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세번째 용
우리는 그 길로 용사의 도시 프레드릭으로 향했다. 5일 후에 도착한 프레드릭은 내가 있던 때와 같이 번영한 도시였다.
원래 프레드릭은 마왕의 도시였다. 그 곳을 점령한 인족이 용사 프레드릭의 이름을 도시에 붙여 사용했다.
나는 이 세계에서 프레드릭을 본 적도 없고, 도시 프레드릭에 온 적도 없다. 나는 종전 직전까지 수비대의 일원으로 포터스 근처에서 복무할 뿐이었다.
프레드릭은 포터스에 비하면 대도시였다. 마왕시대부터 번영한 도시에 인간들이 들어와 살면서 도시는 상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도시 서울에서 사는 우리에게 프레드릭은 서울의 한 구 정도로 느껴졌다.
우선 리나와 티리스는 보급을 위해 시장에 가기로 하고, 나와 민지는 여관에 남아 내 마력 보충에 나섰다. 마력을 쓸 만큼 전투는 없었지만, 민지에게 마법을 걸기 위해 마력이 필요했고 민지도 적극적으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내 품 안의 민지를 보니, 파르노가 생각났다. 지금 민지를 보니, 내가 처음 그녀를 안을 때가 그녀의 29세였다. 지금 민지의 겉보기 나이와 비슷했다.
"재신아. 너 파르노를 생각하니?"
"부정하지 않아요."
"다른 여자를 생각하며 나를 안은 남자라... 내 전남편 같네. 다른 여자를 임신시켜 놓고, 집에서 날 사랑한다고 말했던 그 놈 말야."
"그래서... 내가 싫어요?"
"아니. 네가 좋아지기 시작했어."
"나도 당신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조민지씨. 아무래도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지 않아요."
"왜?"
"죄책감이 들거든요."
"나도 네가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았으면 좋겠어."
"마왕성에 돌아가면 민지야라고 불러야 해요. 앞으로 존대말도 쓰지 않을 거예요."
"각오하고 있어. 네가 널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하지?"
"그래도 선생님이니까 특전을 드리고 싶어요. 날 절망과 좌절에서 구해주신 분이니까."
"무슨 특전?"
"학교에서는 다른 부인들을 구박할 수 있는 특전."
................
깊은 밤이 되어, 나는 티리스와 민지를 여관에 두고 리나와 함께 나갔다. 갈 곳은 프레드릭의 동상. 원래 마왕의 궁전이 있던 곳의 중앙이었다.
인간들이 마왕을 토벌하고, 마왕의 궁전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궁전이 있던 자리에 인간들의 건물이 들어서고 가운데에 프레드릭의 동상이 세워졌다.
가까이 가서 보니 20m가 넘는 동상이 정말 웅장했다.
나는 두 번째 세계에서 보았던 프레드릭의 모습과 똑같은 것을 보고 웃었다. 무책임한 놈 말대로 나와 프레드릭은 같이 그 세계로 소환되었지만, 그는 죽어 중간에 이탈하고 내가 남아 마왕을 죽였다.
나는 두 번째 소환에서 프레드릭과 친했다. 내 이름을 듣고 그는 웃으며 자기 세계에서 유명한 이름이라고 했는데, 나는 꿈 속이라서 그런가 보다하며 웃어 넘겼다.
우리는 같은 파티의 일원으로 마왕을 죽일 1순위였는데, 전투 중에 프레드릭이 죽고 내가 리더가 되어 결국 마왕을 죽였다. 두 번째 소환에서 마왕을 죽인 영웅은 나였다.
나는 무책임한 놈의 말대로 동상 기단을 만져보았다. 강한 마력을 지닌 물체가 안에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상을 부순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들의 공적이 될 것이었다.
"이 동상의 그 곳에 있네요. 꺼내려면 이 동상을..." 리나가 웃었다.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아. 손상이라도 되면 그 순간 우리는 마왕의 잔당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 안에 있는 것을 알았지?"
"제니스에게 배웠어요."
원래 전투 스킬과 신체 강화 밖에 모르는 리나는 제니스에게서 많은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제니스는 몸이 느리고 접근전을 전혀 할 수 없지만, 마법 지식과 이론에 천재였다. 그녀를 통해 현정, 리나, 티리스는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지금 리나가 사용한 마법은 제니스가 주로 사용하는 스캔마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의 그 곳에 그 걸 두다니..."
