조금 망설이다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들 중에 임신했어도 아이가 없어졌으면 하고 생각했던 분들은 없나요? 아니, 지금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저 아이들이 없었다면 하고 생각하는 분들은 없어요? 아이를 두고 여기를 나간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여러분들도 아이를 버리고 여기를 떠나실 겁니다. 아닌 가요?"
벨이 반발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 생명을 함부로 생각하는 건가요?"
"벨 사제님 입장에서 충분히 그렇게 말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소중한가, 어머니의 남은 인생이 소중한가. 이 문제는 풀리지 않은 숙제와 같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여러분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생활을 했을 겁니다. 불행한 일을 당해 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죠.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야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아닌가요?"
마야는 내 말을 듣고 하기 싫은 마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마야를 보며 강한 눈빛을 보냈다.
"티리스가 아이를 낳고 키운다면, 그녀는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아이 때문에 놓치는 겁니다. 아이를 낳고 여기를 떠난다 해도 평생 그 죄책감을 가지고 살겠죠. 티리스에게는 이 것이 기회일지 모릅니다. 원치 않는 임신에서 벗어날 기회 말입니다."
"원치않는 임신이라도 신께서 내려주신 생명입니다."
"신께서는 마왕을 죽이라 하셨습니다. 티리스의 아이는 마왕입니다. 저희는 티리스를 살리고 마왕을 죽일 방법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티리스의 아이가 마왕이라는 증거가 있나요?"
"우리가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믿지 못합니다."
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믿지 못한다면 상관없습니다. 한가지는 분명히 하죠. 우리가 티리스를 살린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티리스의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녀를 데려가 그 안에 있는 아이를 없애고 티리스에게 새 인생을 주겠습니다."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나는 주머니에서 금을 잔뜩 꺼내어 그녀들 발 위에 놓으며 말했다.
"우리는 티리스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능력이 있습니다. 적어도 여기서 아이를 낳고 밭을 갈며 사는 인생보다는 나아지도록."
벨이 나섰다. "돈이 있다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그 말도 맞지만, 행복하기 위해 돈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티리스에게 새 인생을 가져다줄 능력이 있습니다. 티리스가 행복해지는 가는 그녀의 노력에 달렸지요. 분명한 것은 여기 있는 것보다 나아질 것입니다."
그녀들이 물러서는 분위기 였다.
현정이 티리스에게 다가가 방금 전처럼 티리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티리스. 언니들과 함께 갈래? 그럼 여기서 보다 더 좋아질 수 있어."
"우우.... 우우우..." 티리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아이를 포기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제니스가 다가와 티리스의 손을 잡았다.
"티리스, 내 말을 들어줄래? 나도 너와 같았어. 너보다 많은 나이였지만, 전쟁으로 아이를 가졌어. 나도 그 아이를 끔찍이 사랑했어."
티리스를 비롯한 그녀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내가 원해서 생긴 아이가 아니라, 내 배속에 있을 때 그 아이가 죽었으면 하고 얼마나 신께 빌었는지 몰라. 하지만 그 애는 세상에 태어났어. 나는 어느 누구보다 그를 사랑해."
제니스는 티리스를 안았다.
"하지만 그 아이로 인해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내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그러니 선택해. 이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낳는다면 너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해. 세상 모든 것일지 몰라. 이 아이를 포기하면 너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 그 건 확실해.
" "우우...우우..." 티리스는 울먹였다.
"약속할게. 네가 이 아이를 포기한다면 우리가 많은 것을 주겠어. 망가진 네 인생을 밝아지게 해 주겠어. 그러니 부탁해. 이 아이를 포기해줘..."
티리스는 제니스의 품에서 몸부림쳤다.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우우...우우..." 티리스는 울먹였다.
"약속할게. 네가 이 아이를 포기한다면 우리가 많은 것을 주겠어. 망가진 네 인생을 밝아지게 해 주겠어. 그러니 부탁해. 이 아이를 포기해줘..."
티리스는 제니스의 품에서 몸부림쳤다.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나는 제니스의 어깨를 잡고 일어나게 했다. 오늘 티리스의 설득을 포기한다는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