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5화 〉용의 전설을 따라서 (115/148)



〈 115화 〉용의 전설을 따라서

한달이 조금 넘어, 우리는 메디아에 도착했다. 메디아는 과거 유명한 수인들의 성지였지만, 지금은 수인들이 이 땅을 버렸기 때문에 인간들의 땅이 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보리 재배지로 유명했다. 밀과 보리를 말할 때, 보리는 맛이 없고 밀은 가루로 반죽해 빵을 만들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이 있어서, 사람들은 보리보다 밀을 선호했다.
그래도 보리는 나름대로 장점이 많았다. 척박한 땅, 추운 지방에서 밀보다 더 잘 자랐고, 가축도 잘 먹었다.
그리고 술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 곳은 맥주 생산으로 유명했고, 맥주로 만든 위스키가 많이 나왔다.

메디아 시내의 여관에 들어가자마자, 여자들은 위스키에 취해버렸다.
내가 마셔보니, 우리 쪽의 위스키보다 텁텁하고 단맛이 부족하고, 잘 정제되지 않아 쓴 맛이 강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맛이 있어, 우리는 취해버렸다.

우리가 술과 음식으로 즐거워하던 중에, 한 남자가 우리에게 와서 엘렉트라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엘렉트라님."

엘렉트라가 그 남자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반가워 에릭. 20년 만인가?"

"그렇네요. 제가 어릴 때 뵈었는데, 이제는 손자를 두고 있어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반가운 시선을 나누었다. 그런데 엘렉트라의 시선이 슬퍼보였다.

에릭이 의자를 가져와 우리와 동석을 했다.
"여기에 무슨 일이죠? 이 사람들은..."

엘렉트라가 대답했다. "아...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 조사할 것이 있어. 이 사람들이 길드에 안내인을 찾았거든."

"그렇네요. 무엇을 찾으러 오신 거죠?"

"용."

에릭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농담 마세요. 몇 백년 전에 사라진 용이 어디 있다고 여기서 찾는 거죠?"

내가 말했다. "이 곳이 용이 처음 나타난 곳이니까요."

에릭이 나를 보며 웃었다. "용은 몇 백 전에 살았고 여기를 떠난 것도 전설로는 700년 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용에 대한 단서가 있다고요?"

700년이면 실바텍투라에서 용이 떠난 때와 비슷했다.

"여기 온 것은 용이 여기서 뭘 했고, 떠난 이유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에릭은 턱을 문질렀다. "알겠습니다. 이 곳에 내려오는 전설이라면, 이 곳의 원주민에게 물어봐야지요."

"그런 사람이 있나요?"

"인간들 중에서는 없고, 오크 쪽에 있을 겁니다.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오래된 오크의 마을이 있지요."

엘렉트라가 말했다. "인도해 주겠어?"

나는 탁자에 금 몇 개를 올려놓았다. "길드에 대한 정식 의뢰입니다."

에릭은 웃으며 금을 쥐었다. "좋습니다. 접수는 제가 하지요. 내일 새벽에 이 곳에 오겠습니다."

마르티나가 말했다. "우리는 오늘 도착했어요. 휴식이 필요하니 열흘 후에 뵙죠."

"알겠습니다."

에릭은 일어서 식당을 나갔다.

티리스가 엘렉트라에게 물었다. "혹시 너의..."

엘렉트라가 고개를 숙였다. "저의 손자에요."

"길드 소속인 것을 보니, 아버지가 모험가?"

"저의 첫남편은 같은 파티의 짐꾼이었지요. 내 딸은 길드에서 만난 모험가와 결혼했고, 나와 사위의 후광으로 저 애가 길드에서 일할 수 있었어요."

페트리아가 물었다. "에릭이 이 곳에 사는 것은 네가 떠나 보낸 거야?"

"사위의 고향이여서, 은퇴 후에 그 애와 이 곳에 정착했죠. 로즈와 내가 힘을 써서 길드의 지부를 만들고, 저 애를 지부장으로 삼았어요."

내가 물었다. "이런 한적한 곳에 길드가 할 일이 있어?"

"적자 투성이에, 이름뿐인 길드 지부죠. 로즈가 있을 때, 길드장의 권한으로 에릭에게 월급을 줬지만, 몇 년 전에 끊겼죠. 그래도 저 애는 계속 길드장의 직함을 유지하고 있어요."

엘렉트라는 한숨을 쉬고 마르티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휴식이라지만, 열흘이나 필요한 이유가 뭐죠?"

"우리 나름대로 조사할 시간이 필요해."

엘렉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나와 티리스, 엘렉트라와 마르티나로 나뉘어 메디아를 둘러보기로 했고, 페트리아는 개인 연습을 위해 시간을 요구했다.

