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다시 찾은 지하 미궁
3명에게 과제를 던져주고, 우리는 새벽에 로터스 밖에 나가 수련하고 밤에 로터스로 들어와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로터스에 도착한지 40일 정도 지나서, 우리는 여느 때처럼 수련을 끝내고 여관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에게서 그리운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문 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그 사람은 나에게 뛰어들었다.
"서방님!"
몇 개월 전까지 내 부인이었던 리나였다.
리나는 내 품에 뛰어들었고, 나는 받아 안았다. 같이 있던 3명도 리나 주위로 몰려들었다.
리나는 내 품에서 벗어나 3 사람과 포옹하며 기뻐했다.
"리나, 앉아. 할 말이 많아."
4사람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리나가 먼저 물었다. "이 세계에 할 일이 있나요?"
"좋은 질문이야. 용을 찾으러 왔어."
"용이라면 서방님께서 부인으로 삼았잖아요."
리나는 티리스를 바라보았다.
"지하의 그림에서 다른 용이 있었잖아? 그 용을 찾아야 해."
리나가 무언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찾으실 거죠?"
"그래서 널 찾아 온 거야. 이 쪽에 대한 것은 네가 제일 잘 알거니까."
리나가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그건 곤란해요. 저는 길드 소속이에요. 길드에서 허락해야 해요."
"지하를 재탐색한다면 어떨까?"
리나가 무언가 깨달은 표정이었다. "그렇군요. 지하를 탐색하겠다면 길드에서도 허가할 거예요."
리나와 나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리나 인버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
리나는 웃으며 두 손으로 자신의 턱을 올렸다. "저 같은 천재 미소녀 마법사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죠."
그 말에 3사람이 먹던 음식을 뿜어내었다. 리나는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웃었다.
"그나저나 넌 초보 모험자부터 다시 시작한 거야?"
"여기에 다시 오니, 저는 더 이상 엘프가 아니잖아요? 게다가 2년의 시간이 흘러서 로즈는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재미 있는 것은 내가 어릴 적부터 도와주던 남자들이 이제는 나를 가르치는 입장이에요. 모르는 척하며 배우고 있는데, 정말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나를 비롯한 3사람은 리나를 보며 웃었다.
"새로운 남자는?"
"돌아온 이후로 많은 사람을 사귀고 있지만, 서방님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리나는 원래부터 정조관념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리나는 나를 끈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어때요?"
"안 돼. 부인들 외에 다른 여자들을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했거든."
"어머나! 하루에 백 명도 상대할 수 있다는 서방님께서 무슨 일이죠?"
티리스가 말했다. "본처가 바뀌었어. 파르노로."
리나가 놀랐다. "뭐? 파르노가? 어떻게 된 거지?"
마르티나가 말했다. "네가 떠난 후, 서방님께서는 본처를 없애셨는데, 우리끼리 다시 만들자고 해서 결투를 했어."
"그 결투에서 파르노가 마야님을 이긴 거야?"
3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리나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뭐 내가 떠난지 3년이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나는 탁자를 두드렸다. "그런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빨리 지하로 내려가야 해."
리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준비는 되신 거예요? 식량은?"
"내일부터 준비를 시작해야지. 티리스. 두 사람을 데리고 식량을 준비해. 그리고 리나는 나와 함께 길드에 가야겠어."
"그게 좋겠어요. 저도 오늘 돌아와 피곤하니, 들어가 쉬어야 겠어요."
리나는 일어서 티리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방님을 부탁해."
리나는 티리스의 귀에 속삭였고, 티리스는 웃으며 리나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티리스는 마르티나와 페트리아의 귀에 차례로 속삭였고 두 사람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말이 무언지 밤이 되어 알 수 있었다. 리나의 특기인 나를 쓰러트리는 기술이었다.
