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클레어의 각성
미란을 새로 부인으로 맞이한 후, 휴일이 될 때까지 나는 수업 후 바로 마왕성으로 돌아와 클레어와 세레스가 바꿔놓은 마왕성을 즐겼다. 마왕성 안은 클레어가, 밖은 세레스가 주로 작업했다.
마왕성 안의 벽은 벽화, 중간 중간에 조각품이 가득해졌다. 아무 장식이 없던 벽과 기둥들에 부조가 새겨지자, 마왕성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에는 요새와 같았다면, 지금은 미술품 전시장 같았다. 회화와 조각품들은 내가 많이 본 것들인데, 클레어는 인터넷을 보고 참조했다고 했다. 특히 정원 호수 가운데에 있는 라오콘 군상은 백미였다. 실제 군상에서는 몇 개 조각이 떨어진 형태로 있지만, 클레어는 천재적인 감각으로 복원해서 정원을 장식했다.
한 조각상이 철거되었는데, 그 것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모사한 것이었다. 마야가 철거를 지시한 이유는 나보다 멋있어서... 라지만, 아무래도 너무 적나라한 묘사 때문으로 보인다. 클레어는 투덜거리며 다비드상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마야의 설명으로는 워프 마법에 간섭 때문이라고 했다.
세레스는 마왕성 밖에서 숲을 만드는 일에 힘썼다. 초지로도 농지로도 쓰이지 않는 바위가 가득한 공간이 나무로 무성한 숲으로 바뀌었다. 그 안에 열리는 프라가 열매는 모두가 맛보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마왕성 밖의 이 곳 저곳에 숲이 생기자, 마야는 성 방어를 걱정했다. 이유는 성 주위에 숲이 있으면 시야를 가려 적을 보기 힘들어진다는 것. 하지만 세레스가 만든 숲은 엘프의 조종을 받아 세레스의 명령 한 마디에 고개를 숙일 수 있었고, 허락되지 않은 사람의 침입을 막을 수도 있었다. 방어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세레스가 만든 정자에서 모여 식사를 하는데, 세레스가 차린 식탁에는 고기가 없었다. 세레스 자신도 소, 양, 새고기 외에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
티리스가 연못의 민물고기를 잡아 요리했는데, 세레스는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티리스가 양고기를 요리했는데, 세레스는 먹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세레스는 돼지 고기만 싫어하는 것 같았다.
세레스가 가져온 나무 열매들은 단맛이 덜하지만 깊은 맛이 있었다. 티리스가 가져온 채소와 잘 어울렸다.
미란이 집을 떠나는 날, 그녀의 부모님이 마중 나왔다. 그동안의 사건을 알고 있는지,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미란을 보내주었다. 미란은 울며 집을 나서 마왕성에 왔고, 다음에 데려올 용의 화신이 되기로 했다.
그 동안 제니스에게서 마법의 기초를 배우기로 했다.
미란은 학습 마법과 손으로 상대의 경험을 배우는 마법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 말로는 노력 없이 이렇게 쉽게 얻는 것은 반칙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그 마법들로 일주일 만에 엄청난 지식을 머리 속에 넣었다.
.............
추석이 지나자마자, 우리는 중간고사 시즌을 맞이했다. 우리는 2주간 시험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고, 바로 대학가는 축제 기간에 들어갔다.
이번 축제에는 미란과 선아도 같이 참석했는데, 둘은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나이는 선아가 많아도, 경험은 미란이 더 많았다. 지금 대학생과 고등학생, 부인과 아랫부인이라는 차이 때문에 미란은 선아에게 지지 않았다. 선아는 말과 행동에서 미란의 상대가 되지 않아 보였다.
현정이 선아에게 물었다. "그날 서방님과, 좋았어?"
"좋았어. 밤새 내내 서방님을 독점할 수 있었으니까."
미란이 선아에게 핀잔을 줬다. "선아야. 밖에서는 아나킨으로 부르라 했지?"
선아가 노려보았지만, 아랫부인이라는 것에 물러섰다. 뒤에 마르티나가 노려보고 있으니까.
