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나의 첫 여자이자 첫 아내 (62/148)



〈 62화 〉나의 첫 여자이자 첫 아내

우리가 숲을 나오고 가까운 마을에 들어가자, 나는 낯익은 마을의 모습에 기뻐했다. 이 곳은 내가 첫 번째 소환에서 두어번 스쳐 지나갔던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전선에서 떨어진 후방 기지의 역할을 해, 그 때에는 병사들의 휴가지와 보급품 중간 창고로 사용되었다.

내가 가서 즐기던 술집이 아직 있어 기쁨에 들어갔는데, 과거와 같은 활기는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전선 기지 역할이 끝난 마을은 활력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우리 셋이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민지가 지친 얼굴로 술집 문 앞에 바닥에 쓰러졌다.

티리스가 투덜거리며 민지의 뒷덜미를 잡고 바닥에서 끌어와, 우리 테이블 옆에 내려놓았다.
"이 여자는 여기 와서도 민폐네."

바닥에 엎어져 신음하던 민지는 음식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차게 일어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나온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먹어 입과 옷에 음식이 묻어 더러워도 민지는 먹기를 멈추지 않았다.

정말 눈뜨고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민지는 나온 음식을 다 먹고도 아쉬워, 접시에 남은 것까지 혀를 대고 문질러 먹었다. 그 모습은 천년의 사랑도 도망치게 할 것이었다.

다 먹고 민지는 몸을 뒤로 기울이며 하늘을 향해 트림을 했다. 마야가 이 모습을 본다면, 분명 부인 삼기를 포기했을 것이었다.

"선생이라면서 여자도 아닌가 봐!" 티리스가 빈정거렸다.

리나도 그 추태에 고개를 돌리고, 나는 아예 무념무상으로 내 음식에 시선을 고정했다.

"드러렁...." 갑자기 민지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술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민지를 보고 킥킥 웃었다.

우리가 이 민폐녀의 동료라는 것이 창피해서, 티리스는 아예 현실 도피로 민지를 모르는 척 외면했고 리나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민지를 안고 방에 눕혔고, 옆 방에 들어갔다. 리나와 티리스가 날 기다리고 있는데, 티리스는 민지의 추태에 나에게도 화 낼 태세였다.

"서방님. 저 여자를 왜 데리고 오신 거죠? 도움은커녕 우리에게 짐만 늘리고 있잖아요."

나도 헛웃음이 나왔다. "그만해. 나도 후회하고 있어."

리나가 턱을 문지르며 나에게 물었다. "혹시 서방님은 이 기회에 민지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 생각이신가요?"

티리스가 손뼉을 쳤다. "그렇네요. 저런 민폐녀가 부인으로 들어오면 더 힘들어지니까, 이번 기회에 도망치게 만들려는 거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우리가 준비를 끝내고 나오는데, 민지는 일어나지도 못했다. 티리스가 들어가 끌고 나오니 민지는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있었다.

"그만해. 이 더러운 옷을 다시 입으라는 거야? 갈아입을 옷을 먼저 줘야지."

"그럼 이제껏 빨래도 안한 건가요?"

"새 옷을 먼저 가져오라구."

"그런 거 없어요. 더러운 옷이라도 빨리 입고 나와요."

방 안에서 티리스와 민지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티리스는 옷도 안 입은 민지를 끌고 나와, 어제 음식물이 가득 묻은 옷을 던졌다.

"우리는 이 여관을 떠날 겁니다. 따라오려면 그 옷을 입고 빨리 오세요."

우리 셋이 여관을 나오자, 민지가 옷을 입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바로 일어나 헝크러진 머리에 엉망인 옷매무새, 음식물이 가득 묻은 옷, 며칠 간 씻지 못해 더러워진 얼굴이 민지의 모습이었다.

"여자라고 하더니 세수도 빨래도 못하고..."

"목욕탕도 세탁기도 없는 여기서 어떻게 하라고?"

"그럼 나와 리나는 뭐죠? 여관에서 물을 떠서 수건으로 닦을 수 있었어요. 빨래는 바로 앞의 우물에서 하면 되고요. 그 것도 몰랐어요?"

다시 민지가 달려들었지만, 용의 힘을 지닌 티리스의 상대가 아니었다. 민지는 다시 울면서 우리를 따라왔다.

중간에 개울물이 있었고, 나는 민지에게 그 곳을 가리켰다. 세수와 빨래를 하라는 의미였다.

