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4화 〉클레어의 약속(2) (134/148)



〈 134화 〉클레어의 약속(2)

용사는 고인돌 위에 서 있었다. "감히 내 안식을 깨우다니."

"안식? 웃기지마. 마음대로 영혼이 놀고 있던 주제에. 그리고 신전에서 재미보는 사람들의 몸에서 너도 많이 즐겼잖아?"

4사람의 내 부인들이 용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용사는 헛기침을 했다. "그거야... 남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즐기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저 여자지?"
나는 클레어를 가리켰다.

내 말에 마야와 마르티나가 클레어를 노려보았고, 클레어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웅크렸다.

"뭐... 남자라면 그런 재미도 있어야 하잖아? 여기서 천년이 넘도록 갇혀 있었다면..."

"그래서 이 성스러운 도시를 타락시킨 거냐?"

"성스러워? 매일 그 짓거리를 하던 곳인데? 밤만 되면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에, 아기를 죽이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뭐... 그 일이 있는데 아이가 없을 리 없지?

"그런 놈들을 사제라고 거느리며 신으로 군림했던 거냐?"

"내가 신이 되고 싶어 되었냐? 그 놈이 그렇게 만든 거야."

"너도 그 무책임한 놈을 그 놈이라 부르네?"

"무책임? 맞아! 태어나서 그토록 무책임하고 무례한 놈은 처음이었어."

"결국 너도 그 놈 때문에 신이 된 거냐?"

"신을 만들어 놓고 죽을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어.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영혼의 형태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 밤에 더 재미있었어.
그런데 저 여자가 와서 보고 듣는 것 말고도 더 재미있는 방법을 알려줬지. 그런데 말야. 남자 몸에 들어가는 것보다 여자 몸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어."

나를 포함한 모두의 얼굴이 황당해졌다.
이 자식... 완전 변태네?

"너.... 나를 이상한 사람이다 생각하는 거야?"

"그럼 네가 정상이냐? 천년 동안 살면서 재미 있는 것이 그 것 하나?"

"천년 동안 못해본 내 심정이 어떤지 알아?"

"그렇다면 네 마누라를 불렀어야지."

"테라티아?"
그 용사는 두 손 바닥을 내게 보이며 흔들었다.
"말 하지 마. 그 악녀..."

"악녀?"

"밤마다 날 얼마나 괴롭혔는지...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여자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밤마다 날 괴롭히고, 잠도 못 자게 만들고... 얼마나 먹어대던지... 내가 뼈빠지게 일해서 돈을 벌어와도 나에게는 죽 한그릇... 그 걸 먹고 밤에 힘을 쓰라는 거야?"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 용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테라티아의 몸에 용의 영혼을 집어넣은 거지?"

"그 놈에게 물어보니까. 용의 영혼을 인간의 몸에 가두어두려면, 강한 영혼이어야 한다고 했어. 정말로 내 마누라 몸에 집어넣으니, 힘 한번 못쓰고 잠들어 버렸어.
정말 대단한 여자란 말야..."

용사의 말에 모두가 질려했다.

"그 용 말야. 그 여편네 몸에 들어갈 때 외쳤어.
악! 이 여자 뭐야? 너 설마... 네가 강한 이유를 알 것 같아. 이런 여자를 부인으로 둔다면 너는 엄청나게 강해야 할 거야.
라고 말했어."

제니스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지금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잖아요? 당신은 정말로 에브람님입니까?"

"내가 소싯적에 그런 이름을 썼지."

"정말로 성전에서 내가 조는 것을 보았나요?"

"보다마다! 네 아들이 성전 기둥에 쉬야 했던 것도 기억해. 네가 구석진 곳에 끌고 가서, 여기에 해결하라고 했잖아?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그 곳은 바람이 적어서 냄새가 머물러. 한달동안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어. 물론 사제들은 어떤 들개가 실례한 거라 생각했지만,"

제니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데 너 말야. 정말로 간절히 기도했어. 네 기도력이 너무 강해서 너에게 힘을 줬지. 그렇게 사람들을 많이 죽일지는 몰랐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너에게 힘을 줘서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며 나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알아?"

제니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웅크렸다.

용사는 마야를 바라보았다. "어이, 용! 너 말야. 내 마누라 정도에게 지는 실력으로 아직도 살아 있었어?"

"서방님께서 날 살려주셨지."

