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마야의 이야기(2)
마트리스는 즉시 귀족들과 신하들을 모았다.
알현실에 모인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들은 아직 마왕이 바뀐 것을 모르고 있었다.
마트리스는 마왕의 옷을 입고 마왕의 칼을 허리에 차고 와서, 마왕의 옥좌에 앉았다.
"모두 새 마왕에게 예를 표하라!" 호위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귀족이 외쳤다. "16대 마왕은 세쓰님이십니다. 그 분이 어떻게 되셨는지요?"
마트리스는 마왕의 칼을 들었다. "이 것이 마왕의 징표다. 내가 마왕이다."
신하들이 웅성거렸다.
"공주님. 어찌 여인으로 마왕이라 하시는지요?"
"이 마왕의 징표가 보이지 않느냐? 내가 바로 마왕이다."
"그럼 세쓰님은 어떻게 되셨는지요?"
"그는 진짜 마왕이 아니었다. 진짜 마왕인 나에게 나라를 맡기었다."
"그 것을 어떻게 믿지요?"
마트리스가 마왕의 칼을 뽑아들고 마력을 주입했다. 마왕의 위압이 내부에 흘러 넘쳤다.
"바로 내가 마왕이다. 모두 마왕 앞에 무릎을 꿇어라!"
신하들과 귀족들이 위압에 눌려 땅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모두 잘 들어라. 오늘부터 귀족들의 모든 재산과 사병들을 국가로 귀속한다."
귀족들이 땅에 머리를 댄 상태에서 아무 말 못했다.
"앞으로 너희들도 마족의 군대로 편성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워라. 도망치는 놈은 내가 즉시 목을 벨 것이다."
마트리스가 눈짓을 하자. 병사들이 유트라를 끌고 나왔다.
"네 이년! 네 년이 감히 그 자리에 앉다니, 목숨이 두렵지 않느냐?"
"너야 말로 마왕 앞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네 목은 열 개가 넘느냐?"
마왕의 위압을 느끼고 유트라는 덜덜 떨었다.
"나를 마왕이라고 인정하면 살려주겠다."
"웃기지 마라. 나에게 마왕은 내 남편이신 세쓰 뿐이다. 나는 그의 본처이자 왕비다. 나는 왕비로서 죽겠다."
그녀는 유트라 앞에 마왕의 칼을 뽑아 던졌다.
"네가 마왕의 딸이라면, 마왕의 칼로 죽어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네가 왕비임을 증명하라."
유트라는 망설임 없이 칼을 들고 자기의 배를 찔렀고, 옆에 있던 병사가 그녀의 목을 찔러 큰 고통 없이 죽게 했다.
마트리스는 유트라의 몸에서 칼을 빼내고, 피가 묻은 칼을 공중으로 들었다.
"잘 들으라! 마왕의 칼이 나에게 있다. 나는 마왕이다. 앞으로 나를 따르라!"
모두 마왕의 위압에 아무 말 못했다.
--------------
우선 인족과의 전투가 우선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땅굴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수도의 안전 없이 어떠한 전략도 있을 수 없었다. 우선 인족들을 몰아내야 했다.
마트리스는 귀족들의 사병들과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조직하고 공격에 나섰다.
갑작스럽게 공세로 나온 마족들에게 인족들은 혼란 속에 후퇴했다. 마트리스가 본 인족들의 진영에서는 마족의 왕도로 통하는 땅굴이 발견되었다.
우선 왕도의 안전을 위해, 전선을 뒤로 물려야 했다. 마트리스는 쉴새 없이 공격해, 인족들의 군대를 전략 요충지 밖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다. 왕도에서 있는 귀족들이 그녀와 군대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귀족들은 재산과 사병들을 빼앗겨 불만이 많았다. 그들을 이끌기에는 마트리스는 너무 정통성이 약했다.
마트리스는 어쩔 수 없이 왕도로 후퇴했다.
겨울이 되어 한시름 놓았지만, 언제 다시 인족의 군대가 공격해 올지 몰랐다. 안에서는 귀족들, 밖에서는 인족들이 마트리스를 조여 오고 있었다.
마트리스는 즉시 마왕성으로 향했다. 세쓰는 마왕성 안에서 유폐되어 있었다.
마왕성. 역대 마왕의 통치의 수단이자 정당성이었다. 마왕국 왕도 뒤 하늘에 떠있는 마왕성은 그 크기와 위엄과 능력이 엄청났다.
마왕의 명령에 마물 군단이 나타나고, 공중에서 지상으로 공격이 가능했다.
