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제니스의 불만 (67/148)



〈 67화 〉제니스의 불만

"또 놓친 것 같습니다."

제니스의 보고에 미야는 땅을 구르고, 엘리자는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벌써 6번째 숨박꼭질이지만, 다시 마왕을 놓치고 말았다.

겨울방학에 나는 마왕성을 전에 갔었던 무인도로 이동시켰다. 휴가를 즐기려는데, 무책임한 놈이 불렀고, 미야, 제니스, 엘리자와 함께 마왕토벌에 나섰다.

인족 연합군을 규합하여, 단번에 마왕성에 쳐들어간 우리는 마왕의 도시를 점령했다. 그런데 마왕은 마왕성을 탈출한 지 오래였다.

그 후, 우리 넷은 마왕을 추격해 다녔다.
마왕군의 잔당들이 숨어 있는 지방 요새 도시들을 차례로 점령해 가는데, 마왕의 흔적은 찾았지만 잡을 수 없었다. 마왕의 마력을 추적했지만, 우리가 가면 마왕은 잠적한 후였다.

미야는 발로 근처의 나무에게 화풀이를 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어디 간 거지?"

제니스가 한숨을 쉬었다. "여기에 있던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없군요."

엘리자가 땅에 주저앉은 채로 울상이었다. "또 처음부터... 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이 세계에 온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마왕을 잡지 못했다.

우리는 같이 온 모험가들과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우리가 현지에서 고용한 이들도 힘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닥불에 모여 식사를 하는데, 세 사람에게 미안했다.
"미안..."

"왜 그러시죠?"

"서방님... 무슨 일 있어요?"

"이렇게 계속 허탕만 치니까 너희들에게 미안해."

제니스가 고개를 숙였다. "제 탓입니다. 마왕을 계속 놓치고 있으니까요."

"제니스 잘못이 아니야. 계속 빠져 나갈 구멍을 주는 내가 문제지."

"제니스님도 미야님의 탓이 아니에요. 제가 항상 짐만 되어서."

세 사람 모두 풀이 죽어 있었다.

"내가 여기서 조금 정리하고 싶어."

나는 제니스를 바라보았다.

"제니스. 어떻게 마왕이 우리 추적을 빠져나갔는지 생각해 보려 해. 제니스의 스캔 마법을 피하면서 말이지."

"저의 스캔 마법으로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오면 사라집니다."

"어느 정도?"

"거의 500m 정도입니다."

"그럼 거의 접근 했었다는 말인데..."

엘리자가 손을 들었다. "저기... 한 마디만 해도 되나요?"

우리의 시선이 엘리자에게 쏠렸다.

"그러니까... 마왕이 도망치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마왕이 어떤 길로 도망치는 것만 생각했어요."

"그랬지?"

"만약 마왕이 변장을 해서 도망치는 경우는 어떻게 하죠?"

"도망치더라도 마력은 속일 수 없어. 마력은..."

나는 뭔가 알아서 무릎을 쳤다.
"그래! 제니스의 스캔 마법도 피할 수 있다면, 내가 느껴질 수 없었던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공격하던 요새에서 항상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을 잡고 심문해도 마왕을 찾을 수 없었죠. 그 후에 우리가 요새를 점령하면 마왕이 떠난 흔적 밖에 없었어요. 그 말은 마왕이 민간인이나 병사로 가장해서 도망쳤다고 생각됩니다."

미야가 외쳤다. "그럼 다음 공격할 때는 모든 사람을 없애버리면..."

"안 돼. 민간인을 함부로 죽일 수 없어."

그 것은 나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일이었다. 민간인을 학살한 전쟁범죄의 실행자였던 나는,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없었다.

제니스는 그런 내 마음을 알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파르노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자 내 마음에서 무언가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제니스의 손을 잡았다. "이건 파르노에게 배운 거야?"

"서방님은 이렇게 하면 흥분이 가라앉는다고 했어요. 정말 그렇네요."

"마왕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방향은 느낄 수 있어. 내일 새벽부터 추격을 재개할 거야."

"하지만 마왕을 찾아도 마왕을 알아 볼 수 없어요."

"더구나 그런 상태라면 마왕 바로 옆에 있어도 마왕인 줄 알 수 없어."

우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자가 의견을 냈다.
"저어... 한가지 더 말씀 드리자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몇가지가 있어요. 첫째로 왜 마왕을 남자로 생각하는 거죠?"

