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엘프 멸망의 진실(1)
우리는 방어벽을 걸어 나왔고, 우리들 주위에 엘프들이 몰려들었다. 생김새를 보니 안에 있던 엘프들과 틀렸다.
한 명이 우리에게 걸어 나왔다. 엘렉트라였다.
"북쪽 숲을 통과하신 것 아닌가요? 왜 여기 있죠?"
"그러는 너는 왜 여기 있지?"
"동생을 만나고 잠시 이 곳에 있을 겁니다. 여기에 무슨 일이죠?"
나는 주위의 엘프들을 둘러보았다.
엘렉트라는 우리 4명을 이끌고 외딴 곳으로 갔다.
마르티나가 우리 주위에 작은 마법 방어막을 만들었다. "이러면 밖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요."
엘렉트라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네가 방어벽 밖에서 있는 것을 보니, 너도 수족 출신이군."
"엄마의 피를 이어받았으니까요. 내 동생은 할머니를 모시는 이유로 안에 드나들 수 있지만요.
그런데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요?"
"그래. 우리는 700년간 이어진 용과 마왕의 거짓말을 파헤치려는 거야."
"700년간? 우리가 무엇을 속고 있다는 거죠?"
나의 설명에 4명은 놀라서 아무 말 못했다.
"설마... 그런 일이... 그럼 우리는 도대체 왜..."
"모두 용과 마왕의 욕심 때문이야. 그 것에 동조한 다이애나와 세레스, 그리고 옥산드라의 책임이 커."
"옥산드라?"
"마왕을 죽였다고 알려진 엘프."
마르티나가 물었다. "그녀는 자기의 목숨을 대가로 마왕을 죽였다고 하잖아요."
"만약 그 것이 거짓이라면?"
모두 아무 말 못했다.
"이제 우리가 파헤치려는 진실은 바로 그 것이야. 이제 우리는 메디아로 가서 옥산드라를 찾을 거야."
엘렉트라가 말했다. "저도 가겠어요."
"그럴 줄 알았어."
다음 날, 우리 5명은 메디아로 향했다. 내가 설치한 워프 마법진은 실바텍투라 근처에 밖에 없기에 메디아까지 도보로 가야 했다.하지만 며칠 후에 우기가 시작되어 시간이 없었다. 세 사람은 하늘을 날고, 나는 엘렉트라를 업고 빨리 이동했다. 그렇게 2일 만에 메디아에 도착했다.
메디아에 도착한 이후, 엘렉트라는 나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녀의 하소연에 3사람 모두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엘렉트라를 업고 뛰어다니는 상태에서 그녀가 무겁다고 불평했는데, 그 것이 엘렉트라를 상처 입혔던 것 같다.
메디아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진 밤이었다. 우리는 곧장 에릭의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꽤 큰 3층 집이었다.
페트리아가 말했다. "에릭이 꽤 능력 있는 것 같네?"
엘렉트라가 얼굴이 일그러지며 말했다.
"여기는 길드 지부 건물입니다. 에릭의 가족들은 3층을 쓰고 있죠. 2층은 사무실, 1층은 접수처. 손님이 없어 거의 파리만 날리고 있지만, 그래도 길드 지부인 겁니다."
엘렉트라는 문을 두드리며 품 안에서 피리를 꺼내어 불었다.
그러자 3층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에릭이었다.
"엘렉트라씨? 이런 밤중에 무슨 일이죠?"
"여기 있는 베이더씨가 긴급한 의뢰가 있어. 길드에 정식 의뢰야."
에릭은 문을 열어주었고, 1층에 등불로 안을 밝히려 했다. 그런데 마르티나가 마법으로 주위를 밝게 만들었다.
"엘렉트라씨와 같이 다녀서 보통이 아닌 줄 알고 있었는데, 정말 실력 있는 마법사이시군요."
에릭은 큰 거실 가운데의 탁자에 앉았고, 우리도 그 탁자에 둘러 앉았다.
