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용서받을 기회
나는 파르노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그녀를 괴롭혔다.
오후가 되어 기절한 그녀를 침대에 두고 정원에 나오니, 마야가 있었다.
마야는 내 앞으로 걸어와 원망 섞인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티리스에게 들었습니다. 파르노를 억지로 끌고 오신 겁니까?"
"나는 그녀를 용서할 수 없어."
"그렇다고 아들, 손자와 헤어지게 한 건가요?"
"아니었으면 그 아들을 죽였을 거야."
"너무 심하시네요."
"그 만큼 나는 파르노를 용서할 수 없어."
미야가 파르노와 함께 워프해 왔다. 파르노는 내 시선을 피해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마야가 파르노에게 다가갔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내 말에 사실대로 대답해라."
"네."
"네가 서방님을 속인 것이냐? 다른 사람의 아이를 서방님의 아이라고?"
"네."
"네가 서방님을 죽인 것이냐? 독으로?"
"....네"
짝! 마야는 파르노의 뺨을 때렸다.
"왜지?"
파르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나킨... 서방님은 외지인이라 주위에 적이 많았지요. 특히 마왕 편에서 싸웠던 사람들에게. 서방님은 주위 마을에 대한 잔혹행위를 명령하고 실행한 분이셨습니다."
나는 항변했다. "나는 그 때 병사들 중 하나였어."
파르노가 나를 노려보았다.
"네가 해골 표시의 깃발을 단 부대의 부대장이었다는 것을 모를 줄 알아?"
나는 아무 말 못했다. 그 것은 인간 부대 내에서 더러운 일을 하는 비밀 부대였다. 그 부대의 중대장 5명 중에 하나가 나였다.
특히 마법을 사용하는 나의 부대는 시체 훼손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피해를 당한 마을의 생존자들이 서방님을 알아보았죠. 포터스시에서는 서방님에 대한 처단을 결정했고, 나에게 실행을 명령했습니다."
마야가 물었다. "왜 거절하지 않았지?"
파르노는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너의 친족들이었나?"
"나의... 숙부님과... 사촌 동생들... 그들이 그의 손에 죽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왜 서방님과 결혼한 거지?"
"결혼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저 평범한 군인 중 하나로 알고 있었지요."
"언제 알게 된 거지?"
"서방님이 괴로워 나에게 털어놓았지요. 나는 그 때 그가 내 사촌들을 죽인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말하는 마을, 지형, 사람들... 내가 자주 가보던 곳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한동안 그를 멀리했지요. 하지만..."
더 놀라서 나는 휘청이며 땅에 주저앉았다.
"네가 아는 것을 숨기고 결혼 생활을 계속한 것이냐? 왜?"
"전... 아나킨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너의 친족들과 친구들을 죽인 사람이라도?"
"그만큼 사랑했으니까요."
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왜 서방님을 독살한 거지?"
"저도 한 때는 서방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지요. 그래도 숨기며 살아갔습니다.
시간이 지나 주위 사람들에게 숨길 수 없었습니다. 서방님은 포터스 사람들의 원수였으니까요. 그들은 나에게 카일과 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서방님을 죽이라 요구했습니다.
저에게 찾아온 사람은... 저의 사촌이었습니다. 눈 앞에서 부모와 형제들이 죽는 것을 본 그 사람은... 서방님의 부하로 인해 딸을 낳고 살고 있었지요. 나에게 부탁했습니다. 서방님을 보고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파르노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 때, 남편 대신에 친구들을 선택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런 일을 한 서방님을 용서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파르노의 슬픔, 분노... 그 모든 것이 밀려왔다.
마야도 그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난 후, 정말 많이 후회했어요. 제가 사랑하는 남편, 카일이 사랑하는 아버지였는데...
그녀도 나를 찾아와 몇 번이고 사과했어요. 자기 때문에 내가 혼자 산다고... 죽을 때에도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했죠. 그리고 나는 그녀의 딸을 카일과 결혼시켰어요."
나는 머리를 잡고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내가 계속 괴로워하고 있던 나의 과거였다. 그 민낯이 여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모두 드러나고 있었다.