"마왕이 여자일 수는 없어... 아니! 마왕이 여자일 수도 있어."
미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공격하는 곳에서 민간인을 최우선으로 도피시켰는데, 여성들도 많았지요."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두번째로 마왕은 그동안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있었어요. 우리가 찾은 마왕의 흔적이 그 것을 말해주죠. 적어도 3인 이상이었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마력이 강한 사람을 먼저 찾았죠?"

"마왕의 수행원이라면 마력이 강해야 하니까. 혹시 너는 마왕과 동행하는 사람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제니스가 놓칠 리 없잖아요?"

제니스를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야. 하지만 마왕이 그런 무능력자와 여행을 다닐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마왕의 동행이 마법을 사용 못하는 일반인일 수도 있죠. 아니면 마왕이 자신이 마왕인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숨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것도 모르고 마왕과 같이 다니고 있을 수도 있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번째로 우리는 마왕을 마력만으로 추적하는데 다른 추적 방법도 있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지?"

"다음 공격하는 곳의 민간인을 공격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표시를 해 둘 수 있죠. 그리고 다음 추적에 이용할 수 있잖아요?"

우리 모두가 놀라서 엘리자를 바라보았다.

"제니스라면 백명 정도는 마력으로 마킹이 가능할 겁니다. 아니면 우리가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낯이 익은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네 말은 민간인들을 철저히 조사하자는 거야? 지금까지 조사하면서 못 찾았는데?"

제니스가 나섰다.
"우리가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낯이 익거나 전에 본 사람이 있다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어요."

"뭐?"

"상대가 계속해서 겉모습을 바꾼다면 기억하기 힘들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더더욱 찾을 수 있잖아?"

"아닙니다. 변장이라면 오히려 알아보기 쉬워요. 변장한 것은 티가 나거든요. 변장이 아니라면 마법을 사용한 것인데 제가 놓칠 리 없죠. 그렇다면..."

"그렇다면?"

"상대는 육체 자체를 바꾸는 겁니다. 몇 번이나."

"가능해... 자가 힐링을 응용하면..."

미야가 의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 것도 이상해요. 자가 힐링이 가능할 정도의 마법사라면 제니스나 서방님이 못 찾을 리 없어요."

"제니스.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육체를 변형할 방법이 있어?"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또 다시 원점이었다.

.............

다음날 새벽 우리는 추적을 재개했다. 우리 네 명과 함께 마왕을 추적하기 위해 고용한 세 명의 모험가들도 우리를 따라갈 준비를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왕의 마력을 느껴보았다. 여기서 하루이틀 거리에 있었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하루이틀 거리야."

한 모험가가 말했다. "여기서 동남쪽이요? 그 곳은 사람이 갈 수 없는 늪지대입니다. 그 곳에 사는 습족들은 배타적이죠."

"습족?"

"습지에 사는 수족들을 말하죠. 사람들에게 쫓겨난 수족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늪지에서 살기 힘들지만, 몇몇 수족들은 늪지에 살기가 적합하여 그 곳에 살고 있죠. 인간에게 쫓겨 간 수족들이 많아. 인간들을 싫어합니다."

그런 곳이라면 마왕이 숨기에 최적이었다.

"늪지 앞까지는 갈 수 있지만, 안으로 같이 들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늪지 입구에서 헤어지죠."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마왕 추격을 재개했다.

가는 길에 나는 그 모험가와 친해져 대화를 나누었다.
"어르신은 모험가 경험이 많은 것 같군요."

"어린 분들이 고생이 많네요. 나야 여행에 경험이 많지만, 저렇게 예쁜 분들이 이런 거친 곳을 걸어간다는 것이 힘들겠어요."

"어쩔 수 없죠. 신의 명령이니까요."

"신께서는 너무 어려운 의무를 내려주셨네요."

"저도 가끔은 신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둘은 서로 농담을 나누며 걸어갔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왕이 계속 모습을 바꾸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거라면... 마법을 쓰지 않고도 신체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네?"

"어떤 마족이 개발한 방식인데, 신체 내부의 마력 회로를 변형시켜 신체를 바꾸는 것이죠. 그 집안의 비기인데, 마족에서는 유명합니다."

"혹시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아나요?"

"긴 전쟁에서 마족 귀족들이 많이 죽었는데, 그 집안도 전쟁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죠. 아마 전사했을 겁니다."

"어떻게 아시죠?"

"그 집안 자체가 사라졌으니까요. 생존자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기술이 있다면 우리 쪽에서도 큰 돈을 벌 수 있을텐데,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죽었을 겁니다."

이제 단서를 잡은 것 같았다.

"혹시 어느 정도까지 신체 변형이 가능한지 아시나요?"