"그럼 아직도 가슴털에 흥분하냐?"

마야의 얼굴이 빨개졌다. "무... 무슨 소리야?"

"내 마누라가 너를 몸에 받아들인 이후로, 내 가슴털을 만지는 버릇이 생겼어. 물어보니 내 마음 속의 네가 원한다고 하던데?"

"으아악!" 마야는 머리를 부여잡고 웅크렸다.

용사는 마르티나를 바라보았다. "어어! 너는 마왕이네?"

"마왕의 후손이다."

"그럼 잘 때마다 베개에 침을 흘리지? 아아... 너도 결혼했으니 네 남편이 더 잘 알겠네. 자다가 침을 흘리지?"

마르티나가 얼굴이 붉어졌다. 그 건 사실이었다. 마르티나가 나를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자 마르티나가 울면서 숲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클레어가 웃었다. "이런... 마법을 쓰지 않고도 이렇게 무장해제 시켜버리다니..."

나는 피식 웃었다. 나는 이런 타입을 잘 알고 있다. 상대의 부끄러운 점을 짚어내어 전투 의지를 떨어뜨리는 타입이었다. 심리전의 달인.

나는 먼저 마르티나를 불렀다. "마르티나! 자면서 침을 흘리지 않는 여자는 별로 없어.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래."

마르티나가 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마야. 자기 남자의 가슴을 문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별로 없어. 너는 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이기 때문에 좋은 거야."

마야가 머리에서 손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제니스. 네 잘못은 내 잘못이기도 해. 내가 너를 부인으로 삼았을 때, 나는 너와 같이 그 짐을 지기로 결심했어. 그러니 혼자 괴로워하지 말아."

나는 제니스 앞으로 가서 손을 내밀었다. 제니스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내 옆에 마야와 마르티나가 같이 섰다.

"이봐! 용사. 네가 마야와 마르티나에게 말한 그런 버릇. 세상에 그런 버릇이 없는 여자가 얼마나 되지?
너는 일반적인 사람의 습성을 그 사람의 특정한 버릇으로 말하며 부끄러움을 주었어. 그렇게 전투 의지를 없애버리는 것 아냐?
그리고 제니스의 문제는 네가 상관할 것이 아니잖아? 네가 제니스에게 힘을 줬다고? 제니스에게는 원래부터 그런 힘과 능력이 있었어. 이제는 내 부인이니, 이제부터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내 책임이야. 네가 신경 쓸 것이 아냐!"

제니스는 내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야, 마르티나. 그 정도에 부끄러워서 전투를 포기하는 것은 내 부인이 할 일이 아니야."

두 사람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저 놈의 심리전에 놀아난 거지."

클레어가 말했다. "그 보다 여기는 저 사람의 집 안이에요. 우리가 심리전에 걸리기 쉬워요."

나를 비롯해 3사람이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지만, 여기 전체에 저 사람의 마력이 깃들어 있어요. 세치 혀로 우리를 공격하면서 주위의 마력이 우리의 정신을 혼동 시켰죠. 그래서 우리 모두 별 것 아닌 것에 괴로워한 거예요."

마야가 말했다. "그렇지만 서방님은 걸리지 않았는데?"

"그 것은 서방님께서는 이런 경험이 많으시니까 걸리지 않는 거죠. 마법은 마력뿐만이 아니라 주위 환경으로도 발동시킬 수 있어요. 저 사람은 그렇게 한 거죠.
그런 마법은 강한 의지로 이길 수 있죠."

클레어를 보며 내가 덧붙였다. "더불어 네 환각 마법도 같은 거지. 아니야?"

클레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호... 그런 것까지 말씀하시면..."

제니스가 약한 바람 마법으로 클레어의 이마를 때렸다. "웃지 마. 너를 죽이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 바로 나야."

마야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심리 마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요. 이렇게 쉽게 걸리니까요."

마르티나가 용사를 가리켰다. "그 보다 우리를 가지고 놀은 저 놈을 어떻게 해야죠."

"맞아. 저 놈을 쓰러트려야 돌아갈 수 있으니까."

나는 혼자서 용사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모두 물러서. 이 놈은 나 혼자서 상대한다."

용사가 나를 보며 웃었다. "너 혼자서? 만용이군."

"나는 지금까지 9명의 마왕을 쓰러트린 신이야. 너에게 질 리가 없어."

