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디바 마테르를 만나러
다음날 오후 즈음에 우리는 가까운 마을에 도착했다.
그들은 외부인인 우리를 경계했다. 그럴 것이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그들의 것과 너무나 달랐다.
나는 팔을 들고 말했다. "우리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뿐입니다."
손에 쟁기를 든 한 농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당신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이지?"
숲 저편의 사람들과 말이 달랐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언어마법이 있어 말이 통했다.
"말씀드렸듯이 길을 잃은 것뿐입니다."
"그런 수상한 차림으로 당신들을 어떻게 믿지?"
"이렇게 말이 통하는 우리가 어딜 봐서 수상하다는 거죠? 그리고 이 옷은 야외에서 잠자기 좋은 복장입니다. 여행을 하는데 편리하죠."
그들은 경계를 약간 풀었다. "어디서 오는 사람들이지?"
"알리진입니다."
그들은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렇군. 전쟁에서 도망쳐온 사람들이군. 그렇다면 옷이 그럴 수 있지."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당신들은 어디로 가는 거지?"
전쟁이라는 말에 변명거리가 생각났다.
"집을 잃어버렸으니, 갈 곳이 없습니다. 서쪽으로 가면 물이 풍부한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가는 겁니다."
"이봐! 그런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도, 그 쪽은 마물들이 많고 숲이 깊어서 농사짓기 어려워."
"그래도 우리가 정착할 곳은 있을 겁니다. 살던 땅에서 쫓겨난 우리가 갈 곳은 그런 곳 뿐입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악세사리 몇 개를 꺼내었다.
"저어... 이건 변변치 않아도, 우리에게 오늘 먹을 것과 잘 곳을 주십시오. 내일 떠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한사람이 그 것을 받아 들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내 부인들에게 끈적한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내 집에 헛간이 넓으니 그 곳에서 하루 쉬지. 먹을 것은 내가 주지."
나는 몸을 굽혔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인도를 받으며, 그들의 음흉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들에게는 교훈이 필요했다.
우리가 헛간에서 쉬고 있는데, 주인이 우리에게 빵과 음료수를 주고 나갔다.
페트리아가 그의 마음을 읽고 나갔다. "여기에 수면제를 넣었네요. 먹고 잘 자라. 그런 의미인가요?"
"밤에 우리를 덮칠 생각이겠지. 나를 죽이고, 너희를 놀이 대상으로 삼고."
티리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감히 누구에게 그런 행동을..."
"해가 있는 동안 쉬도록 하지. 저들은 간이 작아서 약을 먹이고 밤이 되어야 움직일 거야."
나는 빵과 음료수를 헛간에 있는 말에게 주었다. 1시간도 안되어 말이 쓰러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겁도 많은 놈들이군. 남자를 경계해서 이렇게 강한 약을 쓰다니..."
내가 혀를 차자, 3명이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모두 자리에 누워 자는 척하자고. 그리고 밤이 되면 주제를 알려줘야지."
나는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주변이 시끄러워 잠에 깨니, 내 옆에 티리스가 있었다. "티리스. 마르티나와 페트리아는?"
"밖에서 그 놈들을 처리하고 있어요. 걱정마세요. 죽이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나는 일어서 티리스와 함께 헛간 밖으로 나가서, 두 사람이 만든 참상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마을 사람 20명 정도를 무릎 꿇게 해 놓고 노려보고 있었다.
"모두 똑바로 들어! 서방님께서 죽이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정도로 끝내는 줄 알아.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런 허튼 짓을 하는 거야?"
"이 중에 몇 명을 죽여야 정신 차리겠지. 이봐. 그래 너! 네가 우리에게 약 탄 빵을 가져왔지? 너 죽고 싶냐?"
그 헛간의 주인이 벌벌 떨며 이마를 땅에 대었다. "살려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티리스가 걸어가 마법탄으로 그를 공격했는데, 그는 죽지 않고 땅에 쓰러질 뿐이었다.
"네 놈이 다시는 여자에게 음심을 품지 못하게 했다. 다시는 그 물건 쓸 일이 없을테니까."
모두 놀라서 티리스를 바라보았다.
"감히 우리에게 그딴 생각을 품다니. 역겹군. 그러니 영원히 그 물건을 못 쓸 거다."
그는 다시 무릎 꿇고 이마를 땅에 대며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그 것 만은...."