민지는 울상인 얼굴로 세수를 하고 옷에 묻은 음식물을 물로 닦아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서툴러 티리스와 리나는 한숨을 쉬었다.

리나가 가까이 가서 쪼그려 앉은 민지를 발로 밀어 물에 빠트렸다.

"무슨 짓이야?"

"그냥 물 속에 텀벙 들어가 닦아내.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다 할 거지?"

"난 추운 게 싫어. 감기가."

"그건 걱정 마. 내가 고쳐줄 테니까. 힐링으로."

리나는 물 속에 들어가 민지를 끌고 더 깊은 곳에 집어넣었다. 허리까지 차는 물 안에서 민지는 투덜거리며 옷을 닦고, 머리까지 씻었다.

리나와 민지는 같이 물을 나왔고, 리나는 민지의 몸에 열풍 마법을 걸어 옷을 말려주었다.

금새 마른 옷에 민지는 놀랐다.
"이 것도 마법?"

리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나와 티리스에게 왔고, 민지는 우리 뒤를 따라왔다.

...........

우리는 열흘을 여행해 중소도시 포터스에 도착했다. 내가 살던 곳이었다.

그 도시는 여름에는 교통의 요지는 아니었지만, 다른 교역로가 막히는 겨울에는 상인들로 붐볐다. 지금은 봄이라 손님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살던 도시에 다시 오니 기분이 들떴다. 파르노와 카일을 만날 생각에 급했다.

리나와 파르노는 나를 따라오는데, 민지가 뒤쳐져서 티리스가 한숨을 쉬고 민지를 업었다.

내가 향한 곳은 여기를 떠나기 전에 내가 운영하던 스카이워커 상점이었다. 저 골목만 돌아가면 그 곳이 있다는 생각에 빨리 뛰었다.

골목을 돌자마자 나는 멈춰섰다.

그 곳에는 다른 상점이 있었다. 내가 있을 때, 내가 개발한 물건들을 팔던 곳이었다. 그 가게는 없어져 옷을 팔고 있었다.

나는 실망감을 안고 파르노와 디노가 운영하던 여관으로 향했다.

모험가로 오래 활동하던 디노는 파르노와 함께 여관을 차렸다. 칼과 나는 징집되어 군에 입대했고, 불구였던 디노가 포터스에서 파르노와 함께 장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휴가 때 그 곳에서 파르노와 사랑을 나눴고, 제대 후 카일이 태어난 것을 알고 파르노와 결혼했다.
디노는 나를 아들처럼 대했고, 카일을 포함한 우리는 넷이서 재미있게 살았다.

다행히 그 여관은 그 자리에 있었다. 간판이 바뀌었지만 상호는 그대로였다.
디노 여관. 아직 바뀌지 않은 상호에 가슴이 뛰었다.

나는 뛰는 가슴을 억누르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여관은 1층이 술집으로 쓰이며, 2층이 숙소였다.

1층에 들어서니 안은 한산했다. 교역로가 붐비는 겨울이 아니면, 찾는 사람이 적은 이유였다.

우리가 들어가자, 주방에서 나이 많은 여성이 나왔다.

"저어. 방을 드릴까요? 식사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습니다."

분명히 그녀의 목소리였다. 파르노. 나의 첫 여자이자 첫 아내.

처음에 만났을 때, 파르노가 나보다 손가락에서 팔꿈치 만큼 더 컸고, 몸집도 나보다 2배 가까이 더 무거웠다. 흔한 판타지 만화 속의 가냘픈 여성이 아닌 남자들과 육탄전을 벌일 수 있는 거구의 여전사였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난 15세의 중학생이었다. 키가 170cm가 안되는 나는 파르노에게 조카나 막내 동생 같았을 것이었다. 이후 내가 20살이 넘어 키는 파르노와 비슷해졌지만, 이 곳을 떠날 때까지 힘으로 파르노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 만큼 파르노는 힘이 쎈 여장부였다.

지금 주방에서 나온 그녀는 60이 가까운 할머니였다. 파르노는 늙은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무책임한 놈 말대로, 내가 떠난지 20년이 지났다면 파르노는 50대 중반일 것이었다.

파르노는 나를 보고 놀라서 아무 말 못했다. 내 모습은 이 세계의 떠날 때 모습도 아니고, 처음 그 세계에 떨어질 때의 모습이었다. 신체 나이 16세의 모습.

