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마야의 이야기(3)
"이후의 일들은 서방님이 잘 아실 겁니다. 우리는 인족들의 나라들을 멸망시키고 남진했지만, 아리안 평원에서 일격을 받고 철수했습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너는 그 전투에서 죽지 않았던 거야?"
"저는 직전에 워프마법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병사의 태반을 잃고, 그 인족 나라에서도 후퇴해서 옛날 전선으로 돌아왔죠. 인족들도 우리를 공격할 여유가 없어서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그럼 네가 나에게 온 것이..."
"아리안 전투 이후 20년 후입니다."
"그럼 마야는 지금..."
"나이요? 올해 63세입니다. 마족은 인족보다 오래 살아서 수명이 길지요."
나는 미야를 바라보았다.
"저는 올해 67세입니다."
나는 미야에게 물었다. "지금 마야의 말을 들어보면, 너는 마야의 남편이었던 거야?"
미야가 주먹을 쥐고 답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미야의 부인을 빼앗은 셈이었다.
"서방님께서 죄책감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될 일이었으니까요."
미야가 그 이후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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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안 전투로 마족의 11만 군사 중에 6만이 사라졌다. 그래도 마족의 군대는 아직 2만 이상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전쟁은 주도권 싸움. 주도권을 빼앗긴 마족들은 후퇴를 거듭했다.
겨울이 되자, 양측은 10년 전 전선으로 복귀했다.
겨울 동안 인족과 마족 사이의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둘 다 싸우기 싫은 눈치라, 시작 한달 후 양측은 협정에 서명했다.
10년 전 국경을 유지하고, 처음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나라는 마족 측에서 내세운 왕을 인정했다.
문제는 마족에게 더 컸다. 아리안 전투 이후 마왕성이 사라졌다. 마왕 통치의 정통성과 능력을 잃어버린 세쓰와 마트리스에게 내부에서 귀족들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확전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두 사람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마왕성을 찾기 위해 세쓰와 마트리스는 세계 곳곳을 뒤지고 다녔지만, 마왕성은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마왕성과 마왕을 이어주던 칼도 아리안에서 잃어버렸다.
마트리스는 돌아온 이후, 실의에 빠져 정치에 손을 떼고 신전에 처박혔다. 6대 마왕이 내려준 능력이 아직 그녀에게 있었지만, 그녀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휴전 후 10년이 지나자, 세쓰가 마트리스를 찾아갔다.
그녀는 자신의 처소에 만든 신전 안에서 신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신상은 마족의 것이 아니었다. 인족의 것이었다.
"아직도 이 신에게 기도하나?"
"우리 마족들의 신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들어줄 신은 이 분뿐이죠."
세쓰는 무겁게 말했다. "나는 내일 아리안으로 떠난다. 검을 찾으러."
"검을 찾는다 해도 소용없어요. 마왕성이 없으니."
"그래도 검을 찾으면 마왕성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지 몰라."
"그럼 부탁해요."
세쓰는 한숨을 쉬고 신전을 나갔다.
4개월 후, 세쓰는 아리안에서 칼을 찾아 돌아왔다.
하지만 마왕성이 없는 그 칼은 그냥 칼이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마왕의 징표인 칼을 찾아내, 세쓰의 권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와중에서도 마트리스는 신전에서 기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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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야는 마왕으로 복귀한 거야?"
"그 칼을 가지고 있으니 마왕으로서의 정통성은 확보된 거였죠. 저는 복구와 재건에 모든 힘을 기울였습니다. 다행히 인족들도 우리를 공격할 여력이 없었죠.
이후 5년 간은 평온했죠. 그런데..."
"그런데 뭐지?"
"인족에게 영웅이 나타났습니다. 15세 밖에 안되는 인간이 큰 능력으로 인족들을 규합하기 시작했죠. 우리가 긴장할 만큼. 왕의 조카이자 사위인 그 자는 힘으로 주변 국가들을 통합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그 자 어머니의 이름이 셀리나?"
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내가 남긴 그 소년왕의 누나였다. 내 아이가 그렇게 훌륭하게 성장했다니, 가슴이 뿌듯했다.
"드라콘 베이더... 인족의 영웅의 아들이라는 그 자의 행보에 우리는 위협을 느끼고 준비했지요.
일부 인족들이 우리들에게 동맹을 제의해서, 그 자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이겼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겼습니다."
미야는 내가 인정하는 전사니까.
"그래서 휴전 연장에 합의 했지만, 휴전이 끝나면 그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생각해 불안해졌습니다."
마야가 말했다. "그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지요. 정말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드리니 신께서 말씀하셨죠. 마왕성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혹시 그 신이라는 녀석을 만난 곳이, 구름 속 같이 사방이 흰 공간이었어?"
내 물음에 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서방님께서 대화하신 그 분입니다."
정말 무책임한 놈이 마야를 이 곳에 보낸 것이었다.
"제가 기도를 드리니, 그 분께서 마왕성의 주인에게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깨어나 보니, 서방님의 방 안이었죠."
