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제니스의 귀향
아랑은 우리가 떠날 때와 비교해 너무나 변해있었다. 좋은 방향으로.
허물어지고 위태롭던 성벽은 더 높고 더 두꺼워져 위압감을 주었다. 성 밖에 해자가 있어 방어에 더 유리해졌고, 성벽 주위에 보조 성벽이 더 있어 접근이 더 어려워 보였다.
성 안에 들어서니, 10년 전 건물들이 그대로 있었지만 사람들의 옷차림이 더욱 화려해지고, 시장의 상품들도 더욱 많고 다양했다. 프랑크의 통치가 아랑에 끼친 영향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강성해진 아랑을 보며 제니스는 착잡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제니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시험적으로 마야와 하던 둘 만의 대화를 시도했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랑은 어떻지?'
'서방님? 지금 서방님이세요?'
'역시 너에게도 가능하네. 이 것은 마야하고만 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렇네요. 본처는 남편과 비밀 대화가 가능하다고 하던데...'
'너도 마야와 동격이 된 거야.'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발전한 아랑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지?'
'프랑크가 정말 좋은 정치를 하는 것 같아요. 프랑크는 좋은 왕입니다.'
'어머니로서의 평가가 아니라 객관적인 평가로?'
제니스는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우리는 곧장 왕궁으로 인도되고, 알현실로 직행했다.
왕궁도 많이 변해있었다. 내가 있을 때의 폐허는 없고, 화려한 정원이 왕궁 가운데 있어 정원 가운데 있는 길로 직진했다.
내가 왕궁의 계단을 오르는데, 양 옆에서 나팔이 울렸다.
내 머리 속에 현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방님을 환영하네요. 여기서 굉장한 사람이었나 보죠?'
'나는 아랑의 구국의 영웅이야. 게다가 떠난지 10년 밖에 안됐어.'
'구국의 영웅의 귀환이라... 정말 환영이 대단하네요.'
나는 현정이 나를 서방님이라 부르며 존댓말 쓰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현정이에게 이렇게 존대 받는 것이 기분 좋다.
우리는 양 옆의 나팔소리와 근위병의 사이로 걸어가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알현실에 들어가니 귀족들이 양 옆에서 나를 맞이하고, 가운데의 높은 자리에 왕과 왕비가 앉아 있었다.
왕은 의자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어서오세요. 아나킨공. 공이 다시 오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전하. 오랜 만입니다. 이렇게 늦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죄송이라니요. 공께서 사명을 마치고 돌아가신 이후, 저는 슬픔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신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프랑크는 내 일행을 살펴보았다. "마야, 미야님이 없다고 하던데 정말이군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바빠서 여기 오기 어렵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벌써 그런 나이네요. 저도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모두 아나킨님 덕분이지요."
"축하드립니다. 전하."
프랑크는 내 일행을 살펴보다 제니스에게서 눈이 멈추고 놀란 듯 손을 떨었다.
"하하. 인사드리지요. 제 일행입니다. 여기서부터, 현정, 로즈, 파르노, 티리스, 엘리자, 린입니다."
"로즈... 라구요?"
프랑크가 바라보자 제니스는 파르노 뒤로 숨었다.
"수줍음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프랑크가 파르노 앞으로 왔다. "로즈라고 했나? 얼굴을 보이라."
제니스는 떨면서 파르노 등 뒤에서 몸을 보이고 프랑크에게 인사를 했다.
"로...로... 로즈입니다. 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니스는 프랑크에게 몸을 굽혀 인사했다.
프랑크는 제니스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평소 목소리와 다른 허스키한 목소리를 듣고.
"이 사람들은 누구인지요?"
"하하... 제 여행에 시중을 드는 시녀들입니다."
"그래요..."
나는 조금 강한 목소리를 냈다. "이 사람들도 에브람님의 사자들입니다.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프랑크는 나를 바라보았다.
"하하...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아나킨님의 여자들에게 눈독 들이겠습니까? 게다가 저기에 루나도 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왕비의 자리에서 루나가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나는 루나를 향해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루나님. 두 명의 왕자님을 생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축 드립니다."
루나도 일어서 나에게로 와 내 손을 잡았다.
"정말 반가워요. 아나킨공. 다시 오시기를 염원했는데. 정말 반가워요."
루나 옆으로 두 소년이 시녀들과 함께 걸어왔다.
나는 그 소년들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반갑습니다. 프랑크 왕자님. 아나킨 스카이워커. 왕자님들께 인사드립니다."
루나가 나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아나킨님. 그렇게 예의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프랑크, 루이. 인사하세요. 아니킨 스카이워커님이십니다."
"아나킨경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랑크 왕자님."
나와 소년 프랑크는 인사를 나누었다. 꽤 영민한 소년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나약하고 귀가 얇아보였다.
