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마틴 왕자
다음날 길을 가다가 현정이 우리를 세웠다.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천룡이 다가온 것이었다.
천룡은 우리 위를 선회하다 내 앞에 내려왔다.
"오랜 만이군. 이 땅을 통과하려 왔는가?"
"그렇다. 선물을 가져왔다."
내가 눈짓을 하니, 고용인 하나가 소들을 끌고 왔다.
"오오... 소고기구나. 10년 간 먹지 못했는데, 고맙구나."
"그리고 한가지 더 부탁, 아니 명령이 있다."
"인간 주제에 나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냐?"
"당연하다 너는 나에게 졌다. 그러니 넌 나를 따라야 한다."
"싫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라이트세이버를 뽑았다. "그럼 다시 너를 제압해야지."
"하하.. 좋다. 내가 어떻게 해야지?"
"내 부인이 되라."
"네 부인이 되라니... 어떻게 말이냐."
"내가 지정하는 여인의 몸과 한 몸이 되어 나를 섬겨라."
"그런 방법이 있었나?"
현정이 앞으로 나섰다. "나를 봐라 나는 이 사람의 부인으로 너 같이 용의 화신들의 본처이다."
현정이 마력을 내뿜었다.
"그렇군. 너는 인간이지만 용과 합쳐진. 그리고 저 남자의 부인이라고 했나?"
"그렇다. 나는 저 사람에게 졌고, 저 사람의 원대로 그의 부인이 되었다."
"좋다. 나를 이겼으니, 그 뜻에 따르겠다. 그럼 누구의 몸에 들어가면 되느냐?"
"아직은 없다. 내가 데리고 오겠다."
"좋다. 기다리마."
용은 소 한 마리를 입에 물고 하늘로 올라갔다. 우리는 9마리의 소를 놔두고 쟈브로로 향했다.
용의 놀이터를 지나 마족에 땅에 이르자 버려진 요새가 있었다. 과거 유먼과 윌이 있던 요새였다. 지금은 버려져 썩은 나무와 풀들이 무성한 폐허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이 곳이 버려져 있다니."
유리가 옆에 왔다. "용의 놀이터를 사용하지 않으니, 이 곳도 필요가 없겠지요."
"앞으로 이 곳이 크게 부흥할 거야. 용의 놀이터를 지나려면 여기를 통과해야 할 테니."
주변을 둘러보니 성의 위치를 정한 유먼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요새 가운데를 통과했고, 우물도 있어 물이 부족하지 않았다.
양 옆으로 큰 강은 아니어도 꽤 깊고 넓은 강이 있었다. 두 강을 연결하면 해자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새가 있는 곳은 주변보다 높은 곳이었다. 요새 맨 위에서 보니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건물 안을 뒤져보니 찟어진 아랑의 깃발이 있어 제니스에게 보여줬지만, 제니스는 아무 감정이 없는 듯 했다.
우리가 요새 안에서 쉬려고 하는데, 오늘은 현정과 린의 날이었다.
린이 현정에게 붉은 마석이 달린 목걸이를 내밀었다.
"이건 뭐지?"
"서방님이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 것을 달고 있으면, 마야님께서 현정님이 변하신 것을 모를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지?"
"마력을 속이는 거죠. 사람마다 독특한 마력을 내뿜는데, 부인들에게서 공통으로 나오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 목걸이는 그런 마력이 나오게 하는 거죠."
"이걸로 마야를 속일 수 있어?"
"그런데 마야님과 너무 가까이 가면 들킬 겁니다."
"어느 정도?"
"손이 닿을 거리입니다. 손이 닿으면 마력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당장은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마야는 임신 중이고 아이를 낳는 일을 생각하면 다른 부인들과의 접촉을 3개월 정도는 미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이후, 마야가 눈치 챈 이후였다. 그 때를 대비해야 했다.
"아직 시작이라 1개 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10개가 더 필요하군."
현정이 물었다. "만약 마야씨가 눈치 채면 어떻게 하지?"
"나를 원망하겠지. 하지만 내가 마야를 사랑해도 다른 부인들을 희생시킬 수 없어."
"그럼..."
"너희들이 모두 나를 떠나가도 나는 마야를 버리지 않아. 만약 마야가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나는 마야를 보내줄 거야."
"마왕성도?"
"마왕성은 마야의 것이었어. 그런데 마야는 나를 3년 간 나를 떠나지 못할 거야."
