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설날 귀향(2)
할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재신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나는 마야 외에 생각이 없어요."
마야가 입술을 깨물고 나에게 말했다.
"서방님께서는 그녀들이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는지 모르실 겁니다. 21세기에 첩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모르시나요?
서방님은 자신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녀들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마야... 나는..."
"이런 말들... 대한민국의 법과 윤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이 더 잘 압니다. 그녀들은 자존심이 없는 줄 아나요? 현정이가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린 줄 아시나요?
서방님의 동생분과 친구들이 하렘이다 뭐다하며 놀리는 것이 그녀들에게 얼마나 상처주는 지 아십니까?
그녀들을 자존심도 없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겠어요? 모두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나는 마야의 손을 잡았다. "내 말은 그런 것이 아니야."
마야는 내 손을 뿌리쳤다.
"그럼 우리 보고 그냥 죽으라고 하세요. 신의 명령을 어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꼴을 당하는지, 현정을 제외한 우리들은 너무나 똑똑히 보아왔습니다.
그녀들도 살기를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거예요.
서방님은 전에 티리스에게 말씀하셨죠? 살아. 죽지마 라고. 지금 우리도 살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이러는 겁니다."
마야의 눈에 눈물이 보였다. 거짓말을 해도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녀가 지키고 싶은 것, 그 것은 다른 부인들이었다. 본처의 의무. 그 것을 마야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고 편한 것이 아닙니다. 신께서 서방님을 지명하셨을 때, 저도 몇 번이고 다시 기도하고 몇 번이고 반항했어요. 하지만 서방님인 것을 어떻게 합니까?
저도 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서방님이 아니면 안되게 강요하는, 서방님에게 저 이외에 다른 여인들을 부인으로 보내는... 그런 신의 무책임함에 원망하고 있어요.
저도 여자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나는 마야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마야는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이 결혼... 제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녀들이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신의 뜻은 언제나 옳았습니다. 우리가 당시에 거부하고 원망해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우리에게 좋은 것들이었지요.
지금 우리는 신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뜻에 따를 겁니다."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너희의 사정은 잘 알겠다. 그럼 너희는 한국에서 살기 어렵겠구나."
내가 말했다. "고교 졸업하면 마야의 나라로 갈 예정입니다."
안의 모두도 마야도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결정한 겁니다. 그녀들이 그런 운명이라는 것은 저도 그런 운명인 것이죠. 그러니 마야의 나라에 가서 이 운명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지... 지금 너는 이민 가겠다는 것이냐?"
"유학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방법을 찾으면 마야와 다시 돌아올 겁니다."
나는 마야의 손을 잡았다.
"풀지 못할 실이 없고, 바꾸지 못할 운명은 없습니다. 나도 지금 그녀들의 운명을 여기서 처음 듣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신을 만나서 풀어볼까 합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야를 바라보았다. "마야. 싫은 운명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영원히 계속되는 운명도 없어. 그러니 시간을 두고 해결해 보자. 너도 나도, 그녀들도."
할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6명은 어떻게 하고 있지?"
"아직은 서방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20세가 넘기 전에 서방님을 모셔야 합니다. 저는 20세가 넘어서 제가 먼저..."
"모두 20세 이하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럼 한가지 부탁을 하마. 만약 재신이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면, 그녀들도 재신이의 아내이다. 너처럼.
그렇게 된다면, 일년에 한번, 설날에는 같이 오거라. 너처럼 그녀들도 내 손주 며느리로 인정해 주겠다."
마야는 몸을 굽혀 할아버지에게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수아를 보고, 나는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기로 했고, 마야는 할머니와 여성 어르신들과 함께 음식 준비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부럽다고 해야 할지, 어렵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딴집 살림 해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어려웠다. 너의 할머니에게 너무 상처를 많이 주었고.
그런데 너는 7명이나... 정말 어려울 거다."
"저는 아직 마야 외에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야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들이 힘들어진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지만, 양쪽이 상처 받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그 것을 잘 알아둬."
"그래서 마야의 나라에 가겠다는 거예요. 그 곳이라면 그녀들도 덜 상처 받을 지 모르죠."
"그렇겠지. 그 곳은 이런 일에 관대할 지도 모르니."
