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8화 (8/530)

< 동요하는 한양 >

익성군 이명복-즉위 후 항렬에 맞춰 개명해 이재황이 보위에 오른 지 한 달여.

조선의 도읍 한양은 전례 없이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지금이 과연 국상 중이 맞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화두에 오른 것은 한 달여 년 전 보위에 오른 소년 왕에 대한 것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그가 감히 입에 담았다는 말들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난세다. 청은 더는 서역 오랑캐들로부터 천명을 지키지 못한다. 청의 천하도 이제 그만 저물려고 한다. 어버이의 나라 주명의 복수를 할 시간이 도래했다.'

무엇 하나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전율스러운 문장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보위에 오른 소년 왕이 겁 없이 입에 담아도 괜찮은 말들도 아니었다. 한양의 백성들은 누구나 이 말들을 듣고서 경악하여 제자리에 주저앉아 엉덩이가 푸르딩딩하다는 속설이 돌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일련의 문장들이 가리키는 것은 간단했다. 청이 쇠하여 무너져내리려고 하니, 주명의 복수를 위하여 청과의 전쟁조차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전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공포에 잠기든, 신음을 흘리든, 아니면 동조하여 흥분하든, 어떤 식으로 건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네 그 소리 들었는가? 나라님께서 글쎄…."

"참나 이 사람아. 우리라고 그걸 못 들었을 것 같나? 하이고, 이 나라가 진짜 어찌 되려는 건지. 말세야 말세."

"되놈들이 또 난리를 피우게 생겼구먼. 쯧쯧쯧…."

"아니지. 말이야 바른말이지. 마우재(=러시아) 놈들이 연해주 땅에 얼씬거리는데 그 북적 오랑캐 황제 놈은 뭘 하고 있느냐, 이 말이야. 정말 난세가 온 건 아닌가?"

"예끼 이 사람아. 그럼 자네가 총 들고 나가서 싸우기라도 할 건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아니 뭐 내가 언제 되놈들이랑 전쟁이라도 하자고 했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민초들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부정적이었다. 만일 전쟁이 난다면, 가장 고생하게 될 이들은 그들이었다. 그리고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 그들에게 어버이의 나라 주명을 위한 복수 따위 아무래도 좋은 일들이었던 것이다. 주명을 아무리 어버이의 나라니 뭐니 떠받들어도 백성들에게는 그들 또한 되놈이었고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거기에 안 그래도 흉흉한 시대였다. 세도가들의 전횡은 극에 달했고, 조선은 휘청이는 마당에 이웃 나라 청 또한 다 무너져가는 집처럼 조금씩 기우는 것이 민초들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새롭게 즉위한 소년 왕이 앞장서서 지금은 난세라고 규정지어 버리니, 민심은 더더욱 더 흉흉해졌다.

'그래. 만약 지금이 그 소년 왕이 말한 대로 난세이고 세상이 바뀔 때라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데 나라고 그 세상을 바꿀 장본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런 흉흉한 목소리가, 민초들의 마음속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에 가장 크게 경기를 일으킨 것은 기존의 세도가들이었다. 지금이 난세이고, 세상이 바뀔 차례라면, 그들은 새로운 세력의 등장에 숙청당할 구세력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걸 어쩌겠습니까, 영상?"

"허허,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아니 지금이 그렇게 여유를 잡고 있을 때가 아니잖습니까? 벌써 한양 일대에 소문이 쫙 퍼지고 민초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민초들을 보살피고 진정시켜야 할 성상께서 몸소 나서셔서 민초들을 겁주다니, 이는 군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어서 앞장서시지요, 영상!"

그리고 그렇게 동요한 이들이 모여든 곳은 당연히 영의정 김좌근의 가택이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불안에 질린 얼굴들이었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소년 왕이 직접 뭔가 소란을 일으키든, 아니면 백성들이 직접 나서서 소란을 일으키든 뭔가 소란이 터지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이들이 그들이었다.

안동 김씨 일가를 비롯하여 그들에게서 관직을 사서 관직 생활을 하던 이들, 그리고 단지 그들에게 뇌물을 가져다 바치며 지방에서 소작인들을 핍박 주던 지주들과 세도가의 위세를 빌려 장사를 하던 장사치들까지 매일 같이 김좌근의 집을 들락거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김좌근에게 무언가 행동을 취해주기를 기대했고, 그리하여 지금의 혼란이 가라앉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김좌근은 그들의 거센 요구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빙긋이 미소지으며 사람 좋은 행세를 반복할 따름이었다.

"허허허, 그러게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고 하지 않았소. 아직 주상께서 나이가 어리셔서 많이 부족하셔서 그렇습니다. 대비마마께서도 훈계하시고 계시다고 하시니, 조금 더 기다려보시지요."

'애송이 놈,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게냐. 이 몸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이야…?'

물론 그라고 해서 마음속이 편치는 않았다. 그 흥선군의 차남 이개똥이가 보위에 오르기도 전에 이런 대형사고를 쳐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가 처음에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발상이라 여겨 가벼이 넘긴 탓에, 후일 도승지가 직접 어소에 찾아가 충언을 올렸음에도 그를 듣지 않고 되려 일갈하여 내쫓았을 때 미처 입막음하지 못하고 대처가 늦었다.

