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새로운 본처(2)
며칠 후, 파르노와 마야의 마지막 대결이 있었다.
이 날 나는 오후 늦게 시험을 끝내고 남자들끼리의 모임에 나갔다. 내 부인들에게도 제의가 있었지만, 그녀들은 이번 결투 때문에 모두 사양하고 마왕성으로 돌아왔었다.
대련장에 마야와 파르노가 마주 섰다.
"놀라워. 나는 제니스나 현정이 올라올 줄 알았는데."
"마야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는 약하지 않아. 서방님께서 사용하는 기술. 대부분 내가 가르쳐준 것이야. 과거 서방님의 스승인 나를 무시하지 말아줘."
"내 본처 자리를 뺏으려는 사람에게 다정할 수 없잖아."
"그 본처는 1년 전에 서방님께서 없애셨어. 다시 만들려면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당신이 말했잖아."
"잘도 기억하네."
파르노는 칼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말은 더 이상 필요 없어."
마야도 손을 들었다. "맞아. 그럼 시작하지."
말을 마치고 마야는 10개의 파이어볼을 날렸다.
티리스와 다른 것은 티리스는 폭발 마법의 마력탄이고, 마야는 파이어볼이었다. 마야의 위력이 더 강한 것은 마력탄은 방어벽으로 막을 수 있지만, 마야의 파이어볼은 방어벽을 뚫지 못해도 주위의 산소를 고갈시켰다. 방어하다보면, 차츰 희박해진 산소 때문에 호흡이 어려워져 싸우기 힘들어진다. 처음 마야와 싸우는 사람이 당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파르노는 달랐다.
불리한 위치는 빨리 벗어나라.
회피가 우선이고 방어는 차선이다.
내 공격 후에 반드시 역습이 있다. 공격 후에 바로 이탈하라.
파르노가 나에게 가르쳐준 실전 3원칙이었다. 파르노는 마야의 공격을 방어하기보다 회피를 선택해 자리에서 이탈했다.
그 이탈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상대의 공격을 보고 무작정 피하면 또 다른 공격에 노출된다. ’회피는 내 몸에 닿기 직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고 파르노는 나에게 가르쳤다.
그 말대로 파르노는 마야의 공격이 팔 닿을 거리에 올 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파르노는 특기인 워프마법으로 마야의 뒤를 잡고 칼을 휘둘렀지만, 마야도 빠르게 몸을 돌려 피했다.
마야의 공격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파르노는 즉시 워프마법을 영창했다. 영창이 끝날 때 즈음에 마야의 파이어볼이 가까이 왔고, 옷에 조금 닿을 시간에 겨우 그 자리에서 이탈했다.
파르노는 결계의 끝으로 도망갔는데, 마야의 파이어볼이 파르노를 따라 날아왔다. 이렇게 되면 워프마법을 영창할 시간이 없었다.
파르노는 파이어볼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회피시간을 계산했다. 순간 파르노의 등에 파이어볼이 직격했고, 뒤 이어 앞에서 날아오던 파이어볼도 탄착했다. 앞뒤에서 동시에 6개 이상의 공격을 받았다.
파르노는 불타는 옷을 벗어던졌다. 몸에서 연기가 나고 몇군데에 화상을 입어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도 힐링을 쓰지 않았다. 이런 마법을 10개나 동시에 쓸 수 있는 상대를 앞에 두고 찰나의 시간도 멈춰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파르노는 즉시 몸을 움직였다. 자기가 옷을 벗는 시간이 2초, 그 시간이면 마야가 새로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또 공격이 자기 몸에 닿을 것이었다. 파르노가 움직이자마자 그녀가 서 있던 곳에 아이스애로우가 날아와 박혔다.
나에게 들었던 마야의 특기, 동시에 10개의 마법을 사용하여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타입갭이 3초 이내인 사기적인 마법기술이었다. 더욱이 내 부인으로 살며, 마야는 근접전투 기술도 늘었다.
나와의 첫 대결에서 감탄했던 이동 기술. 그 기술을 마야도 쓰고 있었다. 그 증거로 마야는 움직이며 8개의 마법 공격을 날렸다. 2개의 바람 마법을 이용한 이동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승산이 없었다. 마력량에서도 부인들 중 최고인 마야였기에, 티리스처럼 마력 고갈을 노릴 수 없었다.
그 순간에도 마야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고 파르노는 도망칠 뿐이었다.
파르노는 즉시 하늘로 점프했다.
마야는 과거의 나와의 전투를 기억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파르노를 보고 즉시 자리에서 이탈했다. 파르노의 급격한 방향 전환을 예상했지만, 파르노는 그대로 땅에 내려왔다.
마야는 땅에 내려온 파르노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파르노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워프마법이었다. 파르노는 점프와 낙하하는 시간 동안 워프 마법을 영창해뒀다.
나의 특기처럼 파르노가 뒤에 있을 거라 생각해, 마야는 공격 마법의 탄착점을 자신의 뒤쪽으로 잡고 날려진 마법들을 유도했다.
