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미란의 이야기(4)
다음날 학교에 등교한 나는 점심 시간에 미란을 만났다.
"오늘은 다른 사람들이 없나요?"
"이번 주는 추석이 끼어서 프리야. 할 말이 있다면 성에서 할 수 있는데, 성 안에서 할 수 없는 거야?"
미란은 고개를 돌렸다. "이제부터 저는 어떻게 해야죠?"
"말했잖아? 3년은 마왕성에서 살아야 해. 그 중 2년은 내가 군대에 있는 시간이니까, 그 기간은 제외하고라도 내가 군대가기까지. 내가 제대하면 최소 6개월은 나와 함께 있어야 해."
"당신의 여자로서?"
"처음부터 알고 있잖아?"
미란은 나를 바라보았다. "부인이 10명이나 되는 사람이 나까지 탐내다니..."
"네가 필요하니까."
"용의 화신 말인가요?"
미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이라면 이런 말을 꿈 같이 생각 했을텐데, 이제는 현실이네요. 이런 만화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날 줄이야..."
"이미 넌 내 제안을 받아들였어. 이제부터 너는 내 부인으로 성실히 계약 기간을 채우는 것이 남은 거야."
미란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부인들에 대해 들었어요. 마야나 제니스는 50이 넘었지만, 당신 부인이 되어 어려졌다고. 나도 그럴 수 있나요?"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해. 하지만 주위의 눈이 있잖아? 방학 때 할 예정이야. 방학 끝나고 등교했을 때, 성형 수술 받은 것으로 하면 될 거야."
"현정에게 들었어요. 자기도 예전에 아니었는데, 마법으로 그런 미모가 되었다고. 나도 가능한 거죠?"
"게다가 네 육체는 16세가 되는 거야."
미란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구미가 당기네요. 내가 다시 어려진다니..."
"그리고 내 부인으로 지내는 동안은 나이가 먹지 않아. 내 부인으로 남는다면 내가 죽지 않는 한 너는 영원히 16세일 수 있어."
"그 것도 재미있네요. 하지만 내가 기간이 지난 후 떠난다면?"
"그 때부터 늙기 시작하겠지. 16세로 시작해서 나이를 먹는 거야."
"내 나이 30세에 16세의 몸을 가진다 하니 재미있겠어요."
미란은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전에 호칭을 바꾸지. 마왕성에서는 나를 서방님이라 부르고, 밖에서는 아나킨이라고 불러."
"알았어요. 아나킨."
미란의 소프라노 목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 여기가 마왕성 안이라면 당장 덮쳤으리라.
"그 표정. 나를 안고 싶은 가요?"
"해줄래?"
"따라오세요."
미란이 일어서 학생 식당을 나갔고, 옆의 인문대학 건물에 들어가서 복도 끝으로 걸어가 한 방에 들어갔다. 그 안은 비어 있고 사람들이 오지 않는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이런 먼지 가득한 방에 날 데려 온 거야?"
"서방님께서는 세정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하던데요?"
미란의 ‘서방님’ 소리에 내 이성이 날아갔다.
나는 몸을 일으켰고, 미란은 바닥의 먼지를 온 몸에 뒤집어 쓴 채, 옷을 입었다. 나는 미란과 내 몸에 세정 마법을 걸어 먼지를 제거했다.
"마법은 편리하네요. 이렇게 쉽게 씻어내니까. 듣던대로 서방님은 발정 난 원숭이 같아요. 시도때도 없이 원하시니까요."
"먼저 유혹한 건 너 아나?"
"나도 하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연인과의 대화, 몸의 대화 말이죠."
미란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소원을 이뤄서 기쁘네요."
"이것으로 끝이 아냐. 오늘 밤, 각오해."
"얼마든지요."
"그런데, 너는 처녀였어?"
"그 질문은 실례예요.