세도가의 기반은 기본적으로 한양과 경기 지방에 자리 잡은 역사 깊고 위세 높은 양반 집안들이었다. 그 때문에 창덕궁을 중심으로 한번 소문이 한성에 확산하기 시작하자, 세도가 전체가 동요하고 있었다. 이제 고작 해봤자 12살짜리 소년 왕의 치기 어린 발언이라고 웃어넘기기에도 곤란해졌다.

여기까지 소문이 퍼지고 나면 자연히 청에서도 무언가 움직임이 있을 터였고, 그럼 조선은 어떤 식으로건 그에 맞는 대답을 돌려줄 필요가 있었다.

청의 반응은 뻔한 것이었다. 조선이 대대로 중원의 제1 번국으로서 대접을 받아 온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조선이 요동, 언젠가 더 넘어서 북경마저 넘볼지도 모른다고 경계하려 들 것이다.

"하오나 영상, 만일 상국에서 이 일을 알게 되면…."

"천자께서는 아직 어리시고 강남의 반란으로 소란스러울 테니, 상국에서도 당분간은 별말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성정은 교육으로서 고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시지요."

그러나 자신의 집을 찾아온 손님들 앞에서 그런 속사정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괜히 그런 사실들을 말해줘 봤자 저들은 더더욱 더 동요하게 될 것이고, 그럼 김좌근마저 믿지 못한다면서 다른 곳에까지 연줄을 대려 할지도 몰랐다. 그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설령 정말로 천지가 개벽 되고 천하가 뒤틀린다고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온갖 명예와 부귀영화 속에서 군림해야만 했다.

'이 몸의 헤아림이 서툴렀다.'

김좌근은 선선히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그저 어린 왕의 치기 어린 발상이라고 웃어 넘긴 탓에, 입막음이 늦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린 왕의 말은 무서울 정도로 지금의 천하를 꿰뚫고 있었다. 어째서나 그 어린 왕이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유야 아무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 중요했다.

집안에 서역 오랑캐들과 연줄이 있는 천주교인들이나 직접 청나라까지 다녀온 사신단 출신이 많은 안동 김씨였다. 그런 안동 김씨의 수장인 김좌근은 현재 이 조선에서 가장 외세의 정보를 얻기 쉽고 또 예의주시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조선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부귀영화를 위해서였다.

그런 김좌근이기에 알 수 있었다. 소년 왕의 식견은 누구보다도 현 천하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지금은 난세였고, 청은 기울고 있었다. 김좌근은 단지 그와 그의 가문의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하여 변화를 거부했기에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풀린다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지. 그 애송이는 세상을 바꾸려 한다. 이미 이번 한방으로 막혀있던 둑에서 물이 터지기 시작했어. 그 둑은 얼마 못 버틸 거다. 이 몸이 가장 잘 알지. 이 몸이 그 둑을 만들어놨으니.

그리고 세상이 바뀐다면 이 몸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당연. 설령 나라가 바뀌더라도 이 땅의 제일가는 명가는 안동 김씨여야 해. 그러자면…흐흐흐, 앞으로 즐거워지겠어.'

김좌근은 아무도 모르게 슬쩍 가식적인 겉치레의 미소가 아닌, 진실 어린 미소를 떠올려 보였다. 그리고 이내 다시 입가에서 지우고 언제나 같은 뻔뻔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 가득히 띄웠다.

꽤 즐거웠다. 그의 나이 올해로 예순일곱. 세상을 등지기 전, 마지막으로 즐기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이 사달을 일으킨단 말이오!"

와장창-.

한편 그 무렵의 대비전은 한 늙은 여성의 노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수렴청정을 맡은 신정왕후 조씨였다. 그녀는 지금 손에 들고 있었던 자기 그릇마저 내던지면서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그녀의 노호성을 듣고 있는 것은, 현 주상의 친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었다.

"상국에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요."

"그대가 그것을 묻소? 책봉해주지 못하겠다 그러더이다. 왕이 오만방자하여 왕재가 되기에는 덕이 부족한 듯하니 다시 뽑으라더이다!"

"그건 황상께서 하신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태후께서 하신 말씀이십니까?"

"…지금 본궁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상국 또한 사정이 여의치 않은듯하니 올리는 말입니다."

그에 반하여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어디까지나 담담했다. 물론, 그라고 마음속까지 담담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기껏 그동안 만들어두었던 조대비와의 관계는 이번 사태로 완전히 뒤틀렸다. 앞으로도 조대비는 대원군 이하응에게 감시의 시선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협력하는 것 또한 어려워질 터.

그러나 조대비의 추궁에도 이하응은 억울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 자신조차도 자식 되는 이개똥이의 변화에 어색하기 그지없으니 어쩌겠는가? 그가 알던 이개똥이는 특별히 멍청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게 총명한 이도 아니었다.