"무슨 의뢰죠?"
"사람을 찾아주세요. 나이는 16세 정도, 외모는 미녀라고 해두죠."
"그 외의 특징은?"
"로즈마리차를 좋아하고, 집에 라벤더와 쟈스민을 키울 겁니다. 그리고 솔카 나무로 집 전체를 가리는 사람일 겁니다."
에릭이 생각에 잠겼다. "혹시 에우독시아를 말하는 건가요?"
"그런 사람이 있나요?"
"여기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마을에 사는 여성입니다. 나이는 30세. 세 아이의 어머니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15세 정도의 소녀로 착각하죠. 그녀의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형제 사이로 보일 정도로 어려 보입니다."
내가 생각한 그 사람, 아니 엘프인 것 같았다.
"혹시 그 여성은 고아가 아닌 가요?"
"아니요. 그 부모가 대대로 그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듣기로는 조상이 처음 이 곳에 온 정착민 중 하나였다죠."
혹시 아닐지 모르겠다.
"그래도 만나보고 싶군요."
"오늘은 늦었고, 내일은 쉬시죠.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만나려면 모레에 출발하면 좋겠네요."
"그러지요."
우리는 그날 길드 사무실 뒤에 있는 침대에서 잠을 잤다. 위에 사는 에릭을 가족들을 생각해서 부인들과 그런 일은 없었다.
다음날은 휴식을 겸해, 부인들과 메디아를 돌아보았다.
메디아는 큰 호수 옆에 세워진 도시로, 호수의 물을 이용한 계단식 농토가 장관이었다. 이 곳은 수전식 농법이 아닌 이유로 논보다는 밭이 많았고, 흐르는 물줄기의 양 옆에 밭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며, 스텔라의 말이 의심되었다.
스텔라는 메디아가 깊은 숲 속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있는 메디아는 낮은 언덕이 있는 평지에 가까운 지형이고 나무도 많지 않았다. 드문드문 나무가 있고 그 사이에 밭이 넓게 펼쳐진 전형적인 인간들의 거주지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길드로 돌아와 식사를 했다. 메디아는 상업도시가 아니라 밖에서 음식을 먹기 어려워, 에릭의 아내가 차려주는 음식에 의존해야 했다. 에릭의 아내는 꽤 음식 솜씨가 좋아 먹을 만 했다.
식사를 하며 나는 물었다. "이 곳 메디아는 예전에 깊은 숲 속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나무가 별로 없군요."
에릭의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여기가 아니라 저 산 너머에요."
그 말에 나는 크게 놀랐다.
"메디아라고 부르는 곳은 원래 저 산 너머 깊은 산 속을 말해요. 그 곳에 오크들이 살았어요. 그 때 인간들도 오크들과 섞여 살았는데, 인간들이 수가 많아져 이 곳으로 이주했죠. 예전 메디아에 살던 인간들이 이주했기에 이 곳을 메디아로 부르고 있는데, 외부 사람들은 과거 메디아와 이 곳이 같은 곳인 줄 알아요."
"그럼 그 곳에는 아직 오크들이 살고 있나요?"
"글쎄요... 오크들이 그 곳에 있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데, 최근 100년 간 그들을 보지 못했어요. 그러니 그들도 옮겨간 것으로 생각돼요."
나는 엘렉트라를 보는데, 그녀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럼 이 메디아가 만들어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아요?"
"그래도 100년은 넘어요."
무언가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에릭이 말했다. "혹시 산 너머라면... 우리가 내일 갈 곳이네요."
또 다시 놀랐다. 두 개의 실마리가 이어지다니...
다음날 새벽에 출발한 우리는 해가 산그늘을 없애는 시간 즈음에 에릭이 말한 에우독시아의 집에 도착했다.
