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티리스의 포기
나 혼자 남으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티리스는 초등학교 6학년 나이였다. 아무리 내가 고등학생이라지만, 초등학생과 그런 딮키스를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나는 친구들에게 범죄자가 되는 것이었다.
잠시 후 마야가 돌아왔다.
"티리스가 많이 넘어왔습니다. 서방님에게."
"남성 혐오증이 없어진 건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서방님께 호감을 느끼는 것은 분명합니다."
"내가 구해준 이유로?"
마야는 내 옆에 앉았다.
"서방님을 아빠로 부른 건, 그 때 칼을 들고 배를 가르려던 사람들 속에서 티리스는 아빠엄마를 불렀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 자기를 구한 사람이 아빠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후 텐트에서도 어두운 속에서 서방님을 보고 아빠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머리를 긁었다. "이 나이에 아빠라고 불리는 것은 부끄러웠어."
마야는 웃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티리스는 자기를 지켜줄 남자를 바라는 거죠. 서방님이 적격이고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 것보다 중요한 것은 티리스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야. 만약 아이를 낳은 후에 우리를 막아선다면, 나도 마왕을 죽이려고 나설 수 없어."
"그게 문제네요."
나는 마야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더욱 내 몸에 밀착시켰다.
"그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하지 않아?"
마야는 웃으며 땅에 누웠고, 나는 그 위에 올라갔다.
마야와 한참 즐기고 나서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데, 현정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현정아. 무슨 일이지?"
현정은 내 머리칼을 잡고 나를 마야에게서 끌어냈다.
"뭐... 뭐야?"
나는 현정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서 눈을 마주했다.
"왜 이러는 거야?"
"이 로리콘, 원조교제 범죄자. 건드릴 여자가 없어서 출산을 앞둔 임산부를 건드려?"
아아... 아마 티리스와 한 키스가 문제가 되었나 보다.
마야가 말했다. "서방님께서 부인을 늘리는 것이 왜 문제냐? 현정이 너는 서방님의 수청을 들면서 왜 부인이 안되는 거지?"
"뭐요? 그럼 초등학생을 부인으로 삼겠다는 건가요? 저런 불쌍한 애를?"
"티리스는 서방님을 사랑하고 있다. 이번 문제가 해결되면 부인으로 맞이할 것이다."
현정은 황당한 얼굴로 마야를 바라보았다. "지금... 초등학생을 부인으로... 상식이 안통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이럴 줄은..."
"뭐가 문제냐? 지금 임신 중인 것을 보면 다시 임신이 가능할테고, 지금이라도 서방님의 부인이 된다고 해서 아무 문제 될 것 없다."
"하하... 그러니까 마야씨가 티리스를 부추긴 거네요? 저 송재신의 마누라가 되라고..."
내가 나섰다. "지금 네가 왜 화내는지 모르겠어. 티리스가 어떻다는 거지?"
현정이 나를 노려보았다.
"웃는 얼굴로 날뛰며 좋아했어. 그런 얼굴이 처음이라 물어보니, 자기가 너의 아이를 낳을 거래. 입을 마주했으니 네 아이가 생길 거라고 하면서, 널 서방님이라고 부르더라."
이거... 성교육이 필요하네...
"너 정말 티리스를 건드린 거야? 저런 불쌍한 아이를? 임산부를?"
"키스만 했어. 키스만."
"네 아이를 낳을 거라고 하던데?"
"그러니까... 키스만 하면 아이가 생긴다고 알고 있는 거라구. 진짜 그 것 뿐이야."
"정말 그 것 뿐이야?"
현정은 나를 떨떠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알았어. 네 말을 믿고 티리스에게 다시 물어보지. 만약 네가 티리스에게 그런 일을 했다면 너는 내 손에 죽는다~! 알지!"
현정이 떠나가자 마야가 피식 웃었다. "티리스의 마지막 발악 같네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티리스의 이 방식은 어린애 같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었다. 나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달라는... 그렇게라도 아이를 살리고 싶은 것이었다.
...........
다음날, 나는 마야와 함께 신전을 찾았다. 나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티리스가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오셨어요. 서방님."
서방님?
티리스 뒤로 제니스, 현정, 엘리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 티리스를 건드린 것이 기정사실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벨이 나와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용사님. 무슨 짓을 한 거죠? 혹시 저 배속의 아이가 용사님의 아이?"
이봐요. 내가 티리스를 언제 처음 만났는데, 그리고 날 용사님으로 부르는 건...
한 여자가 나서서 나에게 물었다. "혹시 티리스를 임신시킨 것이 당신이고, 부인에게 문제가 되니까 없애려는 거야?"
이거 난리났다. 마왕 토벌하기 전에 쓰레기남자가 죽게 생겼네.
나는 옆에 있는 마야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마야가 날 보다 쓴 웃음을 짓고는 여자들 앞으로 나섰다.