더더욱이, 세상 무서운지도 모르고 저런 소리를 겁도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위인은 더더욱 더 아니었다.

'귀신이라도 들린 건가. 아니면 왕이라는 이름의 마력에 사로잡혔는가. …하, 아직도 그 마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이 내가 할 말은 아니군.'

이하응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상황이 이렇게 풀리고도 그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첫 번째로, 청으로 건너간 사신단은 그런 폭언을 듣고서도 북경에서 내쫓기지 않았다. 청에서 분노한 것은 틀림없었으나,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조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고 했다면 일단 사신단부터 문전박대하고서 조공품조차 받지 않고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청은 사신단에게 대놓고 왕을 갈아치우라는 폭언을 했을지언정 차마 조공물품을 거절하지도 못했고, 또 하사품은 지난해보다는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기는 했으나 아무튼 정상적으로 내려주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지금의 청에게는 조선에게 분노할지언정 직접적인 실력행사까지 들어갈 힘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대비도 저리 길길이 날뛰면서도 차마 이하응을 내치지는 못하는 것이다. 만약 지금 이 상황에서 그를 내친다면 지금 가장 큰 호응을 보여주고 있는 이하응의 두 번째 믿는 구석-젊은 선비들과 성균관의 학생들을 그대로 적으로 돌리게 될 테니 말이다.

"기다리시지요. 상국 또한, 말은 저렇게 하여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태평천국인지 뭔지를 자칭하는 사교도들이 잠시 사그라들었어도 그 교주는 건재하다고 들었습니다. 상국은 결국 책봉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허허허, 말은 참으로 잘하시는구려. 그저 그대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뿐이 아니오? 이 나라 조선에게 저 상국과 대결할 힘은 없소이다."

"그렇지요. 상국과 대결할 힘은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손도 써보지 못하고 이씨 왕가가 멸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하응은 그렇기에 감히 말했다. 청이 강대하기는 하나, 쇠락한 조선 또한 함께 쇠락한 청을 상대로 손도 발도 쓰지 못하고 당할 정도는 아니라고. 그것은 자신감이기도 했지만, 또 자신이 그렇게 만들겠다는 포부이기도 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았다. 대단한 애민정신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좌우지간 이 나라 조선을 뒤바꾸고 싶은 거대한 야심이 있었다.

그의 아들 이개똥이가 사고를 쳐준 덕분에 그가 외칠 개혁의 목소리가 힘을 얻을 여지도 커졌다. 그렇다면 마땅히 그 흐름에 올라타 줘야 할 것이었다.

"…그대를 불러들인 것이 잘한 일이었는지 모르겠구려."

조대비는 달랐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전주 이씨 왕가의 존속이었지, 대대적인 개혁이나 하물며 상국과의 정면대결을 바라는 것은 더더욱 더 아니었다. 그녀로서는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이미 모두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늙은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이하응 또한 조대비의 마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만 "후회하시지는 않으실 겁니다."라고만 답했다.

"한 가지만 답해주시오. 이 모든 것은 진정 그대가 꾸며온 일이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조대비는 물었다. 자신을 속이고, 이 모든 사단을 계획해왔던 것이냐고.

이하응은 잠시 고민하고서, 답하였다.

"어찌 대비께 거짓을 입에 담겠나이까."

거짓부렁은 아니었으나, 진실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도 그의 아들 이개똥이에게 휘둘리는 것이라고 시인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설령 그를 여기까지 끌어올려 준 조대비가 상대라도 진실만을 입에 담을 의리는 없었다.

조대비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토했을 뿐이었다.

'천하가 바뀌고 있다.'

그리고, 변화를 기대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난세라는 말에 벅차오르는 가슴을 움켜쥐고, 주명의 복수를 한다는 말에 환희하고, 그를 위해서는 서역 오랑캐들이라도 이용해 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힌 어린 왕. 그의 포부에 매료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젊은이들.

그들 대부분은 세도가가 국정을 농단한 이래 오랜 세월 조정에 출사하지 못했던 지방의 양반가들이었고 또는 아예 몰락하여 상놈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잔반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그러한 이들은 아니었다. 세도가의 젊은이라고, 그 포부에 가슴 뛰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던가.

그 영의정 김좌근의 조카, 올해로 갓 13살이 된 김옥균 또한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지금은 난세다. 난세에는 난세의 법도가 있는 법이다. 언제까지고 우리 조선이 저 야인 오랑캐들의 밑에서 신음할 이유는 없지 않던가?'

어린 김옥균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드는 아픔조차 그는 느끼지 못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볼은 상기 되고 온몸은 뜨거웠다. 마치 사랑을 하는 아낙네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그는 실제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 품게 된 이 야망에, 천하를 내 손으로 바꾸겠다는 장대한 포부에, 그는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늦은 밤, 웅대한 보름달이 구름 속에 가려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김옥균은 웃으며 소리쳤다.

"저 달은 비록 작으나 온 천하를 비추는구나."

이제 고작 13살의 어린 도령의 웃음소리가 온 고을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이 난세에 태어난 그 스스로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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