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0화 〉마왕의 시련 (130/148)



〈 130화 〉마왕의 시련

엘리자가 말한 날, 해가 지자 우리는 스토너 상회로 갔다. 엘리자는 외출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기다리자, 밖은 구름이 두꺼운 흐린 날처럼 꽤 밝았다. 하늘을 보니, 달빛이 너무 강했다. 엘리자의 말에 의하면, 마왕의 첫 시련은 두 개의 달이 하나가 되는 오늘과 같은 날이라고 했다. 엘리자가 우리에게 며칠 기다리라고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과거 마왕의 왕궁이었던 도시 북편의 숲으로 향했다. 과거 왕궁의 규모는 많이 축소되어, 과거 마왕의 침실이었던 궁궐 건물이 현재 테트라폴리스의 영주의 집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과거 마왕의 시체를 태웠던 정원은 관청 건물들로 흔적도 없었지만, 정원을 장식했던 나무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래도 정원 가운데의 호수를 매립해 길로 만든 것 같았다.

과거의 자리에 내가 서자, 제니스와 마야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엘리자를 보았다. "멜리사는 어떻게 되었지?"

"현 영주의 네 번째 부인입니다. 그리고... 다음 유력 영주 후보자의 어머니죠."

"네가 뒤에서 지원하고 있나?"

엘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하고 동갑이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웃었다. 내 부인을 거쳤으니 그래야겠지.

"지금 내 남편은 그 때 불에 타서 죽은 마왕의 사촌입니다. 그리고 서방님께서 그 아버지를 죽였죠."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전쟁이 빈번한 곳에서는 3촌만 거슬러 올라가도 은인과 원수 관계가 엮여 있다.

"저는 그 쪽과 혈연 관계가 아닙니다. 마왕의 육체를 받을 집안을 선택했을 뿐이죠."

뭐 그런 거니까...

"지금 이 곳에서 서방님은 과거 마왕을 죽인 용사, 이 곳 사람들에게 원수입니다. 오늘 동행은 남편에게도 당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데리고 온 겁니다. 그 걸 이해해 주세요."

제니스가 물었다. "지금 남편은 네가 엘리자인 것을 알아?"

엘리자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제니스와 마야는 안도의 눈빛을 엘리자에게 보냈다.

우리는 영주 저택의 가까이까지 다가갔다.

"여기서부터는 날아서 가야 해요."

제니스가 엘리자를 안고, 나는 허공답보로, 마야와 마르티나는 하늘을 날아서 영주의 저택 위를 지나갔다.

제니스와 엘리자는 저택 뒷 산의 정상에 내렸다. 정상 위에는 큰 바위를 깎아 만든 신전이 있었다. 전에 본 요새처럼 그 신전도 바위 안을 깍아내어 만든 건물이었다.

엘리자는 땅에 내려온 나에게 한 보석을 내밀었다.

"이건 뭐지?"

"마왕은 육체에 마왕의 영혼이 있다고 마왕인 것이 아닙니다. 이 곳에서 마왕의 시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제 아들인 마왕도 이 곳에서 시련을 통과해서 진정한 마왕이 되었죠. 그는 여기 오기 전과 온 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서방님께서 마왕의 유산을 찾으신다면, 이 것일 겁니다."

"이 보석을 가지고 어떻게 하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늘 위의 두 개의 달이 하나가 되는 날, 마왕은 이 보석을 가지고 저 바위 신전 한 가운데 서야 합니다. 그리고 시련에 통과하면 마왕은 스스로 걸어 나오지만, 통과 못하면 그대로 죽습니다."

"죽는다?"

"그 영혼이 육체를 떠나서, 우리는 다시 의식을 시작해 새로운 육체를 찾습니다."

"실패한 경우가 있었나?"

"제가 듣기로는 없었습니다. 다만 이 시련을 거치는데 엄청난 힘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제 아들은 한달 이상 누워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죠."

"나에게도 해당 되려나?"