세레스가 말했다. "그리고 축하할 일이 있어요. 클레어가 각성한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놀라서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클레어가 말했다. "너무해, 세레스. 내가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어... 언제?"
세레스가 말했다. "오늘 아침 이 곳에 오는데, 클레어에게서 용의 마력이 느껴졌어요. 전처럼 환각 마법이 아니에요."
마야가 물었다. "정말? 세레스. 정말 각성한 거야?"
"어제 저녁 수련할 때 내 몸이 달라진 것을 느꼈어. 이제 용과 한 몸이 된 것을 알 수 있어."
마야가 클레어의 손을 잡았다. "잘 했어, 클레어. 너도 이제 우리가 되는 구나."
나는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는데, 왜 이렇게 두 사람이 친해졌는지 궁금했다.
파르노가 둘 만의 대화로 말했다.
‘이상하지? 어떻게 저 둘이 저렇게 친한지.’
‘맞아. 부인들은 모두 클레어를 싫어하지 않아?’
‘둘이 잘 맞아. 둘 다 거짓말을 잘 하잖아?’
나는 놀랐다.
제니스가 내 몸에 손을 댔고, 제니스의 말이 내 머리 속에 들렸다.
‘제니스, 제니스야?’
‘역시 그렇네요. 이렇게 몸이 닿으면 둘 만의 대화도 할 수 있어요.’
파르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들려.’
‘그렇네요. 본처. 부인들은 이렇게 서방님의 몸에 닿아야 가능하네.’
파르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야와 클레어. 둘이 언제부터 저렇게 친해진 거지?’
‘둘이 잘 맞잖아? 둘러대고 꾸며대는 것을 잘하니까. 둘 다 혀가 유연해.’
‘파르노, 제니스. 둘이 저렇게 친한 것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그건 서방님이 하실 일이에요. 둘이 힘을 합하면 어떤 일을 벌릴 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법 능력 면에서 둘은 우리보다 뛰어나요.’
‘아나킨. 나도 그게 우려가 돼. 클레어의 실력도 잘 모르겠지만, 추적마법이나 환각마법은 너무 강력해서 나도 놀랄 정도야. 각성 전에 그 정도였는데, 각성 이후라면...’
페트리아가 말했다. "세 사람만 대화하실 거예요?"
제니스는 내 몸에서 손을 떼었다. "아... 미안. 서방님에게만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
세레스가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거짓말... 그녀의 입술이 말하고 있었다.
제니스가 세레스에게 말했다. "세레스. 넌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읽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담겨 있는 지를 알 수 있어. 그래서 거짓말을 읽을 수 있어."
"나와 같네."
"너는 엘프의 후손이니까."
모두 놀라서 제니스를 바라보았다.
"너는 엘프의 피를 가지고 있어. 아무래도 너의 할아버지 대에 엘프가 있었을 거야. 그렇지?"
제니스가 숨을 들이마셨다. "맞아. 엄마가 하프 엘프였어. 내가 이어받은 능력 중에 엘프의 능력은 이 것이 전부야."
마르티나가 물었다. "언니. 엘프는 사라지지 않았어? 그런데 우리가 엘프의 후손?"
"엘프는 사라진 것이 아니야. 인간들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한 거지. 몇몇은 살아남았지만, 인간들, 특히 에브람 신자들은 끝까지 추격해 엘프들을 멸종시켰어. 오크들도 그렇고."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몸에 엘프의 피가 흐르는 거지?"
"전쟁에 전리품 중에 여자 노예들이 있잖아? 내 할머니는 노예가 되어 엄마를 낳았고, 엄마도 노예로 나를 낳은 거야."
"그럼 언니는 노예의 후손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왕족이 된 거지?"
"엄마가 노예의 신분으로 할아버지와 결혼했는데, 할아버지가 전쟁에 공을 세워 신분이 상승되었고, 덩달아 엄마도 같이 귀족이 되었지. 엄마는 엘프의 후손인 것을 철저히 숨겼어. 딸인 나도 잘 모를 만큼. 하지만 비밀은 없어서, 엄마가 죽은 후에 알게 되었지."
