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대학생 생활(1)
월요일이 되어, 우리는 학교 생활에 복귀했다. 나는 기계, 마야는 화학, 현정은 의예, 제니스와 마르티나는 건축, 티리스는 농학, 페트리아는 식품공학이었다.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한 것이었다.
특히 마야는 화학에 관심이 많았다. 물질의 본질을 연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 여러 화학 서적을 스스로 공부할 정도였다.
솔직히 우리들에게 수업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학습마법으로 책을 10초 동안 들고 있는 것만으로 안의 지식이 모두 머리 속에 들어가 버리니, 우리는 입학 1달 만에 전공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얻었다.
여기서 현정은 또 다른 마법을 필요로 했다. 상대의 육체와 접촉하면 그 지식과 경험을 얻는 마법. 내가 가르쳐준 마법으로 현정은 선배 의사들과 악수하며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얻어냈다. 1학년인 현정의 의학적 지식과 기술은 30년 넘은 의사들과 같은 수준이었다.
제니스와 마르티나는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그 과에 남자들이 많아 걱정되었는데, 술내기 등으로 작업하던 남자들이 당한 이후로 둘에게 작업 거는 남자들이 없어졌다. 특히 몇몇 학생들이 둘을 보고 피하는데, 마르티나에게 들어보니 제니스에게 그 곳을 잡혔다고 했다. 파르노에게 배운 필살기라 했는데...
농학을 선택한 티리스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즉시 마왕성에 활용했다. 자기의 지식을 마물에게 주입해 여러 채소들이 재배되었는데, 갈수록 우리의 식탁이 풍성해졌다.
페트리아는 평소부터 식품에 관심이 많아 전공을 선택했다. 하지만 요리는 잘 못했다.
내가 기계공학과를 지망한 것은 내 성적 때문이고,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전공 지식을 이용해 몇 가지 도구를 만들었다. 어느 라노벨처럼 총을 만들까 생각했는데, 마력 방어막을 생각하면 그렇게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포기했다. 만들기에 너무 번거로우니까.
그래도 마야는 나와 함께 수류탄을 만들었고, 위력에 만족했다. 다음 소환에 유용할 것 같았다.
이제 문제는 클레어였다. 우리가 등교하면 그녀 혼자 마왕성에 있어야 했다. 그녀에게 시간을 보낼 무엇이 필요했다.
티리스가 그 문제를 해결했다. 언제나 티리스에게 두들겨 맞는 클레어에게 훈련을 재촉한 것이었다. 개인 훈련이 미흡하면 벌을 준다는 말에 클레어는 진지해졌다.
모두 등교를 하는데, 클레어가 혼자 남는 것에 쓸쓸해 보였다.
제니스가 말했다. "그럼 워프합니다."
..............
워프가 끝나자, 보이는 것은 학교 근처 건물의 옥상이었다. 정문과는 도보로 10분 거리, 뛰어서가 아니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나는 허공답보로 담을 넘어갈 수 있고 내 부인들은 날아갈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생각해 걸어가야 했다.
우리가 학교 근처의 3층 건물인 이 곳을 워프 포인트로 삼고, 위에 천막으로 위장했다. 물론 이 건물의 소유자는 바로 나이다.
미성년자를 벗어난 즉시, 나는 명성 학원의 대주주이고 50평 아파트와 이 건물의 법적 소유주가 되었다. 마왕성에 산더미처럼 쌓인 금을 사용해 나는 단번에 100억대 재산가가 된 것이었다. 마누라 잘 얻어 팔자 고친 전형적인 예이다.
우리는 계단으로 천천히 내려왔고, 1층의 편의점 알바가 나를 보며 인사했다.
편의점 옆의 치킨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저녁 장사를 하는 점포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학교로 가는데, 주차장에서 한 사람이 차에서 내려 나에게 다가왔다. 2층에 입주한 pc방의 사장이었다.
"송 사장님. 학교 가시나요?"
아무리 건물주라도 사장님이라는 말을 들으니 귀가 간지러워졌다.
현정이 뒤에서 웃고 있었다.