파르노도 나도 서로를 말 없이 응시했다.

"엄마. 손님이 온 거야?" 주방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르노는 주방을 향해 말했다. "아아... 여기 4명이야. 카일. 급히 내놓을 것 있어?"

"고기와 빵은 준비되어 있어. 술도 필요해? 꺼내올까?"

카일이라는 말에 내 몸에 전기가 통했다. 내 아들인 카일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로 판단하면 20대 후반으로 생각되었다. 정말 이 세계가 20년이 흘렀다는 것이 실감 되었다.

민지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어.. 물 좀... 나...."

파르노는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 물병을 가지고 민지에게 갔다. 민지는 물 병 채로 들고 마셨다.

"어이! 선생님. 그렇게 급하게 마시면."

"콜록. 콜록." 민지가 기침을 하며 물을 토해냈다.

"그렇게 된 다구요." 티리스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민지로 인해 더러워진 바닥을 닦으려, 주방 옆 구석으로 향했다. 그 곳은 내가 있을 때 청소 용구를 놓아두던 곳이었고, 지금도 그랬다.

나는 걸레를 들고 와 민지가 뱉어낸 물을 닦으려 하는데, 파르노가 와서 내 손을 잡았다.

"제가 하겠습니다."

가까이에서 듣는 파르노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

"아닙니다. 저의 동료의 잘못입니다."

주방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엄마. 무슨 일이야?"

나는 그 남자를 보는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되었다.

파르노는 급히 그 남자에게로 갔다.
"카일. 여기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너는 식사 준비를 해."

"저... 여기는 아니군요... 제 동료의 추태를 부려서...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급히 여관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파르노가 볼 수 없는 곳까지 뛰었다.

내가 잘 아는 골목길의 구석에 이르러, 나는 벽을 잡고 땅을 내려다보았다.

"우욱... 우욱...." 속에서 뭔가 올라오더니 입으로 토해냈다.

그대로 땅에 쓰러져 구토를 계속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리나가 달려왔다. "서방님. 왜 이러시죠? 무슨 일이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술집 안이었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리나와 티리스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고, 민지는 나를 보고 무언가 알아낸 분위기였다.

민지가 주인을 보고 외쳤다. "여기 술이요. 이 집에서 가장 강한 걸로. 큰 거 한병 부탁해요."

민지의 한국어는 여기서 통하지 않았다. 리나가 이 쪽 언어로 술을 주문했다. "독한 술. 한 병."

주인이 술병을 내려놓자, 민지는 그 술병을 나에게 내밀었다.

"마셔."

나는 그 술병을 받아들고 그냥 내 입 속에 들이부었다. 내 목과 가슴에 술로 적셔진 느낌이 났고, 내 식도가 술로 타들어 가며 내 위 속에 독한 술이 채워져 갔다. 아무 것도 생각할 것 없이 술을 마셨다.

민지가 외쳤다. "여기. 이 술 3병만 더!"

민지가 손가락 3개를 들고 흔들자, 주인이 술 3병을 을 가져왔다.

민지는 내 옆에 서서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다시 마셨다.

민지는 또 술병을 내밀었고, 또 나는 마셨다.

그 후 내 정신이 사라졌다.

다음 날 나는 여관 방에서 혼자 잠이 깨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힘도 몸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 방에 민지가 리나와 티리스를 끌고 들어왔다. "송재신. 일어서. 여기서 떠나야지."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민지는 내게 다가와 내 뺨을 때렸다. "일어서. 여기를 빨리 떠나야 해."

리나와 티리스는 내가 옷 입는 것을 도와줬고 나를 부축해 여관을 나왔다.

그 앞에 파르노가 서있었다.

민지는 파르노에게 다가갔다. “티리스라고 했지? 여기로 와!”

티리스가 민지 옆으로 왔다. 아마 민지의 말을 파르노는 알아 듣지 못할 것이었다.

“당신.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무 짓도 하지 마. 그냥 우리가 떠나가게 놔둬.”
"말도 말고 행동도 하지 마세요. 우리는 갈 거예요."

파르노는 내 옆으로 오려는데, 민지가 막아섰다.

“당신이 오면 더 악화돼.”
"오면 더 나빠질 거래요."

파르노는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리나의 부축을 받아 그 도시를 떠났다.

.................

우리는 산 속에서 밤을 보내기로 하고, 텐트를 쳤다.