인족 군대가 마왕성의 공격 범위 내로 진격할 수 없고, 왕도가 안전했던 이유는 마왕성이 왕도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마왕은 마왕성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고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왕성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이 마트리스 아버지 때가 마지막이었다. 세쓰는 왕성을 조종하거나 그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세쓰의 정통성에 물음표가 붙었던 이유였다.
지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6대 마왕의 인정을 받아 선대 마왕에게서 마왕의 징표를 받은 자만이 마왕성에 들어 갈 수 있고, 마왕성을 조종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마트리스가 대상자였다.
마왕성이 마트리스를 마왕으로 인정하는 것과 국민들이 그녀를 왕으로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직 국민들에게 왕은 세쓰였다.
지금 마트리스는 세쓰의 힘이 필요했다. 국민들을 하나로 묶을 힘이.
세쓰는 마물들의 감시를 받으며, 꼭대기 방에 유폐되었다.
그는 성 맨 위 전망대에서 왕도를 내려 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수염이 덥수룩하고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진 채 산발로 그의 지금 생활을 알려주었다.
마트리스가 다가가자, 세쓰는 웃었다. "여어! 마왕님. 이 천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지요?"
"세쓰...."
"이렇게 하늘에서 왕도를 내려보니, 마왕님의 능력을 실감하겠네요. 한달 전만해도 저기에 있던 인족들을 쫓아내셨으니까요."
"세쓰... 도와줘요."
"당신 같은 마왕이 미천한 나의 도움이 필요하신 가요?"
"제발 부탁이에요. 도와줘요."
세쓰는 고개를 돌렸다. "마왕은 너야. 6대 마왕님이 인정하신 마왕이 너라고."
"그러니 이렇게 부탁하잖아요? 도와주세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세쓰는 마트리스를 보지도 않았다. "나는 널 도울 힘이 없어."
마트리스는 세쓰 앞에서 옷을 벗었다. 몸에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채 세쓰의 품에 안겼다.
"나를 안아요. 그리고 나를 다시 당신의 아내로 만들어요."
침대에 갔지만, 세쓰는 마트리아를 안지 못하고 절망했다.
"이게 나야. 모두들 나를 남자로 알고 있지만, 나는 남자가 아니었어. 나는..."
세쓰는 머리를 부여잡고 울었다.
"내가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어. 그 때 내가 유트라에게 졌더라면... 나는 지금 유트라의 부인이 되어..."
마트리스는 세쓰의 손을 잡았다. "아니에요.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어요. 그래서 모두가 인정하는 마왕이 된 거에요."
"나 같이 남자 구실을 못하는 놈이 마왕이 되어... 마왕의 대가 나로 끝나게 만들었어. 어머니의 욕심이 아니었다면..."
마왕가의 저주. 몇 대 전부터 마왕의 후손 중에 제대로 된 남자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남아로 태어나는 아이가 적고도, 대부분 여성의 특징을 가진 기형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마왕가에서는 남자의 특징을 가진 아이들을 우선 남자로 키웠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강한 이가 마왕이 되고, 나머지는 여자로 만들어 마왕의 부인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런 남자 하나가 제대로 남자로서 아이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세쓰는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는 여러 명의 후궁들이 있었지만, 하나도 임신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세쓰는 제대로 그녀들을 안을 수 없었다.
그녀의 후궁들 중에 반 정도는 처녀인 채로 남아있었다. 다행히 마트리아는 그와 몇 번을 성공했지만, 임신에 이르지 못했다. 세쓰는 생산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당신은 형제들 중에 가장 강했어요. 그래서 그들을 왕비로 맞이했잖아요? 유트라도 당신을 마왕으로 인정했어요. 저의 동복 오빠가 말이죠."
"유트라가 왜 그 때 너를 공격하지 않았는줄 알아? 형, 아니 누나도 원했던 거야. 나처럼 무능한 놈이 아닌 네가 마왕이 되어 나라를 통치하기를 바라며."
"그래도 당신은 지금도 마왕이에요. 온 나라와 국민들이 인정하는."
마트리스는 세쓰의 손을 잡았다.
"나를 안아주지 않아도 좋아요. 다만 내 남편이라고 해줘요. 국민들 앞에 나서서 나와 함께 인족들과 싸워줘요. 부탁이에요."
"네가 보다시피 나는 아무 도움이 못돼."
"아니에요. 당신은 국민들의 인정받는 마왕이니, 당신이 나서주면 모든 국민들이 따를 거예요. 귀족들도."