"엘프의 후손이라 마법에 강한 거야? 그리고 거짓말을 아는 마법은 엘프의 능력? 그리고 네 아들과 손녀들은 인간인데 어떻게 가지고 있지?"
내 물음에 제니스가 웃으며 말했다. "엘프들의 고유 능력이 아니라 마법이에요. 엘프들에게만 비밀리에 전해지는 방법이죠."
세레스가 말했다. "엘프들 만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훈련이 필요해요. 제니스는 어릴 때부터 연습을 많이 했네요."
"맞아. 그 것 때문에 눈이 빠지는 줄 알았어. 프랑크도 몇 번이고 눈을 비벼댔지."
현정이 말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쓰지 못하잖아. 그 포에니의 프랑크도..."
세레스가 말했다. "그건 낳아준 부모가 직접 전수해줘야 해."
"그래서 프랑크는 못 쓰고, 루이는 쓸 수 있는 거야?"
이제야 제니스의 가계에 특수 마법의 본질을 알 수 있었다. 제니스와 아들 프랑크, 손자 유리, 루이 등은 상대방의 거짓말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은 엘프들에게 비밀리에 전해지는 마법이었고, 부모가 직접 전수해줘야 했다.
나는 마르티나를 바라보았다.
왜 유리는 거짓말을 알 수 있는데, 마르티나가 알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리는 아버지 프랑크에게서 그 능력을 전수받았는데, 마르티나는 프랑크와 지낸 시간이 짧아 전수받지 못한 것이었다. 프랑크는 자신의 아들이 아닌 프랑크에게는 전수해주지 못했고, 루이에게 전수해 준 것이었다.
제니스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전수하려면 2세에서 5세 때에 친부모가 직접 자녀의 눈에 마법을 걸어야 합니다. 마르티나는 그 때 프랑크와 만나지 못해 쓰지 못했죠."
마르티나가 제니스에게 말했다. "언니!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지금 하고 있잖아. 그리고 프랑크가 아들 프랑크를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알게 된 것이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해. 친부모가 아니라면 전수가 불가능하거든."
나는 무릎을 쳤다.
"그럼 이 마법을 전수 받지 못해서 프랑크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군.
잠깐! 이상해. 내가 처음 마야와 함께 루나를 봤을 때, 루나는 프랑크의 아들이라고 말했고, 너도 인정했잖아."
“이 기술은 그 사람의 믿음에 관련 있어요. 루나는 그 때 프랑크의 아들이라 믿었던 거죠. 그래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저도 그런 줄 알았죠.”
나와 제니스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어가 탁자를 두드렸다. "지금은 내 각성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닌가요?"
모두가 클레어를 보며 웃었다.
파르노가 말했다. "그렇지. 그럼 오늘 어떻게 해 줄까?"
"내일 아침까지 아나킨을 독점할래요."
파르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어떻게 생각해?"
마야가 말했다. "오늘만은 봐주지."
클레어가 내 팔을 잡고 끌었다. "모두 동의하잖아요? 어서 오세요."
나는 못이기는 척 일어섰다.
클레어를 따라 학교 정문을 나서자, 리무진이 세워져 있는데 클레어가 나를 끌고 그 곳으로 갔다.
"클레어, 이건 뭐지?"
"저와 서방님을 위한 둘 만의 파티에요."
기사는 문을 열어 우리에게 안을 가리켰고, 나는 클레어를 따라 차에 탔다. 클레어는 차 안에 있는 냉장고를 열고 샴페인과 술 잔을 꺼냈다.
"야, 이거 유료 아냐?"
클레어는 내 입에 손가락을 대었다. "오늘은 아무 말 없이 내가 준비한 것을 즐겨만 주세요."
"그전에 하나만 묻지. 넌 어디서 돈이 난 거지? 설마 전에?"
"제가 모든 것을 다 내놓을 리 없잖아요?"