갑작스런 나와 민지의 행동에 리나와 티리스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힘이 몸에 들어가지 않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 그 자체였다. 머리 속이 하얗게 되면서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었다.

내가 멍하니 웅크리고 있는데, 민지가 옆에서 나를 간호했다.

그녀는 티리스가 만든 스프를 숟가락으로 들어 내 입에 대었다.
"먹어. 먹어야 살아."

나는 먹을 수 없었다.

민지는 스프를 내려놓고, 물을 가져와 내 머리에 부었다. 그래도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민지는 나의 손을 잡고 일으켜 텐트로 끌고 갔다. 그리고 리나에게 눈짓을 했다.

그날 밤. 나는 리나의 봉사를 받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내 옆에 있는 리나를 안고 있었다.

내가 잠이 깨자 리나가 일어났다.
"잠이 깨신 거예요? 어제는 너무 무기력했어요. 무슨 일이죠? 서방님이 이렇게 힘이 없다니, 처음이에요."

나는 그대로 무릎을 모으고 웅크렸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민지가 텐트를 열고 나를 보고 손을 잡아 끌었다.
나는 텐트 밖으로 끌려 나왔다.

민지는 나에게 큰 통으로 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민지는 물에 젖은 나를 보며 내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 네가 이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 우리는 너만 믿고 있는데, 우리보고 죽으라는 말이야?"

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민지, 티리스, 리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티리스가 민지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서방님이 왜 저러시죠?"

"네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고 그러는 거지?"

민지의 말이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그대로 무릎을 잡고 웅크려 울고 말았다.

리나와 티리스는 아무 말 못하고 나와 민지를 번갈아 보았다.

민지는 울고 있는 나의 머리칼을 잡고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게 했다.
"잘 들어. 네가 슬프고 괴로운 것은 네 몫이야. 그렇다고 나에게 피해를 입히면 용서 안 해. 넌 나를 강제로 끌고 왔어. 책임지라는 거야. 알았어?"

"우윽... 우아앙...." 나는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

눈을 떠보니 나는 민지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옆으로 누워 있었다. 눈 앞에 모닥불이 보이고, 티리스와 리나가 모닥불 주위에 있었다.

내가 눈을 뜬 것을 보고 티리스가 왔다. "서방님. 괜찮으신 거죠?"

리나도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나는 조금 진정되어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같았다.

민지는 나를 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말 할 힘이 생긴 거야?"

"그 전에 묻고 싶어요. 어떻게 아신 거죠?"

"나도 똑같은 일을 당했으니까."

민지의 말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놀랐다.

"너희는 나를 처녀로 알고 있지? 나 이혼녀야. 남편이 바람 펴서 이혼했어. 한동안 그 충격에 지금 너처럼 아무 것도 못했어. 덕분에 이 나이가 되도록 정교사가 못 됐어."

"설마 선생님이 이혼녀?"

"너를 보니 그 때의 내 생각이 나. 남편의 바람에 충격 받고 아무 것도 못하던 내가. 학교에서 짤리고, 몇 년 간 방황하고, 정신 차려보니 생활은 힘들고. 뭐... 그런 거지."

나는 자세를 고쳐 바로 앉고 민지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말해 주실래요?"

"대신 내 애기가 끝나면 너도 다 털어 놔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지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니까 5년 전, 내가 결혼한 지 3년이 되던 그 때에 한 여자가 찾아왔어. 배가 부푼 채로. 아이가 생겼으니 남편과 헤어져 달라고.
우스운 건. 그 년이 그 놈의 제자였다는 거야. 대학생이 되어 발랑 까져서 유부남을 유혹해 임신 공격한 거지."

"전남편이 부자였나요?"

"상당히. 부모님이 부자라 건물주였어. 그 년은 그걸 알고 옷 벗고 달려든 거야. 그 놈은 거기에 넘어갔고.
3년 간 아이가 없었던 내 책임도 있지.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거든.
아이를 원하는 시어머니가 와서 나보고 이혼하래. 아이가 있으니 네가 물러나야 한다며 우리 엄마를 찾아가 난리를 피웠어. 난 위자료를 받고 도장 찍었고,"

"그건 그 남자 잘못이잖아요."