에릭은 멀리서 보이는 여성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르티나가 말했다. "저건 최면 마법과 환각 마법... 이런 고차원의 마법이..."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페트리아를 보며 말했다. "페트리아. 저기 저 바위를 없애버려!"
내 명령에 페트리아가 칼을 빼고 바위를 둘 동강 내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결계가 파괴되는 느낌이 왔다.
에릭과 엘렉트라가 놀라서 그 여성, 에우독시아를 바라보았다. 에우독시아는 긴 귀와 함께 하이엘프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당신, 혹시 엘프인가요?"
"이 느낌... 당신은 하프가 아니군요. 하이엘프에요. 여기에 어떻게 하이엘프가... 혹시 당신이 옥산드라?"
그 여성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쉽게 결계를 부수고 내 정체를 알아내다니. 당신들은 누구죠? 당신은 에릭, 길드 지부장이죠? 저기 저 사람들은 당신이 데려온 사람인가요?"
에우독시아는 엘렉트라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어라? 엘프와 인족, 수족의 피가 모두 섞였네? 혼혈인가요?"
엘렉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에우독시아에게 다가갔다. "당신이 옥산드라인가요?"
"그 이름이 불려진 것이 700년 만이네요."
"마왕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12명의 하이엘프 중 하나, 마왕을 죽이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렸다는 당신이 어떻게 살아있는 거죠?"
옥산드라는 미소를 지었다. "긴 이야기니까. 차를 마시며 천천히 하죠."
우리는 옥산드라의 집 앞의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옥산드라는 집 안에서 차 주전자를 가지고 나와 우리에게 한잔씩을 따라주었다. 맛을 보니, 쟈스민과 비슷했다.
엘렉트라가 말했다. "이 맛, 이 향. 분명해요. 할머님께서 만들어주시던 쟈스민차예요."
옥산드라가 물었다. "당신의 할머니가 누구죠?"
"스텔라입니다."
옥산드라가 놀란 얼굴로 엘렉트라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래... 스텔라의 손녀군."
에릭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당신, 에우독시아는 대대로 이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닌가요? 가족들은 어디에 있죠?"
마르티나가 말했다.
"이 곳에 환상을 보이게 하는 결계가 있었어요. 이 안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가짜 기억이 심어지죠.
옥산드라, 당신은 700년 동안 이런 식으로 인간들을 속이며 살았던 거죠? 어떤 때는 아이,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이 되어 주위 사람들을 속이며 살아온 겁니까?"
옥산드라는 미소로 답을 했다.
마르티나가 화를 내려하자, 나는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우리가 여기 온 것은 진실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나를 찾아온 것을 보면 모두 알고 있는데, 무얼 더 알려고 하시는 거죠?"
나와 옥산드라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다이애나가 죽었습니다. 200년 전에."
옥산드라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요... 엘프도 영생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제 내 차례가 가까워졌네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볼까요? 당신들은 용과 함께 이 곳으로 도망쳐 왔어요. 그런데 용은 마왕과 싸울 의지가 없었죠. 그 것이 운명이었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한가지 방법을 생각했어요. 마왕과 타협하는 것이죠."
모두가 놀라서 나와 옥산드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왕은 용을 제압하는 것보다 영원히 사는 것을 더 바랬어요. 당신은 그 해결책을 타협안으로 내밀었죠?"
옥산드라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아무리 마왕이라도 쇠퇴해가는 자신의 육체를 보며 두려움이 커져갔죠.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혼자였어요.
그가 혼자 여기에 올 때부터 나는 그가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그는 자기 수명이 너무 짧다고 불만이 가득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에게 엘프의 수명을 주기로 했죠."
"마왕의 영혼을 엘프의 육체에 이식하는 것이죠?"
옥산드라가 미소로 대답을 했다.
마르티나가 말했다. "말도 안돼요. 마왕의 영혼이 어떻게 엘프의 육체에..."
"이미 있는 육체라면 힘들지만, 어머니 배 속에 있는 경우라면 가능하지."