나와 티리스는 메디아에서 가장 큰 건물의 탑 위에 올라섰다.
탑 위에서 내려다보니, 메디아 전체가 내려다 보였다. 이 곳은 신비한 곳이었다. 주변이 모두 보리밭으로 지평선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이 곳만 200m의 낮은 산지에 나무가 가득했다. 보리밭에 있으면 태양으로 일사병에 걸릴 것 같은데, 이 곳은 나무 그늘로 시원했다. 이 곳이 신성한 장소로 생각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티리스는 넓은 보리밭을 보며 기뻐했다. "우와! 이렇게 넓은 곳이 모두 보리와 밀 밭이에요. 정말 대단해요."

"네 고향보다 넓어?"

"훨씬요. 제 고향은 삼백명이 안되는 작은 마을이었어요. 그리고..."
티리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티리스의 등 뒤를 안았다. "슬픈 기억은 모두 잊어버려."

티리스는 내 손을 잡았다.
"서방님도 저도, 아프고 슬픈 기억은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서방님이 이성을 잃고 제가 울고...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하면서 티리스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너도 아이를 낳고 싶어?"

티리스는 몸짓으로 의사를 표했다.

"그럼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해야 해."

티리스가 조금 놀라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이를 더 낳지 않는 것은 너희들이 제대로 키울지 못 믿어서야. 전에 나는 내 아이들이 망가지는 것을 보아왔어. 지금 내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너희들이 제대로 한국 생활에 적응해야 해."

"하지만 우리는 마왕성에..."

"만약 그 아이들이 일반인들처럼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어 한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도와줄 거지? 나는 내가 그런 생활을 잘 몰라서 아이들을 돕지 못했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아무 것도 못했어.
너희들은 이렇게 용으로 사는 방법도 알고, 한국인으로 사는 방법도 알아야 해. 그래야 아이들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어."

티리스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서방님은 저희들이 아이를 낳기를 바라시나요?"

"너희들이 원하잖아? 나도 원해. 티리스를 닮은 아들이 있다면 좋겠어."

티리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 아이가 세상에 적응 못하고 외롭게 살면서 괴로워하는 것은 볼 수 없어. 그래서 너희들에게 시간을 주면서 현실에 적응하라는 거야. 나중에 아이들이 어떤 삶을 선택해도 도와줄 수 있도록."

"어떤 삶을 선택해요?"

"너희가 살던 세상에서 마법과 검을 쓰면서 살지, 한국인으로서 현대 문명을 누리며 살지. 마왕성 안에서만 조용히 살지.
너희는 아이들에게 모든 선택지를 다 내밀 수 있어야 해. 내 말 알겠지?"

"그래서 우리에게 대학을 다니라고 한 건가요?"

"그리고 내가 내년에 군대에 가려는 이유야."

티리스가 놀랐다.

"너희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야. 만약 나 없이 현실에 적응한다면, 너희는 아이를 가질 자격이 되는 거야.
하지만 나 없이 살 수 없다면, 나는 다시 생각해 볼 거야. 그런 능력이 없다면,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서로 불행이니까."

티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현실에 적응하려고 애써봐. 알았지?"

"서방님. 사랑해요." 티리스가 내 품에 안겼다.

............

저녁이 되어 숙소에 돌아왔을 때, 마르티나와 페트리아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식탁에 앉자, 종업원들이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엘렉트라는?"

"손자 가족들하고 지내기로 했어요. 그 쪽이 더 어울리니까요."

"마르티나, 무슨 수확이 있어?"

"전혀요. 이 곳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300년이 되지 않아요. 정착할 때 이 곳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만 있었다 정도예요."

마르티나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다.

"페트리아. 여관을 나가지 않았다며?"

"방 안에서 과거에 배웠던 마법들을 기억해내며 연습해봤어요."

"진전은?"

페트리아가 손을 들어 마법을 사용하자, 여관 전체가 따뜻해졌다.
"실내 온도를 올리는 마법입니다. 불 마법으로 열을 내고, 물 마법으로 수증기를 만들어 안의 공기가 쾌적하게 만드는 거죠."

티리스가 물었다. "그게 무슨 쓸모가 있지? 난로가 있으면 되고, 냄비에 물을 끓이면 되잖아."

"두 마법을 동시에 조화롭게 사용하는 훈련인가?"

페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한 손으로?"

그 말에 티리스와 마르티나가 놀랐다.
마법의 상식으로 무영창 마법은 양손으로 한가지씩 두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세가지 이상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페트리아는 한 손으로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마야나 티리스도 동시에 사용하는 마법도 2가지로 제한되어 있다. 이론적으로 페트리아는 4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사용가능한 마법은 몇 가지?"