"소문으로는 키를 머리 길이 만큼 늘리거나 줄일 수 있고, 얼굴 형태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역대 마왕과 그 부인들이 모두 미남미녀인 것이 그 이유라고 하죠."

"신장을 20cm 늘리고 줄이고... 얼굴을 바꾸고... 혹시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 있다고 하나요?"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너무 얼굴을 고쳐서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마왕도 있었죠."

엘리자의 추측이 맞았다.

우리는 마왕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건장한 남자이며 마력이 강하다는 생각. 그리고 신체 변형이 가능할 정도로 큰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왕은 여자의 모습으로 우리의 추적을 따돌린 것이었다. 키를 줄이고 여성의 얼굴을 가지면서, 가슴이 있는 것처럼 옷에 솜을 달면 여자로 보일 것이었다.

나는 저녁 식사 시간에 다시 작전회의를 했다.

내가 들은 마족에 대한 정보에 제니스는 놀랐다. "그럴 리가... 어떻게 하면..."

"내 예상은 이래. 마왕은 얼굴만 보면 여자로 보일 정도이고, 작은 키를 가졌어. 그리고 가슴 부분에 솜이나 어떤 것으로 가슴이 있는 것처럼 꾸민 거야."

미야가 말했다. "그렇다면 여자로 보이겠네요."

"탈출 이후에, 다시 모습을 바꾸겠지, 남자에다 키가 커진 것으로."

"그렇게 자주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다니..."

"하지만 단서가 나왔어. 다시 가까이 간다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어떻게요?"

"먼저 여자로 변장했다면 가슴을 위장한 거야. 도망치는 사람들 중에 섞여 있을 테니, 수상한 가슴이 있으면 만져봐서 확인하면 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력 회로를 고쳐 신체를 변형한 거라면, 무언가 흔적이 남을 거야."

"네?"

"신체 일부가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거야."

"알겠습니다. 마왕의 마력이 사라진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조사하겠습니다."

..............

습지의 입구에서 우리는 모험자들과 헤어졌다. 그동안의 임금을 정산하고, 우리는 늪지 안으로 들어갔다.

늪지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를 경계하던 수족들이 멀리서 우리를 경계했다. 인간의 피를 가진 사람들은 모르지만,  오크나 수족 같은 종족들은 엘리자를 무서워했다.

내가 소환을 갈 때, 데려갈 사람의 1순위는 제니스다. 마법에 능통하고 지혜롭고 요리를 잘하고 상황 판단이 빠르다. 단점은 몸이 느려 근접 전투에 약하고, 밤일이 시원치 않았다.

마야는 본처이고 임신 중이니까 논외로 하고,

미야는 접근전에 강하지만,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없고 멍청하다.

파르노는 마력을 사용하지 못했다.

리나는 접근전과 중거리 공격이 가능하고, 요즈음 제니스에게서 마법을 배워 원거리 공격도 가능해졌고, 밤일에 가장 좋았다. 마왕성에서도 그녀가 항상 참가하는 이유가 경험이 적은 부인들에게 그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미야와 같은 팀을 짜기 어려운 것이 두 사람의 역할이 중복된다.

현정, 티리스, 엘리자는 용이라 원거리 근거리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리하다.
다른 점은 현정은 한점 돌파에 어울리게 고위력 마법인 드레곤슬레이브와 기가슬레이브를 잘 쓰고, 티리스는 여러 공격 마법을 동시에 사용해 분산 유도 공격을 좋아한다.

엘리자에게 경험을 쌓기 위해 데리고 왔는데, 갈수록 엘리자와 미야의 역할이 겹치고 있었다. 엘리자는 접근전을 선호했다. 방어력과 신체강화는 세 사람 중에서 으뜸이었고, 스피드는 미야와 비슷했다. 처음 데리고 올 때, 과거 현정의 경우처럼 제니스의 유도와 엘리자의 브레스를 염두한 전략을 생각했는데, 엘리자는 미야와 함께 접근전에 나섰다.
덕분에 나는 후위 화력지원 마법사의 역할을 하고, 제니스가 치유 마법사로 나서고 있었다.

이 여행의 큰 성과는 미야와 엘리자가 친해진 것이었다.

인족과 마족의 대규모 전투에서, 미야와 엘리자는 제일 먼저 적진에 뛰어들어 마구 헤집고 다녔다. 두 사람에 의해 마족 군대의 반이 전투불능이 되었다.

전투가 끝난 후, 피를 뒤집어 쓴 두 사람은 서로가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 학살의 공주들. 두 사람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잘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도 앞에 미야와 엘리자가 있고, 나와 제니스가 뒤에서 걷고 있었다.

