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내가 사랑한다면?
우리는 며칠 더 이동해 신전으로 돌아왔다. 신전 안에 있던 여성들은 티리스를 반겨 맞았고, 주변에서 의사를 불러와 진찰하게 했다. 의사의 말로는 티리스는 건강하고 두 달 후에 출산 할 거라고 말했다.
신전 밖에서 마야와 같이 자던 나를 마야가 찾아왔다.
"서방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티리스의 몸 안에 있을 때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대로는 힘들어."
"그럼 티리스의 출산 이후에 하실 생각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 될 줄 알면서도.
현정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주변을 돌아봤는데, 다시 습격할 일은 아직 없어."
"경계를 늦추지 않은 것이 좋아. 만약 저들이 노린다면, 마왕을 출산한 직후일거야."
마야와 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온 이후, 우리는 3개로 나뉘어 활동했다. 먼저 신전 안에 제니스와 엘리자가 티리스를 돌보고, 외부에 나와 마야, 미야가 신전을 방어하며, 현정이 하늘을 날며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제니스는 신전 외부에 결계를 설치해 외부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아직은 조용했다. 티리스의 산달이 아직 50일 정도 남았으니, 그동안 마력을 보충하며 경계에 주의를 기울일 뿐이었다.
현정이 물었다. "결정한 거야? 티리스가 출산한 이후로?"
"어렵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잖아? 내가 생각한 방법은 티리스의 협조가 필수적이니."
미야가 말했다. "그냥 밀어붙여도 되는 것이 아닌가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편할지 몰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나를 용서 못할 것 같아."
마야, 미야, 현정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전 소환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저 안에 있는 여자들이 당했던 일을 했었어. 지금이라도 뭔가 하고 싶어. 힘없는 한 명의 병사가 전쟁 속에서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 힘을 가지게 되었으니 뭔가 해보고 싶어. 티리스를 살리고 싶어.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만약, 그녀가 아이를 지킨다고 나선다면 어떻게 하죠?"
"그래도 기다릴 거야. 티리스가 물러설 때까지."
세 여자는 나를 보며 웃었다.
현정은 나에게 와서 내 가슴을 쳤다. "어이! 중2병.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누가 중2병이라는 거지? 오타쿠 주제에."
"나는 오타쿠가 아니야."
"드래곤슬레이브, 기가슬레이브, 리나 인버스. 너는 오타쿠잖아. 그 것도 철지난 옛날 애니의."
"나 같은 모범생이 오타쿠라고?"
"범생의 덕질이 더 무섭다던데? 슴덕보다 더 음침하고 파괴적이라고."
"누가 그래? 난 건전히 내 취향을 즐길 뿐이야."
마야가 현정의 등을 떠밀어 내 품에 안기게 만들었다.
"그만하고 서방님과 좋은 시간 보내."
마야는 미야의 손을 잡고 등을 돌려 신전으로 향했다.
둘 만 남겨진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안았다.
............
현정이 나를 상대하고 돌아간 다음, 밤이 되어 마야가 찾아왔다. 오늘 밤은 마야가 나와 함께 있는 날이었다.
"티리스는 어때?"
"전과 같습니다.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많이 좋아진 겁니다."
"다행이야."
"정말 그러실 겁니까? 티리스가 출산할 때까지 기다리시겠다고요?"
"그러기로 했어."
"티리스의 몸 안에 있을 때 하는 것이 편하지 않습니까?"
"힘들어도 그렇게 하고 싶어. 티리스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
"만약 아이를 낳은 후에도 티리스가 반대하면 어쩌죠?"
"마왕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3년? 5년?"
"서방님 답지 않네요. 언제나 정면돌파로 속전속결을 주장하시는 분이."
"그만큼 티리스는 특별해."
"혹시 용의 놀이터에서 말씀하신 과거에 있었던 과오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건가요?"
"티리스가 당했던 일을 나는 군인이었을 때 몇 번이고 했었어. 후에 내 아내가 나에게 살아남아서 속죄할 기회가 오면 속죄하라고 했어."
"지금이 그런 건가요?"
"같은 사람들이 아니지만, 티리스에게 하지 않으면 평생 이 죄책감을 가지고 살 거야. 여기서 조금은 편해지고 싶어."
"3년에서 5년... 너무 길군요. 그동안 서방님을 모실 여자를 알아봐야 겠네요."
"너희들만으로 충분해. 엘리자도 있잖아."
"엘리자는 외모가 떨어집니다. 마왕성에 있다면 마법으로 젊어지게 만들 수 있지만, 저런 모습으로 서방님을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내 생각도 같아. 그럼 할 수 없는 거야? 여기에서는?"