용사는 칼을 뽑고 고인돌을 내려와 나에게 걸어왔다. "그럼 해보시지. 천천히 죽여주지."

나는 라이트세이버를 전개해서 달려들었다.

칼이 맞닿은 순간 상대의 실력을 알 수 있는데 진정한 실력자였다. 전의 세상에서 진정한 마왕과 대결을 했는데, 이번 용사도 만만치 않았다. 검술 실력은 물론, 마력의 운영, 스피드, 신체의 균형 조절 등 모든 것이 초일류급이였다.

내 예상이 맞았다.
나는 지금까지 약한 마왕과 상대해왔다. 이제야 진정한 상대를 만난 것 같았다.

나는 칼을 부딛히며, 왼손으로 마법 공격을 했다.

그런데 그 공격을 용사는 피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뇌근육 전사 타입으로 접근전에 일류지만, 거리를 두면 공격이 쉬운 타입이었다.
나는 거리를 벌려 파이어볼과 아이스애로우 공격을 했다. 그런데 용사는 그 것들을 칼로 쳐냈다.

이 것이 나의 의도였다. 두가지 마법을 차례로 막다보면 칼이나 방어구에 무리가 간다. 파이어볼을 쳐낸 부위에 바로 아이스애로우가 닿으면 칼의 강도가 급격히 감소하는데, 이 용사의 칼에 데미지가 쌓여가는 것이 보였다.

10번 정도 마법을 튕겨내자, 칼에 금이 가서 부러졌다.

나는 웃으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는데, 용사는 내 칼을 손으로 잡았다. 역시 뇌근육 전사는 신체강화가 사기급이였다. 나의 라이트세이버를 맨손으로 잡았고, 나는 즉시 빛의 칼날을 없애고 거리를 벌렸다.

내 예상대로 내가 서있던 자리에 용사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그 것이 끝이 아니라 휘두른 다리로 생긴 바람의 칼날이 나를 덮쳤다. 나는 우선 그 자리를 이탈해 회피했다.

"실망이네. 이 정도 공격에 피하는 꼴이라니,"

용사가 나를 비웃었고, 내 뒤의 부인들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하수고 차선이라고 나는 배웠다. 방어에 신경쓰면 뒤에 오는 상대의 연속 공격에 당하기 쉬우니, 회피가 우선이며 회피는 상대의 공격이 내게 닿지 직전에 이뤄져야 한다. 나의 검술 스승이었던 칼과 파르노의 가르침이었다.
지금도 용사가 즉석에서 만들어낸 바람의 칼날 정도는 내 팔로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전의 달인에게 다음 연속 공격이 없을 리 없었다. 회피와 이탈이 최선이었다.

내가 거리를 벌린 사이에, 용사는 다른 칼을 뽑아들었다. 잠시 전의 칼과 같은 바스타드 소드였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스피드 중시의 경검사였지만, 칼을 맞대본 경험으로 이 녀석의 칼은 매우 강력했다. 양손검을 한손으로 쓰는 스피드 위주의 공격과 두손으로 공격하는 일격필살의 데미지 위주의 공격을 동시에 실행하는 타입이었다. 한마디로 전투에 달련된 검술의 달인이며,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이었다. 지금까지의 상대와는 달랐다.

그런데 나는 웃음이 났다. 전의 마왕도 검술의 달인이지만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순수한 검술의 대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라이트세이버를 주머니에 넣고, 실검을 뽑아들었다. 전의 세상에서 얻은 마왕의 칼, 크기는 상대와 비슷한 바스타드 소드 타입이었다. 다른 점은 날이 한쪽만 있는 도였다.

검과 도는 날이 한쪽과 양쪽의 차이만큼이나 검술도 크게 다르다.
찌르기 위주의 검술은 상대보다 빠르게 찌르기 위해 상대를 정면에서 보며 양 어깨를 상대의 시선에 직각이 되도록 한다.
도의 베기 검술의 경우 양 어깨를 상대의 시선과 동일 선상에 있도록 몸을 비트는 자세가 일반적이다.
바스타드 소드 정도의 크기에서 도를 쓰는 검술은 왼쪽에 방패가 있다는 것을 가정으로 한다.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어 몸을 비튼다.