"자업자득이다. 앞으로 쪼그라든 네 물건을 바라보며 오늘을 반성해라."
나는 두 손을 들고 기지개를 켰다. "아무래도 잠을 더 자야겠어."
티리스가 말했다. "페트리아. 오늘은 네 차례야. 서방님을 모셔. 그리고 마르티나는 이 놈들에게 더 교훈을 주고 돌려보내. 우리는 조용히 있고 싶으니까."
마르티나는 웃으며 채찍을 들고 무릎 꿇은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공격했고, 공격 받은 이들은 땅을 뒹굴렀다.
"평생은 아니어도 3년 동안은 그 물건을 쓰지 못할 거다. 우리를 건드린 벌이니 달게 받아라. 이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마르티나와 티리스는 잠시 후, 헛간에 들어왔다.
다음날 새벽, 우리가 마을을 떠나려는데 여성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항의를 했다.
"이봐요. 내 남편을 어떻게 한 거죠?"
"내 남편이 울면서 3년 간 못한다고 해요. 도대체 뭘 한 거죠?"
티리스가 당당히 말했다. "우리에게 음심을 품은 벌입니다."
한 여성이 티리스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고 내 남편을 고자로 만들어요? 우리 집은 일손이 부족해서 아이가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만들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모두 같은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실제로 당신 남편은 한달 정도면 정상이 되고, 다른 분들은 열흘을 정도면 됩니다."
여성들이 안도의 표정이 되었다.
한 여성이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신 거죠?"
"우리에게 나쁜 생각을 품고 실행했으니까요. 불쾌해서 한 겁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시지요."
나는 주머니에서 금덩이 몇 개를 꺼내어 여자들에게 던졌다. 그들은 금덩이를 줍고는 얼굴이 밝아졌다.
우리는 무사히 그 마을을 빠져나왔다.
다음 마을은 상업도시라서 여행자들이 머물만한 여관이 있었다. 그 곳에서 짐을 풀고 현지 사정을 알아보기로 했다.
3일 간 얻은 정보로는, 이 곳은 숲의 남쪽과 교류가 거의 없고 언어와 풍습이 전혀 달랐다. 게다가 엘프는 거의 없고, 수인과 오크들과의 교류가 많았다.
이 지역은 2년 전부터 전쟁 중이었다.
오랫동안 힘을 키운 알리진이 주변 나라들을 공격했고, 승승장구하며 많은 나라들을 복속시켰다. 이 곳은 변방이라 아직 알리진의 힘이 미치지 못했지만, 이 곳 영주가 알리진에 항복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였다.
알리진의 대모 크레아트릭스 다이애나는 아직 생존해 있고, 이 곳에서는 ‘디바 마테르’라 불리고 있었다. 알리진의 존속과 발전은 그녀의 힘이 커서, 주변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유명했다.
하지만 요즈음 그녀의 행보에 모두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갑자기 정복을 외치며 주변 국가들을 공격해 복속시켰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잔혹 행위가 있어, 이제 그녀를 저주하는 무리가 많이 생겼다.
그 곳의 모험가 길드의 지부장과 대화하며 다이애나에 대한 정보를 듣는데, 그녀가 변한 것은 3년 전이라고 했다.
바로 내가 티리스를 데리고 간 직후였다. 다이애나는 용이 사라져서 폭주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의 설명으로는 알리진은 이 곳에서 도보로 한달 거리에 있고, 전시 상황이라 이동이 어렵다고 했다.
"그럼 알리진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알리진이 용병을 모집하고 있는데, 여기 모험가들도 많이 참가하고 있어. 반대쪽도 그렇고. 당신들이 실력 있다면, 용병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의 설명을 듣고, 앞으로 할 일을 결정했다.
............
한달 후, 우리는 100여명의 모험가들과 함께 알리진에 도착했다. 중간에 검문이 있었지만, 용병을 지원한다는 말에 순순히 보내주었다. 다행히 우리가 있던 남쪽 지역은 주된 전장이 아니었다.
알리진은 생각보다 작은 성이었지만, 주변 보다 고지대에 위치하고 산 중턱에 견고한 성이 있어 방어가 수월해 보였다.
성 안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넓은 평지와 호수가 있었다. 이 정도의 넓이라면 10만명이 3년은 농성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게다가 알리진의 한쪽은 바다와 접해 있어, 봉쇄될 걱정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용병으로 지원하기 이전에, 알리진과 다이애나를 조사하기로 했다.