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보겠다.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
파르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싫다면 너를 너의 아들과 손자 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여기에 있고 싶습니다."
"왜지?"
"저는 서방님을 사랑하니까요."
나는 놀라서 파르노를 바라보았다.
"그런 일을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냐?"
"그런 사람이니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서방님은 저에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지?"
"내가 단점을 가려주고, 실수를 덮어줘야 하는 사람."
마야는 놀란 얼굴이었다. 나도 아무 말 못했다.
"서방님은 저에게 그런 사람입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그 것을 덮어줄 수 있는 것은 저 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온 겁니다. 서방님의 잘못과 실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저입니다."
"너의 친족, 친구들에게 그런 짓을 한 사람인데도?"
"그렇기 때문에 서방님에게는 저뿐입니다."
너무 당돌한 말에 마야는 멍하니 파르노를 바라보았다.
"서방님은 제가 없으면 잘못하고 실수할 겁니다. 제가 옆에 있어야 합니다."
"그럼 힘들텐데?"
"저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마야는 파르노를 바라보다 크게 웃었다. "캬하하.. 깔깔깔... 재미있어... 재미있어..."
마야는 웃음을 멈추고 파르노의 등을 나를 향해 떠밀었다.
"저기. 나와 너의 서방님이 있어. 모시고 와. 앞으로 잘 부탁해."
파르노는 내 앞에 서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려요. 서방님의 부인이 된 파르노입니다."
나는 파르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방과 후가 되어 제니스, 현정이 민지와 같이 왔다.
마야가 민지 앞으로 다가갔다. "서방님께 들었다. 부인이 되겠다고?"
"네."
"잘 생각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현정이 민지의 귀에 속삭였고, 민지는 마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방금 전처럼 마야는 민지에게 피를 먹이고, 목 뒤에 마법진을 그렸다.
민지는 일에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의 남편이시여. 내 몸과 마음은 모두 제 남편이신 당신의 것입니다. 저를 잘 사용해 주십시오."
민지의 몸은 다른 부인들처럼 16세의 몸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민지는 성질 사나운 분위기였다. 이런 여자에게 매력을 느낄 남자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남편이 바람핀 것이 이해되었다.
마야가 말했다. "민지는 원래 이 모습이지만, 마왕성 밖에서는 나이 먹은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마야는 다른 부인들을 돌아보았다. "부인이 많아졌으니 서열을 정하겠다. 우선 미야는 서방님이 처음 얻으신 부인이니 모든 부인들 중의 으뜸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마야는 파르노를 바라보았다. "서방님의 첫여자였던 파르노다."
모두 놀라서 파르노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파르노는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제가 그렇게 높은 자리를... 저에게 과분합니다."
"네가 말한 서방님을 보필하는 방법에 맞는 자리다. 높은 자리인 만큼 많은 책임이 따른다. 네 말에 책임져라. 알았나?"
"저는 거절하고 싶습니다."
마야는 마력을 내뿜었다. "본처의 명령이다."
파르노는 놀라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제니스. 한 자리 밀려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파르노 같은 분이 저의 위라면 저도 안심이 됩니다."
"그 이후는 부인이 된 순서대로 서열을 정한다. 리나, 엘리자, 티리스, 민지의 순이다."
네명이 마야를 향해 몸을 굽혔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새로 온 파르노와 민지의 날이다. 두 명이 서방님을 모시기에 최선을 다해라."
""알겠습니다.""
................
결혼과 출산 경험이 있는 여자들은 무언가 달랐다. 다른 여성과 콤비가 되었을 때보다, 민지가 파르노와 호흡을 맞추니 그 일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특히 파르노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민지와 함께 나에게 봉사했다.
몇 번으로 끝냈지만, 만족감은 다른 날보다 더 컷다.
나는 두 여자를 양 옆에 안고 누웠다.
"죄송해요. 아직 이 몸에 적응이 안되어서..."
"파르노가 옆에 있어 정말 좋았어요. 이렇게 서방님을 잘 알다니, 오늘은 정말 편했어요. 서방님도 몇 번만에 만족하시고..."