하지만 내 남편이시니 말씀드리지요. 그래요. 저는 처녀였어요. 놀라는 게 당연해요. 그런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이 처녀란 것이 이상하죠. 그래서 제가 비싼 값에 팔린 거예요. 처녀 상실이 그 영화의 주제니까요."
"얼마에 판 거지?"
"내 빛 전부라면 될까요?"
"그건 아냐. 그 최만득이라는 놈. 각서를 가지고 널 계속 뜯어먹을 생각이었어. 출연료도 가로챌 거였고."
미란이 고개를 숙였다. "예상했는데... 내가 어리석었네요."
미란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서류들은 어떻게 하실 거죠?"
"말했잖아. 주인에게 돌려준다고. 네 손으로 나눠줄래?"
미란이 기대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래도 돼요?"
"하지만 그러면 우리가 절도죄를 뒤집어 쓸 수 있어."
"뭐 그거야... 그럼 어떻게 전해주실 거죠?"
"우편으로 보내지, 뭐."
"정말 그러실 거예요?"
"대신 네가 보내.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쓰고, 그런 수작업은 네가 해야 겠어."
"얼마든지요."
미란은 수업을 마치자마자 마왕성에 돌아와 서류를 챙겼다. 그녀는 대학 주소가 적힌 서류 봉투를 가져와 옮겨 담고 겉에는 받을 사람들의 주소를 적었다.
잠시 후 현정이 와서 미란의 작업을 도왔다.
그 자리에서 미란이 현정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날 도와주는 거지?"
"나도 비슷하거든. 조건 뛰며 돈 벌었어."
놀란 얼굴로 미란이 현정을 바라보았다. "조건? 원조 교제 말야?"
"내 처녀, 500만원에 팔았어."
미란이 현정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너도 나처럼 서방님께 도움 받은 거네."
"그래서 재신이에게 고마워. 그런 지옥에서 나를 구해줬으니."
"네 부모님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어?"
"그 부모라는 인간들이 포주노릇도 했어."
미란이 또 놀랐다.
"아빠라는 그 새끼가 자기 친구를 집에 데려와, 내 방에서 하게 했어. 그리고 돈은 자기가 챙기고. 엄마라는 년은 나에게 피임약을 던지더라. 그런 쓰레기들이 내 부모야."
"난... 아빠 병원비 때문에 빛을 졌는데... 넌..."
"그래서 네가 부러워. 너는 부모님을 사랑하잖아. 나는 구역질 나."
미란은 아무 말 못했다.
현정이 말했다. "여기 오는 거, 부모님께 말했어?"
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 하셔?"
"내가 몸 팔아 다른 집에 첩으로 들어간다고 했어.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우시고, 아빠는 나를 보지도 않으셨어."
미란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자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우시는데... 아무 말 못했어. 내가 3년 후에 돌아올 거라 하니까, 언제든지 돌아오래. 어제... 짐을 들고 나오는데 아빠가 미안하다고 하셨어. 나도 울고 엄마아빠도 울고... 오빠는 아무 말 없고."
"오빠가 있었어?"
"있어도 도움 안되는 인간이야. 아빠 병을 알고 집에도 오지 않아. 힘들어서 그러는 것은 이해해. 내가 첩살이 한다고 알렸는데, 아무 말 없어."
현정은 미란을 안아주었고, 미란은 그 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걱정마. 여기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해."
"우아앙. 엄마, 아빠. 우아앙."
미란은 서럽게 울어댔다.
현정과 미란은 학교 서류 봉투에 사람들의 차용증과 신체포기 각서를 넣고 우표를 붙였다.
나는 그녀들과 지상으로 내려가 그 것들을 우체통에 넣었다. 세어보니 200개가 넘어, 몇 개의 우체통에 나눠 넣었는데, 그 최만득이라는 놈의 악랄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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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우리가 보낸 우편물이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미란의 부모님의 연락을 받고, 우리는 최만득의 건물을 찾아갔다. 불에 탄 건물은 내부 수리 중이었는데, 그 앞에 깡패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한 중년 아저씨가 그들 앞으로 걸어 나가자, 깡패 한 놈이 웃으며 다가갔다.
