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새로운 본처(3)
지금 나는 파르노를 안고 침대 위에 있다.
"결국 그렇게 된 거야? 네가 모두를 이겨서 본처로? 무슨 그런 동물 사회의 법칙이 있지?"
"현정이도 동의했어."
"결국 그 세계에서도 여기에서도 네가 본처네."
"그럴 운명이었으니까."
나는 파르노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이제 본처가 되었으니 어떻게 할 거야?"
"아무 것도. 클레어가 네 부인이 12명이라고 했잖아? 12명이 다 모이기까지는 이대로 갈 생각이야."
"마야가 문제네. 마야가 수아의 어머니인데."
"수아 문제는 별개로 하지. 그리고 수아는 우리 모두를 마마라고 불러."
나는 속으로 크게 웃었다.
"마야가 서운하겠어."
"수아는 마야보다 티리스를 더 좋아해. 티리스는 고향에서 동생들이 많았대. 그래서 아이를 잘 봐 주거든."
"너도 아이를 낳아봤잖아."
"제니스도 마야도 경험이 있지만, 티리스만큼 잘 보지 못해. 어떻게 보면 티리스는 아이 보는 일에 천재야. 마야가 안으면 울던 수아가 티리스의 품에서는 웃고 있거든. 마야가 서운할 정도로."
나는 한숨을 내쉬고 내 가슴 속의 말을 끄집어내려 했다.
"너는 아이를 바라지 않지?"
파르노가 먼저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지?"
"그건 마야 때부터 결정된 거야. 네가 원할 때 아이를 가지기로. 나도 현재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
현정이 말했어. 한국 남자는 군대를 가야 한다고. 너는 군대를 다녀온 이후를 생각하지?"
역시 파르노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3년은 더 두고 봐야 겠어."
"내가 언제 군대 갈 지도 알고 있군."
"그리고 우리를 떠나 보낼 생각이 있잖아?"
나는 놀랐다. 어떻게 그녀는 나를 이렇게 잘 알고 있는지...
"너는 모든 부인들에게 자유를 줄 거잖아. 걱정 마. 나는 절대 널 떠나지 않아."
"정말 괜찮겠어?"
"그 쪽에서 내 전부는 카일과 데일이었어. 그들은 다 커서 내 도움이 필요 없어. 하지만 넌 아니야. 내 도움 없이 살 수 없잖아?"
"난 성인이야. 너 없이도."
파르노가 웃으며 내 뺨에 손을 댔다. "잘난 척하지마. 넌 나 없이 살 수 없어."
"또 그런다. 엄마 같은 말을 하지 말라니까..."
"널 처음 봤을 때 내가 한 말을 기억해? 날 엄마처럼 따르라고. 넌 그렇게 해 왔잖아?"
"지금은 내가 너보다 강해."
"하지만 내 품에서 어리광 부리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어."
나는 화가 나 파르노를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고 누그러졌다.
나는 이 여자를 이길 수 없었다. 그녀가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엄마 노릇을 해도, 난 그렇게 그녀의 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엄마처럼 날 돌봐주는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다시 고개를 위로 돌렸다. 손을 들어 침실의 지붕을 열자 밤하늘의 별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도 별이 많아. 너는 옥상에서 자는 것을 좋아했어. 별을 보고 자는 것이 좋다고. 여기서도 그래?"
"이쪽 세계에서는 그럴 기회가 없으니까. 별을 보고 잠이 드는 것이 좋았는데, 집에서는 그럴 수 없었어."
"어때,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안고, 내가 좋아하는 광경을 보며 누워있어서 행복해."
"널 사랑하는 사람이 12명이라는데?"
"그래도 널 제일 사랑해."
파르노는 웃었다. "제니스를 가장 사랑하잖아?"
나는 몸을 움찔했다. 파르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
"그 다음이 마야, 현정. 내가 네 번째인가?"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그래서 네 본처가 되려는 거야. 네 본처라면 날 버리지 않을 거니까."
또 놀랐다.
"나에게 버림 받는 것이 무서워?"