프랑크 왕이 모두에게 말했다. "오늘은 아나킨경의 귀국 파티가 있을 겁니다. 모두 모여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프랑크 왕 부부와 면담을 하기로 했고, 나의 일행들은 숙소로 안내되었다.
뒤를 보니 제니스의 모습이 의연해 보였다. 자기 아들과 손자들을 보면서 아무 변화 없이 행동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
내가 프랑크 부부와 함께 간 곳은 옛날 메리와 같이 살던 집이 있던 자리였다. 그 자리에 소박한 건물이 있었다.
"여기에 다시 집을 지으셨군요."
루나가 말했다. "제가 살던 집을 옮겨 왔습니다."
루나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제니스와 메리의 흔적을 지우려는...
우리 세 명은 정원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고, 시종들이 차와 다과를 가져와 놓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여기에 다시 온 것은 마왕이 다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프랑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혈맥을 완전히 끊은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 마왕이 짐의 핏줄이라는 것이 걸립니다."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지요. 저는 마왕을 죽이러 온 겁니다. 그 것이 전하의 혈육일지라도."
프랑크는 나의 시선을 피했지만, 루나는 동의의 시선을 보냈다.
"쟈브로와의 연락은 어떻게 되고 있지요?"
"용의 놀이터가 막힌 이후, 길드와 이웃나라를 통해 연락하고 있지만, 짐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군요."
"올가와 유리님, 마틴 왕자님은?"
"무사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마왕의 모친과 누이니까요. 그리고... 내전으로 짐의 세번째 아이가..."
'내전이 빈발하는 쟈브로에서 왕족이 죽는 경우는 다반사입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아랑의 전력은 어떻게 되지요?"
"기병 2천에 보병 1만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유사시에는 기병 3천에 보병 3만 정도는 동원할 수 있군요. 그 정도면 아랑의 방어는 문제 없을 겁니다."
"문제는 메소티아와 코르티아입니다. 특히 메소티아는..."
"새 왕이 즉위했나요?"
프랑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것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전 왕가의 마지막 혈통이 있는데, 왕가를 복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특히 아랑에게 호되게 당했던 메소티아의 입장에서는.
"그 자... 메소티즈는 아직 우리에게 협조적이지만..."
"메소티아는 전통적으로 강한 보병의 산지였죠. 그들이 재무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비옥한 농토가 있어서. 지금 그 쪽과 코르티아의 전력은 어느 정도인지요?"
"메소티아는 보병 7천에 기병이 몇 명 없고, 코르티아는 기병 5천이라고 합니다."
"아직 그들이 힘을 모아도 아랑을 공격할 정도는 아니군요."
"하지만 우리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같습니다. 이러면 거의 독립국이나 다름없지요."
프랑크의 표정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메소티아의 신왕, 메소티즈는 어떤 자이지요?"
"그 때 보신대로 기개도 지혜도 없는 자입니다만, 메소티아 국민들의 신임을 얻고 있습니다."
"왕가가 검소하면 국민의 지지가 몰리는 법이지요."
프랑크는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자... 지혜가 없다고 하시지만, 내가 본 그 자는 살아남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왕가의 피를 가지고 난세를 살아남은 것으로 그의 능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게다가 국민의 신임을 얻는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프랑크가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그 자를 너무 얕보았네요."
"코르티즈님은?"
"일단 우리에게 우호적입니다. 원래 코르티아는 아랑에 우호적이었으니까요."
"그건 동쪽에서 오는 소금의 통행로가 아랑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말도 맞습니다. 메리가 없는 지금, 그 자의 속도 알 수 없지요."
아랑의 현실. 살얼음판의 평화가 유지되는 팽팽한 균형의 자리였다. 명목상의 맹주라도 아랑 단독으로는 두 나라를 정벌할 능력도 내정에 간섭할 능력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라를 복구하고 이 만큼 부흥 시킨 것은 프랑크의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쟈브로의 정보를 모으는 겁니다. 오늘 파티가 있다고 하셨는데, 길드의 사람들도 참가하나요?"
"아마 유리도 참석할 겁니다."
"유리? 여기서 나와 함께 했던 그 유리 말인가요?"
"지금 길드의 아랑 지부 부회장입니다."
프랑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늘 오신 일행 중에..."
나는 프랑크를 노려보았다. "로즈 말씀입니까? 저의 밤상대입니다."
프랑크와 루나는 놀랐다.
"그녀는 내 유모의 딸로 저와 남매처럼 자란 사이입니다. 초경을 시작하고부터 저의 밤시중을 들고 있지요."
"그럼..."
"저도 프랑크님에게 부탁드립니다. 저의 여자들에게 눈독들이지 말아주십시오. 특히 로즈는 다른 남자들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불쾌합니다."
프랑크가 웃었다. "걱정 마세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나는 얼굴을 풀고 주머니에서 나무 조각상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이건 제니스님이 부탁하신 겁니다."