앞의 두 사람은 농담하고 장난치며 좋은 분위기였다.

"엘리자가 미야님과 저렇게 잘 맞다니 놀라워요."

"귀여운 건 내 품에서 뿐인가? 적응 못할까 걱정했는데 저렇게 사이가 좋아졌어."

옆을 보니 제니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걱정 있어?"

"이제는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 저를 돌려 보내주실 거죠?"

제니스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야님이 아이를 가지고, 다른 부인들도 제 자리를 잡아갑니다. 파르노가 있으니 내가 했던 역할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를 보내 줄 수 있는 것은 신의 가호를 받아야 가능해."

"신의 가호요?"

"그래. 내가 갈 수 있어 그 세계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신이 약속하기를 조만간 그 쪽에 다시 갈 일이 있다고 했어. 그래서 기다리라는 거야."

"그 것이 언제죠?"

"나도 몰라. 신의 마음이니까. 하지만 신은 나에게 조만간이라고 했어."

"조만간..."

"우리 세계에서 네가 있었던 시간은 4개월이 안 돼."

"하지만 이렇게..."

나는 제니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지만, 제니스는 내 손을 쳐버리고 걸음을 빨리 해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제니스에게 화가 났다.
"제니스. 거기 서!"

나는 마력을 담아 제니스에게 명령했다. 내가 부인들에게 이 마법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야와 마찬가지로 남편인 나의 명령에 부인들은 복종해야 했다.

제니스는 그 자리에서 멈추어 나를 바라보았다.

"미야, 엘리자. 잠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제니스의 손을 잡아 길 옆의 나무 밑으로 끌고 갔다.

내가 안으려는데 제니스가 거부했다. "싫어요."

"가만히 있어. 남편이 원하고 있어."

이 것도 내가 처음 쓰는 마법이었다. 남편인 내가 원하면, 부인은 생리나 임신 중이 아닌 한 나를 받아주어야 했다. 마법이 사용되자 제니스는 저항을 멈추었지만 싫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마법의 효과로 제니스의 호흡이 빨라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몸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잠시 후, 내가 길로 나오자 미야와 엘리자는 나를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제니스는 울면서 나타났다.

저녁이 되어 식사 준비를 하는데, 텐트가 쳐지자 나는 엘리자와 미야에게 명령했다.
"엘리자, 미야. 너희들이 식사 준비를 해."

나는 제니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니스는 식사 준비가 끝나기까지 나하고 있어."
미야와 엘리자는 우리 둘을 두고 텐트를 나갔다.

제니스는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마음대로 하라는 의사 표시였다.

나는 제니스 옆에 앉았다. "일어나. 지금은 대화를 하려는 거야."

"무슨 대화죠? 서방님과 나 사이에 이 것 이외에 필요한 것이 뭐죠?"

"난 너를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야. 지금이 아니라는 거야."

제니스는 몸을 일으켜 나를 노려보았다.
"그 것이 언제냐는 겁니까? 서방님은 4개월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3년입니다. 그 세월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 줄 아시나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너에게 변명 밖에 안 돼."

"하지만 이렇게 힘들고 긴 세월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겁니까?"

생각해보니 제니스의 말이 맞았다. 그동안 나와 제일 많이 다닌 사람이 제니스였다. 가장 힘든 곳에서 제니스가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편하기 위해 제니스를 데리고 왔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 거라는 것을 생각지 않은 채.

나는 제니스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네가 얼마나 힘든 줄 모르고 있었어. 네가 너무 잘해서, 내게 가장 도움이 되어서 너를 놓지 못했어. 그래서 미안해."

제니스의 얼굴이 풀어졌다.

"이번 일이 끝나면 쉬게 해줄게. 다시는 너를 소환에 데려가지 않겠어.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알아봐 줄게. 그러니 이번만 참아줘."

제니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약속하신 거죠?"

"그래."

나는 제니스를 놔두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제니스는 지쳐있는 것이었다. 그 것을 모르고 그녀를 혹사 시킨 내 잘못이었다. 현정이 고민할 때도, 티리스가 아파할 때도 나는 제니스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외면했었다. 그 때는 현정과 리스의 아픔만 생각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 채.
이번에 제니스를 데려온 것이 잘못이었다. 그녀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서방님~!" 텐트 안에서 제니스의 달달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니스는 텐트 밖으로 자신의 옷을 던졌다. 민지가 자랑하던 것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웃으며 텐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맛있는 냄새가 텐트 안까지 들어오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제니스가 알몸인 상태로 내 옆에 누워서 잠이 들어 있었다.