"페트리아도 알고 있어?"
"허락 받았어요. 인터넷으로 예약까지 페트리아가 보는 곳에서 했어요."
내가 마력을 사용했는데, 클레어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남편인 내가 마력을 사용하면, 부인들은 그 명령에 따라야 했다. 나는 마력으로 클레어에게 진실을 말하라 했는데, 클레어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이었다.
"좋아. 페트리아에게 허락 받았다면, 오늘은 봐주겠어. 그런데 이번 이벤트, 돈이 많이 들 텐데. 어디서 돈이 난 거지?"
"아잉~ 서방님은 너무 속이 좁으세요. 이 정도 돈으로 날 어떻게 하시려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께요."
"네가 알아서 한다니 더 걱정돼. 말해. 어떻게 한 거지?"
내 마력에 클레어가 떨었다. "아. 알았어요. 전에 주식 투자하고 남은 돈이 있어요."
"넌 마왕성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인터넷도 쓰지 못하잖아. 설마..."
"네, 맞아요. 페트리아가 허가해줬어요. 대신 수익금을 나누기로 했죠."
"파르노도 알아?"
"파르노와 3둥분 해요."
어린 페트리아는 그렇다고 해도, 파르노까지? 도대체... 언제 이 여자들이 친해져서 이렇게까지 된 걸까?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왔다.
클레어는 샴페인을 따라 잔을 나에게 주었다.
"아무 생각 마시고, 오늘은 저와 즐겨주세요."
...........
우리를 태운 리무진은 어느 고급 호텔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우리는 즉시 호텔 직원들의 안내를 받았는데, 걸어가는 동안 클레어는 팔짱을 끼고 내 몸에 밀착해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곳은 호텔의 스위트룸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외국인 한명이 호텔 직원들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클레아트릭스 스카이워커님. 그리고 아나킨 스카이워커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하는데, 독일어 억양이 섞여 어색해 보였지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유창한 한국어였다.
"환대 감사합니다."
내가 당황의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클레어가 웃으며 내 목에 손을 두르고 안겨왔다.
"이 호텔 지배인이예요. 우리가 VVIP 손님이라 직접 마중 나왔네요."
지배인이 말했다. "클레아트릭스님은 우리 호텔의 주주이십니다."
주주? 그럼...
클레어가 말했다. "제가 모은 돈으로 이 곳 주식을 매입했어요. 최대 주주는 아니지만, 스위트룸에서 쉴 수 있을 정도의 대우는 받아요."
나는 황당한 얼굴로 지배인과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지배인과 직원들이 인사하고 방을 나가는데 몇 명이 남아 있었다.
클레어는 내 품에서 떨어져 방 한 가운데의 탁자에 갔다. "서방님. 오세요. 제가 최고급 요리로 준비해두라고 했어요."
나는 클레어를 따라 앉자, 남아 있던 직원들이 식기를 세팅했다.
이후에 나오는 요리들. 말로만 듣던 5성 호텔의 스위트룸 서비스를 받아 보았다. 먹는 동안에도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이런 서비스를 받아도 되는지,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서방님은 정말 통이 작으시네요. 이 정도 서비스는 내 신전에서도 많이 받아보셨잖아요."
"여기는 파샤가 아니라 대한민국이야. 여기서는 쌓은 공적도 명성도 없어. 모두 돈이야. 그런데 내 돈도 아니라 네 돈으로 이 것을 즐긴다고?"
클레어가 직원들을 바라보자, 직원들이 방을 나갔다.
"서방님. 서방님께서는 12명의 마왕들의 남편이세요. 그런데 이 정도 서비스를 불편해하시나요?"
"마왕성 안에서의 이야기야. 나는 그 밖에서는 평범함 송재신이고 싶어."
클레어는 따라진 와인을 조금 마셨다.
"제가 왜 여기에 서방님을 데리고 온 줄 아세요? 왜 제니스와 마르티나가 오늘 일을 허락한 줄 아세요?
서방님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세요. 그런데 왜 평범하게 자신을 숨기려 하시죠?"