다음날, 나는 길드로, 부인들은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다음 소환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특히 나의 주머니 창고에 마력으로 움직이는 냉장고를 준비한 것이었다. 마력으로 움직이도록 전원부를 개조하니 냉장고는 잘 돌아갔다. 그런 대형 냉장고를 3개를 마련하여 주머니 창고에서 마음대로 꺼낼 수 있게 배치했다. 항상 소환에서 보존식을 먹는 불편이 많이 없어질 것이었다.
물은 항상 문제였다. 물은 잘 상하고, 무겁고, 보관하기 힘들고,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식중독에 잘 걸렸다. 그래서 물통과 정수기를 배치했지만, 보관양이 10명의 2일분 정도가 한계였다. 그래서 마법으로 물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했는데, 문제는 너무 많은 마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시로 물을 채우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나 물은 문제가 많았다.
티리스에게 주머니 마법을 맡기고, 나는 길드로 갔다. 길드에 도착하니, 리나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늦으신 걸 보니, 어제 티리스에게 당한 것 같네요?"
리나가 의미신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부인들에게 맹세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부인들 이외의 여성과 일을 벌이지 않기로. 리나는 지금 내 부인이 아니다.
"아무래도 괜한 짓을 했어. 그런 것으로 쓰러질 내가 아니잖아."
리나는 얼굴을 돌려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일보다 용을 찾는 것이 급해."
우리는 계단을 올라가 과거 리나의 개인 사무실이었던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니, 한 중년 전사가 일어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로즈. 베이더씨와 무슨 일이지?"
자세히 보니, 낯이 익었다. 내가 지하를 탐색할 때 같이 갔던 모험가였다.
로즈는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다시 지하에 들어가야 겠어."
그는 우리 앞으로 의자를 가지고 와서 마주보며 앉았다.
"마왕을 죽였다고 했잖아. 또 무슨 일이야?"
어라? 이 남자는 어떻게 모든 것을 아는 거지?
리나가 웃으며 일어서 그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뒤에서 안았다. "베이더씨. 내 남편이에요."
뭐... 리나의 성격으로 2년이란 시간 동안 금욕할 리가 없지만... 내 앞에서 자기 남편이라 소개하니 조금 이상했다.
나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우리와 같이 가실 건가요?"
그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저는 로즈와 틀려서 길드를 오래 비울 수 없습니다."
그 남자는 얼굴 그대로 행정에 능한 스타일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길드 운영에 큰 지장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이번에는 저와 3명이 내려가는 것으로 하죠."
리나가 물었다. "3명? 혹시 저를 빼려는 건가요?"
나는 리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3사람의 실력을 생각하면, 네가 없는 것이 좋아."
리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리나가 내 앞에 서서 가슴을 두드렸다. "날 빼놓고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왜 네가 동행하려는 거지?"
"그럼 당신은 왜 날 기다린 거죠?"
나는 리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솔직히 이 것은 리나의 자존심을 건드려 우리와 동행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리나도 내 의도를 알고 미소를 지었다.
"티리스가 식량을 준비하려면 3일은 필요해. 너도 휴식이 필요하니 3일 후에 침묵의 샘 앞에서 만나지."
"좋아요."
나는 일어서 길드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그는 내손을 잡고, 우리는 악수했다. "감사합니다."
길드를 나오며 조금 허탈했다. 내 부인이었던 여성이 다른 남성과 결혼하다니...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쳐보니 착잡했다.
여관에 돌아가 티리스가 준비한 식재료들을 살펴보았다. 역시 티리스는 요리에 소질이 많았다. 신선하고 질 좋은 채소와 과일이 냉장고에 가득했고, 말린 곡식도 많았다. 중요한 것은 둘의 비율이 이상적이라, 어느 식재료가 남고 모자를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고기가 적었다.
그런 표정으로 티리스를 보자, 티리스가 설명했다.
"고기는 말린 것이 많아서 스프를 만들 때 넣으면 충분해요. 치즈와 버터도 충분하거든요. 그리고 중간에 사냥할 수 있으니, 상하기 쉬운 고기를 구할 필요가 적을 것 같아요."