"그 것은 장담 못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엘리자 스스로 입을 열었다.
"이 시련을 통과해 진정한 마왕이 되면, 그 모체를 부인으로 맞이합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저를...."

엘리자는 고개를 숙였다.

마야가 물었다. "이 돌이 왜 너에게 있는 거지?"

"이 돌은 마왕의 가야할 길을 가르쳐줍니다. 이 돌을 전달하는 것이 마왕의 어미의 사명. 저는 새로 마왕이 태어나서 이와 같은 것을 주었고, 새로 마왕의 어미가 될 그 아이가 같은 일을 할 거라 생각했었습니다만, 그러지 못했지요."

"이 돌을 가지고 우리 쪽에 왔던 거야?"

"아닙니다. 이 돌은 내 몸의 일부로 몸 안에 들어가 있다가, 평생 단 한번 꺼낼 수 있습니다."

"단 한번?"

"마왕을 잉태한 후... 몸 안에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돌을 새로 태어나는 마왕의 몸에 넣어주는 것이 어머니로서 저의 마지막 임무였습니다."

제니스가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 돌을 꺼낼 수 있었지? 네 아들이 마왕이었잖아. 한번 꺼낸적 있잖아."

"어머니로서 마지막 임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마왕의 15세 생일에 몸 밖으로 빠져 나옵니다. 저도 한번 그래서 다신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는 그 보석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이 돌이 내 몸을 빠져 나온 것이 얼마 전입니다.
그리고 서방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죠. 저는 이 돌이 내 몸을 빠져 나오고 서방님이 찾아오셔서, 마왕의 역사가 이대로 끝났음을 알았지요. 서방님께서 찾아오시니... 모든 것이 서방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엘리자는 나에게 무릎을 꿇었다. "서방님. 부탁드립니다. 마왕과 그 어미이며 부인인 여성들의 슬픈 역사를 이대로 끝내주세요."

엘리자는 나에게 보석을 주고 손을 떼었다.

나는 손에 보석을 꽉 쥐고 신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신전 안에 들어갔는데,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들고 있는 돌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손에 쥔 돌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돌이 빛나기 시작했다.

내 머리 위에 천장이 뚫려있고, 흐린 날의 태양과 같이 밝은 두 개의 달빛이 내 머리 위에 내려쬐고 있었다.

그러자 내 앞의 시선이 변했다. 이 느낌... 무책임한 놈의 세계와 비슷했고, 쟈브로 지하의 마왕의 유산과 같았다. 그 안은 빛이 없지만, 주변에 안개가 낀 것처럼 흰 공간이었고, 주변에는 나무와 바위 등 자연물도 꽤 있었다.

내 앞에는 수많은 마물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내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왕이여! 너는 네 자신을 스스로 증명하고, 우리의 지식과 의지를 계승하라."

역시 이 것은 마왕의 시련. 그렇다면 눈 앞에 보이는 마물들을 모두 죽여야 했다.

그런데 내가 주머니 마법을 사용하려는데, 발동되지 않았다. 외부 장비 없이 맨 몸으로 해쳐나가야 했다.
하지만 항상 들고 다니는 라이트 세이버용 막대기가 10개 이상 있고, 마력도 넘쳐났다. 방어력이 걱정되어도 마법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라이트 세이버를 전개해서 검은 칼날을 만들고 빙빙 돌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 소리는 정말 나를 기본 좋게 만들었다. ‘휭, 휭’ 소리와 함께 양 손에 라이트 세이버를 들고 마물들을 노려보았다.

"무엇을 쳐다보지? 당장 와라!"

내 목소리를 신호로 마물들이 달려들었다.

맨 처음 달려든 것은 키가 2m에 가까운 늑대들. 그들이 이빨을 세우고 달려들자, 나는 우선 10개의 폭발 마법을 하늘을 향해 날렸다. 내 주위 20m의 반경에 원형으로 폭발한 마법으로, 폭발 안과 밖의 마물들이 순간 분리되었다.