민지와 파르노는 내 가슴 위에서 팔을 마주 잡았다.
좋은 것은 내가 더 했다. 몇 십년 만에 이렇게 만족스러운 날은 처음이었다. 리나의 경우는 너무 경험이 많아 끝난 후 당했다는 기분이 들고, 다른 부인들은 아직 경험이 적어 나에게 잘 맞추지 못했다.
그런데 파르노는 달랐다.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천천히 나를 만족에 이르게 했다. 내가 첫 세계에서 그녀에게 느꼈던 행복감을 다시 느끼게 하였다.
그녀와 호흡을 맞춘 민지도 만족스러웠다.
"리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오늘 파르노와 따라하니 서방님이 더 좋아하시네요."
"남자 입장에서는 여자가 달려드는 것이 부담스러워. 리나는 경험이 많지만, 이렇게 충만한 만족을 주지 못해."
파르노가 말했다. "서방님은 옛날 그대로네요. 안아주는 것보다 안기는 것을 좋아하고, 격렬하게 나가다가 안겨 있기를 원하는 것."
"네가 날 그렇게 만든 거지. 언제나 아침에 네 품에서 잠이 깨는 것을 즐겼으니까."
"정말 내 품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려 했죠. 내가 먼저 침대에서 나오려 하면 안아달라고 졸랐으니까."
민지가 웃었다. "서방님이 그렇게 어리광이 심하다니..."
"얼마나 어리광이 심했는데, 자다 일어나 내가 없으면 하루 종일 짜증내고. 나보고 안아달라 조르고. 어떤 때는 야수처럼 달려들다가 내가 안아주면 바로 아이가 되어버려."
"그건 엄마가 하는 말인데?"
"처음에 서방님은 아들과 같았어. 내가 말도 가르치고 마법도 가르쳐 주고. 나를 능가한 순간, 질투가 나면서도 대견했어. 내가 저 사람을 저렇게 훌륭하게 키웠으니까 말야."
내가 물었다. "그런데 내 아내가 된 기분은 어땠지?"
"내가 키운 아이가 날 아내로 삼겠다고 하는데, 묘한 기분이었어. 전에는 서방님을 아들, 동생으로 생각하고 보호해야할 사람이었는데, 날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거야? 속으로 너 많이 컷다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날 그날 힘으로 제압했지요. 그 때 알았죠. 나보다 세구나, 내가 이 사람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구나하고."
나는 심각해졌다. "여기서 말해줄래? 내가 청혼한 날 말고, 그 날... 네가 내 방에 들어온 날."
파르노의 호흡이 달라졌다. 옆의 민지도 심각해졌다.
"민지가 있는 곳에서 듣고 싶어. 나는 여자들의 심리를 잘 모르니까, 민지라면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민지가 침대에서 일어나 나를 노려보았다.
"서방님은 너무 심하시네요. 그런 이야기는 묻는 것이 아니에요. 더구나 다른 사람이 듣는 곳에서.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요."
나는 놀랐다. 정말 알고 싶어 민지의 조언을 구하고 싶었는데, 실수했나 싶었다.
"미안. 그런 줄 몰랐어. 내 생각이 짧았어."
"아뇨. 다 말할게요. 다른 사람도 들어줬으면 해." 파르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오빠가 여관을 운영하면서, 칼이 중상을 입고 우리에게 도망쳐 왔죠. 그는 마왕군이 아닌 아군에게 쫓기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부대를 공격한 부대는..."
파르노는 나를 노려보았다.
"서방님이 속한 부대였죠."
나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실제 내가 속한 부대의 임무는 그런 것이었다. 밀정, 적군 스파이 잠입, 아군 내 스파이 색출, 민가 습격, 전쟁 범죄의 증거 인멸 등의 비밀스럽고 더러운 일이었다.
나는 그 부대에서 적진 한 가운데 투입되어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이었다. 모험가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었기에, 우리 부대는 거의 모험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가장 뛰어난 실력으로 중대장까지 올랐는데, 귀족 출신이 아닌 중대장은 나 하나였다. 그 이유로 내가 속한 부대에게 가장 더러운 일이 배정되었다. 후방 교란을 위한 민간인 습격이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양쪽 모두 경쟁적으로 잔혹해졌다. 특히 혼전 지역이었던 토터스에서는 양측 모두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적으로 보고 살육에 나섰다.