제니스라는 말에 프랑크와 루나가 놀랐다.
"어... 어머님이 살아 계신가요?"
"저의 고향에 있는 에브람님의 신전에서 살고 계십니다. 제가 아랑에 간다고 하니, 이 것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탁자에 올려놓은 나무 조각상은 어린 소년의 것이었다.
프랑크는 떨리는 손으로 조각상을 잡았다. "이 것은... 나... 어머니가... 엄마가..."
그는 눈물을 흘리며 조각상을 잡고 얼굴에 비벼대었다.
"이 것을 어머니가 손으로... 어머니가..."
바라보는 루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
저녁이 되어 왕궁에서 나의 환영파티가 열렸다. 나의 일행 6명은 모두 드레스를 입고 나왔는데, 제니스는 일부러 화사한 노란 드레스를 입었다.
밝은 분위기에 활짝 웃는 미소로 전의 제니스의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목소리도 바뀌어 있어 만나는 사람들은 처음에 놀랐지만, 이 후 의심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나는 아랑의 귀족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만입니다. 아나킨님. 10년 만이네요."
나와 악수하고 인사하는데, 귀족들이 전과 많이 바뀌어 있었다. 제니스를 섬기던 귀족들이 몰락해 귀족의 인적 교체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신흥 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행동에 약간의 실수와 어색함이 있었다.
몇몇 고위 귀족들이 그런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고, 제니스도 불쾌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제니스에게 둘 만의 대화를 했다.
'어때? 널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의심하며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들은 있지만, 확신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래도 위험하지 않겠어?'
'그럼 확신을 줘야지요.'
제니스는 회장 가운데로 나섰다.
"지금 주인님께서 저에게 파티를 빛낼 춤을 추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니스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스는 악사들을 향해 말했다. "코르티아의 전사들의 노래를 부탁드립니다."
코르티아 전사들의 노래. 상당히 밝고 템포가 빠른 곡이었다.
사람들이 물러나 연회장 중간에 큰 공간이 생겼고, 제니스가 가운데 서자 음악이 시작되었다.
제니스는 가운데에서 활기찬 춤을 추었다. 모두가 감탄할 춤 실력으로 참석한 모두의 시선을 빼앗았다.
연주가 끝나자, 제니스는 숨이 찬 모습으로 내 품에 안겼다.
'지금 키스해 주세요.'
나는 웃으며 제니스의 허리를 안고 그 입술에 키스를 했다.
입을 떼고 나는 제니스를 안은 채 모두를 향해 말했다.
"모두 제 아내의 춤에 만족하셨는지요."
주위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이후 아무도 그녀가 제니스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는 제니스는 근엄하고, 냉철하며, 평소에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여왕이었다.
지금 내 품 안의 로즈는 노란 옷을 입고 격렬한 춤을 추는 16세 소녀였다. 더욱이 사람들 앞에서 키스하며, 자신이 임자 있는 사람이라고 알렸다. 그들이 아는 제니스는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멀리서 프랑크도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도 로즈가 제니스라는 의심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순간 제니스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아들과 눈이 마주치니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제니스를 안고 연회장 가운데로 나섰다.
악사들을 보며, "둘이 같이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을 부탁해요."
악사들의 음악이 시작되자, 나는 로즈를 안고 춤을 추었다. 로즈는 제니스란 것을 잊고 나와 맞추었다,
'잘 추는데요? 어디서 춤을 배웠지요?'
'너와 함께라서 더 잘 출 수 있는 거야. 네가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물론 내 서방님과 함께하니까요.'
'그럼 오늘 밤에 기대해도 되는 거지?'
'서방님은 6명 모두를 원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네가 처음이야.'
'다음이 현정인가요?'
나는 춤을 추며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했다. '너, 마야 대신 본처가 되고 싶어?'
제니스의 몸이 움찔했다.
'원한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
'정말 이 세상에 남고 싶은지 묻고 있는 거야.'
'그거야 서방님이 하시기에 달렸죠.'
'장담하지. 나는 마야가 최우선이지만, 마야가 본처로 너무 많은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 할 수 있다면 본처를 몇 명 더 만들 거야.'
'마야 말고, 나와 현정인가요?'
제니스는 내 몸에서 떨어져 몇 바퀴 돌고 내 품에 안겼다.
'좋아요.'
'대신 본처 중의 본처는 마야이니까. 절대 마야와 대적해서는 안 돼.'
'그러죠. 대신 내 밑에 리나와 페트리아를 부탁해요. 마야와 동격이라면 나도 2명이 밑에 있어야죠.'
'현정이는 현재 4명, 앞으로 6명이 될 거야.'
'마왕은 어쩔 수 없죠.'
'좋아.'
우리가 춤을 끝내자 주위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이걸로 로즈는 내 여자다라는 것이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