포위되었을 때는 먼저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적의 수를 줄여야 했다. 폭발의 연기가 가실 때까지 10초, 그 동안 원 안의 마물들을 모두 처리해야 했다.
나는 라이트세이버를 10m 이상 전개해 내 주위로 휘둘렀다. 마물들이 잘려나가는 것이 보였다. 몇몇이 하늘로 점프해 나에게 달려들었는데, 나는 순간 하늘로 뛰어 올랐다.
땅에 착지하면 공격하려고 늑대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폭발의 연기가 가시며 마물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머리 위에 바람 발판을 만들고, 몸을 돌려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하면서 발로 발판을 딛고 아래를 향해 돌진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땅으로 돌진하는 나에게 마물들이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자유낙하 에너지와 더불어, 마력을 발에 모아 몸을 다시 돌려 발을 땅으로 향하게 하면서 땅을 강하게 찍어 눌렀다. 지면으로 내가 만든 충격파가 전파되었고, 마물들은 흔들리며 비틀거렸고 넘어지는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포위당했으면 빨리 출구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마물들이 비틀 거리는 틈에, 쓰러진 마물들이 많은 곳을 향해 달리며 주위 마물들을 잘라내며 달려나갔다.

포위망을 뚫었다 생각했는데, 내 머리를 돌이 때렸다. 나무 위에서 원숭이들이 나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 뒤의 하늘에서 새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마물들이 다시 나를 포위하려고 몰려들고 있었다.

발 밑에 이상한 느낌이 있어 내려다보니, 내가 제일 징그러워하는 뱀들이 가득했다. 땅과 하늘 모두가 마물들 천지, 어디도 숨을 곳이 없다는 듯 마물들이 나를 포위했다.

우선 나는 마력을 모아 주변으로 폭발시켰다. 내 주변으로 폭발하는 마법의 폭풍이 날아가며, 마물들을 찢어죽이며 밀어냈다.

나는 가쁜 숨을 다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주위 30m 이상이 마물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나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 밖에서는 마물들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나에게 돌을 던지는 원숭이들과 하늘에서 공격할 새들.
이 것들을 먼저 처리하기 위해, 나는 나무 위로 뛰어올라 원숭이 3마리를 한번에 베어버렸다. 다른 원숭이들이 도망치려는데, 나는 다시 주변으로 마력 폭발을 일으켰다. 이번엔 불이 포함된 폭발로 반경이 10m 정도였지만, 구형으로 퍼진 마력에 불이 포함되어 안에 있는 것들을 확실히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옆의 나무로 이동해 다시 같은 마법으로 원숭이들을 처리했다.

하지만 땅 밑에는 마물들이 몰려들어 땅으로 내려갈 수도 없고, 원숭들도 반 이상이 살아남아 있었다. 성가신 것은 새들이 하늘을 장악해 점프하기도 힘들고, 땅 밑에서는 마물들 외에 뱀들이 가득했다.

화불단행. 나쁜 일은 한번만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지금 나에게 제대로 적용되었다.
지금까지 지상의 마물은 늑대들뿐인데, 아파트 1층 높이만한 뿔소들이 달려왔고, 뒤에 고양이과 맹수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이족 보행의 곰들과 높이 5m 가까이 되는 유인원들이 그 뒤를 걸어오고 있었다.

먼저 뿔소들이 내가 있는 나무를 들이받아 넘어뜨리려 했고, 나는 옆의 나무로 뛰어가는데, 중간에 새들이 방해했다. 나는 새들에게 부딪혀 땅으로 떨어지는데, 땅 밑에 늑대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땅을 향해 바람 마법을 발생시켜, 바람의 칼날로 늑대들을 잘라냈다. 우선 발이 닿을 공간을 확보하고, 주변으로 바람의 칼날을 날려 늑대들을 베어냈다.
그런데 뿔소들과 곰들에게는 바람의 칼날이 통하지 않았다.