그런데 파르노는 마야의 전방 20m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마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야는 즉시 3개의 방어막을 만들어 파르노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3개의 방어막이 즉시 깨어졌지만, 파르노의 공격 속도를 늦출 수 있어 치명타를 면했다.
거리를 벌렸지만, 마야의 배에 피가 흘렀고, 파르노의 칼에 피가 묻어 있었다.
마야는 자기 몸을 고치는 마법과 동시에 9개의 공격 마법으로 파르노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파르노가 더 빨랐다.
자신을 파고드는 파르노를 보며, 마야는 즉시 힐링 마법 대신 바람 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뒤로 이동시켰다.
"늦어!"
파르노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손이 마야의 몸 가까이에 다가왔다. 마야는 파르노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거리라 안심했지만, 그녀의 손에서 마력구가 나왔다.
순간 마야는 당했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현정을 쓰러뜨린 마법 뜨거운 피의 마법이었다. 그 증거로 마법을 쓰는 파르노의 손이 붉어지고 있었다.
"크아악!" 마력이 몸에 닿는 순간 마야는 엄청난 뜨거움이 몸 안에 느껴졌다. 미야, 아니 세쓰를 이길 때 자신의 팔에서 느끼던 뜨거움이었다. 그 고통이 방금 당해 피가 흐르는 배에서 느껴졌다. 자신의 장기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럴 때는 마법을 건 술사가 마력을 회수하거나, 마법에 걸린 자가 마력을 밀어내야 했다. 다행히 거리가 있어, 몸 속을 파고든 마력이 적었다.
마야는 땅에 쓰러져 뜨거움에 뒹굴뒹굴 굴렀다. 그래도 마야는 재빨리 파르노의 마력을 몸 밖으로 밀어내고, 힐링으로 몸을 고치고 일어섰다.
다시 파르노의 공격을 느껴 마야는 즉시 고속이동으로 그 자리를 이탈했다.
파르노와 먀야는 한숨을 돌렸다.
"대단해. 어떻게 이런 실력을..."
"마야가 더 대단해. 이렇게 버틸 줄 몰랐어."
둘은 힐링으로 서로를 고쳤다.
"그 검술, 서방님과 비슷해."
"같은 스승에게서 배웠으니까. 아나킨에게 검술을 가르친 사람이 내 전남편이었거든."
"그 사람의 아이를 서방님의 아이라고 속이고?"
"나도 그 때는 아나킨의 아이로 알았어. 커가는 것을 보고 칼의 아이라고 알았지만."
마야가 자세를 잡았다. "서방님을 속인 죄를 용서할 수 없어. 그러니 너에게 본처 자리를 줄 수 없어."
파르노도 칼로 자세를 잡았다. "나도 너에게 질 수 없어. 특히 너 같은 귀족 출신의 아가씨에게."
파르노는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말해도 마야를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티리스는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 빠른 움직임으로 제압할 수 있었지만, 마야는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했다.
10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타임갭이 티리스에 비해 짧고, 위력도 강했다.
하지만 마법의 조정 능력은 티리스가 훨씬 좋았다. 그녀는 10개의 마법을 정지시키거나 느리게도 빠르게도 할 수 있었다.
파르노는 그 점을 포인트로 삼았다.
파르노는 우선 4개의 마력탄을 만들어 마야를 공격했다. 티리스만큼의 위력과 속도가 아니어도 마야를 공격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마야는 방어막을 만들지 않았다.
파르노는 순간 등골이 차가워졌다. 방어를 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공격에 돌리는 것. 그녀의 예상대로 10개의 파이어볼과 아이스애로우가 섞여서 날아왔다.
얼음과 불의 공격은 방어가 상당히 성가시다. 특기 두 마법이 동시에 같은 부분을 착탄하면 방어구 재질에 특히 큰 데미지가 있다.
파르노는 칼로 마법들을 쳐내며 방어하는데, 불을 쳤던 칼이 얼음을 치자, 칼에 데미지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예상대로 칼에 금이 갔다.
파르노는 즉시 몸을 움직여 다음 마야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칼을 버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단도를 꺼내어 날아오는 마법을 쳐냈다.
파르노는 마야의 주위를 빠르게 움직이며 마법탄 공격을 가하는데, 중간에 마야의 마법과 충돌하여 사라졌다.
그런데 둘의 중간에 충돌한 마법에서 큰 빛이 주위로 퍼졌다. 파르노가 공격한 마법 중의 하나는 마력탄이 아니라 섬광마법이었다.
눈을 가린 파르노는 무사했지만, 눈을 뜨고 있던 마야는 잠시 시야가 어두워졌다.
위험을 느낀 마야는 고속 이동으로 빨리 이동했다. 문제는 격전으로 방향감각과 위치 감각이 무뎌진 상태이기 때문에, 마야는 결계와 부딪혀 땅에 넘어졌다.
그 뒤를 파르노가 잡고 단도를 찔러오는데, 마야의 방어벽에 막혔다. 파르노는 3개까지 깨어버렸지만, 4개에게 막혔고 칼이 부러졌다.