리나의 웃음에 티리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리나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티리스는 얼굴이 붉어지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동상에 해가 안 되게 파내는 방법이 있지만,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은밀하게 하기는 어렵네요. 동상을 부수지 않는 한..."
리나의 말에 힌트를 얻은 나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한동안 프레드릭 시내에서 시간을 보냈다.
민지는 다른 세계의 음식에 빠져들어 매일 식당 순회를 하고 있었고 티리스는 함께 즐겼다.
둘은 정말로 가까워졌다. 멀리서 보면 엄마와 딸 같이 보이지만, 언제나 야단 맞는 것은 민지였다. 철없는 민지의 행동에 티리스는 언제나 머리 아파하며 뒷수습을 했다.
우리가 프레드릭에 온지 두 달이 지나자, 여관이 붐비기 시작했다. 우기가 온 것이었다. 우기가 되면 강이 범람하고 도로가 수몰 되거나 산사태가 잦아진다. 상인들이 이동을 자제하는 시간이 온 것이었다.
나는 매일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올 때를 기다렸다. 어느 날 짙은 구름으로 어두워진 날에 민지를 제외한 우리들은 프레드릭의 동상으로 향했다.
프레드릭의 동상 주위에는 인간들의 집과 상점이 주변에 있는데, 우리는 한 상점 안에서 식사를 하는 척 했다.
잠시 뒤 생각대로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이 모르게 마력을 모아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게 했다. 목표는 프레드릭의 동상. 하늘에서 내려온 큰 벼락이 프레드릭의 동상의 허리를 때렸고, 동상의 상반신이 잘라져 떨어졌다.
다시 번개가 내려와 동상 발목에 직격 했고, 파편이 사방에 튀었다.
티리스가 머리를 잡고 비명을 지르다 동상을 향해 뛰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뚫고 티리스는 비명을 지르며 동상 가까이로 달려가는데, 내가 티리스의 뒤를 따라갔다.
"티리스, 안돼. 거기 서. 위험해."
티리스는 더 크게 비명을 지르며 동상에 가까이 갔다. 그러자 벼락이 동상 기단에 직격했고, 기단의 일부가 부서졌다.
나는 티리스를 안고 웅크렸다. 그러자 내 옆에 리니가 달려왔다.
우리를 보고 주위에서 비를 피하던 사람들이 당황했다. 몇 명이 우리를 구하려 나오려는데, 동상 주위에 몇 번의 벼락이 떨어지자, 모두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셋이 모이자, 리나가 안개 마법을 사용했다. 북쪽에서 몰려온 안개가 광장 전체를 뒤덮었고, 1M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나와 리나는 부서진 동상의 파편을 뒤졌다. 찾는 것은 동상의 허리와 엉덩이 부분.
리나는 미리 파편의 위치를 파악해 두었는지 빨리 그 부분을 찾았다.
"리나. 서둘러."
리나는 비로 동상 파편을 손으로 부수고 무언가 꺼냈다. "찾았어요. 서방님. 이거에요."
리나의 손에 10cm의 정사각형 상자가 있었다.
"티리스, 내용물을 꺼내."
티리스가 손을 대자 상자가 열렸다. 안에 붉은색을 띄는 둥근 돌이 있었다.
나는 그 돌을 주머니에 넣고 두 사람을 안고 안개 속을 달렸다.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 두 여자를 구해 뛰어든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어느 상점 안으로 들어가자 티리스가 내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물론 연기로.
리나도 날 안고 울었다.
그런데 두 여자 연기가 정말 리얼했다.
주변에서 날 격려하는 소리가 났다.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은 나는 프레드릭시의 조사를 받았다.
"그러니까. 여자 아이가 무서워 뛰어나가니까 위험해서 아이를 잡으러 나온 것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번개가 떨어지는데 비가 오는 장소로 뛰어들면 위험하죠."
주변의 증언이 있어 별 의심 없이 나는 풀려났고, 사람들에게 영웅 취급을 받았다.
우기가 끝나는 1개월 동안 우리는 여관에서 머물렀다.