지금도 나와 용사는 서로의 무기처럼 다른 자세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고수의 대결은 일합에 결정된다.
나와 용사는 서로를 노려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런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먼저 움직이는 쪽이 불리하기에 우리는 먼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내 머리 속에 이 녀석과의 가상 대결을 여러 방법으로 해보는데, 이길 방법이 별로 없었다. 검술만으로도 호각이고, 신체 강화는 나보다 더 좋았다. 내 유일한 강점은 마력.

그런데 한가지가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내가 실력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도 마왕을 죽인 기술. 그 기술을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왕을 죽인 필살의 기술. 그 기술을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왼손으로 약한 바람 마법을 내 다리를 향해 발생시켰다. 내 다리 밑에 먼지가 생기며 내 몸이 약간 떠올랐다. 떠 오른 것은 지상에서 5cm.

나는 내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자 바로 발로 땅을 박차고 마왕을 향해 돌진했다. 바람으로 띄운 내 몸은 평소보다 훨씬 가벼워져 발로 땅을 차고 움직이자 평소보다 10배 이상의 스피드로 움직일 수 있었다. 거기에 오른손으로 바람 마법을 발생시켜 더욱 스피드를 늘렸다. 눈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눈 앞까지 접근했다.

상대도 보통이 아니었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스피드를 보자마자 몸을 웅크려 방어자세를 취했다.

나는 즉시 오른손의 바람의 방향을 뒤에서 오른쪽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즉시 상대 바로 앞에서 발로 땅을 차며 왼쪽으로 몸을 비틀었다.

정면에서 올 거라 생각했던 그는 몸을 웅크려 두 팔로 배와 머리를 방어하고 있는데, 옆구리가 비었다.
나는 상대의 오른쪽을 스쳐지나가며 다리로 상대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내 종아리쪽에 상대의 갈비뼈의 감촉이 느껴졌다.

내가 빠른 스피드로 상대에 멀어지는데, 바로 180도 몸을 회전해 공중제비를 돈 후, 발로 땅을 박차고 뒤에 있는 상대를 향해 몸을 비틀며 달려들었다.

내 공격에 잠시 무릎을 꿇은 상대는 연속된 내 공격에 대응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무릎으로 상대의 등을 타격하였다.
그러자 상대는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다.

쓰러진 상대의 등에 올라타서, 나는 팔꿈치로 상대의 목 바로 밑을 가격했다. 이 것은 칼이 가르쳐준 마물의 급소로, 칼로 찌르면 바로 상대를 활동불능으로 만들 수 있는 필살기였다.
내 팔꿈치 가격에 상대의 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내 공격이 상대의 신체강화를 뚫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즉시 이탈했다. 내 예상대로 마력이 뿜어져 나와 주변에서 폭발했다.

폭발의 먼지가 옅어지자, 용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 자식... 이런 비겁한 수를..."

용사는 검을 지팡이 삼아 겨우 몸을 일으켰다.

"절대! 싸움에는 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 용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후후... 태어나서 이렇게 흥분되는 것은 처음이야. 넌 정말 강하구나. 강해."

"그러는 너도 정말 강해. 하지만 나는 너보다 강한 사람과 싸운 적이 있어."

"네가 살아있는 것을 보면, 이겼던 것이군."

"맞아. 이제 너에게도 이길 거니까."

용사는 칼을 버리고 눈을 감고 팔을 벌렸다.
그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용사는 패배를 인정한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용사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주위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하늘을 보니, 우리를 숨겨준 결계가 깨진 것이었다. 용사를 죽였지만, 우리는 아직 이 곳에 있었다.

내 주위로 부인들이 몰려들었다.

"역시 서방님이세요. 이기셨네요." 클레어가 내 품에 안겼다.

마르티나가 클레어의 뒷목을 잡고 끌어냈다. "틈만 나면 서방님께 안기고..."

마야가 말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아직 여기에 있는 거죠?"

마르티나가 손에 힘을 주었다. "너, 아직 우리에게 숨기는 것이 있어?"

"아니에요. 더 이상 숨기는 것은 없어요. 저는 그저 전에 도움 받은 것 때문에..."

마야가 클레어를 노려보았다.
"네가 여기에 온 것부터가 이상해. 그리고 방금 전에 우리를 여기서 내보내려 한 것도 이상해. 혹시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이 용사와 아무 관련 없는 것 아냐?"

클레어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마르티나가 손에 힘을 주었다. "말해!"