"여기 아가씨들은 같이 등교하시네요?"
"제가 볼일이 있어 잠시 들렸습니다. 불편하신 것은 없으시죠?"
"저야 뭐..."
50대의 아줌마가 나를 보며 실실 웃는데, 나도 기분 좋았다.
나는 이 건물을 인수하고, 바로 임대료를 20% 낮추어줬다. 편의점, 치킨, pc방 사장들은 모두 놀라서 아무 말 못했다. 건물 주인이 바뀌면 기존 상가들을 쫓아내거나 임대료를 올리는데, 나는 임대료를 인하했다. 조건은 5년 이상 장사하는 것. 모두들 내 손을 잡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내 입장에서는 건물은 워프포인트를 위한 눈속임일 뿐이었다. 임대료는 손해가 안날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해 낮춘 것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부인들이 살고 지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3층에 내 부인들 7명이 살고 있다고 알렸다. 물론 그녀들과 나의 관계는 비밀이지만.
그래서 우리가 옥상을 통해 워프해도 다른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았다.
정문까지 같이 들어간 우리는 각각의 강의실로 흩어졌다.
...................
내가 1교시에 듣는 수업은 공업수학. 이미 수학 전체를 마스터한 나에게 지루한 시간이었다. 아니, 모든 수업이 지루했다.
오후가 되어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니, 이번 주 담당인 마야와 페트리아가 미리 내 것까지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나킨. 같이 먹죠." 마야가 자신의 앞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마왕성 밖에서 ‘서방님’으로 불리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나에 대한 호칭을 ‘아나킨’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내 영어 이름이라 말했다.
아무리 부부 사이를 숨긴다 해도, 매주 바뀌는 외국인 미녀들과 식사하는 나는 학교의 유명인이었다. 지금도 나를 보는 남녀 모두의 눈길이 따가웠다.
그래도 그 것을 따질 내가 아니었다. 나는 마왕들을 부인으로 삼은 신이다. 평범한 인간들의 눈길에 신경 쓸 위치가 아니라 생각했다.
"마야. 친구들이야?"
누가 마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남자가... 남편의 허락도 없이 남의 부인의 몸을 마음대로 만지다니...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마야는 그 손을 쳐냈다.
"권 동수씨. 저는 중요한 사람과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공적인 것이 아니라면 나중에 듣겠습니다."
마야에게 온 것은 정수 하나가 아니었다. 그 뒤에 남녀 5명이 함께 왔다.
그들 중 한 여자가 말했다. "여기는 누구죠?"
마야가 말했다. "아! 여기 송재신은 기계과. 옆의 페트리아는 식품공학과입니다. 저의 고교 동창들입니다."
"앞에 계신 남성분과는 사귀는 사이인가요?"
"여기는 3명이 식사 중입니다. 데이트 자리는 아닌 것 같군요."
내 말에 모두가 납득한 눈치였다.
권동수가 다시 마야에게 추근거렸다.
"마야. 점심 식사는 같은 과끼리 해야지. 학우들끼리 교류의 측면에서 다른 과 사람을 만나는 것은 좋지 않아. 더욱이 1학년이."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버릇없는 자식...
페트리아가 말했다. "자의식 과잉도 정신병의 범주에 속합니다."
그들이 페트리아를 노려보았다.
"여기 우리 앞의 송재신씨보다 더 나은 남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착각을 넘어 자살행위라 판단되는 군요. 귀하께서 어떤 의도로 마야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의도가 너무나 드러납니다. 자신의 속마음도 숨기지 못하는 수준으로 어디서 우리에게 추근거리는지요."
한 여자가 말했다. "추근거렸다니, 너무 하네요. 우리는 단지 마야가 같은 과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문제 때문에..."
"제 판단에는 마야가 당신들과 같이 있는 것은 시간 낭비로 보입니다."
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의 수준도 모르면서, 마야의 시간을 빼앗으려 하다니... 정말 염치없고 무례하군요."
페트리아의 폭언에 가까운 말에 그들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페트리아가 다른 세계의 언어로 말했다. "서방님. 한국의 인간들은 모두 이런 가요?"