그럴수록 나에게 요구되는 잔혹성의 강도가 세졌다. 약탈, 방화에 그치지 않고 한 마을의 몰살과 함께 다른 마을들에게 보여줄 퍼포먼스를 요구했다.
나는 내 생애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을 했다. 한 마을을 지정하여 습격한 후, 모든 여자들을 마을 한 가운데로 모은 뒤, 남자들을 집에 가둔 후 불을 지르고 나오지 못하게 막아서 죽였다. 불타는 집과 사람들의 시체를 보면서, 여성들을 윤간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한참을 욕심을 채운 뒤, 나는 여성들을 벌거벗겨 나무에 매달은 뒤 몸에 약을 바르고, 그 마을을 나왔다. 그 약은 늑대를 끌어 모으는 것이었다. 나무에 묶여진 여성들은 늑대밥이 되었다고 알려졌다.
나는 그 이야기를 파르노에게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파르노는 나를 위로했지만, 3년 간 나를 멀리했다. 그 마을에 그녀의 사촌이 있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잔혹행위를 하던 아군을 보고 칼이 속한 부대가 반란을 일으켰죠. 서방님의 부대가 그들을 진압했고, 생존자가 없도록 몰살하려 했어요. 칼과 함께 도망친 몇 명은 이후 도망 다녀야 했죠. 칼도..."
그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종종 우리의 잔학 행위에 반발하는 아군이 있었다. 우리가 침입한 마을 출신의 아군 병사들이 많아서, 우리는 아군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작전 수행 중에서도 우리는 아군의 제재를 많이 받았는데, 아군과 싸웠다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렸다.
그래도 칼의 부대를 진압한 것은 나의 중대가 아니었다. 모험가들로 구성된 우리 중대에게 다른 모험가 부대를 공격하라 명령하면, 반드시 모험가들이 뭉칠 위험성이 컸다. 게다가 칼이 속한 부대에 내 친구 모험가들이 많았다. 그 명령에 나를 배제시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칼은 가까스로 우리 집으로 도망쳐 왔죠. 우리는 그를 숨겨주고 치료했어요. 원래 나의 남편이었던 사람이니까. 우리는 옛날 같이 지냈죠.
하지만 칼의 상처는 낫지 않았죠. 그들이 사용한 것은 독이 묻은 무기였으니까요. 점차 쇠약해져가는 자신을 보며, 칼은 나에게 자기가 죽으면 바로 재혼하라고 말했어요. 그 때..."
"내가 휴가를 온 거네."
"네. 칼은 숨어서 서방님을 지켜보았어요. 그리고 나에게 서방님과 결혼하라고 했죠. 나라면 믿을 수 있다고... 나는 울면서 거부했지만, 그는 나를 끌고 그 방에 집어넣었지요."
"그럼 그 때 문 뒤에 있던 사람이 디노가 아니라 칼이었어?"
파르노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하루를 보내고 나온 후, 칼은 사라졌어요. 자신을 찾지 말라는 편지를 남기고. 얼마 후, 그의 유품이 도착했죠. 그는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의 집에서 죽었어요. 그 때 나는..."
"카일이 생겼던 거야?"
"네... 카일이 생긴 것을 알고 낳기로 했어요. 그리고..."
"내가 찾아왔군."
"카일을 낳고 오빠는 불구이고 내가 일을 못해 힘들었는데, 서방님이 온 거예요. 오빠는 카일의 아버지가 왔다고 반겼죠. 나도 아기인 카일의 아버지가 당신이길 바랬고, 믿었죠."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내가 그런 일을 했던 사람인 걸 알고도, 왜 날 받아들인 거지?"
파르노는 고개를 돌렸다.
민지가 물었다. "카일에게 아버지가 필요했던 건가요?"