그렇다면... 마야가 나에게 온 것이 마왕성이 나에게 오고...
"마왕성이 없어지고, 얼마 만에 나에게 온 거지?"
"20년 후입니다."
그럼 미야가 온 것도...
미야가 말했다. "솔직히 저는 마야와 함께 왔습니다. 마야는 마왕성의 주인인 서방님을 죽이겠다고 했고, 저는 마왕성을 찾아 들어갔죠."
"어떻게?"
"서방님께서 부숴버린 그 칼로."
결국 미야가 그 칼을 아리안에서 찾아냈고, 마왕성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데...
"하지만 마왕성은 마력이 부족해 움직이지 않았지요. 그런데 서방님께서 마야를 부인으로 만들고부터 마왕성에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해서.... 서방님을 공격할 수 있었죠."
"잠깐! 정리해 보면, 마야와 미야는 마왕성을 찾으러 나에게 온 것이고, 그 것도 마왕성이 없어진지 20년 만에.
너희들이 그 무책임한 놈의 도움으로 나를 찾아왔는데, 그 때 나는..."
마야가 말했다. "서방님은 세상 모르고 자고 계셨죠."
"그럼 그 때 왜 나를 죽이지 않았지?"
"세쓰는 죽이자고 했는데, 제가 반대했습니다. 신께서 명령하신 것 때문에."
"뭐라고 명령했지?"
"서방님을 모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인으로 섬기며 도와드려야 한다고."
도대체 그 무책임한 놈의 의도는 뭐지? 왜 마야를...
"신께서는 서방님이 마왕성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저희가 마왕성을 움직이지 못한 이유에는 마력 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방님께서는 마왕성의 기능을 다 발휘할 수 있을 만큼 마력을 채워주시니까..."
"나를 마왕성의 주인이라고 인정한 거야? 그렇게 마왕성이 중요한 거야?"
"마왕성은 마왕의 힘의 원천입니다. 역대 마왕들은 6대 마왕에게서 마력을 받아 힘을 발휘하죠. 그 6대 마왕님이..."
"이 마왕성이 그 마왕의 무덤이라는 거야?"
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마왕을 이겼다는 것은?"
"서방님께서는 6대 마왕님을 마력으로 이기셨죠. 진자는 이긴자의 노에가 된다. 마족의 율법입니다."
미야가 말했다. "제가 마왕성에 와서 6대 마왕님께 호소했을 때, 그 분은 서방님이 주인이시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그 분을 모시고 도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럼 그 때 미야가 마왕성의 마법진을 수정한 것은?"
"마왕성에는 6대 마왕님 외에 라노크의 영혼도 있었죠. 라노크로 서방님을 노렸지만..."
나는 마야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왜 너는 내 침대에 같이 누워있었지?"
"저는 신의 명령으로 서방님의 명령에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모시는 일은 그 쪽으로 생각했습니다. 서방님도 제가 안기니 좋아하시던데요. 좋아좋아 하면서."
모두들 나를 노려보았다.
파르노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나킨이 자주 하던 잠꼬대인데?"
"그... 그럼 네 옷은?"
"서방님과의 관계를 기정 사실로 만들려면, 옷이 없는 편이 낫다 싶었죠."
그렇군. 육탄 돌격에 내가 넘어간 건데, 내 가족들도 오해할 상황을 만들면 남자로서 어쩔 수 없는 것.
그 때 마야가 내 침대에서 옷이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다시 마왕성에서 옷을 꺼내오면 되잖아?"
"서방님께서 절 안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고,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하셨잖아요."
나도 얼굴이 빨개졌다. 완전히 내 실수?
그런데 마야의 몸을 보니, 무언가 숨기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파르노의 얼굴을 보니 그 눈빛에서 파르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자금은 마야의 유치한 거짓말에 속아주라고.
티리스가 무언가 말하려 하는데, 제니스가 그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다른 부인들도 마야의 거짓말에 속아주는 척하는 것 같았다.
이럴 때 남자는 속아주는 척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그런데 왜 나를 죽이려 한 거지?"
"신께서 한가지는 허락해 주셨죠. 서방님이 내가 모실 가치가 있는 분인지 알고 싶다고 하니까, 직접 싸워보라고 하면서...
그리고 싸워서 져야 저도 납득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 마족의 룰 때문이었군. 그래도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대화했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거지? 마력이라니 뭐니 하고 말야.’
‘그... 그건... 신께서 서방님을 모셔야 한다며, 저에게 서방님을...’
‘나를?’
‘저에게 서방님의 노예건 부인이건 뭐든지 되어야 한다고 해서. 부인이 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옷을 벗고...’
‘그럼 싸운 것은?’
‘서방님께서 가족들에게 허둥대는 것을 보고 미덥지 않아서.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결국 그거였군. 가족들 앞에서 찌질한 나를 보며 다시 생각한 것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미야였다.
"미야는 어떻게 할 거지?"