"10년이 아니고 3년?"
"솔직히 그 정도면 마왕성의 마력을 채울 수 있어. 마야가 가겠다면, 모든 마력을 동원해서라도 마야를 보내줄 거야. 마왕성과 함께."
"그럼 나... 우리는?"
"부인 계약을 파기하고 자유를 줄 거야. 고향에 가고 싶은 사람은 돌아가고, 떠나서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고."
"만약 네 곁에 남겠다면?"
"그 때는 그 때 생각해야지."
린이 말했다. "3년... 그럼 저의 소원은?"
"말했잖아?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우선 마야의 마법을 해제시키는 것이 중요해. 그 다음은... 원하는 대로 해 주겠어."
"하지만 서방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하려면 최소 5년은 필요합니다."
"솔직히 말해줘. 너는 마법진 새기는 것이 힘들어서 그러지?"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1년이면 가능할 거야."
"어떻게..."
"돌아가서 알려줄게. 그러니 여기서는 여기 일만 신경 쓰고, 급한 것인 이 목걸이야."
............
우리는 나와 유리, 나머지 사람들로 나뉘어, 나와 유리는 쟈브로에서 올가를 만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요새에서 올가의 답변을 기다리기로 했다. 대량의 옷감이 시장에 풀리는 일에 올가의 허락을 먼저 얻으려는 이유였다.
이틀 후, 우리는 쟈브로에 도착했다. 성문에 도착해, 유리와 함께 길드로 직행했고, 3일 후 올가와 면담을 약속 받았다.
올가와의 만남은 궁 안의 응접실에서 이루어졌고, 그 자리에 유리가 동행했다.
나는 올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오랜만입니다. 올가님."
"오랜만이네요. 스카이워커 공작님."
"처음 뵙겠습니다. 유리입니다."
올가는 유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길드의 계집이 있으니 불쾌하군요."
"이번 일은 길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유리가 동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옷감을 가지고 오셨나요?"
"그렇습니다."
올가의 얼굴이 굳어졌다. "얼마나 가지고 오셨죠?"
"100 수레입니다."
"그 정도 양이라면... 대단한 양이네요."
"그 유통을 길드에서 할 예정입니다."
올가는 유리를 노려보았다. "더 이상 길드가 우리 백성들을 농락하게 놔둘 수 없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길드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래서 저는 기존 길드와 독립된 상인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려고 합니다."
"독립된 상인 조직, 또 다른 길드 말인가요?"
"올가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조직이죠."
올가의 눈이 밝아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운영을 여기 유리에게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길드의 손길을 없애기 위해 길드의 계집을 믿어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런 자신감을 보니, 용의 사냥터를 다시 여신 건가요?"
"물론이죠."
"그럼 내 아들은 어떻게 되죠?"
"유리. 자리를 피해줘."
나는 유리에게 자리를 비켜주자, 올가를 노려보았다. "정말 아드님이십니까?"
올가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지의 마력을 받아도, 그 애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애는... 지금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는 남자라며 정신병자라고 알려져 있죠."
"그래서 주변에서 올가님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헛소문도 들리는 겁니다."
"아니킨경. 저는 어떻게 해야죠? 저는 유리도 마틴도 지키고 싶어요. 하지만..."
"그럼 묻겠습니다. 올가님이 소중한 것은 무엇이죠? 나라인가요, 자녀분들인가요?"
"왜 그걸 물으시죠?"
"올가님이 나라를 포기하신다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왕자, 아니 둘째 공주님이 완전히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어요. 그러면 마왕의 혈맥이."
"저는 마왕의 혈맥을 끊으려 왔습니다. 만약 올가님께서 고집을 부리시면 왕자님을 제 손으로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은 여성이시죠? 그럼 여성으로 사셔도 되는 겁니다. 아닙니까?"
"그 아이가 남자라면 마왕이 될 수 있어요."
"저는 마왕의 혈족, 마왕의 힘을 모두 없애려고 여기에 온 겁니다."
"어떻게..."
"제가 어떻게 둘째 공주님의 문제를 알았는지 궁금하시지요? 그건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네?"
"저는 몇 번이고 마왕을 죽이러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중 2명의 마왕은 남성이면서 여성이거나 반대, 혹은 둘 다 였죠. 지금 둘째 공주님처럼."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되었죠?"
"둘 다 저의 부인이 되었죠. 여자가 되어."