마트리스의 눈물겨운 호소에 세쓰는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세쓰는 마트리스의 손을 잡고 알현실에 나타났다. 마왕의 왕좌에 세쓰가 앉고, 마트리스가 옆에 앉았다.
"모두 들으라. 16대 마왕 세쓰와 마트리스는 너희에게 명령한다."
알현실 안의 신하들과 귀족들이 무릎을 꿇었다.
"나 세쓰와 나의 아내 마트리스는 이제 우리 나라를 공격한 저 무도한 인족 무리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기로 하였다. 모두 우리를 따르라!"
그 동안 마트리스의 성별을 문제 삼아 정통성에 시비를 걸던 귀족들이 동요했다.
"너희들은 눈과 귀가 없느냐? 더러운 인족들이 우리의 땅을 더럽히고 우리의 백성들을 괴롭힐 때,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세쓰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인족과의 전쟁에 내가 직접 선봉에 서겠다. 여기 있는 모두는 나를 따라 전장 맨 앞에서 싸워야 할 것이다. 뒤로 도망치는 놈은 모두 내 손으로 베겠다."
귀족들은 모두 세쓰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정당한 마왕이 세쓰이며, 마트리스는 마왕의 대행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쓰가 직접 나서자, 모두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봄이 오자, 인족의 연합군이 다시 마족의 왕도를 향해 진격해 왔다.
세쓰는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선봉에 섰다. 세쓰의 근접전 능력은 인족과 마족 통틀어 최고였다. 그가 나서서 인족들의 군대를 공격하자, 인족들의 군대가 패퇴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마트리스가 이끄는 마법 부대가 지원하기 시작했고, 세쓰의 중앙돌파로 인족의 군대가 양분되었다.
그러자, 마족의 군대는 한쪽을 도망치도록 내버려두고, 모든 전력을 다른 쪽에 집중해 인족 군대의 반을 전멸시켰다.
그 이후는 마족의 일방적인 진격이었다. 인족의 군대는 마족의 영역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고, 겨울이 올 때 즈음에 그들은 빼앗긴 영토를 거의 수복했다.
겨울이 오자, 양 쪽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 때 마족의 내부에서 휴전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한 그들은 더 이상의 확전을 원하지 않았다.
.................
그런데 큰 변수가 일어났다. 과거 마트리스가 있던 나라의 남은 왕족이 마트리스를 찾아왔다. 그는 처음 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었던 왕족의 아들이었다.
그의 요구로 마족의 군대는 다시 그 나라를 점령했다.
마트리스는 다시 방문한 옛 왕궁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 나라의 미묘한 점은 마족과 인족의 긴 경계선에서 돌출 부위에 해당했다. 그 지역은 마족에게도 인족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교통의 요지였다. 마족들에게는 인족의 영역을 공격할 교두보가 확보된 셈이고, 인족들에게는 마족 영역을 공격할 주요 공격로를 잃는 것이었다.
인족연합군들은 속히 군사를 모아 탈환을 준비했다. 마트리스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마트리스는 큰 결정을 내렸다. 확전이었다.
그 중요한 이유에는 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전쟁을 치루며 중요한 재원확보 수단은 약탈이었다. 전투에 패배한 인족들의 갑옷과 무기들은 마족에게 큰 부를 가져왔다. 더욱이 인족 군대에게서 뺏은 군량이 마족 국민들에게는 1년간의 중요한 먹을거리가 되었다.
인족의 나라를 점령하자, 인족의 중간 보급 기지를 점령한 마트리스에게 엄청난 무기와 식량이 손에 들어왔다.
그 것들을 왕도로 옮기자, 몇 년 간의 포위로 기아 직전인 왕도 주민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나눠줄 수 있었다.
그리고 확보한 무기와 포로 노예들을 귀족들에게 나누어 주며, 귀족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인족 국가들의 풍요를 목격한 마족들 내부의 생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쓰와 마트리스도 풍요로운 인족을 공격해 부족한 재원을 채우겠다고 생각했다.
겨울 동안 왕도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대로 휴전을 원하는 비둘기파는 귀족들이었고, 확전을 원하는 매파는 마트리스와 군부였다.
2개월 간의 논쟁 끝에 세쓰는 확전을 결정했다.
4월이 되어 인족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마트리스는 내선 전략으로 그들을 유인해 인족 대군을 산맥 사이에 고립시켜 항복을 받아냈다.
자신의 군사들의 배가 넘는 노예들을 확보하자, 귀족들도 확전에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