나도 같은 언어로 말했다. "어느 세계나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어."
마야도 같은 언어로 말했다. "대한민국의 1류 대학이라 했는데, 실망이에요. 우리 과에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대화하는 우리를 보고 그들은 놀란 표정들이었다.
페트리아가 그들을 향해 일어서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뺏고 있어요. 왜 이리 무례하죠?"
내가 통역해줬다. "우리들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고 있군요."
"당신들과 대화하는 것이 나와 마야에게 엄청난 시간 낭비입니다. 자신들의 수준을 몰라요?"
"마야에게는 여러분들과 사적 대화를 하는 것이 시간 낭비입니다."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뒤에서 조용히 있던 남자가 말했다. "시간 낭비?"
마야가 일어서 말했다. "우선 내가 하는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대화를 나누죠."
모두들 처음 듣는 언어에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지금 어느 나라 말을 하는 거죠?"
"그리스어입니다."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니, 둘러대기 좋은 것이었다. 더구나 발음이 그리스어와 비슷했다.
모두가 놀란 표정이었다.
"마야와 페트리아는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아서 영어, 라틴어, 프랑스어. 아랍어 등 10개 국어 이상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의 학력들을 가지고 있죠."
내 설명에 모두 마야와 페트리아를 번갈아 보았다.
"마야가 저에게 불평했습니다. 과모임에 가면 시간 낭비가 많다고 합니다. 공부하기에 바쁜데 노는 일로 머리를 흔들고 있다고. 저녁 식사 메뉴 정하는데 1시간을 논쟁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야가 여러분들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겁니다."
"그럼 마야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죠?"
"10개 국어 이상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는 뻔한 것 아닌가요? 이 세상 누구보다 바쁘고 치열하게 파고들어야 이룰 수 있는 경지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페트리아가 노려보자, 그들은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권정수인가 하는 놈은 나를 노려보며 멀어져 갔다.
페트리아가 물었다. "마야, 저 자식이 널 눈독 들이고 있는데?"
"주제도 모르고 나서는 것이 귀여워서 몇 번 받아주니, 계속 기어올라. 한번 손 봐줘야 겠어."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보다 네가 유부녀에 애엄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 일은 서방님께서 반대하셨잖아요. 모든 부인들에게 공평하게 하기 위해 아무하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기로."
"수아 때문이야."
마야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미성년자가 아니니까. 수아는 내 호적에 올려져 있어. 그래서 말해두는 거야. 수아의 장래에 대해 생각해봐야 될 것 같아."
"뭘... 요?"
"한국인으로 키울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인간으로 키울지 말야. 원래부터 마법을 쓰는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데, 수아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할 지 결정해야 겠어."
마야가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아직 급한 것이 아니야. 하지만 마야는 수아에 대해 고민 했으면 해. 네 딸이니까."
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트리아가 물었다. "호적에 올린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가 생겨. 우선 수아는 6살이 되면 학교에 가야하고 교육을 받아야 해."
"서방님께서 학교에 다는 것 처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지금 우리처럼, 마법을 사용하는 수아가 평범한 사람들과의 생활을 적응할 수 있는가야.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 수아는 엄청 상처받을 수 있어."
마야가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호적에 올리지 않고,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성장하는 방법이 있어. 그러면 마왕성에서 떠나지 못할 거야. 나는 그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와 마야는 수아 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으면 해. 알았어?"
"알았어요."
마야의 목소리가 떨렸다.
..............
오후 수업이 끝나고 마왕성에 돌아오니, 다른 사람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는 부인들에게 남자를 사귀지 않을 것과 자신이 담당인 주에는 나와 같이 행동할 것의 두가지 조건을 걸고 자유를 허락했다. 지금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때문에 마야와 페트리아 외에는 마왕성에 없었다.
나는 클레어를 불렀다. 마력을 통해 내가 부르는 것이 전해질 것이었다.
페트리아가 말했다. "저녁 식사는 우리 셋인가요?"
"클레어까지 네 명이야."