파르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기 위해서는 서방님이 필요했어요. 여관을 운영하려면 남자의 힘이 필요한데, 다리가 없는 오빠 혼자서는 힘들었죠. 칼이 있던 때에는 어떻게 되었지만, 나도 카일을 낳아서...
마침 서방님이 오고 오빠에게 졸랐죠. 같이 살게 해달라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나는 정말로 막막했다. 그 곳은 퇴직금의 개념이 없는 세계였다. 군대에 있을 때는 쥐꼬리 만한 급료에 살면서, 전쟁이 끝나자 부대 해체와 함께 버려졌다.
사회에 나오니 군인이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나를 멀리했다. 전쟁 말기의 잔혹행위에 질려버린 사람들은 제대 군인을 사회에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나는 디노를 찾아가 사정했는데, 그 곳에서 카일이 내 아이라는 디노의 말을 들었다. 여관에서 일하는 조건은 파르노와 결혼하는 것. 내 아이가 있다는 생각에 기쁘게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디노나 파르노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갈 곳 없는 나에게 가정을 만들어 준 것이 그들이었다. 카일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조건이었을지 모른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내 사정이고, 그들은 나에게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한동안 나에게 남편, 카일에게 아빠가 생겼다고 기뻐했죠. 서방님에게서 고백을 듣고, 우리가 치를 떨던 일을 한 사람이 내 남편이라는 생각에 이혼을 고민했어요. 하지만..."
"카일이 서방님을 좋아했나요?"
"카일에게는 서방님이 아빠였으니까요."
"이해해요.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얼마간 고민하며 서방님을 멀리했지만, 카일의 아빠라는 생각에 용서하려 했죠.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고민을 안고 살았죠. 그날 까지는..."
"그날이라면... 서방님의 과거가 알려진 것인가요?"
"카일의 아내의 어머니, 나의 사촌이 나를 찾아왔다가 서방님을 보고 도망쳤죠. 그녀는 한동안 우리 집 근처에도 오지 못하다가, 나를 만났죠.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죠. 서방님의 잔혹행위에 가족, 친구를 잃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서방님을 죽이려 했나요?"
"그랬지만 서방님에게 당했죠. 도저히 서방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때가 생각났다. 나는 물건을 가지고 포터스로 오는 도중에 강도들을 만났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아마추어들이었다.
당시는 전쟁 직후라 노상강도가 많았고, 나도 그 중에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 때 그 마을의 피해자들이 달려와 나에게 서방님을 죽이라고 부탁했죠.
저는 거절했는데, 내 사촌이 내 발을 붙잡고 애원했어요. 그를 보면서 살 수가 없다고.
한 사람이 제 앞에 뼈를 던졌죠. 그 뼈에 늑대 이빨 자국이 선명했는데, 산 채로 늑대에게 먹혀 죽은 자기 딸이라고 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조건을 제시했죠. 이대로 복수나 원한을 끝내라고, 그들이 동의해서..."
민지가 물었다. "그럼 그 이후에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죠?"
"장례식 때, 나의 사촌 이외에 누구도 오지 않았고, 이후에 나를 피해 다녔죠. 그녀가 죽던 날, 내 손을 잡고 사과했어요. 자기 때문에 내가 혼자 산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죠. 나는 그녀의 딸을 키웠고, 카일과 결혼 시켰어요."
그럼 데일이라는 그녀의 손자는 그 때 피해자의 딸이 낳은 아이였다. 파르노는 그 것까지 껴안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도 죽고, 데일이 태어나던 날, 그 때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 사과했죠. 하지만 나는 카일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소리쳤어요. 끝난 일이라 생각했죠."
"그럼... 지금은 어떻지요?"
"나는 서방님이 죽인 이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를 죽였고, 그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어요. 이렇게 살아서 속죄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에요."
그녀의 말... 살아서 속죄할 기회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해라. 그 말이 생각났다. 제니스 때도, 티리스 때도, 나는 그 말을 기억하며 살아왔다.
내가 속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파르노가 부러워졌다. 그녀는 작은 일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갚으려고 노력해 왔다.
나의 아내였고, 지금 나의 부인이 된 그녀가 부러워졌다. 그녀는 기회가 생겼는데, 나는 기회를 얻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