내 말에 모두 놀랐다.
티리스가 말했다. "가능할 겁니다. 마왕의 영혼이 어머니의 육체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은..."
"결국 다이애나를 통해 마왕이 다시 태어나게 된 거죠?"
옥산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페트리아가 말했다. "그럴 수 없어요. 다이애나의 아이라면 세레스, 그녀는 여성입니다. 마왕이 여성일 수는..."
"마력을 사용할 수 없지만, 새 인생을 살 수 있지. 마왕의 타협안은 자신이 다시 태어나 엘프의 수명을 누리고, 마왕의 육체를 포기한다.
용과 남은 엘프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 겠지? 안전을 위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나와 마왕은 둘이서 합의했죠. 내가 당신을 죽은 것처럼 꾸며줄 테니, 당신은 다이애나의 몸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라.
대신 당신이 다시 부활해서 우리를 노리면 곤란하니, 당신의 육체를 포기하고 여기서 멀리 떠나라. 이 두 가지 조건에 그는 동의했죠."
"그리고 당신은 다른 엘프들이 보는 앞에서 금기의 마법을 사용하는 척하며 마왕을 죽이고 자신도 죽은 것으로 꾸몄죠. 다른 엘프들은 속아서 당신이 스스로를 희생했다 생각해 땅에 묻고 여기를 떠났죠. 그들이 떠난 후, 당신은 땅에서 나와 이 곳에 정착했고."
"맞아요. 잘 아시네요."
"그런데 왜 용은 자신의 육체를 잠재우고 마왕의 육체를 이용한 거죠?"
"내가 용을 설득한 방법은 용이 마왕의 육체를 이용해 다이애나가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모두 놀라서 아무 말 못했다.
"어떻게 다이애나가 처녀가 아니게 되었냐구요?
간단해요. 용은 어떤 남성 엘프의 몸을 이용해 다이애나와 사랑을 나누었어요. 용을 모시던 우리는 용의 요구에 따라야 했으니까요. 다이애나는 기쁨으로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죠.
그 것이 재앙을 부르는 것을 모르고."
"12명 중 하나가 처녀를 잃으니, 방어벽이 사라지겠죠."
"맞아요. 그 틈에 마왕의 공격을 받고 엘프가 전멸했죠."
나는 피식 웃었다. "자업자득이죠."
옥산드라와 엘렉트라가 나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힘을 키우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자신의 안전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런 나태함에 먼저 그들은 자신의 멸망을 가져온 것이죠."
옥산드라는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고 숨을 가다듬었다.
"나... 나도 동감해요.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용이 모두 다해줄 거라 믿고 기도하며... 우리 자신은 아무 것도 안한 무사안일로 시간을 보냈죠."
"제가 마왕의 공격을 받고 엘프들이 전멸했다는 기록을 보니, 마왕이 데려온 병력이 고작 5백에 불과합니다. 정예병이라 해도, 엘프들이 마음만 먹으면 막아낼 수 있었죠.
마왕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도망치지도 않고 앉은 채로 칼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싸울 의지라고는 도대체 찾아볼 수 없었다죠."
옥산드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래요. 우리는... 방어벽이 사라진 후에도 용이 무엇을 해줄 거라 생각해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어요.
마왕이 마을로 들어왔을 때, 용은 우리 12명을 데리고 도망쳤죠.
그러자 엘프들은 패닉에 빠져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서서 죽었어요."
"그 것만이 아닙니다. 마왕은 엘프들을 다 죽일 생각이 없었어요. 그들은 용이 떠나가고 마을이 점령되자 모두 자살하였습니다."
옥산드라와 모두는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고작 5백의 병력으로 10만의 엘프를 단 몇 시간 만에 죽이는 것이 가능해요? 마을이 점령당하자, 그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동반 자살의 마법을 실행했어요. 그 결과는 잘 아시죠?"
옥산드라는 충격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