"그럼 마틴도..."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것은 마왕의 힘을 가진 혈족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였습니다. 마왕의 힘은 아들과 아들로 이어지는 동안 힘이 약해지고, 그 혈육들에게 기형의 문제를 만듭니다. 마왕의 힘이 떨어진 곳에서 그 후손들은 큰 고통을 겪어야 하죠.
제가 부인으로 삼은 2명도 같은 경우였습니다. 한명은 아직도 자신이 남자라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합니다. 다른 한명은 완전한 여자가 되었다고 기뻐하고 있죠.
그러니 올가님은 어떻게 하실 거죠?"
올가는 잠시 고민했다. "그럼 당신이 어떻게 완전한 남자 혹은 여자로 만든다는 거죠?"
"그래서 전문가를 데리고 왔습니다."
"전문가?"
"옛날 마왕 후보들을 담당했던 의사였습니다. 지금 성 밖에서 옷감들과 함께 있습니다."
올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좋아요. 당신들과 옷감의 성 안 진입을 허가하죠."
"감사합니다."
"하루 빨리 그 전문가라는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
올가가 발행한 허가서를 가지고, 유리는 성 밖으로 나갔다.
5일 후, 수레 100대가 쟈브로에 도착했다. 오랜 만에 오는 대량의 옷감들에 성 안이 떠들썩해졌다.
나는 제니스, 린과 함께 올가를 찾아갔다.
우리는 성 내 깊은 곳으로 안내 되었고, 올가는 12세 가까이 된 소년과 함께 나타났다.
"이 아이인가요? 마틴 왕자님이?"
올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린에게 눈짓을 했다.
제니스는 마틴을 스캔 마법으로 보더니 놀랐다. "어떻게 이런..."
나는 제니스의 손을 잡았다. "마왕가의 저주야. 페트리아와 같은 경우야."
마왕가의 저주, 그 것은 마왕가에서 태어나는 남성들이 남성과 여성의 중성인 기형으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페트리아의 경우를 보고, 나는 그 마왕 가문의 독특한 특성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미야가 같은 경우라는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혹시 마력의 영향 때문에 신체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여기로 오며 올가에 대한 소문과 정보를 들었다. 올가가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하지만, 쟈브로는 독립국이니 반란이란 단어 자체가 맞지 않았다.
그런데 들을수록 올가와 그 아들에 대한 소문과 사실이 맞지 않았다. 특히 12살의 어린애가 무슨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일까?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보통 왕자나 공주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괴이한 소문이 돌기 마련이었다. 특히 마틴에 대한 헛소문이 많았다. 내가 마틴의 이상을 예상한 이유였다.
그런 생각으로 올가를 떠보니, 맞았다. 마틴은 마왕가에서 나타나는 흔한 기형아 중의 하나였다. 이런 일에 전문가는 린이었다.
린이 말했다. "여기 이 분의 옷을 벗겨야 합니다."
나는 방을 나갔다.
잠시 후, 제니스가 울면서 방을 뛰쳐나왔다.
나는 제니스를 따라갔는데, 제니스는 나무를 잡고 통곡을 했다.
"어떻게.. 어떻게... 프랑크의 아이가 어떻게..."
내가 안아주자 내 품에서 더 크게 울어댔다.
우리에게 올가가 다가왔다. "제니스님? 제니스님이신 가요?"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제니스는 올가를 바라보았다.
"맞아요. 제니스님이죠? 한번 뵌 적이 있죠? 아랑의 성에서. 어떻게 제니스님이 이렇게..."
올가는 다가와 제니스의 손을 잡았다. "제니스님이죠? 정말 제니스님이..."
제니스는 울면서 올가를 안았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프랑크 때문에. 이렇게 아이들이... 미안해요. 미안해요."
올가도 제니스를 안고 울었다.
나는 둘을 놔두고 린과 마틴을 찾아갔다.
린도 착잡한 얼굴로 마틴의 옷을 입혀주고 있었다.
나는 마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틴님. 아나킨 스카이워커. 인사드립니다."
"귀하께서 그 아나킨공이시네요. 귀하의 명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마틴은 옷을 입으며 몸이 불편한 듯 팔을 돌리며 짜증을 냈다.
"옷이 몸에 맞지 않으신가요?"
"누님의 옷을 입으면 좋지만, 이런 옷은 불편합니다."
린이 나에게 눈빛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