"엄청. 나는 지금 갈 곳이 없어. 너뿐이야."
나는 파르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불안했던 것이었다.
"네가 본처니 널 버릴 수 없겠지.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면 네가 제일 먼저일 거야."
"그건 고마워. 진심이 아니라도."
"왜 진심이 아니라 생각하는 거지?"
"너는 아이를 바라고 있지 않으니까."
그 것도 맞는 말이었다.
"앞으로 넌 우리에게 마음대로 해라. 즉 나를 떠나도 좋다고 말할 거야. 그렇다 해도 나는 널 떠나지 않겠어."
"내 곁에 남겠다는 사람을 말리지 않아. 떠나는 사람을 잡지 않은 것처럼."
"그 것도 고마워."
"고마운 보답을 말로만 할 거야?"
파르노가 웃으며 내 위로 올라왔다.
"어떻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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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와 부인들은 아침 식사로 같이 모였다.
마물들이 나와 파르노의 자리를 식탁의 세로에 세팅하고, 내 옆에 마야, 제니스, 마르티나, 클레어 순으로 앉았고, 파르노 쪽에 현정, 티리스, 페트리아 순으로 앉았다.
맨 끝의 클레어는 나를 보며 웃는데, 티리스가 눈치를 주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당했는지, 클레어는 티리스 앞에서 주눅 들어 있었다.
"클레어. 하루 지내본 감상은 어떻지?"
"서방님. 너무 힘들어요. 모두 날 괴롭히기만..."
"제니스도 견뎌낸 거야. 못한다면 네가 나태한 거지."
제니스는 클레어를 보고 웃었다.
"여기서 말해두지만, 클레어도 내 부인이야. 너무 심하게 대하지 말아줘. 그렇다고 수련에서 봐주라는 말은 아니야. 단지 우리의 동료로 생각하라는 거야. 알았어?"
모두 클레어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수청 문제는 파르노에게 맡기겠어."
파르노가 말했다.
"수청 문제는 전처럼 일주일에 두 명씩 맡는 것으로 하지. 거기에 나와 클레어는 제외하고, 다음 주부터 마야와 페르티아, 제니스와 티리스, 마르티나와 현정의 순으로 서방님을 모시도록 해."
현정이 물었다. "왜 너와 클레어는 제외하는 거지?"
"나는 본처니까 내가 원할 때 서방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클레어는 각성을 위해 자주 서방님께 안겨야 해. 클레어가 각성할 때까지는 서방님께서는 언제나 클레어를 귀여워해 줄 수 있어야 하니까. 안 그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오늘 내일은 휴일이니까 시작은 모레부터야. 그리고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오늘은 별궁에 놀러 갈 생각이야."
모두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클레어... 현정아. 린에게서 배운 기술을 아직 기억하지?"
"물론."
"그럼 클레어를 고쳐줘. 서방님의 취향대로."
"재신이, 아니 서방님의 취향대로? 그러면 베이비 글래머..."
나는 항변했다. "나는 가슴 큰 것에 집착하지 않아."
모두들 나를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야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처음 수아에게 바다를 보여줄 수 있겠네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맞아! 수아는 어디 있지?"
티리스가 말했다. "지금 정원에서 마물들과 놀고 있어요."
마물들은 여러모로 편리했다. 우리가 지켜보지 않아도 수아는 마물들과 잘 놀았다. 마왕성에 있으면 수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티리스가 손뼉을 치자, 마물이 수아를 안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수아가 마물에서 내려와 나에게 아장아장 걸어왔다. 그런데 향한 곳은 내가 아니라 티리스에게 였다.
나와 마야는 시무룩해졌다.
"마마. 밥!"
티리스가 스프를 떠서 수아에게 먹여주자, 수아가 받아먹었다.
마야가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아가 널 엄마라고 알고 있어."
"마야는 아이를 잘 다루지 못해요. 많이 힘들어하잖아요."
"내가 힘들어해?"
"수아를 보면서 슬픈 표정을 지어요. 그러면 아이가 싫어해요.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마야가 힘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왜 그러지요?"