"할 수 있지만, 언제 마력을 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일에 낭비하기 싫습니다."
"그 것도 그렇군."
나는 마야를 안고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몇 번의 일을 마치고 나란히 누웠는데, 텐트 밖에서 누군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나가 보니 티리스였다.
"티리스, 무슨 일이지?"
티리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당신들... 그런 거 한 거예요?"
"본 거야?"
"마야씨의 목소리도."
마야가 텐트에서 나와 내 옆에 섰다. "어른이라면 당연히 하는 일이야."
"내가 어른이 되면 나도 하는 건가요? 그 무서운 일을 그렇게 즐겁게 하는 건가요?"
"그래.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은 기쁜 일이야."
"나는 그 일이 무섭고 아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야씨는 좋으세요? 남자와 그런 일이?"
마야는 다가가 티리스의 손을 잡았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런 일이 무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아. 오히려 서방님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줘."
티리스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그 남자들은... 나를... 그렇게..."
"그건 네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해서 그런 거야."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거죠? 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만 기쁜 건데, 남자들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범해도 기쁜 건가요? 나를 범한 남자들, 정말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날 마음대로 했어요. 내가 싫다고 울고 부탁해도 그들은 자기 욕심 채우기만 생각했어요."
티리스는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도 그런 거예요? 당신 욕심만 채우려 여자를 강제로 범하는?"
"부정하고 싶지 않아.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티리스는 마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런 남자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사랑해 나의 서방님이니까."
"서방님, 서방님 하시는데 서방님이라는 것은 남편을 의미하나요?"
"맞아."
"미야씨도 제니스도 서방님이라고 불러요. 얼마 전에 현정과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본 적 있어요. 그럼 모두 저 남자의 부인이라는 거예요?"
"그 것도 맞아."
"그 사람들 모두 저 남자와 그런 일을 하는 거죠?"
"그래."
"모두 불결해요."
마야는 한숨을 내쉬고 티리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도 그런 일로 태어난 거야. 아빠와 엄마가."
"아빠와 엄마는 사랑했어요."
"나도 서방님도 서로를 사랑해."
티리스는 얼굴이 붉어져 시선을 돌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사랑이 뭐죠?"
"왜 그런 것을 묻지?"
"난 남자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무서워요. 그런데 당신과 아내들은 기쁜 마음으로 하고, 하고 있는 아내들은 정말 즐거워 보여요. 그런 일을 하는데 여자가 기뻐하게 만드는.... 사랑이 뭐죠?"
티리스는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 있었던 건가?
"알고 싶어요. 그런 무서운 일을 당하는데도 여자를 즐겁게 만드는 사랑이 뭔지요."
"왜 사랑을 알고 싶다는 거지?"
"나도...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무섭지 않고 아프지 않게.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남자와 하고 싶어요. 사랑한다면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럼 누구와 하고 싶지? 누구와 사랑하고 싶지?"
"아무라도 좋아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말을 왜 하필 나한테 하지?"
티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해도 돼."
티리스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당하고 싶지 않아요."
"뭘?"
"남자에게 당하며 무섭고, 아프고, 원치않는 아이를 가지게 되고.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원할 때 아이를 가지고 낳고 싶어요."
"그런 건 모든 여자들의 꿈이야."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요. 나는 지금..."
"그럼 내가 어떻게 해 줬으면 하지?"
티리스가 말하는데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뭐라는 거지?"
"도...와 줘...요."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어떻게 할 수 없어."
"도와줘요. 내가 그 모든 여자들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미안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
"왜죠? 그 많은 부인을 가지고 있는 당신이? 벌써 5명의 여자들을 사랑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중에 나 하나도..."
나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왜 여자들이 아이를 여기 놔두고 가는 지 알아? 그 건 아이로 인해 그 꿈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야."
티리스는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남자들은 이기적인 동물이야. 여자들은 사랑하면 그 여자가 낳은 아이까지 사랑할 거라 생각하지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사랑할 남자는 없어. 그래서 여자들이 아이를 버리는 거야.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하지만 그 여자들이 원해서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니잖아요. 어쩔 수 없이."
"그래. 어쩔 수 없어. 그래서 여자들이 불쌍한 거야. 하지만 여자들도 사랑받기 위해 선택한 거야. 자신이 낳은 아이인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인가. 아이를 선택하면 남자에게 사랑받기 힘들고,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아이를 포기한 거야."
티리스는 고개를 숙여 배를 만졌다. "그럼 내가 사랑받으려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 아이를 포기해야해. 네가 낳겠다고 했으니 네가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낳은 후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많은 경우 아이를 포기해야 할 거야."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사랑받을 수 없나요?"