옆에 어르신이 말했다. "그나저나... 왜 그 신이 너를 선택한 거지?"
"저도 몰라요. 제가 뭐 볼 것이 있다고..."
"이 자식은... 마누라를 7명이나 얻은 놈이 행복에 겨워서는..."
"행복이라고 하셔도, 그녀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기 싫어요. 그보다 더 싫은 것은 그녀들이 아픈 거죠."
"그녀들이라고 하는 걸 보니, 너도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네?"
"저도... 남자니까요."
모두가 나를 보며 웃었다.
한 어르신이 내 팔을 잡고 일으켰다. "나가서 네 마누라 도와줘. 이런 일은 힘들어서 네가 도와줘야 해."
다른 어르신이 말했다. "남자가 되어서 여자들 일하는 곳에 왜 가라는 거야?"
"세월이 변했어. 그리고 신혼인데, 이럴 때는 남편이 가서 도와주는 거야."
..............
나는 그 어르신에게 이끌려 마야가 일하는 곳으로 갔다.
생각과는 다르게 마야는 익숙한 솜씨로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마야가 고기를 썰고 양념통에 넣으면, 옆에 있는 분이 채소를 썰어 넣었다.
그 어르신이 크게 말했다. "여기 새신랑이 왔어. 많이 부려 먹어."
나는 웃으며 양복 겉옷을 벗고, 마야 옆으로 갔다. 그러자 옆에 있는 분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서방님. 고기를 더 가져와 주세요." 마야는 칼로 우리가 가져온 아이스 박스를 가리켰다.
그 안에 마왕성에서 잡은 양고기와 소고기가 가득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마야 고향에서는 양고기 요리가 유명해요. 여기서 우리가 만들어도 될까요?"
일하는 여성 어르신들이 웃음으로 동의 했다.
나는 미야와 함께 마당 가운데에 돌을 쌓고, 장작을 준비했다. 그리고 석쇠를 얻어왔다.
잠시 후, 마야는 양념한 고기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왔다. "서방님, 여기요."
나는 마법으로 장작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마야가 놀랐다. "서방님, 지금 마법을."
나도 놀랐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집 안에서 몇 명이 나를 바라보았다. "너 지금... 어떻게 불을..."
나는 얼버무렸다. "미리 붙여둔 불이 올라온 거예요."
그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은 비상식이니까.
우리가 양고기를 굽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리가 만든 양고기 구이는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
저녁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 재영이가 왔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타박했다. "너는... 며느리는 일찍 왔는데, 이렇게 늦게 오니?"
"차가 막혀서요. 죄송해요. 어머님."
재영이가 날 보고 놀렸다. "왔어. 하렘왕!"
어르신들이 재영이를 노려보았다.
할아버지가 무겁게 말했다.
"자초지종은 마야에게 들었다. 우리들도 이번 일에 아무 말 없기로 했으니, 너희도 아무 말 마라.
특히 오성이! 절대 이번 일에 아무 말 하지 마라. 네 마누라도 재영이도. 알았어?"
세 사람이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야가 우리를 위해서 요리를 준비했다. 어서 와서 먹자구나."
할머니는 어머니를 끌고 음식 만드는 곳으로 향했고, 아버지와 재영이는 할아버지와 나를 따라 사랑방에 들어갔다.
방에 할아버지, 아버지, 나, 재영이. 이렇게 네 명이 앉았다.
"편히 앉아라. 할 말이 많은데 다리가 아프겠다."
우리 모두는 편히 앉았다.
"재신이 문제로 어른들이 직접 마야에게 설명을 들었다.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했다. 그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시는 아무 말 없기로 결정했다.
오성아. 너도 그렇게 알아라!"
"예!"
"그리고 재영이! 너는 형과 형수에게 버릇 없이 굴지 마라. 다시 한번 그런 말을 하면, 나를 비롯한 모두가 용서하지 않을 거다."
"예!"
"나 때라면 재신이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드물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 세상에서 20이 안된 나이에 가정을 이루는 것은 보기 좋지 않구나.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도 있고, 마야도 참하고. 그러니 너희를 인정하마.
그러니 재신아! 너는 처신을 잘해야 할 것이다."
"네!"
"재신아! 너는 내년에 유학을 가기로 했지?"
아버지와 재영이가 놀랐다.