나는 납득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얼굴에 힘든 것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시장을 보며 티리스의 잔소리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았다.
"저 두 사람. 완전히 손이 하얀 아가씨들이에요. 양배추를 들어보지도 않고 냅다 사겠다고 나서면 안 되잖아요."
"그렇다고 그렇게 깐깐하게..." 마르티나의 목소리에 불만이 가득했다.
"냉장고에서 한달 이상 보관해야 해.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것을 구해야, 나중에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
페트리아가 말했다. "적당히 먹으면 되잖아."
역시 이 둘은 여행 경험이 없었다.
화를 내려는 티리스의 어깨에 손을 올려 진정시켰다.
"그 답은 열흘 후에 알게 될 거야. 제니스는 티리스보다 몇 배는 더 세심하게 물건을 구입했어."
이 두사람은 보존식으로 만든 요리가 얼마나 먹기 힘든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재료를 가지고 맛있게 만드는 제니스의 실력도.
이번 여행에서 티리스의 실력이 기대되는 것이 이런 이유다.
다음날부터 나는 장보기에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이 불평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티리스는 너무 깐깐했다. 농사에 경험이 많아 채소들을 들어보고 이리저리 살피며 가장 좋은 것만 골라 담았다. 제니스라면 반나절에 끝날 장보기가 하루 이상이 필요했고, 나도 지쳐버렸다.
하지만 티리스를 말리지 않았다. 그 것은 내가 감수해야할 내 부인의 특성이니까.
그렇게 잘 참는 나를 보며, 마르티나와 페트리아가 더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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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를 다녀 온지 3일 후 해가 뜨기 전에 우리는 침묵의 샘으로 갔다. 그 곳에 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하지. 티리스."
티리스는 호수 앞으로 가서 손을 내밀었고, 현정이 때처럼 호수 가운데까지 길이 생겼다. 3년 만에 다시 들어가는 미궁이었다.
나와 리나는 몇 번이나 왔던 길이지만, 두 사람은 처음이라 신기해했다. 티리스는 집에 온 표정이었다.
갈림길에 다다르자, 나는 전에 돌 그림이 있는 곳에 향했다. 그 곳에는 현정과 함께 보았던 그림이 그대로 있었다.
"티리스, 이 그림들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있어?"
"생생해요. 내가 이 그림들을 그렸던 것이. 저는 다른 용이 찾아와주길 바라며 이 그림들을 그렸죠."
"그래서 묻고 싶어. 왜 그림을 그린 거지?"
티리스가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용들은 기억을 쉽게 잊어버려요. 신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자신이 용인 것을 망각해버리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이 미궁의 곳곳에 그림을 그려 내 소원을 잊지 않으려 했어요. 아이를 낳고 싶다는 나의 소원을."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특히 나는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리나가 물었다. "이 곳 말고 또 그림을 그려둔 곳이 많아?"
"내 기억에는 10군데 이상이야."
분명 나와 리나는 2곳만 찾았는데... 이 미궁에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이 많다는 것이다.
"어떻게 미궁 안을 돌아다녔지?"
티리스가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더니, 벽에 손을 대자 벽이 움직였다. 그 곳에 지름 3m 정도의 길이 있었다.
"내가 이 안을 다니던 길이야. 용의 마력으로만 열 수 있어."
"그럼 네가 잠들어 있던 곳으로 가려면?"
내 물음에 티리스가 손짓을 했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갔다. 조금 걸으니, 티리스가 벽에 손을 대자 벽에 구멍이 생겼다. 그 밖은 넓은 공간이었다. 바로 용이 잠들어 있던 곳이었다.
나와 리나는 정말로 그 곳인지 확인하려 둘러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마왕을 기다리며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불을 피웠던 흔적들을 보며, 그 곳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바닥을 살피다 낯익은 물건이 보였다. 현정의 머리핀이었다.