나는 라이트세이버를 휘두르며 마물들을 죽여나가는데, 끝도 없이 몰려들었다.
특히 하늘에서 공격해오는 원숭이들과 새들이 성가셨다. 새들이 내 몸을 쪼으면 그 곳이 피가 나고 당장 부어올랐다. 독이 포함되어 있었다. 갈수록 곰들의 앞발톱으로 내 몸의 상처가 늘어갔다. 이대로는 내가 당할 것 같았다.

나는 온 몸에 마력을 모아 주변으로 폭발시켰다. 이번에는 전보다 위력을 30배 이상 높여 폭발시켰다. 이렇게 마력을 끌어 쓰면 내 몸이 상하는데, 내 전신에 엄청난 고통이 닥쳐왔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가쁜 호흡을 정리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 50m 내의 마물들이 모두 전멸했다.
그 뒤에 있던 마물들이 나에게 접근해 오려는데, 땅에 떨어진 동료들의 시체 때문에 빨리 올 수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내 몸에 힐링을 걸고, 남은 마력을 체크했다. 지금 내가 가져온 마력의 1/3만 소비했다.
마력의 여유가 있지만, 문제는 고통 때문에 내가 다시 이렇게 강력한 마법을 다시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기까지 10분은 필요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왼손을 들어 앞에 있는 마물들을 향해 마력을 방출했다. 내 바람 마법에 마물들이 잘려나갔다. 그래도 마물들은 두려움 없이 나에게로 접근해왔다.

나는 한숨을 쉬고 라이트세이버에 마력을 주입했다. 당군간 마력 소비가 적은 이 마법으로 상대하기로 마음 먹었다.

포위 되기 전에 상대를 쓰러트려라. 칼은 다수의 마물들과 상대하는 방법이라며 강조했다.

나는 속으로 칼에게 불평했다.
‘이런 상황에서 포위되기 전이 어디 있지? 그리고 네 마누라를 내 침대로 던져 넣은 네가 나에게 무슨 소리야?’

"칼! 또 다시 본다면, 먼저 네 팔을 잘라버린다!"
나는 칼에게 욕을 하며, 마물들에게 달려들었다.

상대들은 마물들의 시체로 발 디디기도 힘들었지만, 나는 바람 마법으로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 내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나는 곰의 머리를 베고, 옆에 있는 곰의 허리를 잘랐다.

그리고 중력마법으로 가벼워진 내 몸을 마물의 시체를 발로 디뎌 공중에 떠올라 길게 전개된 라이트세이버를 휘두르며 새들을 죽여 나갔다.

이 상황에서도 원숭이들인 돌을 던졌다.
그런데 이 것들은 머리 회전이 빨랐다. 시체에서 얻은 기름을 돌에 바르고 방금 내 불 마법으로 불이 붙은 나무에서 불을 붙여 나에게 던졌다. 신체강화나 방어마법으로도 그 정도의 불은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불이 만드는 빛과 연기, 열기로 인해 싸우기가 힘들어졌다.

여담이지만 전쟁터에서 화염 마법을 자주 사용하면, 상대는 열기로 인한 피해보다 산소가 떨어져 입는 피해가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 것을 우려해 빨리 이동하며 지상의 마물들을 죽여 나갔다.

내가 땅에 발을 디디며 또 한가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땅 속에 진동 마법을 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뱀들은 내장이 터진 채로 하늘로 튀어 올랐다.

그렇게 죽여나가자 마물들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들의 대부분은 원숭이들과 거인 유인원들. 그런데 그들이 모여 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맨 앞에 거의 남지 않은 늑대들과 곰들, 그 뒤에 뿔소들, 맨 뒤에 원숭이와 유인원들이 있었다.

이렇게 진을 짜며 시간을 보낼 때, 나는 하늘을 향해 바람 마법들을 날려 새들을 죽여 나갔다. 그들이 진을 만드는 약 1분 간의 시간 동안, 나는 공중의 새들을 거의 전멸시켰다.