페트리아가 속으로 계산해보고 말했다.
"제가 배우기로는 동시에 3가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력이 많이 떨어집니다만 실전에 유용합니다."

"예를 들면?"

"힐링, 워프, 바람 칼날을 동시에 사용하는 거죠. 마왕에게 기본 기술입니다."

"그렇군. 위기에 몰렸을 때 워프로 도망치며 신체를 치유하고 동시에 공격까지? 그럼 기본 기술은 몇 가지 있지?"

"제가 배운 기본 조합이 5가지입니다. 그 외에 응용기술이 있습니다."

"모두 기억해?"

"평생 배워온 겁니다."

그날 밤. 나는 페트리아에게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나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일부터 연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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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이 지나, 우리는 에릭과 함께 메디아 성을 나가 보리밭을 걸었다.

우리는 흔히 말이나 마차를 이용하면 빠르고 편리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여행하는 곳은 대부분 전쟁이 거듭되는 지역들이라 제대로 된 도로가 부족했다. 마차를 사용하면 중간에 진흙에 빠지거나, 바퀴가 고장 나서 자주 애를 먹었다.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편했다.

게다가 주머니 마법이 있으니 편한 차림으로 이동할 수 있어 짐차의 필요성이 적었다.

여담이지만, 판타지 장르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은 장거리 여행에 좋지 않다. 내 경험으로는 2시간만 타고 이동해도 지쳐버렸다. 마차를 이용해야 한다.

마차가 아니라면, 여행에서 유용한 동물은 나귀다. 편하게 타고 나닐 수 있고 짐도 잘 운반했다. 빠른 이동이 아니라면 장거리 여행에 나귀가 더 유용하다.

말은 데리고 여행하기에 정말 까다로운 짐승이다. 성격도 까다롭고, 관리가 힘들고, 말도 잘 듣지 않고, 반항을 잘한다. 게다가 고기가 맛이 없다.
나귀는 순하고, 말을 잘 듣고, 고기가 연해서 육회로도 맛있다. 그러므로 같이 여행할 동물은 나귀가 훨씬 좋다. 짐승을 데리고 가는 것은 짐을 운송하는 것 외에 식량이 부족하면 잡아먹는 의미도 있다.

보리밭 지대를 지나자, 황무지가 펼쳐졌다. 인간의 영역이 아닌 오크의 영역에 들어선 의미였다.

"이 방향으로 이틀 더 가면 오크의 마을입니다."

전부터 있던 의문을 해결하려 에릭에게 질문했다. "오크들은 숲에 살지 않아?"

엘렉트라가 설명했다.
"여기 황무지 지대를 지나면 숲 지대가 나와요. 그들도 숲에 살지만, 엘프들과 살고 있는 곳이 다르죠. 엘프들은 바위가 많은 고지대에, 오크들은 물이 고여 있는 늪지대에 살아요."

티리스가 물었다. "왜 그러지?"

"먹는 음식이 틀리죠. 엘프들은 나무 열매와 어린 나뭇잎을 주로 먹고, 오크들은 늪에 사는 개구리와 생선, 작은 벌레를 좋아해요. 먹는 음식이 틀리니 사는 곳이 틀리죠. 그런 점에서 베이더씨의 말이 맞아요. 인간들은 모두 먹을 수 있어서 어디든지 살 수 있잖아요. 그건 너무 부러워요."

에릭이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 곳에 인간들이 와서 황무지에 도시를 만들 때, 오크들이나 엘프들이 비웃었다고 하죠. 인간들은 물과 땅이 있으면 어디든 정착할 수 있은데, 그들은 힘들거든요."

"어디든지 밀과 보리를 키울 수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이지. 게다가 빨리 번식해서 수가 늘고. 그들이 보기에 인간의 발전과 팽창은 정말 경이적인 수준일 거야."

엘렉트라가 웃었다. "그건 맞아요. 우리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죠."

"에릭. 오크의 마을까지 얼마나 걸리지?"

"걸어서 3일만 더 가면 그들이 마중 올 겁니다. 황무지는 몸을 숨길 공간이 적고, 밤눈이 밝은 그들은 금새 접근하는 다른 종족들을 알아보거든요."

"그들은 우리를 크게 경계할 거야. 그래서 그들과 마찰을 일으키기 싫어."

모두가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부인들. 저 3명은 오크들이 보기에 재앙 수준의 괴물들이야. 인간들에게도 그렇지만.  오크들은 내 부인들을 무서워해서 경계할 거야."

나는 이 세계에 왔을 때, 현정을 두려워하던 오크들이 생각났다.

에릭이 말했다. "그건 걱정마세요. 저는 그 쪽과 잘 아니까요. 길드 일로 몇 번 그들을 만나봤습니다."

에릭이 씩씩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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