"너도 아이도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지 몰라. 하지만 그런 남자는 적어.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아니야."
티리스의 눈에 눈물이 떨어졌다. "그럼 나는 평생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는 건가요? 이 아이가 있는 한?"
"네가 낳은 다음에 그 아이를 여기에 놔두고 여기를 떠나면 돼. 떠나서 다른 곳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서 사랑하고. 그런 일도 가능할 거야."
"당신이 하면 안돼요?"
"싫어."
"왜요?"
"난 너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티리스도 마야도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너는 나에게 왜 나를 사랑하지 않냐고 묻고 있잖아?
그런데 너는 나에게 사랑받기 위해 무엇을 했지? 나는 너를 구하기 위해 며칠 간 노숙을 하며 지금도 여기서 지내고 있어. 목숨을 걸고 싸웠고 살인도 했어.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야. 내 의무 때문이지. 쉼게 갈 수 있지만 너를 배려해 준거야. 그렇게 나와 내 부인들을 고생시키는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신은 나를 구하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남자의 의무다라고 말하는 거야? 반대로 목숨을 걸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미안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불쌍하게 볼 뿐이야."
"불쌍?"
"네가 당한 비극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해서 불쌍해서 너를 구해준 거야. 그 이후에도 넌 너의 아이를 고집하며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고 있어. 더 이상 너를 봐줄 수 없어.
이후의 일을 말해줄까?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네가 아이를 낳도록 놔둘 거야. 그리고 네 아이가 마왕으로 각성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왕이 되는 즉시 없앨 거야."
티리스는 놀라서 자신의 배를 만졌다.
"지금 네가 불쌍한 것은 아이를 낳기까지야. 그 이후에 널 불쌍하게 볼 이유가 없어. 그러니 난 네 앞에서 네 아이를 죽일 수 있어."
"왜 그렇게 심한 말을..."
"난 너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티리슨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쥐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럼 내가 사랑한다면요?"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내가 어떻게 해야죠?"
"답은 알잖아?"
"아이와 당신... 둘 중에 하나..."
나는 티리스 앞에서 마야를 안고 그 입에 키스를 했다. 일부러 깊은 키스를 하며 티리스를 도발했다. 티리스는 주먹을 세게 쥐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입을 떼고 나는 티리스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지금부터 사랑을 나눌 거야. 보고 싶어?"
"내가 보는데 그런 일을 할 건가요?"
"네가 보던 안보던 우리는 해야겠어. 마야는 어떻지?"
나는 마야와 시선을 교환했다.
마야는 나의 의도를 알고 티리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도 티리스가 있던 안있던 서방님에게 안기고 싶어. 보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봐도 좋아. 보기 싫으면 신전으로 들어가던지."
티리스는 눈물을 그치고 우리를 노려보았다.
"좋아요. 여기서 봐드리지요. 당신들이 얼마나 더러운 일을 하는지 잘 봐드리지요."
나는 웃으며 땅에 누웠고, 마야가 그 위에 올라왔다.
우리의 모습을 티리스는 붉어진 얼굴로 처음부터 끝까지 쳐다보았다.
내 위에서 일을 끝내고 마야가 티리스를 보며 웃었다.
끝까지 지켜보던 티리스가 마야의 시선을 피했다.
"티리스도 이리와 봐. 너도 해보지 않을래?"
마야는 일어서 티리스의 손을 잡고 끌고 왔다. 티리스는 끌려오는 모양이었지만, 실제로 오고 싶어하는 얼굴이었다.
마야는 티리스를 내 배위에 올려놓았다.
"이대로 아래 있는 서방님을 봐."
티리스는 자신의 아래에 있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는 팔을 올려 티리스의 뺨에 손을 대었다. "키스해 줄래?"
"키스?"
"입맞춤. 너의 입과 나의 입이 닿는 거야."
"아빠와 엄마가 자주 하던 그 것?"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야."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키스해 주면 또 모르지."
티리스는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웃으며 몸을 일으켜 티리스의 뒷목을 잡고 그녀의 입술을 내 입술에 가져갔다.
내가 그녀의 입 안에 혀를 집어넣자, 티리스는 바둥거렸다. 하지만 다른 손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둘러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내 혀로 그녀의 입안을 공격했다.
입을 떼고 보니, 티리스는 가쁜 호흡으로 울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녀는 힘으로 나를 밀어내려 했다. "뭐야 당신. 이게 무슨 짓..."
"너도 좋았잖아?"
그 말에 티리스는 움찔했다.
내가 팔에 힘을 빼자 티리스는 일어서 신전으로 뛰어가려 했다. 마야가 부축해주니 티리스는 무사히 일어났고 같이 신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