내가 저들의 진을 보자, 그들은 눈빛으로 마지막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내게 남은 마력은 아직 풍부했다. 가져 온 것의 반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마법을 영창했다. 그리고 저들의 가운데를 향해 마력을 방출했다.

"익스플로젼!"

내 외침과 함께 마물들 한 가운데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 많은 마물들이 죽어나갔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힐링으로 내 몸을 고치고 다시 일어섰다. 그래도 마력을 끌어 쓴 내 육체에는 통증이 깊이 남았다. 육체적으로는 문제 없어도 지금 내 손이 떨렸다. 너무나 큰 고통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앞에 달려오는 늑대와 곰의 무리들이 보였다. 내가 라이트 세이버를 고쳐 잡고 전투 자세를 취하는데, 뒤에 있던 뿔소들이 달려들었다. 그 속도를 보니, 앞에 가는 늑대와 곰의 무리들도 함께 밟아버릴 기세였다. 그리고 내 머리 위에 남아 있던 얼마 안되는 새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도망칠 곳을 모두 막아버린 것이었다.

나는 빨리 워프 마법을 영창했다. 파르노의 특기인 단거리 워프마법. 늑대들이 내 팔을 물었을 때, 나는 워프로 그 자리를 벗어나, 뿔소들과 원숭이들의 중간에 나타났다. 우선 내 팔을 문 늑대를 파이어볼을 던져 죽이고, 내 팔을 고치며 원숭이들에게 달려들었다.

내 앞에 있는 거인 유인원의 다리를 잘라내고, 점프로 뛰어 옆의 유인원의 목을 찌른 다음, 그 유인원의 어깨를 발로 차고 옆으로 점프해 지나치며 한 마리이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그 옆 유인원의 배를 두 칼을 동시에 찔렀다. 내가 아는 찌르기의 달인, 디노의 가르침대로 상대의 심장과 간을 정확히 찔러 단번에 죽여버렸다.

한 순간에 4마리의 유인원이 쓰러지자, 지능이 있는 원숭이들과 유인원들은 당황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소리가 나고, 마물들이 뒤로 물러섰다.

내 앞을 보니, 한 명의 인간이 걸어왔다.

"당신이 마지막 시련인가?"

그는 칼을 뽑았다. "그렇다. 나와 싸워 이겨야 진정한 마왕이 될 수 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는 마왕이 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야."

"그럼 너는 왜 여기 온 거지?"

"마왕을 굴복시키려."

"그렇다면 나를 이겨야 한다."

나도 라이트 세이버를 검은 칼날로 전개했다. "좋다. 와라!"

그의 검이 나를 찔러왔을 때, 빠른 속도에 나는 당황했다. 나 이상의 스피드였다. 게다가 베기 검술이 아닌 찌르기 검술이었다.

우리가 보통 알기에 판타지 장르에서 주인공은 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검만큼 관리가 힘들고 까다로운 무기도 없고, 사람을 상대로 한 전장이 아닌 마물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쓸모가 적다.
검이 잘 사용되는 것은 휴대가 쉽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과 도끼를 주로 사용하는 모험가들도 작은 검을 휴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모험가의 검술을 배운 나는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 일격 필살의 공격기 위주로 훈련을 시작했다. 먼저 칼이 긴 무기로 공격하면 디노가 찌르기로 마무리했고, 나는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파르노를 지켜야 했다.
이 경우 회피가 최우선이고 바로 반격해야 했다. 회피 후 반격의 전술은 반드시 일격필살, 한번에 적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면 다음 상대의 공격에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 때 파르노는 나를 도와줬다. 내가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상대를 파르노의 단검이 마무리했다.

그렇게 단련된 나는 검술도 찌르기 위주의 공격기가 주였다.

다행인 것은 모험가 출신들은 거의가 베기용 검술을 먼저 배운다. 검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선 전위 전사라는 의미로, 칼과 같이 대검으로 먼저 적에게 큰 타격을 입히는 전술을 사용해야 한다. 이 경우 찌르기용 검보다 베기용 도가 더 유리하다.
칼의 검은 2m 가까이 되는 클레이모어 같은 대검이었지만, 그의 기술은 도를 사용한 검술이었다.