마야가 충격 받은 것 같았다.
"전에 들었는데, 전에 죽은 아이 이름이 수아드였죠? 지금 수아와 그 아이를 겹쳐보시는 건가요? 그러니 힘들어 하고, 아이도 마야를 힘들게 하기 싫어서 피하는 거예요."
모두가 슬픈 얼굴로 마야를 바라보았다.
티리스는 스프를 먹여주며 말했다.
"아이를 안아주며 웃어요. 웃어야 아이는 자기를 좋아하다고 느껴요.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으면 안되요."
마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일어서 워프했다.
............
내가 찾아가니, 마야는 자기 방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지금 마야가 쓰는 방은 다른 부인들과 같은 크기의 방이었다.
내가 본처를 없앤 이후에 마야는 스스로 이 방으로 옮겼다.
그 때 나는 마야에게 많이 미안했다. 내가 방을 옮기지 말라고 해도, 마야는 고집을 부렸다.
지금 들어오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본처의 방은 남편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고 부인들의 방은 전적으로 개인 공간이었다. 지금 마야의 방은 나와 함께 쓸 때와 달랐다. 보라색이 많고, 소박한 가구에 화려한 침구들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그림들이었다. 내가 유화물감 냄새를 싫어해 마야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는데, 지금 그녀의 방은 그리고 있는 그림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몇몇 그림에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모두 10살 전후의 아이. 죽은 수아드의 그림이었다.
"마야. 아직도 그 아이를 생각하고 있어?"
마야의 몸이 움찔했다.
"잊으라고는 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수아에게 상처주지 마."
마야가 일어서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잊고 싶어요. 하지만 수아를 볼 때마다 수아드가 생각나서..."
"수아는 수아드가 아니야. 만약 네가 수아드를 생각한다면 수아에게 잔인한 거야."
"하지만..."
나는 마야 옆에 앉아 마야의 뺨을 쓰다듬었다.
"수아는 내 딸이야. 네가 엄마라도 수아에게 상처주면 용서 못해. 수아의 엄마라는 자각을 가졌으면 좋겠어."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수아가 널 엄마라고 아는 것이 중요해. 다른 부인들에게 말해두겠어. 너 이외에 수아를 안지 못하게 할 거야."
"네?"
"아이는 자주 안아주는 사람을 엄마로 아는 법이야. 수아가 티리스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티리스가 자주 안아주었기 때문이야. 앞으로 너만 수아를 안아주어야 해. 내 말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나는 마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아는 내 딸이야. 너는 수아의 엄마야. 네가 본처가 아니라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해. 잘 알겠지?"
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 때문에 나는 너를 더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수아를 잘 키워."
"알았...어요."
"그리고 다음부터 식사 시간에 마음대로 자리를 뜨지 마. 나도 다른 부인들에게 난처해. 잘 알겠지?"
"조심할 게요."
마야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마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네 비키니를 보고 싶어."
마야가 웃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그 후에 많이 안아주실 거죠? 저는 숲 안에서 안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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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으로 워프한 우리는 남쪽 바다를 즐겼다.
내 부인들의 비키니 차림을 감상하는데, 천국이 따로 없었다.
더욱 만족스러운 것은 마야의 비키니였다. 임신과 출산, 입시로 인해 마야의 비키니 차림을 2년 만에 볼 수 있었다. 붉은색 비키니를 입은 마야는 터질듯한 몸매를 뽐냈다. 다른 부인들이 기가 죽을 정도로.
현정이 클레어를 손을 잡고 끌고 왔다. "서방님. 클레어를 보세요."
현정이 고친 클레어의 외모는 따뜻함이 넘쳐흘렀다. 대지모 여신의 이미지는 모든 것을 안아주는 따스함. 그 분위기가 클레어에게 넘쳐흘렀다. 굳이 표현한다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옆집 누나였다.
클레어가 수줍게 미소를 짓자, 뭔가 참을 수 없는 것이 몰려왔다. 그 분위기를 알고 다른 부인들이 자리를 피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