"그래. 하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오빠 직장을 가지고 위협하는데, 돈 있는 사람들이 어떤지 잘 알잖아? 협박에 굴해 도장 찍고 위자료 받고 정리했지.
웃기는 건, 내가 짐을 정리하는 날 그 놈이 그 년과 같이 온 거야. 황당하지? 내가 나가지도 않았는데, 그 년이 방에 쳐들어와 침대에 누웠어.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참고 나왔어. 지금 생각해보면 왜 참았나 싶어."

"그래서 깨끗하게 이혼한 거예요?"

"이혼까지는 깨끗했는데, 이후에 내가 크게 흔들렸어. 충격으로 수업이 잘 안되어 학부모의 항의로 자의반타의반으로 휴직했고, 복직하지도 못했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방금 너처럼 말야."

민지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방황하고 복귀하려는데 내 자리가 없어서 명성 고교 임시 교사로 온 거야.
웃기는 건 말야. 내가 집에서 제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거울을 봤어. 거울 안에 다 늙은 여자가 서있는데... 억울했어. 내가 뭘 잘못해서 내 젊음을 빼앗겼는지 말야."

"그래서 다시 찾고 싶어요?"

"기회가 왔는데 놓치고 싶지 않아. 그 년이 그놈을 잡으려고 얼마나 애썻는지 안 봐도 뻔해. 기회다 싶으면 자존심이건 뭐건 다 버리고 알몸으로 육탄 돌격한 거잖아?"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왜 그 때는 그랬죠?"

민지는 얼굴이 붉어졌다. "갑자기 준비도 없이 달려드니까..."

"그럼 지금은?"

민지는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일어서 민지의 손을 잡았다.
"기회를 놓치면 안되죠. 지금이 아니면 나를 못 잡아요. 선생님, 아니 민지씨는 어떻게 할 거죠?"

나는 웃으며 민지의 몸에 마법을 걸었다. 민지는 16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럼 날 유혹해 봐요. 이게 기회니까."

민지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입에 키스를 했다. 이혼녀라는 것을 증명하듯,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입을 떼고 헉헉거리면서 민지는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그녀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가자 움찔하는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다.

나는 텐트로 고개를 돌렸다.

민지도 텐트를 바라보고, 내 품에서 떨어져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밖으로 그녀는 로브와 옷을 내던졌다.

................

아침이 밝은 것이 느껴졌다. 옆에서 자는 민지는 40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 마법으로는 8시간이 한계였다.

솔직히 마야가 부인들의 몸을 젊게 만드는 것은 마력이 아닌 마법의 힘이다. 내가 흉내낼 수 있지만, 그 마법의 근본이 본처와 부인 사이의 계약이라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민지처럼 일시적으로 젊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지속 시간이 짧고 마력 소비가 많았다.

하지만 내 몸의 마력을 운영해보니 어제 소비한 마력에 비해 엄청난 흑자였다.
마야의 생각이 맞았다. 마왕성을 유지하려면 민지가 필요했다.

마력의 회복은 주위에 떠도는 마력의 힘을 몸 속에 저장하는 것이었다.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면 자연적으로 회복되지만, 강제로 마력을 몸 속에 빨아드리는 방법이 있었다.
나는 그런 일을 통해서 가능했다. 모든 능력이 만렙을 찍은 지 오래지만, 마력 회복에서는 그 일이 쉽고 빨랐다. 한달 휴식으로 채워질 마력이 단 한번으로 가능했다.

민지를 안은 효과는 더욱 놀라웠다. 마력 증폭 회로는 주위에서 더 빨리 마력을 빨아들이게 만들어, 다른 사람들보다 3배 빠르게 마력이 채워졌다. 어제 민지에게 사용한 마력을 생각하면 몇 배의 이득이었다.

그래도 마력 순도에는 문제가 있었다. 정제하지 않으면 고위 마법 사용에 쓰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마력이 빨리 채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민지에게 어려지는 마법을 걸었다. 16세는 너무 마력 소비가 많으니까. 30세 정도로 보이게 했다. 그 정도면 내가 민지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 같았다.

내가 텐트 밖으로 나오는데 힘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티리스와 리나는 나를 맞이했다.

"서방님. 이제 괜찮으신 거죠?"

"어제 민지는 어땠죠? 소리를 들으니 너무 서툴던데..."

"좋았어. 내가 이렇게 기운을 찾았으니까."

티리스가 아침 준비를 하고, 민지가 나왔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내 옆으로 걸어왔다
.
리나가 놀렸다. "여어. 민지씨. 어제 서방님을 모셔본 느낌이 어떻지? 소리를 들으니 3번 만에 쓰러진 것 같은데, 적어도 10번은 해줘야 하지."