텐트 앞에서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미야였다.

미야는 입에 손가락을 대고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나에게 빵과 스프를 건내주고 귀속말을 했다. "제니스와 드세요. 우리는 옆 텐트에서 잘게요."

나는 웃으며 빵과 스프를 내려놓고 제니스 옆에 누우니 그녀는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한참을 있다가 제니스가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몸을 일으켜, 스프와 빵을 제니스에게 건넸다.

"흐음... 이 스프. 엘리자도 많이 늘었어. 네가 잘 가르쳤는데?"

"나쁘지 않네요. 나한테 배우며 눈물도 많이 흘렸는데."

"넌 아래 사람에게 가차 없잖아? 엘리자를 잘 가르쳤어. 이 맛. 네가 한 것과 비슷해."

"아직 멀었어요."

제니스는 빵을 떼어 스프에 적셔 먹었다.
"이 빵... 빵은 직접 만드는 것보다 제과점 빵이 더 맛있어요."

"나는 티리스가 만든 빵이 더 맛있던데?"

제니스가 피식 웃었다. "그럼 제가 만든 스프와 티리스의 스프 중에 어떤 것이 더 맛있죠?"

"물론 네가 만든 것."

제니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민지에게 들으니 티리스의 스프를 잔뜩 먹었다고 하네요. 맛이 어땠어요?"

"맛 있었어. 그리고 티리스의 스프에는 야채가 많아."

"야채요?"

"길에 있는 풀을 뜯어 스프에 넣고, 구운 고기에 곁들였어. 그런 걸 잘 알고 있더군."

"농사를 짓던 경험이 도움이 됐네요."

"아무리 그래도 자주 먹던 네 스프가 더 맛있어. 엘리자의 생각도 그래."

"보존식을 때려 넣은 스프가 맛있나요?"

"네 솜씨니까."

제니스는 웃으며 스프와 빵을 먹었다.

사실 모험가로 여행하면 가장 문제가 먹고 자는 것이다. 주머니 마법을 이용해 다양한 물건을 수납하고 다니는데, 현대식 텐트와 잠자리용 매트, 이불을 최우선으로 챙겨 넣었고 유용하게 쓰고 있다.

문제는 식재료였다. 아무리 마법이지만, 창고에서 선도가 떨어지거나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보관 식재료는 거의 말린 고기, 곡식 가루, 치즈, 버터 등의 보존식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현대식 통조림도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맛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중요한 것이 만드는 사람의 실력으로, 제니스가 만들면 같은 보존식을 섞어도 맛이 있었다. 내가 제니스를 자주 데리고 다닌 이유였다.

티리스가 온 이후, 제니스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된 것이 그녀의 스프가 더 맛있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스프는 엘리자가 제니스의 지시대로 만든 스프였다. 그래도 제니스 만큼 맛있지 않았다.

다 먹고 제니스가 날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는 것이었다.

"뭘 묻고 싶은 거지?"

"서방님께서는 저를 돌려보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죠?"

나는 제니스에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쪽 세계에 다시 가야 하는 군요."

"그 전에 내가 용들처럼 세계의 벽을 넘을 수 있다면 너를 돌려보낼 수 있는 거야. 아니어도 방법이 있어."

"그 것이 뭐죠?"

"네가 마력을 버리면 돼. 마력이 없는 몸이라면 용의 힘을 얻어 세계를 이동할 수 있어. 현정이처럼."

"내가 어떻게 마력이 없는 몸이 될 수 있죠?"

"마야라면 가능해. 마야는 네 몸을 어려지게 만들 수 있고 마력이 없는 몸으로 바꿀 수 있어."

"그럼..."

"만약 네가 빨리 가고 싶다면 네 몸을 마법을 쓸 수 없는 몸으로 바꾸고 용의 힘을 얻으면 되는 거야."

"그럼 티리스 때 그렇게 하지 않으신 거죠?"

"솔직히 이 방법은 요즈음에 생각난 거야. 게다가 현정이에게 물어보니 어떻게 세계를 넘는 지 잘 모르겠다고 했어. 나의 마력을 따라 왔을 뿐이라 하니까.
만약 네가 용의 힘을 얻었다 해도 어떻게 네 세계를 찾을 수 있을지 나도 몰라."

"그렇다면 서방님께서 내 세계로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뻐하는 제니스에게 우리와 프랑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하지 못했다. 우선 뒤로 미루었지만, 언제 어떻게 그 일을 말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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