내가 집어들자 리나가 옆으로 왔다. "뭐죠?"
"현정이의 머리핀. 이걸 잊어버렸다고 마왕성을 다 뒤지고 다녔잖아? 그런데 여기 있었네."
리나는 현정이 머리핀을 찾기 위해 방 안을 뒤지며 도와달라고 부탁하던 때를 기억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티리스는 자신이 잠들어 있던 기단에 올라가, 서서 멍하니 주위를 바라보았다.
마르티나가 물었다. "여기에도 네가 그린 그림이 있어?"
티리스가 하늘을 가리켰다.
우리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니, 천장에 빛나는 그림이 보였다. 내용은 다른 그림들과 같았다.
"이상해. 왜 우리는 전에 이 그림들을 보지 못했지?"
티리스가 기단을 내려오자, 그림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용이 마력을 주입해야 그림이 보이는 것 같았다.
티리스는 걸어서 한 곳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네요. 서방님이 인간이 되려는 나를 구해주셨죠."
나도 그 때가 생각나서 입에 미소가 생겼다.
리나가 물었다. "물어볼 것이 있어. 인간이 되기를 그렇게 싫어했던 네가, 왜 서방님의 부인이 되겠다고 자청한 거지?"
"용은 자신을 이긴 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운명이야.
그런데 이 쪽의 마왕은 용을 제압할 능력이 없어서 내가 잠자는 틈에 몰래 내 등에 마법진을 그렸어. 나를 인간 여자로 만드는 마법. 나는 그 마법에 걸리려는 순간 이 곳으로 도망친 거야.
그런데 그 마왕이 나를 따라 여기까지 왔고, 잠든 나를 어찌할 수 없었어.
그런 짓을 하는 인간에게 복종한다? 정말 불쾌한 일이야."
"그런데 서방님은?"
"나도 인간이 되기 싫어 몸부림쳤는데, 서방님께서 나를 제압하고 내 몸 속에 마력을 끄집어 냈지. 솔직히 그 때 서방님께 마력으로 저항했어. 그런데 서방님께서는 마왕의 마법을 흡수하는 동시에 마력으로 날 제압했지.
난 나를 이긴 사람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어. 서방님께서는 나를 제압하셨어."
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미궁은 뭐고, 네가 다니는 그 통로는 뭐지?"
"원래 만들어진 미궁에 내가 들어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든 것뿐이야."
"이 미궁이 원래 있었다?"
티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가 이 미궁을 만든 거지?"
"초대 마왕. 서방님이 죽인 마왕의 선조. 그는 나와 또 다른 용을 제압했어. 그리고..."
"그럼 다른 용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티리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몰라. 용은 기억력이 떨어져. 그 용이 어디 있는지 기억나지 않아."
리나와 티리스의 대화를 들으니 실마리가 보였다.
"그럼 이 안에 그 용에 대한 정보도 있겠어. 특히 네가 그렸다는 그림 말야."
티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어요. 저는 당시에 기억나는 것이라면 뭐든지 그림에 남겼거든요."
"그래서 그림이 조금씩 다르군. 티리스. 천장의 그림을 다시 보여줄래?"
티리스는 다시 기단 위로 올라가 마력을 주입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내어 천장의 그림들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을 다 찍자, 리나가 내 뒤로 와서 태블릿을 보았다. "pc를 가져오신 거예요?"
"아무래도 쓸모 있을 것 같아 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아직 쓸 일이 없었어."
리나와 나는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전에 보았던 2군데의 그림들과 별로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림의 한 부분이 이상했다. 하늘의 용이 땅의 용을 찾아오는 부분, 그 부분에서 전의 그림에서는 분명 용이었지만, 만나는 부분에서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 그림의 용이 알을 낳는 장면에서도 용과 사람이 있었다.
그 후 세 마리 용이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이 보였다. 지하의 용을 임신시키는 용은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가 용으로 돌아갔다.