"서방님께서는 티리스를 부인으로 삼기로 약속하셨다. 배 속의 아이 문제는 본처인 나의 소관이다. 너희들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여자들이 수근 거렸다.
"본처? 그럼 티리스가 측실이 되는 거야?"
"저 남자가 티리스를 임신시킨 거야. 그러니 부인이 나서서 해결하는 거네..."
"와아... 저 남자는 쓰레기지만, 부인은 잘 얻었어. 역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니까."
"그래도 저 남자는 쓰레기가 맞잖아? 저런 어린 애를 임신시키고.... 처음에 뭐랬지? 아이를 죽여야 한다고? 아마 저 남자는 아이를 없애려 왔는데, 부인이 와서 말리는 거야. 분명히."
그런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나는 아무래도 장난으로 평민인 티리스를 건드린 망나니 귀족이라 생각되는가 보다.
한 여자가 마야에게 나섰다.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이 아이, 티리스를 어떻게 하실 거죠?"
"방금 말했지 않느냐. 서방님의 부인으로 맞을 것이다."
"부인이라면 당신 아닌가요?"
"나는 본처다. 부인들은 여기들 있다." 마야는 제니스, 현정, 미야를 가리켰다.
"본처라고요? 부인이 몇 명이시죠?"
"지금 7명이다."
미야, 제니스, 현정, 리나, 엘리자에 티리스를 합하면 6명인데... 자기를 포함한 건가?
"7명씩이나요? 그렇게 많이..."
"아직 너무 적다. 100명을 빨리 채워야 한다."
여자들의 나를 보는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럼 당신은 뭐죠? 제 1 부인?"
"나는 본처다. 부인이 아니다."
잠깐! 본처가 부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7명이지?
"그러니까... 여기 티리스를 부인으로 맞이하는 건가요?"
"그래. 서방님의 7번째 부인으로 맞이할 것이다."
"부인이 7명이라면서요?"
"아직 부인이 되지 않은 사람이 2명 있다. 돌아가면 부인으로 맞이하고 서열을 정할 것이다."
2명 중에 1명은 현정이고, 나머지는 누구지?
황당해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임산부 여자 하나가 나섰다.
"저는 티리스의 고향친구로 티리스와 같이 여기 온 사람이에요. 방금 티리스를 몇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겠다 하셨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을 감당하실 수 있는 분인가요?"
"당연하다. 서방님을 모시려면 하룻밤에 10명이 필요하다."
모두들 나를 보는 눈이 괴물, 외계인을 본 눈빛이었다.
"그럼 그 많은 사람을 감당할 능력이라는 것이..."
"돈 말이냐? 나의 성에서는 한해 십만 명이 먹을 곡식이 나온다."
모두들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오만의 군사가 지키고 있다."
마물의 수를 생각하면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서방님을 모실 백명의 부인과 천명의 시녀가 필요하다."
모두 날 보는 눈이 틀려졌다. 아마 어느 큰 왕국의 왕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 서방님은 그 정도의 귀한 분이시다."
신전에서 사는 여성들이 모두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몸을 굽혔다.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영주님."
아마도 나에 대한 판단이 그런가 보다...
여성들은 일어서 티리스에게 몰려들었다.
"잘됐어 티리스, 저런 부자 영주님의 정부가 되다니, 정말 잘됐어."
"이제 고생은 끝이야. 저렇게 잘생기고 자상하신 영주님을 모시게 되어 부러워. 정말 잘 된 거야. 티리스, 잘 살아야 해. 부인들에게 구박당하고 힘들어도 성에서 쫓겨나면 안되는 거 알지?"
모두 이런 식을 말이었다.
정리하자면, 나는 어느 먼 곳에서 온 넓은 영지와 많은 군사를 가진 나라의 영주이고, 여행 도중에 티리스를 만나서 그녀를 7번째 정부로 삼기로 했는데, 본처인 마야가 허락했다는 것이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뭔가 씁쓸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영주님의 아이가 아닌 걸?" 티리스의 친구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들이 조용해졌다.
"맞아. 어떻게 하지? 티리스의 아이."
"티리스가 가는데 방해가 되는 거 아냐?"
"그럼 티리스는 아이를 낳고 이 아이를 두고 가는 거야?"
웅성거리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아졌다.
마야가 그 상황을 정리했다.
"나는 티리스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지, 그 아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인정할 수 없다."
모두의 시선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이제부터의 일은 티리스에게 달렸다. 서방님과 나는 확실한 조건을 걸었다. 티리스에게 그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다.
이제 얼마 안남았다. 우리는 여기를 떠나 빨리 우리의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티리스는 빨리 결정해 주기 바란다. 아이를 안은 채 우리 성에 들어올 수 없고, 아이를 밴 몸으로 우리를 따라올 수 없다.