민지는 내 옆에 앉았다. "오랜 만에 안 쓰던 근육을 써서 통증이 있어."

나는 웃으며 민지에게 힐링을 걸어주었다.

"자. 어제 내 애기를 했으니, 지금 너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식사를 끝내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파르노는 내 첫 여자이고 첫 아내였어. 내가 이 곳에 소환된 것이 처음 소환이야. 이 곳에서 나는 몇 번이고 죽을 뻔했고, 큰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다가 파르노에게 구조 받았어."

리나가 말했다. "파르노라는 여자가 첫 아내... 상당한 능력이 있었나 보죠?"

"정확히는 그녀가 속한 파티에게 구조 받은 거야. 전위 전사였던 칼과 디노, 마법사 파르노, 치유술사 슈가의 4인 파티였어. 나는 숲 속에서 헤매다 맹수의 습격을 받고 죽을뻔 했는데, 그들에게 구조 받고 여기 포터스에 왔어.
말도 모르는 세계에서 살기 위해 그들에게 달라붙었지. 살려 달라고 빌면서. 처음에 짐꾼으로 시작해 말을 배우고 마법을 배웠어."

"그 때 서방님을 가르치던 사람이 파르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파르노는 칼의 애인이었어. 둘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는데, 임신하면 파티를 해체할 예정이었고. 그런데 예정보다 빨리 파티가 해체되려 했어. 슈가가 먼저 임신했으니까.
나는 기회다 싶어 슈가를 대신하기로 했어. 실전에서 괜찮은 성과를 냈고. 그래서 4명의 파티가 유지 됐어. 모험가로 활동하며 파르노에게 마법을 배웠고...
그런데 디노가 부상으로 다리가 절단된 거야. 자의반타의반으로 파티가 해체되는데, 조금 있으니 칼과 나는 군인으로 징집 됐어."

티리스가 나를 보았다. "군인이요? 혹시 저에게 말했던 그런 일들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과의 전쟁이 확전이 되었고, 모험가들은 군인으로 징집 되었어. 나는 마법사 부대에 들어갔는데, 3년 정도 지나니 칼이 큰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내가 휴가 때 포터스에 다시 왔는데, 디노와 파르노는 여관을 운영 중이었고 나를 반겨 맞이했어. 그리고 그날..."

"그 날이 서방님과 파르노의 첫날인가요?"

"그래. 난 군인으로 부대에 복귀했고, 마왕이 죽자 부대가 해체되며 제대했어.
앞으로 살 길이 막막했는데, 파르노를 찾아와 보니 아이가 있는 거야. 디노는 내 아이라고 했어. 임신 시기를 계산해 보니, 내가 휴가 나왔던 때와 같았어. 나는 카일이 내 아이라 믿었고,"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디노와 파르노의 도움으로 난 포터스에 정착하기로 했어. 난 파르노에게 청혼했고, 그녀가 승낙해 결혼해 함께 살게 됐지."

민지가 물었다. "네 말은 여기 온 게 20년 후라고 했는데, 파르노의 나이를 보면 50대... 그럼 엄청 연상이었던 거야?"

"내가 결혼할 때가 24세, 파르노가 32세."

"8살 차이로군... 혹시 내 나이를 그 파르노라는 여자에 맞춘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카일이 네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안 거지?"

"한눈에 알았어. 이 녀석은 칼의 아들이라고."

리나가 물었다. "방금 칼이라는 사람이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들었다 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서방님과 파르노와 일이 있었던 때를 계산하면 맞다고 하셨어요."

"나도 그 것이 이상해. 내가 듣기로는 칼이 전사한 것이 6개월 전이라 했고, 파르노를 찾아간 것이 1년 후야. 아무리 아이의 나이를 속일 수 있어도 2년은 너무 길어.
내가 처음 카일을 본 것이 파르노와 그 일이 있었던 때에서 2년 후, 카일은 그 때 겨우 아장아장 걷던 나이야. 나이 차를 속일 수 없었어."

나는 놀라서 일어섰다. "그 것 말고 이상한 것이 더 있어... 왜 그렇게..."

"서방님. 뭔가 있어요?"

나는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그 일이 급한 것이 아니야. 빨리 이 일을 처리하고 알아봐야 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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