"외국에 가서 마야의 부모님들에게 책잡힐 일을 하면 안된다."
"명심하겠습니다."
할아버지가 술병을 잡았다. "재신아. 내 술을 받아라."
"할아버지, 저는 아직..."
"애 아빠가 된 너는 이제 어른이다. 내 술을 받아라."
나는 할아버지의 술을 받고 고개를 들어 마셨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도 술을 따랐다.
"너도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매사에 조심하거라."
"아버지... 저는 이제 50이에요."
"나도 여기서 듣는 귀가 있다. 네가 교육 기관에 몸담은 이상, 앞으로 조심 더 조심해야 한다. 더욱이 재신이가 이렇게 되었으니, 앞으로 너에게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아들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애아빠라는 것은, 아버지 입장에서는 많이 난처한 일이다.
"재신아! 너는 너뿐만 아니라 마야와 네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거다. 그 것을 잘 알고 있지?"
"네!"
"앞으로 너와 네 아내, 아이.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
"알겠습니다."
할머니가 수아를 안고 방에 들어왔다.
"여보. 증손녀를 안아보아요. 얼마나 귀여운데요."
할아버지가 수아를 안았다. "이제 나도 증조할아버지가 된 거네."
"고손주도 안겨드릴까요?"
"예끼! 나보고 얼마나 더 살라는 거야?"
"솔직히 수아가 제 나이에 결혼하겠다고 할까봐 걱정 돼요."
내 웃음에 아버지의 얼굴이 굳어졌다.
재영이가 웃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50이 되기 전에 할아버지가 된 거네? 맞아! 수아가 형 나이에 결혼하면, 아버지는 70이 넘기 전에 증조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아버지가 재영이의 머리를 때렸다. "말이라도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지 마."
나는 아버지를 보며 웃었다. "내년에 손자도 안겨드려요? 마야는 아들을 낳기를 원하는데."
"수아는 봐주어도, 둘째는 참아주라. 나도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이 끔찍해."
"수아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요?"
아버지는 몸을 떨었다.
재영이가 말했다. "나도 내년에 장가갈까?"
"그런 여자가 있어?"
"형수처럼 나 먹여살릴 능력 있는 여자라면 당장이라도 OK야."
나는 재영이를 노려보았다.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이냐?"
"솔직히 형이 뭐 볼 거 있어? 고등학생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형수 같은 부자가..."
아무래도 우리 가족에게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되어, 여러 자리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여러 어르신들이 나에게 술을 권하는데, 아버지가 쓰러졌어도 나는 멀쩡했다. 100년 동안 살면서 술을 마셔볼 만큼 마셔보았기 때문도 있고, 잠시 힐링을 쓰면 술기운이 없어졌다.
그런데 무식하게 나에게 술내기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나에게 져서 쓰러졌다. 마지막까지 남았는데도, 나는 술 한방울 먹지 않은 것처럼 멀쩡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야에게로 갔다. 마야도 어머니, 숙모님 등 여러 어르신들과 함께 술판에 있었다.
그런데 미야가 보이지 않았다. 마력으로 미야를 찾으니, 미야는 대문 밖에 있었다.
나는 미야를 찾아갔다. "미야. 왜 여기에 있지?"
"저는 이 곳 사람이 아니니까요."
"부담돼?"
"그렇지요. 저는 여기를 떠날 사람이니까요."
"정말 떠날 거야?"
"그래야 합니다. 나를 믿고 따라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돌아가도 넌 세쓰라고 나설 수 없어."
"그래도 6대 마왕님과 하나가 되어 능력을 발휘하면, 다시 마족을 통합할 수 있을 겁니다."
"너는 정말 내 아이를 원해?"
"6대 마왕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서방님의 아이는 큰 능력이 있다고. 제가 그 쪽에서 본 그 인족의 영웅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사람이 서방님의 피를 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마왕이 알려준 거야?"
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2년 남았어. 마왕성의 마력이 채워지고, 세계의 벽을 뚫을 수 있으면 너희들을 보내 줄 거야."
"서방님. 그러면 저에게..."
"마왕성에 돌아가서 시작하자. 여기서는 어려우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미야와 함께 돌아와, 미야를 마야가 있는 자리에 데리고 갔다.
잠시 후, 마야와 미야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