즉시 두 사람은 거리를 벌려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솔직히 둘 다 이렇게까지 서로가 강한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금 유리한 것은 마력량에서 월등한 마야였다.
파르노는 온 몸으로 ‘패배’를 예상했다. 그렇기에 마지막 한 수에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 먹었다. 문제는 마야가 빠르다는 것. 마야의 이동을 막아야 마지막 공격이 통할 수 있었다.
파르노는 격투 자세로 천천히 마야에게 걸어갔다.
마야도 마지막임을 알고 최후의 수를 준비했다.
문제는 방어가 먼저인가, 공격이 먼저인가.
방어가 먼저라면 파르노의 공격을 기다려야 했고, 공격이 먼저라면 다음의 회피를 생각해야 했다.
마야의 선택은 방어였다. 지금 마력량에서 우위가 있으니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야가 방어를 선택한 것을 알고, 파르노는 미소를 지었다.
방어 위주의 전술은 방어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역습을 전제로 한 것. 상대의 일격필살에 넘어갈 위험을 안고 선택하는 안정적 전술이었다.
이 경우 두 번째, 세 번째 수를 생각해 두어야 했다. 상대의 공격을 받을 경우에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할지, 공격을 무사히 넘긴 후 어떤 역습을 할 지를 계산해 두어야 했다.
여기서 마야가 실수했다. 방어를 선택하면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육참골단, 내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부술 각오와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마야는 파르노를 과소평가했다.
항상 칼은 강한 상대를 이기려면 팔다리 하나를 내어줄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신체 복원 마법을 빨리 배운 이유도 우리 파티에서 칼과 디노는 강한 마물을 죽이기 위해 자주 팔과 다리를 먹혀주었기 때문이었다.
여담이지만, 육체 복원 마법은 자신이 아닌 타인인 경우 육체가 결손된 이후 1일 이내에 마법을 걸어야 효과가 있다. 내가 마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그 마법을 쓸 수 없었고, 디노가 불구가 된 이유였다.
그런 칼의 제자인 파르노는 팔 하나 정도는 내주기로 마음 먹었다.
파르노가 천천히 걸어오자, 마야는 상대의 공격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파르노가 마야에게 왼팔을 뒤로 돌린 채 뛰어들었다.
즉시 마야는 10개의 공격 마법을 발동했다. 마야는 파르노가 이 것들을 회피, 방어하리라 생각했다. 파르노가 미쳐있지 않다면...
하지만 파르노는 승리를 위해 미쳐있었다. 파르노는 모든 공격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파이어볼이 자신의 팔을 태우고, 아이스애로우가 배를 뚫었지만 파르노는 계속 마야에게 뛰어갔다. 아니, 다리도 데미지를 입어 움직일 수 없었지만, 미리 걸어둔 바람마법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순간 마야는 당황했다. 아무리 마야라도 10개 마법을 동시에 쓴 직후에는 바로 이동이 힘들었다. 마야가 멈춘 그 찰나에 파르노가 마야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등으로 돌려 피해가 없었던 왼팔을 앞으로 내밀어 마야의 몸에 10cm까지 접근해 마력을 전개했다. ‘뜨거운 피의 마법’이었다.
이 마법은 원래 손을 상대의 몸에 접촉해야 쓸 수 있는 마법이었지만, 제니스는 마력의 방출로 1m 이내의 상대에게도 쓸 수 있게 했다. 마력 방출로 인해 그 위력은 많이 약해져도 상대가 데미지를 입는 것은 분명했다. 지금 파르노는 정말로 가까이에서 마력을 방출했다.
상당한 마력이 마야의 몸에 전해졌다. 방금 전의 데미지와 확실히 달랐다. 그 때의 파르노의 손과의 거리는 20cm, 지금의 거리로 전해지는 마력량은 3배 이상 많았다. 방금 전에는 견딜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견딜 수 없었다. 몸 속에 전해지는 뜨거운 고통에 마야는 쓰러져 기절했다. 파르노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법. 즉시 현정이 결계를 해제하고 들어와 마야를 잡았다.
현정이 외쳤다. "파르노. 마야가 졌어. 네가 이겼어. 빨리 마야를..."
파르노가 달려와 마야의 몸에서 마력을 회수했고, 제니스가 달려와 마야에게 힐링을 걸어 상처를 고쳤다.
제니스는 파르노의 상처들을 고쳐주었다.
마야는 깨어나 가쁜 호흡으로 땅에 쓰러져 하늘을 보았다. 승부는 결정났다. 이제 나의 본처는 파르노가 된 것이었다.
마야는 비틀 거리며 일어서 파르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가 졌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본처이십니다."
옆에 있던 현정, 제니스, 티리스, 페트리아, 마르티나도 파르노에게 무릎을 꿇었다.
마야가 말했다. "당신의 피를 우리에게 먹여주세요. 당신은 우리의 본처가 되셔야 합니다."
파르노는 칼로 손가락에 피를 내어 먼저 마야에게 내밀었다. 마야의 뒤를 이어 5명이 차례로 파르노의 피를 먹었다.
파르노가 나의 본처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