아이를 없앨 방법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티리스의 몸에 상처 하나 없이 그 아이를 없애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티리스가 거절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티리스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티리스는 빨리 결정해주기 바란다. 우리는 한가하지 않다."
마야의 말에 모두가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특히 티리스가.
벨이 나섰다. "지금 아이을 없앤다고 하셨는데, 티리스의 몸이 상하지 않고도 아이를 없앨 수 있다고 하셨나요?"
"그렇다."
벨은 나를 바라보았다. "용사님은 티리스의 아이를 죽이고 티리스를 살려주시겠다고 하셨죠? 그 말씀 정말이신 가요?"
"물론입니다."
"정말 티리스의 몸에 상처가 없나요?"
"하지만 그 일은 여기서 할 수 없어요. 그리고 티리스는 여기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성에서 살아야 해요. 배속의 아이는 그에 방해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티리스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이를 죽여야 합니다. 티리스가 낳기 전에."
여성들 중 한명이 나섰다. "왜 티리스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안된다는 거죠?"
나는 그들 수준에 맞게 설명했다.
"티리스를 임신시킨 자가 우리 일족과 원수인 이의 핏줄입니다. 우리는 그 자를 죽였고, 그 혈맥을 끊기 위해 여행을 다닌 겁니다. 마지막 남은 그의 혈육이 티리스의 배 안의 아이입니다."
"그래서 티리스를 죽일 건가요?"
"아니! 티리스를 살리고 그 배속의 아이를 죽일 겁니다."
"배 속의 아이를 죽이는데, 그 엄마가 살 수 있나요?"
"우리는 가능합니다. 우리 성에서라면."
나는 티리스에게 얼굴을 돌렸다.
"티리스가 동의하면 나는 즉시 티리스를 데리고 나의 성으로 갈 겁니다. 그리고 티리스 안에 있는 그의 혈맥을 끊어낼 겁니다. 그리고 티리스의 남은 인생에 더 이상의 불행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제안을 한 겁니다. 아이를 포기하고 나의 부인이 되라는."
티리스의 친구가 나섰다.
"영주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우리도 티리스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니 내일 다시 와 주세요."
나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텐트로 돌아갔다.
내가 텐트에 있는데 미야가 왔다. 오늘 담당은 미야였다.
"신전 안의 분위기는 어떻지?"
"벨 사제와 여자들이 티리스를 설득하고 있어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네요."
나는 한숨을 쉬고 미야에게 명령했다.
"그럼 내 말을 전해. 티리스가 여기에서 도망쳐 아이를 숨긴다 해도 우리는 지상 끝까지 추적해서 그 아이를 죽일 거라고. 그 아이는 절대 살려둘 수 없다고. 그 때는 티리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그렇게 전해줘."
미야는 나의 말을 듣고 신전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밤이 되어 미야와 함께 있던 나에게 벨과 티리스가 찾아왔다.
벨이 나에게 물었다. "오전의 말씀. 정말이신가요?"
"물론입니다."
"정말 티리스를 죽이지 않으실 건가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죽게 만들지 않습니다."
티리스가 물었다. "나를 사랑하시나요? 그렇지 않다고 말했잖아요."
"네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니까."
"지금은?"
"넌 아이 대신 날 선택해서 온 것 아니야?"
티리스는 나를 노려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했다.
티리스는 배를 잡고 무릎을 꿇고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네 엄마가 되지 못해서... 장차 내가 네 아내가 되고, 너는 내 남편이 된다고 했는데... 나는 그럴 수 없어. 그래서 미안해..."
티리스는 한동안 크게 울었다.
티리스는 우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부탁이 있어요. 고통스럽지 않게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
티리스의 주위로 마야, 제니스, 현정, 엘리자가 다가왔다. 미야도 텐트에서 나와 마야 옆에 섰다.
나는 현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리스, 잘 들어. 난 네 몸 속에 있는 아이의 심장을 공격해 한번에 죽일 거야. 그럼 넌 현정이의 몸에 있는 용의 마력을 받아들여 네 자신의 신체를 고치면 돼. 그리고 우리를 따라와."
"어떻게? 어디로요?"
현정이 티리스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가르쳐줄게. 나만 따라오면 돼."
티리스는 우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티리스는 눈을 감고 몸을 세워 배를 내밀었다.
내 옆에 제니스가 왔고, 나는 제니스의 손을 잡았다. 제니스의 마법을 이용해 티리스의 배 안을 스캔하여 그 안을 들여다보니 배 속의 태아가 보였다. 머리를 아래로 한 채 태아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티리스의 배에 손바닥을 대고 마력을 주입해 태아의 심장으로 마력을 진행시켰다. 목표는 심장. 나는 마력으로 한번에 심장을 정지시켰다.
자기 몸 속의 태아가 죽은 것을 알고 티리스가 큰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내 시야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