알리진은 외부에 잘 갖춰진 관료제와 군사제도로 유명한데, 안에서 보니 소문보다 더 훌륭했다.
보통 중세의 나라들은 세습제로 관료제를 운영하여,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해 문제가 생긴다. 그 것을 막는 것이 국가 교육제도인데, 알리진은 이 것이 뛰어났다. 엄격한 교육으로 부족한 자질을 메꾸는 경우가 많았다.
알리진의 좋은 제도는 군과 관료를 통한 신분 상승 기회와 함께, 귀족들이 지위를 잃을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높은 귀족도 실적이 없으면 지위가 낮아지고, 노예로 출발해 재상으로 승진한 경우도 있었다. 유리 천장과 유리 바닥을 모두 없는 공평한 제도를 운영해, 국민들에게 의욕을 주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다이애나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했다. 온 국민들이 그녀를 칭송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최근 다이애나를 본 사람도 없고, 그녀의 이상 행동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았다. 그녀는 항상 주변 국가들과 분쟁을 피하고, 평화유지에 가장 많은 노력을 해왔다. 알리진은 건국 이후, 도성이 포위 되었던 적이 10번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평화를 유지해 왔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전쟁을 외치며 주변국들을 공격했다.
우리는 여관에 머물며 낮에는 각자 도시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고, 저녁에는 각자의 정보를 취합했다.
"결국 다이애나를 직접 만나보는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여기에 방문객인 우리를 쉽게 만나줄지 모르는 일이에요. 게다가 우리의 몰골이..."
마르티나의 지적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몰래 들어가는 수밖에."
3명이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왕궁 안에 어디 있는지 알면 들어가서 만나봐야 할 것 아냐? 그러니 다이애나가 있는 곳을 알면 되는 거야."
"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오늘 낮에 궁에서 시녀로 있다가 은퇴한 할머니를 만나봤어. 그녀에 따르면 왕궁 북쪽 끝에 다이애나의 처소가 있다고 했어."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
"오늘 만나봐야지."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3명은 하늘을 날고, 나는 지붕 위를 뛰어서 왕궁에 침입할 거야. 모두 각오는 돼 있겠지?"
3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정이 넘어, 우리는 여관을 빠져나와 왕궁으로 향했다. 3명이 하늘에서 떠있으며 나의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에, 나는 지붕을 넘나들며 왕궁에 들어가기로 했다.
왕궁에 들어가려고 왕궁 벽에 발을 댄 순간, 유리벽에 닿은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내 몸이 튕겨나갔다. 마력장벽이었다.
나는 땅에 뒹굴러 마력의 눈으로 바라보니, 왕궁을 돔처럼 마력장벽이 방어하고 있었다. 하늘에서도 침입이 불가능했다.
3명이 내 옆으로 내려왔다.
티리스가 말했다. "이 성 전체를 마력장벽이 보호하고 있어요. 왕궁 전체를 보호하려면 엄청난 마력이 필요한데. 정말 단단한 장벽입니다."
페트리아가 말했다. "혹여라도 힘으로 장벽을 부순다면, 병사들이 우리를 찾아낼 겁니다. 몰래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요."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내가 아니었다.
나는 티리스를 바라보았다. "티리스, 내가 혼자 궁에 들어가겠어. 너희들은 여관에서 대기해."
"네? 어떻게 들어가시려는 거죠?"
나는 허공답보로 허공에 발판을 만들며 하늘 높이 올라갔다.
궁 위의 하늘 높이에 이르러 아래를 향해 그대로 자유낙하하며, 다리에 마력을 모았다. 방어벽에 이르자, 낙하하는 스피드와 다리에 모은 마력으로 방어벽에 충격을 가했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어벽이 부서지고, 나는 궁 안으로 침입하는데 성공했다.
궁 전체에 비상 호각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왕궁 북쪽으로 뛰어갔다.
북쪽으로 뛰어가니, 넓은 호수를 가진 정원이 나타났다.
마력을 느끼어보니, 용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강한 마력이 느껴져 그 곳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 10여 명의 여성들이 한 명을 보호하고 있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보호받는 그녀가 바로 다이애나였다.
나는 그녀들 앞에 착지해서 손을 앞으로 올렸다.
"저는 당신들을 해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디바 마테르를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