이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나는 태블릿의 사진을 확대해보았다. 용의 그림에서 인간의 모습, 그런데 그 인간과 용의 크기 차이가 없었다. 용의 크기가 20m라면, 그림속의 인간은 거인이었다. 이 의미를 알아야 했다.
그 때 머리 속에서 한가지가 연결되었다. 용과 인간, 마왕성, 어떻게 내 부인들이 각성하면 용의 육체가 사라지는지, 마지막으로 무책임한 놈이 준 능력.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한가지 가설이 생겼다. 그 것을 확인해야 했다.
마르티나가 내 팔을 잡았다. "서방님. 무슨 생각하세요?"
"아... 별 거 아냐. 이 그림에 이상한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다른 그림들을 모두 확인해야 겠어. 티리스. 다음 그림은 어디지?"
티리스가 인도한 몇 곳을 돌아보아도, 새로운 그림은 없었다. 용들이 그렇게 기억력이 없다니 놀랍고, 기억을 잃지 않으려는 용인 시절의 티리스의 집념도 대단했다.
미궁을 이동해도 마물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티리스에게 와서 애교를 떨었다. 이 미궁의 주인은 티리스니까.
특이한 그림은 그 곳 하나였다. 그 중 2개의 그림. 그 그림들에서만 용이 아닌 사람의 모습이었다. 또 의심 가는 것이 사람과 용의 크기, 서로 비슷했다.
용의 실제 크기를 아는 나는 놀랍지 않아도, 이 쪽에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 세상에서 용은 2m 정도였다. 이쪽 세계와 비교해 물질의 크기가 10배로 작아진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왕성의 위치와 크기가 의심되었다. 마왕성같은 거대 물체가 서울 위에 떠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최첨단 레이더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마왕성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물질이라는 의미였다.
더불어 나와 현정을 제외한 나의 세계 사람들이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티리스가 인도한 곳은 마왕과 마지막 전투를 벌였던 곳이었다. 그 때는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마왕을 죽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서,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지금 보니 참으로 넓고 화려했다. 마왕이 서 있던 기단과 그 가운데의 옥좌, 기단으로 올라가는 계단 등은 화려함에 극치였다. 기단 곳곳에 박힌 보석과 금으로 치장한 옥좌는 마왕의 부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보물을 가지고 외교에 등한시했던 마왕의 멍청함도 알 수 있었다.
티리스가 옥좌 뒤의 벽에 손을 대니, 벽이 열렸다. 그 안에 들어가니 금화와 보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마왕성과 비슷한 양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갑옷과 무기들이 가득했다.
한쪽 벽에는 두루마기 책들이 가득히 쌓여 있었다.
리나가 둘러보다 검은색 채찍을 손에 쥐었다. "어라! 마법이 걸려있고, 정말 대단해."
리나가 채찍을 휘두르자 바람의 칼날이 주변을 할퀴었다.
리나는 또 다른 채찍을 들고 휘둘러보았다. "마르티나. 이 것도 같은 거야. 너에게 잘 어울려."
"정말?"
마르티나가 리나에게서 채찍을 받고 휘둘러보고 마음에 든 눈치였다.
"마왕을 죽였으니, 여기 있는 것은 모두 내 거야.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져도 좋아."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페트리아와 티리스도 여러 무기들을 둘러보았다.
페트리아는 대검 하나를 쥐고 휘둘러보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리나가 가서 그 검을 보았다.
"무게감이 전혀 없어. 게다가 마법이 걸려서 자동 수복되고, 바람 칼날 기능은 기본이야. 그리고 방어막을 만들 능력도 있어. 전위 전사에게는 최대의 무기야."
페트리아는 검을 휘두르며 만족해했다.
티리스는 마법지팡이 역할을 하는 건틀렛을 찾아서 양 팔에 장착했다. 마력 소비가 반으로 떨어지고 위력은 그대로인데다가 발동 속도가 반 이하였다. 티리스에게 적합한 무장이었다.