"부인들을 너무 풀어주는 것 같아요." 마야가 불평했다.
"그들도 성인이야."
"제 상식으로 남편 있는 여자가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드네요."
마물이 수아를 안고 우리에게 왔다. 수아는 티리스가 없는 것을 알고 실망한 얼굴이었다.
마야가 다가가 수아를 안자, 수아는 조금 반항하다가 마야에게 안겼다.
"수아. 잘 있었어?"
"마마는 어딛쩌?"
수아의 말에 마야의 얼굴이 슬퍼졌다.
"마야, 티리스의 말대로 수아 앞에서 그런 표정은 안 돼. 웃어야지."
마야가 웃으며 수아의 등을 두드렸다. "오늘은 내가 마마야."
"마마가 밥 무거."
페트리아가 말했다. "주로 티리스가 수아의 밥을 먹여주잖아요."
"오늘은 내가 먹여줄게."
"배 고파. 밥."
마야는 웃으며 수아를 안고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시간이 필요한가?"
페트리아도 한숨을 쉬었다. "그렇네요. 웃는 얼굴에 저렇게 슬픔이 넘치니까요."
나는 페트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밥 먹기 전까지 뭘 하지?"
페트리아가 웃으며 내 품에 안겼고, 우리는 침실로 워프했다.
페트리아와 즐기고 식당에 나오자, 안에 파르노와 제니스가 있었다.
"마야는?"
"수아와 따로 먹겠대."
파르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것이 마야와 수아를 위해 좋을 것 같았다.
"클레어는?"
"수련실에서 나오지 않아요. 빨리 각성을 하겠다고 열심입니다."
"마르티나는 밖에서 먹고 오는 거야?"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제니스, 너도 친구를 만들어야지."
"아무래도 어린 애들은 마음에 안들어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웃었다. 실제 나이가 50이 넘은 할머니니까.
제니스의 표정 뒤에 마르티나에 대한 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걱정마. 린이 만든 수호 마법석으로 인해, 마르티나가 정신을 잃으면 즉각 이 곳으로 오게 되어 있어."
그래도 제니스의 얼굴에 고민이 풀리지 않았다.
나와 파르노가 자리에 앉자, 마물들이 식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오늘 메뉴는 붕어 튀김. 연못에서 키우는 물고기였다.
먹으려는데 아무래도 클레어가 걱정되었다.
"클레어를 불러. 같이 식사하지."
즉각 마력이 클레어에게 전해지자, 클레어가 강제로 식당에 전송되었다.
"서방님. 부르셨어요?"
클레어가 나를 보고 치마를 드는 포즈로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제니스와 페트리아가 질려했다. 청순한 목소리와 포즈로 인사하는 클레어를 보고 내숭이 심한 페트리아가 더 질린 것 같았다.
"클레어. 식사는 우리하고 같이 하는 것으로 하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서방님께서 원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클레어는 기쁜 몸짓으로 자리에 앉았고, 마물들이 클레어 앞에 음식을 셋팅했다.
클레어는 익숙한 솜씨로 나이프질을 하는데, 기품 있는 모습이 제니스와 막상막하였다. 부인들 중에 식사 예절이 가장 좋은 사람이 제니스인데, 클레어는 그 이상이었다.
제니스는 클레어의 식사 예절을 보고 만족하는 눈치였다. 항상 제니스는 부인들이 식사 예절이 없다고 불평해왔는데, 클레어에게는 그런 흠이 없었다.
참고로 내 부인들은 제니스, 클레어를 빼고는 식사예절이 좋지 않았다.
현정은 그런 개념이 없고, 다른 부인들은 평민 출신이었다.
마야와 페트리아는 왕족이었지만, 그녀들 세계에서 마족들은 도구 없이 맨손으로 식사하는 풍습이 있어, 나이프와 포크에 익숙지 않았다. 그래도 몸에 밴 예절이 기품을 나타냈다. 제니스의 관점에서는 두사람의 식사예절도 좋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두 번째 세계에서 귀족으로 지내며 많은 파티에 불려 다녀야 했다. 그래서 식사예절을 익혀두었다.