그동안 리나와 민지에게서 마력을 보충하는데, 3명이 같이 한 자리에서 리나는 민지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자, 무책임한 놈이 알려준 곳을 향해 우리는 프레드릭의 북쪽 숲으로 향했다. 산 속에 들어갈수록, 높은 나무와 풀, 늪지로 가득했다.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는 원시림이었다.
티리스가 우리의 안내를 맡았다. "저기입니다. 저기가 분명해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숲 속의 큰 바위산이었다.
"정말... 얼마나 더 가야지?" 우리를 따라오는 민지는 기진맥진이었다.
티리스는 한숨을 쉬며 민지를 업었다.
바위산 밑에 서서, 프레드릭에서 구한 붉은 돌을 꺼내었다.
티리스는 민지를 내려놓고, 바위산 가까이에 와서 둘러보았다.
"티리스, 만나고 싶어. 부를 수 있어?"
티리스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우리들 주위에 빛나는 물체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정령들이었다.
그 정령들이 한 곳으로 몰려들더니, 한 줄기 불길로 모아졌다. 라노크, 아리아와 같은 용의 영혼이었다.
나를 이 곳에 다시 보낸 무책임한 놈은 용의 심장을 가지고 용의 이마에 다시 붙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 놈은 나에게 심장이 있는 위치를 프레드릭 도시 안의 프레드릭 동상 안이라 했고, 용의 이마는 그 북쪽 산 속에 있다고 했다.
용의 기운을 느끼는 티리스는 잠들어 있는 용의 육체를 찾아내고, 그 영혼을 여기에 부른 것이었다.
"나를 부르는 것이 너인가?"
남자냄새 풀풀 풍기는 목소리였다.
"나와 같은 용의 영혼, 너의 육체를 돌려주려 왔다."
티리스의 말에, 나는 불덩어리 앞에 붉고 둥근 돌을 내밀었다.
"그렇군. 그 것은 내 신체의 일부. 나의 잠을 깨울 수 있는 것이다."
"어디에 넣으면 되지?"
불덩어리가 움직이자, 우리는 따라갔다. 큰 바위 앞에서 섰다.
"이 바위를 치우면 된다."
나는 그 바위산을 마력을 사용한 힘으로 밀어보았지만, 움직이지도 않았다.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바위를 살펴보았다. 둘러보니 바위들이 한 방향으로 쪼개져 있었다.
나는 바위산 위로 올라가, 주머니에서 철검을 빼내어 바위의 틈에 꽂아 넣고 쪼개지는 방향으로 힘을 주었다. 바위산 전체가 쪼개져 금이 갔다.
나는 마력을 모아 철검에 주입해, 바위 안에 충격파를 밀어 넣었다. 바위 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바위산의 바위가 한 방향으로 줄들이 생겼다. 내가 철검에 힘을 주어 흔들자, 바위가 위에서부터 쪼개졌다.
내려와 보니, 바위는 치워지지 않았지만 큰 틈이 생겼다.
"여기 아래가 맞아?"
"그렇다 바로 여기다."
리나가 나서서 땅을 파보았다. "여기 안에 무언가 있어요."
흙을 걷어보니, 용의 피부가 보이고 둥글게 파인 구멍이 나왔다. 그 크기가 가져온 붉은 돌과 같아 보였다.
"그 돌을 어서 제자리에 넣어두어라."
불덩어리의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전에 우리 소원을 들어주어야지."
"재미있군. 너는 정령의 왕에게 거래를 청하는 거냐?"
"우리도 이 것을 가지고 오느냐 힘 들었어. 그러니 너도 값을 줘야지."
"하하... 재미있군. 뭐지?"
"우리와 같이 가는 것."
"어디로?"
"우리가 온 세계."
민지, 리나, 티리스는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잘 보니, 너희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구나. 용의 영혼이 날 찾아왔으니 당연히 너희는 이 세계 사람들이 아니지. 그렇다면 나를 너의 세계로 끌고 갈 것이냐?"
"그렇다."
"거절한다."
"너에게 거부권은 없다. 아니면 평생 이대로 살아라."
우리 주위로 빛 덩어리가 몰려들었다.
"내 육체를 가져온 이상 함부로 보낼 수 없다."
"그럼 네 육체를 암컷으로 만들어 주겠다."