나는 한숨을 내쉬고 내 앞에 있는 와인을 한번에 다 마셨다.
"클레어. 내가 전에 말했지? 힘이 있다고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힘은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지만,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어 있어. 그 것을 거부하면 그 힘은 나를 찌르는 칼로 변해.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대지모여신 신전에서 한 여성이 나에게 물었지. 내 힘이라면 파샤의 왕도 될 수 있는데,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냐고. 그게 너였지?"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 그에 따른 의무를 해야만 해. 그 것이 싫으면 힘을 쓰지 말아야 하고.
힘은 쓸수록 사람을 끌어 모아.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레 나를 견제하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생겨.
내가 힘이 있다면, 나는 10만의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어. 그럼 100만의 사람을 가진 자가 내 목숨을 노릴 거야. 내가 죽으면 나를 따르는 10만 중에 5만은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내가 힘을 발휘하여 나에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순간, 나는 죽여야 할 대상이 되고 말아."
"그럼 서방님도 그 사람을 죽이고 그 쪽의 사람들을 서방님 아래에 두시면 되잖아요."
"맞아.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이 세게는 우리가 살던 검과 마법의 세계가 아니라 과학 문명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세상이야. 이 곳에서 그런 능력이 있으려면, 적어도 내가 한국인이면 안 돼. 내가 미국이나 중국에 태어났다면 그런 꿈을 생각해보겠어.
내가 태어난 곳은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야. 내 나라는 작고 가난해. 이런 나라 사람인 이상 어느 정도 이상의 힘을 가지기 힘들어.
내가 왜 그 쪽에서 파샤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줄 알아? 나는 원래 대한민국 사람이었어. 나는 살기 위해 파샤의 국민이 된 거야. 나도 그 때는 내 힘으로 왕이 될 생각도 했었어. 하지만 안되는 것을 알았지. 그 과정은 너도 잘 알잖아?"
클레어는 고개를 돌렸다.
그 때, 내가 힘을 키운다는 소문이 돌자, 파샤의 국왕은 즉시 5만의 병력으로 대지모 여신 신전을 포위했다. 내가 나서서 다시는 신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그들은 2만을 남겨두었다. 이후 나는 파샤의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
"너는 그 때 왜 네 힘으로 파샤의 군대와 싸우지 않은 거지?"
클레어는 나를 바라보았다.
"네 힘으로 싸울 수 있지만, 네 딸들과 신자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잖아?"
클레어는 아무 말 못했다.
"내가 지금 평범한 척하는 것은 너희들을 위해서야. 만약 내가 재벌들처럼 돈을 쓰고 다닐 수 있지만, 그럼 너희들도 힘들어져. 너는 그렇다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삶을 강요할 거야?"
클레어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그래서 너희들에게 자유를 주려는 거야. 3년 후에 네가 이런 화려한 삶을 원하면 그렇게 살아. 내가 도와 줄게. 대신 다른 부인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뺏지 마. 내 말 알겠지? 불편하더라도 3년만 참아줘."
클레어도 잔에 있는 와인을 다 마셨다.
"서방님은 너무 하세요. 이렇게 내가 싫은 일을 하게 하시니까요."
"그건 미안해."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저는 서방님을 사랑하니까.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야 해요. 저도 제 딸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어요.
저는 서방님의 여자, 서방님의 뜻에 따르겠어요."
"고마워."
클레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클레어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불 밖으로 옷을 던졌다.
"민지에게 배운 거야?"
"오늘은 다른 여자의 이름도 입에 올리지 말아주세요. 내일 아침까지 서방님은 저만의 것이니까요."
나는 클레어에게 다이빙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나와 클레어는 스위트룸 서비스를 제대로 즐겼다. 스위트룸 안에 있는 스파에서 같이 목욕하고, 야경을 보며 저녁을 먹고. 온갖 호사를 다 누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클레어가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내 팔을 베개로 내 품에 안겨 있는데, 이 것도 남자의 행복 같았다.
순간 무책임한 놈의 세계가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