"신께서 마야와 저를 보낼 때 같은 명령을 하셨지요. 서방님을 섬기라고."
"네 부인을 빼앗고, 널 여자로 만들었는데?"
"신의 명령이라면 따라야지요. 그리고..."
"그리고 너는 6대 마왕이니까?"
모두가 놀랐다.
"놀랄 것 없어. 나는 너희들 몰래 마왕성 곳곳을 돌아다녔어. 그리고 6대 마왕을 만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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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이 각성하고 얼마 후, 용들의 방을 살펴보던 때의 일이다.
호수 밑의 방에서 용들을 살펴보던 나는 라노크의 육체가 사라진 것을 보고 주변을 조사했다. 라노크의 영혼이 현정에게서 나가 몸을 움직일 것을 우려했다.
살펴보다 호수 가운데 석상이 있는 기둥에 손을 대었다. 그 때 머리 속에 무언가 몰려왔다.
‘너는 누구지?’
‘저는 마왕. 제 후손들은 저를 6대 마왕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당신이 오면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를 노예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지?'
'다른 마왕처럼 나도 당신의 부인으로 삼아주세요.'
'마왕? 마야 말야?'
'아니요. 저 용들과 한 몸이 된 사람이 마왕입니다. 여기 한분이 게시네요.'
'용과 한 몸? 라노크라면... 현정이?'
'라노크와 한 몸이 된 그 사람이 마왕입니다.'
그럼 현정이가 지금 마왕이라는 건가? 그럼 너는?'
'저도 마왕이라고 불렸지만, 진짜 마왕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라노크를 봉인한 이유는 진정한 마왕이 되려는 이유였지요.
하지만 실패했고, 마지막 수단으로 이 마왕성을 통해 저와 라노크를 연결한 겁니다. 그래서 이 마왕성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요.'
'그럼 현정이는?'
'용의 영혼과 육체가 모두 한 몸이 된 그녀는 진정한 마왕입니다.'
그 당시 라노크의 육체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현정은 용과 완전히 융합한 것이었다.
'그럼 네 소원은 뭐지?'
'라노크가 한 것처럼 나도 당신의 부인이 되고 싶습니다.'
'왜?'
'그러면 저도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요. 되도록 제 후손 중 하나가 좋겠습니다.'
'그럼 마야와 미야 중 누구를 원하지?'
'당신의 본처는 당신과 직접 연결되어 어렵습니다. 그러니 세쓰가 좋겠네요.'
'세쓰? 미야는 원래 남자였는데?'
'마야와 같은 시기에 태어난 마왕의 후손들은 원래 모두 여성입니다. 그래서 남자아이가 불완전하게 태어나죠. 세쓰, 아니 미야도 원래 여자 아이로 태어난 불쌍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아이에게 원래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요.'
'왜 마왕의 후손들이 원래 여성으로 만들어 거지?'
'신이 원했습니다. 신께서는 마왕의 혈족이 끊어지는 것을 원하셨지요.'
'여자로 혈통이 이어질 수 있잖아?'
'마왕의 힘은 남성으로만 이어지니까요.'
결국 마왕의 힘이 사라지기를 원했던 그 무책임한 놈의 농간이었다.
'그럼 나에게 이런 말 안하고 그냥 미야에게 들어가면 되잖아?'
'당신의 노예인 나는 당신의 부인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허락이 필요해요.'
'그럼 미야는?'
'그녀와 몇 번 대화했는데, 그녀도 내가 자기 몸에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그럼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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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미야님에게 6대 마왕의 영혼이... 그렇다면 미야님은 어쩌실 생각이죠?"
"여기 용의 화신들과 같아. 나도 6대 마왕님의 영혼, 육체와 하나가 되어야지."
용에게서 했던 것과 같이? 그럼 원래 몸과 영혼이라는 것은 뭐지? 세계가 달라서 그런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거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의문 투성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야와 미야의 이야기는 잘 들었어. 우선 중요한 것은 마야의 위치야. 처음에 말했듯, 나의 본처는 마야야. 아랫부인이 있다해도 나에게 본처는 마야 뿐이야. 이걸 모두 명심해줘."
모두 동의의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수아 이후의 아이들의 문제는... 아직 말할 것이 못돼."
엘리자와 티리스의 얼굴이 달라졌다.
"수아에서 보듯이, 아직 우리는 마왕의 저주가 해결되지 않았어. 딸만 낳을 수 밖에 없는 저주. 그 것을 풀기 전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위험해."
페트리아가 말했다. "전 딸이라도 상관 없어요."
옆에 있는 린이 페트리아의 손을 잡고 강한 눈빛을 보냈다.
"그 것도 있지만, 아직 마왕에게 걸린 저주가 더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야. 게다가 소환에 간다면? 만약 너희 아이에게 신의 저주가 내리면 어떻게 하지?"
제니스가 말했다. "설마 신께서..."
"그러니 아직 두고 보자는 거야."
내 말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