"나는 용. 인간들과 같이 암수가 없다."
"아니. 너의 목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어. 넌 네 몸이 암컷이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을 걸?"
"네가 무슨 힘으로 내 육체를 암컷으로 만든다는 것이냐?"
"네가 알을 낳게 만들 수 있다."
용의 영혼이 당황했다. "무... 무슨 소리냐? 네가 어떻게."
나는 티리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기 용의 힘을 가진 자가 있다.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이 돌을 너에게 돌려주는 즉시, 이 자가 너의 몸에 마력을 집어넣을 것이다."
"그... 그런. 네가 그 것을 어떻게 아느냐?"
"이 용이 나에게 말해준 것이다. 어때? 암컷이 되어 알을 낳겠느냐, 아니면 내 말을 듣고 나를 따라오겠느냐."
불덩어리가 망설이는 듯 보였다.
"티리스. 준비해."
내 말을 듣고 불덩어리가 당황했다.
"알았다. 너를 따라가겠다. 대신 내 육체를 해방시켜주고."
"너에게 맞는 육체를 찾아주겠다."
"좋다. 고맙다."
"단, 새로 제공하는 육체는 여성으로 나의 부인이다."
불덩어리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나를 부인으로 삼을 생각이냐? 좋다 그럼 나를 이겨야 한다."
"알고 있다."
불덩어리는 나에게 달려들어, 나는 불길 속에 갇혔고 내 몸 속에 마력이 파고들었다.
나는 마력을 방출해, 내 몸 속의 마력을 몰아내며 마력 자체로 불덩어리를 공격했다. 물리적 육체가 없는 정령은 마력 자체의 데미지로만 상대할 수 있고, 더 강한 마력에만 굴복했다.
나를 둘러쌓은 불길이 나를 공격했지만, 이내 나의 마력에 밀렸다.
잠시 후, 마력이 나에게서 떨어졌다.
"내가 졌다. 네 뜻대로 너의 부인이 되겠다. 어느 육체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가?"
"네가 들어갈 육체는 이 세상에 없다. 나는 이 땅속의 너의 육체와 함께 우리 세상에 네가 오기를 바란다."
"좋다."
"내가 부를 때까지 잠든 척 해야 한다. 그동안 티리스의 몸 안에 있어라."
불덩어리는 나의 명령대로 티리스의 몸에 들어갔다.
나는 붉은 돌을 구멍에 넣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허락 없이 깨어나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에. 우리는 바위를 옮겨 그 자리를 덮어놓고 그 곳을 떠났다.
내려오는 길에 티리스가 물었다. "서방님. 이제 어디로 가야죠? 우리의 일은 끝난 것 아닌가요?"
"아니. 끝나지 않았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어."
민지가 말했다. "파르노 일이야?"
나는 말없이 걸었다.
...............
우리는 포터스에 다시 돌아왔다. 더 빨리 올 수 있었지만, 이 날 포터스에 오기 위해 난 근처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늘에야 이 곳에 도착했다.
가을이 되어 포터스는 겨울 장사 준비로 분주했다. 눈이 내리는 순간 옆 나라로 향하는 교역로가 모두 끊기고 포터스를 통한 길만 유효하기 때문에, 겨울 동안 포터스를 지나는 상인들이 많았다. 그 준비로 상점들은 분주했다.
나는 포터스 중심가가 아닌 교외의 공동 묘지로 향했다.
나는 먼저 묘지 관리인을 만났다.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이 뭐죠?"
"아나킨 스카이워커. 칼 판, 디노 라자."
"모두 한 곳에 있는 사람들이네요. 세 사람들은 친구였다고 했는데, 잘 아시는 분인가 보네요."
묘지 안내인의 인도로 우리는 몇 개의 비석이 몰려있는 곳으로 갔다.
비석을 읽어보니, 아나킨 스카이워커, 디노 라자, 칼 판의 3개 비석이 한 줄로 모여 있었다.
"디노, 칼... 그럼 서방님의 이름이?"
나는 내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 손을 올렸다. "그래. 나의 묘지야."
"서방님이 죽었다구요? 어떻게?"
"나도 그 것을 확인해야 겠어. 오늘이면 알 수 있어."
잠시 기다리니 한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파르노였다.
파르노는 나를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