"아야야... 전 그저... 이 곳에 서방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없다고 말씀드리려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이 뭐지?"

"서방님께서는 더 큰 힘과 지식을 원하시는데, 이미 둘 다 얻으셨잖아요."

"나는 우리 모두가 돌아가기를 원해."

"그러니까 그 것도 여기에 없어요."

제니스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지?"

"돌아갈 조건은 마법진의 설치, 마왕의 흔적 제거. 그런데 마왕의 흔적 둘 다 없애셨죠. 하지만 마왕은 아직 살아있어요."

나는 클레어의 팔을 잡았다. "뭐? 마왕이 살아있어? 어디에?"

"아파요! 이 거 놔 주세요."

나는 팔을 놔주었다.

"실은... 저를 여기로 부른 것은 마왕이었어요. 자기 힘이 약해졌으니, 잠시동안 있으면서 힘을 나눠달라고. 그리고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하고 사라졌죠."

"사라져? 너를 불러?"

마야가 말했다. "그 말은, 너를 부른 것이 서방님이 아니라 마왕이라는 거야?"

클레어가 고개를 숙였다.

"왜 널 불렀고, 또 왜 널 부른 거지?"

"실은... 이 쪽에서 그는..."

"네 남편이었으니까?"

내 말에 모두가 놀랐다.

클레어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남편은. 그, 아니 그녀니까요."

"여자?"

마르티나가 채찍으로 클레어의 귀를 스쳐 지나게 해서 상처를 냈다.
"바른대로 말해. 모두. 숨기는 것 없이."

"아... 알았어요. 저는 서방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그 신이 나에게 말했어요. 네가 찾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나는 당장 이 곳으로 왔죠.
서방님을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마왕의 영혼이 있는 그녀가 나에게 알려줬죠. 육체를 여기에 두고, 영혼은 아랑에 가라고. 그 곳에서 서방님을 찾았어요."

"내가 아랑에 유학했을 때, 데보라의 몸 안에 있었던 거지?"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마왕을 그녀라고 했어. 여자인거야?"

클레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티나가 클레어의 목을 잡았다. "왜 말 안한 거지?"

"약속이에요. 절대 말하지 않기로. 신은 인간과 달리 약속을 절대 어길 수 없어요."

"여기서 말하고 있잖아?"

"그... 그건 그 계약을 중간에서 중재한 사람이 이 용사였어요. 용사가 죽으니 그 계약이 깨어졌고,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나는 제니스를 바라보았다. 제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 마왕은 어디 있지?"

"나도 여기서 만난 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녀는 나를 피해 도망친다고 했어요."

마야가 물었다. "처음부터 시작하지. 그 마왕은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우리가 여기 사는 두 사람의 마왕을 모두 없앴는데?"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아요. 서방님께서 어떤 여자의 몸 안에 있던 마왕을 죽였을 때, 마왕의 영혼은 도망쳤죠. 그러다 어느 임산부의 몸에 들어갔대요. 하지만..."

"태어난 아기는 여자였군."

클레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티리스 몸 안의 마왕을 죽일 때, 그 마왕의 영혼은 도망쳐서 다른 임산부의 몸 안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운이 나쁘게 그 아이는 여성이었다. 우리가 마왕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였다.
내가 마왕이라면, 다시 태어날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그 때까지 여성의 몸으로 있다는 것은 힘이 부족하기 때문,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알고 도망쳤다. 그런 이야기였다.

"그 여자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

"저와 함께 아랑에 있었어요. 우선 서방님을 찾아야 하니까요. 저와 함께 아랑에 가서는 잠시 후 사라졌죠."

"어떻게 아랑에 온 거지?"

"그녀는 시골 여자라 주목받지 못했으니까요. 아랑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온 사람으로 가장했죠. 실제로 직조 공장에서 일했어요. 아이를 키우며 일하기 힘들어했는데, 제가 좋은 자리를 소개시켜줬어요. 아랑 시골 귀족의 시녀로."

"너는 그녀를 까맣게 잊었지?"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본명은 모르고, 당시에 브리트니라는 이름을 썼어요."

"언제 사라졌지?"

"아랑에 서방님께서 온 직후에."

그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신체적 특징은?"

"평범해요."

"그 외에 생각나는 것은?"

"고아 출신이고, 어릴 때 테라티아 신전에서 살았다고 했어요."

뭔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마야와 나는 시선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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