지금 제니스와 클레어가 나이프를 쓰며 우아하게 먹는 모습을 보고 옆에 있는 파르노가 먹는 모습을 보니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마야의 방으로 갔다.
마야는 수아를 안고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마야도 육아 경험이 있어 능숙하게 수아를 먹였다.
나는 수아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맛있어?"
"마싯어."
나는 마야를 바라보았다. "잘 먹네? 직접 만든 거야?"
"저도 아기 음식은 만들 줄 알아요."
"나도 네가 만든 음식을 먹고 싶어."
마야가 웃으며 말했다. "만들어드릴 까요?"
"얼마든지."
마야는 수아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수아. 아빠에게 안겨있어."
수아가 내 품에 안기자 내 품에 폭 안겼다. 여자 아이를 안는 느낌이 남자 아이보다 좋은 것이 몸에 폭 안기는 느낌이다. 같은 나이의 카일을 안을 때 카일은 내 몸에서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수아는 내 몸에 밀착시키는 느낌이다. 여자 아이는 키우는 맛이라는 말이 맞았다. 정말 수아를 안을 때, 가슴 찡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가 수아를 안고 있는 동안, 마야는 스프를 담은 그릇을 나에게 내밀었다. 수아를 마야에게 주고 스프를 받아서 먹었다. 제니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맛있었다. 제니스의 스프는 걸쭉하고 영양가 만점이지만, 마야의 스프는 부담 없이 담백했다.
"맛이 어때요?"
"맛있어."
"제니스 것과 비교해서는요?"
"비교 대상이 아니야. 이건 수아를 먹일려고 만든 거잖아. 전투에 나갈 사람이 먹는 것과 아이가 먹는 것은 다른 거야."
마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놀라워. 네가 이렇게 요리를 잘하다니."
"저도 제니스처럼 평민처럼 살았던 적이 있었어요."
마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수아드를 데리고 고향에 온 직후일 것이다. 마야는 그 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어두운 얼굴로 주위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미야에게 정말 고마워요. 제가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배척당할 때, 저와 수아드를 받아주고 수아드를 약혼시켰죠. 그 쪽에서는 정말 반대가 심했어요. 인족의 피가 섞여 있다고 끝까지 반대하는 것을 미야가 힘으로 억눌렀죠."
"그게 형제야.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저는 형제들에게 버려져 몸도 마음도 상처 입었어요. 그래서 미야에게 그렇게 쌀쌀맞게 대했죠. 나를 배신한 것은 언제나 내 주위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새로운 가족을 만들면 되잖아? 너를 배신하지 않을 새로운 가족을."
마야가 크게 웃었다. "맞아요. 서방님과 수아. 다른 부인들. 모두 새로운 나의 가족들이에요."
우리 둘 만의 세계에 수아가 뿔이 난 듯, 마야의 얼굴을 손으로 때렸다.
"미안. 수아. 널 잊었네."
"마마. 나 배고파."
"방금 먹었잖아."
"아빠와 같이 먹고 싶어."
우리 셋은 같이 스프를 먹었다.
10시가 넘어 현정, 티리스가 돌아왔다. 내가 정원에서 혼자 쉬고 있을 때 그들이 왔다.
둘이 돌아오자, 제니스가 마르티나 때문에 정원으로 내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다 마르티나가 없는 것을 알았다. "마르티나가 돌아오지 않았어?"
현정이 갸우뚱했다. "네가 같이 있었던 것이 아냐?"
"밥 먹고 온다고 했는데?"
제니스의 얼굴이 불안해졌다.
아무리 대학생이어도, 마르티나는 14세였다. 환생을 통해 20년 넘는 경험을 했지만, 아직 불안해 보였다.
티리스의 경우엔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법을 알고 있지만, 마르티나는 쉽게 남을 믿었다. 제니스가 항상 불안해하는 이유였다.
현정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여보세요. 나야 현정. 너 어디 있어?"
"남자랑? 4명? 2대2야?"
"3대1? 너 남자 3명이랑 술 먹는 거야?"