"어이. 횟집 아저씨. 돈 갚으러 온 거야?"
"맞아. 그 돈. 이제 갚을 필요가 없는데?"
"뭐? 남의 돈 떼먹고도 무사할 것 같냐?"
“그래. 남의 돈. 내가 돈 빌렸다는 증거 있어?"
"아저씨가 쓴 차용증, 신체포기 각서. 모두 우리에게 있는데? 그리고 상가 권리증... 누가 가지고 있더라?"
그 아저씨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 내 상가 권리증이 있다. 그리고 내가 썻다는 차용증. 너희는 있냐?"
"그 것도 없이 돈 달라고 할 것 같냐?"
한 아줌마가 옆에 섰다. "그럼 내놔봐! 내가 돈 빌렸다는 증거."
깡패들이 몰려들었다. "이 것들이. 돈 빌려 달라고 사정하고, 다음에 꼭 갚겠다고 사정할 때는 언제고. 무슨 지랄이야!"
다른 아줌마가 말했다. "다 들었어. 여기 불 나면서 우리 서류들 다 타버렸다며? 내놔봐! 내가 돈 빌렸다는 증거 말야. 없지? 타 없어진 거지?"
깡패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내놔봐. 우리가 돈 빌렸다는 서류들 말야. 게다가 내 아들과 딸이 대신 갚아야 한다며 신체포기 각서 쓰게 했지? 그 것들도 다 타 없어졌다며?"
한 깡패가 소리를 질렀다. "이 것들이 어디서 행패야? 죽고 싶어? 지금부터 당장 채권 추심 들어가?"
"그러니까 우리가 돈 빌렸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거야? 어딨어? 없지? 너희도 없지?"
깡패들은 모여든 사람들의 기세에 밀렸다.
한 할어버지가 외쳤다.
"여러분. 이 놈들은 차용증이니, 포기 각서니 하는 거 없습니다. 구라 치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돈 갚을 이유가 없어요. 그렇지요?"
"맞아요. 돈 빌렸다는 증거도 없는데 우리가 왜 돈을 줘야지요?"
"그래요. 저 안에 있던 모든 게 다 타 없어졌는데, 우리가 왜 돈을 갚죠?"
한 깡패가 소리를 질렀다. "이 것들이! 남의 돈 빌려놓고 떼어먹겠다는 거야?"
제일 먼저 왔던 횟집 아저씨가 큰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돈 빌렸다는 증거를 내 놓으라고. 다 타버렸잖아. 없잖아. 그런데 무슨 근거로 우리에게 돈 갚으라는 거야?"
"증거는 없어도 증인은 있다. 우리 모두가 증인이야." 그 깡패는 뒤에 있는 깡패들을 가리켰다.
한 아줌마가 말했다. "결국 너희만 입 다물면 우리가 돈 갚을 이유가 없는 거네?"
옆에 있던 아줌마가 말했다.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증거도 없는데, 무슨 돈을 받아낸다는 거야?"
모여든 아저씨, 아줌마들은 깡패들을 포위했다.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 "지금까지 네 놈들이 그 알량한 종이 조각을 가지고 우리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알아? 이제 그 종이가 없으니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당할 필요가 없는 거야."
"맞아요. 왜 이런 쓰레기들에게 당해야죠? 이제부터 너희들도 돈 내고 밥 먹어."
"맞아! 지금까지 밀린 밥 값도 받아야 해요."
"지나가다 더러운 손으로 집어 먹은 것들도 변상해야 해요."
사람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한 깡패가 칼을 빼어 들었다. "모두 물러서. 아니면 그어버릴 거야."
그 깡패는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횟집 아저씨가 회칼을 빼어 들었다. "너만 칼 있냐? 나도 있다."
다른 아저씨가 칼을 들고 그 옆에 섰다. "생선 썰던 칼보다 돼지 쑤시던 칼이 더 잘 들지 않겠어?"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한 아줌마는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칼만 있냐? 몽둥이도 있다."