이렇게 배운 전술은 의외로 인간들을 사용한 싸움에 취약하다.
갑옷과 방어구가 없는 마물들은 언제나 약점인 신체부위가 검에 노출되었는데, 이런 부위를 노린 검술은 인간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았다. 그런 부위를 갑옷과 방어구가 커버하기 때문에, 전쟁에서의 칼 싸움은 마물들과의 싸움과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자의 검술은 그런 약점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나는 방어구가 없다. 이러면 찌르기 검술에는 전술의 선택이 좁아진다.
게다가 나만큼 빨랐다.

이 자의 검을 피하며 나도 공격을 했지만, 빠르게 거리를 벌리는 상대에게 나는 고전했다. 내가 한발 다가가면 그는 거리를 벌려 유지했다. 정말 성가신 상대였다. 참말로 인간을 상대로 특화된 검술이었다.

그렇게 검을 나누다가, 뭔가 이상했다. 마야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이렇게 싸움에서 밀린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전의 소환에서 전 마왕에게 많이 고전했다.

그 동안 나는 ‘강함’에 익숙해 이렇게 밀리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너무 당황했다.

순간 나는 상대와 거리를 벌려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대도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반성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제일 강하고 나와 상대할 적은 없다고 자만해왔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나는 마왕과 직접 상대한 적은 두 번째 세계뿐이었다. 마야도, 미야도 제대로 된 마왕이 아니었다. 전의 세계의 마왕도 천년 전에 사라졌다 잠깐 나타났을 뿐이었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마왕은 진정한 마왕, 지금까지 나의 자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내 부인들과 용을 보고 마왕이 약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진정한 마왕은 강했다. 용이 두려움에 떨 정도로 강했다.

그런 생각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나는 제대로 된 싸움 앞에서 흥분이 되어 입가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웃지?"

"몇 년 만에 이런 싸움인지... 이렇게 나의 목숨을 건 싸움은 이번이 다섯 번째야."

첫 번째는 내가 파티에 정식 마법사가 되어 동굴의 고블린 왕에게 사용했던 폭발 마법. 그 때 나는 내 생명을 줄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마력을 다해 공격했다.

두 번째는 포터스 전투에서 우리 파티가 마왕군에게 포위되어 필사의 탈출을 했을 때, 그 때 나는 마력이 다해 디노를 고쳐주지 못했지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디노는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나에게 감사했다.

세 번째는 두 번째 세계에서 마물들에게 포위 되었을 때, 프레드릭이 죽음을 각오한 돌진에 나도 뛰어들었던 일. 그 때 프레드릭은 배부터 몸이 두동강나 죽었고, 나는 프레드릭의 상체를 방패 삼아 적의 대장 마물에게 뛰어들어 뜨거운 피의 마법으로 이겼다.

네 번째는 두 번째 세계에서 서쪽 산맥을 넘어 마왕을 암살한 작전.

우리는 살 생각이 없이 적 수도에 잠입했다.
왕궁에 가는 도중에 30명 넘게 죽었고, 마왕 앞에서 우리는 8명만 남았다. 내 앞에 있던 4명이 몸으로 막는 사이에, 우리 파티원은 마왕에게 돌진했고 메트라와 야다의 마법이 직격하는 순간, 나는 마왕의 배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래도 죽지 않은 마왕은 나에게 마력을 담은 손칼을 내리쳤고, 동료 한명이 몸으로 막고 내 공격을 유도했다.

그가 외쳤다. "베이더! 내 몸을 찔러서 마왕과 함께 죽여!"

나는 그 때 망설이지 않고 그의 배에 칼을 찔렀고, 배를 통과한 칼은 마왕의 배에 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그의 몸에 뜨거운 피의 마법을 전개했다. 마왕을 안고 있던 그의 몸을 통해 마력이 전달되었고, 마왕은 극심한 고통에 울부짖으며 거리를 벌렸다.