제니스의 얼굴이 허옇게 되었고, 현정의 전화를 뺏었다. "마르티나, 당장 돌아와."
"너 그 남자들을 어떻게 믿니? 게다가 술? 너 술도 잘 먹지도 못하면서. 게다가 네 목소리가 풀려 있어."
"마르티나! 마르티나?"
제니스가 전화를 끊고 불안해했다. "어떻게 하지? 남자들과 술 먹고. 목소리를 들으니 이미 취한 것 같아."
불안이 현실이 된 듯, 제니스는 안절부절 못했다.
1시간 후, 제니스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정현이? 마르티나가 옆에 있다고?"
제니스의 얼굴이 펴졌다.
"집? 아... 000번지. 학교 교문 앞. 00pc방! 그래. 그 3층이야."
제니스가 전화를 끊었다.
제니스는 나를 바라보았다. "서방님. 죄송해요. 마르티나가 취해서 몸을 제대로..."
"내려가 봐. 그리고 여기서도 마르티나의 위치를 알 수 있어."
나는 정원에서 마력을 넣으니 공중에 화면이 생겼다.
마르티나가 한 남자 등에 업혀있고, 두 남자가 돕고 있었다. 그 남자가 힘든지 마르티나를 내려놓자, 다른 남자가 교대로 업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다른 부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히 제니스가.
"바로 앞에 왔네요. 제가 내려가 볼게요."
제니스가 워프 마법진으로 달려갔다.
화면을 보니,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의 문이 열리고 제니스가 나갔다. 세 남자가 취한 마르티나를 제니스에게 안겨주었고, 3명은 제니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었다.
제니스는 문을 닫자마자 마르티나를 안고 돌아왔다.
"어니... 나 안 취해... 쪄..."
"조용히 해! 여기 서방님이 계셔!"
마르티나가 나를 보더니 몸을 굽혔다. "서빵님. 죄성해요. 저 술 쬐끔 머것써요."
마르티나의 취한 목소리와 비틀거리는 몸에 모두가 얼굴을 찌푸렸다.
제니스는 즉시 마르티나에게 힐링을 걸어 취기를 없앴다.
마르티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당황했다. "언니. 미안해 늦었어. 서방님 죄송해요. 동아리 모임 때문에 늦었어요."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자주는 곤란해. 앞으로 조심해."
마르티나가 몸을 굽혀 사과의 인사를 했다. "알겠습니다."
뒤에 있는 제니스가 가장 난처해했다.
파르노가 말했다. "마르티나. 내가 화나는 것은 네가 술 먹었다거나 늦은 것 때문이 아니야. 적어도 제니스에게 만큼은 알려야지. 모두 걱정했잖아."
마르티나가 놀라서 몸을 돌려 제니스를 바라보았다. 제니스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마르티나가 나와 모든 부인들을 향해 몸을 굽히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 없을 겁니다."
파르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술 먹은 것을 뭐라 할 사람 없어. 네가 취했다고 탓할 사람도 없어. 중요한 것은 주위 사람 걱정시키는 거야.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우리에게 알려야 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이런 실수야 누구나 할 수 있어. 나도 제니스도 몇 번이나 했던 실수야. 그러니 별로 큰일도 아니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널 업고 온 세 사람이야. 혹시라도 그들에게 폐가 있었다면, 내일 사과를 해. 알았지?"
"네!"
나는 제니스를 보았다. "아는 사람이었어?"
"같은 과입니다. 그리고..."
제니스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마르티나를 보았다. "혹시라도 그 쪽에서 오해가 없도록 확실히 해."
마르티나는 이해가 안되는 표정이었다.
"제니스. 알았지?"
"네."
"갓 성인이 된 젊은 남성이야. 혹여라도 상처 입으면 안되니까. 네가 가서 잘 말해둬."
"알겠습니다."
마르티나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니스가 마르티나의 손을 잡고 워프했다.
파르노가 다른 부인들을 보고 말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용서 안 할 거야. 알았지?"
동시에 마력을 내뿜었다. 본처의 마력에 모든 부인들의 몸이 움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