외치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여기 주먹도 있다."
그 옆에 할머니가 돌을 들고 섰다. "이 돌에 까이면 머리가 깨질까? 이 돌이 깨질까?"
깡패들을 포위한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 무기가 들려있었다. 칼, 몽둥이, 돌, 가위. 없는 사람들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달려드는 사람들에 깡패들은 질려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원망에 가득 찬 사람들이 증오에 가득찬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칼을 휘두르던 깡패가 칼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다른 깡패들도 땅에 무릎을 꿇었다.
횟집 아저씨가 칼을 휘두르며 말했다. "당장 여기를 떠나. 그리고 다시 오지 마. 앞으로 우리에게 빛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알아."
깡패들은 머리를 땅에 박도록 숙였다.
깡패들이 일어서자, 포위 했던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었고 깡패들은 도망쳤다. 그러자 사람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지고, 서로를 안고 기뻐했다. 몇 명은 울고 있었다.
그 만큼 사채업자에게 당한 사람들의 한이 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를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중년 남성이 있었다.
미란이 말했다. "아빠..."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현정도 몸을 굽혔다. "안녕하세요. 미란의 친구 이현정입니다."
그는 말없이 미란을 안았다. "미란아. 고맙고 미안하다. 이렇게 너에게..."
"아빠. 난 괜찮아. 빨리 나아서 건강해져야 해. 가게를 엄마 혼자 보는데, 너무 힘들어 하셔."
"그래... 내가 빨리..."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인가요? 미란이를 구해주고, 우리를 구해주신 분이."
"송재신입니다."
그와 나는 악수를 했다.
"고맙습니다."
"그 보답은 미란이에게서 받을 겁니다."
그는 나를 보며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 딸이 첩으로 들어가는 거니까.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겠네요. 저 최만득이 쓰러지는 것을 보니 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 딸을 어떻게 하실 거죠?"
"저는 따님의 3년을 댓가로 받을 겁니다. 물론 따님에게 나쁜 일은 없을 겁니다."
"첩 질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거요?"
"스폰을 받는 여성들은 차이고 치입니다. 미란이 이런 기회를 잡은 것은 행운이 아닐까요?"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확실히 말씀드리지요. 당신이 포기한 따님의 인생을 저는 당신의 건강과 함께 산겁니다. 평생이 아닌 3년입니다. 당신의 딸이 그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객관적으로?"
현정과 미란도 나를 노려보았다.
"나를 고마워해라 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원망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따님의 3년을 비싼 대가를 치루며 구입했고, 철저히 받아낼 겁니다.
그렇다고 따님의 인생을 망가뜨리거나 건강에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은 아닙니다. 3년 후 미란이가 변한 모습을 보고 판단해 보시지요. 저와의 생활이 그렇게 나쁜 것인지를."
"네가 뭔데 그렇게 말하지?"
"적어도 당신보다는 능력이 있죠."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아직도 이 지구에서는 가난 때문에 딸을 파는 일이 많습니다. 당신은 돈이 없어 가족을 지키지 못한 거죠. 그러니 나에게 설교할 생각은 마시지요."
나는 미란을 바라보았다. "잘 알겠지? 네 3년은 내 거야. 그 동안 너라는 인간은 없는 거야. 잘 알겠지?"
미란이 나를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약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겠어. 네 아버지가 못해주는 일을 해주겠다는 거야.
그러니 이 자리에서 네가 선택해. 내가 지금까지 너를 위해 소비한 금액을 빛으로 남겨두고 저 아픈 아버지에게 돌아갈지, 3년 간 내 시중을 들며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지."
미란은 자기 아버지 앞으로 갔다. "아빠. 3년 후에 돌아올게."
그는 미란을 안았다. "미안해.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아파서. 미안해."
"그럼 가 볼게."
미란은 아버지를 놓고 내 옆으로 왔다. "가요."
현정이 미란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