그 때 나는 특기인 고속 이동 마법으로 빠르게 접근해, 마왕의 목에 칼을 찔러 넣어 죽였다.

지금이 다섯 번째. 내 생명을 건 싸움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녀석은 두 번째 세계의 마왕과 비슷한 실력이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강해서 마왕들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내 착각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마왕은 제대로 된 마왕이 없었을 뿐이었다.

나는 최후의 일격을 위해, 두 개의 라이트 세이버 막대기를 하나로 이었다. 그리고 두 개의 힘을 하나로 모아 2m의 검은 칼날을 전개했다.

내 마지막 일격을 알고 마왕도 자세를 취했다.

고수간의 대결. 일합에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내는 순간이었다.

이 때 먼저 공격하는 자가 불리해 우리 둘은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이런 일합 싸움에서는 먼저 달려드는 쪽이 불리한 것이, 달려들며 호흡을 더 가져가면서 공격이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우리 둘 다 그 것을 알고 발을 땅에 끌며 천천히 상대를 향해 나아갔다. 1초에 10cm도 안 되는 속도로 천천히 다가간 우리는 3m 정도의 거리에서 멈추었다. 이제 한 발만 더 가면 상대의 몸에 칼을 댈 수 있는 거리였다.

그 때 내 머리 속에 디노의 목소리가 울렸다.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데, 내 팔과 다리를 아까워하면 이길 수 없어. 불공평하잖아? 내가 취할 것은 목숨인데 왜 내 팔다리를 아끼지?’

그 말이 맞았다. 파르노가 마야를 이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마야가 몸을 사리는 동안, 파르노는 미쳐있었다. 이런 때에 아낄 것이 없어야 했다.

나는 칼을 위로 들고 내려치는 상단 자세로, 상대는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중단 자세였다.
이 것이 포인트였다. 중단은 역습을 전제로 한 자세로 수비와 공격을 모두 할 수 있지만, 고수의 일합 승부에서 어정쩡했다. 중단을 취한 상대에게 최선의 수는 바로 육참골단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오른발을 끌며 앞으로 5cm 움직였다.
상대는 반응하지 않았다. 진정한 공격은 왼발이 움직여야 오는 것이 상식이었다. 더욱이 두 발이 사이가 좁으면 내려치는 공격의 위력이 줄어들 것이었다.

내가 왼발에 힘을 주어 앞으로 조금 움직이자, 상대가 움찔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나는 왼팔을 칼 자루에서 손을 떼고 등 뒤로 돌리며, 오른손에 잡고 있는 칼자루을 내리쳤다. 2m가 넘는 검은 칼날이 상대의 머리 위로 내려갔다.

상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 몸으로 파고들며 칼을 휘둘렀다.

나는 내리치는 오른팔의 방향을 바꿔서 상대의 칼을 향해 돌렸다. 내 팔꿈치가 밑으로 향하고 칼자루를 잡은 주먹이 하늘로 향하도록 만들며, 내 몸을 찔러오는 상대의 칼에 내 오른팔을 내어주었다.

그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 그는 내 팔을 향해 칼의 방향을 바꾸어 휘둘렀다.

상대의 칼이 내 오른팔을 잘라내자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나는 등 뒤로 돌린 왼팔을 앞으로 내밀며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왼팔이 상대에 몸에 닿자마자, 마력을 전개했다. 뜨거운 피의 마법, 마왕이라면 반드시 통할 필살기였다.

내 오른팔이 피를 내뿜는데, 상대는 내 마법에 극심한 고통으로 땅에 쓰러졌다. 이 정도의 마력이 몸 안에 들어오면 살아남을 마족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 증거로 상대는 그대로 쓰러져 움직이지도 못했다. 나의 승리였다.

순간 눈 앞의 광경이 바뀌고, 내가 들어온 신전의 돌 벽들이 보였다. 내 머리 위의 달빛을 보며, 나의 승리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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