나는 구석에 쌓은 신발들을 찾아냈다. 조금 크다 싶었는데 신으면 발에 맞춰졌고, 움직임이 10배는 빨라졌다. 다른 4명도 신어보고 만족했다.
그 외에도 많아도 가져갈 수가 없었다. 특히 보물은 아까웠다. 놔두면 리나가 가져가겠지만, 걸어서 10일 이상 걸리는 이 곳까지 사람들이 도보로 운반하기 힘들 것 같았다.
리나도 그런 생각에 아쉬운 표정이었다.
나는 한가지 방법을 생각했는데, 리나가 알면 곤란했다.
나는 한쪽 구석의 책들을 보며 말했다. “리나, 저기 책들. 내용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여기서 며칠 머물자.”
리나가 동의했고, 우리는 그 곳에서 며칠 머물었다.
나는 다른 무기를 둘러보는 척하며, 구석에 마법진을 그려 넣었다. 이 곳의 물건들은 앞으로 쓸모가 많았다. 이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 곳에 들러 물건들을 주머니에 넣었다. 너무 많이 가져가면 리나가 알게 될 것 같아 티가 안 날 정도만 넣어두었다.
한쪽 벽에 쌓인 두루마기들을 보니 양이 많았다. 나는 하나씩 들어보며 내용을 머리 속에 넣었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곳 세상에서의 용과 마왕, 엘프와의 역사에 대해.
그 곳에서 머무는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하며 티리스가 만든 음식을 먹었다. 페트리아와 마르티나가 돕는데, 티리스에게 매번 혼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만큼 티리스는 입이 험하다.
티리스가 만든 음식은 마왕성에서의 식사만큼 훌륭했다. 소환에서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행복했다.
리나가 물었다. "티리스, 지하에 온 지 열흘이 넘은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신선할 수 있지? 냉장고가 있다해도, 이렇게 신선한 것은 힘들잖아."
"고르는 사람의 능력이야. 나는 한달 이상 신선한 것들을 골랐거든. 저 둘이 고른 것을 미리 먹었어. 눈썰미가 없어서 금방 상하는 것을 골라 왔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능력차이다.
리나가 물었다. "베이더씨. 이제는 어떻게 하실 거죠?"
"우선 지상으로 나가서 찾아봐야지. 여기에 더 이상 단서가 없잖아?"
"무언가 알아내신 것이 있어요?"
나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페트리아가 말했다. "무언가 알아내신 것이 있네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웃었다. 심리 마법이 특기인 페트리아를 속이기 힘드니까.
티리스가 말했다. "뭐죠? 뭘 알아내신 거죠?"
"아직은 심증이니 말할 수 없어. 확실한 증거를 보면 알려줄게. 그리고 리나. 엘프 중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을까?"
리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엘프들은 숲에서 살면 천년 이상을 살 수 있어요. 제가 마을을 나올 때가 200세 때니까. 지금 살아있는 장로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마을에 돌아가는 것이 싫어?"
리나가 세로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정말로 어두웠다.
"그래도 가야해. 엘프의 장로들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
"숲 속에서 다른 종족들에게 배타적인 그들이 우리를 만나줄지... 만나도 우리의 물음에 대답해줄지 몰라요."
"그건 내가 할 일이야. 넌 그들에게 우리를 인도해주면 되는 거야."
리나가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정말 하기 싫은 표정이었다.
"길드에 다른 엘프들이 있잖아. 그들에게 부탁해 보지. 너는 적당한 사람을 소개 시켜줘."
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기 전날 밤. 무책임한 놈이 원하는 일을 했다. 마력을 이동시킬 마법진. 태블릿을 보며 마법진을 새기고, 땅에 묻어두어야 했다. 페트리아에게 부탁해 리나에게 수면 마법을 걸고, 마왕의 옥좌 밑에 마법진을 새긴 돌판을 옥좌 밑에 묻어두었다.
마력이 움직이는 것을 보아,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